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AU  #진단메이커

 

 

석양의 세계

 

Y A G I

 

 

담배 연기가 벌겋게 떨어져 가는 햇볕 속에서 흔적도 없이 흩어지고 있었다. 너는 내게도 담배를 권했지만 나는 그것을 거절했다. 담배를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이런 풍경을 보면서 담배를 태우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었다. 너는 나를 불러놓고는 줄창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나는 그런 너를 바라보았다. 너의 몸 곳곳에 박힌 피어싱들이 햇볕을 받아 미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있잖아. 렌지.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까?”

글쎄.”

나의 대답에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죽은 인간들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고, 서로를 잡아먹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죽은 인간들은 오직 살아있는 인간만을 탐했다. 이 광경을,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인간들이 오갔을 버려진 아파트의 옥상에서 보고 있자니, 마치 저예산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일단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일까. 구울의 일이 아닌 인간의 일, 어쩌면 나 자신도 모르게 부러워하거나 증오하고 있었던 인간들의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너는 피우던 담배를 발로 비벼 껐다. 희미하게 남아있던 불길이 너의 발밑에서 뭉개졌다.

이렇게 구울의 시대가 오는 걸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갑자기 죽은 인간들이 살아날 줄이야.”

우타가 웃음기가 뚝뚝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것치고 그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뱉었다.

죽은 구울들도 살아났으면 좋을 뻔했는데.”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

많지는 않고, 조금. 우타, 너는?”

글쎄. 잘 모르겠네.”

너 다운 대답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에 렌지가 죽었다면, 보고 싶어 했을지도. 기쁘게 받아들이도록 해, 렌지.”

, 내 대답에 우타는 다시 담배를 하나 더 물었다. 벌써 다섯 개비 째였지만 나는 굳이 그런 그를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구울인걸. 담배 연기가 그렇게 싫지 않기도 했고. 너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너의 체온은 낯설 정도로 따뜻했다.

렌지는 먹어 봤어? 저 시체들.”

.”

어땠어?”

죽은 지 얼마 안 된 인간은, 별로 차이도 없었어.”

그럼 저들은 인간인 걸까.”

인간이었던 것들이겠지.”

재미없네, 뭔가.”

그 말을 끝으로 너는 다시 담배만을 태웠다. 뭔가 생각할 것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변한 세상에서 그 생각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인간들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는데. 네가 속삭이듯 말했다. 나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너의 말에 동의했다. 이렇게 되기를 바란 적도 없었는데. 그저, 조금 더 편하게 살아가는 것을 바랐을 뿐이었는데.

만약에 아직도 신이 살아있다면 신이란 작자는 영 정도를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나는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나는 너의 약간은 거친 등을 쓰다듬었다. 너는 그런 내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마치 아무 곳에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런 것치고 너는 태연하게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렌지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어?”

.”

?”

왤까. 나는 잠시 눈을 깜빡여 해가 천천히 떨어져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세상이 망하자 태양의 광채는 더욱 밝아져서 나는 곧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다시 땅을 바라보았다. 인간을 찾아 어기적거리고 있는 전 인간들을 몇몇의 이름 모를 구울들이 사냥하고 있었다.

그냥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아서.”

하긴. 죽어서도 움직이는 애들이니까.”

너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세상이 순간 아주 조금 흐려졌다.

이렇게 구울의 세상이 되면, 렌지는 뭘 하고 싶어?”

생각 안 해 봤어. 너는 어때?”

평소처럼 렌지랑 같이 잠이나 잘까.”

너는 몸을 가까이 붙여오며 키득거렸다. 나는 굳이 그런 너를 밀어내지도, 더 가까이 닿기 위해 끌어안지도 않았다. 너는 피우던 담배를 저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불만을 표할 인간은 이 근처에는 없었다. 너의 가느다란 손끝이 어쩐지 서글퍼 보였다.

배경 음악이 그다지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아하하, 세상이 망하니까 렌이 농담을 다 하네.”

그 말을 하고 너는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너에게선 짙은 연기 냄새가 났다. 나는 너의 허리를 껴안았다. 보랏빛 어둠이 너의 어깨에 섬세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너의 목덜미에 내 얼굴을 묻었다. 분명히 세계는 아직 살아있는데, 너도 나도 아직 살아있는데 이 모든 것이 아주 끝나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있잖아, 렌지. 나는 사실 조금 쓸쓸해.”

나도.”

이렇게 또 밤이 오는구나.”

들어가자.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 들어가자.”

우리는 마지막으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와 함께 몰락하는 세계의 끝을 잠시 지켜보았다. 그곳에 남을 것이 오직 어둠뿐만이 아니길. 나는 내일도 또다시 해가 떠오르는 세계를 기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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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Y A G I

 

 

변화의 순간을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이토리가 반쯤은 질질 끌며 데려온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새벽의 새파란 꿈속에서 너는 울고 있었다. 굳이 너의 꿈을 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냥, 그랬다.

렌지, 너는 내가 살아온 흔적이구나. 나는 서서히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며 너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즐길 수 있을까. 언제까지 내가 이 상황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어쩌면 너를 처음 만난 그때부터 에로스의 화살은 내게 겨눠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결코 다룰 수 없는, 그런 감정이.

우타.”

너의 술버릇은 질리도록 즐거웠으나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너는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술에 취해 있었다지만 그 짙은 회색의 눈동자만은 또렷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너는 내 어깨를 껴안았다. 나는 얼떨결에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삶의 무게가 무겁게 나의 삶과 겹쳐지고 있었다.

나를 떠나지 말아 줘.”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면?”

나는 그 순간 왜 그가 이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지, 렌지에겐 안 된 일이었지. 내가 일부러 렌지를 피한다는 건. 하지만 나는 두려웠다. 렌지를 향한 마음이 너무 커져가는 게 두려웠다. 나는 바뀌어 있었다. 그것을 내가 너무도 잘 알아서, 나는 도무지 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피했던 것이 너에게 이런 결과를 주었나.

내가 아는 우타라면 그럴 리 없어.”

어떻게 그렇게 나를 믿는 거야?”

우타 너는, 지금껏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으니까.”

나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눈에 열이 올라 뜨끈뜨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침대로 향했다. 너의 곁에 누워서, 내 팔을 베고 너를 바라보았다.

일단 자, 렌지.”

너는 내가 싫어진 거야?”

너는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입술을 움직였다. 네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들이 내게 박혀 들어왔다.

나한텐 아직 네가 너무 소중한데.”

너를 재우고 난 새벽, 나는 밤새 너를 떠올렸다. 네가 내게 내려준 수많은 커피의 향기를, 너와 함께 살을 섞을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곤히 잠든 너를 보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상을.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 기분이 어땠는지 너는 알 수 있을까. 내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는 네가 깨어나면 기억하지도 못할, 꿈속에서 너의 눈물이 멎기를 바라며 네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커피 내려 줘?”

.”

아침이었다. 너는 꼭 술을 마시고 나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거면 아예 마시지를 말든지. 나는 웃음기를 띤 얼굴로 너를 바라보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누워있는 너를 보면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보고 싶었어.”

문득 너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커피를 내리던 와중에도 너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너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자고 일어나면 없을 줄 알았거든.”

자기가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너는 내 말을 듣는 편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너는 내가 커피를 내밀고 나서야 얼굴에서 손을 떼어냈다. 생각 외로 네 얼굴은 평소와 별다름이 없었다. 왜 굳이 가려야만 했는가,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그저 내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던 걸지도. 나는 컵을 들고 조심스럽게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너는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한 번 크게 했다. 오늘따라 커피 향이 좋았다. 웬일로 네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기에 나는 커피를 마시며 눈동자만 옮겨 너를 바라보았다. 애석하게도 네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어지러워.”

숙취?”

조금. 계속 컨디션이 안 좋았거든.”

나 때문에?”

.”

나는 짧게 웃었다. 천하의 렌지를 이렇게 다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네. 너는 내 말에 답하지 않고 그저 커피만을 마셨다. 나는 문득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괜히 너의 머그와 나의 머그를 부딪쳤다. , 하는 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숙취엔 섹스만 한 게 없는데.”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걸.”

당연하지. 내가 방금 만들어 냈으니까.”

내 말에 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정도면 꽤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나는 네 머리 위에 내 머리를 가볍게 얹듯 기대었다. 너의 체온이 따끈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면 숙취 해소 좀 도와줘.”

그럼 힘 좀 써볼까.”

. 커피 다 마시고, 잠 좀 깨면.”

너와 나는 거의 동시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끝에 입술에 한 피어싱이 차갑게 제 존재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렌지랑 처음으로 키스했을 때, 충동적인 그 상황에서도 렌지는 내 피어싱이 낯설다고 얘기했었지.

나는 괜히 네게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졌다.

뜬금없이.”

그냥 말해보고 싶었어.”

그거 알아? 네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 거, 이번이 처음이야.”

그랬나?”

너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너는 내가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사랑한다는 말 좋아해, ?”

.”

나도 이제 좋아해.”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감각,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쭉 너를 사랑해 왔던 걸지도. 변화의 순간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나는 몸을 가볍게 빼어 너의 입술을 찾았다. 너의 입술에서는 쌉싸름한 커피의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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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YAGI입니다! 이렇게 커미션으로 또 찾아뵙니다! 이번 2월은 개인적인 생활고로 인해서. . . 논슬롯으로 열리니 느긋하게 참여해주셔도 될 것 같아요 >-<!!

  저의 글 커미션은 매달 열리며, 해당 달에 슬롯이 모두 찰 경우 추가적으로 커미션을 받지 않습니다. 슬롯은 해당 월의 일정과 컨디션에 따라서 조정됩니다. 다음 달 대기 슬롯은 없으나, 원하시는 경우 커미션이 다시 열렸을 때 DM으로 알려드립니다.

 

 

<2월 슬롯>

 

 

2월은 논슬롯제 입니다. 까만 하트는 작업 중 (또는 작업완료) 하얀 하트는 작업 대기를 의미합니다. 

 

<진행 과정>

 

 

  DM으로 신청>시놉시스>1차 컨펌>초고>2차 컨펌>탈고

  작업물은 이메일로 한컴/pdf 두 가지 형태로 보내드립니다. 모든 작업물은 제목과 처음 한 두 문단이 크롭되어 트위터에 #야기링_커미션 태그와 함께 업로드 됩니다. 작업물은 저의 아이디와 닉네임만 들어간다면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업로드하거나, 글의 문장을 일부 인용하여 캘리그라피 또는 헤더 및 인장으로 얼마든지 이용 가능합니다. (이용하실 때 저에게도 보여주시면 제가 기뻐합니다!) 다만 글을 회지로 묶으실 때는 반드시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왜냐면 저도 구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회지로 엮는 것까지 부탁하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그것 역시 DM으로 문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견적을 보아 가급적 저렴한 가격에 회지 작업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문의하시면 회지 샘플을 사진으로 보내드립니다 (중철/떡제본 모두 가능합니다.)

 

  신청하실 때 원하시는 분량이 있으시다면 최대한 그에 맞춰 시놉시스를 작성합니다. 분량과 내용이 조절이 되지 않을 경우 커미션을 반려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놉시스 비용은 받지 않습니다. 신청을 하실 때 최대한 많은 자료를 주시면 시놉시스를 쓸 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신청 취소는 시놉시스 과정에서만 가능하며, 그 이후 취소의 경우 저의 과실이 아닌 이상 일체 환불을 해드리지 않습니다.

 

  작업 과정은 분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틀~일주일 이상) 작업 일시는 입금 확인이 된 이후부터 체크됩니다. 말씀드린 일시를 넘길 경우 50% 환불을 해드리며, 원하실 경우 글은 파기합니다. (물론 결과물을 받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가격>

 

  전연령가 : 1,000자 당 3,000(15,000자가 넘어갈 경우 1,000자당 5,000)

  성인물 : 1,000자 당 6,000(15,000자가 넘어갈 경우 1,000자당 8,000)

  성인물의 경우 표현의 수위에 따라서 5,000(15,000자가 넘어갈 경우 1,000자당 7,000)으로 가격이 하향될 수 있습니다. 현재 가격은 최대한 적나라한 묘사를 했을 경우를 가정했을 때의 가격입니다.

 

  모든 가격은 제가 글을 쓰는 시간과 최저 시급을 고려하여 책정되었으며, 성인물이 전연령가의 약 2배인 이유는 실제로 쓰는 시간이 약 2배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15,000자가 넘어갈 경우 가격이 달라지는 것은, 그 정도 분량이면 그 이하 분량과 시놉시스를 짜는 과정과 저의 스트레스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단편 소설 하나 분량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며, 저는 단편을 쓸 때마다 항상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 경우 시놉시스와 초고 컨펌 횟수도 1회씩 늘어나게 됩니다.

 

  최소 분량은 2,000자입니다. 2,000자 미만인 글은 쓰지 못합니다. 최대 분량은 20,000자입니다. 개인 원고를 하며 커미션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긴 글은 쓰지 못합니다.

 

  분량을 초과했을 경우 추가 분량은 무료로 작업해드립니다. (저의 계산 미스이기 때문에) 분량이 부족할 경우에는 부족한 분량을 계산하여 환불해드립니다. 다만 부족한 분량이 100자 미만일 경우에는 환불을 해드리지 않습니다. 100자 더 채워달라고 요구하시면 어떻게든 채워서 드립니다만, 가급적이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때 붙는 문장들은 군더더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도리어 글의 완성도가 떨어지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샘플>

 

아래 캡처를 제외한 샘플이 궁금하시다면 본 티스토리의 다른 카테고리에 들어가서 글을 봐주십시오. 글의 분위기는 밝은 것보다는 다소 건조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장르/불가능한 장르>

 

  글 커미션이기 때문에 제가 원작을 알아야 쓸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는 제가 원작을 아는 경우이며, 모든 것은 정발본 기준입니다. 해당 목록에 없는 작품일 경우 개인적으로 문의를 주시길 바랍니다. (애니메이션)/(만화)의 경우 괄호 안에 있는 내용만 보았다는 뜻입니다.

  모든 장르 드림 가능합니다! 커플링 성향(HL/BL/GL )은 가리지 않습니다.

 

가능한 장르

 

1(자캐) / 도쿄구울 (본진) / 고스트 헌트 (애니메이션) / 학교 생활 / 모브 사이코 100 / BBC 셜록 / 신체 찾기 / 아인 / 보석의 나라 (애니메이션) / 에반게리온 (애니메이션) / 디 그레이맨 (만화) / 릭 앤 모티 (넷플릭스) / 루시퍼 (드라마/넷플릭스) / 이런 영웅은 싫어 / 소울이터 (애니메이션) / 문호 스트레이 독스 (애니메이션)

 

불가능한 장르

 

원피스(길어서 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나루토 (취향이 아닙니다.) / 히로아카 (취향이 아닙니다.) / 코난 (길어서 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은혼 (길어서 보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 진격의 거인 (취향이 아닙니다.) / 오소마츠상 (취향이 아닙니다.) / 하이큐 (볼 예정에 있으나 아직까지는 보지 않았습니다.) / 앙스타 (저의 통장을 보호하고 싶습니다.) / 데레스타 (앙스타와 같은 이유입니다.) / 가담항설 보고 있습니다!) / 페이트 시리즈 (취향이 아닙니다.)

 

만약에 커미션으로 우타요모/후루우이를 신청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일정 퍼센트로 할인이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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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모가 죽었다는 설정  #연성교환용 글

 

 

죽음을 복기하는 법

 

Y A G I

For. 이나링

 

CLOSED.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문을 닫은 헬터 스켈터의 안에는 우타와 이토리가 나란히 바에 앉아있었다. 이토리는 오른손의 끝으로 와인 잔의 가장자리를 매만졌다. 깊은 침묵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우타였다.

걔는 꼭 우리가 친구가 아니라고 그랬지. 친구라곤 우리밖에 없었으면서.”

그 말에 이토리가 작게 웃었다. 맞아. 걔는 항상 그랬어.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없는 요모를 떠올리고 있었다. 시체조차 회수하지 못한 그를, 그가 없는 곳에서 기억해내고 있었다. 차라리 기억해 내는 것조차 희미하면 좋겠는데, 또렷하게 기억이 나 도리어 더 괴로운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뭐라고 한마디 보탤 것 같네, 우타는 그렇게 생각하며 혈주를 한 모금 목 뒤로 넘겼다. 이토리의 작고 나긋한 목소리가 우타의 귀로 흘러들었다.

그래도 행복했겠지, 렌지.”

마지막에 우리를 떠올렸을까?”

그러게. 우 씨는 어땠으면 좋겠어?”

모르겠어. 마지막까지 기억되는 건 좋은데, 그러면 걔가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할 것 같아서.”

나도 마찬가지야.”

정적이었다. 세 사람은 종종 이런 정적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들은 별 대화가 없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사이였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어느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그런 관계. 오래 알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모 하나가 없는 상태에서의 정적은 버티기 힘들었다. 자꾸 요모의 마지막이 우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친구로서 하는 말인데,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우타는 그 말로 요모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보냈다. 아니 어쩌면 그 상태의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계에서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게 맞을지도. 저쪽의 세계에 존재하는 죽음만이 그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어렵구나.”

우타가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로 어려웠다. 하지만 무엇이 어려우냐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답하기는 힘들었다. 그냥 어려웠다. 그의 죽음을 복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어려웠고, 그가 없는 지금 이 상황도 어려웠고, 이름을 지어줄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을 버텨내는 것도 어려웠다.

우타는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은, 영 즐겁지 못했다.

이렇게 버텨내기 힘들 줄은 몰랐는데.”

우 씨, 술에 물 들어가면 술맛 떨어져.”

알고 있어. 알고 있는데.”

우타의 목소리는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우타는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을 닦아내지 않았다. 그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미끄러지듯 잔 속의 핏물에 섞여들었다. 우타가 눈을 깜박일 때마다 그의 속눈썹에 맺힌 눈물이 때를 놓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오늘 일은 다른 사람에겐 비밀로 해 줘.”

알았어. 못 본 거로 해줄 테니까.”

이토리의 목소리도 우타와 비슷하긴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척하며 서로의 술을 삼켰다.

오늘은 술맛이 없네, 나도.”

이런 날에 술이 맛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취하기도 힘들어, 이런 날은.”

그래도 취해야지. 그렇게 버텨야지.”

두 사람의 잔이 마주치는 소리가 깜깜한 가게를 나지막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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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이바나시 : 꽃밭/내일/손등

 

 

흉터

 

 

아래층은 다 꽃밭이래.”

그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적성 검사가 딱 하루 남은 날이었다. 하늘은 전에 없이 맑았다. 기후 시스템은 마치 다음 날에 있을 적성 검사를 응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적성 검사 전날에는 항상 그랬다. 밤에는 심지어 수많은 유성마저 떨어져 내렸다. 과거의 전설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적성을 얻길 빌기라도 하라는 듯이.

누가 그랬는데?”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간 애가 그랬어.”

그 애는 그걸 어떻게 알았대?”

그 애보다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간 애가 말해줬대.”

나는 뭐야, 하고 불만을 표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끝도 없는 거잖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작 머리 위 몇 킬로미터 위에 유리 돔이 세워져 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높고 파란 하늘이었다.

그래서 너는 아래층으로 가고 싶어?”

잘 모르겠어. 별로 가고 싶진 않은데.”

나도.”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모든 기억을 소거 당했다. 어른들은 아래층은 이전의 기억 따위가 필요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얘기했고 우리들은 그 말을 순순히 믿었다. 기억 따위가 필요 없는 일이란 건 무엇일까. 해마다 소수의 몇 명이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비밀스러운 일을 처리했다. 매년 누군가는 그 비밀스러움 때문에 아래층으로 자처해서 내려가곤 했지만, 그와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호기심보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컸다. 기억을 잃는다. 가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근데 꽃밭이라면, 보고 싶긴 하다.”

온갖 종류의 꽃이 다 핀대. 봄에는 봄꽃이, 여름에는 여름꽃이.”

가을에는 가을꽃이, 겨울에는 겨울꽃이?”

내 말에 그가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는 그가 좋았다. 이왕이면 내일 있을 적성 검사 때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과거의 전설처럼 유성에 소원을 빌 생각이었다. 그와 같은 일을 하게 해달라고.

아래층에 내려가면 무슨 일을 할까?”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거겠지. 이 사회에 도움이 될.”

만약에 우리 둘 다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나는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적성 검사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갈 아이들이라는 건 거의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 세계에 제대로 섞여들지 못하는 자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나와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갈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우리의 이름도 다 까먹겠지.”

그러면 손등에 서로의 이름을 적어두자.”

적성 검사 때 들키면 어떻게 해.”

흉터로 남기면 상관없지 않을까.”

아픈 거 싫은데.”

나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소리를 내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잠시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다시 그들의 일에 집중하며 그들이 가야 할 길을 걸어갔다.

그럼 이름 말고, 새끼손가락에 아주 작은 상처를 내는 거야. 조금만 아프지만, 우리끼리는 알아볼 수 있도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디선가 작고 날카로운 돌멩이를 하나 가져왔고, 우리는 서로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아주 작은 상처를 냈다. 딱지도 앉지 않고 상처 특유의 붉은 기운만 오래오래 남아있다가 그대로 흉터로 자리 잡아버리는 그런 상처를.

이것만은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억할 수 있을 거야.”

?”

아팠으니까.”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죽어가는 별에 그와 내가 나란히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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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든 삭제될 수 있음  #단문 <이름 없음>에 덧붙인 이야기

 

 

유리

 

Y A G I

 

 

 

   나는 오전 두 시에 꼭 내가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한참 전에 죽어 사라진 작곡가들의 클래식을 들었다. 그것에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누군가는 깊이 잠들어 있고 누군가는 아직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도 끝내지 않은 시간이라서 내게는 다소 이질적인 클래식이라는 장르가 유난히 끌릴 뿐이었다. 나는 매일 알지도 못하는 다른 노래를 침대에 누워 들었다. 납작한 베개 두 개를 겹쳐서 베고, 나는 플레이어의 자그마한 바가 흘러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적막이었다. 분명히 노래는 틀어져 있는데 그 시간의 내게 온 세상은 적막이었다.

언젠가 짧은 리듬만을 기억하는 노래를 길가에서 들었을 때만 해도 그랬다. 당연히 제목은 모르는 노래였다. 그곳은 카페도, 이탈리안 식당도 아닌 평범한 옷가게였다. 다른 가게들이 이미 유행에 빠르게 녹슬어버린 노래를 틀고 있을 때 그 가게는 클래식을 틀고 있었다. 나는 그 익숙한 클래식의 리듬 때문에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시멘트벽에는 차가운 회색 페인트가 발려 있었고 너무 밝은 노란빛 조명이 가게 안의 옷들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니 노랫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렸다. 가게 주인인지, 아르바이트인지 알 수 없는 남자는 계산대에 기대어 서서 유일한 손님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옷들을 둘러보았다. 내 발자국 발자국 마다 그의 시선이 달라붙는 것 같아 나는 내 사이즈도 아니고 내 취향도 아닌 옷을 얼른 집어 들어서 계산대로 향했다.

만오천 원입니다.”

카드로 계산할게요.”

그럼 만칠천 원이에요.”

나는 별수 없이 만오천 원이었다가 만칠천 원이었다가 하는 옷을 사게 됐다. 바스락거리는 플라스틱 봉투가 내 손에 쥐어졌다. 스피커에서는 높은음의 현악기 소리가 쟁쟁 울리고 있었다.

저기요.”

나는 직원을 불렀다. 직원의 진갈색 눈동자가 노란 조명 밑에서 미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노래 제목이 뭐예요?”

차이코프스키요.”

차이코프스키의, 뭐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그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도 나와 동류일지도 몰랐다. 차이코프스키. 나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 이름을 되뇌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오전 두 시에 차이코프스키의 노래를 들었다. 나 역시 여전히 노래의 이름은 몰랐다. 그 가게에서 산 옷은 내게 너무 크고 무거웠지만 그래도 가끔 차이코프스키, 하는 이름을 나직하게 말할 수는 있는 정도였다.

차이코프스키.

오전 두 시의 미묘한 어둠 속에서 현악기가 조용히 흐느끼고 있을 때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당연하게도 그의 답은 없었다. 대신에 그저 그가 남기고 간 음악들이 이 세계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 노래 제목을 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내가 느끼기에 클래식의 제목들은 내가 결코 연주할 수 없는 악상 기호들로 채워진 하나의 악보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클래식플레이리스트에 들어있는 노래들의 제목을 아예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노래의 제목을 본 것은 그곳에 알 수 없는 악상기호가 아닌, 한글로 익숙한 차이코프스키의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차이코프스키가 아니라 차이콥스키였다. 설마 차이코프스키와 차이콥스키가 다른 사람이지는 않겠지, 생각하면서도 나는 인터넷을 켜 차이콥스키를 검색해보았다. 차이코프스키가 아니라 차이콥스키가 맞는 표현이라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차이콥스키보다는 차이코프스키가 좋았다.

그 이후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글자들을 나열을 바라보았다. 호두까기 인형. 이것도 익숙하나 이름이었다. 극에 대한 내용을 완벽하게 알지는 못해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 노래의 이름은 눈송이들의 왈츠라고 했다. 눈송이들의 왈츠. 나는 어두운 밤에 하늘하늘 떨어지는 눈송이들을 떠올렸다. 각각의 이름이 주어지지 않은 눈송이들.

아니, 어쩌면 내가 그저 그들의 이름을 모르고 있을 뿐일지도 몰랐다. 나는 문득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이름을 모르는 것은 나 하나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그런 생각들을 털어내었다. 그러자 남은 것은 차이코프스키, 라는 말을 뱉은 남자의 옅은 색조의 입술이었다.

 

나는 생각보다 그 옷가게에 자주 들러서 내 취향이 아닌 옷을 샀다. 내가 갈 때마다 머리를 짧게 자른 남자는 어서 오세요, 하고 카운터에 기대어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사실 옷보다 가게에서 나오는 클래식에 관심이 있어서, 몇 번 얼굴을 들이밀고 난 이후에는 노래를 듣기 위해 가게를 몇 바퀴나 돌기도 했다. 남자는 내가 그러든 말든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무슨 노래에요?”

리스트요.”

리스트라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대요.”

이름이 이상하네요.”

저도 이름이 이상한데.”

남자가 요령껏 옷을 포장하면서 말했다.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남자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남자는 태연하게 매장의 로고가 박힌 희고 두터운 비닐봉지에 내가 입지 않을 옷을 담았다.

저는 유리에요.”

유리요?”

정확히는 유, 리에요. 성은 유, 이름은 리.”

유리. 나는 나도 모르게 남자의 이름을 입속말로 되뇌었다. 유리.

어렸을 때부터 놀림 많이 받았어요. 이름이 유리가 뭐냐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 여기요.”

남자가 카드와 함께 비닐봉지를 건넸다. 나는 한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유리. 남자의 이름을 알아버린 이상 나도 무언가를 말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노래요.”

어떤 노래요?”

제가 처음 왔을 때 틀어져 있던 노래요. 눈송이들의 왈츠래요. 차이코프스키의, 눈송이들의 왈츠.”

나는 내 이름 대신 그 노래의 이름을 말했다. 남자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잠시간의 침묵 뒤에 남자가 뱉은 말이었다. 나는 하면 안 될 말을 한 것 같아 서둘러 그 가게를 빠져나왔다.

 

이제는 이름을 알게 된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이름이 유리인 남자를 떠올렸다. 그의 얼굴이 완벽하게 그려지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와 나는 점원과 손님, 딱 그 정도의 사이였으니까. 아마 그도 내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어쩌면 어둠이 내려앉은 이 오전 두 시에 자신의 이름을 내게 말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그에게 그 노래의 이름을 알려준 것처럼.

그때 나는 어째서 내 이름을 말하지 못한 걸까. 나는 몸을 돌려 휴대전화의 스피커를 등졌다. 그래도 좁은 방에서는 노랫소리가 쟁쟁하게 울렸다. 오늘의 노래는 오직 눈송이들의 왈츠의 반복이었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유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유리와 자신의 차이를 생각했다.

, 유리가 아니라 리, 라고 했지. 유는 성이고, 이름은 리. 하지만 나는 그를 리라고 부르는 것보다 유리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뿐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를 일은 앞으로 영영 없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눈을 감았다. 노래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뜬금없이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언젠가 내원한 적이 있는 신경정신과였다. 처음으로 그곳에 내원했을 때 내게 그 이유를 설명할만한 뚜렷함은 없었다. 지금처럼 어느 날 문득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길로 병원에 내원했을 뿐이었다. 내원 이유를 묻는 의사에게 나는 오전 두 시에 클래식을 듣는다고 말했다. 의사는 내게 수면 유도제를 처방했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 약을 먹을 적이 한 번도 없을뿐더러 그 이후로 그 병원에 내원한 적도 없었다.

이런 내가 갑자기 다시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이름 때문이었다. 차이코프스키니, 유리니 하는 그들의 이름이 머릿속에서 도무지 떠나지 않았다. 오전 두 시에 음악을 듣는 것은 문제가 되는 일이 아니지만 그것들에 집착하는 것은 문제이지 않을까. 나는 몇 주 전에 받았던 약을 꺼내 처음으로 수면 유도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그때까지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노래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고작 몇 주 내원하지 않았을 뿐인데 병원의 풍경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의자의 재질이 바뀌어 있었고, 한 잔에 백 원이던 커피도 이백 원으로 가격이 올라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병원 귀퉁이에 금붕어 몇 마리를 키우는, 내 키의 반만 한 수조가 생겼다는 점이었다.

나는 대기자 목록에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고는 그 수조 앞에 서서 금붕어들을 바라보았다. 치매기가 있는 노인이 누군가에게 자꾸 성을 내며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말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어떻게 하자는, 그러니까 이겼을 때의 혜택이나 졌을 때의 페널티 따위는 없었다. 그냥 가위바위보를 해야만 한다고 노인은 소리 지르고 있었다. 그런 시끌벅적함 속에서도 금붕어들은 적막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그 금붕어가 마음에 들었다. 어쩐지 편안함과 안정을 주는 것만 같다고 그러면 좋을까. 내 시선은 살랑거리는 금붕어의 지느러미에 향해있었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몇 번이고 불렀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종종 그런 경우가 있는 모양인지, 간호사는 지체하지 않고 다음 환자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알지 못한 문제를 가진 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유히 진료실로 들어갔다. 마치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멋대로 저 사람도 금붕어를 키우고 있겠거늘 생각했고 나 역시 금붕어를 키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제 삼킨 수면 유도제보다 그것이 훨씬 내게 적당한 처방일 것 같았다.

 

손바닥보다 작은 금붕어 한 마리를 키우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돈과 공이 필요했다. 나는 수조 바닥에 돌을 하나하나 깔았다. 빨리 작은 봉투에 담긴 금붕어를 수조로 옮겨주고 싶었다. 오전 두 시가 거의 다 된 시간이었고 나는 습관처럼 클래식을 틀었다. 오늘은 기분이 괜찮았다. 도리어 이제 익숙해진 그 리듬을 콧노래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분명히 금붕어 때문이리라.

금붕어의 이름은 유리였다. 유리. 떠오르는 이름이 그것밖에 없었다. 유리야. 나는 수조 앞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유리를 불렀다. 유리는 내 말에 그다지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유리는 도리어 아무 반응도 없었기에 나를 더욱 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유리야. 나는 금붕어를 부르며 옷가게의 그 남자를 떠올렸다. 그 남자는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내 이름을 말하려 입을 몇 번 뻐끔거렸지만 물속에 있는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게는 이름이 없었다. 물론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있었다. 하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것이 내 이름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유리라는 남자가 일하고 있는 옷가게에서 산 옷을 입을 때처럼 나에게 어딘가 무겁고 사이즈가 큰 옷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 이름을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사실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포기한 지 오래였다.

어쩌면 이 금붕어의 이름은 유리가 아니라 내 이름을 지어주는 게 더 적당할지도 몰랐다. 자기 이름도 말하지 못하고 뻐끔거리는 모습이 꼭 그랬다.

 

금붕어를 샀어요.”

그래요?”

나는 이번에는 일부러 가게를 뱅뱅 돌지 않고 바로 카운터로 향했다. 남자도 어차피 내가 옷을 사러 온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남자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예요?”

유리요.”

금붕어 이름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턱을 괴고 있는 남자의 머리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어떤 습관인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늘도 클래식이 울리고 있었다. 이 노래는 제목을 알았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동안 줄창 들었던 비발디의 사계였다. 분명히 이 노래에도 더욱 정확한 정보를 알려줄 이름이 덕지덕지 붙어있겠지만, 내게는 비발디의 사계 정도면 충분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남자가 입술을 움직였다.

, 좋아해요?”

아뇨.”

근데 왜 내 이름을 지어줬어요?”

그냥 생각나는 이름이 그것밖에 없었어요.”

남자는 눈을 깜빡여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오른쪽 눈꺼풀에 자그마한 점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름이 뭐예요?”

유리요.”

금붕어 말고, 그쪽 이름이요.”

지영이요.”

무슨 지영?”

.”

흔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이지영. 이 나라에는 수백 명, 어쩌면 천명 단위로 이지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유리와는 다르게, 지영이라는 이름은 오롯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 , . 이 세 문자로는 나를 도무지 정의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유리. , . 라는 이 두 글자는 저 남자를 얼마나 잘 묘사하고 있는가.

나는 유리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아주 조금 부러웠다.

저도 금붕어나 길러봐야겠어요. 이름을 지영으로 지어두게.”

나는 남자의 의중을 알 수 없어 잠시 남자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남자가 빙긋 웃었다. 나는 남자가 웃는 이유도 알 수 없었지만, 그에게 말을 걸었다.

매일 일해요?”

아뇨. 일요일은 쉬어요.”

그럼 그때 만나요.”

데이트 신청이에요?”

.”

저 안 좋아한다면서요.”

남자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좋아해야만 데이트 신청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이상한 사람이네요.”

싫은가요?”

아뇨.”

남자의 말투는 단호했다. 이런 걸 데이트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유리가 데이트라고 말하면 데이트가 맞을 터였다. 그래서 우리는 좋아하는 사이도 아니면서 오는 일요일에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유리가 자신이 좋아하는 카페에서 만나자는 얘기를 했다. 그곳은 클래식도, 철 지난 팝송도 틀어주지 않는 아주 고요한 카페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는데 남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언제부터 앉아있던 걸까. 나는 남자의 앞쪽에 있는 의자를 끌어 앉았다. 남자는 또 턱을 괴고 있었다. 나쁜 습관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영 씨.”

그렇게 안 부르면 안 돼요?”

그럼 어떻게 불러요?”

그냥, 그쪽이나.”

지영 씨는 저를 어떻게 부를 건데요.”

유리.”

그럼 저도 지영이라고 부를래요. 그래야 쌤쌤이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의지를 꺾기엔 내 의지가 너무 무력해 보였다.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매장 안쪽의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흘긋 남자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내가 알 수 없는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안도인지 실망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항상 깔끔하고 금방 나왔다. 나는 매장에서 마시고 간다고 말했음에도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나온 아메리카노의 빨대를 앞니로 살짝 씹었다. 남자는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 노래 들어봤어요.”

무슨 노래요?”

차이코프스키요.”

나는 차이코프스키가 아니라 차이콥스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우리 둘 다 차이콥스키보다 차이코프스키를 더욱 좋아하는 것 같았으니까. 차이코프스키는 내게 있어서 첫 번째로 주어진 이름이었고 나는 그다지 그것을 남들이 말하기에 더 옳은 것으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름을 알고 나니까 더 좋더라구요.”

그랬던가요.”

나는 살짝 접힌 빨대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정말로 아무 노래도 들리지 않는 카페였기에 남자와 나의 대화는 어째서인지 이 좁은 테이블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작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가게에 왜 그렇게 많이 왔어요? 옷도 안 어울리는 것만 사가더만.”

그냥, 클래식이 들려서요.”

클래식 좋아해요?”

좋아하는 건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요?”

, 남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여기는 아메리카노도 별맛이 안 났다. 무거운 쓴맛도, 가벼운 신맛도 없는 마치 노래도 이름도 없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맛이었다. 나는 한동안 입술을 빨대에서 떼어내지 않았다. 남자는 그동안 그 자세 그대로 나를 바라보았다.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잘 모르겠어요.”

자기감정인데 잘 모르겠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턱을 괴던 것을 그만두고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웃을 때면 남자는 안 그래도 앳된 얼굴이 더 어려 보였다. 자기 딴에는 그런 이미지를 피하려고 짓는 웃음인 것 같았지만.

남자는 뜨거운 음료를 시켰는지 종이컵을 양손으로 붙잡고는 자신의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그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내가 알 길은 없었다. 나는 또다시 빨대를 씹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럼 그런 거에다가 유리라는 이름을 붙여 봐요. 금붕어에게 유리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처럼.”

무슨 의미예요?”

이름을 붙이면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잖아요. 방금 그 감정은, ‘유리한 감정인 거예요.”

유리도 이상한 사람이군요.”

그래서 지영을 좋아하는 거예요.”

유리는 저를 좋아하나요?”

그의 고백에 설렜다거나 불쾌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별다른 느낌도 들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다만 나는 왜 그가 나를 좋아하는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냥, 정이 들었나 봐요. ‘유리한 감정이랄까.”

내 질문에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유리한 감정을 말했다. 나는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좋아했던가.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말했던 그때, 남자는 제 이름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어쩌면 남자는 그저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으니까. 아니, 그렇게 영악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의할 수 없는 감정에 유리라는 이름을 주면 마음이 편해질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것이 그의 이름인 것은 내가 나의 금붕어에게 유리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겠지.

유리도 역시 이상한 사람이에요.”

내 말에도 남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런 모습이 더 이상한 남자였다. 나는 더는 그 옷가게를 찾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유리한 감정 때문이었다. 더는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고, 더는 차이코프스키의 노래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이름을 잃어버리고 유리가 되고 있었다. 유리. 왜 하필이면 그의 이름은 유리인가. 너무나도 깨지기 쉽고, 깨져버리면 아플 것 같은 그런 이름을 가져서 왜 이 세상의 모든 것에 그 이름을 주어버려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나.

왜 나 자신까지 유리가 되게 만들어버렸나.

나는 내가 조금 더 싫어졌다.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고 유리가 되어버린 내가 싫어졌다. 나는 씹다 남긴 빨대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자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유리함이었다.

카페의 커다란 창문 밖에서 그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내가 떠난 자리를 한참 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너무 심하게 대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그의 앞자리에 다시 앉지는 않았다.

 

유리.”

내가 남자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며칠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전화 연결음이 길게 이어졌다. 그가 카페 영수증 뒷면에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서 내게 준 기억이 내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연락하고 싶을 때 연락해요. 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접어 지갑 안에 넣었다. 그러곤 그 뒤로 한동안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다가 오늘에서야 그 영수증을 급히 펼쳐 유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전 두 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왜요?”

남자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다. 어쩌면 남자는 자고 일어났을지도, 아니면 나처럼 눈물로 오전 두 시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아니라면 차이코프스키겠지.

유리가 죽었어요.”

남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죽은 유리가 자신이 아니라 내가 키우던 금붕어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아주 조금의 시간이 걸린 모양이었다.

왜요?”

모르겠어요. 유리는 제가 싫었나 봐요. 그래서 아예 가버렸나 봐요.”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문득 유리는 갑자기 흰 배를 보이며 죽어있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리는 갑자기 내 곁을 떠났고, 나는 평소처럼 이름을 찾아가며 클래식을 듣다가 그것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유리의 투명한 지느러미가 마치 그 부분만이 살아있는 듯 물살을 따라 살랑이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렸다. 그것은 수많은 유리들이었다.

있잖아요, 유리. , 이제 알 것 같아요. ‘유리하다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내 목소리가 너무 축축해서 내 것 같지가 않았다. 유리. 남자의 얼굴과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내 머릿속을 반복해서 지나갔다. 남자는 내 흐느낌을 들으며 내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슬프고 괴로웠다. 유리가 죽어서이기도 했지만 내가 느낀 이 유리라는 감정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도 있었다. 두려움. 그 두려움을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보이는 그 감정이 바로 유리였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유리의 얼굴과 유리의 눈동자. 물과 같은 두 개의 유리.

유리가 들어있던 수조가 터져 내 발을 축축하게 적셨다. 내 눈물과도 비슷한 유리’. 방바닥에 내팽개쳐진 유리의 지느러미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한 죽음이었다. 나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괜찮아요. 스피커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하는 말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제야 이름 붙여진 나의 유리에 대해 털어놓았다. 남자의 목소리엔 그런 힘이 있었다.

외로워요. 나는 계속 외로웠어요. 그걸 이제야 알아버렸어요.”

괜찮아요. 외로워도 돼요.”

남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달랬다. 나는 내 모습이 남자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흘러 내린 줄만 알았던 죽은 유리는 자세히 보니 여전히 수조 속에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유리를 어딘가에 버리거나 묻어줄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나를 감싸 안은 이 외로움처럼.

더 이상 유리하다는 말은 안 쓸래요.”

왜요?”

그러면 유리가 외로워지는 거니까.”

지영은 아직도 나를 좋아하지 않나요?”

그건그건 모르겠어요.”

이제 그게 그러면 유리한 감정이네요.”

남자의 말에 나는 눈을 끔뻑였다. 멎지 않은 눈물이 속눈썹에 맺혀 둥글게 떨어져 내렸다. 또 다른 유리가 생겨나고 있었다.

저는 그 유리가 좋아한다는 이름을 갖게 되면 좋겠어요.”

유리는 왜 그렇게 저를 좋아하는 거죠?”

“‘유리하기 때문이에요.”

그 말을 하고 남자는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냥, 좋아졌어요. 자주 얼굴을 보다 보니까 그런가. 그러니까 저에게 유리하다는 좋아하다네요.”

나는 결코 떠올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의 얼굴을 또렷하게 떠올렸다. 그렇지. 그의 눈꺼풀 어딘가에는 아주 작은 점이 있었지. 그리고 유리라는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 부드럽게 움직이는 입술이 있었지.

기다릴게요. 저는 지영을 떠나지 않아요. 유리는 아직 있어요.”

나는 유리의 말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유리는 그렇게까지 나를 기다리는지, 그리고 어째서 나는 유리가 그렇게까지 기다려주기를 바라는지. 그러나 지금 내 기분은 너무나, ‘유리했다. 나는 그래서 조금 더 눈물을 흘렸다.

 

(20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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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너는 태연하게 너다운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나도 너를 사랑해 하고 말했다. 나도 너를 사랑해.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던가. 하지만 너의 사랑과 나의 사랑의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저 너를 따라 기본으로 제공되는 이모티콘에서 적당한 것을 하나 골라 네게 보내곤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런 밤들이었다.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받지만 결국 내 안에서는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는 그런 밤들. 이것이 네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였다면 아마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에게 오해를 하다가 결국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맞겠지. 하지만 현실은 영화도 아니었고 이것은 너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더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질투심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결과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사랑해서 죽어버리거나 죽여버리고 누군가는 사라져버리고. 그 결과가 어떻든 어떻게든 그 감저이 끝이 난다는 것이 나는 부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너에게 사랑한다는 얘기를 하고 다양한 너의 이모티콘 중 하나를 선물받는 것뿐인데. 나는 너를 사랑하지도 못하고 사랑해서 죽어버리거나 너를 죽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너에게서 훌쩍 떠나버리지도 못하는데.

   나는 그 사실이 억울해서 아주 조금의 눈물을 흘렸을 때도 있었다. 너는 모르는 나의 눈물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매일같이 내일의 너와 마주하기를 두려워했다. 혹시 실수라도 해버려서 내 감정을 털어놓을까봐. 그래도 너는, 활짝 웃으며 나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겠지만. 너는 눈치가 없는 아이였고 나는 그것이 항상 좋기도, 싫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모습까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오늘도 너를 상상한다. 상상 속의 너는 아직까지 뚜렷하게 그려진 얼굴이 없다. 지금이라도 얼굴을 그리자면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너의 얼굴이 없는 것은 내가 네 얼굴을 그리기를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의 얼굴을 정말로 똑같이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상상과 현실의 괴리에 더 괴로워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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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구울 전력 60분 : 돌담길  # 고교생 AU

 

 

 

상승기류

 

Y A G I

 

커다란 눈송이가 하늘에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요모는 눈을 끔뻑이며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하늘이 세상을 낮게 가리고 있었다. 요모는 슬쩍 눈을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날씨가 제법 추워졌지만 우타는 여전히 교복 앞섶을 풀어헤친 채 다니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요모는 하얀 숨결을 뱉으며 생각했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요모도 우타도 둘 다 딱히 어떤 동아리에 들지 않아 두 사람의 하교는 항상 남들보다 빨랐다. 요모는 한산한 하굣길을 좋아했다. 우타의 집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요모보다 키가 아주 조금 더 큰 돌담길에 하얗게 눈이 쌓이고 있었다.

, 그거 알아?”

어떤 거?”

가만히 쌓인 눈을 바라보고 있던 우타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요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모는 조용히 우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재미있는 게 생각난 모양인지, 우타의 표정에는 그 특유의 미소가 만연하게 퍼져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돌탑을 쌓으면서 소원을 빈대.”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거지.”

요모는 흠. 소리를 냈다. 사실 소원이고 어쩌고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동하지 않았다. 그저 요모는 별 이유를 대지 않고도 우타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다는 게 좋았을 뿐이었다.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고 얼굴을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흔치 않았다.

우타가 사는 곳과 요모가 사는 곳이 정반대에 있음에도, 요모가 그것을 숨기고 우타와 함께 하교를 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면, 그 얼굴을 볼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지니까.

왜 하필이면 돌탑일까.”

쌓는 데 공을 들여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런가, 하고 우타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요모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평소보다 조금 더 톤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렌지도 해볼래?”

너는?”

좋아. 누가 더 잘 쌓나 내기하는 거야.”

요모는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주위에 있는 돌을 최대한 쌓아서 탑을 쌓았지만, 애초에 이런 길에 돌탑을 쌓을 만한 돌이 많을 리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의 돌탑은 낮고 어딘가 허술해 보였다. 우타는 그것들을 보며 맑게 웃었다. 내리는 눈과 비슷한 느낌의 웃음이었다.

둘 다 별거 없네.”

이래서는 소원 들어주러 오다가도 가버리겠다.”

그건 좀 싫은데. 우타의 말에 요모는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비록 결과물은 이래도 나름 열심히 쌓은 건데. 그래서 요모는 갑자기 자신이 쌓은 돌탑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것이 문득 우타를 향한 자신의 마음에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집에나 가자.”

.”

두 사람은 미련 없이 다시 발을 옮겼다. 아까보다 조금 더 엷게 쌓인 눈이 두 사람의 발아래에서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렌지는 무슨 소원 빌었어?”

그런 건 원래 말 안 하는 거잖아.”

그래도. 소원이 이뤄질지도 모르잖아.”

요모는 잠시 우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잔뜩 호기심이 동한 표정이었다. 요모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말 안 할래.”

그럼 나도 내 소원 말 안 해줄 거야.”

그러시던지.”

아쉽긴 했지만 우타의 소원을 듣는 대가가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라면, 요모는 과감히 그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우타는 자신이 우타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건데, 어떻게 그 소원을 말할 수 있을까. 요모는 자신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괜히 그 소원이 이뤄지는 상상을 해서 그랬다.

공연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요모는 우타의 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얼른 나오기를 빌었다. 요모는 발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을 그저 추위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우타가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이쪽으로 갈게.”

, 잠깐만.”

두 사람은 평소처럼 갈림길에 서서 인사를 나누려 했다. 우타가 요모를 잡지만 않았더라도 요모는 우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이 가지 않을 골목의 입구에 서서 아주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둘이 함께 걸었던 돌담길을 혼자서 되돌아 걸으며 우타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복기하려고 했다.

우타가 요모의 뺨에 입을 맞추지만 않았더라도 아마 요모는 평소처럼 그렇게 우타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요모의 차가운 뺨에 닿는 우타의 입술은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요모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참아버렸다.

, 하고 우타의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그 찰나의 순간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것만 같았다. 우타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말을 건넸다.

너무 쉬운 소원은 빌지 말았어야지. 모처럼의 기회였는데.”

내 소원, 그게 아니었는데…….”

진짜? 그럼 뭐였는데?”

잡는 거.”

요모의 말에 우타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요모는 괜히 고개를 돌려 우타를 바라보지 않았다. 진짜, 너무하다니까. 우타는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너무 쉬운 소원이잖아 그건.”

내 소원 말했으니까. 우타 네 소원도 말해줘.”

요모는 괜히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요모는 자신의 심장이 또 눈치 없이 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타가 자신과 비슷한 소원을 빌어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요모는 그런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우타는 일부러 뜸을 들이다 소중한 것을 말하는 것처럼 요모의 귓가에 손을 대고 작게 자신의 소원을 속삭였다.

렌이 사는 쪽으로 하교하는 거.”

알고 있었어?”

.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왜 지금까지 얘기를 안 해 준거지. 요모는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꼭꼭 감춰두고 싶었던 걸 제일 찾지 말아줬으면 하는 사람이 찾아버린 게, 괜히 신경에 걸렸다.

우타, 너는 눈치가 너무 빨라.”

그래서 싫어?”

아주, 아주, 아주 조금.”

렌지가 좋아서 렌지 한정으로 눈치가 빠른 건데.”

요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우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싫어?”

……아니.”

역시 렌지는 좋다니까.”

우타가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요모가 좋아하는 우타의 모습이었다. 하기사 싫어하는 모습이 존재할 수 있을 리도 없었지만. 요모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타는 요모에게 한 발짝 다가가 아까와는 반대쪽 뺨에 입술을 맞댔다.

이건 서비스야.”

요모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우타의 입술이 닿은 곳이 어쩐지 간질간질한 것만 같아 요모는 손끝으로 그곳을 만지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만 했다.

내일은 손잡고, 렌지 집 쪽으로 가는 거야.”

.”

잘 가, 렌지. 내일 봐.”

우타.”

?”

이번에는 요모가 우타를 불러 세웠다. 우타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요모를 바라보았다.

   “내일도해 줘.”

   “뭐를?”

   요모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우타가 꽤나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 더 장난 안 칠게. 내일도 해줄 거니까. 기대하고 있어, .”

   요모는 우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얀 눈에 가려 우타가 사라졌을 때 요모는 그제야 우타가 입을 맞췄던 자리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어째서인지 아직까지도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서, 요모의 심장이 또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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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13권의 이야기  #진단메이커

 

 

너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Y A G I

 

   삶의 바닥에 닿았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란 게 있었다. 요모 렌지는 발을 우뚝 멈췄다. 갖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감각이 요모의 신경을 거칠게 찔러대고 있었다.

   “우타.”

   “역시 렌지구나.”

   그림자 속에서 우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이 상황을 자신이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태연한 미소였다. 요모 렌지는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피에로의 방향과 목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요모의 눈앞에 있는 우타는, 그의 오랜 친구인 우타가 아니라 피에로라는 조직에 속해있는 우타라는 구울이었다.

   “켄을 따라가야겠어.”

   “당연히 안 되는 거, 알지?”

   카네키 역시 삶의 바닥에 닿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요모는 그런 그의 직감을 믿고 그를 식량조에서 이탈할 수 있게 도왔던 것이었다. 요모가 카네키의 일부러 카네키의 마지막을 배웅한 것은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우타가 여기 나타난 이상, 어쩌면 카네키의 끝은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몰랐다. 요모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뒤집어야만 했다. 카네키는 운명 따위에 굴복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요모 자신도 그랬다. 이 세상에 미리 정해진 것은 없었다. 삶은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엮인 것이라고, 요모는 믿었다.

   우타는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요모는 그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섰다. 보이지 않는 긴장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두 사람의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우타가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같네. 기억해?”

   “그걸 어떻게 잊겠어.”

   “기억해주고 있다니까 뭔가 기쁘네.”

우타는 여전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요모가 먼저 공격을 한다면, 우타는 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요모의 공격을 모두 피하거나, 반격을 할 것이다. 그렇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어쩌면 우타는 그때 끝내지 못했던 싸움을 이제야 끝내려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렌지는 그때 내가 어떻게 그렇게 강하냐고 물어봤었지. 그때는 대답 안 해줬는데, 지금 와서 답해도 괜찮을까?”

요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타는 천천히 원을 그리듯 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착하지 않으면 돼. 집착하지 않으면 강해질 수 있어.”

우타.”

렌지. 나는 렌지를 소중하게 생각해. 물론 카네키도 그렇지만, 내게는 렌지가 더 소중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지금 물러서 주면 렌지는 살려줄 수 있어. 렌지. 이건 친구로서 하는 말이 아니야. 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야.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렌지는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우타의 나긋한 목소리가 요모의 명치를 아프게 두드렸다. 이런 때 왜 우타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떠오르는 걸까. 그냥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있으면 좋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럴 때.

렌지는 어떤 선택할 거야?”

나는집착하지 않으면 강해진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어.”

, 그렇다면?”

강해지려면 집착해야 해. 내 삶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삶에.”

그런 삶은 재미가 없잖아.”

우타는 발을 뚝 멈췄다. 요모의 바로 앞이었다. 요모는 우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우타의 날카로운 눈꼬리가 조금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유감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오답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요모는 정답을 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기 때문에.

나는 재미로 살아가는 게 아니야.”

그런 모습이 재밌는 거, 알아? 열심히 살아보려고 버둥거리는 그런 모습이?”

그래서 나에게 좋아한다고 얘기한 건가?”

요모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우타와 친구로 지냈던 시간들, 그리고 애인으로 지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우타에겐 모두 그런 것이었나. 그러나 우타는 바로 표정을 굳히고 아니, 하고 답했다.

그런 거였으면 이런 선택지도 안 줬어. 나는 렌지를 아직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렌지의 앞에 있을 수 있는 거야.”

요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진심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렌지. 다시 한번 더 물어볼게. 정말로 피에로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질문을 이런 때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요모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타는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 우리는.

, 나는 기왕이면 네 옆에서 웃고 싶었는데. 어쩌면 이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우타가 손을 뻗었다. 요모는 그것을 피하려 했지만 우타의 손이 빨랐다. 우타는 요모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랑해, .”

마찬가지야.”

그들의 마지막 말이었고, 마지막 입맞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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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위에서

 

  Y A G I

 

나는 지금 내가 너를 죽인 무덤 위에 서 있다.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너는 한두 번 죽은 것도 아니고, 나 역시 너를 한두 번 죽인 것도 아니다. 네가 죽는 방식은 단순했다. 나는 너의 목을 졸랐고 너는 단 한 순간의 반항도 없이 축 늘어졌다. 그러면 나는 너를 바로 이곳에 묻는다.

이곳은 그렇게 특별한 곳은 아니다. 고라니가 뛰어다닌다는, 그리고 가끔씩은 멧돼지가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학교 뒤편의 얕은 언덕이다. 이곳에는 너의 것이 아닌 수많은 무덤이 있다. 누구 말로는 이곳에서 귀신이 나온다고 했다. 어쩌면 그 귀신은 나일지도 몰랐다. 수없이 너를 죽이고 묻는 과정을 반복하는 게, 귀신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어쩌면 너도 나를 이렇게 죽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알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이 손끝에서부터 정전기가 일어나듯 내 팔을 타고 오른다.

차라리 그래 줬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증오하는 만큼 너도 나를 증오했으면 좋겠어. 서로의 증오가 그 증오의 이유가 되었으면 좋겠어.

 

사실 너를 죽이는 것보다 너를 아예 떠올리지 않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처럼 너를 그렇게 다루는 것이 훨씬 더 깔끔하고, 아프지 않은 방법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또 너를 죽인다. 어쩌면 나는 너를 미워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끔찍한 생각이지만.

언젠가 꿈에서 너를 죽인 적이 있었다. 교차로였다. 땡땡 소리가 울리면 안전 바가 내려가고 곧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차가 한참 동안 지나가는,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교차로였다. 너와 나는 기찻길을 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는 웃고 있었고 아마 나도 웃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위험을 알리는 붉은 벨이 울렸다. 우리는 동시에 안전 바를 넘었다.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죽이고 싶었고 그만큼 사랑받고 싶었다.

기차가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꿈에서 깼다. 불쾌한 꿈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너를 두 번 죽였다. 유령이 나온다는 무덤가에서 뼈를 포함한 어떤 잔해도 남지 않은 장례식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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