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 돌발본
붓다의 생일을 축하하여 직장 동료들과 절에 갔더니 주지 스님은 구울에 죽은줄 알았던 직장 동료는 부활?!
Y A G I
“우리는 지금부터 절에 간다.”
말을 꺼낸 것은 와슈 마츠리였다. 그는 평소처럼 손가락 끝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아리마 키쇼와 스즈야 쥬조는 멀뚱히 그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갑자기 절에 간다는 것도, 하필이면 그 구성원이 이 멤버인 것도 의문이었다.
“특이한 조합이네요-.”
“제비뽑기다.”
“언제부터 CCG에서 일을 그렇게 했나요.”
“불만 있나?”
“아뇨, 불만이라기보다는-.”
그냥 해본 소리인지, 쥬조는 금방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하늘 멀리 두었다. 마츠리는 깊은숨을 내쉬고는 제 옆의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아리마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입을 꾹 다물고 서 있었다.
“그럼 이만 출발하지.”
“네에, 네에.”
쥬조는 말꼬리를 늘이면서도 먼저 발을 옮겼다. 생각해보면 쥬조는 절 같은 곳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한 일인가. 쥬조는 속으로 절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당연하게도 잘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저 석탑 몇 개가 흐릿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석가탄신일에 절에 간다. 그런 단순한 사고의 과정도 쥬조의 머릿속에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에 어떤 감상적인 감각을 느낄 쥬조는 아니었다. 쥬조는 그저 옛날 생각을 아주 조금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절에 가는 건 간만이군.”
“계속 일 때문에 바빴으니까.”
“어쩌면 쉬고 오라는 말일지도 몰라요-.”
그럼 휴가를 주면 될 텐데 왜 굳이 절에. 아리마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괜히 분위기를 깨트리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말을 보태 이어지는 이 침묵을 깨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리마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버스는 점점 더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쥬조가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츠리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도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절에 가까워질수록 버스는 비어갔다. 결국에 남은 것은 그 셋뿐이었다.
세 사람은 말없이 절의 계단을 올랐다. 그새 봄이 지나가려는지 녹음이 온 천지에 짙게 깔려있었다.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던 쥬조가 산뜻한 목소리로 먼저 말을 꺼냈다.
“공기는 좋네요.”
“뭔가 평화로운 느낌이 들어.”
“절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법이지.”
그러나 절의 입구를 넘어서자마자 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는 평화와는 꽤 거리가 있었다.
“아리마… 키쇼!”
세 사람의 앞에 선 키가 큰 회색 머리의 남자는 빗자루를 들고 굳은 듯이 서 있었다. 아리마와 남자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구울이다. 아리마의 말에 쥬조는 쿠인케를 들고 발을 한 발 앞으로 내세웠다.
그때 또 다른 남자가 태연한 발걸음으로 그들 사이를 막아섰다.
“자, 렌지. 절까지 와서 서로 싸우지 말자구. 그쪽의 수사관들도 마찬가지예요.”
그 말을 하며 남자는 빙긋 웃어 보였지만, 그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절대 싸움을 말리는 사람의 눈빛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여차하면 이 자리의 모두를 제힘으로 눌러버리겠다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런 눈빛에 기가 눌릴 마츠리는 아니었다. 마츠리는 일부러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구울은 박멸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님은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라고 했어. 적어도 석가탄신일인 오늘 하루만큼은 서로 싸우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다소 톤이 높은 목소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아리마는 잠시 쥬조와 시선을 맞춘 후 쿠인케를 집어 드는 대신 입술을 열었다.
“너는 누구지?”
“마스크 가게의 우타입니다아.”
“그런데 왜 여기에 있나?”
“일일 아르바이트야. 자, 손님들은 안쪽으로.”
싹싹하게 수사관 일행을 다루는 우타와는 달리 요모는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과 그다지 엮이고 싶지 않다는 표정이었고, 우타 역시 억지로 그런 요모를 잡아끌지는 않았다.
수사관 일행은 약간은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우타의 뒤를 따랐다. 쿠인케를 쥔 손에 아주 약간의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우타는 그들을 절의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한쪽 자리 문이 달린, 나무로 지어진 자그마한 건물이 한 채 있었다. 우타는 그 문 앞에 섰다. 마치 이곳이 도착점이라는 듯이.
아리마는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우타를 바라보았지만 우타의 표정은 어떠한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들어가 계세요. 우타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잠시간의 차가운 정적이 세 사람을 감쌌다. 그 문을 연 것은 쥬조였다. 혹시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작전을 세우고 문을 열어봐야 한다는 마츠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사람을 만났다.
“마도……!”
그들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얼굴을 보고 놀란 듯 굳었다. 마도 쿠레오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 침착하게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는 조금 썼다.
“여기는 어떻게…….”
“석가탄신일이지 않은가. 가끔은 이런 일도 일어나 줘야 하는 법이지.”
그 말을 하며 그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웃음이었다. 아리마는 그가 죽고 난 이후에도 제법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상태를 ‘살고 있다’라고 표현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 사람은 마도의 곁에 앉았다. 네 사람이 앉기에는 테이블이 커서 그들은 사소한 어색함을 느꼈다. 뭘 하고 계셨나요? 쥬조의 물음에 마도는 음, 하고 짧은소리를 뱉고는 입을 열었다.
“아까 여기 구울이 있었는데.”
“무슨 구울이 있었나?”
“래빗이었네.”
래빗. 그 이름을 말하는 마도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죽여버릴까 했는데 석가탄신일이라 그냥 쫓아만 내고 말았네.”
마도는 제법 상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턱을 괴고 멀리 창밖을 바라보던 쥬조가 불현듯 고개를 돌려 마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마도 씨는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도 쿠인케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사람이 죽으면 특별한 것 하나쯤은 저승에 가져갈 수도 있고 그런 거네.”
“마도 씨의 특별한 것은 역시 쿠인케였군요.”
“그것 말고도 사실 챙겨간 ‘특별한’ 것은 많았지만.”
그 말을 하는 마도의 표정은 편안해 보였다. 그때 우타가 문을 열고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그의 시선이 방을 한 번 슥 훑고 지나갔다.
“아야토 군은 어디 갔어?”
“아야토?”
“래빗 말이야.”
“마도가 쫓아냈다는군.”
아리마의 말에 우타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행동이 그렇게 탓하는 뉘앙스는 아니었다. 따지자면 ‘그럴 줄 알았다’에 가까웠다.
“내가 참, 잘 지내라고 말했는데.”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나름 애쓴 거야.”
“아야토 데리고 올 테니까 렌지는 손님 대접 좀 부탁해.”
바람처럼 지나간 우타의 뒤에는 요모 렌지가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아직도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아리마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오늘은 그 얘기는 하지 말지. 우타의 말대로, 석가탄신일이니까.”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아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를, 모든 것을 용서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아리마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단 하루만이라면,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아야토.”
그때 우타는 아야토를 찾아 절을 헤매고 있었다. 아예 가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아야토는 예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야토는 절 구석의 연못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녹색의 연못 위에는 연꽃 몇 송이가 섬세하게 꽃잎을 벌리고 있었다.
“쫓겨났다며.”
“흥, 나도 수사관이랑 같이 있고 싶지는 않았어.”
“이제 돌아가자.”
우타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아야토는 우타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호수로 고개를 돌렸다.
“피에로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꾸미는 거지?”
“피에로의 일이 아니야. 내 일이야.”
아야토는 그 두 가지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우타가 그렇다니까 그렇구나, 하는 정도였다. 사실 아야토에겐 이 일을 꾸민 것이 피에로든 우타든 큰 상관은 없었다.
아야토는 연꽃을 보며 적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로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우타는 아야토의 머리를 꾹 누르듯 쓰다듬었다. 아야토가 불만 어린 소리를 내었지만 우타는 그저 돌아가자, 하고 말할 뿐이었다.
아야토는 그 말에 순순히 따랐다. 돌아가자. 어쩐지 그 말이 아야토의 속에 박혔다.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직은 그가 돌아가야 할 곳 정도는 남아 있었다.
“와, 뭐야 이 싸한 분위기. 렌지. 또 이상한 말 했지?”
“아무 말도 안 했어.”
“손님 대접인데 아무 말도 안 하면 어떻게 해. 차도 안 내놓고.”
우타가 반쯤은 농을 치듯이, 반쯤은 핀잔을 주듯이 요모에게 말을 건넸다. 요모는 가볍게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그 말을 내쳤다. 아무튼, 고집은 세다니까. 우타는 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군.”
차를 준비하려는 우타의 뒤에 마츠리의 목소리가 꽂혔다. 우타는 웃는 낯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어떠한 섬뜩함 따위도 섞이지 않은, 그런 미소였다. 그렇다고 부처의 미소다 뭐다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랬지만.
“석가탄신일이잖아. 오늘은 좀 쉬어. 죽었던 동료도 돌아왔는데.”
우타의 말에 마츠리는 흥, 소리만 낼뿐 대화를 더는 이어가지 않았다. 조용하고 조금은 평화로운 분위기가 흘러갔다.
누군가는 우타가 내온 차를 홀짝였고 누군가는 창밖의 녹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사관과 구울의 만남이라니. 익숙하기도 하면서 낯선 감각이었다.
“가끔은 이렇게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군.”
아리마는 자신의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지금껏 남의 생명을 빼앗아오기만 했다. 그러니 이렇게 아무 생명도 빼앗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이런 날. 소중하다면 소중한 날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 자리의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중한 날. 그런 날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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