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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세계
Y A G I
담배 연기가 벌겋게 떨어져 가는 햇볕 속에서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너는 내게도 담배를 권했지만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담배를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이런 풍경을 보면서 담배를 태우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다. 너는 나를 불러놓고는 줄창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았다. 너의 몸 곳곳에 박힌 피어싱들이 햇볕을 받아 미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있잖아. 렌지.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까?”
“글쎄.”
나의 대답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죽은 인간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서로를 잡아먹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죽은 인간들은 오직 살아있는 인간만을 탐했다. 이 광경을,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인간들이 오갔을 버려진 아파트의 옥상에서 보고 있자니, 마치 저예산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일단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구울의 일이 아닌 인간의 일, 어쩌면 나 자신도 모르게 부러워하거나 증오하고 있었던 인간들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너는 피우던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희미하게 남아있던 불길이 너의 발밑에서 뭉개졌다.
“이렇게 구울의 시대가 오는 걸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갑자기 죽은 인간들이 살아날 줄이야.”
우타가 웃음기가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치고 그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뱉었다.
“죽은 구울들도 살아났으면 좋을 뻔했는데.”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
“많지는 않고, 조금. 우타, 너는?”
“글쎄. 잘 모르겠네.”
너 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에 렌지가 죽었다면, 보고 싶어 했을지도.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해, 렌지.”
응, 내 대답에 우타는 다시 담배를 하나 더 물었다. 벌써 다섯 개비 째였지만 나는 굳이 그런 그를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구울인걸. 담배 연기가 그렇게 싫지 않기도 했고. 너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너의 체온은 낯설 정도로 따뜻했다.
“렌지는 먹어 봤어? 저 시체들.”
“응.”
“어땠어?”
“죽은 지 얼마 안 된 인간은, 별로 차이도 없었어.”
“그럼 저들은 인간인 걸까.”
“인간이었던 것들이겠지.”
“재미없네, 뭔가.”
그 말을 끝으로 너는 다시 담배만을 태웠다. 뭔가 생각할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 그 생각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들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는데. 네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너의 말에 동의했다. 이렇게 되기를 바란 적도 없었는데. 그저,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가는 것을 바랐을 뿐이었는데.
만약에 아직도 신이 살아있다면 신이란 작자는 영 정도를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나는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나는 너의 약간은 거친 등을 쓰다듬었다. 너는 그런 내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마치 아무 곳에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런 것치고 너는 태연하게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렌지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어?”
“응.”
“왜?”
왤까. 나는 잠시 눈을 깜빡여 해가 천천히 떨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세상이 망하자 태양의 광채는 더욱 밝아져서 나는 곧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땅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찾아 어기적거리고 있는 전 인간들을 몇몇의 이름 모를 구울들이 사냥하고 있었다.
“그냥… 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서.”
“하긴. 죽어서도 움직이는 애들이니까.”
너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세상이 순간 아주 조금 흐려졌다.
“이렇게 구울의 세상이 되면, 렌지는 뭘 하고 싶어?”
“생각 안 해 봤어. 너는 어때?”
“평소처럼 렌지랑 같이 잠이나 잘까.”
너는 몸을 가까이 붙여오며 키득거렸다. 나는 굳이 그런 너를 밀어내지도, 더 가까이 닿기 위해 끌어안지도 않았다. 너는 피우던 담배를 저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불만을 표할 인간은 이 근처에는 없었다. 너의 가느다란 손끝이 어쩐지 서글퍼 보였다.
“배경 음악이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하하, 세상이 망하니까 렌이 농담을 다 하네.”
그 말을 하고 너는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너에게선 짙은 연기 냄새가 났다. 나는 너의 허리를 껴안았다. 보랏빛 어둠이 너의 어깨에 섬세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너의 목덜미에 내 얼굴을 묻었다. 분명히 세계는 아직 살아있는데, 너도 나도 아직 살아있는데 이 모든 것이 아주 끝나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있잖아, 렌지. 나는 사실 조금 쓸쓸해.”
“나도.”
“이렇게 또 밤이 오는구나.”
“들어가자.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응, 들어가자.”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와 함께 몰락하는 세계의 끝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곳에 남을 것이 오직 어둠뿐만이 아니길. 나는 내일도 또다시 해가 떠오르는 세계를 기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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