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요모 에반게리온 AU

 

 

정지된 어둠 속에서[각주:1]

 

Y A G I

 

하얀 천장. 우타는 잠시간 그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병실에는 적막이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병실 천장 같은 거,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우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평소처럼 요모가 창밖을 보고 앉아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역시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으나 익숙해진 광경이었다.

화났어?”

아니.”

요모는 항상 그렇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창밖을 향해있던 요모의 시선이 우타에게 닿았다. 우타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그냥 조금 걱정됐을 뿐이야.”

난 내 일을 했을 뿐인걸. 렌지가 그렇듯.”

요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화 안 났다더니. 화난 표정인데.

에바에 탈 수 있는 칠드런들이 없었어. 그래서 내가 대신 탄 거고. 어쨌든 사도들은 처치해야 하잖아.”

우타의 말에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사정은 알고 있었다. 자신도 네르프의 연구원이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우타가 에바에 타는 사실이 달갑지는 않았다. 싱크로율도 낮으면서 우타는 에바에 타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네르프에 속해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만약에 우타를 네르프에서 그만두게 할 수 있다면. 요모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갈 곳부터 없었다. 에바를 다루었던, 에바에 탔던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섞여 들어갈 수 있을까. 요모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아예 이 사실을 몰랐다면 또 모를까. 그들의 삶에 네르프는, 에바는 너무나도 깊숙이 박혀있었다.

몸 괜찮아지면 렌지 방에 놀러 가도 괜찮아?”

빨리 나을 생각부터 해.”

동기가 있으면 빨리 나을 거 아냐.”

요모는 답하지 않았다. 우타는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요모는 항상 그랬으니까. 요모는 싫다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할 사람이었다. 좋을 때 좋다고 이야기를 안 해서 문제지. 우타는 그런 요모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요모는 한숨과 비슷한 숨을 내뱉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타는 그런 요모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서 와.”

. 다녀왔어.”

우타가 병실에서 깨어나면 항상 나누는 대화였다. 요모의 어서 와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을까. 아마 내가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의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겠지. 우타는 눈을 감고 요모의 얼굴을 떠올렸다. 별말은 안 해도 걱정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요모의 표정. 우타는 그 얼굴을 보는 게 썩 즐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은 일이었다. 싫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이 우타에게는 에바에 타는 일이었고, 요모에게는 그런 우타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

 

 

렌지.”

.”

걱정 많이 했어?”

우타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요모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여 우타가 뱉은 담배 연기를 잠시 바라보았다. 연기 냄새가 공기 중으로 번지고 있었다.

.”

그 말을 하곤 요모는 손을 뻗어 우타의 담배를 쥐었다. 우타는 선선히 그에게 담배를 내어주었다. 요모는 우타를 따라 담배 연기를 뱉었다. 담배는 다시 우타의 손으로 돌아갔다. 우타는 요모의 머리카락을 아주 천천히 쓰다듬었다.

?”

우타가 없어지는 게 싫어서.”

?”

몰라, 그런 거.”

우타는 쌓여가는 담뱃재를 털었다. 요모의 방은 삭막했다. 요모는 창문 근처에 놓여있는 커피머신을 제외하면 거의 모델 하우스 수준으로 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요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남기기 싫어하는 사람.

요모는 우타조차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고, 그에게서 혼자 떨어져 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요모는 제 머리를 쓰다듬는 우타의 손을 잡아 그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대로 아침이 오지 않을 수 있을까.”

렌지는 지구가 이대로 끝나길 비는 거야?”

.”

차라리 이대로 서드 임펙트가 일어나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죽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모는 그런 생각을 했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우타가 더는 에바에 탈 일도 없을 테고, 끔찍하게 정갈한 병실에서 그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릴 일도 없을 테지.

한 차례 섹스가 끝난 후의 나른함만 안고 이 세계에서 떠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요모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네르프에 있는 한 그건 당연했다.

우타. 에바에 안 탈 수는 없어?”

그건 힘들 것 같아.”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우타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껐다. 그러고 나서도 담배 냄새는 오랫동안 요모의 방 안을 맴돌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여기 있는 걸지도 몰라.”

뭐 어때. 달리 갈 곳도 없잖아.”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야.”

모든 인간은 그래, 렌지.”

그 말을 하곤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하나뿐인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우타의 손은 꽉 쥐고 있었다.

두려운 거야?”

조금.”

괜찮을 거야.”

정말로?”

. 괜찮을 거야.”

그 말을 하며 우타는 몸을 숙여 요모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괜찮을 거야.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사정을 대충 포장하는 말이기도 했다. 괜찮을 거야. 우타, 그는 지금까지 칠드런들에게 그 말을 얼마나 많이 내뱉었는가. 그리고 그들은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까.

요모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질 수 있는 것일까. 우타는 말없이 요모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닿았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입을 맞추었다.

세계는 아주 천천히 멸망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1. 신세기 에반게리온 TVA 11화의 소제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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