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좀비물  #갑자기 삭제될 수도 있음

 

 

 

 

천사 케루빔은 신 앞에 선다

 

Y A G I

 

 

애인 있어요. 안은 박의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때 아마 자신의 애인을 떠올리고 있을 터였던 그녀의 표정은 어떠했는가. 안은 도무지 그 얼굴을 기억해낼 수 없었다. 안은 그저 박의 애인 있어요, 하는 그 말만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안은 그 목소리를 그렇게 오랫동안 복기할 만큼 그녀를 사랑했고 사랑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또 아니었다. 어쩌면 그 이상한 공간과 상황 속에서 안은 그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이 항상 혼자서 말도 없이 좀비들을 빤히 지켜보았던 박이었을지도.

안은 여전히 박이 준 유리 조각을 버리지 못했다. 굳은 피가 묻은 유리 조각은 안이 싸구려 팬시점에서 사 온 작은 박스 안의 새의 둥지 같은 종이 뭉치들 사이에 끼어있었다. 안이 직접 박과 그녀의 애인을 죽였던 그 유리 조각은 그렇게 의식적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실험실을 나가면 좀비가 된대. 점심시간이었다. 그들이 좀비를 접하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꼭 좀비 이야기를 했다. 안은 주로 그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안은 미간을 좁히며 그럴 리가 없잖아, 하고 그의 말에 답하곤 밥을 국에 말았다. 여기 와서 생긴 버릇이었다. 처음에는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억지로 삼키려는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단순히 습관으로 굳어버린 것이었다.

, 국가 기밀 같은 거라서 발설할까 봐. 영화 보면 그런 일 있잖아.”

안은 남자의 말에 허, 하고 숨을 뱉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물론 들어올 때 기밀 사항을 밖으로 누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좀비로 만들만한 나라는 아니었다. 아직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인권은 보장하는 나라였으니까.

물론 죽은 자들의 인권은 보장되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시체에 가까웠고.

나도 국가 기밀 하나 말해줄까?”

뭔데?”

너 이에 김 가루 꼈어.”

국가 기밀을 발설한 죄로 좀비가 되어야겠는데.”

안 그래도 이제 그 좀비 보러 간다.”

안은 의자를 뒤로 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같이 가. 남자는 안의 뒤를 따랐다.

좀비, 하면 요즘 사람들은 어기적거리며 걷은 좀비보다는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춘 좀비를 떠올리지 않을까. 달리거나, 매달리거나, 신체의 일부만 남아도 살아 움직인다거나. 하지만 현실의 좀비는 그와 달랐다. 본능만이 남은 썩은 짐승 같은 것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들은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존재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간과 별로 다를 것도 없나. 안은 눈앞의 좀비를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우리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는 것이라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안은 여전히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오늘의 피험체는 여성이었다. 원래는 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맡아야 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말에 안이 대타로 맡게 된 좀비였다. 포획되는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팔 한쪽의 환부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현실의 좀비들은 그저 죽었다 살아난 시체였기 때문에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음에도 안은 신체가 과도하게 손상된 좀비들을 왕왕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미디어에 길들여진 탓에 그들을 너무 강한 존재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피험체는 안을 먹고 싶어서 이를 딱딱거렸지만 의자에 묶인 상태에서 안을 먹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좀비들을 데리고 실행되는 인지 실험이 좀비에 대해 알아가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줄까. 안은 이 모든 것들이 보고서에 인지 능력이 떨어짐이라는 아주 짧고 건조하나 문장을 쓰는 것 이상의 가치가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서 실험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안은 실험을 위해 좀비의 앞에 간이 의자를 펼쳤다. 누군가 문을 힘없이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그때 안은 처음으로 박을 보았다.

박은 처음 보는 사람에 놀란 듯 잠시 굳어 있다가 옅은 갈색의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안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은 그녀의 창백한 피부를 보았다. 박은 이 실험에 자원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것치고 그녀는 실험에 최소한의 성의 이상을 보이지 않는 편이었다. 그녀가 이 실험에 자원한 것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피험체, 그녀에게는 절친한 친구였던 이 좀비가 죽는 과정을 마지막까지 보고 싶어서. 처음으로 그 보고서를 받았을 때 안은 박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안이라면 과연 흉하게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썩어가는 친구를 끝까지 보고 싶었을까. 안은 머릿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죽었다 살아난 좀비에게도 끔찍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 끔찍한 일을 박은 하고 있었다. 박은 자신을 위해 준비된 의자에 앉아 좀비를 바라보았다.

안녕. 오늘도 찾아왔어.”

박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톤이 높은 편이었다. 안은 뒤늦게 녹음기를 작동시켰다.

나는 지난밤에도 네 꿈을 꿨어. 기억해? 우리 둘이 한겨울에 한강에 찾아간 거. 완전 얼어 죽을 뻔했다고, 내가 한여름에 에어컨을 켤 때마다 네가 그런 말을 했잖아.”

피험체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를 딱딱거리거나 주위의 모든 것들에 무의미한 시선을 던지거나, 묶여있는 몸을 숙여 자신의 발가락이라도 뜯어먹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피험체, 인지 능력 없어 보임. 안은 메모장에 미리 써둔 그 문구를 다시 한번 보았다. 박은 과거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안은 마치 남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유쾌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것은 자신의 일이었기에 묵묵히 박의 말을 들었다.

박이 하는 말들은 정말로 사소한 일들이었다. 예를 들면 냉장고를 제대로 채워놓지 않았을 때 대신 마트 배송을 해줬다거나, 이전에 함께 본 영화의 감상이라거나, 네가 개를 무서워해서 지름길을 두고 빙 둘러간 이야기라거나.

실험자가, 이전에 개를 무서워했었나요?”

그의 질문에 박이 안을 돌아보았다. 박의 눈동자는 창백한 그녀의 피부와는 달리 예리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 대비되는 인상이 안의 마음에 박혔다. 안은 그것이 아주 오래오래 갈 것이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렸을 때 개한테 물린 적이 있다고 그랬는데, . 팔이 없어져서 확인은 못 하겠군요.”

어쩌면 그것은 안과 이 시설을 비꼬는 이야기일지도 몰랐지만, 안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안은 무언가 말을 더 건네려다 이 모든 대화가 녹음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박은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이후에 안은 이 피험체의 담당이 될 수 있는지 슬쩍 자신의 상사에게 전했다. 나머지는 말랐는데, 배만 나온 남자가 느물거리며 웃었다.

그 여자가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지.”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안은 자신의 가슴 한편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만 안을 잡아끈 것은 그녀의 얼굴이 아닌, 그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였다. 안은 그녀의 목소리를 조금 더 듣고 싶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향하지 않은 그녀의 묵은 기억들을 조금 더 알고 싶었다.

안이 그 피험체의 담당이 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창문을 통해 피험체를 바라보는 안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 좀비도 심장이 뛰고 있긴 할까. 안은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지만 굳이 알지 않으려고 했다.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건 박이 한 얘기를 다 듣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으니까. 안은 박의 이야기들이, 저 좀비가 아닌 자신에게만 향하기를 바랐다.

 

박은 처음 이 시설에 들어왔을 때, 피험체, 그러니까 그녀와의 관계를 무어라고 적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박과 그녀는 연인도 아니었고, 친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섹스 파트너도 아니었다. 박은 그 세 단어 중에서 어떤 것을 적어 넣을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박은 가장 먼저 섹스 파트너라는 가능성을 지웠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연인과 친구, 둘 중 하나였다.

박은 가장 먼저 연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한참 동안 그것을 노려보았다. 박과 그녀는 수시로 사랑한다는 말을 서로에게 건네곤 했다. 박은 그것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와 나는 연인인가. 하지만 박의 마음 어딘가에서 자꾸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녀가 나랑 연인이라니. 내가 누군가의 연인이 될 수 있다니.

불쾌하지 않은 것과 설렘은 분명히 달랐다. 사실 박이 그녀에게 뱉었던 사랑한다는 말은 그녀가 박에게 했던 말을 그래도 돌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박은 만약 자신이 좀비이고 그녀가 인간이었다면 그녀는 서슴없이 연인이라고 관계를 기술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박은 연인이라는 글씨가 보이지 않도록 그 위에 수많은 선을 그어 글자를 지웠다. ‘친한 친구’. 박이 결정한 그녀와 자신의 관계였다.

이 시설에서는 수많은 실험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향후 이 나라의 발전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 그 말을 들으면서, 그것의 공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적어도 자신이나, 좀비가 되어 목줄이 채워진 그녀가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박은 굳이 시설에서 다른 친구를 만들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지원자 모두들 누군가를 완전히 잃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필연적으로 그들의 절절한 감정이 박에게 와닿았고, 박은 그것이 영 불편했다. 박은 그저 그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조용히 생각을 하기 위해 이 실험에 자원한 것뿐이었다. 죽은 그녀라면 사실 자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 같은 걸 하더라도 그녀가 자신을 용서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물론 박은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어쩌면 자신을 안이라고 소개한 그 남자 때문일지도 몰랐다. 박은 그 말은 단둘이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설에서 그녀와 단둘이 있을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신에 박은 1인실 침대의 딱딱한 감각을 느끼며 그 말을 몇 번이고 말했다. 나는 너를 사랑한 적이 없어. 네가 지금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그 생각을 하고 박은 바로 두 번째 말을 철회했다. 그녀라면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만약 좀비가 된 그녀가 글을 쓸 수 있거나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자신과 박의 관계가 연인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터였다.

박은 그녀에게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아마 오늘 실험이 마지막이 될 거예요.”

   실험 전에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안이 박을 찾아와 한 말이었다. 박은 그것이 그렇게 놀랍지도 않았다. 확실히 박과 그녀의 대화라고 할 수도 없는 방백은 어떤 성과도 보이지 못했으니까.

   “실험이 끝나면 그녀는 어떻게 되나요?”

   박의 질문에 안이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다른 실험실로 옮겨질 거예요. 아마, , 신체적으로 조사를 하는.”

   “, 고문 같은 거요.”

   박은 말을 뱉고서야 자신이 안을 공격적으로 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화풀이였다. 박은 그 순간 자신이 진심으로 싫어졌다.

   “고문. 그렇죠. 고문이죠.”

   부정할 줄 알았던 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의 말을 긍정했다. 안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박은 그런 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안은 그 말을 쉽게 꺼내지 않았다. 그 정도로 험악한 고문을 받는다는 뜻일까. 박은 안을 빤히 바라보며 그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저기요.”

   “.”

   “혹시 애인 있어요?”

   아, 이쪽인가. 박은 눈을 깜빡였다.

  “, 애인 있어요.”

   “역시그러시구나.”

   “여기에 있어요.”

   박의 말에 안이 머쓱하게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박을 바라보았다. 여기에 애인이 있다면 자신과 같은 실험자라는 것일까. 안은 어쩌면 그것 때문에 이 실험에 자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가 그 생각을 바로 지워버렸다. 그럴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친한 친구였다. 안은 박을 바라보았다. 박의 기다란 속눈썹이 그녀의 눈 아래에 톱니바퀴 모양의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면, 이따 실험실에서 봬요.”

   “저기, 잠시만요.”

   안은 박이 자신을 붙잡은 것이 기쁘기도 하면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 조금은 슬퍼졌다. 분명히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겠지. 그녀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겠지. 여기의 사람들은 종종 실험자에게 죽은 이와 자신의 관계를 장황하게 늘어놓곤 했다. 실험자들은 보통 그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척 하면서 건성으로 넘겼다. 이기적인 사람들. 안이 그들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러나 박은 살아있던 피험체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휴대폰을 들고 가도 되나요?”

   “그건 규정상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러면, 뭔가 노래를 틀 수 있는스피커 같은 거는요?”

   안은 눈썹을 밀어 올려 다소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박을 바라보았다. 박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좋아했던 노래가 있어요. 혹시 그걸 들으면 반응할까봐.”

   “그 사람이, 고문을 받는 걸 늦추고 싶은 거예요?”

   “아뇨.”

   박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러면요? 안의 물음에 박이 눈을 질끈 감으며 그 질문에 답했다.

   “그 사람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 사람’. 안은 그 말이 마음속에 걸렸지만 이미 한 번 차인 상태에서 왜 자신의 애인을 그 사람이라고 부르느냐는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안은 호기심을 꾹 누르고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노래가 뭔데요?”

   “환희의 송가요. 베토벤.”

   “그 노래라면 저희가 준비할게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환희의 송가. 안은 박을 방을 떠나오며 자기도 모르게 몇 번이고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환희의 송가라는 제목만 들어도 익숙한 리듬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무엇에 대한 환희이고, 무엇에 대한 송가인지. 낯선 언어로 된 가사들이 어떤 뜻을 전하려하는지는 전혀 몰랐지만 안 역시 그 노래를 좋아했다.

박은 그 노래를 좋아할까. 애인이 좋아하는 노래라면 그녀도 좋아하겠지. 안은 피험체가 그 노래에 반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애인의 목소리에도 반응하지 않았는데, 고작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줬다고 반응할까. 하지만 안은 얇은 노트북에 그 노래를 다운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안은 피험체의 반응보다 박의 반응이 더욱 궁금했다.

애인이 아닌 그 사람이 좋아했던 노래. 안은 자신이 마음이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써 끝일 것이다. 피험체는 노래에 반응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고 그러면 다음 과정은 완전한 죽음뿐이었다. 박을 만나는 것도 그랬다. 안은 이것이 사랑이 아닌, 그저 호감이었을 뿐이라고 자신을 다스렸다.

 

박은 항상 힘없이 노크를 하고 실험실 안으로 들어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안이 말했음에도 박은 습관이라며 항상 노크를 했다. 박은 오늘도 자신을 위해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피험체는 멍하니 안도 박도 아닌, 창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노래를 준비해 왔어.”

그 말을 하고 박은 안을 바라보았다. 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켰다. 무거운 현악기의 소리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예상대로 피험체는 그렇게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노래가 울리는 곳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역시 인지 능력이 없는 건가. 안은 펜으로 메모장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어쩌면 자신도 피험체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박을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었으니까. 언제는 반응이 없기를 바랐는데. 인간의 사고라는 건 이토록 장황한 것이라고, 안은 혼자 쓰게 웃었다.

노래를 조금 더 뒤쪽으로 옮겨주세요.”

?”

뒤쪽에, 가사가 있는 부분을 들려주세요.”

박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힘이 있었다. 안은 플레이어의 바를 조금씩 뒤로 옮겼다. 온갖 현악기와 관악기의 소리가 범람하고 있었다. 가사가 나오는 부분은 안의 생각보다 훨씬 뒤에 있었다. 노트북의 터치패드로 일곱 번이나 바를 옮겨야 그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목소리가 두껍고 낮은 남자가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피험체는 그 목소리에는 그다지 반응하지 않았다. 안은 박이 짧게 한숨을 쉬는 것을 들었다. 바로 옆에 있는 노랫소리보다 그 한숨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피험체가 반응을 보인 것은 안이 더 이상 의미 없는 이 노래를 끄려고 터치 패드를 조작했을 때였다. 피험체가 순간적으로 고개를 뒤로 꺾어 안을 바라보았다. 이 피험체는 그다지 공격성을 띠지 않은 좀비여서, 안은 그녀의 반응을 보고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피험체는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나오지 않는 숨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려 하는 것처럼. 안은 박을 바라보았다. 박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박의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 있어 안은 박의 표정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안은 노래를 껐다. 피험체는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마치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을 때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는 것처럼. 환희의 송가. 안은 메모장에다 노래의 제목만을 적었다.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Tochter aus Elysium

Wir betreten feuertrunken, Himmlische, dein Heiligtum

Deine Zauber binden wieder Was die Mode streng geteilt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각주:1]

 

박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환희의 송가였다. 안은 녹음기를 껐다. 박은 분명히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다. 즉 이 이후의 이야기는 실험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는 뜻이었다.

박의 목소리는 높고 아름다웠다. 박의 목소리는 정말로 환희에 가까운 것이라고 안은 생각했다. 박은 익숙한 리듬을 천천히 짚어나갔다. 안은 눈을 감고 박의 목소리를 들었다. 노래가 끝난 이후에도 박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안도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방의 중앙에 묶여있는 피험체만이 몸을 흔들며 소리도 나지 않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만 가볼게요.”

간이 의자가 덜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은 박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결국 박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 뒤로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좁은 어둠 속에서 안은 이어폰을 꽂고 환희의 송가를 듣고 있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박의 목소리가 자꾸 안의 머릿속에서 겹쳤다.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목소리였다.

그때 힘없는 노크 소리가 이어폰의 사이를 뚫고 안의 귀로 들어왔다. 들어오세요. 안은 노크 소리만으로도 그것이 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은 낮에 봤던 모습 그대로 안의 방에 들어왔다.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불을 켤 생각을 않았다. 어둠 속에서 박은 바퀴가 달린 싸구려 의자에 앉았다. 그녀가 앉자 의자에서 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이 끼고 있던 이어폰에서 환희의 송가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안은 얼른 음악을 껐다. 그러자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고요가 내려앉았다.

저는 사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박이 말을 꺼냈다.

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은 내 연인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친구도 아니에요. 그러면 저에게 있어서 그 사람은 대체 어떤 존재였을까요.”

박이 쏟아내듯 말했다. 안은 도대체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알 수 없어서 어둠 속에 묻혀있는 그녀의 얼굴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그 사람한테 너무 미안했어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해버려서. 하지만 헤어지고 싶지는 않아서. 근데 그건 그 사람도 마찬가지였나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애인의 목소리엔 자기 발가락이나 먹으려고 애쓰다가, 노래를 틀어주자마자 반응을 보였잖아요. 그 사람에게 있어서 저는 그 노래 이하인 거예요.”

그 말을 하고 박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박은 또다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 노래를 끝낸 박이 어두운 창밖을 보았다. 안의 방은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구석에 있었다. 그걸 눈치챈 순간 박은 안의 방이 좋아졌다. 박의 방은 밤만 되면 달빛이 햇볕처럼 내리쬐는 곳이었다. 그 밝은 그림자를 볼 때마다, 박은 신 어쩌고 하는 것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웠다.

근데 왜 이제 와서야 제가 그 사람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그래서 박은 안의 방에 와서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좀비 따위를 만들어 낸 신에게는 들려주고 싶지 않은 목소리였다.

제가 왜 하필이면 여기에 온 줄 알아요?”

안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단순히 박이 이 건물 안에서 아는 사람이 안 밖에 없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 사람도 안 씨에요. . 당신이 아는 안 씨는 몇 명이나 되나요. 저보다는 많겠죠. 저는 고작 그 사람이랑 당신 두 사람만 알고 있는데.”

박이 한숨처럼 말을 꺼냈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안은 할 말을 찾지 못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안의 눈에 비치는 것은 어둠밖에 없었다. 노래, 다시 불러줄 수 있어요? 오랜 생각을 끝낸 안이 간신히 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박은 고개를 저었다. 더는 그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아요. 박의 말에 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에 텅 빈 창밖을 내다보던 박이, 지나가는 이야기를 하듯 안에게 질문을 했다.

좀비한테 물리면 좀비가 되나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아니,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돼요. 영화랑 똑같은 점이 있다면 그것뿐이에요.”

제가 좀비가 되면 어떨 것 같나요?”

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박은 입술을 놀리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나를 죽여줄 수 있어요?”

아뇨.”

노래, 불러줄게요. 죽을 때까지 그 노래를 불러줄게요.”

그래도, 아뇨.”

한 번만 그 사람을 다시 안아보고 싶어요. 안기면 저도 좀비가 되겠죠. 좀비가 되면 저도 저런 실험을 받나요. 들리지도 않는 말들을 듣다가 안 되면 실험대에서 잘리고 부서지는 거로 끝을 맞이하게 되나요.”

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박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죽은 자에게 인권이란 없었다. 먼 미래에는 생길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없었다. 만약 박이 좀비가 된다면 그녀는 그녀의 말대로 말도 안 되는 인지 시험을 하다가 해부당해 죽을 운명이었다.

박이 그런 결말을 맞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안은 과연 박이 그런 결말을 맞기를 원하는가.

혼란스러운 안과 달리, 박은 어디서 났는지 휴지로 둘둘 감싼 유리 조각을 꺼내 안에게 건넸다. 딱 안의 손바닥에 들어오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었다. 안은 그 섬뜩한 단면을 바라보았다. 이런 거로도 사람은 죽었다. 썩어가는 좀비라면 더더욱 죽기 쉬웠다. 어려운 것이 있다면 안의 마음가짐이었다. 박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마음가짐. 안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건 어디서 났어요.”

얼마 전에 좀비. 좀비 하나가 유리창을 깼잖아요.”

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물게 과도한 폭력성을 보이는 좀비였다. 그의 부모에 따르면 생전부터 그는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 얻은 것이 과거 기억이 좀비를 구성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박은 자살을 위해 그중에서 가장 날카로운 유리 조각 하나를 숨겨왔다. 안과 박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는 어떻게 됐나요.”

죽었어요.”

어떻게 죽었나요.”

군인들이 그의 머리에 총을 쐈어요.”

그래도 그는 해부되지는 않았군요.”

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더 이상의 괴로움도, 아픔도 없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죽음.

나를 사랑해줄 수 있어요?”

박은 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총명한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었다. 안은 제 손안의 유리 조각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좀비에게 인권은 없어. 그들을 죽여도 살인죄 같은 게 성립할 리는 없었다.

물론 일자리에서 잘릴지도 몰랐지만. 안은 차라리 그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은 휴지 뭉치로 둘둘 쌓인 유리 조각을 꽉 쥐었다. 벌써부터 피가 배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박의 연인은 목줄이 채워진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좀비라기보다는 그냥 시체에 더욱 가까운 편이었다. 가끔 먹을 것, 그러니까 인간이 앞에 있을 때나 본능에 따라 이를 딱딱거리는 그런 존재.

박은 그녀의 앞에 앉아 애틋한 눈빛으로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인간을 먹기 위해 허우적댔을 그녀도 지금은 잠잠히 박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이미 부드러운 날개들이 머무는 곳에 도달해 있는 사람 같았다. 박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박의 연인도 소리 없이 노래를 불렀다.

박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천국에 가지 못해도 좋아. 박이 웅얼거린 말이었다. 이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천국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끔찍하게 길고 긴 고요뿐이었다.

사랑해. 이번엔 진심이야. 진짜, 진짜 사랑해.”

박은 자신의 애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썩어가는 냄새가 났지만 그런 것쯤은 상관없었다. 이제 자신도 곧 썩어가기 시작할 테니까. 다시 땅으로 돌아가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었으니까.

좀비들을 지배하는 것은 식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박의 애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좀비는 인간을 물어뜯었고 인간은 통증 속에서 노래를 불렀다. 낙원의 딸들이여. 우리 모두 성소로 돌아가자. 돌아가자. 박은 어딘가 고장 난 것처럼 그 부분만을 반복해서 불렀다. 안에게 약속한 대로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안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된, 어떤 신에게 자신의 영혼을 바치는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유리 조각 때문에 안은 마음이 아팠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안은 일자리에서 잘렸다. 그리고 그는 그 뒤로 다른 자리를 구하지도 못했다. 다행인 것은 좀비와 함께했던 실험실이 특히 급여가 높은 곳이었다는 것뿐이었다. 안은 법원에 갔지만 그가 죽인 것이 인간이 아닌 좀비이기 때문에 그에게 살인죄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것은 당연하게 흘러갔다.

애인이 있어요. 안은 또 그 말을 떠올렸다. 안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박의 모습이었다.

이제 안은 환희의 송가의 가사가 독일어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 가사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고, 다소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박과 그녀의 애인이 좋아했던 부분을 따라 부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안은 더는 그 노래를 듣지 않았다. 가끔 그들을 죽인 유리 조각이 들어있는 상자를 무릎에 두고 그 노래를 부르기만 할 뿐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안은 검게 변색된 두 인간의 핏자국을 보았다.

오늘은 그들의 기일이었다. 좀비로서 죽은 날이 아닌, 인간으로서 죽은 날이었다.

안은 일인용 소파에 앉아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안은 그들의 죽음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죽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천사 케루빔은 신 앞에 서 있었다. 에덴동산에 더 이상 부정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안이 실낙원의 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하게 남은 것이었다.

 

(200*73.5)

  1.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광채여, 낙원의 딸들이여. 우리 모두 정렬에 취해 빛이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시키는도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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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물  #퇴고 봐서 다시 올림

 

 

 

메시아를 듣는 밤

 

Y A G I

 

 

1

 

그녀의 죽음에 내가 했던 그 말이 관련되어 있을까?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녀는 사고로 죽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가능성이 현저히 낮은 것이었지만 나는 도무지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이것을 나의 삶의 이유로 삼으라고. 그러니까 그녀의 몫만큼 내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말을 했지만 사실 나에게 그 말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그녀를 대신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간다는 것일까? 아니 그 전에 내 생각이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 맞을까? 그것은 그냥 내가 그녀를 기억하는 방식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아무 문제도 없어지는 것일까.

나 왔다.”

내가 학교에는 오기 싫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텅 빈 손을 무안하게 털고 있는 아저씨를 보자니 아저씨도 이제는 어느 정도 내 생각에 동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거봐. 내가 괜히 학교 오지 말자고 그런 거 아닌데. , 그래도 지금 와서 누군가의 탓을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우리들의 생존을 위한 약속이었다. 어떤 결정이 안 좋은 결과를 낳더라도 누군가의 탓을 하지 않기.

허탕 쳤나 봐.”

. 애초에 편의점에 장기 보관이 가능한 음식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조금 더 나가면 마트 하나 있던데 내일은 거기 가볼까 생각 중이야.”

예전에 여기서 누가 살았을까?”

지애 언니의 물음에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하곤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나무 책상이 뒤로 조금 밀리며 끼익, 소리를 뱉었다. 아무튼 수고했어요. 지애 언니의 말을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얇은 창문이 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겨울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겨우 늦여름을 벗어났는데도 벌써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시 사회로 돌아간 것 같아. 언젠가 지애 언니가 말했다. 그때도 아저씨가 먹을 것을 구하러 떠났을 때였다. 그때 우리는 지애 언니가 일하던 빵집에서 살고 있었다. 곰팡이로 뒤덮인 빵들을 모두 밖으로 내다 버렸음에도 빵집에서는 어쩐지 밀가루 냄새가 계속 났다. 우리는 빵집의 잿빛 타일 바닥에 앉아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빵을 진열하던 나무 진열대의 차가운 온도가 등으로 옮겨 붙고 있었다. 검은 핏자국으로 더러워진 창문으로 하얀 달빛이 비춰들었다. 그 사람들은 낮에 그렇게 다니면서 덥지도 않을까? 지애 언니의 목덜미에서는 짙은 땀 냄새가 났다. 나는 이제 그런 거 못 느끼지 않을까, 하고 답했다. 그것들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나는 아직 그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나나 지애 언니, 아저씨,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사람들과는 너무 다르니까. 그들은 영화 속에서나 보던 존재였다. 그들이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이 존재하는 세상이 너무나 끔찍해서 아무도 그런 상상을 하고 싶지 않아 할 것 같았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그들은 양팔을 앞으로 죽 뻗고 있지는 않았다. 아니 팔을 뻗는 것은 좀비가 아니라 강시였던가? 아무튼 그들은 그냥 발이 아픈 사람들처럼 발을 바닥에서 떼지 않고 걸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빠르게 걸을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와 달리 그들이 달리지 않는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들이 달리기를 아주 능숙하게 할 수 있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아마 더 지금보다 더 살아남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지애 언니는, 자살 시도를 하기 전에 그들에게 잡혀 찢겨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나나 아저씨의 미래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가끔 문손잡이를 잡고 흔들곤 했다. 세로로 긴 나무 손잡이를 힘없이 흔들었다가, 덜컹거리는 문을 손바닥으로 쿵쿵 두드렸다가, 다시 문손잡이를 흔드는 일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새 모양 장식이 매달린 금색 차임벨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손님 같아. 지애 언니가 속삭였다. 그들이 돌아간 이후 우리는 빵집에 남아있던 종이와 네임펜으로 휴업이라는 두 글자를 크게 써서 문에 붙였다.

“‘CLOSED'가 더 낫지 않을까? 요새는 그거 더 많이 쓰잖아.”

걔들이 영어를 읽을 수 있을까.”

아저씨가 무릎을 꿇고 앉아 글씨를 쓰고 있는 지애 언니와 그걸 지켜보고 있던 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시큰한 땀 냄새와 밖에서 묻어나온 썩은 공기가 섞여 콧속으로 달려들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냄새라 처음처럼 헛구역질을 하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그 냄새가 조금 껄끄러웠다. 나는 자리를 왼쪽으로 살짝 옮겼고 아저씨는 쪼그려 앉아 지애 언니가 글씨를 쓰는 것을 바라보았다.

한글은 읽을 수 있어?”

몰라. 영어보단 낫겠지.”

그 말을 끝으로 아저씨는 잠을 좀 자야겠다며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지애 언니는 막 붙인 종이를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영어니 한글이니 하는 문제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해가 뜨고 있었다. 어디선가 몸을 사리고 있던 그들이 다시 밖으로 기어 나올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우리는 2층의 한 교실을 거점으로 두고 살았다. 바로 옆에 우측 계단이 있는 2학년 교실이었다. 이곳을 거점으로 삼은 것은 간단했다. 창문이 그나마 덜 깨져있고, 크게 더럽지도 않고, 바로 옆이 계단이라 이동이 편하다는 것. 그리고 내가 다니던 학교라 지리를 잘 알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학교에는 의외로 그들이 많지 않았다. 다들 죽어서도 학교는 싫어하는구나……. 아주 본능적인 녀석들이야. 교실 문의 자물쇠를 잠그며 아저씨가 말했다. 낮에만 좀 조심하면 될 것 같아. 우리는 교탁과 책걸상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문 앞에 쌓았다. 사물함도 몇 개 가져다가 썼다. 그 모든 작업을 조용히 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밤에 그들의 감각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었기 때문에. 이사를 끝낸 후 한숨을 돌리고 있었을 때 창밖에서는 시뻘건 태양이 제 모습을 뽐내기 위한 준비의 마무리를 하는 중이었다.

교실의 아이보리색 커튼이 너무 얇아서 교실 안이 환했다. 마트 가는 김에 창문을 막을 것도 가져와야겠어. 아저씨의 중얼거림을 귓가로 흘리며 나는 몸을 뒤척였다. 얇은 담요가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이 바닥에서 이러고 잠잘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그녀도 지금쯤 밖에서 배회하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내가 쓰던 삼 학년 교실은 일 층에 있었다. 나는 그 교실을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녀의 흔적들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았다. 중학교 교복을 처음 입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날씨를 좋아하는지. 너도 다른 아이들처럼 고등학교는 공학으로 가고 싶은지.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녀의 답을 듣고 난 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중학교 교복을 처음 입을 때는 학교 교복이 좀 촌스럽다고 생각했어, 색깔이 이상해서. 나는 비 오기 직전에 물비린내가 나는 날씨를 좋아해. 나는 너와 같은 학교에 가고 싶어. 나는 너를 좋아해. 그녀와 조금 더 가까워지길 기다리며 아껴두었던 질문들이었는데.

그녀의 무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녀의 무덤으로 찾아가고 싶어졌다. 그녀의 텅 빈 무덤에 그녀 대신 내 죽은 말들을 매장하고 싶었다. 아니, 그녀는 어쩌면 묘지에 묻히기 전에 좀비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쪽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이 말들을 어디에 묻어야 하는 것일까. 그녀의 무덤을 내 손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녀가 돌아갈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다시 죽은 시체가 되었을 때 고요히 잠들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저씨는 피곤한지 코를 골았다. 지애 언니는 잘 자고 있을까? 지애 언니는 원래 잠을 잘 못 자는 편이었다고 그랬다. 예전에 지애 언니가 약국에서 파는 수면 유도제들의 이름을 읊어준 적이 있었다. 레돌민, 스피녹스, 슬리펠, 아론, 아졸……. 생소한 단어들이 지애 언니의 입에서 노래처럼 흘러나왔다. 레에돌미인, 스피이노옥스……. 그거 다 먹어봤어요? 서로 반말을 하자는 약속이 있기 전이라 그때의 나는 언니에게 존댓말을 했다. 지애 언니는 그 질문에 싱긋 웃기만 했다. 그러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약 이름을 읊을 때와 비슷한 음정이었다.

복도에서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 중 누구도 이 교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우리의 잠이 완벽하게 보장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법 소녀가 변신할 때 괴물들이 건드리는 일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잠을 자고 있을 때는 그들이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아주 불공평한 일인 것처럼.

아저씨의 코골이가 익숙해진 귀는 더 이상 그 소리들을 잡아내지 못했다. 나는 내가 잠을 자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이 교실에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이 아주 어이없는 생각이란 것을 알면서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를 제때 자르지 못해 제멋대로 자라기 시작한 머리카락이 뒷목을 자꾸 찔렀다. 나는 머리를 몇 번 가볍게 흔들었다. 문득 목덜미를 찌르는 것이 내 머리카락이 아니라 늦여름 햇볕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나는 아저씨가 빨리 창문을 가릴 무언가를 찾아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2

 

손전등 불빛이 경비실의 노란 장판을 비췄다. 문이 닫혀있어서 아무도 못 들어왔나. 아저씨가 손전등의 고무 버튼을 누를 때마다 노란 불빛이 깜빡였다. 장판 위에는 파란색의 여름용 침구 세트가 널브러져 있었고 그 위에 하얀 먼지가 엷게 뒤덮여있었다. 이리저리 불빛을 휘둘러보는 아저씨 때문에 나는 눈앞이 조금 어지러웠다.

네가 말하는 그 애는 어떤 애였어?”

경비실 문손잡이를 돌리기 전에 아저씨가 슬쩍 말을 꺼냈다. 손전등 불빛은 이제 내 발밑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무대 위에서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냥 음, 평범한 애였어. 머리가 길었는데, 지금 지애 언니처럼 매일 올려서 묶고 다녔고…… 아 키도 컸어. 키도 컸고…….”

눈에 그늘이 질 것처럼 속눈썹이 길었고, 쌍꺼풀이 아주 짙은 아이였고, 입술은 분홍색 장미를 말린 것 같은 색깔이었고, 복사뼈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튀어나와 있었고. 그녀가 살아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자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아랫입술을 잡아 뜯는 그녀의 하얀 앞니를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한 박동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의 죽음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죽었을까. 그 입술은 어떤 모양으로 벌어졌으며 그 둥그런 무릎 관절은 어떻게 뒤틀려 있었을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는 노란 햇볕을 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바닥으로 흘러넘치는 그녀의 새빨간 피와, 여름 햇볕과, 그 날카로운 눈꼬리에서 떨어져 내릴 투명한 눈물 몇 방울과. 은색 자동차에 묻었을 그녀의 흔적. 그 흔적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애도 학교를 싫어했어?”

, …… 공부를 잘했으니까, 좋아하지 않을까?”

공부를 잘하는 것과 학교를 좋아하는 것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답을 했다. 아저씨는 음, 소리를 내더니 경비실의 문을 열었다. 데려다줄게. 나는 아저씨의 손을 잡고 경비실 옆의 계단을 올랐다. 어둠에 뒤덮인 계단은 밟을 때마다 뒤틀리는 소리를 뱉었다. 1층과 2층 사이의 층계참에서 나는 그 아래를 한 번 더 내려다보았다. 계단의 끝은 벌써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 애는 지금 어디 있을까?”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척, 교실의 문을 열고 바리케이드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그녀는 무덤 속에 있으면 했다. 아니면 화장되어 뼛가루로 납골당에서 죽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가. 우리는 햇볕 아래서 썩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았고 나는 그녀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가 더 이상 흉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도움 될 만한 것이 있나 찾아보러 가겠다던 지애 언니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두운 달빛이 교실바닥을 쓸었다. 나는 바닥을 더듬어 라이터를 찾았고 그것으로 양초에 불을 피웠다. 발간 불빛이 달빛을 밀어내고 미미한 온기를 주위로 천천히 퍼트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장을 입고 있었다. 아저씨는 자신이 공무원이라고 그랬다. 아저씨는 그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랬고 그래서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자신이 너무 꼴 보기 싫다고 그랬다.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자기는 무서운 걸 싫어해서 공포 영화도 못 보는데. 지애 언니가 그때 빵집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자기는 그 앞에서 죽었을 거라고 그랬다. 그리고 그건 지애 언니도 마찬가지였고.

지애 언니는 문손잡이에 포장용 리본을 묶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모아뒀던 수면 유도제를 한꺼번에 먹고, 거기에 목을 맨 채 앉거나 누우면 편하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 녹색이 좋을까, 붉은색이 좋을까? 두 가지 색의 끈을 손에 쥐고 끈의 색을 고르고 있던 지애 언니의 눈에 아저씨의 모습이 비쳤다고 했다. 지애 언니는 마치 만화처럼 아저씨의 얼굴에서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발견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지애 언니는 문을 열었고, 아저씨는 멀리서 다가오는 좀비들을 한 번 바라보았다가, 누구에게 초대받은 것처럼 실례합니다하고 빵집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아저씨는 지애 언니 손에 들린 끈들과 바닥에 떨어져 있는 약통을 보고 상황을 얼추 눈치 챘으나 아무 말 하지 않았고 지애 언니는 그런 아저씨에게 크림빵 하나를 가져다주었다고 했다. 좀비들은 크림빵을 한입 베어 무는 아저씨를 빵집의 커다란 창밖으로 바라보고 있었다고 했다. 아저씨는 마치 연극배우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때 아저씨의 역할은 크림빵을 먹으며 눈물 흘리는 생존자인 것 같았고, 그래서 아저씨는 크림빵을 먹으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나는 손톱을 세워 바닥에 굳어있는 촛농을 떼어냈다. 지애 언니와 함께 언니의 수면 유도제를 구하기 위해 약국으로 갔을 때 그 얘기를 들었다. 아저씨와 지애 언니가 처음 만난 이야기. 지애 언니는 약들이 늘어져 있는 찬장에서 수면 유도제를 잔뜩 긁어모으고 있었다. 이제는 필요 없어져 모두 빵집에 버리고 온 것들이었지만.

네게 문을 열어준 것은, 지애 씨가 내 생명을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으면 다른 누군가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정장 바지가 헐거워져 벨트를 꽉 조여 맨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던 아저씨는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과연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갑자기 어깨 위로 이 세상이 내려앉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밴드를 주워 주머니에 쑤셔 넣는 것뿐이었다. 이 밴드 하나가 누군가를 살릴 수 있을까? 그보다는 한 번도 쓰이지 못하고 내 주머니 안에서 썩어갈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았다.

, 와 있었네. 이것 좀 들어줄래?”

교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지애 언니의 목소리가 바리케이드를 넘어서 들어왔다. 지애 언니의 하얀 손과 함께 바리케이드 위에 올라앉은 것은 구식 스피커였다. 잠자리의 눈 같은 커다란 스피커가 두 개 붙어있는, CD 뿐만 아니라 카세트테이프까지 넣을 수 있는 스피커가 책상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악실 갔다 왔어?”

품 안에 안긴 스피커가 묵직했다. CD를 넣을 수 있는 곳에 매직으로 쓰여 있던 음악실이라는 글자는 거의 지워진 상태였다. 음악 수업 들으면서 한 번도 쓰는 걸 못 봤는데. 교실 안으로 들어온 지애 언니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교무실에서 마스터키를 찾아서. 음악실 말고 다른 곳도 들렀다 오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거워서 그냥 들어왔어.”

이거 쓸 수 있을까? 학교 전기 안 들어올 텐데.”

건전지로도 돌아가는 것 같더라구. 너희 학교 건데 한 번도 안 써봤어?”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장이 났으면 어떡하나 싶으면서도 나는 그 스피커를 고이 품에 안았다. 지애 언니는 그런 내 팔목을 잡아 끌어 창가까지 데리고 갔다. 지애 언니 손이 들린 종이 가방 안에는 CD, 카세트테이프나 뭐 그런 것들이 들어있을 터였고 언니는 전리품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었다.

음악 선생님은 까탈스러운 분이었다. 특히 청결에 관해서는. 예전에 친구들과 음악 선생님이 결벽증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공기청정기가 항상 돌아가고 있는 음악실에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 선생님은 항상 손톱 검사를 했다. 그 선생님에게 손톱이 긴 것은 불결한 것이었고, 불결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회초리였다. 손가락의 두 번째 마디를 정확히 노려서 내려치는 가느다란 회초리. 아이들 중 맞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선생님을 자연스럽게 싫어하고 있었다.

음악실이라 그런지 확실히 클래식 앨범이 많더라구. 클래식 좋아해?”

유명한 것밖에 몰라. 엘리제를 위하여나, 뭐 그런 것들.”

으응, 비슷하구나.”

일단 커버가 예쁜 것들 위주로 가져왔는데. 지애 언니는 CD들을 하나씩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리는 촛불 가까이에서 영어로 쓰인 그 이름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베토벤, 헨델, 비발디처럼 한 번에 읽을 수 있는 이름들도 있었고 쇼팽처럼,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하며 기억을 더듬어나가야 하는 이름들도 있었다. CHOPIN이라는 얇은 갈색 글씨가 너무 낯설어 나는 앨범을 정리하며 그것을 일부러 제일 아래쪽에 두었다. 쇼팽이니 쵸오핀이니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 생각이야말로 지금 이 상황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각일 텐데.

그리고 음악실에 이런 것도 있더라구.”

지애 언니의 손에는 카세트테이프 몇 개가 들려 있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들을 하나하나 뜯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지애 언니의 손에서 그것들을 넘겨받았다. 요새는 음악 수업에서 트로트도 배우니? 지애 언니의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음악 선생님과 트로트. 어떻게 보면 이상하고 어떻게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와 트로트가 잘 어울리나? 지금이야 긍정적인 답을 바로 할 수 있지만 그땐 그녀가 트로트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울 만큼 이상하게 느껴졌다. 발라드나, 클래식이나 뭐 그런 것을 좋아할 것처럼 생겼는데. 음악 선생님과 트로트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나누는 그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헤비메탈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는 게 덜 이상하겠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이지 못해 책상의 나무 무늬만을 쳐다보았다. 나무 무늬 시트지의 규칙성을 발견했을 무렵 그녀가 미안해, 하며 다가왔다. 너를 두고 너무 많이 이야기했지.

아냐, .

내가 그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볼이 조금 상기되어 있는 것도 같았다. 아마 그건, 음악실 히터의 온기 때문이었겠지. 우리는 평소처럼 점심을 같이 먹었고 그때 메뉴는 제육볶음이었다. 그녀는 항상 제육볶음을 밥과 함께 비벼 먹었다. 제육볶음의 벌건 기름장을 밥에 골고루 묻히며 그녀는 자신이 트로트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아마 나를 빼두고 음악 선생님과 이야기를 한 것이 계속 신경 쓰였을 것이다. 크게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녀는 할머니 손에 자랐고, 할머니는 트로트를 좋아했고,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트로트를 듣고 부르면서 자랐고. 뭐 그런 이야기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서 그녀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트로트들을 들어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리듬과 싸구려 가사. 이것들을 들으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이어폰을 낀 채 모니터 앞에 엎드렸다. 이 노래에는 그녀의 어떤 추억들이 들어 있을까? 나는 그녀와 내가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트로트를 같이 듣는 상상을 했다. 그녀는 봄에 어울리는 하얗고 얇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나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스스로가 뱉어낸 이산화탄소 때문에 머리가 몽롱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녀가 트로트를 들으며 할머니가 아니라 내 생각을 해주었으면 했다.

지금 내가 카세트테이프를 보며 그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지애 언니의 손에 다시 카세트테이프를 들려주었다. 손끝에 테이프의 오돌토돌한 느낌이 아직 남아있었다. 나는 그녀가 부르는 트로트를 듣고 싶어졌다. 그녀와 함께 싸구려 가사들을 읊으며 아무 문제 없는 날들을 보내고 싶었다.

우리 학교로 오기 전에 만났던 사람들 기억해? , , 좀비가 신인류라고 말하던 사람들.”

지애 언니는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달빛 때문인지 안 그래도 하얗던 지애 언니의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지애 언니는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휴업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가 붙은 이후로 그들은 빵집의 문을 한 번도 흔들지 않았다. 더 이상 옅은 잠을 방해받을 일이 없어졌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더 이상 음식을 구해올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빵집에서 보낸 마지막 잠은 고요했다. 우리 모두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다. 지애 언니마저도. 우리는 빵집을 떠나며 문에 붙여두었던 종이를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쓴 종이로 바꿔 붙였다. 빵집이 없어져서 그들이 슬퍼할까? 어쩐지 그들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빵집의 차임벨을 마지막으로 울리는 인간일 것이다. 달이 밝은 밤이었다. 우리 짐은 많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음식들과 빵집 카드키뿐이었다. 지애 언니는 카드키만은 도무지 버리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 많은 수면 유도제들은 버리고 왔음에도. 나는 지애 언니가 버린 수면 유도제 위에 약국에서 챙겨두었던 밴드를 올려놓고 나왔다.

오늘 밤 안에 학교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학교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지낼만한 곳을 찾고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하는데 시간이 적게 걸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저씨는 혼자 다닐 때보다 더욱 긴장한 모양이었다.

그 사람들을 만난 것은 저 멀리 학교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렸다. 어쿠스틱 기타의 현이 밤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말고도 누군가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생존자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좀비들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걸까? 그들의 감각이 생전보다 훨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소리는 아닌 것도 같았다. 우리는 노랫소리의 근원을 찾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우리가 텅 빈 골목을 울리는 소리의 시작을 찾았을 무렵 노래는 마지막 가사를 뱉어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열 명? 열다섯 명? 그들은 기타를 치는 사람을 중심으로 두고 자그마한 원을 그리고 있었다. 그들 중 몇 명은 횃불을 들고 있었다. 그것으로 근처에 다가오는 좀비들을 쫓아내는 것 같았다. 그들의 모습은 버스커와 관객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 비록 관객이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가운데 앉아있던 남자가 마이크를 끌어당겼다. 과연, 공연의 클라이맥스였다. 우리는 남자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지만 남자는 우리의 기척을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쪽을 바라보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신이 인간에게 삶의 제2부를 열어준 것이라고. 우리는 신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신의 뜻은 내일 밤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가까이 가지 말자.”

저 사람들 죽겠다는 거야?”

.”

아저씨는 그들에게서 바로 등을 돌렸다. 그 남자를 감싸고 있던 사람들의 짧은 박수가 이어지고 그는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학교는 아까보다 조금 더 흐릿해져 있었다. 그가 부르는 노래를 계속해서 듣고 있다간 저기 있는 학교가 더 흐려질 것만 같았다. 나는 지애 언니의 손을 잡고 아저씨의 등만 보고 걸었다. 찬송가를 가사만 바꿔서 부르는 것 같아. 나중에 지애 언니가 해준 말이었다.

그 사람들 죽었을까?”

죽지 않았을까?”

어떻게 죽었을까?”

그러게. 나는 머릿속에서 몇 가지의 죽음을 생각해보았으나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그것은 지애 언니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 사람들이 좀비에 물려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나는 그냥 그 사람들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죽지 않고 버텼으면 좋겠다. 사람이 죽는 것은 항상 끔찍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세계라도 그랬다.

잘 있었나 보네.”

우리가 더 대화를 잇기 전에 아저씨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저씨는 바리케이드 아래로 기어오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저씨는 덩치도 크고 정장도 입고 있으니까. 책상들의 사이에 끼인 발목을 빼내며 아저씨가 긴 숨을 쉬었다. 그의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창문 막을 건 못 찾았어. 보드마카 같은 걸로 칠해볼까 했는데 영 아니겠더라.”

괜찮을 것 같은데?”

먹을 것도 없는데 힘 빼지 말고. 이따 미술실 가서 스케치북 같은 거라도 구해서 떼다 붙이자.”

아저씨가 내려놓은 비닐봉지에서 캔 몇 개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여기서도 오래는 못 있겠어. 아저씨가 관자놀이를 벅벅 긁으며 지애 언니와 나 사이에 앉았다. 아저씨는 그제야 스피커를 본 모양인지 손을 뻗어 그것을 끌어당겼다. 이거 돼? 아저씨도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아저씨 표정이 묘하게 밝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저씨의 취향은 클래식보다 트로트에 가까울 것 같았다. 나는 트로트가 들어있는 카세트테이프를 숨겨버리고 싶었다.

건전지 있으면? 아직 안 해봤어.”

잠깐만. 손전등에 넣으려고 건전지 몇 개 들고 왔어.”

비닐봉지를 휘젓던 아저씨의 손이 건전지를 집어 들었다. 무슨 노래 들을까? 아저씨가 스피커에 건전지를 끼우는 동안 지애 언니가 내 쪽을 보며 말했다. 다행히도 노래 선택권은 내게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가장 위에 놓여있는 앨범을 건넸다. 헨델의 메시아였다.

스피커에서는 가끔 노이즈가 튀긴 했지만 노래를 듣는데 크게 껄끄럽지는 않았다. 우리는 아무 대화 없이 노래를 들었다. 나는 앨범 커버를 확인했다. 한 여성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처럼 보이는 남성을 자신의 무릎 위에 눕혀두고 있는 조각의 사진이었다. 여자는 성모 마리아고 남자는 예수일까? 종교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나로서는 그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것이 그 정도밖에 없었다. 다음 노래로 넘어갔는지 스피커에서는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저씨는 볼륨 조금 더 줄였고 그 덕분에 우리는 스피커에 더욱 가까이 붙었다. 이 세상에는 언제쯤 구세주가 내려올까? 세상이 이렇게 변한 것은 신의 뜻이라고 말하던 그 남자가 다시 떠올랐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이 상황은 신인류의 출현이 아니라 노아의 방주 때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애, 키가 크고 머리가 길었다고 그랬나?”

나는 아저씨 쪽으로 몸을 돌려 누웠다. 아저씨는 똑바로 누운 채 고개만 이쪽을 향해 있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려다 소리를 낮춰 응, 하고 답했다. 우리는 결국 앨범 안의 모든 노래를 듣지 못하고 자리에 누웠다. 하얀 도화지를 뚫고 들어오느라 흐려진 아침 햇살이 교실 안의 공기를 천천히 데우고 있었다.

혹시 삼 학년 사 반이었어?”

아무렇지 않게 응, 하고 대답을 하려 했는데 그 끝이 불안하게 흔들려버렸다.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할지 대충 할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녀가 여기에 있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머리를 대고 누운 이 교실 바로 아래에서 배회하고 있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아저씨가 꺼낼 다음 말을 기다리며 그 입을 바라보았으나 아저씨는 아무 말도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가보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아저씨는 그 말을 하고 깊이 고여 있던 숨을 뱉어냈다. 나는 다시 몸을 뒤척여 아저씨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저씨가 본 것이 그녀가 아니기를 바랐다. 키가 크고 머리가 긴 사람은 정말로 많았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 우리 교실에 들어갔을 수도 있고. 사실 아저씨가 본 그것이 그녀일 확률보다 그녀가 아닐 확률이 더 높을 것이었다.

그런데 왜 계속 심장이 뛰는 걸까. 자기 전에 이 얘기를 한 아저씨가 조금 미웠다. 내일 저녁이나, 뭐 그럴 때 꺼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지금 자면 꿈에 그녀가 나올 것만 같았다. 옆에서 아저씨가 자꾸 몸을 뒤척였다. 우리는 해가 학교 옥상을 똑바로 비출 때까지 쿵쿵대는 심장을 숨기며 억지로 눈을 감고 있었다.

 

3

 

우리는 지금까지 헨델의 메시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고 'LA SERIN'이라는 뜻 모를 말이 적힌 앨범과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모두 들었다. 우리는 매일 밤 노래를 들으며 노래에 대한 감상을 말했고 그것은 지루한 밤을 넘기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카세트테이프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나는 그 테이프들을 사물함에 밀어 넣었다. 가지런히 개어져 있는 파란 체육복과 교과서 몇 권이 그녀를 또 연상시키기에 나는 일부러 그 사물함을 뒤엎고는 문을 닫았다.

아저씨 손에 들린 검정 비닐봉지는 날마다 가벼워져 갔다. 이제 아저씨는 식량이 아니라 다음에 살게 될 곳을 찾아다녔다. 학교를 떠날 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애 언니는 학교를 떠나기 전에 노래를 한 곡이라도 더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뜨고부터 자기 전까지 계속 노래를 틀었다. 아저씨는 그날 밤 이후로 내게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없었다. 나는 매일 꿈에 그녀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가 내 꿈에 나온 적은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것이 이상하게 섭섭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갈 곳을 알아봤어.”

아저씨의 벨트는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욱 조여 있었다. 나중에는 구멍을 뚫어서 저 벨트를 써야할까? 나는 두 번 접은 치마허리를 슬그머니 쓰다듬었다. 그렇게 멀지는 않은데. 아저씨가 쪼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바닥에 투명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학교고, 여기가 우리가 왔던 빵집이고, 그러니까 이쪽 대로를 따라가면. 나는 아저씨가 그린 그림들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고개를 눈동자를 굴리며 아저씨의 손끝을 좇았다.

그럼 한 이쯤에, 김밥 천국이 있어. 거기로 가자.”

문은 열려 있어?”

열쇠를 부주의하게 두었던데. 아까 안에 들어가 봤는데 장사할 때 쓰는 깡통 햄이나 라면 같은 거 좀 남아있더라고.”

사람들이 안 가져간 게 신기하네.”

밤만 되면 저놈들이 잠이라도 잘 건지 아파트로 몰려가니 사람들이 쉽게 나올 수가 있어야 말이지.”

김밥 천국이라니. 지애 언니와 아저씨의 대화를 적당히 흘리며 나는 어딘가에 있을 김밥 천국을 떠올려보았다. 주황색 간판에, 투박한 하얀 글씨. 이따가 지애 언니를 졸라 마지막으로 메시아를 한 번 더 듣고 가자고 말해야겠다. 천국으로 갈 건데, 메시아를 한 번쯤 더 듣고 가야 맞는 말 같았다.

카세트테이프를 넣어뒀던 사물함을 잠깐 바라보았다. 내일이면 이제 이 학교에 다시 올 일은 영영 없을 것이었다. 만약 세상이 진정되고 그때까지 내가 살아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우리 교실에 있는 것이 자꾸만 그녀 같았다. 그녀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면서. 그녀가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미국 좀비 영화처럼, 나도 총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

, 가서 쏘아 죽여 버리게?”

. 그래야 내 맘이 편할 것 같아. 죽여서 학교 운동장에 묻어주고 가야 내 맘이 편할 것 같아.”

우리는 함께 메시아를 들었다. 지애 언니는 나를 껴안았다. 나는 머리에서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우리 모두에게서 나는 냄새니까. 나는 피부가 안쪽에서 썩어가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우리 몸에서 곧 좀비들이 내는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진득하게 묻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 아이도 네가 보고 싶어서 거기에 있는 것 아닐까. 마지막 인사 같은 거 하려구.”

지애 언니는 이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들었음에도 아무 문제없이 대화에 섞여들었다. 아저씨가 나 몰래 지애 언니와 상담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지애 언니는 내 팔뚝을 계속 쓰다듬었다. 그녀가 나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 할까? 생전의 그녀라면 지애 언니처럼 나를 꼭 껴안고 인사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에게 안겼다가는 나는 머리가죽부터 그녀에게 뜯어 먹힐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내게 어떻게 인사를 하고 나는 그녀에게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말일까?

아저씨는 내게 정말로 그녀가 보고 싶으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남겼다. 내일까지야. 아저씨는 그 말을 하며 스피커의 다음 곡 재생 버튼을 자꾸 눌렀다. 아저씨의 손이 멈춘 것은 43, 아멘이라는 이름을 가진 노래가 흘러나올 때였다.

예전 같으면 단칼에 그녀를 보고 싶지 않다고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녀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 그녀가 어딘가에 있겠지, 운이 좋으면 화장되어 뼛가루가 되어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을 때와 그녀가 바로 이 아래층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 해야 하는 결정의 무게는 완전히 달랐다. 거기다 마지막이라는 옵션까지 붙어있다면, 내가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우리는 결국 메시아를 다 듣지 못했다. 아저씨는 스피커는 두고 갈 생각이지만 메시아 앨범은 들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애 언니는 바흐의 바이올린 앨범도 들고 가고 싶다고 말했고 우리는 그렇게 그 두 앨범을 남은 음식과 함께 가방에 넣었다. 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오늘 하늘에는 분홍색이 평소보다 많이 돌았다. 나는 똑바로 누운 채 고개를 젖혀 도화지 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거꾸로 보고 있는 탓에 태양이 아래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뒷목과 정수리가 얼얼해질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했고 그 후에는 하얀 교실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와 여기에 누워있으면 어떤 느낌일까. 그녀는 좀비가 되었어도 여전히 아름다울까. 나는 좀비가 된 그녀의 모습은 좋아할 수 없는 걸까. 예전에 본 좀비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여동생이 좀비가 되자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주며, 그녀가 좀비로 변하기 직전에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던 언니. 나와 그녀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출 수 있을까?

지애 언니와 아저씨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혼자 남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다. 나는 네가 보고 싶어. 나는 너를 좋아해, 너를 좋아해. 너를 정말로 좋아해. 만약 그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녀는 내게 무슨 말을 할까?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줬으면 싶었다. 나도 너를 좋아해, 정말로 좋아해, 하고.

 

4

 

해가 천천히 기울어갔다. 저 하늘에는 해가 다니는 길이 있다고 했던가. 그 길 위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아저씨는 함께 미술실로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 생각했다거나, 고생했다거나, 하는 말들을 한마디쯤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미술실에서 어렵지 않게 유성 매직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검은색 유성 매직을 들어 교탁 위에 줄 몇 개를 죽죽 그었다. 아직 잘 나오고 있었다.

노을이 더러운 신발코를 벌겋게 물들였다. 지애 언니는 우리가 지내던 교실 앞에서 스피커를 껴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내가 들게. 스피커의 묵직한 무게가 팔을 눌렀다. 심장이 자꾸 뛰었다. 스피커를 꽉 껴안고 있으면 스피커에 심장박동이 묻어날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온 힘을 다해서 스피커를 껴안았다. 아저씨의 손에 들린 마스터키가 계단을 내려가면서 쩔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저씨 나 우리 반 열쇠만 빼서 가질래.”

다 끝나면 줄게.”

아저씨는 마스터키에서 열쇠 하나를 빼서 왼손에 쥐었다. 우리는 마스터키를 일 층과 이 층의 층계참에다 두었다. 다음에 이 열쇠 쓰는 사람이 있을까? 지애 언니의 물음에 우리는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나는 아무도 이 열쇠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했다. 그냥 영원히 이 자리에 남아있으면 했다.

삼 학년 사 반은 멀리 있지 않았다. 아직도 그녀가 거기에 있을까? 나는 스피커를 꽉 껴안았다. 나는 교실로 들어가기 전에 밖에서 교실 문을 잠글 수 있는 열쇠구멍을 확인했다. 손끝에 꺼슬한 구멍의 단면이 달라붙었다. 문은 지애 언니가 열어주었다. 나는 그녀가 머리를 풀고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붉게 물든 창문에 그녀의 얼굴이 흐리게 비쳤다. 그녀는 아무래도 목이 조금 꺾여있는 것 같았고…… 나는 숨을 삼켰다. 그녀는 내가 들어온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창문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그녀의 시선이 내 등에 계속해서 매달리고 있었다. 나는 교실 뒷문을 잠갔고, 그 문과 가장 가까운 책상 위에 스피커를 올려두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스피커가 놓인 책상의 의자를 끌어당기자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한쪽 팔을 얹고 몸을 돌렸다. 너는 역시 하복이 잘 어울리는구나. 그때도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초록색 명찰이 그녀의 가슴께에서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시들어가는 노을이 그녀의 검은 머리를 붉게 물들였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일부러 그녀의 관절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가 발을 끄는 소리와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엉망으로 섞였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가 한 분단 정도 남았을 때 나는 스피커의 재생버튼을 꾹 눌렀다. 싸구려 리듬과 싸구려 가사. 나도 간만에 들어보는 트로트였다. 너와 함께 마지막으로 트로트를 듣는 시간이었다. 밖에서 아저씨와 지애 언니가 마음 쓰고 있을 것을 알면서도 나는 끝까지 자리에 앉아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녀는 노래를 틂과 동시에 발을 멈추었다. 그녀의 뒤로 환한 노을이 빛나고 있어 그녀의 표정을 도통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다시 발을 끌기 시작한 것은 첫 번째 노래가 끝난 뒤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가 스피커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B면의 노래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와 술래잡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녀가 스피커에 관심을 가지는 대신 나를 따라와 준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다. 그것이 그녀의 본능이라 할지라도.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그녀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았다. 자꾸 보다 보니 그 얼굴도 예뻤다. 내가 그녀에게 미소를 보내자 그녀도 싱긋 웃음을 지었다. 밤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가 잠들 시간이었다.

내가 복도로 나오자 아저씨는 바로 문을 잠가버렸다. 문에 끼어 있는 불투명한 유리로 그녀의 실루엣이 얼핏 보였다. 그녀는 얼굴을 문에 붙였다. 그렇게 하면 밖을 뚜렷이 볼 수 있다는 듯이. 나는 그 실루엣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아저씨가 유성 매직을 건넸다. 그 뚜껑을 열자 매직 특유의 냄새가 코를 확 찔렀다. 창문에 가득 글씨를 박아 넣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내 키가 너무 짧았다. 나는 발뒤꿈치를 들고, 최대한 팔을 뻗어 좌우가 뒤집힌 글씨를 커다랗게 쓰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보고싶을, 거야, 나는, 너를, 좋아해, 정말로, 좋아해. 유성 매직의 끽끽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복도를 울렸다. 쓰고 나니 창문 하나가 남아서 그녀와 내 이름을 나란히 적어두었다. 나는 몇 발 뒤로 물러서 혹시 틀린 글자는 없는지 확인했다.

아저씨는 내게 삼 학년 사 반의 열쇠를 건넸다. 열쇠는 따뜻했다. 우리가 등을 돌림과 동시에 그녀는 손바닥으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애 언니의 손바닥이 내 손바닥 안으로 들어와서 나는 그것을 꽉 잡았다. 태양은 완전히 땅 밑으로 내려갔지만 하늘에는 여전히 붉은 기운이 어른어른 돌고 있었다.

겨울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교문을 나서기 직전에 운동장의 흙을 팠다. 지애 언니와 아저씨가 도와주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이 일만은 혼자서 끝내고 싶었다. 흙을 깊게 팔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 자그마한 구덩이에 열쇠를 조심스레 넣었다. 그 위에 다시 흙을 덮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렀다. 이곳이 그녀의 무덤이 될 것이었다. 나는 손을 털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기에도 스피커가 있으면 좋겠어. 지애 언니의 말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 말에 동의했다. 만약 스피커가 있다면 다시 메시아를 처음부터 듣자고 아저씨가 말했다. 천국에 입성한 기념으로. 지애 언니와 나는 그 말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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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젤

 

Y A G I

 

  음식물쓰레기봉투가 터져있었다. 외출을 하던 수연은 무심코 쓰레기장 쪽으로 눈을 돌리다 그것을 발견했다. 길고양이겠지. 수연은 자신의 앞으로 쭉 이어진 길을 한 번, 또 쓰레기장을 한 번 보곤 먼저 저것을 처리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외출을 하는 것은 그리 급한 일이 아니었다. 아직은 해가 떠있을 시간이 길게 남은 이른 아침이었다.

  수연은 쓰레기봉투를 들고 잠시 상태를 확인했다. 봉투의 중간이 터져있었다. 뭔가를 크게 빼내서 뜯어 먹은 흔적은 없었다. 바보 같은 고양이들. 뜯었으면 제대로 먹기라도 할 것이지. 수연은 입속말을 중얼거리며 건물의 유리문을 밀었다. 고개를 돌려 문이 닫혔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연의 방은 일층 제일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며칠을 열리지 않은 문 앞의 먼지와, 언젠가 복도에 흩뿌려졌고 지금은 꺼멓게 말라있는 피를 수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지나갔다. 이제는 수연에게 딱히 무서울 것도 없었다. 수연은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렸다. 수연이 이 방에 처음 왔을 때 음산하다고 생각했던 소리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복도에 울렸다.

  수연은 쓰레기봉투를 현관에 두었다. 여분의 쓰레기봉투는 옷장 안에 들어있을 것이었다. 삼 리터짜리 샛노란 음식물쓰레기봉투. 수연은 이것이 자신만의 장례 방법이라고, 터져버린 쓰레기봉투를 새 봉투에 담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커봤자 십 리터 정도밖에 안 되는 음식물쓰레기봉투가 아니라 소각용 쓰레기봉투를 구하러 가야할 때였다. 그것도 가장 큰 것이 필요했다. 수연은 손끝을 세워 쓰레기봉투의 귀를 두 번 꼭 묶었다. 유난히 곧았던 준의 오른손 뼈의 장례식은 두 번이나 치러지게 되었다.

  수연은 현관문을 열기 전에 도어스코프로 밖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다. 별 생각 없이 이어오던 습관이 이런 시대에 도움이 될 줄은, 어린 날의 수연은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수연은 쌓여있는 쓰레기의 최대한 높은 곳에 그 쓰레기봉투를 올려두었다. 인류가 멸망한 이후에도 남아있을 거라던 비닐들이 서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수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근처에 하나가 있었다. 아까 나올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무래도 죽으면서 목이 꺾인 건지, 그것은 고개를 이상한 각도로 오른쪽으로 기울이고 수연이 있는 곳을 빤히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 뜯어 먹힌 코에 파리들이 들락날락거렸다.

  수연은 발소리를 죽이고 그것을 빙 둘러 걸어갔다. 낮에는 다들 어디 길에 처박혀서 해바라기나 하고 있더니. 아무래도 그새 해의 방향이 이동한 것 같다고,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의 눈은 좌우를 빠르게 살피고 있었다.

  세상의 제 2막이 찾아온 거야. 마치 낮 다음에 밤이 오는 것처럼. 어차피 우리 지구는 언젠가 다시 빙하기가 와서 모든 생물이 멸종할 예정이었다지. 수연과 준이 처음 만났을 때, 준이 수연에게 건넨 말이었다. 수연은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연은 별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도 이상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낮엔 해바라기, 밤엔 사냥을 하며 시간과 자신의 몸을 한꺼번에 죽이는 생물은 별로 되고 싶지 않았다.

  수연은 마트를 뒤지는 대신 사람들이 떠나간 집을 주로 뒤졌다. 어느 집이나 보존식품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이제 수연은 잠긴 문을 여는데 꽤 선수가 되어 있었다. 수연이 사는 곳은 도시의 중심이면서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지역의 중심이었다. 빠져나갈 사람들은 진작 이곳을 빠져나갔다. 수연이 이곳에 남은 것은 부모와 연락이 되지 않는 것에 자꾸 집착했기 때문이었다. 급하게 설치한 휴대폰 라디오 어플리케이션에선 부모의 연락이 아닌 바이러스의 조기 진압 때문에 도시가 봉쇄되었다는 뉴스 앵커의 말이 흘러나왔던 것을, 수연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수연이 부모의 생사 파악을 포기한 것이 그때였다.

  라디오에선 많은 말들이 이어졌다. 지금은 소위 말하는 좀비사태이며 원인은 변종 바이러스로 추정된다던지, 바이러스는 체액으로 감염된다던지, 감염 후 고열을 앓다가 좀비로 되살아난다던지. 수연은 휴대전화의 전원이 꺼질 때까지 그 정보들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수연이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외부로 도망친 생존자 때문에 바이러스가 퍼져 진원지 구제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말이었던가.

  수연은 원룸 근처에 있는 집부터 시작해서 샅샅이 먹을 것을 찾아 빈집을 털었다. 간혹 안에서 생존자가, 또는 좀비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었다. 수연에겐 대체로 좀비보다 생존자 쪽이 더욱 귀찮은 편이었다. 좀비야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아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수연은 생존자 중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수연이 준을 제 집으로 들인 것은, 수연이 준을 완전히 믿었던 것보단 준이 집요하게 수연을 따라다녔기 때문이었다.

  준은 수연 또래의 남자였다. 수연과 처음 만날 당시만 해도 준은 단정하게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머리를 기르고 있어 그 당시 이미 어깨에 머리카락이 닿을랑말랑하던 수연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준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통조림을 모두 수연에게 건네며, 이것을 다 줄 테니 제발 자신을 거두어달라고 말했다. ‘거두어 주세요.’ 준은 분명 수연에게 그렇게 말했다. 수연은 그런 준을 분명 재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통조림이 있을 법한 곳만 골라 찾던 수연은 잠시 낯선 사람의 침대에 몸을 뉘었다. 자신의 집에 처음 찾아왔던 준이 느꼈던 감정일지. 수연이 두 바퀴를 굴러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 넓이의 침대에서, 수연은 어쩐 이유에선지 깨진 전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별로 푹신하지는 않네.

  수연은 자신이 준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세상의 한낮은 너무 조용했다. 수연은 준의 얼굴을 그렸다. 섬세한 콧날과 불안하게 떨리던 속눈썹을. 생의 마지막에 자신에게 맞춰오던, 과거 언젠가는 보드러웠을 거친 입술을. 수연은 입맛을 다셨다. 죽이지 말걸 그랬나.

  어쨌거나 자신은 준의 유언을 들어준 것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의 침대에는 여러 종류의 통조림이 올라와 있었다. 수연은 다시 한 번 더 통조림의 개수를 꼼꼼히 세곤 백팩에 차곡차곡 챙겨 넣었다. 종이 지도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더 편했을까. 수연은 미국에서 제작된 좀비 드라마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수연은 한국에서 종이 지도를 파는 곳이 어디인줄도 몰랐다. 수연은 자신이 지도를 제대로 읽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되면 감으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부터 수연은 이렇게 살아가는 게 별로 불편하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식량을 구하기 다소 좋은 조건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사람이 없는 유령 도시에서는 좀비도 떠나기 마련이었다. 전염성은 높지만 낮에는 경계 강도를 낮춰도 되는 것 역시 그나마 삶의 질을 높여준 것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은 자주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을 비교했다. 수연은 새로운 삶의 목표가 설정된 것을 내심 기뻐하기도 했다.

  준과 함께 살기 전 수연이 주로 하던 것은 대체로 누워있는 것이었다. 낮에는 설렁설렁 음식을 조달하러 다녀왔다가 밤에는 문 앞에 엉성한 바리케이드를 쳐두고 침대에 누웠다. 수연은 똑바로 누운 채 양손을 배에 올리고 많은 소리를 들었다. 풀벌레 소리 아니면 비명 소리였다. 수연은 저렇게는 되고 싶지 않다고, 수도 없이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수연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물. 수연은 이 리터짜리 물 한 통을 일단 가방에 넣었다. 한 통을 더 넣을까 말까, 바닥에 앉아 고민하던 수연은 물 두 통이 들어간 가방을 메고 좁은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았다. 이 정도 무게라면 괜찮을까. 수연은 이 도시를 빠져나가고자 했다. 이 역시 준의 유언이었다. 준이 죽은 이 시점에서 수연이 굳이 준의 소원을 들어줄 필요는 없었겠지만.

  사실 수연은 준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좁은 원룸에 둘이서 산다는 것도, 낯선 사람이 자신에게 들러붙은 것도 그랬다. 수연이 준에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라 한 적은 결코 없었다. 그저 문을 닫지 않았을 뿐이었고 이것이 준에게 동의의 행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수연은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수연은 방에 돌아와서 준과 얘기를 할 생각이었다. 수연은 낯선 장소에서 언성을 높이는 것이 아무리 낮이라도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 그래요?

  그냥요. 더 이상 그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요.

  그럼 다른 곳에 가면 되잖아요.

  혼자 살고 싶지 않아요. 처음 만나는 사람을 따라가기로 결심했어요.

  아니 그럼, 내 의지는요?

  같이 살면 좋잖아요. 잘 할게요.

  준은 그 말을 하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수연은 준에게서 받은 통조림 더미를 내밀었고 준은 그것을 보고서도 받지 않았다. 수연은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수연에게 필요한 것은 연대보단 생존이었다. 그리고 이는 수연에게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던 것이었다. 연대라는 것은 자신의 생존을 남의 어깨에 맡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수연은 준을 바라보면서 했다.

  하지만 준은 일부러 수연의 그런 생각들을 무시하고자 했다. 그가 지칠 때까지 이러고 있으면 혹시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지. 그 때 그에게 잘 대해준다면 그는 자신이 있는 것이 사실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주지는 않을지. 자신은 타인 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라고, 준은 생각했다. 깡통 안에 혼자 들어가 뚜껑을 닫고 있다간 준은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수연과 준의 동거는 이렇게 순전히 준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다. 수연과 준은 수연의 좁은 침대에서 등을 붙이고 잠을 잤다. 준이 바닥에서 잠을 잔 것은 동거 시작 후 고작 이틀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삼일 째 밤, 가로등 불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준은 슬그머니 침대에 걸터앉았고 수연은 아무 말 없이 벽 쪽으로 붙어 누웠다. 준은 거의 웅크리듯 잠을 자는 편이었다. 그날 밤, 수연은 자신의 마른 등으로 굽은 준의 등뼈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수연이 준의 이름을 처음으로 물었을 때도, 그들이 말을 놓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수연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그대로 침대로 누웠다. 수연의 마지막 밤이었다. 해가 짧아지는 계절이 점점 오고 있었다. 수연은 속으로 가을장마를 걱정했다. 날이 흐리면 놈들의 활동력이 좋아지지는 않을까. 수연은 그 가능성을 얕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수연은 계속 이동을 하면서 장마를 대비해야만 했다. 수연은 여행을 하면 할수록 좀비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연은 진압 초에 정부에서 세운 바리케이드까지 도달하는 것을 일단은 목표로 하고 있었다. 바깥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주기적으로 헬기가 뜨는 것으로 보아 그쪽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장배터리로 작동되는 준의 라디오에서 바이러스의 확산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는 말을 준과 함께 듣기는 했지만.

  수연은 준처럼 몸을 웅크리곤 잠을 청했다. 집 곳곳에 준의 냄새가 배어있다고 생각하면서. 시체 냄새가 아니라, 준의 냄새가.

 

  수연은 전날 편의점에서 집어온 황사용 마스크를 귀에 걸었다. 시체를 처리하는데 황사용 마스크가 과연 효과가 있긴 할까, 생각하면서. 수연은 과거 영화에서 보았던, 검시관들이 검시를 할 때 코 밑에 싸한 냄새를 풍기는 뭔가를 바르는 것을 기억해내곤 치약이나 발라볼까 생각도 했다. 냄새가 섞이면 더 역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지만.

  처음으로 날씨가 추워지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여름이었다면 준의 시체는 버티지 못했겠지. 그것은 바깥을 돌아다니는 녀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지금보다 훨씬 썩은내를 풍기며 돌아다니는 좀비들. 수연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린 채로 화장실의 문을 열었다.

  이 바이러스에는 항체가 존재한다고, 언젠가 준은 수연에게 말했다.

  둘 다 유난히 잠이 오지 않아 나란히 침대에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수연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에 대해 준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떤 바이러스든 항체가 있기 마련이잖아. 준의 말이었고 수연은 나는 문과야.’라는 대답으로 그 머쓱함을 넘겼다. 그 말을 듣고 준은 웃었다. 준 역시 문과라는 것을 그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준은 자신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준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고 준이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 부모는 이미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준은 부모의 방에서 아버지의 복부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한 놈을 보았고,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고 했다. 준이 수연에게 통조림을 내밀며 거두어달라고 말했을 때, 준의 집 안방에는 좀비 셋이 나란히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준이 말했다. 수연은 굳이 준의 표정을 확인하지 않았다.

  준이 수연을 따라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을 때가 언제부터였는지, 수연은 기억하지 못했다. 수연은 그저 준이 머리가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거울을 보며 작게 투덜거렸던 일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준은 수연에게 자신도 수연처럼 머리를 묶을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빨리 자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체모가 자라지 않는다는 걸 지금까지 소소한 축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그게 아쉽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면서.

  준의 죽음 이후 수연이 이 화장실을 연 것은 이번이 딱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준의 호의에 의해서 준의 살을 발라내기 위함이었다. 이 역시 준의 유언 때문이라고 해둘 수 있을까. 준은 화장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준은 다리가 긴 편이었다. 그 긴 다리를 접느라 수연이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수연은 오돌토돌한 준의 등뼈를 손끝으로 만졌다. 손으로 준의 등을 만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은 준의 얼굴을 덮고 있는 앞머리를 준의 귀 뒤로 넘겨주었다. 생전부터 준이 곤란해하던 것이었다.

  수연은 자주 집 밖의 좀비들과 자신의 다른 점을 생각했다. 그들과 다른 점이 없다는 말은 수연에게 있어서 꽤 불쾌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 말을 수연에게 하지 않았음에도 수연은 스스로 그 말을 떠올리곤 괴로워했다. 수연이 준의 시체를 화장실에 처박아두고 나오지 않은 것도 그와 같은 이유였다. 수연은 자신이 훼손시킨 준의 시체를 직시하는 것이 힘들었다. 아무리 준의 유언이 있었다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선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 수연을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수연은 준의 시체를 하얀색 소각용 쓰레기봉투에 밀어 넣었다.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는 준을 넉넉하게 담고 있었다. 수연은 봉투를 눌러 공기를 빼고 쓰레기봉투의 귀를 묶었다. 그러곤 준을 안아보았다. 팔뚝이 묵직하게 눌렸다. 무겁다고,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의 마지막 식사는 준의 심장이었다. 수연은 그래도 낮에는 가스버너라도 쓸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를 생각했다. 처음 준의 팔뚝살을 잘라내어 먹었을 때 그것을 생으로 먹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수연은 비위가 약한 편이었다. 먼 과거에 먹어보았던 육회를 떠올리려 했다. 그러나 털도 없이 민숭민숭한 사람의 살가죽은 왜 이렇게 역겨운 것인지. 수연은 눈을 질끈 감고 몇 번의 헛구역질을 했다.

  수연은 준의 고기를 토해내고 싶지 않았다. 준을 자신의 영양소로 완벽하게 흡수시키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 낸 방식이 조리를 하는 것이었다. 수연은 자취를 시작하고 얼마 쓰지 않은 식칼을 꺼내 지방 부분을 잘라내며 생각했다. 이것이 준의 고기라는 것을, 생명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수연과 준이 항체에 관한 얘기를 했던 적이 한 번 더 있었다.

  준은 수연에게 수연을 한 번만 안아 봐도 되겠냐는 말을 했다. 수연이 침대 위에서 준에게 등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수연은 몸을 똑바로 하곤 준을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준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비치고 있었다. 수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항체를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게?

  글쎄.

  죽은 사람의 피에 자신의 피를 섞어보면 된대. 피가 엉기지 않으면 항체가 있는 거래.

  라디오에서 그랬어?

  응.

  그래서 그걸 왜 말하는데?

  수연은 몸을 일으켰다. 준의 얼굴이 어둠에 가려져있어 수연은 준의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준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수연은 준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알 것 같았다. 준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기 전부터 수연은 혼란스러워했다.

  나는 수연을 좋아해.

  나 게이 아니야.

  알아.

  준은 몸을 옮겨 수연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붙었다. 수연은 그 거리에서도 준의 호흡이 느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연은 준의 눈에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보일지가 궁금했다. 자신이 준을 보는 것처럼, 아무 표정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까맣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수연은 준이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준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준의 입술은 수연의 손바닥 아래서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소리 없이 오물거렸고 수연은 손바닥에 닿아오는 준의 입김 때문에 손을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일 죽을 생각이야.

  수연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준의 말이었다.

 

  심장은 어떻게 조리를 하면 좋을지 수연은 막막했다. 아무래도 굽는 것은 곤란할 것 같아 수연은 일단 냄비에 물을 받아 그것을 삶았다. 수연은 순대를 시킬 때 간도, 허파도, 심지어 피순대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동물도 아니고 사람의 심장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보다 크지 않은 사람의 심장이 냄비 속에서 익어가는 것을 보며 수연은 긴 숨을 내쉬었다.

  어느 부위를 얼마나, 어떻게 먹어야 먹는 사람의 몸에 항체가 생기는지는 준도 모르는 일이었다. 심지어 준은 항체가 있는 사람을 먹으면 항체가 생긴다는 말도 낭설일 수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라디오에서 나온 남자의 사연은 항체가 있는 사람을 먹으면 항체가 생긴다, 그 뿐이었다. 준은 심지어 그 남자도 사실은 항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했다. 수연과 준에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수연은 준의 시체를 먹었다. 바글바글 끓는 물을 보며 수연은 준이 자신에게 일부러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푹 삶아진 심장은 순대를 먹으며 설핏 보았던 간이랑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수연은 뜨거운 준의 심장을 두껍게 썰었다. 심장을 썰며 이미 썰어둔 것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퍽퍽했다. 수연은 자신이 잘못 조리한 것이 아닌지를 문득 생각했다. 통조림 속 음식들도 한 때는 살아 움직이던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수연은 어색해하기 시작했다. 퍽퍽하게 잘못 조리된 심장과 통조림 속 죽어있는 고기의 느낌은 분명 달랐다. 먹고 있는 것이 준의 심장이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통조림 인생을 살아왔던 수연에게 그 판단을 맡기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수연은 준에게 항체가 없어도, 자신에게 항체가 생기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항체라는 건 좀비가 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뿐이니까. 항체는 사람을 죽지 않게 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수연은 살아남고 싶었다. 수연은 준의 입술과 가벼운 호흡을 느끼고 난 다음날 준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준은 조용히, 자는 듯이 누워있었다. 수연이 눈을 감겨줄 것도 없었기에, 수연은 준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그 때, 준의 유언을 들어주자고 결심했다.

  수연은 쓰레기봉투 안에 들어있는 준의 시체를 껴안았다. 어쩌면 준은 특이한 성벽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조히스트라던가, 아니면 그것보다 더 한 무언가가 준의 마지막을 잠식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준은 수연을 만난 시점에서 이미 어딘가 나사가 빠져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예의 쓰레기장에 준을 내려놓으며 수연은 생각했다. 수연이 이제 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길고양이가 준을 뜯어먹지 않기를 비는 것뿐이었다.

  수연은 쓰레기장에서 등을 돌렸다. 좀비 하나가 머리가 터진 채 하늘을 보고 누워있었다. 예전의 수연이라면 그것을 빙 둘러갔겠지만 지금의 수연은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발을 옮겼다. 동질성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같은 것으로 생명을 유지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수연은 명복을 비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좀비의 시체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골목보다는 확실히.

  수연은 무심코 거기까지 말하곤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준과 지낸 탓에 습관처럼 생각하던 걸 말한 것이었다. 수연은 자신에게 몰린 시선을 느꼈다. 낮에는 해바라기를 위해 큰길에 몸을 붙이고 있는 좀비들이 많았다. 수연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좀비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초점이 흐리지만 어딘가 집요한 시선이 수연의 몸을 훑었다. 수연은 좀비들의 발이 얼마나 빠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낮이니까 방해요소가 많지 않을까 생각하며 천천히 옆의 건물로 발을 옮길 뿐이었다.

  좀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 수연은 생각해보았다. 그들은 단지 먹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인지, 애초에 그것을 삶이라고 할 수 있는지 수연은 알 수 없었다.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지는대로 살고 있는 것뿐일까. 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인생과 그들의 인생을 등치시키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니었다. 수연은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단 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그러고 어떻게든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수연은 카운터에 남아있는 물건들을 매대 쪽으로 던지며 좀비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젠 외부의 좀비들이 이 소리를 듣고 몰려들기 전에 빠져나가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것 자체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수연은 앞으로의 길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큰길만 따라 갈 것이라지만 자신에게 그런 것이 가능할지, 수연은 확신할 수 없었다.

  준을 만나기 전엔 수연은 그냥 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맹목적인 것이었다. 거기에는 맛있는 걸 먹고 싶다거나, 도시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준은 어째서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을까. 준은 원래부터 한 장소에 있는 것을 갑갑해하던 사람일지도 몰랐다. 수연은 자신은 원래 준의 모습이 어땠는지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수연은 세상이 이렇게 변했으니, 그런 건 별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수연은 그것을 후회했다. 준과 함께 살 때 조금 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둘걸, 싶었다. 수연이 본 준은 그저 어딘가 약간 이상한 동거인, 그 정도였다. 그 정도의 감상밖에 남아있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다.

  건물 밖으로 수연은 거리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정돈된 거리란 얼마나 무해한 것이었던가. 사방에 깔린 피냄새와 시체냄새, 사람들이 던진 물건들과 깨진 술병들을 수연은 밟으며 지나갔다.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온갖 냄새가 수연을 스치고 지나갔다. 수연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르지만 어딘가 들어갈 곳을 찾을까 싶기도 했다.

  야, 황수연! 너 거기서 뭐해!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수연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수연에게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수연은 곧 살짝 열린 빵집 문으로 얼굴만 내보이고 있는 남자 하나를 발견했다. 남자는 손을 크게 휘두르고 있었다. 수연은 그에게 가까이 가서야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같은 대학에 다니던 선배였다. 이 선배가 이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었던가. 수연은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교우 관계가 별로던 그가 그 사실까지 알고 있을리는 없었다.

  너 부르다가 좀비들한테 죽는 줄 알았다, .

  좀비도 별로 관심 없던데요, 선배.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아무튼 잘 지냈냐?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이 동네에 남아 있을 줄 알았다니까.

  남자는 대화에 목이 마른 것 같아보였다. 수연은 빵집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남자는 굳이 그런 수연은 손목을 잡아 끌어 오븐이 늘어서 있는 안쪽 방까지 데리고 갔다. 이 남자는 예전부터 그랬다. 좋게 말하면 겉도는 사람을 놔두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다른 사람의 호흡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수연도 남자를 별로 좋게 평가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수연은 조금 기뻤다. 그것은 남자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였다.

  남자는 셔츠 소매를 접어 올리곤 맨바닥에 그대로 앉았다. 수연은 남자가 입은 셔츠가 꽤 깔끔하다는 것에 조금 놀라며, 저도 남자를 따라 앉았다. 남자의 마른 손목뼈를 수연은 굳이 의식하지 않았다. 자신의 것도 비슷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제 앞에 자리 잡은 수연의 양손을 잡곤 흔들었다. 그것은 남자 특유의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남자가 유난히 손에 땀이 많은 편이 아니기만 했다면 썩 괜찮은 인사법이었을 것이라고, 수연은 생각했다.

  선배는 빵집에서 지내는 거예요? 예전부터 빵 좋아하더니.

  내가 빵을 좋아해서 빵집에서 살겠냐. 이 근처가 먹을 거 구하기 쉬우니까 여기서 그냥 죽치고 있는 거지. 나 살던 곳에서 시내까지 나오려면 힘들다고.

  선배 어디서 살고 있었죠?

  학교 근처 원룸촌에서. 거기는 다 원룸밖에 없고, 그 근처 편의점은 다 털렸거든.

  수연은 그 근처 편의점을 털어버린 사람 중 하나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남자와 수연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남자는 자신이 학생회장이었던 누구를 사랑했던 일이나, 모두가 싫어했던 교수의 욕을 했던 일을 말했다. 대부분 수연이 쉽게 대응하기 어려운 말들이었다. 수연은 어쩌면 선배는 그냥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둘 사이의 정적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그래서어디 가고 있었냐? 먹을 거 찾으러 가면 내가 좀 나눠줄게.

  선배잖냐, 라고 남자가 덧붙였다. 수연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 동네를 빠져나가 보려구요.

  왜? 밖에 나가면 뭐라도 다를 것 같아서? 바깥 사정 잘 알지도 모르면서 막 나가지 말어라. 그냥 몸만 상하면 나도 안 말릴 텐데 너도 죽어서 저런 꼴 나고 싶지 않을 거 아냐. 너 지금까지 잘 지내왔으면 그냥 가서 살던대로 살어.

  누가 같이 좀 나가자고 해서요.

  수연은 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만약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면 준은 그것을 싫다고 말할까? 수연은 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음에도 어쩐지 준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연은 더 준의 유언을 이뤄주고 싶었다. 감정적인 문제가 컸다.

  수연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문득 가방을 풀었다. 수연의 손에 들려 나온 것은 통조림 참치였다. 수연은 남자에게 그것을 건넸다. 남자는 그것을 받아들지 않았다. 수연은 그것이 준과 자신이 처음 만났을 때를 보는 것만 같아 슬쩍 웃음을 지으려다 말았다. 수연은 바닥에 통조림을 두곤 등을 돌려 빵집을 나섰다.

  남자 말대로 수연은 바깥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보균자로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잘 알았고, 만약 준의 말대로 정말 항체가 생겼다면 정부 차원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수연이 길을 걷는 동안 준은 썩지 않는 비닐봉지 속에서 잘 지내고 있을 것이었다. 수연은 언젠가 준의 살이 썩어 문드러져도 그 비닐 안에 모든 것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생각했다. 언젠가 수연이 그것을 되찾으러 올 날이 올 수 있을까.

  수연은 그런 날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연은 익숙지 않은 침대에 몸을 눕혔다. 수연이 들어오기 전에 어떤 여자가 살고 있었을 방이었다. 수연은 극세사 이불에 몸을 넣었다. 여자의 검은 코트가 의자에 걸려 있었다. 음식물이 들어 있던 쓰레기들이 바닥에 널려있었으나 밤이 깊어지도록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수연은 여자의 운명이 안 좋은 방향으로 끝났으리라 짐작했다.

  준의 방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수연은 낯선 방에서 준의 냄새를 찾았다. 수연은 자신이 설마 준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닐지 고민해보았다. 수연은 준을 떠올리며 몸을 둥글게 말곤 베개를 끌어안았다. 어째서 이 시점에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것인지, 수연은 알 수 없었다.

  수연은 자신이 준을 사랑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준이 전부터 하고 있었다면, 준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도시 밖으로 나가는 여행을 준과 함께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준이 죽지 않았더라면. 수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준이 죽고 난 이후 처음으로 수연은 눈물을 흘렸다. (7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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