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리아리? 아리잭리? 염두해두고 쓴 건 잭리아리  #어떤 이유인진 몰라도 잭리마와 아리마가 만났다.  #캐해석 흔들림 주의

 

 

첫 숨

 

Y A G I

 

 

  “키쇼.”

  그렇지. 당신은 나의 이름을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키쇼, 하고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당신의 눈빛은 항상 이상하게 슬퍼졌다. 나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당신과 내가 살아온 시간이 너무 달라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당신이 나의 이름을 그렇게 불러주면 나는 당신을 따라서 당신의 이름을 말했다.

  “아리마.”

  내 것보다 조금 두터워진 안경알이 천장의 조명을 하얗게 반사시켰다. 내게 있어서 당신은 아리마 키쇼라기 보다는 그저 아리마였다. 키쇼라는 이름은 내 것이었고, 아리마라는 성은 당신의 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아리마라는 성씨를, 저승사자라는 닉네임을 가져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었다. , 나보다는 당신이 훨씬 더 많은 숫자의 구울을 저승으로 보냈을 것이 분명하니, 나는 그 타이틀을 유감없이 당신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물론 원래부터 그 타이틀에 연연해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꽤 유연하게 이 상황을 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일어난 이유 같은 것은 우리에게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걸 결정하는 것 역시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아리마, 당신의 집에서 기거하기로 했다. 자기 자신과 함께 산다는 것은 퍽 편리한 일이었다. 사소한 생활 습관도, 생체 시계도 거의 비슷한 우리들은 처음부터 함께 살았던 것처럼 같은 시각에 일어나 나란히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하고, 각자 할 일을 해나갔다. 내가 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당신이 외출한 뒤에 텅 빈 당신의 침대에 엎드려 친숙한 당신의 냄새를 맡는 것 정도밖에 없었지만.

  나는 이것을 뜻밖의 휴가로 여기기로 했다. 바라지도 않았던 휴가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별 수 있으랴. 나는 종종 당신의 집 근처를 산책했다. 조용하고 깔끔한 동네였다.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동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 뒤에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동네라는 생각도 함께 따라왔다.

  당신은 집이 있구나.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가는구나. 매일 아침 똑같은 풍경을 보며 눈을 뜨고 똑같은 거리를 걸어 퇴근하는구나. 나는 그것이 꽤나 유감스러웠다. 나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했던 나의 미래는 이렇지 않았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 사람은 이렇게 어딘가에 정착하게 되어버리는 걸지도 몰랐다. 지쳐버리니까.

  아리마, 키쇼. 우리는 그 피로감이 우리의 삶을 더욱 빨리 침식해버리는 부류의 인간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존재들이었다. 아리마 당신은 그렇게 물러져 버린 걸까. 그런 걸지도 몰랐다. 나이가 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욱 서글픈 일이었다.

  “아리마.”

  어느 날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당신의 이름을 나직하게 불러보았다. 예전에 잠들어버린 줄 알았던 당신이 응, 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무늬도 없는 천장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 하는 거, 아직도 후회하지 않아?”

  “별로.”

  “아리마 당신의 삶은, 나의 삶과 얼마나 비슷해?”

  “십 몇 년의 세월만큼, 달라져 있어.”

  “나도 변할 수 있는 존재였구나.”

  “슬프게도. 살아있는 이상 그렇게 되어버려.”

  내 오른쪽에 누워있던 당신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침구가 그의 몸에 닿아 서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당신을 따라 몸을 돌려 당신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눈부신 하얀 머리카락이, 힘없이 당신의 이마에 늘어져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머리카락을 당신의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러자 당신은 희미하게 웃었다.

  “아직도 나를 싫어해?”

  “키쇼, 너는 나를 싫어해?”

  “잘 모르겠는걸. 그냥 내가 아닌 것만 같아.”

  “확실히, 너와 나는 다르겠지. 그나저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가지 남겨둔 것이 있는데, 그것이 키쇼 네게 기쁜 선물이 될 수 있으면 좋겠네.”

  “아리마 당신은, 역시 나와는 다르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인간성이란 걸 조금 배워봤지.”

  나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손을 그대로 아래로 내려 당신의 뺨을 쓰다듬었다. 자신의 체온이 느껴졌다. 나는 나보다 조금 더 늙어있는 심장 박동과 조금 더 어두워져 있는 당신의 눈동자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것이 다시금 슬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바뀌고 싶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잃지 않으려면 무언가를 갖지 않는 수밖에는 없었다. 내 삶이란 건 처음부터 그랬다. 내 목숨조차 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왕 아무것도 갖지 못하고 시작한 삶이었으니, 끝까지 미련조차 남기지 않자고 결심했건만.

  미래의 나는 무언가를 남기려하고 있었다. 인간이란 건, 생존해 있다는 건 그런 거려나. 빼앗기만 하는 내 삶은 내가 끔찍하게 경멸하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당신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당신이 마른 숨을 내쉬는 것이 느껴졌다.

  “아리마. 나는 역시 당신이 싫어.”

  “그럴 것 같았어.”

  당신은 그저 태연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런 건가 싶었다. 나는 그저 끝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싶었어. 나는 먼 미래에 내가 갖게 될, 사랑하게 될 이름 모를 것들을 두려워하며 그날 밤을 지새웠다.

 

  “저기, 같이 씻을래?”

  “웬일로.”

  당신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몸을 틀어 공간을 만들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당신의 팔 밑으로 들어갔다. 아직까지는 말라있는 욕실 바닥이 내 발을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나는 옷을 벗기 전에 먼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욕실에 훈기가 돌기 시작해서야 우리는 거의 동시에 옷을 벗기 시작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는 거야?”

  “그냥, 궁금해서.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사실은 생각보다 크게 자라서조금 놀랐달까.”

  “마음에는 들어?”

  “글쎄. 싫다고는 안 할게.”

  남자 두 명이 들어가도 넉넉한 크기의 욕조였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앉았고, 때문에 당신의 발목과 내 발목이 서로 맞닿았다. 나는 당신 몸의 크고 작은 흉터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눈에 익숙한 것이 훨씬 많았다. 당신 역시 내 몸의 흉터들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그러곤 당신은 또 예의 슬픈 눈빛을 지었다.

  당신은 뜬금없이 입을 열어 뜻밖의 주제를 꺼냈다.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어.”

  “설마 결혼한 거야?”

  “아니. 그냥형식상의 아버지. 사실은 너보다 나이가 많은데.”

  “그거 정말 안 궁금한 사실인 걸…….”

  당신은 그 형식상의 아들을 떠올리고 있는지 아주 엷고 부서지기 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신은 물에 젖어 당신의 관자놀이에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나도 당신을 따라 내 머리카락을 무심코 매만졌다.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시답잖은 가족 놀이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물이 찰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몸을 일으켜 당신의 다리 사이로 움직였다. 의외로 당신은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저 무언가 애틋한 것을 바라보듯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아리마, 나는 당신을 잘모르겠어. 나 자신인데 말이야.”

  “언젠가 이해하는 날이 올 거야, 키쇼.”

  당신의 커다란 손이 내 목덜미에 닿았다. 나는 당신의 흉터들을 손으로 짚었다. 당신의 맨살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연약했다. 손톱을 박아 넣으면 아파 보이는 상처가 생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살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내 살이기도 했다.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당신의 입술은 제법 따뜻하고 푹신했다.

 

‥ ‥ ‥

 

  나는 아리마, 당신의 뒤를 따라 많은 것을 남기게 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유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이유가 있다면, 내가 키쇼이기 때문에. 아리마 키쇼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었다.

  기타 케이스의 단단한 끈을 엄지로 매만졌다. 불현 듯 당신이 나를 찾아왔던 것처럼, 당신은 그렇게 떠나갔다. 지금껏 아무것도 남겨오지 않은 나의 삶에서 내가 가장 먼저 남긴 것은, 당신의 입술 감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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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 전령 60분_ 바다로 향하는 발걸음  #우타요모

 

 

 

물그림자 아래에서

 

Y A G I

 

 

 

  렌지. 나는 지금 네가 없는 세계를 보고 있어.

  보고 있다, 라고 표현을 한 것은 정말로 내가 그 세계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 때문이야. 재미있는 걸 말해줄까. 이 세계에 렌지 네가 없듯이, 이 세계에는 나 역시 존재하지 않아. 물론 이 세계에서는 또 다른 우타가 존재하고 있긴 해. 이 세계의 우타는 어떤 이유에서든 요모 렌지를 만나지 못한 우타. 그의 삶은 렌지라는 그 두 글자가 빠진 나의 삶이었어.

  있잖아, 렌지.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잠든 모습을 볼 수 있었어. 너는 자주 이런 모습을 바라봤다는 거겠지.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 문득 네 생각이 나서, 나는 네가 가끔 그랬던 것처럼 나의 이마를 매만져보려고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어. (, 너는 내가 자는 척 하며 네 손길을 느낀 적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게 퍽 유감이었지. 이 세계의 우타는 어떤 형식으로든 렌지 너의 감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나는 무척 유감이었어.

  혹시 네가 궁금해 할까봐 미리 말해두는 건데, 이 세계의 우타는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다. 당연하잖아. 렌지, 네가 내 삶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내게 필수적인 것은 아닌걸. 너는 그저 내 작은 유희거리일 뿐인걸, 너도 나만큼 그걸 잘 알고 있지 않아?

  나는 이 세계에서 가끔, 또 다른 내가 만든 가면을 경탄스럽게 보곤 한다. 내 손이 아닌 곳에서 내가 만든 것이 나온다니. 그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렌지 너는 아마 상상조차 못할걸. 손끝으로 그것들의 겉을 쓸어볼 수 없다는 것이 물론 아쉽기는 했어. 아마 똑같은 감각일 거라고 상상하긴 하지만, 항상 상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니까. 여기의 나 역시 제법 괜찮은 가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은 역시 나를 좀, 뿌듯하게 만들었지.

  그런데 여긴 왜 네가 없을까?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는 내가 있던 세계와 다른 모든 것이 다 똑같은데 너만 없다니.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그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야. 나는 이 쓸모없는 호기심에 종종 네 흔적 따위를 찾아 움직이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소득은 딱히 없었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래서, 나는 아주 약간 절망하던 참이었어.

  흔적이란 건 의외로 내 가까이에 있었는데. 렌지는, 이게 뭔지 궁금할까? 궁금하면 조금 더 참고 있어봐. 이따가 말해줄 테니. 지금 당장 말하면 재미없잖아.

 

  렌지, 이 세계의 구울들 역시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수많은 싸움들을 바라봤어. 수많은 구울들이 서로에게 먹히거나, 비둘기들의 손에 죽거나, 조금 다른 형태로 다시 살아나거나, 서로 사랑을 하거나, ,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어느 세계의 구울도 아직 행복해지지 못한 모양이야.

  물론 그것은 인간들도 마찬가지지. 렌지도 알잖아. 살아있는 존재들이란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길고 가벼운 호흡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존재들이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란 것의 카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카피, 라기보다는 가짜에 가깝나. 불변해야 마땅할 행복이라는 것의 조잡한 가짜. 우리 모두 무의식중에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것이 언제 내 손아귀를 빠져나갈까봐 두려워하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잖아. 렌지도. 렌지도 겪어봐서 알잖아.

 

  있잖아, 렌지. 내가 이런 몸이 된 이후로, 눈을 감으면 항상 보이는 영상이 하나 생겼어. 처음엔 바닥도 천장도 없는 어둠이 눈앞에 보여.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눈을 감았는데 바라본다니, 이상한 표현이지? 하지만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 희미하게 내 몸의 감각들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살아나는 것은 청력. 익숙한 소리가 들려. 물소리.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소리. 그 다음으론 후각. 마찬가지로, 물비린내. 짭잘한 냄새. 미각과 촉각은 동시에 살아나. 내 살을 깎아낼 것 같은 차가운 바람. 나도 모르게 입안에는 따듯한 침이 고여 있고. 그쯤 되면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섞여 머릿속이 온통 어지러워져. 그러면 나는 내 팔로 내 몸을 감싸 안고 웅크리고 만다.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나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어.

  그럼에도 나는 눈을 뜨지 않아. 끝까지 눈을 감고 이 모든 것이 지나가길 진득하게 기다려본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살아났던 모든 감각들이 다시 죽어 없어지고, 시각은 그때서야 뒤늦게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려. 보이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어. 끝없는 어둠 속에서 내 머리 위를 떠다니는 선명한 물의 그림자.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그물 모양의 그 하얀 그림자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곤 해.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것을 보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네. 지금 내가 바다 밑에 있기라도 한단 말일까?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바다에 빠져 죽기 전에 환각 따위를 보고 있다는 말일까?

  한동안 그 희미한 빛을 바라보다 눈을 뜨면 다시 네가 없는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그러면 나는, 나 자신이면서도 내가 알지 못하는 우타가 또다시 그의 하루를 보내는 것을 또 지켜본다.

 

  아, 잊을 뻔 했군.

  아까 말하다 말았던, 내가 찾은 너의 흔적은 내가 언젠가 너에게 만들어줬던 너의 가면이었어. 여긴 네가 없는 세계인데. 이상하지. 여기의 우타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 가면을 선물할 생각이었을까?

  하지만 그 가면은 조명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 가게의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 세계의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선물할 것을 이렇게 방치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 그렇다면 이 가면은 과연 누굴 위해 준비된 것일까. 만지지 못하는 그 가면의 표면을 가짜로 만지면서, 나는 이 가면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생각했어.

  이상하지.

  너는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길래, 나는 이런 의미 부여까지 하고 있는 걸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어. 확실한 게 있다면, 네가 내려준 커피가 갑자기 굉장히 그리워진다는 것. 그 정도뿐.

  요모 렌지, 어쩌면 너는 내게 친구보다는 그저 커피를 되게 잘 내리는 구울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리고 나는, 그런 구울인 네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물소리. 나는 그것을 따라가 보기로 했어. 어쨌든 나 역시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내게는 잃을 것이 없으니까.

  렌지, 나는 그저 내가 이 물 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네가 내린 커피 한 잔이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기만을 바라.

  기대하고 있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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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헤이 하이루  # :re 5권, 로제 전  # 리퀘박스

 

 

 

검과 방패의 끝

 

 

Y A G I

 

 

 

 

전장의 냄새.

그런 게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걸까? 이헤이 하이루는 아리마 키쇼가 읽는 소설 속에서 간혹 등장하는 그 단어를 보고 종종 의구심을 가졌다. 질펀한 피비린내가 그들에겐 전장의 냄새로 느껴지는 것일까. 하지만 피비린내 따위는 굳이 싸움터가 아니라 병원 같은 곳에서도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헤이 하이루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구울 수사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신은 역시 무언가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런 표현을 쓰는 작가들은 전쟁 따위를 겪어본 적이 없던가.

그녀는 유령의 그림자 같은 거대한 건물 앞에서 마지막으로 길게 숨을 뱉었다. 한숨보다는 경탄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녀는 지키는 자 하나 없는 건물의 출입구로 발을 옮겼다. 몇 개의 그림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자. 곧 유령이 될 그림자. 아직까지 뻔뻔하게 살아있는 유령들.

죽어 마땅한 존재들을 없애는 마법의 주문은 단 두 마디면 충분했다.

섬멸 개시.”

건물 내의 구울을 모두 구축하세요. 모든 것의 시작은 항상 조용하고 낮은 것이었고 소란스러운 죽음과 삶을 향한 뜨거운 열망은 그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하이루는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벤다. 자른다. 찌른다. 죽인다. 죽여 없앤다. 그것 외에 다른 사념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팽팽한 흥분이 쿠인케를 쥔 그녀의 팔을 찌르르 타고 흘렀다. 몸을 경제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하이루는 이름조차 궁금하지 않은 구울의 목을 가로로 베었다가 빠르게 몸을 숙여 달려오던 다른 구울의 내장을 갈랐다.

피 냄새 같은 게 났던가. 전장의 냄새가, 또는 죽음의 냄새가 이곳에는 존재하는가.

하이루는 언제 튀었는지 모를 진득한 피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다. 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없다였다. 이헤이 하이루의 세계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그녀의 손으로 직접 불러온 죽음 그 자체. 그것뿐이었다.

그녀에게 저승사자가 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었다. CCG의 저승사자는 단 한 사람이면 충분했다. 하이루의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그 저승사자에게 인정받는 것, 칭찬받는 것. 영원히 그 저승사자의 곁을 지키는 것.

그것을 위해서 그녀는 쿠인케를 휘둘렀고, 존재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하나의 생명을 이 고루한 싸움터에서 끌어냈다.

츠키야마. 츠키야마. 그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이루는 그의 그림자조차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 건물의 모든 구울을 구축하면 그중에 자신이 원하는 구울이 시체가 되어 누워있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보다 몸이 훨씬 가벼운 것 같았다. 날 선 검의 끝은 곧 정교하게 다듬은 그녀의 손톱이었다. 수많은 계단이 그녀의 발아래에 밟혔다. 곧 츠키야마 가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녀의 발에, CCG의 발에 밟혀 허망한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덧없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그 끝이 볼품없는 것이었다.

 

마츠마에.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헤이 하이루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반갑다면 반가운 얼굴이었다. 하이루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 전부터 그녀의 등장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이루는 순식간에 뒤바뀐 주위의 공기를 느끼며 앞을 정면을 바라보았다.

츠키야마 가의 기사.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츠키야마 가의 기사라면, 나는 저승사자의 검이야. 이헤이 하이루는 희미하게 웃었다.

안녕, 오랜만이네.”

오랜만이라고 할까, 잘 가.”

한 번 놓친 먹잇감은 다시 놓치지 않는다. 몇 번의 합이 묵직하게 맞았다. 의욕 만땅. 원래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 고양이가 쥐에게 백기를 흔든다는 뜻은 아니었다. 애초에 쥐 따위에게 물려 고통스러워할 이헤이 하이루가 아니었다.

멋진 카구네네요. 내 손에 곧 들어오겠지만.”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기사의 검과 저승사자의 검이 서로를 긁고, 베고, 찌르며, 막았다. 한 번의 합과 그다음의 합의 시간적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날카로운 떨림이 하이루의 가느다란 팔뚝을 타고 흘렀다.

이헤이 하이루는 그 상황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츠마에의 검이 어떻게 찌르고 들어오는지를. 아주 약간의 틈을 만들기 위해 얕게 찔러 넣었던 검이 어떻게 막히는지를. 마츠마에의 눈빛이 어떻게 빛나고 있는지를.

이헤이 하이루는 마츠마에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 하고 바닥에 떨어져 핏덩이에 뒹굴었던 탄식은 이헤이 하이루 자신의 것이었던가, 아니면 마츠마에의 것이었던가. 어쩌면 그것은 이헤이 하이루, 그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이루는 반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겨우 일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상대에게 틈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하이루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아픔보다는 자신의 손에서 쿠인케가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이었다.

구멍이, 움푹…….”

있을 리 없는 안개가 서서히 하이루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마츠마에, 나와 방금까지 마주하고 있던 너는 언제 그렇게 멀리 가버린 거지? 나 자신의 빈 육체를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이지? 하이루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소음들이 자신의 귓바퀴에 감겨 흘러나가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눈앞의 안개가 이상하게 움직였다. 죽은 유령들의 그림자. 그래, 이건 안개가 아니라 그들의 손아귀였다. 그녀가 선사한 지옥에서 이를 갈고 기다리고 있던 수 없이 많은 유령들.

  “오카히라, 쿠인케.”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가 꼭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나의 영혼은 이미 지옥에. 그런 건가. 유령들, 유령들. 이제는 나와 한 몸이 될 이름 없는 유령들.

  죽어버려.

  통증 같은 건 원래 없었다. 그저 전에 겪어본 적 없는 거대한 공허가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래서 하이루는 쿠인케를 쥐었다. 이 공허를 채울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이 너의 죽음은 아니었지만, 너의 죽음으로 인해 그것은 내게로 올 거야.

  몸속에서부터 울컥 터져 나오는 것은 삼키지 않고 뱉었다. 이제야 끔찍하게 비린 피 냄새가 났다. 하이루는 어디선가 살아있는 인간에서 흘러내리는 피 냄새와 죽어가는 인간에서 흘러내리는 피 냄새는 다르다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게 왜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가. 무거운 적막이 자신을 찍어 누를 때 왜 그 검은 한 문장이 눈앞에 흔들거리는가.

  아, 아리마 씨. 하이루는 금방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그가 읽던 책에 있던 문장이었다. 이것이 사실이냐는 하이루의 물음에 아리마는 그저 짧게, 글쎄, 하는 답을 남길 뿐이었다. 나도 모르겠는걸. 그리고 이제 하이루는 그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리마 씨한테 말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이루의 눈앞이 크게 흔들렸다.

  이 사실을 아리마 씨에게 말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하이루가 본 것은 아리마 키쇼의 얼굴이 아니라 검게 변색된 안개였다. 마냥 고요하고 어둡기만 한 안개. 마치 그곳에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둠이었다.

  그 어둠을 헤치고 나온 것은, 지금보다 훨씬 작고 여린 아리마 키쇼였다. 이름 모를 꽃들이 두 사람의 사이에서 하얗게 날리고 있었다. 아리마 키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 커다란 손을 뻗어 하이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하이루는 그를 따라 웃으며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러면 그 손길이 더욱, 따뜻해졌다.

 

--

 

이 글 쓴다고 리 5권을 달달 읽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하이루 너무 안타깝게 죽어버려서 슬픈 저네요ㅠㅡㅠ

하이루.. .. 사실 하이루가 등장하는 글을 처음인데, 쓰다보니 뭔가 또 몽글몽글 생각나서 여건이 된다면 한 번 써 볼 예정입니다 (메모해 둬야지) ! 근데 좀 까먹은 것 같아요 .. .. . 사실 이틀 전에 생각해 둔 거라서. ... .. .. 미리 메모해둘 걸.. .. .. .... . 소재는 생각나는데 디테일한 게.. ... .. 떠오르지 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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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불면증 요모

 

 

; 연기 연

 

Y A G I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가 펴봤다. 상상 속에서 그 손에 그러잡히는 것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두개골. 언젠가 누군가의 단단한 두개골이 내 손바닥 아래에서 으스러진 적이 있었다. 그 손바닥 아래에 남은 것은 인간의 불쾌한 찌꺼기. 손목과 팔뚝을 타고 흐르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의 이야기였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가 다소 모호하던 그때.

  어쩌면 이 머릿속의 안개는 그때부터 조금씩 나를 잠식해오던 것일지도 몰랐다. 손등으로 뻑뻑한 눈을 비볐다. 방 안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희미한 빛이었고,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 눈을 감고 있으면 닫힌 눈꺼풀 위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눈부심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뜨면, 흑백만 존재하던 밤의 시간은 끝나고 어느새 의식하고 싶지 않은 색채들이 내 주위를 어지럽게 돌았다.

  그러면 또 잠에 드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날이 왔다. 나에게 있어 아침이란 하루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전날의 끝이었다. 잠의 어둠은, 그 깊고 고요한 세계는 내게 존재할 수 없었다. 이런 날들이 이어지면 나는 종종 내 발 앞에 마치 영겁의 시간이 허물을 벗고 드러누워 있는 것만 같을 때가 있었다.

  자기를 받아들이라고, 이런 삶을 받아들이라고. 뱀의 모습을 한 시간은 사지의 말단을 천천히 타고 올랐다. 저것이 내 목을 조르는 때는 언제일까. 나는 그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서서히 몸을 침식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뱀의 유연한 허리가 언젠가 내게 죽음을 선사하기를, 내게 남은 영겁의 시간을 그의 허물 속에 들어가 잠이나 자는 것을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내 스스로 저것의 허물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일찍 일어난 거야, 아니면 오늘도 안 잔 거야?”

  “못 잔 거야.”

  “그러다 쓰러져, .”

  “안 자고 싶어서 안 자는 거 아니야.”

  우타의 도톰한 입술이 열이 오른 이마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상태만 괜찮았다면 저 온기를 조금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을까. 나는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양 뺨을 붙잡아 당겼다. 입술과 이마보다는, 입술과 입술 쪽이 훨씬 좋았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렌지 다크서클 생겼어. 며칠 째 못잔 거야?”

  “한 칠십이 시간 쯤. 걱정 마, 오늘 밤에는 뻗어서 잘 것 같아.”

  “오늘 밤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렌지.”

  “버틸 수 있어. 아직은.”

  아마도. 뒷말은 억지로 삼켰다. 우타를 걱정시킬 필요는 없었다. 요사이 잠을 못 자고 있다는 말에 짐을 싸들고 집까지 쳐들어온 녀석이었다. 아직은, 따위의 말로 그의 불안감을 건드려 침실까지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우타라면 섹스 테라피 따위를 말하며 내 위로 올라탈 가능성이 높을지도 몰랐다. 그와의 관계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밤일에 쥐어짜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내 몫의 칫솔에 치약을 꾹 눌러 짜며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이를 닦으면서는 컵에 담긴 또 하나의 칫솔을 바라보았다. 우타와 함께 산다는 건. 그러니까, 양치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칫솔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거구나.

  얼마만인지. 뱉어낸 양치 거품 속에 치약이 한 덩어리 묻어나왔다.

 

 

 

 

  천장의 무늬를 눈으로 따라 그리는 것을 삼백 번쯤 하다보면 잠이 올 거라고 생각한 것이 벌써 나흘째였다. 미련함도 이런 미련함이 없지.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밖에 없었다. 천장의 무늬를 바라보고 있는 건 어쨌든 머리를 비우기엔 좋아서 나는 삼백한 번째 무늬를 눈으로 그렸다. 비워진 머릿속에 들어차는 것은 또 예의 그 안개였다.

  하얗고 두터운 안개에서는 어쩐지 짭잘한 맛이 났다.

  “렌지 군.”

  딱 우타의 눈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문이 열리고 그가 내 이름을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과 베개가 스치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또 못자고 있구나.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하지만.”

  우타의 뒤에서 덜걱,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 속으로 파고든 우타가 한쪽 팔을 뻗어 내 목덜미 뒤로 제 팔을 끼워 넣었다. 다소 불편한 자세에 나는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다시 수면을 위한 자세를 처음부터 찾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맞지 않는 열쇠를 돌리기 위해 열쇠구멍에 수없이 열쇠를 밀어 넣는 그런 기분이.

  우타, 너는 그런 것도 모르겠지.

  “제발, 나는 누가 옆에 있으면 더 못자.”

  “내가 없어도 못잘 것 같은데, 렌지는.”

  “제발 가주라.”

  “오늘 하루만 딱 해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내일은 그만둘게.”

  나는 눈을 감고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이런 우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 우타의 말대로, 우타가 없었더라도 오늘도 잠을 자기는 글렀다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우타의 입에서 섹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정도려나.

  “자장자장.”

  “조용히 해줘.”

  “알았어. , .”

  그 대신에 우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머리를 만진다는 것은 언제나 생경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나의 외벽을 구성하는 단단한 무언가가 허물어져가는 느낌. 머리로 몰렸던 열이 조금 내려가는 것도 같았다. 우타는 그대로 내 머리를 껴안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이 도대체 누구의 심장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어 고개를 조금 위로 들었다. 우타의 숨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머리 더 만져줘.”

  내 말에 우타가 아무 말도 없이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나는 눈을 감고 팔다리로 그를 끌어안았다. 머릿속을 채우던 안개가 흘러나가고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우타의 마른 등을 매만졌다. 고여 있던 것이 빠져나간 자리엔 무엇이 남게 되는가.

  어둠일지, 고요일지, 고독일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토록 기원하던 수면일지.

  나의 뱀은 여전히 자신의 허물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고 있었다. 나의 가랑이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 다른 먹잇감을 찾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나의 팔다리에서 물러나 내 발치에 똬리를 틀고 수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잠에 든 뱀은 아주 희미한 숨소리를 냈다. 우타의 호흡과 유사한 소리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다네요. 출처 네이버 사전.

1인칭을 안 쓴지 제법 된 것 같아서 간만에 1인칭. 저도 지금 불면ING 이기 때문에 어떻게 글이 잘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편히, 부담없이 잠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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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 전력 60분_ 약속했던 일 #우타요모 #고교생 AU (????)

 

 

 

 

해바라기

 

Y A G I

 

 

  길 옆에 핀 해바라기 몇 송이가 빳빳하게 고개를 하늘로 추켜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간이 버스 정류장의 나무 의자에 앉아있었다. 정류장의 칸막이가 늦여름 햇볕을 아슬아슬하게 막아주고 있었다.

  요모 렌지는 오른발을 약간 뒤로 물려 온몸이 정류장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도록 했다. 어디선가 또 매미가 지긋지긋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요모가 셔츠의 단추를 두 개 풀고 옷을 팔랑거리고 있을 때, 우타는 그저 양손을 벤치에 짚고서는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요모는 그의 둥근 이마가, 아니면 날선 콧대가, 그것도 아니면 투명하게 맨들 거리는 입술이 여름 햇살에 젖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쟤는 덥지도 않은 모양이지. 우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그의 눈 밑에 얹혀있던 톱니바퀴 모양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요모는 일부러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피어싱학교에서 뭐라고 안 해?”

  우타가 가볍게 웃는 순간 매미들도 울음소리를 높였다. 그 악다구니에 요모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튼, 매미소리는 반가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년 반쯤 이러고 다니면 쌤들도 포기해.”

  “예전에는. 그러니까, 나 알기 전에는, 많이 혼났나?”

  “아니, 우리 학교가 이런 걸로 혼낼 것 같아?”

  확실히. 요모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우타의 피어싱은 너무 많을지도. 하지만 요모는 그것이 자신이 상관할만한 일이 아니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기 전부터 우타는 그래왔으니까. 우타의 피어싱들은 요모가 알지 못하는 우타의 어떤 시간들이었다.

  요모가 알고 싶어 하는 시간들. 하지만 평생 알 수 없을 그 시간들.

  “, 사실은 렌지가 다른 학교에 갈 줄 알았어.”

  “?”

  “그냥? 렌지는 이 학교랑은 안 어울리잖아. 조금 더, 점잖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혹시 렌지, 나 보고 싶어서 이 학교로 진학한 거야?”

  우타가 고개를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네가 여기 올 줄 어떻게 알았다고.”

  “그건 그렇지만. 왠지 렌지라면 그랬을 것도 같아서.”

  요모는 갈비뼈 안쪽의 어딘가가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요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요모는 우타가 있는 쪽으로 몸을 약간 옮겼다. 요모의 운동화 끝이 그림자 밖으로 비죽 튀어나갔다. 요모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이 우타의 새끼손가락과 희미하게 닿은 것 같기도 했다.

  요모는 여름이 싫었다. 지긋지긋한 매미 울음소리도 싫었고, 찌는 듯한 더위도 싫었다. ,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그것을 손목의 안쪽으로 닦아내는 우타와, 여름이면 얇아지기 마련인 그와 자신의 옷차림이.

  그래도 여름의 좋은 점이 단 한 가지 존재한다면. 그것은 역시 우타를 처음 만났다는 점일까.

 

  중학교 삼학년에 전학을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애매한 것인가. 그때도 창밖에선 매미가 끔찍하게 울고 있었다. 여름의 낮은 항상 이상하게 길었다. 그날도 그랬다. 수업에 종례까지 끝난 시간이었는데 아직 창밖이 밝았다.

  요모의 전학은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요모는 일부러 하루 전날에 학교에 들러 학교의 구조를 익히고자 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되기 고작 며칠 전. 이런 미묘한 시점에서 다른 사람과 억지로 가까워질 자신이, 요모에게는 없었다.

  혼자서 헤쳐 나가기. 요모 렌지의 삶에서 걸러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장들이었다.

  텅 빈 교실들과 그들에게 붙어있는 숫자들을 요령껏 연결시키며 요모 렌지는 교정을 돌았다. 요모는 이층 층계참에서 삼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요모의 반은 삼층 끝 쪽에 있는 반이었다. 잠시 주저하던 요모는 다시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요모의 발밑에서 낡은 계단이 무참히 삐거덕거렸다.

  우타를 발견한 것은, 요모가 자기 반의 뒷문을 당겨 열어보려다 실패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던 때였다. 처음 지나쳤을 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때도 우타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결에 자리에 멈춰 서서 그의 둥근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우타가 요모의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그 짧은 순간순간이 요모의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혔다.

  요모는 한걸음에 삼층에서부터 일층 현관까지 달려 내려갔다. 난간에 쓸린 손바닥이 가볍게 화끈거렸다. 요모는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비며 두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첫 번째는 쟤는 왜, 이 시간까지 혼자 반에 남아있었는가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쟤는 왜, 낯선 요모를 보고 미소를 지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제 여름방학도 끝이네.”

  “방학 때 뭐라도 했어?”

  “딱히. 렌지는?”

  “나도.”

  “그럴 것 같았어. 렌지는, 재미없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입술에 박혀있는 피어싱을 매만졌다. 되게 차가울 줄 알았는데, 여름 공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미지근했다. 우타는 요모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모는 조금 더, 그의 입술을 만졌다.

  우타를 처음 만난 지는 삼 년이 지났지만, 정작 우타를 알게 된지는 고작 일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요모는 다시 떠올렸다. 그 사이의 이 년이란 시간은 지금 돌아보면 요모에겐 죽어있던 시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지독한 공백에 잡혀 있었던 시간. 그 공백의 사이에서 또 홀로 무언가를 깨닫고 포기하던 시간들.

  그 하얗고 뜨거운 공백을 메우기 시작한 것은 우타의 단 한 마디였다.

  안녕, 전학생.

  하고, 이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나 우타의 입에서 흘러나온 뒤늦은 인사말. 이상하게도, 그때도 여름이었다. 좌측 현관의 옆에 심어진 몇 송이의 해바라기들은 항상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학식 당일에도 그랬다. 귀가를 하던 요모가 반에 무언가를 두고 온 것을 깨닫고 홀로 그 현관을 지나칠 때도 그랬다.

  그때 두고 간 것은, 뭐였더라.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읽다 만 책 같은 것들. 굳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방학의 시작을 남들보다 몇 시간 늦출 필요가 없던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모는 그 물건을 찾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요모가 뒷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았던 것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우타의 뒷모습이었다. 우타를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그 뒤통수. 그때 요모는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끈끈한 땀이 손바닥에서 배어나오고 있었다.

  요모가 우타의 곁에 갈 때까지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지 않고 창밖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야, 우타는 고개를 돌려 요모를 올려다보았다.

  “안녕, 전학생. 이제야 인사를 하네.”

  요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알고 있었어.”

  “?”

  “네 이름. 요모 렌지. 그럼, 나는?”

  “우타.”

  요모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지금 눈앞의 우타는 그때의 우타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요모는 그것이 퍽 궁금했다. 요모의 기억 속에 들어있는 그날처럼 요모의 손바닥에는 또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요모는 허벅지에 손바닥을 연신 문질렀다. 우타의 시선이 제 손에 닿아있는 것을 요모는 알고 있었다. 구름의 그림자가 텅 비어있는 아스팔트 위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요모는 우타와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함께 하면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를. 이 세상에 그런 것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기는 할까? 연인이면서도 연인이 아닌 우리는.

  “우타. 너한테 사과해야할 게 있어.”

  “뭔데?”

  요모는 우타가 보고 있었을 어딘가를 바라보고 싶어 시선을 멀리 두었지만, 우타가 보고 있는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요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우타에게 고백을 했을 때, 우타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소리를 죽이며 웃었다. 그들의 곁에는 시들어가는 해바라기가 있었다. 요모는 입술을 깨물던 것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연인이라……. 좋아, .”

  아니, 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에 요모는 우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타는 요모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대신에, 나랑 약속을 하나 해야 해.”

  요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가 요모의 연인이 되어줄게. 대신, 요모는 나를 사랑하면 안 돼.”

  요모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인이 되어줄게. 그때 요모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면 자신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요모와 우타는 짧은 입맞춤을 나눴다.

 

  “약속. 약속했던 거, 말이야. 기억해?”

  “, 물론.”

  “못 지킬 것 같아.”

  “언제부터 그랬어?”

  요모가 다시 우타를 돌아보았을 때, 우타는 요모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몸이 요모에게로 조금 기울어 있는 것도 같았다.

  “처음부터. 아마,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구나아.”

  우타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자리에서 폴짝 뛰듯 일어섰다.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우타가 해를 등지고 있는 탓에 그의 얼굴을 도무지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냐, 렌이라면 그럴 것 같았어.”

  “그럼 왜, 그런 약속을.”

  요모는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잇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했다. 우타의 섬세한 손끝이 요모의 턱을 훑고 있었다. 우타의 입술이 벌어지며 뭔가를 말하고 있었는데, 요모는 그것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결코 나올 리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기에.

  요모는 대신에 우타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히는 것을, 그 사이로 언뜻 보였던 하얀 치아를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우타의 입술의 감각을 떠올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단 한 번의 입맞춤이 왜 지금 떠오르는 걸까.

  우타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말은 딱 세 마디였다. 긴 말은 아니었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시간이 필요했을 뿐. 일단은 그렇게 말해둘까.”

  “일단은?”

  “. 내게는 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그것 역시, 시간이 필요한 건가?”

  “아마도?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밖에 없어서. 우타의 목소리가 요모의 귓가에 맴돌았다. 한여름의 그림자 속에서 다시 느끼는 그 입술의 감촉은, 여전히 부드러우면서도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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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케이크버스

 

 

My Sweety

 

Y A G I

 

 

  “우타, 이러면……!”

  “렌지는 가만히 있어.”

  우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요모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았다. 요모는 우타의 손에 잡힌 제 손목을 힘껏 빼보려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요모는 이를 악물었다. 달큰한 냄새가 났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냄새. 인간의 피나 살과는 다른, 그것 이상으로 매혹적인 냄새가 났다. 악문 치아 뒤에서 희미하게 침이 배어나왔다. 먹어버리고 싶어. 요모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재밌는 표정을 짓고 있네.”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나와.”

  “장난 아니야. 나 진지해.”

  먹어버리고 싶어. 우타를 알아온 지난 몇 년간, 요모가 끙끙 앓아오던 생각이었다. 4구의 공기에서는 흥미로운 냄새가 났다. 수많은 케이크들의 냄새. 요모는 그 냄새의 기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우타의 냉장고를 털었을 때, 그들의 본거지에서 나는 수많은 달콤한 냄새들.

  제 손등에 묻은 조무래기들의 피를 무심코 혀끝으로 핥으며, 어린 요모는 무언가를 직감했다. 이곳은 구울이면서 케이크인, 복잡한 녀석들의 본거지구나. 희미한 단맛이 혀끝을 타고 퍼져 올랐다. 요모는 4구에 오래 머물 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과욕은 금물이었다. 요모는 뭔가를 참는 것은 항상 잘해왔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요모는 바로 4구를 뜰 생각이었다. 이상한 안경을 쓴 녀석, 그러니까. 4구의 왕, 케이크들의 왕인 우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우타의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요모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 녀석한테서는 상상 이상으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먹어버리고 싶어. 배어나오는 침을 삼키며 요모가 생각했다. 하지만 저런 냄새를 풍기면서도 여태껏 멀쩡하게, 그것도 케이크인 구울들만 모아서 하나의 그룹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먹히는 것은 케이크인 우타가 아니라 포크인 요모일지도 몰랐다.

 

  “, 나는 렌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렌을 먹어버리고 싶었어.”

  “무슨소리야, 그게.”

  “렌지도 마찬가지였지?”

  우타의 입술이 요모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눌렀다. 요모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제 손목을 잡고 있는 우타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진득한 우타의 체취 때문에 요모는 이성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무슨…….”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날 보는 포크들은, 대부분 나를 먹고 싶어 해.”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리듯 말을 뱉는 요모와는 달리, 우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나긋했다. 그것이 요모를 또 자극하고 있었다. 요모는 거친 숨을 뱉었다. 우타의 입술이 요모의 목덜미를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거 말고, 날 먹고 싶다는 게, 무슨.”

  “렌지는 숙맥이구나아.”

  우타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이제야 지금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우타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요모의 상의를 끌어올리며 그의 맨살을 매만졌다. 요모는 숨을 훅, 들이마셨다. 우타는 주저하는 것이 없었다. 연신 요모의 목이나 쇄골에 입을 맞추던 우타의 입술이 더 아래로 내려갔다.

  요모는 그런 우타의 어깨를 부드럽게 밀어냈다. 요모의 생각보다 수월하게 우타의 숨결이 요모의 몸에서 떨어졌다. 우타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요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싫어.”

  “?”

  “……먹어버릴지도 몰라.”

  우타의 웃음소리가 좁은 방을 울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건지. 요모의 날선 눈빛에도 우타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고 있었다. 한동안 즐거운 듯 웃던 우타가 갑자기 웃음을 뚝 멈추고 굳은 표정으로 요모를 바라보았다.

  “, 렌지라면 먹혀도 괜찮아.”

  “그건 내가!”

  “어때, 궁금하지 않아? 내가 무슨 맛일지. 렌지가 상상한 맛일지, 아니면 그 이상일지.”

  두 사람의 코끝이 서로 스쳤다. 우타는 양손으로 요모의 볼을 가볍게 감싸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본 적이 있었던가. 요모는 앞니로 제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상상 이상일 게 분명했다. 먹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우타는 여태껏 요모가 먹어왔던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맛이 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우타를 먹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최고의 행복에 따라붙는 것은 언제나 최악의 절망이었다. 요모는 그 절망을 더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상황은.

  “키스하면 어떨 것 같아?”

  우타에게 요모의 대답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타는 거침없이 혀를 밀어 넣었다. 우타의 어깨를 붙잡은 요모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우타의 숨이 희미하게 요모의 뺨에 닿았다.

  상상이상, 이라는 말조차 부족했다. 요모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까부터 맡았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향과, 끊임없이 자신의 혀를 얽어오는 이 맛과. 요모의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우타, 이제 그만.”

  “. 여기까지 왔는데, .”

  우타는 능숙한 손길로 요모의 바지 버클을 풀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요모는 차마 우타를 바라볼 자신이 없어 낮고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단어들을 씹어 삼키며 말했다. 우타의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여태껏 자신은 왜 우타를 먹지 않았던가. 아니, 이런 생각은 할 수 없었다. 하면 안 됐다. 후회할 거니까. 우타를 먹어버리면 분명 후회할 거니까.

  “우타. , 여기서 더 하면 못 참을지도 몰라.”

  “참지 말아버려. 어때, 서로 먹고 먹히는 거야. 멋지지 않아?”

  “우타.”

  “최상의 쾌락을 줄게, 렌지.”

  악마의 속삭임이란 이런 것인가. 요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우타의 손이 매끈한 요모의 살을 스치고 지나갔다. 요모는 고개를 돌리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이 세상에서 우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그리고 요모 렌지의 마음속에서는.

  요모의 마음속에서는 억눌려 있던 우타에 대한 어떤 욕구가 터져 흐르기 직전이었다. 요모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억누른 시간만큼, 자신이 우타라는 구울을 알아온 만큼 커져왔던, 그래서 복잡한 그 마음이 아주 아슬아슬하게 제 이성의 끈을 튕기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빠르게 상황만 만들어버리기 ^~^ 땡땡버스 하는 것 자체를 첨 써바서 아직은 낯설기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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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 전력 60분_ 이정표 없는 길   #우타요모   #청소년 우타요모^~^

 

 

Nec Possum tecum vivere nec sine te

 

Y A G I

 

    숨을 뱉을 때마다 후끈한 열기가 겨울 공기에 퍼져나갔다. 잠깐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우타는 입에 고인 침을 바닥에 뱉었다. 희미한 피가 섞여있었다. 여기서 죽으면 체면이 안 사는데. 우타는 속으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상대도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가볍게 웅크린 몸의 근육이 긴장 때문에 찌릿찌릿했다. 한 번만 더 합을 맞추면 죽고 사는 쪽이 결정될 것 같았다. 물론 가장 큰 가능성은, 그러다가 둘 다 죽어버리는 것일 것 같았지만.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무를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게 있었다. 우타의 피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자신도 이것이 치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우타는 손쉽게 그 생각을 뒤로 밀어버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싸우고, 이기는 것.

    뺏거나, 빼앗기는 것. 어차피 구울이란 그러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니, 우타는 이런 싸움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저 녀석이랑 같이 죽는 거라면 제법 괜찮게 삶을 끝내는 것이었다.

    “지쳤어.”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녀석이 쯧, 하고 혀를 찬 것도 같았다. 우타는 몸을 똑바로 세웠지만, 여전히 긴장을 완전히 풀어버리진 않았다.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다.

    녀석은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혁안이 풀린 눈 아래로, 작은 땀방울 하나가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까지 우타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오늘도 여기서 끝인 모양이었다. 이러다 둘 다 죽는다는 걸,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우타는 오늘 여기에, 이 싸움을 끝낼 생각으로 왔다. 구울이 가오가 있지. 오늘도 어영부영 다음을 기약하며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뭐야계속 할 거야?”

      “언제까지 질질 끌 수도 없잖아?”

      “. 이거, 끝을 내야 해? 그러다 둘 다 죽어.”

    녀석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움직임이 느렸다. 녀석을 죽이려면 지금이었다. 오늘만큼은 이 지루한 싸움을 끝내고 녀석의 시체를 창밖으로 던져버리려 했건만. 우타의 근육이 움찔움찔 떨렸다.

    “죽으면 뭐, 어때?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거야.”

    “사는 게 중요한 거야. 멍청이.”

    실로 맥이 풀리는 소리였다. 우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나오면 이쪽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데. 우타는 녀석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제 자리에 누웠다. 바닥의 냉기가 얇은 옷을 타고 흘러들었다. 오늘도 망했네, 망했어. 녀석도 다시 자리에 눕는 소리가 들렸다.

    폐건물의 뚫린 천장을 통해 맑은 하늘이 보였다. 몇 개의 별빛이 흐리게 반짝이고 있었다. 우타는 별을 보는 대신 파괴된 천장의 단면을 보았다. 이건 저 녀석이랑 저번에 싸웠을 때 부순 거, 저건 처음에 싸웠을 때, 저쪽 구석에 있는 건 다른 녀석이랑.

    “요새는 별도 흐리네.”

    아무래도 녀석은 우타와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듯했다. 우타는 그마저도 조금, 짜증이 났지만 뭔가 한 소리를 하기엔 마땅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우타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녀석의 시선을 따라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텅 비어있었다.

    “이제 그만할까?”

    “?”

    “싸우는 거, 말이야. 별로 승부도 날 것 같지 않고.”

    “포기하는 쪽이 지는 쪽이야. 그러니까, 이긴 건 나.”

    “, 그건 좀 싫다.”

    녀석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싫다는 투였다. 그 목소리에 우타는 저도 모르게 하하, 하고 소리를 내서 웃었다. 어이가 없는 것이기도 했고, 그저 웃음이 나는 것이기도 했다. 녀석이 후우, 하고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우타는 녀석을 따라 숨을 내쉬었다. 후우. 뭔가 가뿐해지는 느낌이었다.

    “, 이름이 뭐야.”

    “요모. 요모 렌지. 너는?”

    “그냥우타라고 불러.”

    “우타.”

    “. 렌지.”

    “, 되게 편하게 부른다?”

    “불만이면 또 덤벼 보시던지.”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일으켜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눈빛을 마주쳤다가 와, 하는 느낌으로 웃었다. 깨진 창문으로 냉기가 밀려들었지만 둘 다 그것에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우타는 자리를 옮겨 렌지의 옆에 앉았다. 나보다 좀 키가 큰가? 우타는 공연히 승부욕을 불태웠다. 어른이 되면 꼭 렌지보다 키도 덩치도 큰 사람으로 자라리라.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물자마자 온 세상에 적막이 먼지처럼 가라앉았다. 우타는 그 적막을 견디기가 힘들어, 렌지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건넸다. 주로 4구까진 어쩌다 흘러들어오게 되었냐는 질문이었고, 렌지는 담백하게 어쩌다가그냥과 같은 말을 이용해 대답했다.

    이 녀석이. 우타는 네 번째 어쩌다가를 들은 순간 살짝 몸에 열이 올랐다. 나를 놀리나? 하지만 그것을 말하고 있는 렌지의 표정은 진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항상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이었지만, 지금의 진지함은 뭔가 달랐다.

    우타는 직감적으로 이 녀석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는 녀석. 그걸 느낀 순간 우타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타는, 구울로 태어난 걸 후회하진 않아?”

    오랜 적막을 깬 것은 의외로 렌지 쪽이었다. 우타는 고개를 움직여 렌지를 바라보았다. 렌지에겐 건널 필요가 없는 강을 건넌 자 특유의 눈빛이 있었다. 건널 필요가 없는 강이지만, 구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그 강을 건너곤 했다. 마치 그것이 구울의 운명이라는 듯이.

    “후회 안 해.”

    “……부럽다.”

    절절하게 전해져오는 렌지의 감정에, 우타는 뜨끔하는 느낌이었다.

    “우타. , 사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인생을 헛살았구만.”

    “우타는 그 답을 알아?”

    우타는 렌지의 눈빛에 꿰뚫리는 것만 같았다. 우타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살면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 신이 아닌 이상 그런 것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구울의 길이란 인간의 그것보다 더욱 험악한 길이었다.

    우타는 렌지의 물음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렌지는, 멀뚱히 그런 우타를 바라보다가 웃어버릴 뿐이었다.

    “비슷하구나. 우리는.”

    우타의 심장에 깊숙이 박힌 한마디였다. 그 말 때문이었을까. 우타가 렌지에게 자신과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 것은. 렌지는 의외의 말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타를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을 짓는 렌지는,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언제는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거라면서.”

    “…… 싫음 말고.”

    “싫다는 말 아니야.”

    “이게 사람 놀리고 있어.”

    우타는 다시 뒤로 누워버렸다. 우타, 너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렌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우타는 그 말에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믿는다니. 구울들끼리 가당치도 않는 말이었다. 이런 말을 해놓고 렌지는 뒤통수를 치고 4구의 구울을, 우타의 동료들을 전멸시켜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타도 렌지를 믿어볼 생각이었다. 비슷한 녀석끼리, 그런 것도 못하랴.

    “……. 나도 그, 이상한 안경을 써야하는 건 아니지?”

    “이상한 안경이라니패션을 모르는 구울이구만.”

    “그 안경 써야하면 나, 너랑 같이 안 있을래…….”

    “……그거, 진짜 이상해?”

    “.”

    렌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 좋아했던 건데……. 우타는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돌아가면 일단, 그 안경을 어떻게 처분하는 것부터 가장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

 

  10대 우타요모 주시오.....자급자족......하고 있지만....

  사실 혈기 넘치는 10대의 우타요모 말투가 어떨지 잘 모르겠어서 쓰면서도 어라? 어라? 싶었네요... 최대한 지금과는 말투가 다르게, 그러면서도 치기 같은 것들이 느껴지도록 쓰고 싶었는데 영 안 된 것 같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ㅜㅜ 10대 우타요모 말투는 아무래도 좀 더 연습을 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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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님과 연성교환용 글^~^

 

 

역린

 

Y A G I

For. 하프님

 

 

 

 

  세상을 살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몇 가지.

  악몽을 꾸는 것.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아리마 키쇼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변화를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아리마는 의식적으로 그 사실을 밀어냈다. 여태껏 이어왔던 자신의 삶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변화는, 아리마 키쇼의 불안으로 모습을 바꿔 항상 그의 그림자에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아리마는 그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 어딘가에 버리고 올 수도 없는 노릇. 아리마는 그 불안을 꽤나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매일 같이 꾸는 악몽이 아니라면 아마 그는 이 상황을 훨씬 더 유연하게 견뎌내고 있을 터였다.

.”

아리마는 어둠 속으로 손을 뻗어 안경을 집어 들었다. 새벽빛이 흐리게 창문을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얇은 안경다리를 펴는 아리마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두려운 꿈을 꿨다. 아리마는 하얀 이불보를 꽉 붙잡고 길게 숨을 뱉었다.

차라리 자신이 죽는 꿈이라면 훨씬 더 유쾌했을지도 몰랐다. 자신이 여태껏 구축해온 구울들이 지옥에서 자신을 반기는 꿈이라면, 아리마는 이것이 자신의 운명이겠거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그는 치카세 쥰이 죽는 꿈을 꾸는 것인가. , 하고 아리마는 몇 번이나 그녀의 이름을 되뇌었다. 아직까지도 소리 내어 부르면 흉곽 깊숙한 곳 어딘가가 두근거리며 뛰는 이름이었다. 아리마는 바싹 마른 입술을 제 혀로 적셨다.

전화…….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아리마는 휴대전화로 손을 뻗어 연락처에서 즐겨찾기 표시가 되어 있는 그녀의 이름을 찾아내었다. ‘저 하트도, 언젠가 그저 이라고 저장했던 것에 쥰이 몰래 붙여둔 것이었지. 아리마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좋은 아침이야. 오늘 하루도 잘 보내길. 전화를 하는 대신 아리마는 쥰에게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전화를 걸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마음만 같으면 지금 당장 쥰에게 전화를 걸어 괜찮으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리마는 쥰을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쥰은 이대로, 행복하기만 하면 싶었다.

 

관심 없는 듯하면서도, 아리마는 자신의 별명을 모두 다 알고 있었다. CCG의 저승사자니, CCG 최후의 병기니 하는 것들. 딱히 알고 싶지 않아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아리마는 그런 것들에 자부심을 느낀 적이 있던가? 아리마에게 있어서 구울을 구축하는 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일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기는, 사실 조금 힘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란 것이 원래 그랬으니까.

생명을 빼앗기 위해 존재하는 삶. 지긋지긋한 인생이었지만 아리마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겸허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적어도, 쥰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쥰을 만난 이후, 아리마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꼈다. 어쩌면 그녀의 생명력이 죽어가는 자신에게 전해진 것일지도 몰랐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점심은 드셨어요?”

아직. 쥰은?”

재잘거리는 쥰의 목소리가 잔뜩 들떠 있었다. 딱히 점심으로 맛있는 메뉴를 먹었기 때문은 아님이 분명했다. 아리마의 존재가 쥰에게는 그렇게나 큰 것일까.

예전의 아리마라면 분명 공감하지 못했을 감정이었을 테지. 하지만 아리마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마음에도 그만큼의 쥰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리마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나 이따 놀러 가도 돼요?”

오늘은 안 돼.”

오빠 너무 딱 잘라서 거절하는 거 아녜요?”

올망올망한 쥰의 목소리에 아리마가 가볍게 소리를 내서 웃었다. 아리마는 뒤늦게 주위를 살폈지만 다행인지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아마 누군가 있었다면, 해가 지기 전에 CCG 내부에 아리마가 소리를 내서 웃었다는 소문이 쫙 퍼지겠지. 별로 달갑진 않은 일이었다.

대신에 오늘 저녁은 같이 먹기야. 시간 괜찮지?”

물론이죠!”

아리마는 전화를 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쥰의 모습을 생각하며 빙긋 웃었다. 소소한 대화였다.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좋은 대화였다. 간밤에 꿨던 꿈이 아리마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않았어도 그랬다.

그 애 이름이, 카이토였던가. 아리마는 언젠가 그 아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의 단정한 입매에서 나온, 끔찍하게도 이성적인 말들을.

쥰 몰래 카이토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단둘만 만나고 싶다는 카이토의 말이었다. 그때 아리마는 저도 모르게 가볍게 긴장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도둑놈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히 마음 한구석이 쿡 찔리던 때였다. 아리마는 카이토의 입에서도 그 말이 나오리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 말이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리마 씨는, CCG의 저승사자라죠. 카이토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였다. 그 말을 하고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투명한 유리잔에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얼음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투명하게 울렸다.

아리마 씨 때문에, 쥰이 위험에 처하면 아리마 씨는 어떻게 할 겁니까?

아리마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리마는 당연히 쥰을 구하러 갈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토가 말하는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아리마라는 존재가 쥰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랑이라는 건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리마는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 이후로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카이토는 계속해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다, 컵 안의 얼음까지 모두 와그작 씹어 삼키고 있었다. 반대로 아리마의 커피는 자꾸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이만 갈게요. 커피 잘 마셨습니다.

, 조심히 들어가.

아리마는 카이토가 돌아간 뒤에도 그 자리에 아주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아리마는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로 향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 걸까. 아리마는 오른쪽 눈만을 슬쩍 감아보았다.

유감스럽게도 풍경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빠!”

? 미안, .”

쥰이랑 통화하면서 딴 생각하다니, 너무해요.”

이런, 일 났군. 아리마는 쥰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쩔쩔맸다. 아리마는 쥰을 달래기 위한 말을 골랐다. 하지만 먼저 선수를 친 것은 쥰이었다.

요즘 힘들어요?”

, ?”

목소리에 기운이 없어 보여요.”

, 쥰 생각하면서 힘낼게. 걱정하지 마.”

힘들면 꼭 쥰한테 말하기에요.”

쥰의 목소리가 맑았다. 아리마는 무심결에 응, 하고 답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버렸다고, 아리마는 생각했다. 쥰의 점심시간은 항상 아쉬울 정도로 금방 끝나버렸다. 아니면 단순히 쥰과 함께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아리마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사랑이란 건 사랑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카이토의 그 말은 맞았다. 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관계도 존재한다고, 아리마는 생각했다. 아리마 키쇼는 생애 처음으로 행복을 탐냈다. 그리고 그 행복은 이미 아리마의 손끝에 걸려있는 것만 같았다.

이것만 놓치지 않는다면. 아리마는 주먹을 꼭 쥐었다.

그럼 오빠, 이따 봐요.”

그래. 쥰도 수업 잘 듣고.”

전화가 끊기고 나서도 아리마는 한동안 휴대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면이 꺼진 휴대전화에 아리마의 얼굴이 비쳤다. 아리마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곤,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에 넣어버렸다. 쥰과 저녁을 함께하려면 일에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쥰은 카레에 들어간 당근, 잘 먹는구나.”

오빠, 쥰은 편식 안 해요.”

, 착하다.”

CCG 근처의 카레 가게였다. 약간 붉은빛이 도는 목제 테이블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아있었다. 식기가 가볍게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리마는 쥰이 카레를 오물거리는 것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죽음. 아리마가 쥰을 볼 때 아리마에게 드리워지는 어두운 그림자였다. 아리마는 자신 안의 시계에 귀를 기울였다. 아주 빠른 속도로 초침이 움직이고 있었다. CCG의 저승사자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몸이 아니었다면. 카레를 한 숟갈 뜨며 아리마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꿨다. 처음으로 죽음이란 것이 두려웠다. 아리마 자신의 죽음도, 쥰의 죽음도. 아리마의 숟가락이 그릇의 바닥을 날카롭게 긁는 소리가 났다.

이런, 미안.”

오빠, 나 봐요.”

고개를 들자 턱을 괴고 아리마를 바라보고 있는 쥰이 보였다. 아리마는 슬쩍 쥰의 시선을 피했다. 쥰이 무얼 얘기하고 싶어 하는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쥰을 만날 땐 쥰에게 집중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아리마는 그게 잘 안 됐다. 빛과 그림자는 항상 같이 있다는 말처럼, 쥰과 함께하는 행복에는 지독하게 눈치 없는 불안이 언제나 뒤따랐다.

아까 약속했죠? 고민 있으면 쥰에게 꼭 말하기로.”

그게. 쥰에겐 조금, 미안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서.”

아리마는 숟가락을 그릇 옆에 내려두었다. 그릇 속의 카레는 거의 줄어있지 않았지만 식욕이 크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리마는 깍지를 껴 테이블 위에 두었다. 언젠가는 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아리마는 지그시 눈을 감고 머릿속을 떠다니는 단어들을 솎아냈다. 최대한 쥰이 걱정하지 않을 만한 단어들을 골라내고 싶었다. 아리마는 천천히 말들을 꺼냈다. 가게 안의 모든 소리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아리마는 이 가게에 쥰과 자신 단 둘만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쥰은 아리마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얘기를 마친 아리마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물잔을 들어 남은 물을 들이켰다. 물은 미지근하게 식어있었다.

……. 오빠는 정말 바보라니까.”

아리마는 쥰이 자신 쪽으로 가볍게 몸을 기울이는 것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아리마와 눈이 마주친 쥰이 씩 웃어 보였다. 아리마가 반했던 쥰의 웃음이었다. 쥰이 검지를 뻗어 아리마의 콧잔등을 툭, 건들었다.

그래서, 고민하면 답이 나오는 문제에요?”

그건아니지.”

오빠 만약에, 만약에요. 내가 죽으면 오빠는 이 순간을 후회할 거라구 생각해요. 지금처럼, 눈앞에 저를 두고 자꾸 그런 생각만 한 걸요.”

쥰의 손끝의 아리마의 머리를 부드럽게 스쳤다. 아리마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오빠가 고민하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오빠가 지금 눈앞의 행복을 놓치는 건 싫은데.”

그렇네. 오늘 쥰한테 한 수 배웠는걸.”

그럼 오늘 수업료는 뽀뽀 한 번인 거, 알죠?”

, 하고 아리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쥰 역시 아리마를 따라 밝게 웃었다. 쥰에게 모든 것을 말하길 잘했어. 아리마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말하지 않았다면, 언젠가 쥰의 말처럼 지금 이 상황을 후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 내가 그림자라면 너는 내 빛이야. 아리마는 쥰 몰래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한 줌의 그림자도 없는 웃음이었다.

 

 

-

 

사실 아리마의 캐해석......아직 잘 모르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ㅜㅜ 그렇답니다....쥰과 아리마의 캐해석이 하프님의 캐해석과 너무 동떨어져있지만 않기를.....

#도쿄구울 전력 60분_ 괴담 #우타요모

 

 

우리들은 여기에 있어요

 

Y A G I

 

 

  습기는 마치 밤의 장막처럼,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건물에 요모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요모는 손을 몇 번 휘적거려 눈앞의 습기를 걷어내려 했지만 그것이 가능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배어나온 땀에 기분이 더 눅눅해질 뿐이었다.

  “우타, 나는 가끔 네 취미를 이해할 수가 없어.”

  “뭐 어때. 렌지한테 이해받고 싶은 생각도 없는 걸.”

  “그렇담 이런 곳에 끌고 오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어라, . 답지 않게 무서운 거?”

  우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어째 이 짙은 습기로도 가려지지가 않았다. 요모는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은 이제 막 벌겋게 녹이 선 병원의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발을 옮길 때마다 정돈되지 않은 풀들이 짓눌리며 끈적한 풀냄새를 뱉어내고 있었다.

  우타는 뭐가 신이 났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폐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타의 말에 따르면, 그 폐병원이 이 근처에서 가장 핫한 심령 스팟이라나 뭐라나.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병원인데 병원의 지하에서는 노숙자들을 잡아 반인륜적인 행위를 해왔다던가. 그 원혼들이 아직도 병원 안을 떠돌고 있다던가. 요모는 우타가 곁에서 지껄였던 말들을 어렴풋하게 떠올리며 그 병원을 올려다보았다.

  멀건 달빛 아래에서도 병원의 외관이 기괴할 정도로 낡아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담쟁이들이 건물 외벽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담쟁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습한 날에 더욱 생기를 띄던 식물이었나. 요모는 이미 스러진 병원의 간판을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 거기서 뭐하고 있어? 진짜 무서운 거야?”

  “무섭긴 누가 무섭다고…….”

  “하지만 렌지 표정이 굳어 있어.”

  “내 표정은 항상 굳어 있어.”

  “그거 렌 스스로도 알고 있었어? 놀라운 사실인걸.”

  우타는 산산조각 난 유리문 앞에서 뒤로 손깍지를 낀 채 요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는 고개를 가볍게 가로 젓고는 우타의 뒤를 따랐다. 병원 안에서는 뭔가 불결한 냄새가 났다.

  우타와 요모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들른 모양이었다. 요모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병원 홀 한 가운데에 누군가 뻘건 스프레이로 적어놓은 온갖 상스러운 욕설들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욕하는 걸 좋아하나? 요모는 유심히 그 글자들을 봤지만, 어디선가 봤던 괴담과는 달리 스프레이는 제대로 말라있다 못해 몇 십 명의 사람들의 발에 밟혀 꼬질꼬질 때가 타 있었다.

  요란하게 깨진 창문 틈새로 희미하게 달빛이 비쳤다. 병원은 생각보다 별 것 없었다. 그저 오래되고, 망가진 폐병원일 뿐이었다. 어디선가 끌려왔을 게 분명한 의료 기구들이 엉망진창으로 카운터 앞에 널려 있었다. 병원을 떠도는 원혼의 짓이 아니라, 성격 나쁜 인간의 짓이 분명해 보였다.

  “평범하네.”

  “당연하지. 여긴 지상인걸.”

  혼자 들떠 몇 개의 진료실 문을 열어보고 다니던 우타의 말이었다. 그 말이 텅 빈 공간에 울려 약간의 반향을 일으켰다. 이 병원도 언젠가 사람들이 북적거렸을까. 요모는 그것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요모는 우타를 따라 두어 개의 진료실을 돌아보았다. 모두 인간에 의해서 파괴된 공간이었다. 내가 유령이라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을 것 같지는 않은데. 바닥에 굴러다니는 주사기 따위를 발끝으로 굴리며, 요모는 그렇게 생각했다.

  “, 이제 지하실 가볼래?”

  우타는 진료실 문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 게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잔뜩 흥미가 동한 우타를 설득시켜 집으로 돌아가게 할 자신은 별로 없었다.

  지하실은 계단부터 침수의 흔적이 언뜻 보였다. 검은 곰팡이들이 담쟁이처럼 건물 내벽을 갉아먹고 있었다. 요모는 인상을 가볍게 찌푸렸다. 단순히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원혼 따위가 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하실은 지상과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여기 들어오면 저주받는대.”

  “우타는, 그런 걸 믿나?”

  “글쎄……. 사실 별 생각 없는데.”

  두 사람의 발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우타는 준비해 온 손전등을 켜 주위를 비췄다. 뜬금없이 웬 병원 침대 하나가 복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우타는 전등 스위치를 달각거렸지만 당연히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손전등의 불빛은 너무 작고, 좁았다. 빛이 비춰지지 않는 곳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그곳에 무언가 있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어둠. 아니면 그 속에 끌려 들어가 흔적조차 없어질 것만 같은 그런 어둠이었다.

  똑, 하고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속이 텅 빈 매점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옆으론 수술실로 연결되는 긴 통로가 있었다. 통로는 넓었다. 요모는 마치 거대한 동물의 식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이 공간은 너무 어둡고, 습하고, 더웠다. 무섭거나 무섭지 않거나, 어쨌든 기분이 썩 좋아지는 곳은 아니었다.

  수술실의 문은 두 사람을 반기는 것처럼, 환히 열려있었다.

  “저주. 구울이 저주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쿠인케가 되나.”

  “, 그건 진짜 별로.”

  수술실도 별 건 없었다. 다른 공간들과 같이, 자신의 용맹함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요모는 먼지 낀 수술대의 위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이 공간은 영원히 잠들어 있고 싶었을 텐데.

  어디선가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

  “, 눈이 엄청 반짝이고 있는데.”

  “가보자!”

  뭐가 그렇게 신나는 건지. 요모는 우타의 뒤를 따르며 수술실의 문을 닫았다. 이 공간이 그냥 영원히 잠들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울음소리는 여전히 병원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우타는 귀를 쫑긋 세우고 구석구석 손전등을 비춰보고 있었다. 유령이면 손전등에 비춰지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요모는 말없이 우타의 뒤를 따랐다. 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우타도 찾기 곤란한 모양이었다. 우타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요모를 뒤돌아봤지만 요모는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었다.

  요모는 진짜 유령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유령이란 건 두려움이라는 관념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 요모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울음소리는 뭔가? 요모는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렌지! 이리와봐.”

  “유령이라도 있어?”

  “아니, 유령보다 더 좋은 거.”

  요모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중에 우타는 혼자서 또 저 멀리까지 나아가 있었다. 요모는 어둠속에서도 발치의 잡기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우타에게 다가갔다. 쪼그려 앉은 우타가 제 검지를 입술 앞에 세우는 것이 보였다. 우타는 그 손을 그대로 옮겨 저쪽 구석 어딘가를 가리켰다. 요모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새끼 고양이들이네.”

  “귀엽지.”

  “만지면 안 돼는 거 알지?”

  “?”

  “사람 냄새 나면 어미가 더 안 돌봐준대.”

  “정말로?”

  그곳엔 두 손바닥 안에 폭 안길 것 같은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있었다. 그 중 한 마리가 요모 쪽을 보며 하찮은 하악질을 해댔다. 요모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런 낡은 병원에서 턱시도를 제대로 차려 입은 고양이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요모는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결국 유령의 정체는 고양이였나.”

  “그럼, 돌아가자.”

  “, 구울도 언젠가는 괴담 취급 받았던 때가 있었겠지? 숨어 살았으니까, 우리.”

  우타의 목소리는 한없이 나긋했다. 요모는 쪼그려 앉아있는 우타의 머리를 꾹, 눌렀다.

  “나 피곤해. 들어가자.”

  “, 그래야지.”

  우타가 경쾌하게 몸을 일으켰다. 괴담이 시시하게 끝이 났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부서져가는 낡은 돌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향했다. 달빛이 아까보다 조금 더 흐릿해진 것 같기도 했다.

  우타는 요모보다 두어 계단을 먼저 올라가 있었다. 우타가 손전등의 전원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담력 체험은 이걸로 끝이었다. 요모는 그렇게 즐기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끝이 났다는 사실이 어쩐지 아쉽기도 했다.

  앞으로 우타가 또 오자고 하면 한 번 정도는 더 따라나서도 괜찮을지도…….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는 요모에게, 우타는 갑자기 몸을 돌려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요모가 모든 계단을 올라오고 난 직후였다.

  “뭐야?”

  “오르페우스의 키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걸.”

  “모르면 됐어. 하여간, 로맨틱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니까. 어쨌든, 우리는 살아있는 거니까, 그치?”

  우타는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가, 바로 슬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로, 종잡을 수가 없네. 요모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우타를 따라 희미하게 웃었다. 요모를 곁에서 가장 오래 봐왔던 우타만이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한 미소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홀을 가로질렀다. 우타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유리문을 나서기 전, 요모는 마지막으로 홀을 한 번 더 뒤돌아보았다.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고, 요모는 생각했다. 요모가 가벼운 상념에 젖어있을 때, 요모의 귓가에 우타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 미안, 나 못 들었는데.”

  “?”

  “방금 뭐라고 그랬잖아.”

  우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스선한 바람이 불어 웃자란 나무와 풀들을 스쳤다. 우타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 이만 돌아갈까?”

  “그래. 그게 좋겠다.”

  요모는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떴다. 역시, 다음에 우타가 또 이런 곳을 오자고 한다면 따라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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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리마X흑카네키   #잭리마X흑카네키-아리마X흑카네키-아리마X백카네키 순으로 바뀜(..)   #시간 순서 꼬임 원작 시간 생각 X에요

#얓쿠님과 연성교환용 글^~^  #자캐연성급임......저가 아리마를 생각보다 잘 모르더라구요.......쩜쩜..

 

 

 

퍼즐

 

Y A G I

For. 얓쿠님

 

 

그날도 역시, 그저 그런 날이었다. 세상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그저 그런 날. 특별한 기쁨도, 슬픔도 없는 그저 그런 날. 솔직히 말해서 카네키 켄은 그런 날들을 싫어하지 않았다. 카네키 켄은 딱히 특별함을 동경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는 평범하고 싶었고, 평범하게 행복하고 싶었다. 자신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그저 그런 날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카네키 켄은 언젠가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사람에게는 그게 언제든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었다. 벼르고 벼르던 날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는 그런 날이. 물론 아무도 그 날이 언제 올지 알 수는 없었다. 그것은 카네키 켄도 마찬가지였다.

하늘이 어둑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카네키는 프랜차이즈 편의점 로고가 찍힌 봉투를 손에 들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카네키는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두고 온 타카츠키 센의 신작을 읽을 생각에 들뜬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새로 산 책의 냄새, 종이를 넘길 때 나는 버석거리는 소리,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이야기와 그것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문장들.

문장 하나하나만을 떼어 놓고 보면 큰 가치를 지니지 않지만,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카네키는 그 감각을 즐겼다. 그중에서도 타카츠키 센 만한 작가가 없었다. 그 유려한 문장하며, 타카츠키 센 밖에 풀어낼 수 없는 이야기 하며.

저 멀리 횡단보도의 초록 불이 점멸하고 있었다. 뛸까, 고민하던 카네키는 깜빡이는 불빛을 무시했다. 이럴 땐 좀 걸리더라도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훨씬 나았다. 카네키는 다시 수많은 책들을 생각했다. 자신을 스쳐 지나갔던 수많은 책들, 익숙한 단어들이 만들어내는 낯선 문장들…….

?”

카네키의 손바닥 안에서 편의점 봉투가 바스락거렸다. 카네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커다란 기타 가방이었다. 처음에는 이 시간까지 부 활동 따위를 하고 귀가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날 선 소년의 옆얼굴이었다. 얇은 안경이 소년의 코에 얹혀있었다. 그다음엔, 새벽의 색채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년의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풍채 좋은 남자였다.

심장이 두근, 하고 뛰었다.

어라? 카네키의 눈앞에서 횡단보도의 초록색 불빛이 정신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카네키 모르게 신호가 한 번 더 바뀐 모양이었다. 누군가 카네키를 지나쳐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카네키는 그 자리에 박힌 듯 서 있었다. , 심장이 뛰었지? 카네키는 고개를 가볍게 갸웃거렸다.

카네키는 횡단보도로 눈을 돌렸다. 신호등은 다시 붉게 변했고 속도를 붙이기 시작한 자동차들이 횡단보도의 흰 선을 마구 짓밟고 있었다. 카네키는 그 소년이 들어선 골목에 따라 들어섰다. 그러니까, 걱정이 됐다. 풍채 좋은 남자와 소년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냥 놓고 보면 접점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엮여서는 안 되는 부류의 사람들 같았다.

물론 그것은 편견이었다. 카네키는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소년의 뒤를 따랐다. 만에 하나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카네키는 싸움엔 별로 자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이 신고 정도는 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골목은 도시의 그림자였다. 엉망으로 얽혀있는 관들이 낡은 벽에 엉겨 붙어 있었다. 소년의 뒷모습은 이미 카네키의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카네키는 귀를 귀울여 봤지만 딱히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맞나? 카네키는 그러길 빌면서도, 동시에 사소한 일이 있길 바랐다.

물론 카네키 켄이 바란 사소한 일은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거나 하는, 그런 일은 아니었다.

……!”

너무 놀란 나머지 카네키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카네키는 몸을 휘청거리며 하늘에서 떨어진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어깨며 허리에선 진득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구급차! 카네키는 얼른 휴대폰을 찾았지만 그의 휴대폰은 남자의 뒤쪽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다.

휴대폰을 가지러 가려던 그 순간, 카네키는 남자의 허리춤에서 일렁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상처 입은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어깨가 쉴 새 없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

……피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카네키의 귀를 찢었다. 남자의 몸이 카네키 위로 드리워진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 카네키의 뺨에 뜨끈한 피가 뚝, 떨어졌다. 카네키는 그제야 자신이 땅에 등을 대고 있다는 것도, 제 위의 남자가 아까의 소년이 뒤따라가던 남자란 것도 눈치챘다. 남자의 등허리에 있는 것이 피가 아닌 카네키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라는 것도.

남자는 뭐라고 웅얼거렸지만 카네키는 그 말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먹고, 끝내고, 없애고, 뭐 그런 폭력적인 단어들. 그 단어들이 왜, 자신에게 향하는지 카네키 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흰빛이 있었다.

카네키는 그것이 소년의 손에 들린 검이란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몇 번의 합이 있었다. 남자는 당황한 듯 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 호흡은 소년의 검에 갈려 사라졌다. 남자는 그 꼴이 되어서도 용케 움직이고 있었다.

소년은 카네키 앞을 막아섰다. 소년의 감색 머리카락이 공중으로 한 번 떠올랐다 다시 그 하얀 목덜미에 내려앉는 것이 카네키의 눈에는 아주 느리게 보였다. 덕분에 카네키는 그 모든 장면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젠장, 하고 소년이 날 선 말을 뱉어내는 것을 듣고서야 카네키는 정신을 차렸다. 멀리 내동댕이쳐진 편의점 봉투는 이리저리 밟혀 속에 있던 음식물들이 끔찍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소년은 뒤돌아 카네키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미끄러져 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렸다.

눈동자가 텅 비어 있다고, 카네키는 생각했다.

괜찮아요?”

소년은 카네키에게 손을 내밀었고 카네키는 흔쾌히 그 손을 잡았다. 왼손에 제 몸통보다 긴 검을 가지고 있는 소년이 이질적이었다. 그럼에도 카네키는 이 모든 상황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제 눈으로 본 사실이니, 당연했다.

카네키는 그 날 저녁을 걸러야만 했지만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새로 산 책의 페이지가 도저히 넘어가지 않아 카네키는 결국 그대로 하루를 일찍 마감했다. 카네키는 침대에 누워 좁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카네키 머릿속을 떠돌고 있던 것은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소년의 흰 목덜미였다.

 

, 이것 봐. 구울이래.”

히데는 항상 요란하게 등장했다. 교내 카페테리아 테이블에 앉아있던 카네키는 고개를 들어 히데를 바라보았다. 히데는 카네키 쪽으로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누군가 CCG에서 배포한 전단을 찍어 SNS에 올린 모양이었다.

구울이라고 꼭 괴물처럼 생기진 않았네.”

나 이 사람 봤어.”

그럼 신고해. 포상금 준대.”

아니길에서 본 건 아니고, 죽을 뻔했다고 하면 좋을까.”

, 그런 일을 되게 태연하게 말한다…….”

히데는 짐짓 질린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카네키는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소년은 어떻게 구울에게 맞설 수 있던 걸까. 카네키는 소년의 손에 들려있던 검을 떠올렸다. 그 어린 나이에, 벌써 구울 수사관이기라도 한 걸까.

카네키는 소년의 이름이라도 물어 놓을 걸, 하고 후회했다. 생각해보면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다.

히데가 자판을 누를 때마다 히데의 휴대폰에서는 톡, , 하는 소리가 났다. 히데는 구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느니, 여러 사람들이 신빙성 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느니, 하는 말들을 전했다.

카네키, 너 얼굴 봤다 그랬지.”

. 이렇게, 마주 봤는데.”

카네키는 히데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히데는 미간을 싹 찌푸렸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

, 다시 죽이러 오면 어떻게 해?”

에이. 내가 어디 사는지 어떻게 알고.”

다니는 길에서 마주친 거 아니야?”

…….”

……, 몸조심해라.”

카네키는 고요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네키가 조심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닐지 몰랐지만, 카네키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에어컨 춥다, 하면서 히데는 몸을 떨었다. 에어컨 때문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들은 억지로 온도 조절을 잘 못 한다면서 가게를 욕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팠는데…….”

해가 지면 외출을 가급적 금한다. 그날 이후로 카네키가 철저하게 지키고 있던 규칙이었다. 그런데 왜, 이 구울은 카네키의 방에 들어와 있는 거지?

카네키는 머리를 굴렸다. 어두운 밤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집 위치를 발각당할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니까, 밝은 대낮에 미행을 했다는 거군. 카네키는 거기까지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다였다.

잘 먹겠습니다아.”

먹힌다. 카네키는 오금이 저린다는 말을 체감했다.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칠 수가 없었다. 카네키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단기간에 두 번이나 느낀 무력감이었다. 카네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는다. 주마등이 스쳐 지나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다만 그 소년의 얼굴이 자꾸 아른거렸다. 이름이 뭐였을까. 타나카, 야마모토, 스즈키. 카네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름들을 몇 갠가 나열했지만 그 소년에게 어울리는 이름은 단 하나도 없었다.

카네키의 얼굴에 뜨끈한 것이 흩뿌려졌다. 침인가. 아니면 이미 먹혀 그의 식도 안에서도 나는 사고하고 있는 것인가. 카네키는 주저하며 실눈을 떴다. 웬 천장이 보였다. 자신의 방 천장이.

이름도 모를 그 구울은, 머리를 잃어버리고 카네키의 침대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카네키는 그제야 몸이 움직였다. 몸을 퍼뜩 일으킨 뒤 카네키가 가장 먼저 본 것은 그 소년이었다. 죽기 전까지 카네키의 머릿속에 아른거리던 그 소년.

괜찮아요?”

덕분에…….”

카네키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네키는 소년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선을 느낀 소년은 입술을 앙다물고 카네키를 의뭉스럽게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시선을 먼저 피한 것은 소년이었다.

실례했습니다.”

, 잠시만요!”

카네키는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려는 소년을 붙잡았다. 소년의 얼굴은 어둠 속에 묻혀있었다. 그의 표정을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카네키는 소년의 이름을 물었다. 소년은 즉각 고개를 저었다. 알 것 없다는 표시였다

저는, 카네키. 카네키 켄이에요.”

……아리마 키쇼.”

아리마는 다소 떨떠름한 듯 자신의 이름을 뱉었다. 상대가 먼저 이름을 말한 상황에서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별로 예의가 아니었다. 아리마는 고개를 까딱, 숙이고 카네키의 방을 떠났다.

카네키 켄.”

후속 조치를 취하는 동료 수사관들의 모습을 보며, 아리마는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아리마는 고개를 가볍게 왼쪽으로 젖혔다. 그 이름을 몰랐으면, 그저 지나치는 사람에 불과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별일이 없다면, 두 사람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 날 게 분명했다. 아리마는 곧 다른 구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기억 속에서 희석되다, 미래의 어느 순간 카네키라는 이름을, 아리마라는 이름을 간혹 떠올리곤 희미해진 감정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관계로 끝날 운명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여태껏 잡고 있던 두 사람의 운명의 실을 새로 고쳐 쥐었다. 여신은 두 사람의 운명의 실을 왼손에 그러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서서 서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카네키 켄은 종종 자신이 인간인 꿈을 꿨다. 자기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그는 자신이 인간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꿈을 꿨다. 잠을 자고 나면 항상 개운하지가 않고 괴로웠다.

자신은 무엇인가, 구울인가, 인간인가? 요시무라 씨는 그렇기에 카네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카네키 켄은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카네키 켄이 하고 싶은 것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뿐이었다.

죽을 위기를 넘기고 싶지도, 구울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구울 수사관인 아리마 키쇼에게, 적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아리마 키쇼. 어째서 그 이름은 카네키의 머릿속에서 자꾸 부유하는가. 카네키는 자신의 감정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했다. 사실 카네키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래서 카네키는 아리마 키쇼에 관한 자신의 마음을 더욱 알 수 없었다.

언젠가 토우카의 앞에서 무심결에 아리마 키쇼, 하고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마른행주로 컵을 닦고 있던 토우카의 손이 미끄러졌다. 그러나 토우카는 태연하게 떨어지는 컵을 잡아 작업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카네키를 노려봤다.

그 이름 어디서 들었어?”

무슨 이름?”

방금, 아리마 키쇼라고 했잖아.”

. 카네키는 그제야 자신이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물아물 토우카의 시선을 피하던 카네키는 문득 토우카와 눈을 맞췄다. 토우카는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토우카도 아리마를 만난 적이 있는 걸까.

그 사람이 왜?”

“CCG의 저승사자.”

저승사자?”

아리마 키쇼의 별명이다.”

토우카는 침을 뱉듯 아리마 키쇼라는 이름을 발음했다. 그렇구나. 카네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쓰게 웃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저승사자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한 번 더, 아리마 키쇼를 마주치면 카네키는 죽게 될까.

카네키는 아리마의 손이라면 죽어도 상관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다만 카네키가 궁금한 것은, 아리마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밤하늘이 청명했다. 지금까지 숱하게 봐온 밤하늘인데, 오늘따라 더 그렇게 보였다. 카네키는 자신을 뒤쫓는 사람이 있는 것을 느꼈다. 안테이크에서 퇴근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식은땀이 배어 나와 카네키는 허벅지에 제 손바닥을 문질러 닦았다.

피할 수 있을까. 만난다면 싸울 수 있을까.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인간이잖아. 나는 인간이잖아.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는 없는 거잖아. 나는, 구울이 아니잖아. 하지만 그런 상황은 카네키가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싫게도 벌써 익숙해진 소리였다. 수트케이스였다. 쿠인케, 라고 했던가. 카네키의 삶은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바뀌었고, 쿠인케의 경우는 바뀐 것들 중에 나쁜 것들에 속했다.

죽고 싶지 않아. 카네키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인간을 반쯤 잃어버리고, 카네키는 지금까지 얼마의 죽음을 봐왔던가. 죽음에 가까이 있던 자들을 봐왔던가. 카네키 본인부터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먹고사는 생명이었다. 죽음이란 것이 조금 익숙해진 것도 같다고 카네키는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죽음만은 이렇게도 크고 무거운 것인가.

……카네키 켄?”

마스크를 쓰고 오진 않은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 그 전에. 너무나도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였다. 카네키는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카네키는 그런 남자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왜.

바람이 카네키 쪽으로 불어왔다. 익숙한 향내가 섞인 바람이었다. 잊을 수 없는 냄새. 아주 잠깐 카네키를 스치고 지나갔던 그 냄새가 났다.

아리마. 아리마, 키쇼.”

안대.”

하아, 하고 아리마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느낌이 안 좋더라니. 사실 안대의 구울은 아리마의 담당은 아니었다. 안대의 구울은 아리마 정도 되는 사람이 담당할 만큼 위험하거나 중요한 구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리마는 자신이 안대의 구울을 맡겠다고 말했다. 마도 쿠레오의 죽음 이후였다. 안대의 구울. 아리마는 그 단어에서 불길한 감각을 느꼈다. 하지만 아리마조차 그 불길한 기운의 정체가 바로 이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카네키 켄.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리마 씨. 저를죽일 겁니까.”

그렇게 물어보면, 안 죽인다고 말할 수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리마는 쿠인케를 수트케이스에 집어넣었다. 카네키가 기억하던 쿠인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카네키는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는 이제는 하얗게 새어있었다. 하지만 안경 뒤의 그 날카로운 눈빛만은, 예전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 텅 비어있는 눈빛. 자신과 다를 바 없는 그 눈빛만큼은.

잠깐 걷지.”

아리마는 카네키를 지나쳐 걸어갔다. 그는 최대한 담담하고자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카네키의 앞에서 행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아리마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리마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아리마의 감정을 아리마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것처럼. 아리마의 심장은 심하게 쿵쾅거리고 있었다. 이러다 죽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었다. 아리마는 자신을 뒤따라오는 카네키의 발걸음을 들었다.

 

아리마 키쇼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다지 원망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도리어 구울 수사관으로서의 삶이 퍽 마음에 들기도 했다. 그의 삶의 목표는 구울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리마의 곁을 지나쳐갔다. 하지만 아리마는 외롭지 않았다. 처음으로 친구라는 것을 사귀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 사람 때문에, 아리마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깨달아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추억이 퇴색되지는 않았다. 외롭더라도, 아리마는 사실 별로 상관없었다. 그의 외로움은 구울을 구축하는데 원동력이 되지도,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그의 삶에 작은 외로움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 외로움을 흔들어 놓은 것이 카네키 켄의 존재였다. 아리마는 자신의 감정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것을 납득하기 위해 카네키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리마의 심장 어딘가가 욱신 쑤셔오는 것이었다.

아리마는 수없이 많은 꿈을 꾸었다. 모두 카네키 켄의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먼지처럼 스러저버리는 꿈이었다. 카네키는 없어져 가는 자신을 잡지 않았다. 아리마 본인도 그런 카네키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붙잡을 수 없었다는 말이, 정확했다.

자신의 삶은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저주받은 삶이 아니었던가.

두 사람은 근처 공원에 도달했다.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 벤치들이 드문드문 놓여있었다. 아리마가 먼저 벤치에 앉았고, 다음은 카네키였다.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침묵이 가라앉았다. 어느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둘 다, 너무 많이 바뀌었네요. 사실, 아리마 씨가 아닌 줄 알았어요.”

나도 마찬가지다. 그땐, 구울이 아니었으니까.”

많은 일이 있었어요. 아리마 씨에게, 많은 일이 있었듯이.”

카네키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띄엄띄엄 아리마에게 전했다. 아리마는 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카네키의 말을 경청했다. 좋은 목소리였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하고, 뭐 그런 단어들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목소리.

아리마는 카네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안대로 가려진 눈 뒤에는 아직 숨기지 못하는 혁안이 있다고 했다. 카네키의 얘기 중간에, 아리마는 손을 뻗어 그의 안대를 벗겼다.

……그렇네요. 그렇게, 됐어요.”

그럼 카네키 너는 이제구울인가.”

구울은 아니에요. 그렇다고인간은 아니지만요.”

카네키. 네가 CCG 구축 대상인 것은 알고 있겠지.”

안대의 구울, 이라면서요?”

아리마는 몸을 일으켰다. 카네키의 칠흑 같은 머리가 가로등 아래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카네키의 시선이 아리마를 따라 움직였다. 그의 시선은, 슬픔이었다. 그리고 아리마는 자신의 눈빛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지.”

아리마 씨.”

다음에는, 구축이야. 나를 더 이상 기억하지 마, 카네키 켄.”

아리마 씨!”

카네키는 아리마가 이대로 떠날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정말, 우리의 관계는 이대로 끝인 것인가. 카네키는 아리마에 손에 죽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는 건 싫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없었던 것으로 바뀌어버리는 것이 싫었다.

아리마 씨, 차라리 여기서 저를…….”

수트케이스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카네키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리마의 손바닥이 카네키의 뺨을 감싸고 있었다. 아리마의 입술이 부드럽게 카네키의 입술을 짓눌렀다.

부드럽게 두 사람의 혀가 얽혔다. 두 사람의 혀는 어색하면서도 집요하게 서로를 탐했다. 카네키는 아리마의 목을 껴안았다.

두 사람의 첫 키스는. 그러니까, 눅눅한 맛이었다.

 

어이, 바보 카네키. 뭘 그렇게 멍때리고 있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바보라고 부르는 건 슬슬 그만해 줬음 하는데.”

그러면 바보짓을 안 하면 되지, 바보.”

토우카는 바보, 라는 말을 부러 길게 늘여 말했다. 요사이 카네키 켄의 모습은 좀 이상했다. 하긴 원래부터 이상한 녀석이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넋을 놓고 있진 않았는데. 토우카는 카네키의 그런 모습이 아직은 썩 못마땅했다. 그가 좋은 녀석인 걸 알면서도 그랬다.

좋은 녀석인 걸 알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카네키는 설거지를 이어갔다. 식기끼리 부딪히며 쨍, 하는 맑은소리가 울려 퍼졌다. 카네키는 도저히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그러지. CCG의 저승사자와 키스했다고 그러면.

그 키스가 너무 따뜻했다고 말하면.

그래서 이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면. 카네키는 속이 쓰렸다. 이제 겨우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알았는데, 이젠 다시 만나면 안 된다니. 정말 글자 그대로 죽음을 각오하고 만나야만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평범하게 사랑하고, 함께 있고, 데이트도 하는 삶을. 하지만 지금 이 꼴이 뭔가. 같이 데이트를 하러 가도 카네키가 먹을 수 있는 건 커피밖에 없지 않은가.

평범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었지만, 카네키는 그 삶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리고 카네키는 꽤 그것에 충실했다. 안테이크의 일상도, 음식을 먹는 하는 것도, 시체를 먹는 것도 제법 익숙해진 일들이었다. 하지만 아리마 키쇼와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카네키는 그날 결국 찻잔을 하나 깨트렸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한번 더 만났다.

수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 뒤였다. 카네키는 삶의 궤도라는 것을 체감했다. 처음에는 작은 틈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커져갔다. 카네키 켄은 이제, 카네키 켄이라기보다는 안대의 구울이었다.

운명은 카네키를 자꾸 카네키에게서 밀어냈다. 카네키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서도 밀어냈다. 카네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다. 자기 눈물에 자기가 질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카네키는.

카네키는.

결국 카네키는 그 이후로 아리마를 만나지 못했다. 그의 소식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아리마가 일부러 피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카네키는 그것이 그의 배려라는 것을 알면서도 못내 섭섭했다.

하지만 카네키의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의 운명은 아예 멀어질 수 없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카네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체를 넘어 아리마를 만났다. 그리고, 그를 죽이고 그를 지나가야만 했다. 아리마 키쇼가, 구울인 자신을 그냥 보낼 리는 없을 테니까.

카네키 켄과 아리마 키쇼. 만나고 싶지 않으면서도,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발밑에서 피었을 리 없는 하얀 꽃들이 피어났다. 아리마는 카네키의 뺨을 매만졌다. 이전보다 조금 살이 빠진 것도 같았다.

비슷해졌구나.”

그렇다고 같아질 순 없겠죠.”

그렇겠지. 아쉽게도.”

카네키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몇 번이고 상상해왔던 장면이었다. 아리마의 입술은 카네키의 기억보다 훨씬 더 뜨겁고, 축축했다. 카네키는 아리마에게 매달리듯 붙었다. 이것은 분명히 마지막이었다. 다음은 없었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 카네키는 두 사람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차가운 소나기를 상상했다. 이대로 스며들어 가면 좋겠어. 그렇게라도 평생 함께하고 싶어. 하지만 그들에게 쏟아지는 것은 소나기가 아니라 전쟁의 뜨거운 피였다.

하아…….”

누구 것인지 모를 호흡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카네키는 혀로 제 입술을 훑었다. 눈물맛이 났다. 둘은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렸다. 하얀 꽃잎이 엉망으로 짓밟히고 흩어졌다.

이젠 끝이구나.”

그렇군요……. 안녕히 계세요, 아리마 씨.”

안녕, 하고 아리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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