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 우타 X 인어 10대 요모
좁은 욕조의 안에서
Y A G I
식용 목적으로 인어를 포획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수의 인어들이 포획되고 버려지고 있다.
인어는 어릴수록 맛과 효능이 좋다는 말에,
포획되는 인어의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
요모 렌지는 좁은 욕조 안에서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얀 타일로 덮인 욕실에 수술 도구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몸을 씻기 위한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을 뿐이었다.
요모는 욕조의 가장자리를 짚었다. 자신이 왜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요모는 손을 뻗어 제 허리를 더듬어 보았다. 아직은 어설프게 상처가 아물어 있었고 당연하게도 그곳에 지느러미는 더 이상 없었다.
요모는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의 상처들을 바라보았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기억의 일부가 잘린 것도 그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인간에게 포획당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은 누군가 가위로 엉망으로 잘라놓은 듯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지금 요모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자신의 지느러미가 아마 식용으로 팔리기 위해 잘렸고, 그리고 버려졌고, 누군가에게 주워져 이 욕조에 들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요모는 욕조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분했다.
“일어났어?”
욕실의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요모는 처음 그 남자를 본 순간, 잘못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의 양팔을, 그리고 아마도 상체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을 문신 때문이었다. 요모는 잔뜩 긴장한 채 욕조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욕조의 물은 그러기엔 너무 얕았다. 남자는 욕조 앞에 쭈그려 앉은 채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
요모는 답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요모 역시 수상한 남자에게 제 이름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우타야.”
우타라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요모의 젖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모는 몸을 가볍게 떨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머리 만지지 마.”
“왜, 싫어?”
“응.”
“그럼 안 할게.”
요모는 우타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요모가 여태껏 만나보지 못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요모가 만난 인간이라 봤자 그를 포획하려는 인간들이 대부분이어서 그의 경험으로 인간을 분류한다는 게 별 의미 없긴 했지만.
“이름은 말해주라.”
“왜 나를 구해준 거야?”
요모는 이름을 말하는 대신 날이 선 목소리로 우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타는 별일도 아니라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불쌍하잖아. 하수구에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동정 같은 건 필요 없었는데.”
“하지만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르는걸.”
“어차피 나는 죽은 거나 다름없어.”
“바다로 가고 싶어?”
우타의 말에 요모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러지도 못해.”
지느러미가 없으니, 제대로 헤엄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쩐지 상처가 욱신거리며 쑤셔오는 느낌이 들었다. 요모는 애써 그 아픔을 무시하고 말을 보탰다.
“그리고 나는 민물 인어야.”
“아.”
“바다 인어였으면 이미 죽었겠지. 이거, 민물이잖아.”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다행이네.”
우타가 소리 없이 웃었다. 요모는 그의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타는 요모의 머리를 만지는 대신 요모가 짚고 있는 욕조의 가장자리에 손을 얹었다. 우타의 손과 요모의 손은 서로 닿을 듯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름은?”
“엄청 집요하네.”
“궁금하잖아.”
요모는 가만히 우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요모는 한숨을 쉬듯 제 이름을 말했다. 요모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렌지. 요모 렌지.”
“잘 부탁해, 렌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손을 내밀어 요모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요모는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인간하고 잘 지내고 싶지 않았다. 요모에게 인간이란 언제나 공포와 분노의 대상이었다.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으로 그들을 분류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요모에게, 인어에게 낯선 인간이란 모두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우타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선히 손을 거두곤 욕실을 떠났다. 요모는 다시 고개를 돌려 우타가 닫고 떠난 욕실 문을 바라보았다.
욕실의 작은 창문으로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요모는 그제야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멍하니 떨어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지옥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우타가 다시 욕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요모는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았다. 요모와 눈이 마주치자 우타가 빙긋 웃으며 말을 꺼냈다.
“같이 씻자.”
“왜?”
“욕조는 네가 쓰고 있잖아.”
요모는 할 말이 없었다. 우타는 옷을 벗어 욕실 문밖에 두곤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요모는 제 꼬리가 우타의 몸에 닿지 않게 하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좁은 욕조 안에서 서로의 몸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모는 우타의 몸에 있는 수많은 문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문신이 어쩐지 제 몸의 흉터와 비교되는 것처럼 보여 요모는 몸을 움츠렸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비늘을 쓰다듬었다. 이번에 요모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에 우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프지 않아?”
“뭐가?”
“문신.”
요모의 말에 우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우타는 오른손 손끝으로 제 왼쪽 팔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별로. 왜, 렌지도 하고 싶어?”
“아니.”
“공짜로 해줄게. 나, 타투이스트거든.”
요모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았다. 그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인어는 태어나서 처음 봤어.”
우타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요모는 눈을 깜빡여 우타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우타를,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특이하지만, 가장 위협적이지 않은 사람.
“그리고 나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야.”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는다면 다소 위협적이게 들렸을 그 말이, 우타의 입에서 나오니 느낌이 달랐다. 어쩌면 요모가 우타에게 자신의 생명을 모두 맡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우타의 말에 요모는 눈을 감았다. 요모는 여전히 우타의 가지런한 비늘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렌지를 애완동물로 삼을 생각은 아니야.”
“알고 있어.”
“알고 있어? 기특하네.”
우타가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요모는 몸을 틀어 우타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우타의 시선이 요모에게 닿았다. 요모는 우타의 손등에 새겨진 문신을 매만졌다.
“진짜 안 아파?”
“익숙해지면 견딜만해.”
“나, 아픈 건 익숙해.”
“그러면 괜찮을 거야.”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해줄게. 욕실의 습기 때문인지 우타의 목소리가 조금 젖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아파?”
“조금.”
“참을 수 있겠어?”
“이 정도는 괜찮아.”
더 한 아픔도 겪어봤으니까. 요모는 그 말은 삼켰다. 굳이 이 상황에 필요한 말 같지는 않았다.
“흉터가 많네.”
우타는 지나가듯 말을 했다. 요모는 그에 답하지 않았다. 우타도 딱히 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닐 터였다.
“다 예쁘게 만들어줄게, 렌.”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타는 요모의 어깨에 찬찬히 무늬를 새겨넣고 있었다. 그 작업은 요모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요모는 고개를 돌려 제 어깨에 새겨진, 별자리를 본따서 그려진 검은 문신을 바라보았다. 우타는 그것이 자신의 별자리라고 말했다.
요모는 왜 제 별자리를 자신의 몸에 새기는가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것이 퍽 싫지는 않았다. 요모는 손끝으로 문신을 매만졌다. 흉터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것 같았다.
“무슨 자리야?”
“사수자리.”
“사수면, 뭔갈 사냥하는 사람인 거야?”
“그럼 셈이지.”
안 어울려, 하고 요모가 말했다. 그 말에 우타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요모는 너무 순진한 구석이 있어. 아직 어려서 그런가.”
“나 말고 다른 인어를 잡아본 적 있어?”
“아니.”
우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요모가 무어라 더 말을 보태기 이전에 하지만, 하고 말을 꺼냈다. 요모는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요모를 잡았잖아.”
요모는 어쩐지 그 말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자.”
“이게 뭐야?”
그날도 우타는 요모와 함께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왔다. 우타는 요모의 손바닥에 얹힌 진주 몇 알을 잠시 바라봤다가 요모에게로 눈을 돌렸다.
“선물. 나, 타투 해줬으니까.”
요모의 눈 밑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우타는 직감적으로 그 진주알들이 요모가 자기 스스로를 아프게 해서 억지로 뽑아낸 눈물로 만든 진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타는 요모의 몸을 훑어보았다. 가지런하던 비늘 몇 개가 뒤로 꺾여있었다. 그의 몸에 난 것과는 달리 금방 나을 상처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타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필요 없어, 렌지. 난 렌지가 울지 않는 게 더 좋아.”
우타의 말에 요모는 눈을 깜빡여 우타를 올려다보았다. 우타는 요모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요모는 이제 우타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렌지가 다 자라면 꼭 렌지의 고향으로 데려다줄게.”
“그럴 필요 없어. 이제 여기가 내 고향이야.”
“그래?”
요모는 무언가 결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표정이 퍽 귀여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요모는 우타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 올려져 있었던 진주 알들이 욕실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가 났다.
“진주가 싫다면, 이런 건 어때?”
요모는 우타가 더 무어라 말하기 전에 그의 옷깃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욕조에 담긴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가 곧 잠잠해졌다. 대신 두 사람의 축축한 호흡이 섞이는 소리가 욕실에서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나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야.”
“의외인걸, 렌지.”
우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인어의 키스는 어땠어?”
“짰어.”
“나, 민물 인어라니까.”
“참. 그랬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몸을 숙여 한 번 더 요모에게 입을 맞췄다. 민물 인어와의 키스는 의외로 비리지 않고 달콤한 맛이었다.
'FAN-CAKE > 도쿄구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다의 생일을 축하하여 직장 동료들과 절에 갔더니 주지 스님은 구울에 죽은줄 알았던 직장 동료는 부활?! (0) | 2018.05.23 |
---|---|
[우리후루우리] 심연 (0) | 2018.05.12 |
[우리즈미] 따뜻한 것 (0) | 2018.04.22 |
[흑카백카] 네가 있는 곳 (0) | 2018.04.15 |
[우타요모] 영혼의 자리 (0) | 2018.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