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리마X흑카네키 #잭리마X흑카네키-아리마X흑카네키-아리마X백카네키 순으로 바뀜(..) #시간 순서 꼬임 원작 시간 생각 X에요
#얓쿠님과 연성교환용 글^~^ #자캐연성급임......저가 아리마를 생각보다 잘 모르더라구요.......쩜쩜..
퍼즐
Y A G I
For. 얓쿠님
그날도 역시, 그저 그런 날이었다. 세상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그저 그런 날. 특별한 기쁨도, 슬픔도 없는 그저 그런 날. 솔직히 말해서 카네키 켄은 그런 날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카네키 켄은 딱히 특별함을 동경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는 평범하고 싶었고, 평범하게 행복하고 싶었다. 자신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그저 그런 날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카네키 켄은 언젠가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람에게는 그게 언제든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었다. 벼르고 벼르던 날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는 그런 날이. 물론 아무도 그 날이 언제 올지 알 수는 없었다. 그것은 카네키 켄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이 어둑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카네키는 프랜차이즈 편의점 로고가 찍힌 봉투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카네키는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두고 온 타카츠키 센의 신작을 읽을 생각에 들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새로 산 책의 냄새, 종이를 넘길 때 나는 버석거리는 소리,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이야기와 그것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문장들.
문장 하나하나만을 떼어 놓고 보면 큰 가치를 지니지 않지만,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카네키는 그 감각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타카츠키 센 만한 작가가 없었다. 그 유려한 문장하며, 타카츠키 센 밖에 풀어낼 수 없는 이야기 하며.
저 멀리 횡단보도의 초록 불이 점멸하고 있었다. 뛸까, 고민하던 카네키는 깜빡이는 불빛을 무시했다. 이럴 땐 좀 걸리더라도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훨씬 나았다. 카네키는 다시 수많은 책들을 생각했다. 자신을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책들, 익숙한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낯선 문장들…….
“음?”
카네키의 손바닥 안에서 편의점 봉투가 바스락거렸다. 카네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커다란 기타 가방이었다. 처음에는 이 시간까지 부 활동 따위를 하고 귀가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날 선 소년의 옆얼굴이었다. 얇은 안경이 소년의 코에 얹혀있었다. 그다음엔, 새벽의 색채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년의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풍채 좋은 남자였다.
심장이 두근, 하고 뛰었다.
어라? 카네키의 눈앞에서 횡단보도의 초록색 불빛이 정신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카네키 모르게 신호가 한 번 더 바뀐 모양이었다. 누군가 카네키를 지나쳐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카네키는 그 자리에 박힌 듯 서 있었다. 왜, 심장이 뛰었지? 카네키는 고개를 가볍게 갸웃거렸다.
카네키는 횡단보도로 눈을 돌렸다. 신호등은 다시 붉게 변했고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 자동차들이 횡단보도의 흰 선을 마구 짓밟고 있었다. 카네키는 그 소년이 들어선 골목에 따라 들어섰다. 그러니까, 걱정이 됐다. 풍채 좋은 남자와 소년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냥 놓고 보면 접점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엮여서는 안 되는 부류의 사람들 같았다.
물론 그것은 편견이었다. 카네키는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소년의 뒤를 따랐다. 만에 하나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카네키는 싸움엔 별로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신고 정도는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골목은 도시의 그림자였다. 엉망으로 얽혀있는 관들이 낡은 벽에 엉겨 붙어 있었다. 소년의 뒷모습은 이미 카네키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카네키는 귀를 귀울여 봤지만 딱히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맞나? 카네키는 그러길 빌면서도, 동시에 사소한 일이 있길 바랐다.
물론 카네키 켄이 바란 사소한 일은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아니었다.
“……!”
너무 놀란 나머지 카네키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카네키는 몸을 휘청거리며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어깨며 허리에선 진득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구급차…! 카네키는 얼른 휴대폰을 찾았지만 그의 휴대폰은 남자의 뒤쪽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다.
휴대폰을 가지러 가려던 그 순간, 카네키는 남자의 허리춤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상처 입은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어깨가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피?”
“……피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카네키의 귀를 찢었다. 남자의 몸이 카네키 위로 드리워진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 카네키의 뺨에 뜨끈한 피가 뚝, 떨어졌다. 카네키는 그제야 자신이 땅에 등을 대고 있다는 것도, 제 위의 남자가 아까의 소년이 뒤따라가던 남자란 것도 눈치챘다. 남자의 등허리에 있는 것이 피가 아닌 카네키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라는 것도.
남자는 뭐라고 웅얼거렸지만 카네키는 그 말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먹고, 끝내고, 없애고, 뭐 그런 폭력적인 단어들. 그 단어들이 왜, 자신에게 향하는지 카네키 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흰빛이 있었다.
카네키는 그것이 소년의 손에 들린 검이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몇 번의 합이 있었다. 남자는 당황한 듯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 호흡은 소년의 검에 갈려 사라졌다. 남자는 그 꼴이 되어서도 용케 움직이고 있었다.
소년은 카네키 앞을 막아섰다. 소년의 감색 머리카락이 공중으로 한 번 떠올랐다 다시 그 하얀 목덜미에 내려앉는 것이 카네키의 눈에는 아주 느리게 보였다. 덕분에 카네키는 그 모든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젠장, 하고 소년이 날 선 말을 뱉어내는 것을 듣고서야 카네키는 정신을 차렸다. 멀리 내동댕이쳐진 편의점 봉투는 이리저리 밟혀 속에 있던 음식물들이 끔찍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소년은 뒤돌아 카네키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미끄러져 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렸다.
눈동자가 텅 비어 있다고, 카네키는 생각했다.
“괜찮아요?”
소년은 카네키에게 손을 내밀었고 카네키는 흔쾌히 그 손을 잡았다. 왼손에 제 몸통보다 긴 검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 이질적이었다. 그럼에도 카네키는 이 모든 상황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 눈으로 본 사실이니, 당연했다.
카네키는 그 날 저녁을 걸러야만 했지만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새로 산 책의 페이지가 도저히 넘어가지 않아 카네키는 결국 그대로 하루를 일찍 마감했다. 카네키는 침대에 누워 좁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카네키 머릿속을 떠돌고 있던 것은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소년의 흰 목덜미였다.
“엑, 이것 봐. 구울이래.”
히데는 항상 요란하게 등장했다. 교내 카페테리아 테이블에 앉아있던 카네키는 고개를 들어 히데를 바라보았다. 히데는 카네키 쪽으로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누군가 CCG에서 배포한 전단을 찍어 SNS에 올린 모양이었다.
“구울이라고 꼭 괴물처럼 생기진 않았네.”
“나 이 사람 봤어.”
“그럼 신고해. 포상금 준대.”
“아니… 길에서 본 건 아니고, 죽을 뻔했다고 하면 좋을까.”
“너, 그런 일을 되게 태연하게 말한다…….”
히데는 짐짓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카네키는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소년은 어떻게 구울에게 맞설 수 있던 걸까. 카네키는 소년의 손에 들려있던 검을 떠올렸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구울 수사관이기라도 한 걸까.
카네키는 소년의 이름이라도 물어 놓을 걸, 하고 후회했다. 생각해보면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다.
히데가 자판을 누를 때마다 히데의 휴대폰에서는 톡, 톡, 하는 소리가 났다. 히데는 구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느니, 여러 사람들이 신빙성 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느니, 하는 말들을 전했다.
“카네키, 너 얼굴 봤다 그랬지.”
“응. 이렇게, 마주 봤는데.”
카네키는 히데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히데는 미간을 싹 찌푸렸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왜?”
“너, 다시 죽이러 오면 어떻게 해?”
“…에이. 내가 어디 사는지 어떻게 알고.”
“다니는 길에서 마주친 거 아니야?”
“…….”
“……야, 몸조심해라.”
카네키는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네키가 조심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닐지 몰랐지만, 카네키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에어컨 춥다, 하면서 히데는 몸을 떨었다. 에어컨 때문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들은 억지로 온도 조절을 잘 못 한다면서 가게를 욕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해가 지면 외출을 가급적 금한다. 그날 이후로 카네키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던 규칙이었다. 그런데 왜, 이 구울은 카네키의 방에 들어와 있는 거지?
카네키는 머리를 굴렸다. 어두운 밤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집 위치를 발각당할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니까, 밝은 대낮에 미행을 했다는 거군. 카네키는 거기까지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다였다.
“잘 먹겠습니다아.”
먹힌다. 카네키는 오금이 저린다는 말을 체감했다.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칠 수가 없었다. 카네키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단기간에 두 번이나 느낀 무력감이었다. 카네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는다. 주마등이 스쳐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다만 그 소년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렸다. 이름이 뭐였을까. 타나카, 야마모토, 스즈키. 카네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름들을 몇 갠가 나열했지만 그 소년에게 어울리는 이름은 단 하나도 없었다.
카네키의 얼굴에 뜨끈한 것이 흩뿌려졌다. 침인가. 아니면 이미 먹혀 그의 식도 안에서도 나는 사고하고 있는 것인가. 카네키는 주저하며 실눈을 떴다. 웬 천장이 보였다. 자신의 방 천장이.
이름도 모를 그 구울은, 머리를 잃어버리고 카네키의 침대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카네키는 그제야 몸이 움직였다. 몸을 퍼뜩 일으킨 뒤 카네키가 가장 먼저 본 것은 그 소년이었다. 죽기 전까지 카네키의 머릿속에 아른거리던 그 소년.
“괜찮아요?”
“덕분에…….”
카네키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네키는 소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선을 느낀 소년은 입술을 앙다물고 카네키를 의뭉스럽게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시선을 먼저 피한 것은 소년이었다.
“…실례했습니다.”
“아, 잠시만요!”
카네키는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려는 소년을 붙잡았다. 소년의 얼굴은 어둠 속에 묻혀있었다. 그의 표정을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카네키는 소년의 이름을 물었다. 소년은 즉각 고개를 저었다. 알 것 없다는 표시였다
“저는, 카네키. 카네키 켄이에요.”
“……아리마 키쇼.”
아리마는 다소 떨떠름한 듯 자신의 이름을 뱉었다. 상대가 먼저 이름을 말한 상황에서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별로 예의가 아니었다. 아리마는 고개를 까딱, 숙이고 카네키의 방을 떠났다.
“카네키 켄….”
후속 조치를 취하는 동료 수사관들의 모습을 보며, 아리마는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아리마는 고개를 가볍게 왼쪽으로 젖혔다. 그 이름을 몰랐으면, 그저 지나치는 사람에 불과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별일이 없다면,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날 게 분명했다. 아리마는 곧 다른 구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기억 속에서 희석되다, 미래의 어느 순간 카네키라는 이름을, 아리마라는 이름을 간혹 떠올리곤 희미해진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관계로 끝날 운명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여태껏 잡고 있던 두 사람의 운명의 실을 새로 고쳐 쥐었다. 여신은 두 사람의 운명의 실을 왼손에 그러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카네키 켄은 종종 자신이 인간인 꿈을 꿨다. 자기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그는 자신이 인간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꿈을 꿨다. 잠을 자고 나면 항상 개운하지가 않고 괴로웠다.
자신은 무엇인가, 구울인가, 인간인가? 요시무라 씨는 그렇기에 카네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카네키 켄은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카네키 켄이 하고 싶은 것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뿐이었다.
죽을 위기를 넘기고 싶지도, 구울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구울 수사관인 아리마 키쇼에게, 적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아리마 키쇼. 어째서 그 이름은 카네키의 머릿속에서 자꾸 부유하는가. 카네키는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했다. 사실 카네키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래서 카네키는 아리마 키쇼에 관한 자신의 마음을 더욱 알 수 없었다.
언젠가 토우카의 앞에서 무심결에 아리마 키쇼, 하고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마른행주로 컵을 닦고 있던 토우카의 손이 미끄러졌다. 그러나 토우카는 태연하게 떨어지는 컵을 잡아 작업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카네키를 노려봤다.
“그 이름 어디서 들었어?”
“무슨 이름?”
“방금, 아리마 키쇼라고 했잖아.”
아. 카네키는 그제야 자신이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물아물 토우카의 시선을 피하던 카네키는 문득 토우카와 눈을 맞췄다. 토우카는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토우카도 아리마를 만난 적이 있는 걸까.
“그 사람이 왜?”
“CCG의 저승사자.”
“저승사자?”
“아리마 키쇼의 별명이다.”
토우카는 침을 뱉듯 아리마 키쇼라는 이름을 발음했다. 그렇구나. 카네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저승사자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한 번 더, 아리마 키쇼를 마주치면 카네키는 죽게 될까.
카네키는 아리마의 손이라면 죽어도 상관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만 카네키가 궁금한 것은, 아리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밤하늘이 청명했다. 지금까지 숱하게 봐온 밤하늘인데, 오늘따라 더 그렇게 보였다. 카네키는 자신을 뒤쫓는 사람이 있는 것을 느꼈다. 안테이크에서 퇴근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식은땀이 배어 나와 카네키는 허벅지에 제 손바닥을 문질러 닦았다.
피할 수 있을까. 만난다면 싸울 수 있을까.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인간이잖아. 나는 인간이잖아.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는 없는 거잖아. 나는, 구울이 아니잖아. 하지만 그런 상황은 카네키가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싫게도 벌써 익숙해진 소리였다. 수트케이스였다. 쿠인케, 라고 했던가. 카네키의 삶은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쿠인케의 경우는 바뀐 것들 중에 나쁜 것들에 속했다.
죽고 싶지 않아. 카네키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인간을 반쯤 잃어버리고, 카네키는 지금까지 얼마의 죽음을 봐왔던가. 죽음에 가까이 있던 자들을 봐왔던가. 카네키 본인부터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먹고사는 생명이었다. 죽음이란 것이 조금 익숙해진 것도 같다고 카네키는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죽음만은 이렇게도 크고 무거운 것인가.
“……카네키 켄?”
마스크를 쓰고 오진 않은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 그 전에.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였다. 카네키는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카네키는 그런 남자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왜.
바람이 카네키 쪽으로 불어왔다. 익숙한 향내가 섞인 바람이었다. 잊을 수 없는 냄새. 아주 잠깐 카네키를 스치고 지나갔던 그 냄새가 났다.
“아리마. 아리마, 키쇼.”
“…안대.”
하아, 하고 아리마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느낌이 안 좋더라니. 사실 안대의 구울은 아리마의 담당은 아니었다. 안대의 구울은 아리마 정도 되는 사람이 담당할 만큼 위험하거나 중요한 구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리마는 자신이 안대의 구울을 맡겠다고 말했다. 마도 쿠레오의 죽음 이후였다. 안대의 구울. 아리마는 그 단어에서 불길한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아리마조차 그 불길한 기운의 정체가 바로 이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카네키 켄.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리마 씨. 저를… 죽일 겁니까.”
“그렇게 물어보면, 안 죽인다고 말할 수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리마는 쿠인케를 수트케이스에 집어넣었다. 카네키가 기억하던 쿠인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카네키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는 이제는 하얗게 새어있었다. 하지만 안경 뒤의 그 날카로운 눈빛만은, 예전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 텅 비어있는 눈빛.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그 눈빛만큼은.
“잠깐 걷지.”
아리마는 카네키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는 최대한 담담하고자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카네키의 앞에서 행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아리마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리마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아리마의 감정을 아리마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처럼. 아리마의 심장은 심하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이러다 죽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었다. 아리마는 자신을 뒤따라오는 카네키의 발걸음을 들었다.
아리마 키쇼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다지 원망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구울 수사관으로서의 삶이 퍽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의 삶의 목표는 구울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리마의 곁을 지나쳐갔다. 하지만 아리마는 외롭지 않았다. 처음으로 친구라는 것을 사귀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 사람 때문에, 아리마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깨달아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추억이 퇴색되지는 않았다. 외롭더라도, 아리마는 사실 별로 상관없었다. 그의 외로움은 구울을 구축하는데 원동력이 되지도,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그의 삶에 작은 외로움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 외로움을 흔들어 놓은 것이 카네키 켄의 존재였다. 아리마는 자신의 감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것을 납득하기 위해 카네키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리마의 심장 어딘가가 욱신 쑤셔오는 것이었다.
아리마는 수없이 많은 꿈을 꾸었다. 모두 카네키 켄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먼지처럼 스러저버리는 꿈이었다. 카네키는 없어져 가는 자신을 잡지 않았다. 아리마 본인도 그런 카네키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붙잡을 수 없었다는 말이, 정확했다.
자신의 삶은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저주받은 삶이 아니었던가.
두 사람은 근처 공원에 도달했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 벤치들이 드문드문 놓여있었다. 아리마가 먼저 벤치에 앉았고, 다음은 카네키였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침묵이 가라앉았다. 어느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둘 다, 너무 많이 바뀌었네요. 사실, 아리마 씨가 아닌 줄 알았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그땐, 구울이 아니었으니까.”
“많은 일이 있었어요. 아리마 씨에게, 많은 일이 있었듯이.”
카네키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띄엄띄엄 아리마에게 전했다. 아리마는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카네키의 말을 경청했다. 좋은 목소리였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하고, 뭐 그런 단어들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목소리.
아리마는 카네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안대로 가려진 눈 뒤에는 아직 숨기지 못하는 혁안이 있다고 했다. 카네키의 얘기 중간에, 아리마는 손을 뻗어 그의 안대를 벗겼다.
“……그렇네요. 그렇게, 됐어요.”
“그럼 카네키 너는 이제… 구울인가.”
“구울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인간은 아니지만요.”
“카네키. 네가 CCG 구축 대상인 것은 알고 있겠지.”
“안대의 구울, 이라면서요?”
아리마는 몸을 일으켰다. 카네키의 칠흑 같은 머리가 가로등 아래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카네키의 시선이 아리마를 따라 움직였다. 그의 시선은, 슬픔이었다. 그리고 아리마는 자신의 눈빛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아리마 씨.”
“다음에는, 구축이야. 나를 더 이상 기억하지 마, 카네키 켄.”
“아리마 씨!”
카네키는 아리마가 이대로 떠날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정말, 우리의 관계는 이대로 끝인 것인가. 카네키는 아리마에 손에 죽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는 건 싫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없었던 것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 싫었다.
“아리마 씨, 차라리 여기서 저를…….”
수트케이스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카네키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리마의 손바닥이 카네키의 뺨을 감싸고 있었다. 아리마의 입술이 부드럽게 카네키의 입술을 짓눌렀다.
부드럽게 두 사람의 혀가 얽혔다. 두 사람의 혀는 어색하면서도 집요하게 서로를 탐했다. 카네키는 아리마의 목을 껴안았다.
두 사람의 첫 키스는. 그러니까, 눅눅한 맛이었다.
“어이, 바보 카네키.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바보라고 부르는 건 슬슬 그만해 줬음 하는데….”
“그러면 바보짓을 안 하면 되지, 바보.”
토우카는 바보, 라는 말을 부러 길게 늘여 말했다. 요사이 카네키 켄의 모습은 좀 이상했다. 하긴 원래부터 이상한 녀석이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넋을 놓고 있진 않았는데. 토우카는 카네키의 그런 모습이 아직은 썩 못마땅했다. 그가 좋은 녀석인 걸 알면서도 그랬다.
좋은 녀석인 걸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카네키는 설거지를 이어갔다. 식기끼리 부딪히며 쨍, 하는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네키는 도저히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그러지. CCG의 저승사자와 키스했다고 그러면.
그 키스가 너무 따뜻했다고 말하면.
그래서 이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면. 카네키는 속이 쓰렸다. 이제 겨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알았는데, 이젠 다시 만나면 안 된다니. 정말 글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하고 만나야만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평범하게 사랑하고, 함께 있고, 데이트도 하는 삶을. 하지만 지금 이 꼴이 뭔가. 같이 데이트를 하러 가도 카네키가 먹을 수 있는 건 커피밖에 없지 않은가.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지만, 카네키는 그 삶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리고 카네키는 꽤 그것에 충실했다. 안테이크의 일상도, 음식을 먹는 ‘척’하는 것도, 시체를 먹는 것도 제법 익숙해진 일들이었다. 하지만 아리마 키쇼와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카네키는 그날 결국 찻잔을 하나 깨트렸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한번 더 만났다.
수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 뒤였다. 카네키는 삶의 궤도라는 것을 체감했다. 처음에는 작은 틈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커져갔다. 카네키 켄은 이제, 카네키 켄이라기보다는 안대의 구울이었다.
운명은 카네키를 자꾸 카네키에게서 밀어냈다. 카네키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서도 밀어냈다. 카네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자기 눈물에 자기가 질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카네키는.
카네키는.
결국 카네키는 그 이후로 아리마를 만나지 못했다. 그의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아리마가 일부러 피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카네키는 그것이 그의 배려라는 것을 알면서도 못내 섭섭했다.
하지만 카네키의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의 운명은 아예 멀어질 수 없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카네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를 넘어 아리마를 만났다. 그리고, 그를 죽이고 그를 지나가야만 했다. 아리마 키쇼가, 구울인 자신을 그냥 보낼 리는 없을 테니까.
카네키 켄과 아리마 키쇼. 만나고 싶지 않으면서도,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발밑에서 피었을 리 없는 하얀 꽃들이 피어났다. 아리마는 카네키의 뺨을 매만졌다. 이전보다 조금 살이 빠진 것도 같았다.
“비슷해졌구나.”
“그렇다고 같아질 순 없겠죠.”
“그렇겠지. 아쉽게도.”
카네키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몇 번이고 상상해왔던 장면이었다. 아리마의 입술은 카네키의 기억보다 훨씬 더 뜨겁고, 축축했다. 카네키는 아리마에게 매달리듯 붙었다. 이것은 분명히 마지막이었다. 다음은 없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카네키는 두 사람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차가운 소나기를 상상했다. 이대로 스며들어 가면 좋겠어. 그렇게라도 평생 함께하고 싶어. 하지만 그들에게 쏟아지는 것은 소나기가 아니라 전쟁의 뜨거운 피였다.
“하아…….”
누구 것인지 모를 호흡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카네키는 혀로 제 입술을 훑었다. 눈물맛이 났다. 둘은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하얀 꽃잎이 엉망으로 짓밟히고 흩어졌다.
“이젠 끝이구나.”
“그렇군요……. 안녕히 계세요, 아리마 씨.”
안녕, 하고 아리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