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CAKE/도쿄구울

[우타요모] 연애담

Y A G I 2017. 10. 14. 02:24

#우타요모  #꽃집 주인 우타X연극 배우 요모

 

 

 

연애담

 

Y A G I

 

 

 

요모는 그를 처음 봤을 때 그가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몇 개의 술잔이 깨질 듯 서로 부딪혔다. 요모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탄산을 목 뒤로 넘기며 가볍게 인상을 썼다. 입안에 남은 달착지근함 때문에 요모는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누군가 요모 씨는 왜 술을 하지 않냐고 물었고, 요모의 바로 옆에 앉은 남자가 요모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얘한텐 술 먹이면 안 돼, 하는 소리를 했다.

왜요?”

얘 지금 입 꾹 다물고 있잖아. 근데 술만 들어가면 존나 주절댄다.”

, 맞아. 나 한 시간 동안 쟤 이야기 듣느라고 죽을 뻔한 적도 있어.”

나는 세 시간까지 버텨봤는데. 그 상태에서 술 더 먹여봤는데 체력이 좋아서 뻗지도 않아요.”

누군가 와, 하는 소리를 내며 웃었고 이야기는 빠르게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극단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항상 소란스러웠다. 요모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을 등의 팡팡 두드리는 남자의 손을 밀어냈다. 요모는 이런 자리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이런 자리가 싫으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답할 수 있었다.

다만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생각이 많아서 주변의 소란이 영 불편할 뿐이었다. 요모 렌지는 잔에 술 대신 사이다를 따라 마시며 아까 객석에서 보였던 그 남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히, 극이 끝나고 객석을 포함한 극장의 조명이 모두 하얗게 켜졌을 때였다. 주연을 맡았던 요모의 인사는 가장 마지막이었고 남자는 객석의 가장 앞줄에 앉아있었다.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려 허리를 숙였을 때, 그 남자와 눈이 마주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소극장은 항상 객석과 무대가 너무 가깝다고,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요모 렌지는 생각했다. 남자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 손으로 가볍게 손뼉을 치고 있었다. 요모와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고개를 가볍게 까딱하며 웃어 보였다. 그 미소 때문이었을까. 요모가 그를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것은.

요모는 그 극의 주연을 맡았던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조연이었다면 그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었을 텐데. 요모 렌지는 술잔을 가볍게 앞니로 깨물었다. 희미한 단내가 그의 코끝을 훅 적셨다.

 

솔직히 요모는 그를 더는 객석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딱히 없었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다. 원래 소극장에서 행해지는 연극이란 게 보통 그렇지 않은가. 한 번 보고 넘기면 그만인 것들.

그러나 남자는 몇 번이고 같은 극을 보기 위해 그 소극장을 찾았다. 요모는 항상 두꺼운 벨벳 재질의 커튼 뒤에서 그의 모습을 찾았다. 남자의 자리는 항상 변동이 많았지만 워낙 눈에 띄는 인상이라 그를 찾는 일은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희미한 조명을 받고 있는, 등받이조차 없는 길쭉한 나무 의자에서 남자는 항상 그 길다란 다리를 한쪽으로 꼬고 그 무릎 위에 예의 섬세한 손을 올려두고 극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모는 복잡한 문양이 그려진 타투를 한 번 더 눈에 담고 무대 뒤로 돌아 들어가곤 했다.

그 날은 그 극이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가는 날이었다. 요모는 마른세수를 했다. 마지막 무대는 뭐랄까, 항상 그의 속을 복잡하게 만들곤 했다. 시원섭섭한 감각이라고 하면 좋을까. 요모는 거의 모든 것에 쉽게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의 속에는 지금까지 그가 스쳐 지나온 수많은 미련 따위가 남아있었고 아마 이 연극도 그 미련의 일종이 되어 그의 기억으로, 그의 몸으로 바뀌게 될 터였다.

다만 그 이번에 남는 미련은 하나가 아닌 둘이란 점이 요모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래도 무대엔 올라야 했다. 마지막이기 때문에, 미련이 될 무대이기 때문에 더욱더 무대에 올라야만 했다.

사랑이란 것은 요모가 참여한 모든 이야기의 뿌리가 되는 감정이었지만 요모는 그 감정을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정확했다.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에게 그 마음을 고백하고 그와 함께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사랑이란 단어를 발음해 온 요모였지만 요모는 그 사랑을 얘기할 때마다 뭔가 마음속에 턱, 하고 걸리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하지만 마지막 무대에서 말한 사랑은 다른 날의 사랑과는 뭔가 달랐다.

?

작은 의문 하나가 요모의 머릿속에 박혔다. 왜 자신은 사랑한다는 대사를 말하면서 객석에 앉아있는 그 남자를 찾았을까.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요모는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자신 앞의 배우에게로 잡아끌어야만 했다. 입에 완전히 붙어버린 노래 가사처럼, 요모의 입에서는 막힘없이 다음 대사가 흘러나왔다. 좁은 무대 위에서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요모는 그제야 자신의 손이 아주 조금 식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은 왜 그 순간에 남자를 바라봤으며, 남자는 어째서 그때 자신에게 웃어 보였나. 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렸으며, 어째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자신의 아랫입술이 전에 없이 바싹 말라 있었는가.

무대 인사를 하며 요모는 평소처럼 그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지만 그가 있던 자리는 텅 비어있었다. 대신에 그곳에는 아주 작고 하얀 꽃이 피어있는, 요모가 알지 못하는 어떤 나무의 얇은 가지가 크라프트지에 싸여 남자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

 

렌지 씨.”

요모는 저도 모르게 몸을 멈췄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낯선 목소리였는데, 요모의 심장은 어째선지 아주 바쁘게 뛰고 있었다. 그가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꽃들이 요모를 둘러싸고 진하거나 옅은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요모는 장미 다발에서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녹색 앞치마를 두른 채 커다란 꽃의 묶음을 양팔로 감싸 안고 있던 남자가 요모를 바라보고 고개를 가볍게 까딱였다.

꽃집을 했군요.”

요모는 자신의 말이 첫인사로서 너무 바보 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꽃집 안은 너무 더워서, 요모는 아주 엷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남자는 꽃들을 조심스레 작업대 위에 올려놓곤 앞치마에 붙은 마른 잎들을 털어냈다.

, 사러 오셨나 봐요.”

…….”

천천히 보고 가세요.”

남자의 목소리는 요모의 생각보다 훨씬 톤이 높고 가벼웠다. 요모는 가볍게 떨리는 눈동자로 주변의 꽃들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두꺼운 가위로 꽃들의 줄기를 톡, 톡 끊어내는 소리가 들렸다. 날씨가 너무 덥고, 꽃의 향기는 너무 독했다. 요모는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것도 같았다.

저기, 그때 꽃은 잘 받았습니다.”

, 발견해주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직도 몰라서요. 이름을.”

우타에요.”

? 요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슬며시 웃어 보였다.

농담입니다. 꽃사과에요. 이름.”

우타. 요모는 속으로 그 이름을 되뇌었다. 알기 쉬운 이름이어서 다행이었다. 꽃사과, 가 아니라 우타. 우타, 가 아니라 꽃사과. 요모는 그 하얗고 작은 꽃을 떠올렸다.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객석에 홀로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던 꽃다발.

요모는 꽃을 말리는데 재능은 없었다. 유감이었다. 대신에 요모는 노랗게 말라버린 꽃잎과 이파리를 떼어내곤 얇은 가지를 아주 조심스럽게 찬물에 씻었다. 꽃사과. 요모는 이제 자신의 침대맡에 놓인 그 가지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누구한테 선물하실 건데요?”

그냥예쁜 것으로, 아무거나 추천해주세요.”

요모의 말에 우타는 흠,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가볍게 갸웃거렸다. 뭔가를 고민하는 그의 입매는 가볍게 힘이 들어가 그의 볼에 아주 얇은 보조개가 패었다. 잠시만요, 하고 요모를 두고 가게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온 우타의 손에는 작은 꽃다발 하나가 안겨 있었다.

이번에는 보라색의 작은 꽃들이 진녹색 줄기의 끝에 모여 피어있는 꽃이었다. 요모는 그것을 받아들며 마치 잘못 손대면 우수수 떨어져 버릴 것 같은 꽃들이라고 생각했다. 바삭거리는 포장지를 만지는 요모의 손길이 마냥 조심스러웠다.

그럼. 이걸로.”

이름이 뭔가요, 우타 씨?”

스타티스. 꽃말은, 직접 찾아보세요.”

거기서 요모가 할 수 있는 것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밖에는 없었다.

스타티스. 이번에도 역시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었다. 요모는 그 꽃을 원래 선물하려던 사람에게 선물하지 않았다. 꽃도 없이 축하 인사를 요모에게 남은 것은 상대의 가벼운 질책이 아니라, 그의 집 테이블에 곱게 올려져 있는 스타티스였다.

 

요모는 그 뒤로도 몇 번 우타의 가게에 들렀다. 그럴 때마다 우타는 항상 렌지 씨, 하고 요모를 나지막하게 불러 그의 시선을 끌었고 때문에 요모는 우타가 제 등 뒤에 서 있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돌아보지 않기도 했다.

요모의 침대 옆에는 목이 긴 화병이 놓이게 되었고 우타가 추천하는 꽃들이 늘어감에 따라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가까워졌다. 하지만 요모는 여전히 자신과 우타의 사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틈 하나가 존재한다고 느꼈다.

단 한 발만 용기를 내서 디디면 그쪽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깊이를 알 수 없어 발을 헛디뎠을 때 도대체 어디까지 추락할지 알 수 없는 틈이었다. 요모는 아무리 수많은 죽은 꽃들을 그사이에 던져버려도 그 틈을 채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요모는 종종 슬플 때가 있었다.

하지만 수만 갈래의 미련이 생겨도 시간은 흐르는 법이었다. 요모는 그것을 체감하고 있었고 그러는 와중에 그의 다음 작품이 결정되었다. 그와 가까운 몇 명의 사람들이 그에게 축하를 담은 꽃을 보내왔다. 왜 그 꽃들이 하나같이 새빨간 장미인지. 요모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끝이 노랗게 말린 꽃잎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렌지.”

우타.”

얇은 가디건을 걸친 우타의 손에서 두어 개의 열쇠가 절걱거렸다. 아주 천천히 가라앉던 노을이 이제는 완전히 그 모습을 숨겼고 어둠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곧 땅으로 떨어질 금성과, 그 뒤를 따라 떠오른 몇 개의 흐린 별들뿐이었다.

요모는 우타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투명한 꽃집의 유리문 안에서 수많은 화분들이 숨을 죽이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시간에 꽃 사러 온 건 아닐 거고.”

. 그냥. 문 닫을 시간 된 것 같아서.”

그럼, 마중?”

그런 거지.”

우타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싫어하는 느낌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요모는 생각했다. 열쇠가 돌아가며 잠금장치가 무겁게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공연히 자신의 옷자락을 만지작거렸다.

이만 갈까.”

. 우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요모는 갑자기 자신만 혼자 알 수 없는 무대 위에 오른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했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빌려오는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일 중 하나였다.

좁은 골목을 따라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흐리게 울렸다. 드문드문 떠올라 있는 하얀 가로등 불빛의 아래에서, 요모는 다음 작품이 정해졌다는 소식을 그에게 전했다. 잘됐네, 하는 그의 반응은 퍽 단순했다.

꽃이나 보내줄까?”

됐어. 사러 올게.”

하긴 나 주소도 몰라.”

알려줘?”

. 이따 적어줘.”

우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별 이야기 없이 나란히 걸었다. 사람도 그다지 없는 좁은 길이었다. 어딘가의 낡은 빌라에서 깜빡이며 켜진 형광등이 두 사람의 신발코를 비췄다.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

문득 통통 튀듯 요모보다 두세 걸음 앞서간 우타가 뒤를 돌아 요모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요모는 별말 없이 눈썹을 밀어 올리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다음 작품 하는 기념으로, 연기력 테스트나 한 번 해볼까.”

갑자기?”

그냥 헤어지기 아쉽잖아.”

그 말에 요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근처에 그의 집이 있는 것일까. 물론 주위를 둘러본다고 해서 그의 집을 찾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요모는 그저 불이 꺼져 있거나 켜져 있는 수많은 창 중에 그의 것이 있겠거늘, 하고 짧은 상상을 해 볼 뿐이었다.

그런 요모의 생각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타는 그저 유쾌하게 양팔을 벌려 보이며 고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렌지. 나를 연기해 봐.”

요모는 그 말에 긴 숨을 내쉬었다. 그때 요모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그의 손에서 시들어간 수많은 꽃들이었다. 대신에 이제는 하나하나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 그 꽃들. 요모는 무심코 손끝으로 자신의 아랫입술을 훑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자신은 무대 위의 배우였고, 우타는 그 관객이었다. 마치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 정도였다.

사랑해, .”

요모는 밤공기가 자신의 달아오른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요모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떴다. 괜히 우타를 바라보기가 힘들었지만 평생 그를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물아물 시선을 옮겨 바라본 우타는,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렌지는 의외로 나를 잘 모르는구나.”

무슨 의미야?”

나는 고백할 때 얼굴 안 붉혀. 사랑해, .”

요모는 그렇게 말하는 우타의 얼굴도 평소보다 상기되어 있다고 느꼈지만, 그에 대해 별말 하지 않기로 생각했다. 그저 밤의 가로등 불빛이 흔들려서, 그래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우타는 다시 몸을 빙글 돌려서 바로 옆에 있던 건물의 현관 앞에 섰다. 우타의 가벼운 발소리가 건물의 깊숙한 곳까지 울려 퍼졌다.

여기 우리 집. 렌지, 나 이만 들어가 볼게. 주소는, , 다음에 직접 놀러 갈게.”

그 말을 남기고 팔랑거리듯 건물 안으로 들어가던 우타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 요모의 말에 우타는 고개를 가볍게 왼쪽으로 기울이며 말을 꺼냈다.

, 꽃말은 찾아봤어? 스타티스.”

요모는 물론, 하고 그의 물음에 답했다.

 

 

 

***

풋풋한 이야기는 되게 간만에 써보는 것 같네요,, ,, ,, 그래서 사실 어케 써야할지 잘 모르겟엇음,,,,, 쩜쩜,, 그렇네요.

꽃사과와 스타티스의 꽃말은 직접 검색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일부러 꽃말을 첨부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제 또 다른 원고를 하러 갑니다... 원고 지옥에 빠진 야기님을 구할 수 있는 건 우타요모밖에 업네..... (우타요모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