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원 이메레스

 

 

"도망치게 한 이 상황이 나빠"

 

Y A G I

 

 

아키라가 의외의 인물을 만난 것은 잠이 오지 않아서 찾은 건물의 옥상이었다. 천장에 누워있던 히나미도 아키라를 만난 것이 꽤 의외였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 없이 두 사람만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키라는 아주 잠깐 멈칫하다 히나미의 옆에 누웠다. 히나미는 그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별이라도 보고 있었나?”

그러려고 나왔는데, 별이 없네요.”

그렇군.”

아키라는 히나미의 말을 듣고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심지어 달도 없는 어두운 하늘이 아키라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 대화를 끝으로 한동안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참의 정적 이후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의외로 아키라였다.

후에구치, 궁금한 게 있는데.”

, 말씀하세요.”

너희들은구울들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으니까요.”

예상외로 바로 나온 대답에 아키라는 고개를 돌려 히나미를 바라보았다. 아직은 앳된 기운이 있는 히나미의 얼굴은 사뭇 비장해 보였다. 아키라는 아주 인상적인 것이라도 본 듯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키라가 입을 연 것은 그녀가 다시 시선을 하늘로 돌렸을 때였다.

나는 도망치게 한 이 상황이 나쁜 거라고 생각해.”

이제는 히나미가 아키라를 바라보았다. 아키라는 히나미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

당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 이제는 같은 처지니까.”

그 말을 하고 아키라는 숨을 내뱉었다.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아니었다. 탓할 것이 있다면, 그녀의 말대로 이 상황밖에 없었다. 이런 몸이 되고 나서야 그런 것을 깨닫다니. 아키라는 자신의 아둔함에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러나 그녀는 동시에 그렇게 생각해 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키라는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는 것보다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훨씬 능한 사람이었다.

낙원은 만들어 가면 되는 거야. 그러기 위해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거잖아.”

그렇네요.”

히나미의 목소리는 조금 가벼워져 있었다. 아키라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구울의 기분이 나아진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니. 이전의 자신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이전의 자신은 이미 사라져버린 존재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아키라는 더는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히나미의 말에 집중했다.

우리들의 낙원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 말을 듣고 히나미가 무슨 말을 하려 하기 전에 아키라는 하지만, 하고 먼저 운을 떼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히나미는 다시 아키라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단정한 옆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뚜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세상일 거야.”

그렇겠죠.”

믿음을 가져. 너희들이 하는 건 옳은 일이다.”

너희가 아니라, 우리예요.”

히나미의 말에 아키라는 한숨을 쉬듯 웃었다.

그렇군. 우리, .”

아키라는 그 말을 음미하듯 말을 되뇌었다. 그러곤 그녀는 소리 없이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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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 이메레스

 

 

"힘들면 도망칠 수도 있어"

 

Y A G I

 

 

죽음 이후에도 그는 떠돌고 있었다. 아리마 키쇼는 어쩐지 낯선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리마는 그 낯섦을 생각했다. 아마 자신의 뒷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특히 자신의 젊은 시절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그런 낯섦을 느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리마는 조용히 푸른 머리의 소년을 따라갔다. 아리마의 기척을 느꼈음이 분명한데도 소년은 뒤돌아 아리마를 보지 않았다. 한동안 두 사람은 그저 같은 길을 걸었다. 아리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거리였다. 여태껏 자신이 구축했던 수많은 구울 중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거리였다.

그러니까 곧 이 거리에는 죽음의 색이 넘쳐흐를 것이라는 말이었다.

소년은 소년이 겪었던 수많은 죽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큰 무언가라도 된다는 것처럼. 아리마가 보기에 그는 죽음에 집착하고 있었다. 애증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가 인정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아리마가 그 무게를 모를 리는 없었다. 아리마는 그러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진 존재였다. 아리마는 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 죽은 뒤에도 이런 것을 보아야만 하는가. 아리마는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에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런 일을 꾸민다면 신이 아니라 악마겠지. 아리마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아리마는 이 상황을 끝내고 이제는 그만 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아리마, 하고 소년을, 자신을 불렀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황폐한 눈동자가 아리마를 향했다. 아리마는 저보다 한참 작은 소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소년은 아리마를 올려다보았다.

힘들면 쉬어도 괜찮아.”

힘들지 않아.”

힘들다는 거, 알고 있어.”

나도 겪은 일이니까. 아리마는 그 말은 삼켰다. 소년의 시선과 아리마의 시선이 맞닿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시선이었다. 그 다름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리마는 잘 알고 있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어.”

소년은 씹어내듯 말을 뱉었다. 낙원이라. 아리마는 쓰게 웃었다. 과거의 자신은 언젠가 낙원 따위를 믿은 적이 있었던가. 아리마는 숨을 내쉬었다. 그는 소년을 부드럽게 안았다.

힘들면 도망쳐도 괜찮아.”

어차피 우리 앞에 낙원 같은 건 없으니까. 아리마의 말에 소년은 눈물을 쏟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 이래야 아리마 키쇼지. 아리마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은 소년의 몸을 조금 더 꽉 껴안았다.

아리마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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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 이메레스

 

 

"도망치는 건 비겁한 짓이야"

 

Y A G I

 

 

토오루 씨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아우라의 말에 무츠키는 고개를 돌려 아우라를 바라보았다. 사이코와 우리에를 만나기 위해 간만에 샤토에 들른 참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잠시 외출 중이었다.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아우라였다. 무츠키는 소파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아우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뭐가?”

아우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무츠키는 눈을 깜빡였다. 아우라는 잠시 시간을 끌다가 바싹 마른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어떻게 그렇게앞만 보고 달려갈 수 있나요.”

아우라는 사사키를 사랑하는 무츠키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무츠키를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무츠키의 옆에 서서 그를 따르고 있지만 아우라는 사사키에 대한 증오를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그것은 비단 아우라 키요코의 복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본질적으로 타오르는 감정이 있었다. 아우라는 그것에 눈을 돌리려 애썼다. 자신이 품어서는 안 될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생각대로 될 리가 없었다. 아우라는 그걸 알면서도 그 감정을 무시하려 애써왔다.

무츠키는 그런 아우라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우라는 슬쩍 시선을 땅으로 돌렸다.

도망치는 건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해.”

자신을 말하는 것일까. 그 말에 아우라는 다시 무츠키를 바라보았다. 그때 아우라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무츠키의 얼굴이 아닌,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무츠키의 섬세한 손끝이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으니까.”

무츠키의 그 말은 더없이 감미로웠다. 나는 이런 걸 원하고 있었나. 아우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무츠키의 말대로, 확실히 도망치지 않아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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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내용 없음 주의  # 캐해석 흔들림 주의

 

 

Rude Love

 

Y A G I

 

 

 

쟈쿠라이는 진료실로 들어온 사람을 보고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라무다가 어색하게 문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라무다는 평소와는 다르게 쟈쿠라이의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바닥만 훑고 있었다.

아메무라 군. 여긴 어떤 일입니까.”

할배.”

라무다는 도통 테이블로 다가올 생각도 하지 않고 문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병원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쟈쿠라이가 몸을 일으켜 라무다의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쟈쿠라이는 그것이 쟈쿠라이 개인이 아닌 진구지 쟈쿠라이라는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무다는 쟈쿠라이를 의사로서 만나러 온 것이 아닌 듯했다. 쟈쿠라이는 갑작스레 제 허리를 껴안은 라무다를 내려다보았다. 라무다는 쟈쿠라이의 명치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쟈쿠라이는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쟈쿠라이는 조심스레 라무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할배한테는 말 안 할 건데.”

그렇습니까.”

쟈쿠라이의 목소리에는 별 무게감이 실려있지 않았다. 라무다는 쟈쿠라이가 이런 일을 많이 겪어본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라무다는 그게 어쩐지 싫었다. 지금 쟈쿠라이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쟈쿠라이에게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단 말인가. 라무다는 그 감정을 질투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진짜 안 물어봐?”

아메무라 군이 이야기하기 싫다 하지 않았나요.”

맞아.”

라무다의 말에 쟈쿠라이는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것도 일종의 여유인 것 같아서 라무다는 그 웃음이 어쩐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가 의사로서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그냥 이렇게만 있어 줘.”

그 말에 쟈쿠라이는 별다른 답 없이 라무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감각은 쟈쿠라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따로 관리를 하는걸까. 쟈쿠라이는 어쩐지 라무다의 샴푸 냄새가 제 코끝을 스치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마치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알 수 없는 정적을 깬 것은 라무다 쪽이었다.

할배, 이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특히 우리 애들한테는.”

알겠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쟈쿠라이는 라무다의 어깨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의사 쟈쿠라이가 아닌, 인간 쟈쿠라이로서의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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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해석 흔들림

 

 

수련睡蓮

 

Y A G I

 

 

 

돗포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쟈쿠라이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단지 그는 평소처럼 쟈쿠라이에게 상담할 것이 있었고, 그래서 그의 병원에 들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들은 소식은 웬일로 쟈쿠라이가 비번이라는 소식이었다. 돗포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내심 쟈쿠라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쟈쿠라이의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몇 번이나 그에게 전화를 걸었던가. 그러나 쟈쿠라이는 단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것은 돗포의 불안을 더욱 심화시켰다.

돗포가 욕조에 잠겨 있는 쟈쿠라이를 발견하게 된 경위는 그랬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쟈쿠라이는 잠겨 있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죽어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걸맞은 모습이었다.

선생님!”

쟈쿠라이의 모습을 본 직후 돗포는 자기도 모르게 양말을 신은 발로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욕실 바닥은 말라 있었다. 선생님은 도대체 얼마나 욕조 안에 오래 계셨던 걸까. 돗포가 손을 뻗어 쟈쿠라이를 일으키려 했을 때 쟈쿠라이는 눈을 떠 돗포를 바라보았다.

물속에 잠겨 있어도 그의 시선은 곧았다. 돗포는 그 시선에 쟈쿠라이에게 내밀던 손을 거두었다. 돗포와 눈이 마주친 쟈쿠라이가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에서 빠져나온 쟈쿠라이는 참았던 숨을 가만히 내쉬곤 젖은 손가락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리곤 그는 돗포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물기가 많은 정적이 가라앉았다.

돗포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쟈쿠라이를 바라보았다. 쟈쿠라이는 그런 돗포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연 것은 돗포였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죽으려는 줄 알았습니다.”

죽음이 궁금하기는 했지. 산 사람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아닌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뇨, 제가 무슨 권리로 이런 말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기어들어 가는 돗포의 목소리를 들으며 쟈쿠라이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손을 뻗어 돗포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욕조 속의 물이 찰방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돗포는 쟈쿠라이의 손길에 따라 제 왼쪽 뺨이 천천히 젖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돗포 군. 내게 죽음보다 더 흥미로운 걸 알려주겠나?”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고 차분했으나 돗포는 그의 눈동자에 스쳐 지나간 어떠한 빛을 발견했다. 그것은 광기와 비슷한 것이어서 돗포는 자신이 그것을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예를 들면 욕실 전등의 불빛이 이상한 각도로 그의 눈에 비쳤다거나 하는 식으로.

돗포는 그런 것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돗포 자신이 알고 있는 쟈쿠라이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색채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제 이야기를아니, 제 이야기 같은 건 재미없겠군요.”

돗포는 그의 눈빛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로 그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딱히 없었다. 흥미로운 것이란, 뭐지? 돗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적어도 돗포 자신은 그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였다. 돗포는 쟈쿠라이와 맞추던 눈빛을 바닥으로 돌렸다.

내겐 그렇게 말하는 돗포 군이 굉장히 흥미롭네.”

그러나 쟈쿠라이는 그런 돗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그를 잘 알아오던 사람만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약간 들떠 있었다. 쟈쿠라이는 물속에 잠겨 있었던 나머지 한쪽 손을 뻗어 부드럽게 돗포의 뺨을 붙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돗포의 첫 번째 입맞춤은 축축한 감각이었다.

내가 왜 돗포 군의 이야기를 재미없어 할 것 같은가? 거기서부터 말해보게.”

혀도 섞지 않은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그러나 돗포에게는 그것이 그 어느 입맞춤보다도 자극적이었다. 돗포는 젖은 쟈쿠라이에게서 물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에게서는 그 어떤 향기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 그를 덮고 있던,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향기마저 깨끗하게 사라져있었다.

돗포가 어쩔 줄 몰라 속눈썹만 깜빡이는 동안 가까이 다가왔던 쟈쿠라이의 얼굴이 다시 멀어졌다. 돗포는 손등으로 제 입술을 문질렀다. 약간의 물기가 어려있었다.

힘들면 방금은 어땠는지부터.”

잘 기억이 안 나요, 선생님.”

돗포의 말에 쟈쿠라이는 짧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럼 한 번 더 알려줘야겠지. 이번에는 꼭 말해주게. 굉장히 궁금해졌어.”

돗포는 쟈쿠라이의 입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쟈쿠라이의 아랫입술을 힘없이 깨물며 여전히 이 감각을 말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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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YAGI입니다! 이렇게 커미션으로 또 찾아뵙니다! 6월은 총 다섯 개의 슬롯을 준비했습니다.

  저의 글 커미션은 매달 열리며, 해당 달에 슬롯이 모두 찰 경우 추가적으로 커미션을 받지 않습니다. 슬롯은 해당 월의 일정과 컨디션에 따라서 조정됩니다. 다음 달 대기 슬롯은 없으나, 원하시는 경우 커미션이 다시 열렸을 때 DM으로 알려드립니다.

 

 

<6월 슬롯>

 

 ♥ ♥ ♥ ○ ○ 

 

 까만 하트는 작업 중 (또는 작업완료) 하얀 하트는 작업 대기를 의미합니다. 

 

<진행 과정>

 

 

  DM으로 신청>시놉시스>1차 컨펌>초고>2차 컨펌>탈고

  작업물은 이메일로 한컴/pdf 두 가지 형태로 보내드립니다. 모든 작업물은 제목과 처음 한 두 문단이 크롭되어 트위터에 #야기링_커미션 태그와 함께 업로드 됩니다. 작업물은 저의 아이디와 닉네임만 들어간다면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업로드하거나, 글의 문장을 일부 인용하여 캘리그라피 또는 헤더 및 인장으로 얼마든지 이용 가능합니다. (이용하실 때 저에게도 보여주시면 제가 기뻐합니다!) 다만 글을 회지로 묶으실 때는 반드시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왜냐면 저도 구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회지로 엮는 것까지 부탁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그것 역시 DM으로 문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견적을 보아 가급적 저렴한 가격에 회지 작업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문의하시면 회지 샘플을 사진으로 보내드립니다 (중철/떡제본 모두 가능합니다.)

 

  신청하실 때 원하시는 분량이 있으시다면 최대한 그에 맞춰 시놉시스를 작성합니다. 분량과 내용이 조절이 되지 않을 경우 커미션을 반려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놉시스 비용은 받지 않습니다. 신청을 하실 때 최대한 많은 자료를 주시면 시놉시스를 쓸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신청 취소는 시놉시스 과정에서만 가능하며, 그 이후 취소의 경우 저의 과실이 아닌 이상 일체 환불을 해드리지 않습니다.

 

  작업 과정은 분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틀~일주일 이상) 작업 일시는 입금 확인이 된 이후부터 체크됩니다. 말씀드린 일시를 넘길 경우 50% 환불을 해드리며, 원하실 경우 글은 파기합니다. (물론 결과물을 받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가격>

 

  전연령가 : 1,000자 당 4,000(15,000자가 넘어갈 경우 1,000자당 7,000)

  성인물 : 1,000자 당 최대 8,000(15,000자가 넘어갈 경우 1,000자당 10,000)

  성인물의 경우 표현의 수위에 따라서 6,000(15,000자가 넘어갈 경우 1,000자당 8,000)으로 가격이 하향될 수 있습니다. 현재 가격은 최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했을 경우를 가정했을 때의 가격입니다.

 

  모든 가격은 제가 글을 쓰는 시간과 최저 시급을 고려하여 책정되었으며, 성인물이 전연령가의 약 2배인 이유는 실제로 쓰는 시간이 약 2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15,000자가 넘어갈 경우 가격이 달라지는 것은, 그 정도 분량이면 그 이하 분량과 시놉시스를 짜는 과정과 저의 스트레스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단편 소설 하나 분량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며, 저는 단편을 쓸 때마다 항상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 경우 시놉시스와 초고 컨펌 횟수도 1회씩 늘어나게 됩니다.

 

  최소 분량은 2,000자입니다. 2,000자 미만인 글은 쓰지 못합니다. 최대 분량은 20,000자입니다. 개인 원고를 하며 커미션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긴 글은 쓰지 못합니다.

 

  분량을 초과했을 경우 추가 분량은 무료로 작업해드립니다. (저의 계산 미스이기 때문에) 분량이 부족할 경우에는 부족한 분량을 계산하여 환불해드립니다. 다만 부족한 분량이 100자 미만일 경우에는 환불을 해드리지 않습니다. 100자 더 채워달라고 요구하시면 어떻게든 채워서 드립니다만, 가급적이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때 붙는 문장들은 군더더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도리어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샘플>

 

아래 캡처를 제외한 샘플이 궁금하시다면 본 티스토리의 다른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글을 봐주십시오. 글의 분위기는 밝은 것보다는 다소 건조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장르/불가능한 장르>

 

  글 커미션이기 때문에 제가 원작을 알아야 쓸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는 제가 원작을 아는 경우이며, 모든 것은 정발본 기준입니다. 해당 목록에 없는 작품일 경우 개인적으로 문의를 주시길 바랍니다. (애니메이션)/(만화)의 경우 괄호 안에 있는 내용만 보았다는 뜻입니다.

  모든 장르 드림 가능합니다! 커플링 성향(HL/BL/GL )은 가리지 않습니다.

 

가능한 장르

 

1(자캐) / 도쿄구울 (본진) / 고스트 헌트 (애니메이션) / 학교 생활! / 모브 사이코 100 / BBC 셜록 / 신체 찾기 / 아인 / 보석의 나라 (애니메이션) / 에반게리온 (애니메이션) / 디 그레이맨 (만화) / 릭 앤 모티 (넷플릭스) / 루시퍼 (드라마/넷플릭스) / 이런 영웅은 싫어 / 소울이터 (애니메이션) / 문호 스트레이 독스 (애니메이션) / 하이큐 (애니메이션) / 카케구루이(애니메이션) / 히프노시스 마이크

 

불가능한 장르

 

원피스(길어서 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나루토 (취향이 아닙니다.) / 히로아카 (취향이 아닙니다.) / 코난 (길어서 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은혼 (길어서 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진격의 거인 (취향이 아닙니다.) / 오소마츠상 (취향이 아닙니다.) /  앙스타 (저의 통장을 보호하고 싶습니다.) / 데레스타 (앙스타와 같은 이유입니다.) / 가담항설 (보고 있습니다!) / 페이트 시리즈 (취향이 아닙니다.)

 

만약에 커미션으로 우타요모(도쿄구울)/후루우이(도쿄구울)/돗포쟈쿠(히프마이)/람다쟈쿠(히프마이)를 신청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일정 퍼센트로 할인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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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구울 전력 60분_ 섞여서 만들어진 것  # 약간의 섹스 암시가 있음

 

 

Jelly Lover

 

Y A G I

 

너를 사랑할지도 몰라.

우이 코오리의 입에서 단단히 정제되어 나온 말이었다. 우이는 그 말을 하고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후루타 니무라는 국장실에 앉아 그 반듯한 입술을 떠올리고 있었다. 달도 없는 밤이 도쿄의 거리에 내려앉아 있었다. 후루타는 거대한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퍽 나쁘지 않아 보였다. 후루타는 테이블 위의 젤리 봉지에 손을 넣었다. 그는 이번 젤리는 씹어 삼키는 대신 입속에서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인공적인 과일의 맛이 입안 여기저기에 달라붙었다. 아직 봉지 속에 젤리는 많이 남아있었지만 후루타는 유난히 그 젤리를 아꼈다.

그것은 우이 코오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랑한다도 아니고 사랑할지도 몰라라니. 후루타는 그 두 가지 말 사이의 깊은 간극을 느끼고 있었다. 참담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우이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우이는 여러 의미로 아름다운 존재였다. 후루타는 CCG에서 볼 수 있는 그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쉽게 부러지지 않을 것 같은 곧은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이 생각보다 쉽게 부러졌을 때는 어떤 쾌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후루타는 입술을 비틀어 소리 없이 웃었다. 그 쾌감이 후루타가 우이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그의 내면을 잔뜩 휘두르고 그를 내 아래에 두었을 때의 그 쾌감.

우이 코오리와 후루타 니무라는 결코 섞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든 섞이고 있었다. 주로 후루타가 우이의 빈틈을 벌리고 그 사이로 자신의 존재감을 끼워 넣는 방식이었다. 연기맛이 나는 몇 번의 입맞춤 이후에 두 사람은 자연스레 몸을 섞었다. 바로 이 국장실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후루타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독점욕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후루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흐트러진 우이의 표정. 후루타는 혀를 굴리며 그 뜨겁고 질척한 감각을 떠올렸다. 그런 관계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이는 국장실에서 일을 벌이는 걸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후루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런 우이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후루타는 우이가 사랑 같은 걸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그가 사랑이란 걸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 그래서 사랑할지도 모른다고 했던 걸까.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관계가 생각보다 그에겐 복잡한 것이었을까.

후루타는 입안에서 아주 천천히 마모되고 있던 젤리를 씹어 반으로 갈랐다. 처음에는 형태를 유지하려던 젤리가 후루타의 입에서 형태를 잃고 사라져갔다. 젤리의 단맛은 금방 그의 혀를 그 맛으로 마비시켰다.

섞일 수 없는 것이 섞이면 과연 무엇이 나올까.

재미있겠네요.”

후루타는 입안을 가득 채운 진득한 단맛을 핥으며 휴대전화를 손에 들었다. 우이의 번호는 진작 즐겨찾기로 설정되어 있었다. 후루타는 그 번호를 눌렀다. 신호 대기음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여보세요, 하고 말하는 우이의 목소리는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우이 씨. 그때의 답을 해드리려고 하는데, 만날 수 있을까요?”

후루타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바로 하려던 말을 뱉었다. 그러며 후루타는 다시 젤리 봉지에 손을 넣어 젤리 하나를 꺼냈다. 달이 없어도 도쿄의 밤은 밝았다. 후루타는 그 희미한 불빛에 젤리를 비춰보았다. 아무리 어두워도 어딘가 몸을 맡길 곳은 있었다.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많았다. 어중간한 사랑이 존재할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 사망 소재 있음  # 과거 날조 있음  # 진단 메이커

 

 

여름밤

 

Y A G I

 

 

 

1

 

돗포 군.

지금의 돗포 군은 무얼 하고 있나요. 저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삶을 보냈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아프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다시 건강해지곤 합니다. 병원의 일상이란 그런 것이죠. 돗포 군이 알다시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듯 오가는 이곳에 저는 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돗포 군을 만났죠. 저는 그것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요.

제게 있어서 돗포 군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돗포 군이 저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눈치챌 수 있었죠. 돗포 군은 생각한 것이 그대로 얼굴에 떠오르는 타입의 사람이었죠. 그건 알고 있었나요, 돗포 군? 돗포 군은 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그런 걸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돗포 군이 처음으로 제 관심을 끈 것은 바로 그런 것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어요. 처음에는. 지금은……. 돗포 군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이더군요. 저는 그런 돗포 군에게 어떠한 믿음 따위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돗포 군. 저는 이 편지를 쓰고 난 이후 바로 이것을 태워버릴 예정입니다.

 

 

2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그의 말에 나는 펜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밑은 역시 오늘도 어두웠다. 그의 등허리는 가볍게 굽어 있었다. 그것은 직장인의 어쩔 수 없는 숙명과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반은 습관적으로 그에게 고용량 비타민을 처방하며 말했다.

돗포 군. 어째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그냥요. 사람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는 보통 안 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 말은 삼켰다. 대신에 아예 펜을 놓고 깍지를 낀 손을 턱밑에 두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그는 어물쩍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거리에서도 그의 눈동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뻔히 보였다. 나는 그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내 쪽으로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이 다시 진료실 바닥을 헤맸다. 속이 저렇게 뻔히 들여다보이는데 일은 어떻게 하나.

돗포 군은 오래 살 겁니다.”

어떻게 그런 걸 아나요?”

그의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져 있었다. 동그랗게 뜬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그렇게 당황하더니, 지금은 그런 것보다 궁금증이 우선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여태까지의 진료 기록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의사의 직감이에요.”

내 말에 그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었다. 다 됐습니다. 내 말에 그는 평소처럼 고개를 꾸벅 숙이곤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다음 환자가 들어오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걸까.

 

 

3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어떠한 예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죠. 어쨌든 내게 남은 돗포 군의 마지막 말은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행복하셔야. 행복.

병원으로 실려 온 돗포 군의 모습을 보고 나는 수도 없이 그 말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사고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것이 돗포 군의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고인지 자실인지까지는 제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돗포 군이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철길에 갈려 엉망이 된 얼굴로 돗포 군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돗포 군의 미약한 숨이 끊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돗포 군의 마지막은 그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 그냥 고통 없이 죽여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 고통 없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의 목을 조르지도, 당신에게 금방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약물을 투여하지도 않았습니다.

 

 

4

 

그 뒤로 그는 종종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전에는 우리 둘 사이에서 그다지 오가지 않았던 주제였으나, 나는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입에서 죽음이 어쩌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게 퍽 흥미로워 가만히 두었다.

선생님은 제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환자가 있으면 저도 병원도 좋은 일 아닐까요.”

선생님은 다른 사람이 아픈 걸 좋아하시나요?”

농담이었습니다.”

제가제가 또 진지하게 생각했군요…….”

그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오늘도 그에게 비타민을 처방하며 말했다.

돗포 군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합니까?”

한다고는 못하겠네요.”

그 말을 하며 그는 조금은 낯설게 웃어 보였다. 마치 하면 안 될 말을 뱉어버린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약간의 곤란함이 섞인 웃음.

정상이네요.”

?”

다들 죽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하면서 살아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는 건, 선생님도 그러실 때가 있나요?”

글쎄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곤 생각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그런 것을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전혀 재미도, 흥미도 없는 일이었다. 대신에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과거의 기억 따위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 눈앞에 살아있는데, 내가 굳이 과거를 복기할 필요가 있을까.

선생님 부탁 하나만.”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끊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을 더듬기까지 하며 제가 한 말을 수습하려 했다.

아니, 아니, 그게……. 괜찮습니다. 별 것 아니라서요.”

별 것 아니면 더 들어주기 쉽지 않을까요. 말이나 한 번 해보세요, 돗포 군.”

, 저기.”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에어컨에서 찬 바람이 쏟아지듯 나오는 소리만이 우리 두 사람의 사이를 채웠다. 그는 가볍게 입술을 떨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름을.”

이름을?”

불러 주세요.”

돗포 군.”

이름을 불러달라니. 이름이야 항상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고, 그냥 이름만.”

돗포.”

, 쟈쿠라이 선생님.”

만족했습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웃었다. 아무리 봐도 그가 진짜로 원하던 것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지만. 그러나 진심으로 원하던 것은 아니었어도 그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언젠가 불시에 그의 이름을 불러보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5

 

저는 다만 당신의 귓가에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돗포, 돗포, 하고. 돗포 군은 그걸 다 듣고 있었나요.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돗포 군.

죽은 사람은 환생하기 전 딱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의 꿈에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윤회 같은 것을 쉽게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믿고 싶군요. 그 정도로 간절하게, 돗포 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돗포 군은 제 말을 예상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저는 돗포 군을 기다립니다. 돗포 군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돗포 군. 어서 저를 다시 찾아오세요. 그러면 제가 돗포 군이 아마도 원했을 이야기를 해주겠습니다. 돗포 군이 원했고,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편지로는 미처 담을 수 없는 말을 돗포 군을 마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하겠습니다. 돗포 군도 듣고 싶지 않나요. 제 입에서 나올 말을.

 

저기, 돗포 군. 돗포. 거기도 아직 여름인가요. 여기에 있는 내게는 끝나지 않을 여름이 남았습니다. 밤이 아주 긴 여름이 남았습니다.

 

 

--

 

이번에도 진단 메이커가 나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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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물  #펠라치오 주의

 

 

한낮의 여름

 

Y A G I

 

 

창밖의 소음이 교실로 날아 들어올 때마다 요모 렌지는 책상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운동장에서는 운동부가 한참 땀을 빼고 있었다. 매미가 요란하게 우는 여름이었다. 투명한 유리창을 통과한 햇볕이 요모의 손끝을 따갑게 비추고 있었다.

그 속에서 요모 렌지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달뜬 숨을 내뱉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평소와 다른 것이 있었다면 이제는 정말로 여름이다, 싶을 정도로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였다. 빈 교실에서 요모를 바라보던 우타의 눈빛이 전에 없이 뜨거웠던 것도 그 이유일지 몰랐다.

렌지는 덥지 않아?”

나는 별로.”

더워 보이는데.”

우타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이며 나긋하게 말했다. 에어컨도 켜져 있지 않던 빈 교실이라 확실히 후덥지근 하긴 했다. 우타는 눈을 깜빡여 희미한 열감을 털어냈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보며 손등으로 제 입술을 훔쳤다. 한차례 입을 맞춘 이후의 일이었다. 더워, 하고 말하는 우타에게 책상 위에 앉아있던 요모는 몸을 기울여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대었다.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셔츠 단추를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풀었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말리지 않았다. 다만 그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매만지던 손을 아래로 치우지 않을 뿐이었다. 요모의 하얀 교복 셔츠 아래로 희미하게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꽤 더웠던 것 같은데.”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어.”

요모의 말에 그의 가슴팍에 입을 맞추던 우타가 작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요모는 우타의 숨이 간지러웠지만 딱히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우타의 둥근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그러면 왜 가만히 있었어?”

네가 그러길 원하는 것 같았으니까.”

내가 원하면 다 해줄 거야?”

글쎄.”

그렇게 말하며 요모는 희미하게 웃었다. 우타는 요모와 눈을 마주치며 그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끝이 섬세하게 요모의 허리선을 훑었다. 우타는 숙이고 있던 몸을 일으켜 요모의 귓가에 호흡이 많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도 가만히 있어 줄 거지?”

우타.”

요모는 자신의 아래로 다가오는 우타의 손목을 붙잡았다. 우타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의 뒤쪽에서 여름의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우타는 요모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그림자 뒤의 요모의 표정은 평소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우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곤 요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타의 손은 요모의 바지 끝에 걸려 있었다.

, 그만했으면 좋겠어?”

그건 아니지만.”

그 대답에 우타는 머뭇거리지 않고 요모의 바지 버클을 풀어버렸다. 요모는 조용히 숨을 삼켰다. 교실에서 욕정을 해소한다는 것. 그것을 상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현실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다. 요모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찰나의 어둠 속에서 요모는 자신의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런 요모를 두고 우타는 태연하게 손바닥으로 요모의 페니스를 가볍게 힘을 주어 훑었다. 요모는 몸을 살짝 굽혔다. 요모의 시야 끝에 우타의 손이 자리하고 있었다. 요모는 이번엔 눈을 조금 더 오래 감았다가 떴다. 살과 살이 스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사실 요모에게는 그 소리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은 요모의 사정이었고, 우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이왕 시작한 거, 우타는 끝을 볼 생각이었다.

우타는 혀로 입술을 축였다. 발갛게 달아올라 단단하게 서 있는 요모의 페니스 끝에 우타는 축축하게 젖은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다른 살에 입을 맞추는 것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드는 건 그저 기분 탓일까. 우타는 공을 들여 요모의 것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혀로 그것을 훑어 내려갔다. 머리 위에서 요모가 낮은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우타의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버티고 있었다. 이러 것은 처음이니 금방 가버릴 줄 알았는데. 우타는 그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저 조금 의외네,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요모는 간간이 뜨거운 숨을 뱉으며 신음을 참고 있었다. 책상을 붙잡고 있는 요모의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요모는 내리깐 우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그의 얇은 눈꺼풀과 섬세한 속눈썹을 바라보았다.

요모는 그것만으로도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요모는 앓는 듯 신음을 흘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요모는 스러지듯 우타, 하고 말했다.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우타는 시선을 요모의 얼굴로 옮겼다. 요모는 우타의 깊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우타는 부드럽게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건 정말로, 견디기 힘들었다. 사실 여기서 더 참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요모는 사실 우타의 입안에 사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요모를 놓아줄 우타가 아닌 것을 요모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요모는 꾹꾹 신음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우타. , 이제.”

그러나 요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타는 으으응, 하고 비음이 살짝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감은 요모의 발끝에서부터 시작해 그의 온몸을 타고 흘렀다. 요모는 발끝에 힘을 꼭 주었다.

요모의 절정은 조용히 찾아왔다. 우타는 그것이 조금 불만이었다.

우타는 일부러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려 제 입안의 정액을 요모에게 보여주었다. 요모는 우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우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타는 그 저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에 개의치 않고 요모의 정액을 삼켰다. 미끈하고 비렸지만 아주 나쁜 느낌은 또 아니었다. 우타는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감각이라고 생각하며, 제 머리를 쓰다듬는 요모를 올려다보았다.

나머지도 교실에서 할 거야?”

요모의 목소리는 살짝 잠겨 있었다. 우타는 소리없이 웃으며 답했다.

끝까지 가고 싶은가 봐?”

요모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돌렸다. 우타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렌지는 장소 바꾸면 좋겠어?”

요모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턱을 부드럽게 붙잡곤 자신을 마주 보도록 했다. 우타의 입술 끝에는 엷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근데, 집에 갈 때까지 참을 수 있겠어?”

아니.”

요모의 말끝에는 긴 입맞춤이 이어졌다. 여름의 온도를 그대로 본뜬 키스였다. 우타는 그것을 가감 없이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혀가 얽히는 것처럼 두 사람의 몸도 얽혔고, 그것은 두 입술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적극적이네, .”

우타는 그렇게 말하며 제 이마를 요모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두 사람은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여름 햇볕은 여전히 닿으면 살이 아플 만큼 따가웠다.

 

 

 

 

여름의 햇살

 

Y A G I

 For. 시온 님

 

 

키리시마 토우카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에어컨을 켰다. 어느덧 여름이 가까워져 있었다. 토우카는 에어컨 리모컨을 손에서 놓고 테이블을 닦았다. ‘그 녀석이 온다고 하면 괜히 마음이 미묘해졌다. 신경 쓰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고 하면 좋을까. 차라리 자신이 왜 그를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지 모른다면 차라리 나을 텐데.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서 기분이 더욱 묘했다.

토우카는 천천히 커피를 내렸다. 뜨거운 물과 원두가 만나며 커피 특유의 향기가 온 카페에 퍼졌다. 차라리 연락을 하지 않고 불쑥 찾아오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는데. 토우카는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그쪽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생각했다. 평소처럼 불쑥 찾아오면, 기다리지도 않고 얼마나 좋아.

토우카는 그런 생각을 했다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화들짝 놀라며 원두에 물을 붓던 것을 멈추었다. 내가 왜 그 녀석을 기다리고 있지? 토우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기다린 적 없는데. 토우카는 그러면서도 들어오는 손님에게 평소보다 오래 시선을 두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녀석은 어째서 언제쯤 온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을까. 토우카는 어쩌면 시온이 자신을 기다리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녀석 생각대로 움직여 줄 내가 아니지. 토우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하필이면 오늘따라 더 자주 열리는 것 같은 문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녀의 몸이 그녀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은 또 아니었다. 토우카는 무심결에 또다시 열리는 문을 흘긋 바라보았다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시온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시온은 토우카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나 기다렸어?”

아니거든.”

토우카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며 답했다. 도저히 시온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토우카는 그가 자신의 달아오른 얼굴을 눈치챌까 봐 걱정이었다. 토우카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온은 바 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토우카를 바라보았다. 어쩜 저 눈빛은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을까. 토우카는 시야 끝에 걸려 있는 시온을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기다린 것 같은데.”

됐고. 주문이나 해.”

네에, . 그러면 맨날 마시던 거로 부탁할게.”

시온의 대답에 토우카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몸을 돌렸다. 여름의 햇살 같은 그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항상 토우카의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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