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헤이 하이루  # :re 5권, 로제 전  # 리퀘박스

 

 

 

검과 방패의 끝

 

 

Y A G I

 

 

 

 

전장의 냄새.

그런 게 과연 존재하긴 하는 걸까? 이헤이 하이루는 아리마 키쇼가 읽는 소설 속에서 간혹 등장하는 그 단어를 보고 종종 의구심을 가졌다. 질펀한 피비린내가 그들에겐 전장의 냄새로 느껴지는 것일까. 하지만 피비린내 따위는 굳이 싸움터가 아니라 병원 같은 곳에서도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헤이 하이루는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구울 수사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신은 역시 무언가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런 표현을 쓰는 작가들은 전쟁 따위를 겪어본 적이 없던가.

그녀는 유령의 그림자 같은 거대한 건물 앞에서 마지막으로 길게 숨을 뱉었다. 한숨보다는 경탄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녀는 지키는 자 하나 없는 건물의 출입구로 발을 옮겼다. 몇 개의 그림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자. 곧 유령이 될 그림자. 아직까지 뻔뻔하게 살아있는 유령들.

죽어 마땅한 존재들을 없애는 마법의 주문은 단 두 마디면 충분했다.

섬멸 개시.”

건물 내의 구울을 모두 구축하세요. 모든 것의 시작은 항상 조용하고 낮은 것이었고 소란스러운 죽음과 삶을 향한 뜨거운 열망은 그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하이루는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벤다. 자른다. 찌른다. 죽인다. 죽여 없앤다. 그것 외에 다른 사념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팽팽한 흥분이 쿠인케를 쥔 그녀의 팔을 찌르르 타고 흘렀다. 몸을 경제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하이루는 이름조차 궁금하지 않은 구울의 목을 가로로 베었다가 빠르게 몸을 숙여 달려오던 다른 구울의 내장을 갈랐다.

피 냄새 같은 게 났던가. 전장의 냄새가, 또는 죽음의 냄새가 이곳에는 존재하는가.

하이루는 언제 튀었는지 모를 진득한 피를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다. 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없다였다. 이헤이 하이루의 세계에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그녀의 손으로 직접 불러온 죽음 그 자체. 그것뿐이었다.

그녀에게 저승사자가 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없었다. CCG의 저승사자는 단 한 사람이면 충분했다. 하이루의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그 저승사자에게 인정받는 것, 칭찬받는 것. 영원히 그 저승사자의 곁을 지키는 것.

그것을 위해서 그녀는 쿠인케를 휘둘렀고, 존재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하나의 생명을 이 고루한 싸움터에서 끌어냈다.

츠키야마. 츠키야마. 그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이루는 그의 그림자조차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두렵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 건물의 모든 구울을 구축하면 그중에 자신이 원하는 구울이 시체가 되어 누워있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평소보다 몸이 훨씬 가벼운 것 같았다. 날 선 검의 끝은 곧 정교하게 다듬은 그녀의 손톱이었다. 수많은 계단이 그녀의 발아래에 밟혔다. 곧 츠키야마 가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녀의 발에, CCG의 발에 밟혀 허망한 끝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덧없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그 끝이 볼품없는 것이었다.

 

마츠마에.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헤이 하이루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반갑다면 반가운 얼굴이었다. 하이루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 전부터 그녀의 등장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이루는 순식간에 뒤바뀐 주위의 공기를 느끼며 앞을 정면을 바라보았다.

츠키야마 가의 기사. 누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가 츠키야마 가의 기사라면, 나는 저승사자의 검이야. 이헤이 하이루는 희미하게 웃었다.

안녕, 오랜만이네.”

오랜만이라고 할까, 잘 가.”

한 번 놓친 먹잇감은 다시 놓치지 않는다. 몇 번의 합이 묵직하게 맞았다. 의욕 만땅. 원래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 고양이가 쥐에게 백기를 흔든다는 뜻은 아니었다. 애초에 쥐 따위에게 물려 고통스러워할 이헤이 하이루가 아니었다.

멋진 카구네네요. 내 손에 곧 들어오겠지만.”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기사의 검과 저승사자의 검이 서로를 긁고, 베고, 찌르며, 막았다. 한 번의 합과 그다음의 합의 시간적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날카로운 떨림이 하이루의 가느다란 팔뚝을 타고 흘렀다.

이헤이 하이루는 그 상황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츠마에의 검이 어떻게 찌르고 들어오는지를. 아주 약간의 틈을 만들기 위해 얕게 찔러 넣었던 검이 어떻게 막히는지를. 마츠마에의 눈빛이 어떻게 빛나고 있는지를.

이헤이 하이루는 마츠마에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 하고 바닥에 떨어져 핏덩이에 뒹굴었던 탄식은 이헤이 하이루 자신의 것이었던가, 아니면 마츠마에의 것이었던가. 어쩌면 그것은 이헤이 하이루, 그 자신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이루는 반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겨우 일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상대에게 틈은 그것이면 충분했다. 하이루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아픔보다는 자신의 손에서 쿠인케가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이었다.

구멍이, 움푹…….”

있을 리 없는 안개가 서서히 하이루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마츠마에, 나와 방금까지 마주하고 있던 너는 언제 그렇게 멀리 가버린 거지? 나 자신의 빈 육체를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이지? 하이루는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소음들이 자신의 귓바퀴에 감겨 흘러나가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눈앞의 안개가 이상하게 움직였다. 죽은 유령들의 그림자. 그래, 이건 안개가 아니라 그들의 손아귀였다. 그녀가 선사한 지옥에서 이를 갈고 기다리고 있던 수 없이 많은 유령들.

  “오카히라, 쿠인케.”

  소리를 지르는 목소리가 꼭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나의 영혼은 이미 지옥에. 그런 건가. 유령들, 유령들. 이제는 나와 한 몸이 될 이름 없는 유령들.

  죽어버려.

  통증 같은 건 원래 없었다. 그저 전에 겪어본 적 없는 거대한 공허가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래서 하이루는 쿠인케를 쥐었다. 이 공허를 채울 수 있는 건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이 너의 죽음은 아니었지만, 너의 죽음으로 인해 그것은 내게로 올 거야.

  몸속에서부터 울컥 터져 나오는 것은 삼키지 않고 뱉었다. 이제야 끔찍하게 비린 피 냄새가 났다. 하이루는 어디선가 살아있는 인간에서 흘러내리는 피 냄새와 죽어가는 인간에서 흘러내리는 피 냄새는 다르다는 표현을 읽은 적이 있었다. 이게 왜 지금 이 순간에 떠오르는가. 무거운 적막이 자신을 찍어 누를 때 왜 그 검은 한 문장이 눈앞에 흔들거리는가.

  아, 아리마 씨. 하이루는 금방 이유를 깨달았다. 그것은 그가 읽던 책에 있던 문장이었다. 이것이 사실이냐는 하이루의 물음에 아리마는 그저 짧게, 글쎄, 하는 답을 남길 뿐이었다. 나도 모르겠는걸. 그리고 이제 하이루는 그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리마 씨한테 말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이루의 눈앞이 크게 흔들렸다.

  이 사실을 아리마 씨에게 말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하이루가 본 것은 아리마 키쇼의 얼굴이 아니라 검게 변색된 안개였다. 마냥 고요하고 어둡기만 한 안개. 마치 그곳에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어둠이었다.

  그 어둠을 헤치고 나온 것은, 지금보다 훨씬 작고 여린 아리마 키쇼였다. 이름 모를 꽃들이 두 사람의 사이에서 하얗게 날리고 있었다. 아리마 키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제 커다란 손을 뻗어 하이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하이루는 그를 따라 웃으며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러면 그 손길이 더욱, 따뜻해졌다.

 

--

 

이 글 쓴다고 리 5권을 달달 읽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하이루 너무 안타깝게 죽어버려서 슬픈 저네요ㅠㅡㅠ

하이루.. .. 사실 하이루가 등장하는 글을 처음인데, 쓰다보니 뭔가 또 몽글몽글 생각나서 여건이 된다면 한 번 써 볼 예정입니다 (메모해 둬야지) ! 근데 좀 까먹은 것 같아요 .. .. . 사실 이틀 전에 생각해 둔 거라서. ... .. .. 미리 메모해둘 걸.. .. .. .... . 소재는 생각나는데 디테일한 게.. ... .. 떠오르지 안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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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불면증 요모

 

 

; 연기 연

 

Y A G I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가 펴봤다. 상상 속에서 그 손에 그러잡히는 것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두개골. 언젠가 누군가의 단단한 두개골이 내 손바닥 아래에서 으스러진 적이 있었다. 그 손바닥 아래에 남은 것은 인간의 불쾌한 찌꺼기. 손목과 팔뚝을 타고 흐르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의 이야기였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가 다소 모호하던 그때.

  어쩌면 이 머릿속의 안개는 그때부터 조금씩 나를 잠식해오던 것일지도 몰랐다. 손등으로 뻑뻑한 눈을 비볐다. 방 안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희미한 빛이었고,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 눈을 감고 있으면 닫힌 눈꺼풀 위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눈부심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뜨면, 흑백만 존재하던 밤의 시간은 끝나고 어느새 의식하고 싶지 않은 색채들이 내 주위를 어지럽게 돌았다.

  그러면 또 잠에 드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날이 왔다. 나에게 있어 아침이란 하루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전날의 끝이었다. 잠의 어둠은, 그 깊고 고요한 세계는 내게 존재할 수 없었다. 이런 날들이 이어지면 나는 종종 내 발 앞에 마치 영겁의 시간이 허물을 벗고 드러누워 있는 것만 같을 때가 있었다.

  자기를 받아들이라고, 이런 삶을 받아들이라고. 뱀의 모습을 한 시간은 사지의 말단을 천천히 타고 올랐다. 저것이 내 목을 조르는 때는 언제일까. 나는 그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서서히 몸을 침식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뱀의 유연한 허리가 언젠가 내게 죽음을 선사하기를, 내게 남은 영겁의 시간을 그의 허물 속에 들어가 잠이나 자는 것을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내 스스로 저것의 허물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일찍 일어난 거야, 아니면 오늘도 안 잔 거야?”

  “못 잔 거야.”

  “그러다 쓰러져, .”

  “안 자고 싶어서 안 자는 거 아니야.”

  우타의 도톰한 입술이 열이 오른 이마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상태만 괜찮았다면 저 온기를 조금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을까. 나는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양 뺨을 붙잡아 당겼다. 입술과 이마보다는, 입술과 입술 쪽이 훨씬 좋았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렌지 다크서클 생겼어. 며칠 째 못잔 거야?”

  “한 칠십이 시간 쯤. 걱정 마, 오늘 밤에는 뻗어서 잘 것 같아.”

  “오늘 밤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렌지.”

  “버틸 수 있어. 아직은.”

  아마도. 뒷말은 억지로 삼켰다. 우타를 걱정시킬 필요는 없었다. 요사이 잠을 못 자고 있다는 말에 짐을 싸들고 집까지 쳐들어온 녀석이었다. 아직은, 따위의 말로 그의 불안감을 건드려 침실까지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우타라면 섹스 테라피 따위를 말하며 내 위로 올라탈 가능성이 높을지도 몰랐다. 그와의 관계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밤일에 쥐어짜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내 몫의 칫솔에 치약을 꾹 눌러 짜며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이를 닦으면서는 컵에 담긴 또 하나의 칫솔을 바라보았다. 우타와 함께 산다는 건. 그러니까, 양치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칫솔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거구나.

  얼마만인지. 뱉어낸 양치 거품 속에 치약이 한 덩어리 묻어나왔다.

 

 

 

 

  천장의 무늬를 눈으로 따라 그리는 것을 삼백 번쯤 하다보면 잠이 올 거라고 생각한 것이 벌써 나흘째였다. 미련함도 이런 미련함이 없지.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밖에 없었다. 천장의 무늬를 바라보고 있는 건 어쨌든 머리를 비우기엔 좋아서 나는 삼백한 번째 무늬를 눈으로 그렸다. 비워진 머릿속에 들어차는 것은 또 예의 그 안개였다.

  하얗고 두터운 안개에서는 어쩐지 짭잘한 맛이 났다.

  “렌지 군.”

  딱 우타의 눈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문이 열리고 그가 내 이름을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과 베개가 스치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또 못자고 있구나.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하지만.”

  우타의 뒤에서 덜걱,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 속으로 파고든 우타가 한쪽 팔을 뻗어 내 목덜미 뒤로 제 팔을 끼워 넣었다. 다소 불편한 자세에 나는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다시 수면을 위한 자세를 처음부터 찾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맞지 않는 열쇠를 돌리기 위해 열쇠구멍에 수없이 열쇠를 밀어 넣는 그런 기분이.

  우타, 너는 그런 것도 모르겠지.

  “제발, 나는 누가 옆에 있으면 더 못자.”

  “내가 없어도 못잘 것 같은데, 렌지는.”

  “제발 가주라.”

  “오늘 하루만 딱 해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내일은 그만둘게.”

  나는 눈을 감고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이런 우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 우타의 말대로, 우타가 없었더라도 오늘도 잠을 자기는 글렀다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우타의 입에서 섹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정도려나.

  “자장자장.”

  “조용히 해줘.”

  “알았어. , .”

  그 대신에 우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머리를 만진다는 것은 언제나 생경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나의 외벽을 구성하는 단단한 무언가가 허물어져가는 느낌. 머리로 몰렸던 열이 조금 내려가는 것도 같았다. 우타는 그대로 내 머리를 껴안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이 도대체 누구의 심장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어 고개를 조금 위로 들었다. 우타의 숨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머리 더 만져줘.”

  내 말에 우타가 아무 말도 없이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나는 눈을 감고 팔다리로 그를 끌어안았다. 머릿속을 채우던 안개가 흘러나가고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우타의 마른 등을 매만졌다. 고여 있던 것이 빠져나간 자리엔 무엇이 남게 되는가.

  어둠일지, 고요일지, 고독일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토록 기원하던 수면일지.

  나의 뱀은 여전히 자신의 허물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고 있었다. 나의 가랑이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 다른 먹잇감을 찾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나의 팔다리에서 물러나 내 발치에 똬리를 틀고 수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잠에 든 뱀은 아주 희미한 숨소리를 냈다. 우타의 호흡과 유사한 소리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다네요. 출처 네이버 사전.

1인칭을 안 쓴지 제법 된 것 같아서 간만에 1인칭. 저도 지금 불면ING 이기 때문에 어떻게 글이 잘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편히, 부담없이 잠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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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 전력 60분_ 약속했던 일 #우타요모 #고교생 AU (????)

 

 

 

 

해바라기

 

Y A G I

 

 

  길 옆에 핀 해바라기 몇 송이가 빳빳하게 고개를 하늘로 추켜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간이 버스 정류장의 나무 의자에 앉아있었다. 정류장의 칸막이가 늦여름 햇볕을 아슬아슬하게 막아주고 있었다.

  요모 렌지는 오른발을 약간 뒤로 물려 온몸이 정류장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도록 했다. 어디선가 또 매미가 지긋지긋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요모가 셔츠의 단추를 두 개 풀고 옷을 팔랑거리고 있을 때, 우타는 그저 양손을 벤치에 짚고서는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요모는 그의 둥근 이마가, 아니면 날선 콧대가, 그것도 아니면 투명하게 맨들 거리는 입술이 여름 햇살에 젖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쟤는 덥지도 않은 모양이지. 우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그의 눈 밑에 얹혀있던 톱니바퀴 모양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요모는 일부러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피어싱학교에서 뭐라고 안 해?”

  우타가 가볍게 웃는 순간 매미들도 울음소리를 높였다. 그 악다구니에 요모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튼, 매미소리는 반가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년 반쯤 이러고 다니면 쌤들도 포기해.”

  “예전에는. 그러니까, 나 알기 전에는, 많이 혼났나?”

  “아니, 우리 학교가 이런 걸로 혼낼 것 같아?”

  확실히. 요모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우타의 피어싱은 너무 많을지도. 하지만 요모는 그것이 자신이 상관할만한 일이 아니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기 전부터 우타는 그래왔으니까. 우타의 피어싱들은 요모가 알지 못하는 우타의 어떤 시간들이었다.

  요모가 알고 싶어 하는 시간들. 하지만 평생 알 수 없을 그 시간들.

  “, 사실은 렌지가 다른 학교에 갈 줄 알았어.”

  “?”

  “그냥? 렌지는 이 학교랑은 안 어울리잖아. 조금 더, 점잖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혹시 렌지, 나 보고 싶어서 이 학교로 진학한 거야?”

  우타가 고개를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네가 여기 올 줄 어떻게 알았다고.”

  “그건 그렇지만. 왠지 렌지라면 그랬을 것도 같아서.”

  요모는 갈비뼈 안쪽의 어딘가가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요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요모는 우타가 있는 쪽으로 몸을 약간 옮겼다. 요모의 운동화 끝이 그림자 밖으로 비죽 튀어나갔다. 요모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이 우타의 새끼손가락과 희미하게 닿은 것 같기도 했다.

  요모는 여름이 싫었다. 지긋지긋한 매미 울음소리도 싫었고, 찌는 듯한 더위도 싫었다. ,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그것을 손목의 안쪽으로 닦아내는 우타와, 여름이면 얇아지기 마련인 그와 자신의 옷차림이.

  그래도 여름의 좋은 점이 단 한 가지 존재한다면. 그것은 역시 우타를 처음 만났다는 점일까.

 

  중학교 삼학년에 전학을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애매한 것인가. 그때도 창밖에선 매미가 끔찍하게 울고 있었다. 여름의 낮은 항상 이상하게 길었다. 그날도 그랬다. 수업에 종례까지 끝난 시간이었는데 아직 창밖이 밝았다.

  요모의 전학은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요모는 일부러 하루 전날에 학교에 들러 학교의 구조를 익히고자 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되기 고작 며칠 전. 이런 미묘한 시점에서 다른 사람과 억지로 가까워질 자신이, 요모에게는 없었다.

  혼자서 헤쳐 나가기. 요모 렌지의 삶에서 걸러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장들이었다.

  텅 빈 교실들과 그들에게 붙어있는 숫자들을 요령껏 연결시키며 요모 렌지는 교정을 돌았다. 요모는 이층 층계참에서 삼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요모의 반은 삼층 끝 쪽에 있는 반이었다. 잠시 주저하던 요모는 다시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요모의 발밑에서 낡은 계단이 무참히 삐거덕거렸다.

  우타를 발견한 것은, 요모가 자기 반의 뒷문을 당겨 열어보려다 실패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던 때였다. 처음 지나쳤을 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때도 우타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결에 자리에 멈춰 서서 그의 둥근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우타가 요모의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그 짧은 순간순간이 요모의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혔다.

  요모는 한걸음에 삼층에서부터 일층 현관까지 달려 내려갔다. 난간에 쓸린 손바닥이 가볍게 화끈거렸다. 요모는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비며 두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첫 번째는 쟤는 왜, 이 시간까지 혼자 반에 남아있었는가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쟤는 왜, 낯선 요모를 보고 미소를 지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제 여름방학도 끝이네.”

  “방학 때 뭐라도 했어?”

  “딱히. 렌지는?”

  “나도.”

  “그럴 것 같았어. 렌지는, 재미없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입술에 박혀있는 피어싱을 매만졌다. 되게 차가울 줄 알았는데, 여름 공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미지근했다. 우타는 요모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모는 조금 더, 그의 입술을 만졌다.

  우타를 처음 만난 지는 삼 년이 지났지만, 정작 우타를 알게 된지는 고작 일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요모는 다시 떠올렸다. 그 사이의 이 년이란 시간은 지금 돌아보면 요모에겐 죽어있던 시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지독한 공백에 잡혀 있었던 시간. 그 공백의 사이에서 또 홀로 무언가를 깨닫고 포기하던 시간들.

  그 하얗고 뜨거운 공백을 메우기 시작한 것은 우타의 단 한 마디였다.

  안녕, 전학생.

  하고, 이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나 우타의 입에서 흘러나온 뒤늦은 인사말. 이상하게도, 그때도 여름이었다. 좌측 현관의 옆에 심어진 몇 송이의 해바라기들은 항상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학식 당일에도 그랬다. 귀가를 하던 요모가 반에 무언가를 두고 온 것을 깨닫고 홀로 그 현관을 지나칠 때도 그랬다.

  그때 두고 간 것은, 뭐였더라.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읽다 만 책 같은 것들. 굳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방학의 시작을 남들보다 몇 시간 늦출 필요가 없던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모는 그 물건을 찾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요모가 뒷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았던 것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우타의 뒷모습이었다. 우타를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그 뒤통수. 그때 요모는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끈끈한 땀이 손바닥에서 배어나오고 있었다.

  요모가 우타의 곁에 갈 때까지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지 않고 창밖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야, 우타는 고개를 돌려 요모를 올려다보았다.

  “안녕, 전학생. 이제야 인사를 하네.”

  요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알고 있었어.”

  “?”

  “네 이름. 요모 렌지. 그럼, 나는?”

  “우타.”

  요모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지금 눈앞의 우타는 그때의 우타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요모는 그것이 퍽 궁금했다. 요모의 기억 속에 들어있는 그날처럼 요모의 손바닥에는 또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요모는 허벅지에 손바닥을 연신 문질렀다. 우타의 시선이 제 손에 닿아있는 것을 요모는 알고 있었다. 구름의 그림자가 텅 비어있는 아스팔트 위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요모는 우타와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함께 하면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를. 이 세상에 그런 것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기는 할까? 연인이면서도 연인이 아닌 우리는.

  “우타. 너한테 사과해야할 게 있어.”

  “뭔데?”

  요모는 우타가 보고 있었을 어딘가를 바라보고 싶어 시선을 멀리 두었지만, 우타가 보고 있는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요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우타에게 고백을 했을 때, 우타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소리를 죽이며 웃었다. 그들의 곁에는 시들어가는 해바라기가 있었다. 요모는 입술을 깨물던 것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연인이라……. 좋아, .”

  아니, 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에 요모는 우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타는 요모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대신에, 나랑 약속을 하나 해야 해.”

  요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가 요모의 연인이 되어줄게. 대신, 요모는 나를 사랑하면 안 돼.”

  요모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인이 되어줄게. 그때 요모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면 자신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요모와 우타는 짧은 입맞춤을 나눴다.

 

  “약속. 약속했던 거, 말이야. 기억해?”

  “, 물론.”

  “못 지킬 것 같아.”

  “언제부터 그랬어?”

  요모가 다시 우타를 돌아보았을 때, 우타는 요모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몸이 요모에게로 조금 기울어 있는 것도 같았다.

  “처음부터. 아마,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구나아.”

  우타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자리에서 폴짝 뛰듯 일어섰다.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우타가 해를 등지고 있는 탓에 그의 얼굴을 도무지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냐, 렌이라면 그럴 것 같았어.”

  “그럼 왜, 그런 약속을.”

  요모는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잇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했다. 우타의 섬세한 손끝이 요모의 턱을 훑고 있었다. 우타의 입술이 벌어지며 뭔가를 말하고 있었는데, 요모는 그것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결코 나올 리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기에.

  요모는 대신에 우타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히는 것을, 그 사이로 언뜻 보였던 하얀 치아를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우타의 입술의 감각을 떠올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단 한 번의 입맞춤이 왜 지금 떠오르는 걸까.

  우타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말은 딱 세 마디였다. 긴 말은 아니었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시간이 필요했을 뿐. 일단은 그렇게 말해둘까.”

  “일단은?”

  “. 내게는 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그것 역시, 시간이 필요한 건가?”

  “아마도?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밖에 없어서. 우타의 목소리가 요모의 귓가에 맴돌았다. 한여름의 그림자 속에서 다시 느끼는 그 입술의 감촉은, 여전히 부드러우면서도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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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야쿠자 우타X청부업자 요모..... 이나 이 소재는 별로 안 쓰임 #괴담/저주받은 물건 소재

 

 

 

다락방의 요모 씨

 

Y A G I

 

 

1. 요모 씨 (2)

 

 

요모는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이런 가게에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동시에 요모는 우타의 심미안과 자신의 취향은 영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런 마스크를 쓰면 더욱 특정 당하기 쉬운 게 아닌가. 요모는 겉면에 복잡한 패턴이 수놓아진 마스크를 매만지며 생각했다.

, 그거 렌지 취향?”

절대……. 난 좀 더 차분한 게 좋아.”

렌지도 스타일을 좀 바꿔보는 건 어때? 지금도 올블랙이잖아.”

딱히.”

요모는 가면을 제자리에 내려두고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천천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느슨한 옷 속으로 한눈에 파악하기도 힘든 정도의 타투들이 늘어서 있었다. 간밤에 요모가 손끝으로 훑어 내렸던 그 복잡한 문양들이.

우타가 의자 돌리기를 그만두고 몸을 일으키자 덜걱, 하고 의자의 바퀴와 대리석 바닥이 떨어졌다가 붙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우타가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것을 들고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로서는 아직도 우타가 자신에게 어떤 일을 시킬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요모의 일이란 게 그랬다. 어차피 모두 다 누군가를 해하는 일이었다. 적당히 뒷맛이 나쁘거나, 아주 뒷맛이 나쁘거나. 그러고 보니 섹스 파트너와의 관계도 그랬지. 요모와 우타 사이에 단 두어 걸음밖에 남지 않았을 때, 요모는 왜 자신에게는 최악과 차악이라는 결과밖에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간밤에 잠은 잘 잤어?”

그럭저럭.”

무슨 꿈 같은 건 안 꿨고?”

그런 질문을, 대체 왜.”

아아, 다른 게 아니라. 나는 그 방에서 자면 꼭 가위가 눌려서 말이야. 렌지는 그런 일이 없었나, 싶어서 묻는 거지.”

요모는 고개를 저었다. 요모는 언제나 그렇듯이, 꿈조차 없는 어두컴컴한 잠을 잤다. 마치 죽었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자신의 손을 거쳐 갔던 수많은 죽음을 복기하고 있는 것처럼.

부탁하려고 했던 건, 이거.”

우타는 제 손에 있는 것을 요모에게 건넸다. 평범한 반지 케이스였다. 요모는 무심코 케이스의 겉면을 만졌다. 부들부들한 재질의 자주색 천이 엄지 끝에 묘한 감각을 남겼다. 그래서, 이게 뭐?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열어 봐.

우타의 목소리가 나긋했다. 반지 말고 다른 것이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주 정직하게 반지가 들어 있었다. 요모의 손에는 작아도 한참 작아 보이는 반지였다. 반지의 가운데에는 육각형으로 커팅된, 요모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끼손톱 반만 한 파란 보석이 고고하게 올라와 있었다.

아마도 다이아몬드일 사실 요모 렌지가 아는 보석 중에 이런 모양을 가진 보석은, 다이아몬드밖에 없었다.흰 보석들은 마치 꽃받침처럼 반지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코 반지를 들어 올려 가게의 조명에 비춰보았다. 선명하면서도 투명한 푸른색이 백색 형광등 아래에서 기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때?”

예쁘네.”

정말, 렌지는 재미가 없다니까. 조금 더 대단한 반응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거야? 침대에서는 잘만 보여주더니.”

요모는 말없이 인상을 구겼다. 우타에게 딱히 악의를 찾아볼 수 없어서 요모는 더욱 기분이 별로였다. , 하고 숨을 내쉬며 요모는 케이스의 뚜껑을 닫았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지?”

렌지는 귀신이나, 저주이런 것들을 믿는 편이야?”

뜬금없이 들어온 우타의 질문에 요모는 무심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귀신이나 저주.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서, 요모는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그다지 해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나 그런 이야기들을 때로는 무서워했지. 지금 요모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어떤 이유던지, 살아서 요모의 목덜미에 칼날을 겨누는 것들.

죽은 것들을 항상 말이 없었다. 죽음과 같은 침묵, 혹은 죽음 그 자체인 침묵. 따지자면 요모는 그 침묵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딱히.”

그거, 저주받은 반지래.”

우타는그런 걸 믿나?”

안 믿고 싶어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으면 믿게 되는걸.”

우연이겠지.”

요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 손바닥 안의 반지 케이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그 반지를 보았을 때,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 같은 것이 있었던가? 예를 들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집요하게 그림자를 밟아오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때처럼?

딱히. 요모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청부업자로 살아오며 자신의 생명과 관련된 감각만큼은 예민하게 벼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요모는 다시 케이스를 열어보았다. 반지는 여전히 묵묵히 반짝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섯 명.”

?”

우리 친구들다섯 명이 그거 때문에 저기, 천국이나 지옥이나에 가 있단 말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손끝으로 요모의 이마를 꾹 밀려 했으나, 요모는 고개를 뒤로 물려 그 손을 피했다. 우타는 아쉬운 내색도 않고 그저 손끝을 튕겨 딱, 소리를 내는 걸로 만족했다.

그거, 소유한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반지래.”

그 다섯 명은어떻게 해서 죽었지?”

익사. 세 명은 물에서 두 명은 땅에서.”

땅에서?”

그렇대. 재밌지 않아? 땅에서 죽었는데, 익사였던 거.”

요모는 우타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을 바라보았다. 재미있다, . 다른 것보다 요모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그 부분이었다. 어쨌든 자기 밑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인데, 그들의 죽음을 재미있다고 말하는 우타는.

, 어차피 그렇게 안 죽었어도 내 손에 죽었겠지만. 보스의 물건을 건드리는 건, 그런 걸 각오하지 않고서야 못하는 거잖아?”

보스.”

? 렌지도 알고 있었잖아. 내가 렌지를 알고 있던 것처럼.”

소문에는 실체가 없는 법이야, 요모 렌지. 우타는 양팔로 요모의 목을 가볍게 껴안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역시 처음부터 알고 접근한 건가. 어쩌면 요모가 이 길로 발을 옮긴 이상 요모는 이런 일들을 운명으로 여겨야 할지도 몰랐다.

그것은 자신의 업이었다.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였다. 좆같은 세상, 이라고 요모는 생각했다. 선택지를 이것밖에 주지 않았으면서 내 선택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게 하다니.

뭐어, 렌지랑 잔 건 그거 때문은 아니었지만.”

우타의 입술이 요모의 이마를 가볍게 스치고 떠났다. 우타는 조금 전의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아까의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요모는 물끄러미 우타를 바라보던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미묘한 기분이었다. 저주니, 어쩌니 할 때보다 훨씬 더 미묘한 기분.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낯선 감정. 먼지 하나 없는 바닥에 반사된 빛이 요모 렌지의 눈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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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야쿠자 우타X청부업자 요모..... 이나 이 소재는 별로 안 쓰임

 

 

다락방의 요모 씨

 

Y A G I

 

1. 요모 씨 (1)

 

 

  섹스 파트너의 집에 세 들어 살기.

  요모 렌지는 20인치 캐리어를 나무로 된 바닥에 내려놓으며 남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보증금도 없고, 월세도 싸고, 심지어 집 주인도 같은 구울이었다. 이 모든 조건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 때문이었다.

  요모 렌지가 그의 섹스 파트너였기 때문에.

  “어때, 방은 괜찮아?”

  “……. 이 정도면, 좋습니다.”

  “말 편하게 해, 렌지.”

  “하지만.”

  “어젯밤에는 우타, 우타, 하면서 이름을 잘만 부르더니.”

  요모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야, 어젯밤에는 집주인이 아니라 섹스 파트너였으니까. 요모는 문간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선 우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래로 눈을 깔았다. 간밤의 일들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

  사실 요모는 상대가 우타만 아니었어도 그가 어떤 제안을 하던지 그대로 몸을 물리고 떠날 작정이었다. 요모는 한 번 원나잇을 한 상대와 더 깊은 연을 맺는 법이 없었다. 요모의 인생에서, 섹스로 시작된 연이 좋게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죄다 끔찍하거나, 아니면 그저 그렇게 나쁘거나. 하지만 요모는 이번만큼은 우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여러 이유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요모는, 이 관계가 최악으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짐이 되게 적네?”

  “자주 집을 옮겨서…….”

  “이제는 짐도 좀 늘어나겠다, 그렇지?”

  요모는 별 대답 없이 캐리어를 열었다. 이 집에선 오래 지낼 수 있을까. 요모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자꾸 지낼 곳을 바꾸다 보면 결국엔 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남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요모는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요모의 방은 작은 다락방이었다. 요모가 제대로 허리를 펴고 있을 수 있는 곳은 시옷자 지붕의 한가운데 밖에 없었다. 끝으로 가면 갈수록 요모는 조금씩 허리를 숙여야 했다. 요모가 결국 허리를 반으로 접어야 서 있을 수 있는 곳에 그의 침대와 키가 작은 서랍이 하나 있었다.

  문과 창문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물 때 하나 없이 투명한 창문이 저물어가는 햇살을 다락방의 마루에 이리저리 흩어놓고 있었다.

  “나는 일 때문에 집에 자주 없으니까. 펀하게 지내, 렌지.”

  “.”

  그 말을 남기곤 우타는 또 소리 없이 아래층으로 사라져버렸다. 요모는 우타가 열어두고 간 문을 밀어 닫으려 발을 옮겼다. 우타가 계단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지만 않았어도 요모는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 렌지 아직 일할 곳 없지?”

  요모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구할 생각이긴 했지만.

  “그러면 내일 나 좀 도와주라.”

  “마스크같은 건, 잘 모르는데.”

  “괜찮아, 가게 일 아니니까. 부탁 좀 할게. 이 일에 렌지가 적격일 것 같아서 말이지.”

  우타는 눈을 찡긋하고는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내 동의는? 요모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잠시간 층계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이제는 제 것이 된 다락방으로 몸을 돌렸다.

  요모 렌지는 문에 등을 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비슷비슷한 높이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분명, 어제 말이야. 우타와 함께 4구의 거리를 걸으며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그에게 형님, 형님 하는 것을 한두 번 보았던가. 요모는 직감적으로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몸 좀 쓰는 녀석한테 잘못 걸린 거 아닌가.

  다락방을 얻는 조건은 좋아도 너무 좋았지만, 단 한 가지 결정적으로 안 좋은 점이 있다면 아마 야쿠자나 그 비슷한 무리에서 한 가닥 하는 녀석이 집주인이라는 점이었다.

  “시끄러운 일만 없으면 좋겠는데…….”

  요모는 목덜미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내일 부탁한다던 일도 그와 관련된 일이지 않을까. 요모는 캐리어에서 몇 벌의 옷을 꺼내 침대 위에 두었다. 모두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옷들이었다. 화려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덧대어지지 않은 그런 무채색의 옷들. 요모는 그런 옷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지 않는 것. 청부업자로 지내왔던 요모 렌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다. 어쩌면 우타에게도 요모의 소문 따위가 흘러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문을 전할 사람이 과연 남아있는가, 그것이 문제겠지만.

  일을 이렇게 빨리 재개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요모는 길게 숨을 내쉬곤 외투를 걸기 위해 옷장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열린 적이 없었을 터인 옷장의 문이 무겁게 열렸다. 몇 개의 옷걸이가 옷장 안의 퀴퀴한 공기 속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요모의 눈에 띈 것은, 제법 커다란 상자 하나였다.

  우타가 두고 잊어버린 물건일까.요모는 테이프로 단단히 봉해져 있는 부분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매끈했다. 그것 말고는 별것 없었다. 뜯어볼까, 말까. 요모는 아주 잠깐 고민을 했다. 아주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물건을 멋대로 살펴볼 수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아래층에 있을 우타에게 가져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요모는 상자를 들어 올렸다.

어라.”

보기보다 묵직했다. 그렇다고 들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요모는 가볍게 상자를 흔들어보았다. 안쪽에서 가볍게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이것저것 들어있나 본데, 책 같은 건 아닌 것 같고. 요모는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곤 상자의 내용물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다.

우타.”

  요모는 계단을 두 층이나 내려가서야 우타를 볼 수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뭔가를 보고 있던 우타가 요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옷장에서 발견했어.”

  “, 고마워. 어디 있었나 했더니. 괜찮으면 거기, 테이블 위에 올려줄 수 있을까?”

  그 말을 하며 우타는 길게 기지개를 폈다. 가게 일은 안 가도 되는 건가. 요모는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상자를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 하고 저절로 숨이 내쉬어졌다. 아주 부담 가는 무게가 아님에도 그랬다.

상자로 가까이 다가온 우타는, 요모가 그랬던 것처럼 단단하게 붙어있는 테이프를 손끝으로 쓸었다. 요모는 우타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있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안 열어봤네? 봐도 되는데.”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 그래. 가지고 오면서 별일은 없었어?”

별일?

요모는 미간을 좁히며 한 쪽 눈썹을 올렸다. 요모는 상자를 들고 고작 두 개 층의 계단을 내려왔을 뿐이었다. 별일이 생기기 불가능한 곳은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물어봐야 할 정도도 아닌 것 같은데.

, 미끄러지거나 넘어지거나 하는 일 말이야. 계단이니까.”

딱히.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인가?”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아니라면 아닌 물건.”

우타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속을 모르겠다고, 요모는 생각했다. 요모의 안에 뭐라 명명할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았지만 요모는 그저 그 감정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하고 우타가 자기만 개운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이제 올라가 봐도 괜찮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요모는 선선히 그의 의사에 따랐다. 어쨌든 짐 정리도 아직 끝내지 못했으니.

  요모가 가뿐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우타는 끝까지 웃는 낯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우타는 퍽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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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사과님과의 연성교환  #203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Gloomy Sunday의 OST와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Sundays

 

Y A G I

For. 초코사과님

 

Sunday is gloomy,

My hours are slumberless

Dear as the shadows

I live with are numberless

Little white flowers

Will never awaken you

 

 

나연은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지나치듯 봤던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이름 모를 여배우가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을 뿐이었다. 알 수 없는 나라의 언어로 불리는 노래가 왜 그렇게 나연의 가슴을 적셨던가.

나연의 손끝에서 흩어지는 바이올린 소리가 영국의 습하고 우울한 공기를 울렸다. 오늘도 영국은, 말 그대로 글루미Gloomy였다. 오늘이 일요일은 아니라는 건, 역시 아쉬운 일일까.

나연의 손가락이 섬세하게 바이올린의 얇은 현을 짚었다. 현으로부터 시작된 희미한 떨림이 나연의 몸속까지 울리는 듯했다. 나연 자신이 하나의 거대한 바이올린이 되는 느낌. 나연은 그 느낌을 좋아했다.

 

Not where the black culture's

Sorrow has taken you

 

죽음을 부르는 노래라고 했던가. 그러나 나연의 주위에는 이 노래를 듣고 죽은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 없었다. 혹시, 어쩌면 죽음을 마주한 사람에겐 이 노래가 다르게 들리는 것일까. 나연은 이 노래를 들으며 슬픔을 느낀 적은 있어도 죽음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걸보면 아직은 자신이 살아야 하는 때일지도 몰랐다.

나연은 가볍게 숨을 내쉬며 이어질 음이 울릴 현을 손끝으로 짚었다. 그때, 창문을 넘어 또 다른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나연은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며 현을 바이올린에서 떼어냈다.

 

Angels have no thoughts

Of ever returning you

Wouldn't they be angry

If I thought of joining you?

 

확인하지 않아도 저 바이올린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연은 알 수 있었다. 셜록 홈즈. 그 눈치 더럽게 없는 새끼. 나연은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당겨 닫았다. 얇은 유리를 통해 노래의 남은 부분이 흘러들어왔다. 나연은 인상을 쓰면서도 셜록의 음악을 귀에 담았다. 만약에 그에게 음악적 조예가 조금이라도 덜 있었다면. 그렇다면 나연은 그를 좀 더 싫어할 수 있지 않았을까.

 

Gloomy Sunday

 

노래의 마지막은 나연이 기억하는 원곡보다 느리고 무거웠다. 셜록은 그 영화를 본 적이 있을까. 셜록이라면 영화를 보지 않고도 그 모든 내용을 알고 있겠지. 나연은 가볍게 팔짱을 낀 채 회백색 구름이 낮게 가라앉은 하늘을 바라보다가 소파에 몸을 묻었다.

셜록 홈즈. 런던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껏 받고 있는 모자를 쓴 탐정. 그리고 그 탐정이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셜록이 사랑 따위를 알 수 없다는 말이 나돌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것은 다 모르는 소리라고, 나연은 생각했다. 물론 나연 자신도 셜록의 사랑을 받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그것을 몰랐겠지만.

일층 현관의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연은 얼른 머리를 굴렸다. 누군가 올 사람은 없었다. 셜록이 자신을 찾아왔을 리도 만무했다. 셜록은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바로 창문을 통해 나연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행동을 할 인물이었다. 나연은 제 옷차림을 한 번 확인하고는 일층 계단을 내려갔다. 초인종을 누른다는 건 적어도 셜록보다는 교양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내가 방해했니?”

허드슨 아주머니!”

나연은 활짝 표정을 폈다.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은 높아져 있었다. 나연은 몸을 뒤로 몇 발짝 물리는 것으로 환영의 의사를 대신했다. 어쩐지 간만에 뵙는 얼굴인 것 같았다. 자신도 이미 부인의 손길이 간절하게 필요한 나이도 아니었을뿐더러, 옆집의 두 남자가 하도 부인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 많기 때문이겠지.

나연은 부인이 자신에게 종종 뱉었던 하소연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저 집 남자들은 냉장고에 식료와 함께 시체를 보관한단 말이지. 나연은 그 말을 들으며 왓슨 박사에게 마음속으로 위로를 보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차라도 내올까요?”

아냐, 잠깐 들린 거란다.”

두 사람은 자그마한 티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누가 봐도 부인의 얼굴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하지만 나연은 그 웃음의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셜록이라면 알 수 있었을까. 재수 없는 그 인간이라면, 아마 초인종이 눌림과 동시에 부인의 용무를 알아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연은 평범한사람답게 차분히 부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셜록과는 어디까지 갔니?”

, 그 사람이랑 사귀는 거 아니라니까요!”

어머, 존도 너랑 똑같은 소리를 하던데.”

왓슨 박사님께도 홈즈 씨와 사귀냐고 물어보신 거예요?”

부인은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이더니 소곤거리듯 말을 이었다.

그게, , 다 큰 남자 둘이서 플랫메이트를 하면 그거밖에 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아주머니는, 정말…….”

나연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주머니를 오래 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런 모습은 마냥 엉뚱하게만 느껴졌다. , 젊게 사시는 분이라고 그래야 할지. 나연은 그런 부인의 모습을 싫어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모습이랄지. 셜록 홈즈에게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 없을 모습이었다.

 

*

 

홈즈 씨, 사람을 이렇게 갑자기 불러내면 어떻게 합니까?”

카페 안으로 들어선 나연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셜록을 보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카페 안에는 아직 몇 명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있었다. 셜록은 나연의 등장을 신경도 쓰지 않는 듯, 기도를 하듯 모은 손끝을 제 입술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자기가 불러놓고는. 나연은 그런 셜록의 모습이 싫었다.

나연. 큰 게임이 하나 시작될 거야.”

게임이라니요?”

나연이 셜록의 맞은편 자리에 앉자마자 셜록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나연은 셜록을 바라보았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아니, 평소보다 더 빛나고 있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었다.

푸른색과 맑은 녹색이 미묘하게 섞여 있는 색채. 나연은 그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다가 눈을 돌려버렸다.

별거 아니야.”

나연의 물음에 셜록은 손을 털 듯 모으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나연은 무심코 그의 입술이 평소보다 좀 더 말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용무가 뭡니까?”

이 말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무슨 말인데요? , 설마.”

맞아. 나연, 나는 나연을 진심으로사랑해.”

사랑해. 셜록의 목소리는 한겨울에나 볼 수 있는 하얀 입김 같았다. 너무 희미하고 덧없어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공연히 애틋하게 만드는 목소리. 하지만 나연은 그런 셜록의 고백에도 까딱하지 않았다.

나연은 굳세게 팔짱을 끼고 셜록을 노려다 보았다. 셜록의 얼굴에선 아주 약간의 웃음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 대답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벌써 열두 번이나 들었는데.”

그걸 일일이 세고 계셨습니까? 불쾌해라.”

나연은 미간을 구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셜록은 몸을 일으켰다. 싸구려 나무 의자가 타일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였다면 셜록은 다음을 기약하며 그대로 나연을 지나쳐 갔을 터였다.

나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셜록을 바라보았다. 셜록과 이렇게 가까이 있던 적이 있었던가. 나연은 그의 섬세한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열세 번의 고백과 열세 번의 거절이 지루해질 정도로 이어져 왔는데 어째서 그의 입술이 메말라 있었는지, 나연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창밖에서 껌뻑이는 네온사인의 빨간 불빛이 테이블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연은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셜록의 희미한 숨결부터, 자신의 심장이 어떤 방식으로 뛰는지까지. 셜록에게선 아주 가벼운 남성용 스킨 냄새와 오래된 먼지 냄새와 비슷한 향이 났다.

홈즈 씨, 이게 무슨!”

말했잖아, 후회할 것 같아서.”

나연이 제정신을 찾은 것은 눈을 한 번 깜빡할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셜록이라면 고작 그 정도의 시간으로도 나연의 마음을 충분히 읽었을 터였다. 나연은 그것이 퍽 신경 쓰였다.

영국신사답지 않으시네요.”

나는 신사가 아니라, 탐정이야.”

셜록이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안녕. 셜록은 마지막 인사를 남기곤 유유히 카페에서 멀어졌다. 나연은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셜록 흉내를 내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뭔가 걸리는 것이 있었다.

 

후회할 것 같다.

나연은 굳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직접 TV의 전원을 껐다. 후회할 것 같다. 나연은 그 말의 진정한 저의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셜록 홈즈. 그는 언제부터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던 것일까.

가짜 탐정이라고, 언론에서 지껄여대는 말들은 처음부터 무시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가짜일 리 없었다. 나연은 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눈을 감으면 다시 그날 카페의 적막함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생한 기억인데.

셜록 홈즈의 장례식은 나연의 생각보다 조촐하게 치러졌다. 런던을 떠들썩하게 했던 탐정의 종말은 그렇게 초라했다. 나연은 셜록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그녀가 셜록을 싫어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연은 셜록의 장례식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슬퍼해야 할까, 화를 내야 할까, 아니면 그의 키스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을 해야 할까.

그 대신에 나연은 글루미 선데이를 봤다. 그 노래를 듣고 죽어간 사람들을 떠올렸다.

 

Sunday is gloomy,

My hours are slumberless

Dear as the shadows

I live with are numberless

Little white flowers

Will never awaken you

Not where the black culture's

Sorrow has taken you

Angels have no thoughts

Of ever returning you

Wouldn't they be angry

If I thought of joining you?

 

Gloomy Sunday.

 

낯선 얼굴과 낯선 언어 사이에서 나연을 붙잡은 것은 가느다랗고 하얀 한두 줄의 자막이었다. 나연은 그제야 이 노래의 가사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나연은 셜록을 떠올리는 대신 바이올린을 들었다.

여전히 런던의 하늘은 어둡고 낮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덮어버릴 것 같은 구름들이 하얗게 모였다가 풀어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바이올린 선율은 언제나 아름답고 반짝였다. 나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셜록을 애도했다. 그리고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셜록 홈즈를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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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YAGI입니다. 간만에 공지를 새로 쓰네요. 이번 노래는 Sting-Russians입니다. 앞으로는 아마 쭉 티스토리를 이용하지 않을까 싶네요. 모든 게시글에는 글을 시작하기 전에 #으로 글에 대한 간략한 사전 정보를 드리고 있습니다. 혹시 글을 읽기 전에 조금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취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수위글에 대해서

  현재 본 티스토리에서는 '합의된 섹스'에 한해서 비청소년(성인) 인증을 걸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대부분 합의된 섹스를 씁니다만.... '애매하게 합의된 섹스'는 인증을 겁니다. 또한 과도하게 자극적인 섹스라고 판단되는 것 역시 인증을 겁니다. 인증에 관련한 것은 따로 준비된 게시글에서 확인해주세요. 과도하게 자극적인 섹스라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라, 저의 판단에 의해 언제든 인증 유뮤가 바뀔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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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YAGI

 개인 공간입니다. 연성 외 잡다한 것들이 올라옵니다. 필요시 카테고리를 이용해 세분화합니다.

 

 

  방명록은 자유롭게 이용해주십시오. 개인적인 연락은 블로그보단 메일이나 트위터로 부탁드립니다.

 

17.08.27.

Y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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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케이크버스

 

 

My Sweety

 

Y A G I

 

 

  “우타, 이러면……!”

  “렌지는 가만히 있어.”

  우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요모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았다. 요모는 우타의 손에 잡힌 제 손목을 힘껏 빼보려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요모는 이를 악물었다. 달큰한 냄새가 났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의 냄새. 인간의 피나 살과는 다른, 그것 이상으로 매혹적인 냄새가 났다. 악문 치아 뒤에서 희미하게 침이 배어나왔다. 먹어버리고 싶어. 요모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재밌는 표정을 짓고 있네.”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나와.”

  “장난 아니야. 나 진지해.”

  먹어버리고 싶어. 우타를 알아온 지난 몇 년간, 요모가 끙끙 앓아오던 생각이었다. 4구의 공기에서는 흥미로운 냄새가 났다. 수많은 케이크들의 냄새. 요모는 그 냄새의 기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우타의 냉장고를 털었을 때, 그들의 본거지에서 나는 수많은 달콤한 냄새들.

  제 손등에 묻은 조무래기들의 피를 무심코 혀끝으로 핥으며, 어린 요모는 무언가를 직감했다. 이곳은 구울이면서 케이크인, 복잡한 녀석들의 본거지구나. 희미한 단맛이 혀끝을 타고 퍼져 올랐다. 요모는 4구에 오래 머물 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과욕은 금물이었다. 요모는 뭔가를 참는 것은 항상 잘해왔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요모는 바로 4구를 뜰 생각이었다. 이상한 안경을 쓴 녀석, 그러니까. 4구의 왕, 케이크들의 왕인 우타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우타의 얼굴을 처음으로 마주했을 때, 요모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이 녀석한테서는 상상 이상으로, 맛있는 냄새가 난다.

  먹어버리고 싶어. 배어나오는 침을 삼키며 요모가 생각했다. 하지만 저런 냄새를 풍기면서도 여태껏 멀쩡하게, 그것도 케이크인 구울들만 모아서 하나의 그룹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먹히는 것은 케이크인 우타가 아니라 포크인 요모일지도 몰랐다.

 

  “, 나는 렌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렌을 먹어버리고 싶었어.”

  “무슨소리야, 그게.”

  “렌지도 마찬가지였지?”

  우타의 입술이 요모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눌렀다. 요모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제 손목을 잡고 있는 우타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진득한 우타의 체취 때문에 요모는 이성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무슨…….”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날 보는 포크들은, 대부분 나를 먹고 싶어 해.”

  이를 악물고 으르렁거리듯 말을 뱉는 요모와는 달리, 우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나긋했다. 그것이 요모를 또 자극하고 있었다. 요모는 거친 숨을 뱉었다. 우타의 입술이 요모의 목덜미를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거 말고, 날 먹고 싶다는 게, 무슨.”

  “렌지는 숙맥이구나아.”

  우타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이제야 지금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우타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요모의 상의를 끌어올리며 그의 맨살을 매만졌다. 요모는 숨을 훅, 들이마셨다. 우타는 주저하는 것이 없었다. 연신 요모의 목이나 쇄골에 입을 맞추던 우타의 입술이 더 아래로 내려갔다.

  요모는 그런 우타의 어깨를 부드럽게 밀어냈다. 요모의 생각보다 수월하게 우타의 숨결이 요모의 몸에서 떨어졌다. 우타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요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싫어.”

  “?”

  “……먹어버릴지도 몰라.”

  우타의 웃음소리가 좁은 방을 울렸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건지. 요모의 날선 눈빛에도 우타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고 있었다. 한동안 즐거운 듯 웃던 우타가 갑자기 웃음을 뚝 멈추고 굳은 표정으로 요모를 바라보았다.

  “, 렌지라면 먹혀도 괜찮아.”

  “그건 내가!”

  “어때, 궁금하지 않아? 내가 무슨 맛일지. 렌지가 상상한 맛일지, 아니면 그 이상일지.”

  두 사람의 코끝이 서로 스쳤다. 우타는 양손으로 요모의 볼을 가볍게 감싸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붙어본 적이 있었던가. 요모는 앞니로 제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상상 이상일 게 분명했다. 먹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우타는 여태껏 요모가 먹어왔던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맛이 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우타를 먹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최고의 행복에 따라붙는 것은 언제나 최악의 절망이었다. 요모는 그 절망을 더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상황은.

  “키스하면 어떨 것 같아?”

  우타에게 요모의 대답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우타는 거침없이 혀를 밀어 넣었다. 우타의 어깨를 붙잡은 요모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우타의 숨이 희미하게 요모의 뺨에 닿았다.

  상상이상, 이라는 말조차 부족했다. 요모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까부터 맡았는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향과, 끊임없이 자신의 혀를 얽어오는 이 맛과. 요모의 심장이 거칠게 뛰고 있었다.

  “우타, 이제 그만.”

  “. 여기까지 왔는데, .”

  우타는 능숙한 손길로 요모의 바지 버클을 풀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요모는 차마 우타를 바라볼 자신이 없어 낮고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단어들을 씹어 삼키며 말했다. 우타의 능청스러운 목소리가 이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여태껏 자신은 왜 우타를 먹지 않았던가. 아니, 이런 생각은 할 수 없었다. 하면 안 됐다. 후회할 거니까. 우타를 먹어버리면 분명 후회할 거니까.

  “우타. , 여기서 더 하면 못 참을지도 몰라.”

  “참지 말아버려. 어때, 서로 먹고 먹히는 거야. 멋지지 않아?”

  “우타.”

  “최상의 쾌락을 줄게, 렌지.”

  악마의 속삭임이란 이런 것인가. 요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우타의 손이 매끈한 요모의 살을 스치고 지나갔다. 요모는 고개를 돌리고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이 세상에서 우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다.

  그리고 요모 렌지의 마음속에서는.

  요모의 마음속에서는 억눌려 있던 우타에 대한 어떤 욕구가 터져 흐르기 직전이었다. 요모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억누른 시간만큼, 자신이 우타라는 구울을 알아온 만큼 커져왔던, 그래서 복잡한 그 마음이 아주 아슬아슬하게 제 이성의 끈을 튕기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

빠르게 상황만 만들어버리기 ^~^ 땡땡버스 하는 것 자체를 첨 써바서 아직은 낯설기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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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 전력 60분_ 이정표 없는 길   #우타요모   #청소년 우타요모^~^

 

 

Nec Possum tecum vivere nec sine te

 

Y A G I

 

    숨을 뱉을 때마다 후끈한 열기가 겨울 공기에 퍼져나갔다. 잠깐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우타는 입에 고인 침을 바닥에 뱉었다. 희미한 피가 섞여있었다. 여기서 죽으면 체면이 안 사는데. 우타는 속으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상대도 자신과 비슷해 보이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가볍게 웅크린 몸의 근육이 긴장 때문에 찌릿찌릿했다. 한 번만 더 합을 맞추면 죽고 사는 쪽이 결정될 것 같았다. 물론 가장 큰 가능성은, 그러다가 둘 다 죽어버리는 것일 것 같았지만.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무를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게 있었다. 우타의 피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자신도 이것이 치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우타는 손쉽게 그 생각을 뒤로 밀어버렸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싸우고, 이기는 것.

    뺏거나, 빼앗기는 것. 어차피 구울이란 그러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니, 우타는 이런 싸움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저 녀석이랑 같이 죽는 거라면 제법 괜찮게 삶을 끝내는 것이었다.

    “지쳤어.”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녀석이 쯧, 하고 혀를 찬 것도 같았다. 우타는 몸을 똑바로 세웠지만, 여전히 긴장을 완전히 풀어버리진 않았다.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다.

    녀석은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 그대로, 고개를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혁안이 풀린 눈 아래로, 작은 땀방울 하나가 그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까지 우타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오늘도 여기서 끝인 모양이었다. 이러다 둘 다 죽는다는 걸,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우타는 오늘 여기에, 이 싸움을 끝낼 생각으로 왔다. 구울이 가오가 있지. 오늘도 어영부영 다음을 기약하며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뭐야계속 할 거야?”

      “언제까지 질질 끌 수도 없잖아?”

      “. 이거, 끝을 내야 해? 그러다 둘 다 죽어.”

    녀석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움직임이 느렸다. 녀석을 죽이려면 지금이었다. 오늘만큼은 이 지루한 싸움을 끝내고 녀석의 시체를 창밖으로 던져버리려 했건만. 우타의 근육이 움찔움찔 떨렸다.

    “죽으면 뭐, 어때?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거야.”

    “사는 게 중요한 거야. 멍청이.”

    실로 맥이 풀리는 소리였다. 우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나오면 이쪽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데. 우타는 녀석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제 자리에 누웠다. 바닥의 냉기가 얇은 옷을 타고 흘러들었다. 오늘도 망했네, 망했어. 녀석도 다시 자리에 눕는 소리가 들렸다.

    폐건물의 뚫린 천장을 통해 맑은 하늘이 보였다. 몇 개의 별빛이 흐리게 반짝이고 있었다. 우타는 별을 보는 대신 파괴된 천장의 단면을 보았다. 이건 저 녀석이랑 저번에 싸웠을 때 부순 거, 저건 처음에 싸웠을 때, 저쪽 구석에 있는 건 다른 녀석이랑.

    “요새는 별도 흐리네.”

    아무래도 녀석은 우타와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듯했다. 우타는 그마저도 조금, 짜증이 났지만 뭔가 한 소리를 하기엔 마땅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우타는 대답을 하는 대신에 녀석의 시선을 따라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텅 비어있었다.

    “이제 그만할까?”

    “?”

    “싸우는 거, 말이야. 별로 승부도 날 것 같지 않고.”

    “포기하는 쪽이 지는 쪽이야. 그러니까, 이긴 건 나.”

    “, 그건 좀 싫다.”

    녀석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싫다는 투였다. 그 목소리에 우타는 저도 모르게 하하, 하고 소리를 내서 웃었다. 어이가 없는 것이기도 했고, 그저 웃음이 나는 것이기도 했다. 녀석이 후우, 하고 숨을 길게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우타는 녀석을 따라 숨을 내쉬었다. 후우. 뭔가 가뿐해지는 느낌이었다.

    “, 이름이 뭐야.”

    “요모. 요모 렌지. 너는?”

    “그냥우타라고 불러.”

    “우타.”

    “. 렌지.”

    “, 되게 편하게 부른다?”

    “불만이면 또 덤벼 보시던지.”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일으켜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눈빛을 마주쳤다가 와, 하는 느낌으로 웃었다. 깨진 창문으로 냉기가 밀려들었지만 둘 다 그것에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우타는 자리를 옮겨 렌지의 옆에 앉았다. 나보다 좀 키가 큰가? 우타는 공연히 승부욕을 불태웠다. 어른이 되면 꼭 렌지보다 키도 덩치도 큰 사람으로 자라리라.

    두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었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물자마자 온 세상에 적막이 먼지처럼 가라앉았다. 우타는 그 적막을 견디기가 힘들어, 렌지에게 이런 저런 말을 건넸다. 주로 4구까진 어쩌다 흘러들어오게 되었냐는 질문이었고, 렌지는 담백하게 어쩌다가그냥과 같은 말을 이용해 대답했다.

    이 녀석이. 우타는 네 번째 어쩌다가를 들은 순간 살짝 몸에 열이 올랐다. 나를 놀리나? 하지만 그것을 말하고 있는 렌지의 표정은 진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거의 항상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이었지만, 지금의 진지함은 뭔가 달랐다.

    우타는 직감적으로 이 녀석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갈 곳도, 의지할 곳도 없는 녀석. 그걸 느낀 순간 우타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타는, 구울로 태어난 걸 후회하진 않아?”

    오랜 적막을 깬 것은 의외로 렌지 쪽이었다. 우타는 고개를 움직여 렌지를 바라보았다. 렌지에겐 건널 필요가 없는 강을 건넌 자 특유의 눈빛이 있었다. 건널 필요가 없는 강이지만, 구울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그 강을 건너곤 했다. 마치 그것이 구울의 운명이라는 듯이.

    “후회 안 해.”

    “……부럽다.”

    절절하게 전해져오는 렌지의 감정에, 우타는 뜨끔하는 느낌이었다.

    “우타. , 사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

    “인생을 헛살았구만.”

    “우타는 그 답을 알아?”

    우타는 렌지의 눈빛에 꿰뚫리는 것만 같았다. 우타가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살면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지. 신이 아닌 이상 그런 것을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구울의 길이란 인간의 그것보다 더욱 험악한 길이었다.

    우타는 렌지의 물음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렌지는, 멀뚱히 그런 우타를 바라보다가 웃어버릴 뿐이었다.

    “비슷하구나. 우리는.”

    우타의 심장에 깊숙이 박힌 한마디였다. 그 말 때문이었을까. 우타가 렌지에게 자신과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한 것은. 렌지는 의외의 말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타를 바라보았다. 그런 표정을 짓는 렌지는,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언제는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거라면서.”

    “…… 싫음 말고.”

    “싫다는 말 아니야.”

    “이게 사람 놀리고 있어.”

    우타는 다시 뒤로 누워버렸다. 우타, 너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렌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우타는 그 말에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믿는다니. 구울들끼리 가당치도 않는 말이었다. 이런 말을 해놓고 렌지는 뒤통수를 치고 4구의 구울을, 우타의 동료들을 전멸시켜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타도 렌지를 믿어볼 생각이었다. 비슷한 녀석끼리, 그런 것도 못하랴.

    “……. 나도 그, 이상한 안경을 써야하는 건 아니지?”

    “이상한 안경이라니패션을 모르는 구울이구만.”

    “그 안경 써야하면 나, 너랑 같이 안 있을래…….”

    “……그거, 진짜 이상해?”

    “.”

    렌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 좋아했던 건데……. 우타는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돌아가면 일단, 그 안경을 어떻게 처분하는 것부터 가장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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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우타요모 주시오.....자급자족......하고 있지만....

  사실 혈기 넘치는 10대의 우타요모 말투가 어떨지 잘 모르겠어서 쓰면서도 어라? 어라? 싶었네요... 최대한 지금과는 말투가 다르게, 그러면서도 치기 같은 것들이 느껴지도록 쓰고 싶었는데 영 안 된 것 같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ㅜㅜ 10대 우타요모 말투는 아무래도 좀 더 연습을 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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