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단메이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Y A G I

 

 

오늘의 새벽은 새파랗지 않고 어딘가 불만스러운 청회색입니다. 당신은 웬일로 제 곁에서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앳된 얼굴을 바라봅니다. 자고 있을 때의 당신은 깨어 있을 때의 당신과는 어딘가 다릅니다. 어느 쪽이 더 좋냐고 묻는다면, 저는 둘 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다른 것을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저는 간밤에 당신과 나눈 대화를 떠올립니다. 당신은 당연하다는 듯이 제게 폭언을 뱉으면서도 내게 모든 것을 쏟아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고 말하면서 제 어깨를 깨물기도 하고 그 섬세한 손끝으로 제 몸을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 가끔 당신과 밤을 보낼 때마다 있는 일입니다. 이제는 당신의 말에 그다지 상처를 받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게 충분히 의미 있는 쾌감을 주니, 한낱 말 따위에 특별히 더 무거운 저울추를 올려놓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떨까요.

고백하자면 저는 당신에게 속하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의 환부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정확히는 환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종양 같은 것이 되어서 당신을 오래오래 아프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 고통을 달래느라 저에게 쩔쩔매고 저를 배려하고 보살피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흥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보살피는 사람이 아니더군요. 의사로서 그렇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 의사가 타인의 상처가 되는 것 역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니 그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죠.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시 한번 제 흥미를 끌었다는 점입니다. 당신은 상처를 보살피지도, 상처를 잘라내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익숙한 일이라는 듯 상처에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그런 당신을 보며 당신의 상처로서, 당신의 몸 안에서 날뛰고 싶었습니다. 평생 딱지가 앉지 않는 상처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꾸준히 관계를 가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픔을 잊지 못하는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저는 그게 퍽 궁금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사랑할 수 있나요. 저에게 폭언하면서도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 감정을 희석하지 못하는 당신은, 저를 어떻게 대할 건가요. 이것은 그 어떤 실험보다 흥미로운 것입니다. 물론 실험을 하려면 실험자의 감정을 배제해야겠지만.

가끔은 그게 되지 않는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지요.

저는 손을 뻗어 당신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 넘깁니다. 간밤에 당신이 흘린 땀에 흠뻑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머리카락은 생각보다도 더 가늘고, 아름다웠습니다.

뭐 하는 거야, 망할 영감.”

이제 슬슬 깨울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영감이랑 잔다고 영감이 오해를 하나 본데.”

오해 같은 건 없어요, 아메무라 군.”

당신은 그 작은 자극에도 잠에서 깨나 봅니다. 그 정도로 예민한 당신이 상처를 그렇게 다루다니. 저는 믿기지 않습니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눌러 참습니다. 당신은 저를 침대에 두고 먼저 일어납니다. 하늘에서 청색 빛깔이 서서히 걷히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좀 흐릴 모양입니다. 당신의 벗은 몸이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를 한 번 노려보곤 샤워실로 들어갑니다. 물줄기가 당신의 몸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은 샤워를 오랫동안 하는 편입니다. 저는 당신이 어젯밤 제게 주었던 쾌감과 흥미로움을 떠올리며 이불 속에 몸을 파묻습니다. 제가 당신의 환부가 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동시에 당신도 저의 환부가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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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내용 없음 주의  # 캐해석 흔들림 주의

 

 

Rude Love

 

Y A G I

 

 

 

쟈쿠라이는 진료실로 들어온 사람을 보고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라무다가 어색하게 문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라무다는 평소와는 다르게 쟈쿠라이의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바닥만 훑고 있었다.

아메무라 군. 여긴 어떤 일입니까.”

할배.”

라무다는 도통 테이블로 다가올 생각도 하지 않고 문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병원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쟈쿠라이가 몸을 일으켜 라무다의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쟈쿠라이는 그것이 쟈쿠라이 개인이 아닌 진구지 쟈쿠라이라는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무다는 쟈쿠라이를 의사로서 만나러 온 것이 아닌 듯했다. 쟈쿠라이는 갑작스레 제 허리를 껴안은 라무다를 내려다보았다. 라무다는 쟈쿠라이의 명치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쟈쿠라이는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쟈쿠라이는 조심스레 라무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할배한테는 말 안 할 건데.”

그렇습니까.”

쟈쿠라이의 목소리에는 별 무게감이 실려있지 않았다. 라무다는 쟈쿠라이가 이런 일을 많이 겪어본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라무다는 그게 어쩐지 싫었다. 지금 쟈쿠라이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쟈쿠라이에게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단 말인가. 라무다는 그 감정을 질투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진짜 안 물어봐?”

아메무라 군이 이야기하기 싫다 하지 않았나요.”

맞아.”

라무다의 말에 쟈쿠라이는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것도 일종의 여유인 것 같아서 라무다는 그 웃음이 어쩐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가 의사로서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그냥 이렇게만 있어 줘.”

그 말에 쟈쿠라이는 별다른 답 없이 라무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감각은 쟈쿠라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따로 관리를 하는걸까. 쟈쿠라이는 어쩐지 라무다의 샴푸 냄새가 제 코끝을 스치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마치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알 수 없는 정적을 깬 것은 라무다 쪽이었다.

할배, 이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특히 우리 애들한테는.”

알겠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쟈쿠라이는 라무다의 어깨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의사 쟈쿠라이가 아닌, 인간 쟈쿠라이로서의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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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해석 흔들림

 

 

수련睡蓮

 

Y A G I

 

 

 

돗포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쟈쿠라이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단지 그는 평소처럼 쟈쿠라이에게 상담할 것이 있었고, 그래서 그의 병원에 들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들은 소식은 웬일로 쟈쿠라이가 비번이라는 소식이었다. 돗포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내심 쟈쿠라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쟈쿠라이의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몇 번이나 그에게 전화를 걸었던가. 그러나 쟈쿠라이는 단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것은 돗포의 불안을 더욱 심화시켰다.

돗포가 욕조에 잠겨 있는 쟈쿠라이를 발견하게 된 경위는 그랬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쟈쿠라이는 잠겨 있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죽어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걸맞은 모습이었다.

선생님!”

쟈쿠라이의 모습을 본 직후 돗포는 자기도 모르게 양말을 신은 발로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욕실 바닥은 말라 있었다. 선생님은 도대체 얼마나 욕조 안에 오래 계셨던 걸까. 돗포가 손을 뻗어 쟈쿠라이를 일으키려 했을 때 쟈쿠라이는 눈을 떠 돗포를 바라보았다.

물속에 잠겨 있어도 그의 시선은 곧았다. 돗포는 그 시선에 쟈쿠라이에게 내밀던 손을 거두었다. 돗포와 눈이 마주친 쟈쿠라이가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에서 빠져나온 쟈쿠라이는 참았던 숨을 가만히 내쉬곤 젖은 손가락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리곤 그는 돗포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물기가 많은 정적이 가라앉았다.

돗포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쟈쿠라이를 바라보았다. 쟈쿠라이는 그런 돗포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연 것은 돗포였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죽으려는 줄 알았습니다.”

죽음이 궁금하기는 했지. 산 사람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아닌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뇨, 제가 무슨 권리로 이런 말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기어들어 가는 돗포의 목소리를 들으며 쟈쿠라이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손을 뻗어 돗포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욕조 속의 물이 찰방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돗포는 쟈쿠라이의 손길에 따라 제 왼쪽 뺨이 천천히 젖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돗포 군. 내게 죽음보다 더 흥미로운 걸 알려주겠나?”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고 차분했으나 돗포는 그의 눈동자에 스쳐 지나간 어떠한 빛을 발견했다. 그것은 광기와 비슷한 것이어서 돗포는 자신이 그것을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예를 들면 욕실 전등의 불빛이 이상한 각도로 그의 눈에 비쳤다거나 하는 식으로.

돗포는 그런 것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돗포 자신이 알고 있는 쟈쿠라이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색채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제 이야기를아니, 제 이야기 같은 건 재미없겠군요.”

돗포는 그의 눈빛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로 그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딱히 없었다. 흥미로운 것이란, 뭐지? 돗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적어도 돗포 자신은 그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였다. 돗포는 쟈쿠라이와 맞추던 눈빛을 바닥으로 돌렸다.

내겐 그렇게 말하는 돗포 군이 굉장히 흥미롭네.”

그러나 쟈쿠라이는 그런 돗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그를 잘 알아오던 사람만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약간 들떠 있었다. 쟈쿠라이는 물속에 잠겨 있었던 나머지 한쪽 손을 뻗어 부드럽게 돗포의 뺨을 붙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돗포의 첫 번째 입맞춤은 축축한 감각이었다.

내가 왜 돗포 군의 이야기를 재미없어 할 것 같은가? 거기서부터 말해보게.”

혀도 섞지 않은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그러나 돗포에게는 그것이 그 어느 입맞춤보다도 자극적이었다. 돗포는 젖은 쟈쿠라이에게서 물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에게서는 그 어떤 향기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 그를 덮고 있던,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향기마저 깨끗하게 사라져있었다.

돗포가 어쩔 줄 몰라 속눈썹만 깜빡이는 동안 가까이 다가왔던 쟈쿠라이의 얼굴이 다시 멀어졌다. 돗포는 손등으로 제 입술을 문질렀다. 약간의 물기가 어려있었다.

힘들면 방금은 어땠는지부터.”

잘 기억이 안 나요, 선생님.”

돗포의 말에 쟈쿠라이는 짧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럼 한 번 더 알려줘야겠지. 이번에는 꼭 말해주게. 굉장히 궁금해졌어.”

돗포는 쟈쿠라이의 입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쟈쿠라이의 아랫입술을 힘없이 깨물며 여전히 이 감각을 말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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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소재 있음  # 과거 날조 있음  # 진단 메이커

 

 

여름밤

 

Y A G I

 

 

 

1

 

돗포 군.

지금의 돗포 군은 무얼 하고 있나요. 저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삶을 보냈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아프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다시 건강해지곤 합니다. 병원의 일상이란 그런 것이죠. 돗포 군이 알다시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듯 오가는 이곳에 저는 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돗포 군을 만났죠. 저는 그것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요.

제게 있어서 돗포 군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돗포 군이 저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눈치챌 수 있었죠. 돗포 군은 생각한 것이 그대로 얼굴에 떠오르는 타입의 사람이었죠. 그건 알고 있었나요, 돗포 군? 돗포 군은 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그런 걸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돗포 군이 처음으로 제 관심을 끈 것은 바로 그런 것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어요. 처음에는. 지금은……. 돗포 군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이더군요. 저는 그런 돗포 군에게 어떠한 믿음 따위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돗포 군. 저는 이 편지를 쓰고 난 이후 바로 이것을 태워버릴 예정입니다.

 

 

2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그의 말에 나는 펜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밑은 역시 오늘도 어두웠다. 그의 등허리는 가볍게 굽어 있었다. 그것은 직장인의 어쩔 수 없는 숙명과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반은 습관적으로 그에게 고용량 비타민을 처방하며 말했다.

돗포 군. 어째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그냥요. 사람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는 보통 안 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 말은 삼켰다. 대신에 아예 펜을 놓고 깍지를 낀 손을 턱밑에 두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그는 어물쩍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거리에서도 그의 눈동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뻔히 보였다. 나는 그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내 쪽으로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이 다시 진료실 바닥을 헤맸다. 속이 저렇게 뻔히 들여다보이는데 일은 어떻게 하나.

돗포 군은 오래 살 겁니다.”

어떻게 그런 걸 아나요?”

그의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져 있었다. 동그랗게 뜬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그렇게 당황하더니, 지금은 그런 것보다 궁금증이 우선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여태까지의 진료 기록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의사의 직감이에요.”

내 말에 그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었다. 다 됐습니다. 내 말에 그는 평소처럼 고개를 꾸벅 숙이곤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다음 환자가 들어오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걸까.

 

 

3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어떠한 예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죠. 어쨌든 내게 남은 돗포 군의 마지막 말은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행복하셔야. 행복.

병원으로 실려 온 돗포 군의 모습을 보고 나는 수도 없이 그 말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사고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것이 돗포 군의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고인지 자실인지까지는 제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돗포 군이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철길에 갈려 엉망이 된 얼굴로 돗포 군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돗포 군의 미약한 숨이 끊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돗포 군의 마지막은 그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 그냥 고통 없이 죽여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 고통 없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의 목을 조르지도, 당신에게 금방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약물을 투여하지도 않았습니다.

 

 

4

 

그 뒤로 그는 종종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전에는 우리 둘 사이에서 그다지 오가지 않았던 주제였으나, 나는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입에서 죽음이 어쩌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게 퍽 흥미로워 가만히 두었다.

선생님은 제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환자가 있으면 저도 병원도 좋은 일 아닐까요.”

선생님은 다른 사람이 아픈 걸 좋아하시나요?”

농담이었습니다.”

제가제가 또 진지하게 생각했군요…….”

그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오늘도 그에게 비타민을 처방하며 말했다.

돗포 군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합니까?”

한다고는 못하겠네요.”

그 말을 하며 그는 조금은 낯설게 웃어 보였다. 마치 하면 안 될 말을 뱉어버린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약간의 곤란함이 섞인 웃음.

정상이네요.”

?”

다들 죽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하면서 살아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는 건, 선생님도 그러실 때가 있나요?”

글쎄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곤 생각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그런 것을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전혀 재미도, 흥미도 없는 일이었다. 대신에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과거의 기억 따위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 눈앞에 살아있는데, 내가 굳이 과거를 복기할 필요가 있을까.

선생님 부탁 하나만.”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끊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을 더듬기까지 하며 제가 한 말을 수습하려 했다.

아니, 아니, 그게……. 괜찮습니다. 별 것 아니라서요.”

별 것 아니면 더 들어주기 쉽지 않을까요. 말이나 한 번 해보세요, 돗포 군.”

, 저기.”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에어컨에서 찬 바람이 쏟아지듯 나오는 소리만이 우리 두 사람의 사이를 채웠다. 그는 가볍게 입술을 떨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름을.”

이름을?”

불러 주세요.”

돗포 군.”

이름을 불러달라니. 이름이야 항상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고, 그냥 이름만.”

돗포.”

, 쟈쿠라이 선생님.”

만족했습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웃었다. 아무리 봐도 그가 진짜로 원하던 것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지만. 그러나 진심으로 원하던 것은 아니었어도 그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언젠가 불시에 그의 이름을 불러보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5

 

저는 다만 당신의 귓가에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돗포, 돗포, 하고. 돗포 군은 그걸 다 듣고 있었나요.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돗포 군.

죽은 사람은 환생하기 전 딱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의 꿈에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윤회 같은 것을 쉽게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믿고 싶군요. 그 정도로 간절하게, 돗포 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돗포 군은 제 말을 예상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저는 돗포 군을 기다립니다. 돗포 군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돗포 군. 어서 저를 다시 찾아오세요. 그러면 제가 돗포 군이 아마도 원했을 이야기를 해주겠습니다. 돗포 군이 원했고,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편지로는 미처 담을 수 없는 말을 돗포 군을 마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하겠습니다. 돗포 군도 듣고 싶지 않나요. 제 입에서 나올 말을.

 

저기, 돗포 군. 돗포. 거기도 아직 여름인가요. 여기에 있는 내게는 끝나지 않을 여름이 남았습니다. 밤이 아주 긴 여름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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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진단 메이커가 나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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