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 돌발본

 

 

붓다의 생일을 축하하여 직장 동료들과 절에 갔더니 주지 스님은 구울에 죽은줄 알았던 직장 동료는 부활?!

 

Y A G I

 

 

우리는 지금부터 절에 간다.”

말을 꺼낸 것은 와슈 마츠리였다. 그는 평소처럼 손가락 끝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아리마 키쇼와 스즈야 쥬조는 멀뚱히 그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갑자기 절에 간다는 것도, 하필이면 그 구성원이 이 멤버인 것도 의문이었다.

특이한 조합이네요-.”

제비뽑기다.”

언제부터 CCG에서 일을 그렇게 했나요.”

불만 있나?”

아뇨, 불만이라기보다는-.”

그냥 해본 소리인지, 쥬조는 금방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하늘 멀리 두었다. 마츠리는 깊은숨을 내쉬고는 제 옆의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아리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꾹 다물고 서 있었다.

그럼 이만 출발하지.”

네에, 네에.”

쥬조는 말꼬리를 늘이면서도 먼저 발을 옮겼다. 생각해보면 쥬조는 절 같은 곳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한 일인가. 쥬조는 속으로 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당연하게도 잘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저 석탑 몇 개가 흐릿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석가탄신일에 절에 간다. 그런 단순한 사고의 과정도 쥬조의 머릿속에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어떤 감상적인 감각을 느낄 쥬조는 아니었다. 쥬조는 그저 옛날 생각을 아주 조금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절에 가는 건 간만이군.”

계속 일 때문에 바빴으니까.”

어쩌면 쉬고 오라는 말일지도 몰라요-.”

그럼 휴가를 주면 될 텐데 왜 굳이 절에. 아리마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괜히 분위기를 깨트리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말을 보태 이어지는 이 침묵을 깨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리마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버스는 점점 더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쥬조가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츠리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도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절에 가까워질수록 버스는 비어갔다. 결국에 남은 것은 그 셋뿐이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절의 계단을 올랐다. 그새 봄이 지나가려는지 녹음이 온 천지에 짙게 깔려있었다.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던 쥬조가 산뜻한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공기는 좋네요.”

뭔가 평화로운 느낌이 들어.”

절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법이지.”

그러나 절의 입구를 넘어서자마자 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는 평화와는 꽤 거리가 있었다.

아리마키쇼!”

세 사람의 앞에 선 키가 큰 회색 머리의 남자는 빗자루를 들고 굳은 듯이 서 있었다. 아리마와 남자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구울이다. 아리마의 말에 쥬조는 쿠인케를 들고 발을 한 발 앞으로 내세웠다.

그때 또 다른 남자가 태연한 발걸음으로 그들 사이를 막아섰다.

, 렌지. 절까지 와서 서로 싸우지 말자구. 그쪽의 수사관들도 마찬가지예요.”

그 말을 하며 남자는 빙긋 웃어 보였지만, 그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절대 싸움을 말리는 사람의 눈빛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여차하면 이 자리의 모두를 제힘으로 눌러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런 눈빛에 기가 눌릴 마츠리는 아니었다. 마츠리는 일부러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구울은 박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은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라고 했어. 적어도 석가탄신일인 오늘 하루만큼은 서로 싸우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다소 톤이 높은 목소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리마는 잠시 쥬조와 시선을 맞춘 후 쿠인케를 집어 드는 대신 입술을 열었다.

너는 누구지?”

마스크 가게의 우타입니다아.”

그런데 왜 여기에 있나?”

일일 아르바이트야. , 손님들은 안쪽으로.”

싹싹하게 수사관 일행을 다루는 우타와는 달리 요모는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과 그다지 엮이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고, 우타 역시 억지로 그런 요모를 잡아끌지는 않았다.

수사관 일행은 약간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우타의 뒤를 따랐다. 쿠인케를 쥔 손에 아주 약간의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우타는 그들을 절의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한쪽 자리 문이 달린, 나무로 지어진 자그마한 건물이 한 채 있었다. 우타는 그 문 앞에 섰다. 마치 이곳이 도착점이라는 듯이.

아리마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우타를 바라보았지만 우타의 표정은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들어가 계세요. 우타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잠시간의 차가운 정적이 세 사람을 감쌌다. 그 문을 연 것은 쥬조였다. 혹시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작전을 세우고 문을 열어봐야 한다는 마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람을 만났다.

마도……!”

그들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얼굴을 보고 놀란 듯 굳었다. 마도 쿠레오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침착하게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는 조금 썼다.

여기는 어떻게…….”

석가탄신일이지 않은가. 가끔은 이런 일도 일어나 줘야 하는 법이지.”

그 말을 하며 그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웃음이었다. 아리마는 그가 죽고 난 이후에도 제법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상태를 살고 있다라고 표현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 사람은 마도의 곁에 앉았다. 네 사람이 앉기에는 테이블이 커서 그들은 사소한 어색함을 느꼈다. 뭘 하고 계셨나요? 쥬조의 물음에 마도는 음, 하고 짧은소리를 뱉고는 입을 열었다.

아까 여기 구울이 있었는데.”

무슨 구울이 있었나?”

래빗이었네.”

래빗. 그 이름을 말하는 마도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죽여버릴까 했는데 석가탄신일이라 그냥 쫓아만 내고 말았네.”

마도는 제법 상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턱을 괴고 멀리 창밖을 바라보던 쥬조가 불현듯 고개를 돌려 마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마도 씨는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도 쿠인케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사람이 죽으면 특별한 것 하나쯤은 저승에 가져갈 수도 있고 그런 거네.”

마도 씨의 특별한 것은 역시 쿠인케였군요.”

그것 말고도 사실 챙겨간 특별한것은 많았지만.”

그 말을 하는 마도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그때 우타가 문을 열고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그의 시선이 방을 한 번 슥 훑고 지나갔다.

아야토 군은 어디 갔어?”

아야토?”

래빗 말이야.”

마도가 쫓아냈다는군.”

아리마의 말에 우타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이 그렇게 탓하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따지자면 그럴 줄 알았다에 가까웠다.

내가 참, 잘 지내라고 말했는데.”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름 애쓴 거야.”

아야토 데리고 올 테니까 렌지는 손님 대접 좀 부탁해.”

바람처럼 지나간 우타의 뒤에는 요모 렌지가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아직도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아리마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오늘은 그 얘기는 하지 말지. 우타의 말대로, 석가탄신일이니까.”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아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를,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아리마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단 하루만이라면,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아야토.”

그때 우타는 아야토를 찾아 절을 헤매고 있었다. 아예 가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야토는 예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야토는 절 구석의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녹색의 연못 위에는 연꽃 몇 송이가 섬세하게 꽃잎을 벌리고 있었다.

쫓겨났다며.”

, 나도 수사관이랑 같이 있고 싶지는 않았어.”

이제 돌아가자.”

우타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아야토는 우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호수로 고개를 돌렸다.

피에로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꾸미는 거지?”

피에로의 일이 아니야. 내 일이야.”

아야토는 그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우타가 그렇다니까 그렇구나, 하는 정도였다. 사실 아야토에겐 이 일을 꾸민 것이 피에로든 우타든 큰 상관은 없었다.

아야토는 연꽃을 보며 적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로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우타는 아야토의 머리를 꾹 누르듯 쓰다듬었다. 아야토가 불만 어린 소리를 내었지만 우타는 그저 돌아가자, 하고 말할 뿐이었다.

아야토는 그 말에 순순히 따랐다. 돌아가자. 어쩐지 그 말이 아야토의 속에 박혔다.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직은 그가 돌아가야 할 곳 정도는 남아 있었다.

 

, 뭐야 이 싸한 분위기. 렌지. 또 이상한 말 했지?”

아무 말도 안 했어.”

손님 대접인데 아무 말도 안 하면 어떻게 해. 차도 안 내놓고.”

우타가 반쯤은 농을 치듯이, 반쯤은 핀잔을 주듯이 요모에게 말을 건넸다. 요모는 가볍게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그 말을 내쳤다. 아무튼, 고집은 세다니까. 우타는 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군.”

차를 준비하려는 우타의 뒤에 마츠리의 목소리가 꽂혔다. 우타는 웃는 낯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떠한 섬뜩함 따위도 섞이지 않은, 그런 미소였다. 그렇다고 부처의 미소다 뭐다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랬지만.

석가탄신일이잖아. 오늘은 좀 쉬어. 죽었던 동료도 돌아왔는데.”

우타의 말에 마츠리는 흥, 소리만 낼뿐 대화를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 조용하고 조금은 평화로운 분위기가 흘러갔다.

누군가는 우타가 내온 차를 홀짝였고 누군가는 창밖의 녹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사관과 구울의 만남이라니. 익숙하기도 하면서 낯선 감각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군.”

아리마는 자신의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껏 남의 생명을 빼앗아오기만 했다. 그러니 이렇게 아무 생명도 빼앗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이런 날. 소중하다면 소중한 날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자리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중한 날. 그런 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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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 전력 60분_ 경계선

 

 

심연

 

 

Y A G I

 

 

 

내가 보기에 와슈 키치무라, 그러니까 후루타 니무라라는 남자는 자신이 그려둔 경계선을 절대 넘지 않는 남자였다. 문제는 그 경계선이었다. 보통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곳에 그는 경계를 긋고 있었다.

지금 나는, 그 경계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무슨 볼일 있나요?”

후루타 니무라는 태연하게 국장실 의자를 빙글 돌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능글능글한 미소를 피하지 않았다. 내가 국장실을 찾은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그에게 얼굴을 한 번 더 익히고자 할 따름이었다. 나는 제법 공들여 세공한 이유를 늘어놓았다. 후루타 니무라는 턱을 괸 채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를 전부 듣기만 했다.

벌써 이런 만남만 삼 일째였다. 그것은 성과가 없는 일을 이틀이나 했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정도로 물러날 사람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후루타 니무라를 구워삶아서 내 편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모두를 위해서라면 내가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모두를 위해서라면. 공적 따위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라면. 나는 사사키 하이세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과연 이런 일을 했을까? 의문이었다. 그는 생각보다 요령이 없는 사람이라서, 이런 일엔 맞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결국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개가 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뭐가 어렵겠는가.

그때 의자가 덜컹, 하고 뒤로 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래로 향하고 있던 시선을 들어 다시 후루타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그의 웃음이란 참 묘했다. 후루타는 테이블을 짚고 몸을 내 쪽으로 기울였다. 나는 그의 접근을 딱히 막지는 않았다.

제가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나요?”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저를 흔들어서 어쩔 셈이죠? 저를 흔들어 봤자 나올 것은 딱히 없습니다만.”

역시 내가 사적으로 접근할 생각이란 걸 알고 있었나. 하지만 그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었다.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일등 수사관 시절 초연한 모습을 보이며 모두를 속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국장이 되고 난 이후의 구울 대처 방식을 보면 그가 이런 얄팍한 수 정도는 금방 파악할 것이란 건 뻔했다.

그러니까 이건 아예 패를 보여주고 치는 포커였다. 내 패의 끝의 끝까지 보여주어 상대를 안심하게 하는 포커.

제가 선을 넘으면, 위험한 건 당신이에요. 그건 아시나요?”

이 불리한 포커의 승률은 얼마나 높을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후루타를 상대로서 내 앞에 앉히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일단은 그러면 된 것이다. 일단은.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미 위험한 일은 숱하게 겪었습니다.”

이런 류의 경험은 한 번도 없었을 것 같은데.”

후루타는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가 손을 뻗어 내 턱을 가볍게 붙잡았다. 그가 무슨 행동을 할지 뻔히 보였다. 어째서 이런 도발을 하는지도. 아마도 내가 이런 행동을 싫어하리라고 생각하겠지. 후루타는 내 쪽으로 몸을 더 기울였다. 그와 나의 숨이 아주 좁은 틈 사이에서 섞였다.

불쾌하나요?”

내 뺨에 입을 맞추고 멀어지던 그가 속삭인 말이었다. 나는 그때, ‘걸려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후루타는 나를 완전히 얕보고 있었다. 아마도 패를 빤히 보여준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 터였다.

이런 것으로 불쾌감을 느끼고 일을 끝낼 것이었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

저를 흔들려면 이 정도 각오는 하고 오셨어야지.”

나는 웃음을 흘리며 멀어지는 그의 뺨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한발 앞으로 나섰다. 발끝이 국장실 테이블에 닿았다. 그의 입술은 생각보다 훨씬 더 부드러웠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는 게 정석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후루타는 별 저항 없이 내 입술을 받아들였다. 그다지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맞대고 있었다. 아까보다 아주 조금 더 흐트러진 숨이 서로의 뺨을 스쳤다. 나는 몸을 뒤로 물려 입술을 떼어내었다. , 하고 물기가 있는 것들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한 국장실을 울렸다.

각오는, 이 정도입니다.”

박력 넘치네.”

나쁘지 않아요, 하고 그의 작은 목소리가 내게 닿았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좋아요. 어울려 주죠. 아무리 그래도 우리에 군이 원하는 건 주지 못하겠지만요.”

원하는 건 딱히 없습니다.”

어라, 그러면 원하는 건 저 자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라지. 나는 딱히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그도 그 사실에 별로 개의치 않는지 제법 산뜻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는 그 미소를 바라보았다. 억지로 그를 따라 웃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러줘요.”

위험을 두려워하고 뛰어드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일 뿐이었다. 이왕 뛰어들 거라면 위험 따위를 겁내지 않고 끝까지 가버리는 게 나았다. 다만 내가 인지하지 못한 것은, 후루타 니무라라는 남자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어두운 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안에서 질식해 버릴지도 몰랐다.

죽어도 좋은 심연이란 있는가. 죽을 줄 알면서 빠져드는 심연이란 있는가.

과연 후루타 니무라는 나를 얼마나 잡아먹을 수 있을까.

…….

하지만 결국 먹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일 것이다. 나는 후루타 니무라라는 이 남자를 잡아 먹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러고 나면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다.

 

 

 

 

 

  안녕하세요, YAGI입니다! 이렇게 커미션으로 또 찾아뵙니다! 이번 5월은 총 3개의 슬롯을 준비했습니다. 또한 이번부터 커미션의 가격이 조금씩 올랐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저의 글 커미션은 매달 열리며, 해당 달에 슬롯이 모두 찰 경우 추가적으로 커미션을 받지 않습니다. 슬롯은 해당 월의 일정과 컨디션에 따라서 조정됩니다. 다음 달 대기 슬롯은 없으나, 원하시는 경우 커미션이 다시 열렸을 때 DM으로 알려드립니다.

 

 

<5월 슬롯>

 

 ○ ○ ○

 

 까만 하트는 작업 중 (또는 작업완료) 하얀 하트는 작업 대기를 의미합니다. 

 

<진행 과정>

 

 

  DM으로 신청>시놉시스>1차 컨펌>초고>2차 컨펌>탈고

  작업물은 이메일로 한컴/pdf 두 가지 형태로 보내드립니다. 모든 작업물은 제목과 처음 한 두 문단이 크롭되어 트위터에 #야기링_커미션 태그와 함께 업로드 됩니다. 작업물은 저의 아이디와 닉네임만 들어간다면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업로드하거나, 글의 문장을 일부 인용하여 캘리그라피 또는 헤더 및 인장으로 얼마든지 이용 가능합니다. (이용하실 때 저에게도 보여주시면 제가 기뻐합니다!) 다만 글을 회지로 묶으실 때는 반드시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왜냐면 저도 구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회지로 엮는 것까지 부탁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그것 역시 DM으로 문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견적을 보아 가급적 저렴한 가격에 회지 작업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문의하시면 회지 샘플을 사진으로 보내드립니다 (중철/떡제본 모두 가능합니다.)

 

  신청하실 때 원하시는 분량이 있으시다면 최대한 그에 맞춰 시놉시스를 작성합니다. 분량과 내용이 조절이 되지 않을 경우 커미션을 반려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놉시스 비용은 받지 않습니다. 신청을 하실 때 최대한 많은 자료를 주시면 시놉시스를 쓸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신청 취소는 시놉시스 과정에서만 가능하며, 그 이후 취소의 경우 저의 과실이 아닌 이상 일체 환불을 해드리지 않습니다.

 

  작업 과정은 분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틀~일주일 이상) 작업 일시는 입금 확인이 된 이후부터 체크됩니다. 말씀드린 일시를 넘길 경우 50% 환불을 해드리며, 원하실 경우 글은 파기합니다. (물론 결과물을 받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가격>

 

  전연령가 : 1,000자 당 4,000(15,000자가 넘어갈 경우 1,000자당 7,000)

  성인물 : 1,000자 당 최대 8,000(15,000자가 넘어갈 경우 1,000자당 10,000)

  성인물의 경우 표현의 수위에 따라서 6,000(15,000자가 넘어갈 경우 1,000자당 8,000)으로 가격이 하향될 수 있습니다. 현재 가격은 최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했을 경우를 가정했을 때의 가격입니다.

 

  모든 가격은 제가 글을 쓰는 시간과 최저 시급을 고려하여 책정되었으며, 성인물이 전연령가의 약 2배인 이유는 실제로 쓰는 시간이 약 2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15,000자가 넘어갈 경우 가격이 달라지는 것은, 그 정도 분량이면 그 이하 분량과 시놉시스를 짜는 과정과 저의 스트레스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단편 소설 하나 분량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며, 저는 단편을 쓸 때마다 항상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 경우 시놉시스와 초고 컨펌 횟수도 1회씩 늘어나게 됩니다.

 

  최소 분량은 2,000자입니다. 2,000자 미만인 글은 쓰지 못합니다. 최대 분량은 20,000자입니다. 개인 원고를 하며 커미션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긴 글은 쓰지 못합니다.

 

  분량을 초과했을 경우 추가 분량은 무료로 작업해드립니다. (저의 계산 미스이기 때문에) 분량이 부족할 경우에는 부족한 분량을 계산하여 환불해드립니다. 다만 부족한 분량이 100자 미만일 경우에는 환불을 해드리지 않습니다. 100자 더 채워달라고 요구하시면 어떻게든 채워서 드립니다만, 가급적이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때 붙는 문장들은 군더더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도리어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샘플>

 

아래 캡처를 제외한 샘플이 궁금하시다면 본 티스토리의 다른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글을 봐주십시오. 글의 분위기는 밝은 것보다는 다소 건조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장르/불가능한 장르>

 

  글 커미션이기 때문에 제가 원작을 알아야 쓸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는 제가 원작을 아는 경우이며, 모든 것은 정발본 기준입니다. 해당 목록에 없는 작품일 경우 개인적으로 문의를 주시길 바랍니다. (애니메이션)/(만화)의 경우 괄호 안에 있는 내용만 보았다는 뜻입니다.

  모든 장르 드림 가능합니다! 커플링 성향(HL/BL/GL )은 가리지 않습니다.

 

가능한 장르

 

1(자캐) / 도쿄구울 (본진) / 고스트 헌트 (애니메이션) / 학교 생활! / 모브 사이코 100 / BBC 셜록 / 신체 찾기 / 아인 / 보석의 나라 (애니메이션) / 에반게리온 (애니메이션) / 디 그레이맨 (만화) / 릭 앤 모티 (넷플릭스) / 루시퍼 (드라마/넷플릭스) / 이런 영웅은 싫어 / 소울이터 (애니메이션) / 문호 스트레이 독스 (애니메이션) / 하이큐 (애니메이션) / 카케구루이(애니메이션)

 

불가능한 장르

 

원피스(길어서 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나루토 (취향이 아닙니다.) / 히로아카 (취향이 아닙니다.) / 코난 (길어서 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은혼 (길어서 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진격의 거인 (취향이 아닙니다.) / 오소마츠상 (취향이 아닙니다.) /  앙스타 (저의 통장을 보호하고 싶습니다.) / 데레스타 (앙스타와 같은 이유입니다.) / 가담항설 (보고 있습니다!) / 페이트 시리즈 (취향이 아닙니다.)

 

만약에 커미션으로 우타요모/후루우이를 신청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일정 퍼센트로 할인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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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이스트 우타 X 인어 10대 요모

 

 

좁은 욕조의 안에서

 

Y A G I

 

 

식용 목적으로 인어를 포획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수의 인어들이 포획되고 버려지고 있다.

인어는 어릴수록 맛과 효능이 좋다는 말에,

포획되는 인어의 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

 

 

요모 렌지는 좁은 욕조 안에서 눈을 떴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얀 타일로 덮인 욕실에 수술 도구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몸을 씻기 위한 물건들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을 뿐이었다.

요모는 욕조의 가장자리를 짚었다. 자신이 왜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요모는 손을 뻗어 제 허리를 더듬어 보았다. 아직은 어설프게 상처가 아물어 있었고 당연하게도 그곳에 지느러미는 더 이상 없었다.

요모는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의 상처들을 바라보았다. 복잡한 심경이었다. 기억의 일부가 잘린 것도 그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인간에게 포획당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은 누군가 가위로 엉망으로 잘라놓은 듯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다. 지금 요모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자신의 지느러미가 아마 식용으로 팔리기 위해 잘렸고, 그리고 버려졌고, 누군가에게 주워져 이 욕조에 들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요모는 욕조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분했다.

일어났어?”

욕실의 문이 열리고 낯선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요모는 처음 그 남자를 본 순간, 잘못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의 양팔을, 그리고 아마도 상체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을 문신 때문이었다. 요모는 잔뜩 긴장한 채 욕조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는데 욕조의 물은 그러기엔 너무 얕았다. 남자는 욕조 앞에 쭈그려 앉은 채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

요모는 답하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요모 역시 수상한 남자에게 제 이름을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우타야.”

우타라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요모의 젖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모는 몸을 가볍게 떨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

머리 만지지 마.”

, 싫어?”

.”

그럼 안 할게.”

요모는 우타를 어떻게 파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요모가 여태껏 만나보지 못한 유형의 인간이었다. 요모가 만난 인간이라 봤자 그를 포획하려는 인간들이 대부분이어서 그의 경험으로 인간을 분류한다는 게 별 의미 없긴 했지만.

이름은 말해주라.”

왜 나를 구해준 거야?”

요모는 이름을 말하는 대신 날이 선 목소리로 우타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타는 별일도 아니라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불쌍하잖아. 하수구에서 죽어가고 있었는데.”

동정 같은 건 필요 없었는데.”

하지만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르는걸.”

어차피 나는 죽은 거나 다름없어.”

바다로 가고 싶어?”

우타의 말에 요모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러지도 못해.”

지느러미가 없으니, 제대로 헤엄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쩐지 상처가 욱신거리며 쑤셔오는 느낌이 들었다. 요모는 애써 그 아픔을 무시하고 말을 보탰다.

그리고 나는 민물 인어야.”

.”

바다 인어였으면 이미 죽었겠지. 이거, 민물이잖아.”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다행이네.”

우타가 소리 없이 웃었다. 요모는 그의 미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타는 요모의 머리를 만지는 대신 요모가 짚고 있는 욕조의 가장자리에 손을 얹었다. 우타의 손과 요모의 손은 서로 닿을 듯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래서, 이름은?”

엄청 집요하네.”

궁금하잖아.”

요모는 가만히 우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붉은 눈동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요모는 한숨을 쉬듯 제 이름을 말했다. 요모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쉽게 포기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였다.

렌지. 요모 렌지.”

잘 부탁해, 렌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손을 내밀어 요모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요모는 그저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인간하고 잘 지내고 싶지 않았다. 요모에게 인간이란 언제나 공포와 분노의 대상이었다. 착한 사람이나 나쁜 사람으로 그들을 분류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요모에게, 인어에게 낯선 인간이란 모두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우타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선히 손을 거두곤 욕실을 떠났다. 요모는 다시 고개를 돌려 우타가 닫고 떠난 욕실 문을 바라보았다.

 

욕실의 작은 창문으로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요모는 그제야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멍하니 떨어지고 있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지옥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우타가 다시 욕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요모는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았다. 요모와 눈이 마주치자 우타가 빙긋 웃으며 말을 꺼냈다.

같이 씻자.”

?”

욕조는 네가 쓰고 있잖아.”

요모는 할 말이 없었다. 우타는 옷을 벗어 욕실 문밖에 두곤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요모는 제 꼬리가 우타의 몸에 닿지 않게 하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좁은 욕조 안에서 서로의 몸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모는 우타의 몸에 있는 수많은 문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문신이 어쩐지 제 몸의 흉터와 비교되는 것처럼 보여 요모는 몸을 움츠렸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비늘을 쓰다듬었다. 이번에 요모는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에 우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프지 않아?”

뭐가?”

문신.”

요모의 말에 우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우타는 오른손 손끝으로 제 왼쪽 팔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별로. , 렌지도 하고 싶어?”

아니.”

공짜로 해줄게. , 타투이스트거든.”

요모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가로젓지도 않았다. 그는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야?”

인어는 태어나서 처음 봤어.”

우타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요모는 눈을 깜빡여 우타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우타를,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특이하지만, 가장 위협적이지 않은 사람.

그리고 나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야.”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는다면 다소 위협적이게 들렸을 그 말이, 우타의 입에서 나오니 느낌이 달랐다. 어쩌면 요모가 우타에게 자신의 생명을 모두 맡기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우타의 말에 요모는 눈을 감았다. 요모는 여전히 우타의 가지런한 비늘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렌지를 애완동물로 삼을 생각은 아니야.”

알고 있어.”

알고 있어? 기특하네.”

우타가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요모는 몸을 틀어 우타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우타의 시선이 요모에게 닿았다. 요모는 우타의 손등에 새겨진 문신을 매만졌다.

진짜 안 아파?”

익숙해지면 견딜만해.”

, 아픈 건 익숙해.”

그러면 괜찮을 거야.”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해줄게. 욕실의 습기 때문인지 우타의 목소리가 조금 젖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아파?”

조금.”

참을 수 있겠어?”

이 정도는 괜찮아.”

더 한 아픔도 겪어봤으니까. 요모는 그 말은 삼켰다. 굳이 이 상황에 필요한 말 같지는 않았다.

흉터가 많네.”

우타는 지나가듯 말을 했다. 요모는 그에 답하지 않았다. 우타도 딱히 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닐 터였다.

다 예쁘게 만들어줄게, .”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이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타는 요모의 어깨에 찬찬히 무늬를 새겨넣고 있었다. 그 작업은 요모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끝났다. 요모는 고개를 돌려 제 어깨에 새겨진, 별자리를 본따서 그려진 검은 문신을 바라보았다. 우타는 그것이 자신의 별자리라고 말했다.

요모는 왜 제 별자리를 자신의 몸에 새기는가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것이 퍽 싫지는 않았다. 요모는 손끝으로 문신을 매만졌다. 흉터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것 같았다.

무슨 자리야?”

사수자리.”

사수면, 뭔갈 사냥하는 사람인 거야?”

그럼 셈이지.”

안 어울려, 하고 요모가 말했다. 그 말에 우타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요모는 너무 순진한 구석이 있어. 아직 어려서 그런가.”

나 말고 다른 인어를 잡아본 적 있어?”

아니.”

우타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요모가 무어라 더 말을 보태기 이전에 하지만, 하고 말을 꺼냈다. 요모는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요모를 잡았잖아.”

요모는 어쩐지 그 말이 그다지 싫지 않았다.

 

.”

이게 뭐야?”

그날도 우타는 요모와 함께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왔다. 우타는 요모의 손바닥에 얹힌 진주 몇 알을 잠시 바라봤다가 요모에게로 눈을 돌렸다.

선물. , 타투 해줬으니까.”

요모의 눈 밑이 발갛게 부어있었다. 우타는 직감적으로 그 진주알들이 요모가 자기 스스로를 아프게 해서 억지로 뽑아낸 눈물로 만든 진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타는 요모의 몸을 훑어보았다. 가지런하던 비늘 몇 개가 뒤로 꺾여있었다. 그의 몸에 난 것과는 달리 금방 나을 상처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타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필요 없어, 렌지. 난 렌지가 울지 않는 게 더 좋아.”

우타의 말에 요모는 눈을 깜빡여 우타를 올려다보았다. 우타는 요모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요모는 이제 우타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렌지가 다 자라면 꼭 렌지의 고향으로 데려다줄게.”

그럴 필요 없어. 이제 여기가 내 고향이야.”

그래?”

요모는 무언가 결심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타는 그런 요모의 표정이 퍽 귀여워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요모는 우타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 올려져 있었던 진주 알들이 욕실 바닥으로 떨어져 요란한 소리가 났다.

진주가 싫다면, 이런 건 어때?”

요모는 우타가 더 무어라 말하기 전에 그의 옷깃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욕조에 담긴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가 곧 잠잠해졌다. 대신 두 사람의 축축한 호흡이 섞이는 소리가 욕실에서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나도 알 건 다 아는 나이야.”

의외인걸, 렌지.”

우타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인어의 키스는 어땠어?”

짰어.”

, 민물 인어라니까.”

. 그랬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몸을 숙여 한 번 더 요모에게 입을 맞췄다. 민물 인어와의 키스는 의외로 비리지 않고 달콤한 맛이었다.

 

 

따뜻한 것

 

Y A G I

For.  유로 님

 

 

이것은 어쩌면 예정된 결말이었을지도 몰랐다. 이즈미는 숨을 내쉬었다. 힘든 일이었지만 이것은 그녀의 손으로 끝내야 하는 일이었다. 이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맡기면 그녀는 평생 그 일을 후회하며 살아갈 것이 뻔했다.

우리에 쿠키. 그는 쿠인쿠스 실험을 받았고, 언젠가 폭주했다가 진정되었으나,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더 폭주했고, 결국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즈미는 그 사실에만 집중했다. ‘결국엔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그녀의 눈앞에 있는 남자가 자신이 알던 우리에 쿠키가 아닌, 하나의 구울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구울은 구축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에 다른 생각이 끼어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이즈미는 치아 자국이 남을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람의 마음이 생각처럼 움직이면 참 좋을 텐데. 이즈미는 두 발쯤 뒤로 물러서며 생각했다. 우리에의 날카로운 시선이 이즈미에게 박혔다. 이즈미는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이즈미가 볼 수 있는 우리에의 마지막 시선일지도 몰랐다.

이즈미는 천천히 카구네를 꺼냈다. 비록 그의 시선은 이즈미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지만 이즈미는 그마저도 사랑할 수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우리에였으니까. 그러니까, 다른 구울과는 달랐으니까.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이즈미는 우리에를 최대한 아픔 없이 보내주고 싶었다. 돌아올 수 없다면,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즈미는 언젠가 이런 식으로 우리에의 품에 안겼던 적을 떠올렸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포옹이었다.

그렇지. 마치 지금 나를 뒤덮는 핏줄기처럼.

이즈미의 자조적인 생각이었다. 이즈미의 일격은 단번에 우리에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어쩌면 우리에는 피할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나. 그런 일은 없어야만 했다. 우리에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건 없어야만 했다. 이즈미는 옷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소매가 금방 축축해졌다.

구울, 우리에 쿠키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보다 쉽게 이즈미의 손에 구축되었다.

 

그렇게 하나의 구울이 사라지고, 이즈미의 세상이 무너졌다.

 

 

---

진단메이커가 잘못해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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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 우타X청소년 요모

 

 

 

 

Y A G I

 

요모는 우타의 붉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 모를 여름 매미가 매섭게 울고 있었다. 요모는 한숨과 비슷한 숨을 내쉬었다. 요모가 내쉰 숨에 우타는 고개를 가볍게 한쪽으로 기울이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모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후회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이런 곳에 사는 게, 무섭지 않아?”

무서울 게 뭐가 있어.”

하지만 네 또래의 사람들이 먹히잖아.”

난 먹히러 온 거 아닌데. 먹히러 온 건 너잖아.”

요모는 눈을 깜빡여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그런 말을 해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렇지. 죽으러 온 건 나였지. 우타는 살기 위해 왔고. 나무의 진녹빛 그늘 아래에서 요모는 자신의 죽음을 떠올렸다. 신에게 먹혀서 맞이하는 죽음. 몇 번이나 상상해 봤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 죽음이었다.

요모는 지금까지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이 자신에게 준 것은 시련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 수많은 신들 중 하나에게 먹히겠지. 요모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다. 요모는 그것을 별로 불평하지 않았다.

무섭지 않아?”

별로.”

그래서 우타의 질문에도 아무렇지 않게 답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삶의 시작부터 죽음이었으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딱히 없었다.

다행이네.”

?”

그냥. 죽기 싫다고 울고불고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

이상한 녀석이네.”

여기 죽으러 들어온 너만큼 이상할까.”

그 말에 요모는 희미하게 웃었다. 맞는 말이어서 딱히 더할 말도 없었다. 우타는 고개를 뒤로 젖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여기 네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으니까.”

벌써 친구가 된 거야?”

친구가 싫으면, . 동거인이라고 생각하던지.”

우타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동거인, 이라. 지금까지 누군가와 가까이하며 함께 살아본 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우타라는 존재가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좋은 부류의 사람인지는 아직 조금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 한 사람 더 있다.”

우타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그가 눈을 깜빡여 그 긴 속눈썹에 얹힌 햇볕을 털어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구?”

여자애 하나가 있어.”

그 애도 떠돌아다니다 여기서 살게 된 거야?”

, 비슷해.”

여기서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알 리가 없지. 우리는 아랫마을엔 안 내려가니까. 거기다 우리 말고는 다 죽어버렸고.”

죽음. 그 단어는 자꾸 요모를 따라다녔다. 우타는 슬쩍 요모의 눈치를 보았다. 요모는 태연해 보이면서도, 묘하게 입술 끝이 굳어있었다. 그러나 그 입꼬리는 곧 풀어졌다.

요모란 녀석은 이전에 만났던 아이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우타는 제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껴졌다. 강렬한 호기심이었다. 요모 같은 사람은 지금껏 처음 만났다. 요모와 함께하는 남은 일 년이 즐거울 것 같았다. 우타는 가볍게 아랫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그것은 일종의 나쁜 버릇이었다.

그 애는 언제 만날 수 있어?”

글쎄. 저녁쯤? 그때까지 신사 소개나 해줄까.”

우타는 먼저 그늘 밖으로 몸을 뺐다. 검은 머리카락이 햇볕 아래서 물결치듯 반짝이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코 그 빛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빛깔. 요모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삶의 시작은 여름이었고 그것은 곧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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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는 곳

 

Y A G I

For. 푸링 님

 

 

돌아가지 못할 곳을 그리워하는 만큼 미련한 짓이 또 있을까.

카네키 켄. 나는 나를 그리워했다. 내가 잃어버린 것, 또는 더는 가지지 못할 것을 그리워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때의 나를 그리워했다. 딱히 예전의 그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어떠한 보람 따위를 느끼곤 했으니까. 나는 지금의 삶도 그럭저럭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냥 가끔 꿈에 그날의 카네키가 나올 뿐이었다. 내가 가진 미련은 단지 그뿐이었다.

우리는 항상 끝도 없는 하얀 공간에서 마주했다. 너와 나는 당연히 닮아있으면서도 달랐다. 너는 예의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한동안 나는 너의 그런 미소가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다. 너는 너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나. 나는 너를 따라 입꼬리를 밀어 올려 보았지만 네 것과는 아주 다른 씁쓸한 미소만이 지어질 뿐이었다.

내 표정을 읽은 너는 고개를 한쪽으로 아주 약간 기울이며 조금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쪽으로 돌아오고 싶어?”

아니.”

그러면, ?”

왜라니?”

나는 네 질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 네게 되물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너의 생각은 곧 나의 생각일 텐데. 어쩌면 나는 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왜 자꾸 내가 네 꿈에 나타나는 건데?”

그러게. 왜일까.”

무거운 정적이 우리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너는 후우, 하고 숨을 길게 내쉬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너를 그저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의 의중을 확실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너는 항상 그랬다. 속마음을 숨기고 사는 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나도 그런 사람이지만. 그러나 어쩐지 내 마음은 네게 환히 읽히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크게 불쾌하지는 않았다. 누구 하나쯤은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으니까.

카네키.”

너는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너의 단정한 눈매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내 속마음을 알아채는 것이 나 자신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추악한 면모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알게 된다면 나는 얼마나 미움받을까. 똑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너만이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우린 어차피 하나가 될 거야.”

어떻게?”

어떻게든.”

그 말을 하며 너는 천천히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너를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피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코앞까지 다가온 너는 양손으로 부드럽게 내 뺨을 붙잡았다. 네 손에서 피어난 온기가 내게로 옮겨붙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도 있을 수 있지.”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입을 맞췄다. 자신의 입술이란 것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자극적인 그런 감각이었다. 너는 손을 뻗어 내 목을 껴안았다. 나는 너의 허리를 안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듯이.

하지만 결국 얽히던 혀는 달큰한 호흡을 뱉으며 서로에게서 떨어졌고 우리는 한동안 가볍게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렇게 적극적인 줄은 몰랐는데.”

나도 네가 이렇게 키스를 잘 하는 줄은 몰랐네.”

꿈이니까.”

, 꿈이니까 가능한 거지.”

너는 그렇게 말하곤 그대로 자리에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나는 너를 따라 네 앞에 앉았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너였다.

있잖아, 카네키.”

너는 나긋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응, 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카네키는 나를 좋아해?”

. 좋아해.”

카네키는 내가 그리워?”

조금. 아주 조금. 하지만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포기가 빠르구나, 카네키는.”

네가 그렇다시피, 나도 그래.”

내 대답에 너는 응, 하고 답했다. 너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이제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카네키. 오늘도 바쁘겠네.”

너는…….”

나는 여기에서 기다릴게. 카네키 네가 또다시 내가 그리워지면 그때 찾아올 수 있도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꿈속에서 눈을 감았다가 뜨면 익숙한 천장이 나를 마주했다. 익숙하지 않은 게 있다면 너와 맞댄 입술의 감각뿐이었다. 나는 그 꿈을 아주 잠깐 복기했다.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다던 너의 말을 떠올렸다.

너는 내가 돌아가지 못할 곳에 서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지는 않았다. 언제든, 너는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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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요모 에반게리온 AU  #10대 우타요모

 

영혼의 자리[각주:1]

 

Y A G I

 

싱크로율이 낮아도 에바에 탈 수 있다. 우타가 에바에 타는 이유는 그 하나 때문이었다. 탈 수 있다. 그다지 타고 싶어서 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에바에 타라는 지시를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었다.

사도와의 싸움에서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차피 다 같이 죽음을 맞이하게 될 테니 별로 억울하지도 않았다. 그저 아주 약간의 미련이 남을 뿐이다. 우타를 에바에 타게 하고 에바에서 내리게 하는 미련이었다.

 

처음으로 하얀 천장을 보았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이 하얀 천장이라니, 낯설었다. 환풍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미미하게 들렸다. 우타는 고개를 돌렸다. 요모가 창밖을 보고 앉아있었다. 우타가 몸을 움직이는 탓에 이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도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는 게 분명했다.

그런 요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사도는?”

겨우 골라낸 말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다. 우타는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손빗으로 쓸어내렸다. 요모는 창문에 비친 우타를 보며 말했다.

다른 칠드런들이 어떻게 했어.”

다행이다.”

그렇지. 다른 칠드런들이 어떻게든 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누워 있는 거겠지. 다시 정적이었다. 우타는 환풍기의 소리가 자꾸 신경 쓰였다. 차라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적이면 더 좋았을 텐데. 우타는 시선을 아래로 깔아 제가 꼭 붙잡고 있는 침구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완벽한 백색이었다.

렌지는 나 따라서 여기 온 거, 후회하진 않아?”

별로.”

그제야 요모는 몸을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단단히 굳어있었다. 완전 화났군. 우타는 요모의 그다지 변화도 없는 표정을 읽어내는데 노련했다. 그저 오랫동안 가까이 알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너는 어떤데?”

나도 별로.”

요모의 말에 우타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별로. 우타는 제가 했던 말을 되뇌었다. 말이 공허하게 흩어져 사라졌다.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다. 딱히 갈 곳도 없어서 처음엔 칠드런으로서, 그리고 지금은 연구원으로서 이곳에 남아있는 것뿐이었다.

렌지의 별로는 어떤 별로일까. 우타는 고개를 돌려 요모의 얼굴을 바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요모를 네르프로 끌어들인 것이 다름 아닌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자신의 별로가 같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타는 그것을 굳이 요모에게 따져 묻지 않았다. 요모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등받이도 없는 간병인용 의자가 바닥에 끌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의 첫 섹스는 그날 밤 이뤄졌다. 우타가 몰래 병실을 빠져나가 요모의 방에 들어간 것이 시작이었다. 요모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환자복을 입은 채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요모의 방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감각조차 없는 방이었다.

그런 방에서 우타와 요모는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다. 한없이 나긋했으나 분명 열기를 띤 섹스였다. 우타가 처음으로 요모에게 담배를 배운 것도 그때였다. 환자인데 담배를 피워도 괜찮은 거야? 요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타에게 담배를 권했다. 우타는 그전까지는 요모가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요모는 손끝으로 우타의 상처를 매만지고 그곳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아프지 않았어?”

별로.”

엄청 아파 보였어. 에바에서 막 내릴 때.”

그때는 좀 아팠을지도. 사실은 잘 기억도 안 나.”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작게 웃었다. 요모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간지러움이 찌릿하게 몸을 타고 올라왔지만 우타는 요모를 밀어내지 않았다.

우타.”

.”

너는 앞으로도 계속 네르프에 남아있을 거야?”

.”

그렇다면 나도 계속 있을래.”

네르프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요모의 손가락에 걸린 담배에서 무용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타는 땀에 젖은 요모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건 그렇지.”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환풍기 소리 따위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침묵이었다. 요모는 몸을 돌려 다시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었다. 일인용 침대의 이불이 그의 다리에 말리며 우타의 맨몸이 여름밤의 열기에 닿았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고작 이거밖에 없는 걸까. 에바에 타고, 아파하고, 걱정하고.”

우타의 말에 요모는 우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우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타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피하지 않았다. 요모는 우타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댔다. 연기맛이 났다. 우타의 손에서 타오르는 담배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사랑도 할 수 있어.”

렌지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의외인데.”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알아. 알고 있어.”

우타는 손을 뻗어 물이 담긴 종이컵에 담뱃재를 털다가 아예 담배를 꺼버렸다. 우타는 다시 요모의 위로 올라탔다. 요모는 거부하지 않고 담배를 껐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입을 맞췄다.

  1. 신세기 에반게리온 TVA 14화의 소제목 ‘제레, 영혼의 자리’에서 인용. [본문으로]

#우타코이(드림)

 

 

적막

 

Y A G I

 

우 씨는 내게, 잠시 가게를 닫을 테니 한동안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우 씨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게를 비울 정도면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의 평소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 내 시선에 우 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 씨는 우 씨였다.

가게 제가 잘 보고 있을게요.”

못 미더운데.”

좀 믿어 주세요, 정말(ω´)!”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우 씨가 웃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는 그저 웃었다. 나는 그를 따라 웃었다. 항상 그랬기 때문이었다. 항상이 깨지면 안 될 것 같았다. 일상에 아주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것은 어느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자리를 넓혀갔다. 특히 이런 때라면 더욱 그러했다. 우 씨가 새로운 가면을 만드는 것, 또는 우 씨가 가게를 비우는 것. 그것은 단순한 사실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불길함이라고 생각했다.

약자만이 느낄 수 있는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기 전에 느낄 수 있는 감각. 익숙해져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그 감각.

나는 이 일상을 잃고 싶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언제까지나 우 씨나 이토리, 렌지와 함께 헬터 스켈터에 모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은 강했으니까.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으니까.

어쩌면 나는 그 강함에 안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잃는 건 역시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지긋지긋한 일이었다.

언제쯤 돌아올 거예요?”

우 씨는 가게 열쇠를 내게 건네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글쎄. 우 씨의 말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가 강한 구울이었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한없이 약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 씨가 돌아올 공간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나는 우 씨에게 반드시 돌아오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 말로 인해 더욱 불길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이틀. 우 씨가 돌아오지 않은 기간이었다. 객관적으로 두고 봤을 때 그렇게 긴 기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우 씨가 자리를 비운다고 이야기할 때부터 마음속에 심어진 불안이 싹트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불안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매장의 마스크를 닦고, 먼지를 털고, 우 씨의 작업대를 정돈했다. 더 이상 손댈 게 없으면 나는 내 몫의 의자에 앉아 텅 빈 우 씨의 의자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먼지가 내려앉고 있었다. 내일을 위한 먼지였다.

사흘. 이토리를 찾아갈 수도 있었다. 이토리는 아마 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허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토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았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우 씨의 죽음은 이토리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이토리의 입을 통해 우 씨의 죽음을 알아채고 싶지 않았다.

죽음을 알아챈다면 나 혼자 이 가게를 깨끗이 유지하다가, 언젠가 나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그의 죽음을 알고 싶었다. 나는 마스크의 먼지를 털며 그런 생각을 했다. 더는 새로운 마스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마스크 가게의 죽음을 지연시키는 나.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나의 모습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흘. 그 누구도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완전한 적막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꾸준히 가게의 바닥을 닦았고 정리할 것도 없는 우 씨의 작업 테이블을 정리했다. 나는 문득 우 씨의 작업 스케치를 넘겨보았다. 생각보다 더 다양한 도안들이 그려져 있었다. 우 씨는 이 마스크들을 모두 만들 생각이었을까? 나는 팔랑팔랑 종이를 넘기며 도안들을 둘러보았다. 우 씨의 흔적이었다.

나는 우 씨가 아주 조금 더 그리워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 그새 이만큼의 정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눈을 깜빡여 눈꺼풀에 고이는 불안을 털어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우 씨일까, 아니면 마스크를 사러 온 고객일까. 나는 가만히 문이 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내가 원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기를 바라면서.

 

 

#우타요모 에반게리온 AU

 

 

정지된 어둠 속에서[각주:1]

 

Y A G I

 

하얀 천장. 우타는 잠시간 그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병실에는 적막이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병실 천장 같은 거,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우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평소처럼 요모가 창밖을 보고 앉아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역시 별로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으나 익숙해진 광경이었다.

화났어?”

아니.”

요모는 항상 그렇게 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창밖을 향해있던 요모의 시선이 우타에게 닿았다. 우타는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그냥 조금 걱정됐을 뿐이야.”

난 내 일을 했을 뿐인걸. 렌지가 그렇듯.”

요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화 안 났다더니. 화난 표정인데.

에바에 탈 수 있는 칠드런들이 없었어. 그래서 내가 대신 탄 거고. 어쨌든 사도들은 처치해야 하잖아.”

우타의 말에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 사정은 알고 있었다. 자신도 네르프의 연구원이었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우타가 에바에 타는 사실이 달갑지는 않았다. 싱크로율도 낮으면서 우타는 에바에 타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네르프에 속해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만약에 우타를 네르프에서 그만두게 할 수 있다면. 요모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갈 곳부터 없었다. 에바를 다루었던, 에바에 탔던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섞여 들어갈 수 있을까. 요모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아예 이 사실을 몰랐다면 또 모를까. 그들의 삶에 네르프는, 에바는 너무나도 깊숙이 박혀있었다.

몸 괜찮아지면 렌지 방에 놀러 가도 괜찮아?”

빨리 나을 생각부터 해.”

동기가 있으면 빨리 나을 거 아냐.”

요모는 답하지 않았다. 우타는 그것을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요모는 항상 그랬으니까. 요모는 싫다면 싫다고 확실하게 말할 사람이었다. 좋을 때 좋다고 이야기를 안 해서 문제지. 우타는 그런 요모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요모는 한숨과 비슷한 숨을 내뱉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타는 그런 요모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서 와.”

. 다녀왔어.”

우타가 병실에서 깨어나면 항상 나누는 대화였다. 요모의 어서 와에는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을까. 아마 내가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의 수많은 감정이 담겨있겠지. 우타는 눈을 감고 요모의 얼굴을 떠올렸다. 별말은 안 해도 걱정이 더덕더덕 붙어있는 요모의 표정. 우타는 그 얼굴을 보는 게 썩 즐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은 일이었다. 싫어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이 우타에게는 에바에 타는 일이었고, 요모에게는 그런 우타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

 

 

렌지.”

.”

걱정 많이 했어?”

우타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요모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여 우타가 뱉은 담배 연기를 잠시 바라보았다. 연기 냄새가 공기 중으로 번지고 있었다.

.”

그 말을 하곤 요모는 손을 뻗어 우타의 담배를 쥐었다. 우타는 선선히 그에게 담배를 내어주었다. 요모는 우타를 따라 담배 연기를 뱉었다. 담배는 다시 우타의 손으로 돌아갔다. 우타는 요모의 머리카락을 아주 천천히 쓰다듬었다.

?”

우타가 없어지는 게 싫어서.”

?”

몰라, 그런 거.”

우타는 쌓여가는 담뱃재를 털었다. 요모의 방은 삭막했다. 요모는 창문 근처에 놓여있는 커피머신을 제외하면 거의 모델 하우스 수준으로 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요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남기기 싫어하는 사람.

요모는 우타조차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고, 그에게서 혼자 떨어져 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요모는 제 머리를 쓰다듬는 우타의 손을 잡아 그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대로 아침이 오지 않을 수 있을까.”

렌지는 지구가 이대로 끝나길 비는 거야?”

.”

차라리 이대로 서드 임펙트가 일어나 이 세상의 모든 생명이 죽어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요모는 그런 생각을 했다. 지구가 멸망한다면 우타가 더는 에바에 탈 일도 없을 테고, 끔찍하게 정갈한 병실에서 그가 눈을 뜰 때까지 기다릴 일도 없을 테지.

한 차례 섹스가 끝난 후의 나른함만 안고 이 세계에서 떠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요모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네르프에 있는 한 그건 당연했다.

우타. 에바에 안 탈 수는 없어?”

그건 힘들 것 같아.”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우타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껐다. 그러고 나서도 담배 냄새는 오랫동안 요모의 방 안을 맴돌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오래 여기 있는 걸지도 몰라.”

뭐 어때. 달리 갈 곳도 없잖아.”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야.”

모든 인간은 그래, 렌지.”

그 말을 하곤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하나뿐인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우타의 손은 꽉 쥐고 있었다.

두려운 거야?”

조금.”

괜찮을 거야.”

정말로?”

. 괜찮을 거야.”

그 말을 하며 우타는 몸을 숙여 요모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괜찮을 거야.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사정을 대충 포장하는 말이기도 했다. 괜찮을 거야. 우타, 그는 지금까지 칠드런들에게 그 말을 얼마나 많이 내뱉었는가. 그리고 그들은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까.

요모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질 수 있는 것일까. 우타는 말없이 요모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닿았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입을 맞추었다.

세계는 아주 천천히 멸망을 향해 돌아가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1. 신세기 에반게리온 TVA 11화의 소제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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