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요모

 

 

진눈깨비

 

Y A G I

 

 

  이번 겨울은 내내 눈이 아닌 진눈깨비만 쏟아졌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주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우타는 요모에게 커피 한 잔을 권했다. 네가 내린 것보다는 맛이 별로겠지만, 그래도. 우타의 말에 요모는 묵묵히 잔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우타의 가게는 지하에 있었지만 그래도 꽤 따뜻한 편이었다. 요모는 코트의 단추를 하나 풀어냈다.

  이렇게 오래 있을 예정은 아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카페 일이야 잠시 토우카에게 맡겨두어도 크게 문제는 없을 테니까. 커피는 오늘따라 맛이 썼다. 원두를 너무 많이 볶았기 때문인 듯했다. 그것은 우타답지 않은 실수였다.

  하긴, 세상이 바뀌고 우타는 점점 더 이전의 그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외모부터가 그랬다. 우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짧게 자른 머리가 그의 귀밑을 스쳤다. 그러고 보면 최근 ‘습격’도 없었지. 요모는 잔을 내려놓았다. 잔과 받침이 부딪치는 소리가 쨍하고 울렸다.

  “…렌, 나는 네 친구야?”

  “그게 나를 부른 이유인가?”

  한참의 적막 뒤에 나온 우타의 말이었고, 너무도 짧은 시간 만에 튀어 나간 요모의 대답이었다. 요모의 대답에 우타는 요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냐.”

  우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우타는 유난히 우울해 보였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본디 위로 같은 것에 재능이 없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타가 저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 가줘.”

  우타의 말에 요모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여전히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채우지 않은 코트의 단추 틈으로 내리는 진눈깨비가 떨어져 들어갔다. 요모는 단추를 채우는 대신 우산을 기울이곤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 사이 우타는 요모가 남기고 간 커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는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커피잔을 들었다. 잔의 테두리에 아주 희미하게 커피 자국이 남아있었다. 우타는 그곳에 제 입술을 대었다. 쓴맛이 강하게 올라왔다.

  우타는 이제 더는 요모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하늘이 흐렸다. 오늘은 눈이 오면 좋을 텐데. 요모는 우타의 가게 앞에서 우산을 접었다. HySy - Art mask studio. 요란하게 장식된 글자가 요모의 눈에 비쳤다. 요모는 손끝으로 H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태양을 어루만졌다. 우타의 가슴팍에 있는 것과 똑같은 무늬였다.

  요모는 굳이 노크를 하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부터 그래왔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노크는 하고 와줄래?”

  그러나 우타는 그렇지 않은 듯 보였다. 손님이 없어서 다행인가. 우타는 작업대에서 손을 털고 일어섰다. 요모는 조금은 머쓱한 듯 바닥의 체스 무늬 타일의 틈을 바라보다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우타는 요모의 코앞까지 다가와서야 입을 열었다.

  “무슨 볼일이야?”

  “그냥.”

  “렌지답지 않네.”

  우타는 그렇게 말하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곤 요모를 똑바로 바라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신경 쓸 틈도 있어?”

  “무슨 뜻이지?”

  “렌지는 나 빼고 다른 모든 것을 신경 쓰느라 바쁘잖아.”

  요모는 우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우타의 말에 긍정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비쳤나? 요모는 손을 폈다가 다시 말아 쥐었다.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우타가 그렇게 봤다면 그랬던 것이겠지. 요모는 그 말의 안일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밖에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요모를 감싼 것은 자책감이었다.

  그러나 우타는 요모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해 보였다.

  “나는 렌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너는…….”

  “렌지를 보면 나는 나 스스로가 너무 싫어져.”

  우타는 요모를 지나쳐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달리지는 않았지만 아주 빠른 걸음이었다.

  “우타…!”

  요모는 우타를 바로 잡을 수 없었다. 그럴 권리가 자신에게 있을까. 요모는 이미 사라진 우타의 뒷모습을 그리며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돌아가야 할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우타와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다. 요모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주 느리지만 돌아오고 있던 일상에서 빠진 것이 있다면 우타의 존재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갔을 때 요모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요모의 손에는 그때까지 꼭 쥐고 있던 우산이 여전히 쥐어져 있었다.

  요모가 우타를 찾은 것은, 두 사람이 10대를 함께 보냈던 4구의 어느 폐건물이었다. 요모는 마른 침을 삼켰다. 우타는 유리도 없는 창문에 손을 가져다 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머리는 왜 자른 거야?”

  요모는 우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요모의 발소리가 몇 번이나 찬 공기를 울리는 동안 우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모는 우타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우타는 멀어지지 않았다. 그저 바닥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려.”

  “내가 감기 걸려도 아무 신경 안 쓸 거잖아.”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요모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아까보다 더 구름이 짙고 낮게 깔려있었다. 이제는 진짜 눈이 오려나. 요모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가 떴다.

  “글쎄.”

  그 말을 하며 요모는 우타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간만에 닿는 입술이었다. 이렇게 되고 나서야 그리움을 깨닫게 되는, 그런 감각이었다. 요모의 손에서 떨어진 검은 장우산이 바닥에 뒹굴었다.

  “내가 진짜 그럴 거라고 생각해?”

  한참 뒤에 이어진 요모의 물음에 우타는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요모의 옷을 조금 더 꽉 붙잡았을 뿐이었다.

  다시 축축한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마 눈이 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유감없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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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구울_전력 60분  #10대 우타X20대 요모

 

 

 

흔적

 

Y A G I

 

  이것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요모 렌지는 입을 꾹 다문 채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익숙하다면 익숙하고 낯설다면 낯선 아이였다. 아이는 무언가를 투정하듯 입을 비죽 내밀고 요모를 노려보듯 빤히 보았다.

  “…우타?”

  “지금 내 이름만 몇 번째 말하는지 알아?”

  어린 우타는 손등으로 제 뺨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려 하였으나, 핏물은 닦이기는커녕 도리어 어린 우타의 하얀 뺨 위에서 빨갛게 번져버렸다. 어린 우타의 발아래에는 도대체 몇 명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인간의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흘러넘치는 선혈과 달큰함을 넘어선 인간의 향기. 요모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인가. 유년 시절의 우타가 20구에 나타나다니. 요모는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요모가 내린 결정은 일단은 우타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렌지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하네?”

  아주 짧은 신호음이 이어진 후에 우타는 전화를 받았다. 우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어린 우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듯했다. 요모는 급한 마음에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바로 뱉었다.

  “여기 우타가 있어.”

  “응. 나 여기 있어.”

  우타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어리둥절함이 느껴졌다. 요모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냐, 아무것도 아냐.”

  “싱겁긴. 렌지는 항상 그렇다니까.”

  우타는 아주 미미하게 웃음기가 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요모는 순간 이것이 그저 요모의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환상이라면 우타에게 바로 상담하기는 이르지. 금방 사라질지도 모르고. 요모는 휴대전화에서 귀를 떼곤 다시 우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우타.”

  “아저씨는 누군데? 왜 내 이름을 알아?”

  어린 우타는 사라질 징조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팔짱을 낀 채 요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요모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렌지.”

  요모는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여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발음했다. 과거의 언젠가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우타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던 그 어린 시절이 요모의 머릿속에서 뭉근하게 떠올랐다.

  “렌지. 그렇구나.”

  내 친구 이름도 렌지인데. 어린 우타는 속삭이듯 우타에게 말하곤 씩 웃어보였다. 발밑에 나동그라진 인간의 시체 따위에 이제 완전히 신경이 떨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볼일이야?”

  “여기서는…… 그런 포식 행위는 안 돼.”

  요시무라 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20구의 공공연한 규칙이었다. 인간과 함께 생존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요모는 습관적으로 그 규칙을 말하면서도 어린 우타에게 이것이 통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요모가 알고 있는 어린 우타란 그런 규칙 따위에 묶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째서?”

  “이유를 설명해 주면, 들을 거야?”

  “아니.”

  “그럴 것 같았어.”

  요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적막은 대부분 어린 우타가 요모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고 요모는 그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는 식이었다.

  이 시체들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지. 그 전에 이 우타는 어쩌면 좋지. 요모는 어린 우타의 맹렬한 시선을 의식하며 생각했다.

  그때 요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린 우타이기에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요모는 고개를 돌려 어린 우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어린 우타는 슬며시 웃어보였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듯한 표정이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어.”

  요모는 몸을 숙여 어린 우타의 두 뺨을 부드럽게 감싸고는 어린 우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바다가 조각난 채 박혀 있었다.

  “뭔데?”

  “다 큰 우타에게는 말하지 마.”

  요모는 어린 우타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곧 어린 우타는 약간은 마뜩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요모는 혀로 입술을 한 번 적시곤 아주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타는 어째서, 항상 그렇게… 곧 없어질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

  어린 우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빛나는 눈동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한참을 그저 눈만 깜빡이던 우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렌지는 내가 없어지는 게 두려워?”

  “두렵다기보다는.”

  “보다는?”

  “쓸쓸하니까.”

  요모는 어린 우타가 보고 있는 자신의 눈동자에도 그 조각난 바다들이 비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가 공유하는, 그래서 서로가 볼 수 있는 조각들이었다.

  “보통은 그런 감정을 두렵다고 얘기해.”

  어린 우타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요모는 무어라 더 말을 하려 했지만, 어린 우타의 검지에 그 말이 막혔다. 어린 우타는 요모에게 바싹 몸을 붙이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어린 우타의 목소리는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그 말들은 요모의 귓가에 박히듯 들어왔다. 요모는 눈을 질끈 감고 어린 우타의 어깨를 껴안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태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걱정 마. 나는 사라지지 않아.”

  곧 부서질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심지 같은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이 깨지고도 꿋꿋이 우타라는 한 인간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심지 같은 것이. 우타의 말에 요모는 힘껏 그 심지를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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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타 부자설 가볍게 나옴  # 온니 우타  #진단메이커

 

 

거짓말쟁이의 피

 

Y A G I

 

  렌지. 너를 위한 촛불을 켰어.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가. 성당. 그 모든 것들을 싫어하는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야. 렌지 너를 위한 촛불을 켜고, 아마도 마지막일 너의 생각을 하고 싶어서. 너의 생각을 하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란 건 언제나 특별한 일이니까.

  있잖아, 렌지. 우리 같은 거짓말쟁이의 피는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진하고 질겨. 태어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삼키고 감내해야만 했던 거짓말쟁이의 피……. 마치 구울의 피와도 같은 그것……. 구울의 피와 거짓말쟁이의 피 둘 다를 품고 태어난 나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어. 렌지도 아마 알고 있겠지. 렌지는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이니까.

  렌지 너는 내 숱한 거짓말 중에 얼마를 믿었고 얼마를 믿지 않았어? 이 질문을 네 얼굴을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닌, 성당의 거대한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달빛을 보며 하고 있다는 것이 퍽 유감이야. 마지막이니 직접 너에게 물어도 좋을 텐데, 그럴만한 용기가 내게는 없어서.

  모든 거짓말을 다 믿어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어. 렌지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내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단 걸 누군가 깨닫는 건 지독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것조차 렌지라면 괜찮을 것 같아.

  렌지, 지금부터 나는 너를 죽이러 갈 거야. 사실은 너를 죽이기보다는 네 손에 죽고 싶은 마음이 커. 하지만 내가 너를 죽일 각오로 네게 가지 않는다면 너는 나를 죽이려 들지 않겠지. 어쨌든 우리의 유예되었던 싸움이 드디어 끝날 때가 온 거야. 살아남은 누군가의 싸움은 계속되긴 하겠지만, 그건 살아남은 사람의 몫이니까. 지금 미리 애쓰고 고민해봤자 아무 소용없겠지.

  역시 나는 아버지를 너무 닮아버렸나 봐. 사랑하는 존재를 자신의 손으로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고 있는 게 아주 똑같아. 어쩌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받지 못했던 것을 갈망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성격과 닮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나는 그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너에게 갈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나는 네게 얼마나 기대고 있던 것일까. 너는 그 숱한 시간 속에서 얼마나 나를 견디고 있었을까.

 

  모든 것을 고백하자면.

 렌지, 나는 너를 죽이고 싶었고, 너를 사랑했고,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는 성경 구절에도 마음이 흔들리곤 했어. 렌지, 나는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십자가를 믿을 거야. 네가 내 이런 마음을 알아채지 않게 해달라고, 내가 끔찍이 싫어하는 그 신에게 빌어볼 거야.

  렌지, 너를 위해 켠 촛불은 끄지 않을게. 이 촛불을 네가 직접 끌 수 있기를 빌며, 나는 이제 너를 만나러 갈 거야.

 

 

 

 

넘 간만의 우타요모라 손풀기로 짧게 ㅜㅡㅜ 앞으로 다시 우타요모라이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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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AU  #담배 언급 있음

 

 

열감

 

Y A G I

 

 

여름의 열기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잡아먹고 있었다. 우타는 옥상의 좁은 그늘에 몸을 피하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 걸려있는 담배에서 하얀 연기가 느리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옥상의 문이 열리는 순간, 우타는 일순 당황해서 가볍게 손을 떨었고, 그 탓에 쌓여가던 담뱃재가 회색 페인트가 발린 옥상 바닥에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보던 요모는 자신이 열고 들어온 옥상의 무거운 문을 밀어 닫았다.

여긴 어쩐 일이야?”

왠지 옥상에 네가 있을 것 같아서.”

소위 말하는 촉, 같은 거야?”

.”

우타는 다시 입술로 담배를 가져갔다. 요모는 문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어디선가 갑자기 매미들이 악을 써대는 소리가 들렸다. 우타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매캐한 연기의 맛이 우타의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며 우타는 요모를 흘긋 바라보았다. 요모의 시선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해있었다.

의외로 아무 말도 안 하네.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방과 후니까.”

담배, 피울래?”

우타의 말에 요모는 그를 잠시 멀뚱히 바라보다가 응, 하는 소리를 내며 손을 내밀었다. 우타는 선선히 요모에게 담배 한 대를 건넸다. 요모는 아주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고, 곧 불을 붙여달라는 듯 우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우타는 라이터를 켜 내밀었다. 작은 불꽃의 열기가 우타의 손끝을 매섭게 적셨다.

담배 피워봤어?”

몇 번.”

안 그렇게 생겼는데.”

사람은 겉으로 봐선 모르는 거니까.”

요모는 담배 연기를 뱉으며 말했다. 우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수긍했다.

하긴, 그건 그렇지.”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않고 담배만을 태웠다. 아마도 여러 운동부 중 하나가 운동장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쟤들은 덥지도 않나. 우타는 중얼거리듯 말하며 요모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나 요모의 시선은 여전히 우타가 알 수 없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거기 뭐라도 있어?”

결국 우타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요모에게 물었다. 요모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약간은 멍한 눈빛으로 우타를 돌아보았다. 우타는 방금까지 요모의 시선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도 없는 파란 하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그런데 왜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

그냥. 할 것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요모는 다시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우타는 거의 필터 근처까지 온 담뱃불을 바닥에 비벼 끄곤 담배를 한 대 더 꺼내 물었다. 우타는 불은 붙이지 않은 채 담배 필터만을 앞니로 가볍게 씹다가, 다시 요모에게 말을 붙였다.

넌 집에 안 가?”

가봤자 할 것도 없어.”

나도 그래.”

우타는 묻지도 않은 것에 답하며 요모에게 슬쩍 몸을 기대었다. 희미한 땀 냄새와 짙은 담배 냄새가 우타의 코끝을 스쳤다. 요모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는 어딘가 달큰한 감각이 있었다.

비슷하구나, 우리.”

아마 그렇게 비슷하지는 않을 거야.”

거리 두는 거야?”

딱히.”

그 말에 우타는 멀겋게 웃었다. 요모는 가볍게 고개를 돌려 우타의 하얀 이마를 보다가 반쯤 남은 담배를 껐다.

맛없다, 이거.”

빌려 피우는 입장에서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우타는 웃음기가 서려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요모는 흠, 하고 숨을 뱉더니 눈을 깜빡이며 답했다.

안될 건 없지.”

그렇네. 안될 건 없지만.”

우타는 말을 이으려다 말고 멀뚱히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가 우타가 기대고 있던 어깨를 빼버렸기 때문이었다. 그에 우타는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그는 더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햇빛에 젖은 요모의 입술은 따뜻하다기보다는 뜨거운 것에 훨씬 더 가까웠다. 여름에 걸맞은 온도라고 생각하며, 우타는 요모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두 사람의 입안에서 담배의 향이 지워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남은 것은 열감뿐이었고, 우타는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난 좀 더 맛있는 게 좋아.”

나도 그래.”

잠시 가라앉았던 매미의 울음이 다시 소란스레 공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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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병

 

Y A G I

 

 

죽음은 어째서 사랑과 가까이 붙어있나. 한손으로 턱을 괸 채 먼 곳을 바라보았다. 무겁게 내려 앉아 있었던 밤의 기운이 새파란 새벽 공기에 밀려 사라지고 있을 때였다. 밤을 샜지만 머리는 맑았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에, 너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뜨거운 물로 몸을 씻었다. 물줄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대규모 전투가 예정되어 있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고, 그 중에 나 자신도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따위가 아니었다. 우리에 쿠키. 그 한 인물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며 나는 다시 한 번 더, 어째서 죽음과 사랑은, 특히 욕정은 함께 오는 것인지를 고민했다. 인간이란 죽기 전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들어진 생물인 걸까, 아니면 그 대상이 우리에이기 때문에 이러는 걸까.

샤워가 끝날 때까지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평소처럼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머리를 정리했다. 그러나 거울에 비치는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 우리에 네가 고전하는 모습이었다.

너의 상처는 참으로 아름답다. 이것은 비단 네 육체적인 상처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네가 가지고 있는, 아마도 너는 필사적으로 부정할 어떠한 의식들까지도 아름다웠다. 평소라면 내가 거들떠보지도 않을 생각들이었지만 그것이 네게 존재하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뀌었다. 너는 상처마저 아름다웠다. 나는 너의 비열한 상처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감정이 사랑이 맞기는 하겠지. 나는 가끔 그것이 불안했다. 사랑 따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런 감정은 업무에 불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완전히 배재해 두었다. 그런 내 삶에 네가 들어왔다. 이런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우리에 너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었다.

발걸음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의식이 향하고 있는 것은 전장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장은 전장이지만, 그곳의 전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싸우고 있을 우리에를 보고 있었다. 너의 손끝과 그 끝에서 시뻘건 피를 흘리며 구축될 구울들을 보고 있었다.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이 더해진 모습.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을까.

마음을 가다듬어야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전투 때는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심장을 차게 유지해야만 했다.

아마 우리에 네가 이번 전투에서 죽는다면 나는 몹시 슬플 터였다. 그러나 동시에 너의 죽음에 도취될 것이었다. 아름다운 시절의 너를 그리워하며 나는 또다시 너를 욕정할 것이다.

우리에 네가 만약 죽지 않는다면, 나는.

나는 어쩌면 좋을까. 이 욕정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희미한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내가 파악할 수 없는 미래는 항상 두려움과 함께 있었다. 그렇다. 너는 아름다운 두려움이었다.

너 자체를 파악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너는 의외로 꿰뚫어 보기 쉬운 타입의 인간이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너 자체라기보다는 네가 내게 불러온 감정들이었다. 그래, 어쩌면 나는 나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를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면 또 어떠랴. 이미 상황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곳까지 도달했는데.

작전 개시.

내 입에서 떨어지는 목소리가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너를 생각했다. 살아있는 너도, 죽은 너도 아닌 내 곁에서 내 욕망을 받아주는 너를 생각했다. 전투에 앞서 너무 부정한 생각이었나. 나는 길게 숨을 내뱉으며 생각을 멈췄다. 다만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아름다운 너의 모습을 한 번 더 눈꺼풀 뒤에 그려보았다.

아무래도 아직 너를 완전히 버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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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모 생일 축전으로 쓰려던 글

 

 

이제는.

 

Y A G I

 

 

 

  1

 

 

너는 태어난 걸 후회하지 않아?”

요모의 말에 우타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시선을 요모에게 돌렸다. 그런 말을 해놓고 요모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타는 반쯤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곤 요모를 바라보고 누웠다. 요모는 눈을 내리깔곤 나른한 숨을 내뱉고 있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건데?”

너라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서.”

후회라. 우타는 흐린 시선을 천장의 어딘가에 두었다. 요모는 참을성 있게 우타의 다음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도 염색한 것이 분명한, 우타의 노란빛 머리카락이 그의 어깨 위에서 한 번 흔들렸다가 가라앉았다.

별로. 후회라거나, 그런 거 생각해 본 적 없어.”

그래.”

질문에 비해 대답은 꽤 담백했다. 우타는 호기심이 담뿍 묻은 미소를 얼굴에 띄운 채 다시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우타를 대했지만 으레 있는 일이기에 우타도 그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도리어 우타는 그 굳을 얼굴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우타를 제외한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표정이란 게 존재하는 얼굴이었으니까.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벗은 어깨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렸다. 요모는 그 손의 온도에 살짝 몸을 움츠리면서도 그의 손을 받아내었다.

우타는 사뭇 다정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말을 건넸다.

렌지는 후회해?”

모르겠어.”

즉답이었다. 확실히 요모의 속에서 많이 숙성된 질문인 모양이었다. 태어난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 요모는 그 질문을 제 속에서 얼마나 굴린 후에 물어본 것일까.

어떻든, 렌지 생일 때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생일이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괜히 생각하게 되잖아. 우타는 요모의 말에 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못 하게 해줄까?”

뭐야.”

생일 선물.”

우타는 그렇게 말하며 요모의 위에 올라탔다. 그의 따뜻한 입술이 요모의 몸 곳곳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밀어내지 않았다. 확실히, 아무 생각 안 들게 만들어 주긴 하지. 우타의 손끝이 제 허리를 쓸어내리는 것을 느끼며 요모는 우타의 목을 껴안았다.

생일이라고 해서 평소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기분의 차이, 같은 애매한 말도 없었다. 그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는 느낌, 그리고 그것을 채우는 낯설지 않은 욕망. 그런 것들만이 요모를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우타의 마른 어깨를 껴안고 모든 것을 쏟아냈을 때, 요모의 머릿속엔 다시 한 번 더 그 질문이 떠올랐다. 너는, 과연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가.

 

 

2

 

예전에 그런 말 했던 거 기억나?”

지금의 우타는 담배 같은 것은 피우지 않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짧은 일탈이라고 했던가. 대신에 그는 침대에 엎드려 천장을 바라보고 새된 숨을 내뱉고 있는 요모를 바라보았다. 우타의 질문에 요모는 눈동자만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우타는 싱긋 웃어보였다. 뭐가 그렇게 마냥 좋은 건지. 다음부턴 포지션을 바꾸자고 해야겠어. 요모는 우타에게 몇 번이나 물려 약간은 쓰라린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떤 말?”

태어난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

요모는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뱉으며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요모의 기억이 맞다면 그때도 자신의 생일이었을 것이었다.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손끝과 자신의 손끝을 맞대었다.

지금은 어때?”

글쎄…….”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뜻일까. 우타는 요모에게로 몸을 가까이 붙이며 말했다.

내가 있는데도 후회가 돼?”

무슨 상관이야, 그건.”

뻣뻣하다니까, 렌지는.”

우타의 목소리는 나긋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다지 불만스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우타가 있으면, 된 건가. 요모는 포지션을 바꾸지는 말도 잊고 제 위로 타고올라오는 우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요모는 자연스레 제게 입을 맞추려 드는 우타의 얼굴을 밀어내었다. 우타는 한쪽 눈썹을 밀어올리며 의문스러움을 표했다. 요모의 표정은 어딘가 굳어있었다. 싫은건가, 하고 우타가 생각할 때, 요모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지며 신중하나 아주 무겁지는 않은 말을 뱉어냈다.

후회하지 않아.”

그럼 됐어.”

요모의 말에 우타가 픽 웃었다. 곧이어 우타의 입술이 요모의 입술에 닿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목덜미를 껴안으며, 후회하지 않는다는 요모의 말을 되뇌고 있었다.정말로 그럼 됐다. 렌지 네가 더는 살아남은 걸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걸로 우타는 충분했다.

 

THE SECOND KISS

 

Y A G I

 

 

우타는 처음 그를 봤을 때 그가 참 딱하다고 생각했다.

그 소년은 제 몸보다 훨씬 더 커다란 우리에 갇혀 쓰러지듯 엎드려 있었다. 그는 철로 된 바닥을 몇 번이나 손톱으로 긁었는지, 손끝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바보같이. 그래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자기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텐데 꼭 힘을 뺀단 말이지. 우타는 입으로 쯧쯧 소리를 내며 그를 불렀다. 소년이 목구멍을 울려 으르렁거렸다. 엉망으로 엉킨 회색 머리 아래에 같은 색의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타는 그의 눈동자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에 아주 약간 놀라움을 느꼈다.

그는 우타에게 달려들었다. 우타는 익숙한 듯 몸을 두어 발자국 뒤로 물렸다. 철창에 매달려 으르렁거리는 그를 보며 우타는 그저 그의 이빨이 날카롭구나,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소년은 예부터 발견하기 힘든 백호 인수였다. 그러니 포획되어 여기까지 굴러들어온 것이겠지만. 우타는 손을 뻗어 마치 호랑이가 아닌 고양이를 다루듯 그의 콧잔등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면 소년은 손톱을 뻗어 우타의 살점을 조금이라도 긁어내려고 애썼다.

한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해서 상태나 보러 왔더니 아직 멀쩡해 보이네.”

우타는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철창 안의 소년과는 다르게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조금 더 힘이 빠지면 다시 찾아올게. 소년은 철창을 붙잡은 채 멀어지는 우타의 뒷모습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소년은 이곳에서 빠져나갈 생각 따위는 사실 하지 않고 있었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희귀한 인수나 수인들을 잡아다가 옥션에 파는 악질 중의 악질들. 그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살아있는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서 거래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미래가 기다릴 바에는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리는 게 나았다.

소년은 다시 철창의 한가운데로 걸어가 몸을 웅크렸다.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는 소년을 다시 찾아온다고 말했다. 소년은 그때는 반드시 그의 목을 물어뜯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하의 차가운 조명 아래에서 며칠 동안이나 식음을 거부했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윙윙 도는 것만 같아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이대로 죽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때 왜 그 남자가 떠올랐는지는 그도 모를 일이었다. 죽이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일까, 아니면 다시 오겠다는 말이 생각보다 그의 기억에 각인된 걸까.

소년은 그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에 떠오르는 게 자신을 팔아넘기려고 하는 사람이라니. 기운이 없는 와중에도 헛웃음이 났다. 소년은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놀랍게도 눈앞에 그 남자가 있었다. 소년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남자는 소년의 어깨를 눌러 그것을 제지했다. 그다지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았지만 소년에게는 겨우 그 정도의 힘을 버틸만한 기운 같은 건 없었다.

고집이 센 아이구나.”

우타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조심스레 소년의 한쪽 뺨을 쓰다듬었다. 아직은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나 있는 부드러운 살결이었다.

죽고 싶겠지만, 너를 죽게 둘 수는 없어. 나도 내 사정이 있어서 말이지.”

미안하게 됐어, 하고 우타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묘한 진심이 묻어있었다. 소년은 툭툭 끊기는 생각을 이어붙이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우타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소년에게 입을 맞췄다.

그 입맞춤은 눅눅했다. 우타는 천천히 머금고 있던 물을 소년에게 넘겨주었다. 그는 우타의 키스를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목을 껴안아 조금 더 그에게 가까이 붙었다. 살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우타는 입술을 떼어내며 살며시 눈을 떠 소년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머지는 직접 마셔.”

우타는 소년의 곁에 물병을 놓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소년은 비척비척 일어나 앉아 멀뚱히 물병을 바라보았다. 우타는 그런 소년을 보고 웃음기가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 마실 거야? 아니면 또 키스해 주기를 바라는 거야?”

우타의 말에 소년은 무릎을 짚고 일어났다. 우타는 철창에 등을 기대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우타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갔다. 소년은 우타의 작은 손바닥으로 우타의 뺨을 감쌌다. 우타는 그의 그런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의 죽음에게 2

 

Y A G I

 

0

 

태초에 죽음의 신과 쾌락의 신은 한 몸이었다. 그것에 이유는 없었다. 그저 세상이 처음 구성되었을 때 삶과 함께 태어난 죽음의 품에 쾌락이 안겨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죽음과 쾌락의 신이 죽었다. 그들은 이 세계에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두 죽음의 신의 마지막을 본 한 명의 인간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우연이었으나, 결국 그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처럼 그 인간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러나 더 이상 죽음에 쾌락은 없었다. 죽음의 신은 더 이상 쾌락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 인간은 죽음의 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사람들은 조금씩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죽음 이후에 남는 것은 더 이상 쾌락이 아닌, 슬픔이었다.

그는 죽음과 눈물의 신이었다.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트리며 인간들의 영혼을 거두는 신이었다. 그럴 때마다 하늘에서는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1

 

요모 렌지는 검은 드레스 셔츠에 검은 정장을 맞춰 입은 채 검은 장우산을 들고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 요모는 새로운 죽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수단이 꼭 지하철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는 지하철을 타는 것을 즐겼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죽은 눈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모는 이 지하철이 커다란 관처럼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지하철은 편했다. 다른 곳보다 죽음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지하철에도 생기가 넘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그 생기가 주위의 다른 사람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다. 요모는 어쩐지 그런 생기 넘치는 인간들이 불편했다. 요모의 눈에 그들은 죽음이나 슬픔 같은 것과 잠시나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것이 질투라면 질투였다. 요모가 날 때부터 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지도 몰랐다. 아마 자신 이전의 죽음의 신이라면 이런 것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바짝 다가가겠지.

요모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말 그대로 그가 죽였으니까. 요모는 고개를 문 쪽으로 돌렸다.

요모가 그를 본 것은 슬슬 지하철에서 내려 조금 더 생생한 죽음이 있는 곳으로 바로 움직일까 고민하던 때였다.

우타.”

요모는 자기도 모르게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우타, 타우, 우타, 타우. 자기가 사랑했던 죽음의 신의 이름들. 요모의 목소리에 문가에 서 있던 사람이 몸을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많아봤자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머리띠로 앞머리를 뒤로 넘긴 아이였다. 요모가 알고 있는 우타의 모습과는 달랐다. 하지만 요모는 그것이 우타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요모가 죽음의 신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타이기 때문이었을까.

문 가까이에 서 있던 우타가 몸을 움직여 요모의 앞에 서서 요모를 올려다보았다. 요모는 그 도발적인 시선을 슬쩍 피했다.

아저씨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 아무것도.”

하지만 제 이름, 불렀잖아요.”

그냥 해본 말이야.”

누가 사람 이름을 그냥 불러요.”

마침 지하철 문이 열려서 요모는 우타를 지나쳐 문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러나 역시 우타는 집요하게 요모의 뒤를 따라 개찰구 밖까지 쫓아왔다.

사람들이 몰려 들어갔다 몰려나오는 지하철 입구에서 요모는 뒤를 돌아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의 눈동자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힘이 들어있었다.

왜 자꾸 따라오는데?”

아저씨가 제 이름을 불렀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그냥, 아저씨는 궁금하지 않아요? 처음 보는 사람이 이름을 불렀는데.”

그 말을 하며 우타는 빙긋 웃어보였다. 우타는 그런 녀석이었지. 호기심이 위험보다 훨씬 더 앞서는 그런 타입의.

요모는 우타를 내려다보았다. 하필이면 이름과 성격이 같은 걸까, 아니면 신이 죽으면 이렇게 환생하게 되는 걸까. 아직 자신의 죽음을 맞이해본 적이 없는 죽음의 신 요모 렌지는 우타를 내려다보며 그런 고민을 했다.

고민을 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

너는 모르겠다정말.”

저도 아저씨 모르는걸요.”

우타가 태연하게 말했다. 요모는 깊은숨을 내뱉었다.

아저씨 말고, 렌지. 요모 렌지.”

요모 렌지.”

편하게 렌지라고 불러.”

그래, 렌지.”

우타는 서슴없이 요모의 이름을 불렀다. 요모에겐 어려운 이런 일들을 우타는 곧잘 해내곤 했다. 이번의 우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말이 많이 짧아지지 않았어?”

그래서 싫어?”

그 말에 요모는 답하지 않았다. 싫으냐 좋으냐를 굳이 따지자면, 좋았다. 요모는 물끄러미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고개를 들어 요모를 보면서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우타.”

요모가 나지막하게 우타의 이름을 불렀다. 날이 좋았는데 요모는 우산을 폈다. 우타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 일련의 행동들을 바라보았다. 요모는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며 말했다.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그 순간, 요모는 우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우타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요모는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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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에게

 

Y A G I

 

0

 

태초에 죽음의 신과 쾌락의 신은 한 몸이었다. 그것에 이유는 없었다. 그저 세상이 처음 구성되었을 때 삶과 함께 태어난 죽음의 품에 쾌락이 안겨져 있을 뿐이었다. 이 세상 어느 때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만큼 죽음을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죽음을 결코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죽음은 그들에게 약속된 순수한 쾌락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죽음의 신의 몸이 둘로 갈라지며 두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들의 몸에 각각 죽음과 쾌락이 깃들지 않은 것은 누군가의 실수라고도 볼 수 있는, 하나의 우연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는 죽음과 쾌락의 신이 두 명이 되었다.

세상에 죽음이, 그리고 쾌락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1

 

   요모가 그를 만난 것은 요모 자신이 만들어 낸 시체들의 산 위에서였다. 요모는 자신의 것이 아닌 피를 뱉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사위가 조용했다. 요모는 고개를 꺾어 뻐근한 몸을 풀었다.

   “이런, 이미 신의 곁으로 가버렸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요모가 그 장소를 떠나려 했을 때였다. 그는 발소리조차 없이 요모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요모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는 요모가 죽인,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손목을 들었다가 툭 놓았다. 그의 몸을 잡아먹을 듯 휘감고 있는 문신과는 대조적으로 남자는 계절과 맞지 않게 헐렁한 차림이었다.

   마르고 키도 자신보다 작은 남자에게 요모는 어째서 두려움을 느꼈는가. 요모는 뒤로 한 걸음 발을 물리다 질퍽한 피 웅덩이를 밟고는 가볍게 인상을 구겼다.

   “걱정하지 마. 오늘 내가 데리러 온 건 네가 아니야.”

   남자의 미묘하게 높은 톤의 목소리가 겨울 공기를 울렸다. 요모는 의문을 알 수 없는 남자의 말에, 여전히 몸의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지 마. 아무리 그래도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야.”

   “무슨.”

   “그리고.”

   그리고, 하는 말로 남자는 요모의 입을 막았다. 그는 요모를 향해 느리게 다가왔다. 요모는 그런 그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피할 수 없었다는 말이 더욱 가까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보다 압도적인 존재를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두려움. 요모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바로 그 두려움이었다.

   “다음에 봐, 렌지.”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요모의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남기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요모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가 어째서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다음에 만나자는 말은 무엇인지, 왜 자신에게 키스를 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요모는 그가 입술을 남기고 간 곳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의 몸에서는 희미한 단 냄새가 난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어떻게 그 냄새를 맡았는지는, 역시 요모가 알 수 없는 것이었지만.

   요모는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 냄새는 마치 운명처럼 자신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따라다니고 있던 냄새였다.

 

 

2

 

요모는 그의 생각보다 이른 시일에 남자를 다시 만났다. 그곳은 요모가 제 손바닥의 금을 내려다보듯 볼 수 있는, 도쿄의 어느 변두리에 얽혀있는 골목이었다. 그곳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깨진 술병의 조각들이 아주 천천히 바람에 의해 깎여갔고, 살아있는 생물의 내장처럼 꼬여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파이프에서 후끈한 열기가 주위를 데우고 있었다.

그 남자를 보고 털 사이사이에 까맣게 먼지가 내려앉은 길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둥글게 말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남자는 그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남자는 키스를 하고 있었다. 요모가 잘 알지 못하는 두 명의 남자가, 자신의 눈앞에서 진득하게 입을 맞췄다. 간간히 신음소리를 닮은 희미한 숨소리가 들렸다. 요모 렌지는 어째서인지 그들에게서 눈을 떼어내지 못했다. 이런 것을 보는 게 처음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뒤늦게 생각해 보면 스스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요모 렌지는 그들의 키스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남자는 평생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입술을 떼어내며, 눈동자만을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시선. 요모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두려움 따위가 아니었다. 두려움보다 조금 더 안쪽에 있는 것. 자신이 탐하면 안 되는 에덴동산의 사과 같은 것.

그 감정이 쾌락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요모 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남자와 입을 맞췄던 사람은 아주 느리게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었고, 남자는 방금까지 입을 맞추고 있던 그에게 더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 요모는 본능처럼 그의 죽음을 깨닫고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너는정체가 뭐지?”

진짜 알고 싶어? 알면 후회할 텐데.”

남자는 자신의 앞에 떨어지듯 놓인 죽은 이의 손을 가뿐하게 건너 요모에게 다가왔다. 요모는 그의 또렷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해야 했다. 남자는 부드럽게 요모의 양 뺨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마치 곧 키스라도 할 것처럼. 요모는 몸을 뒤로 약간 뺐지만 그렇다고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키스를 하는 대신, 요모의 귓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속삭였다.

나는 죽음과 쾌락의 신이야.”

?”

, 신을 진짜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 안 믿어지는 거야?”

정말로 신이 있다면, 그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남자의 모습에게서 경건함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라면 아주 커다란 불길함, 또는 그것과 비슷한 크기의 농밀함이었다. 죽음이란 그런 것인가, 하고 요모는 생각했다.

죽음의 신이어서 사람들을 죽이는 건가?”

, 그렇지.”

사람을 죽이는 기준은 뭐지?”

내 마음.”

그의 말에 요모는 가볍게 표정을 구겼다. 남자는 태연하게 웃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래? 너도 네 마음에 따라서 사람들을 죽이곤 하잖아.”

요모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와의 첫 만남이 그가 만들어낸 시체의 산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죽음의 신이기 때문에, 요모는 그에게 있어서 죽음과 관련된 거짓말이 통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느꼈다.

그 감각은 본능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의 죽음이라면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동시에 요모의 머릿속을 채웠다.

볼래?”

그 말을 하며 남자는 아, 하고 입을 벌렸다. 퍼뜩 정신이 돌아온 요모는 무심코 그의 입속을 바라보았다. 아주 단정하고 흰 그의 치아가 가장 먼저 요모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한 마리의 뱀처럼 남자의 입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 붉고 부드러운 혀.

아니, 실제로 그곳에는 뱀이 있었다. 남자의 목구멍을 타고 올라 차가운 비늘을 빛내는, 새까만 비늘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뱀 한 마리가. 남자는 곧 입을 다물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뱀을 다시 삼켰다.

다시 뜬 그의 눈동자도, 붉은색이었다. 아까의 그 뱀과 똑같은 온도의 붉은빛.

나랑 키스하면, 이 뱀이 너의 몸으로 들어가서 너를 안쪽에서부터 잡아먹는 거야.”

하지만 저 사람은.”

그걸 알면서도 아무도 내 키스를 피하지 않는 거지.”

그 정도의 쾌감이니까. 그 말을 하며 남자는 죽은 이를 돌아보았다. 그 얼굴에는 어떠한 유감이나 애도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생물을 보는 그 정도의, 별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그런 시선. 남자는 다시 요모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 내가 너를 죽일까 봐 겁나?”

요모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대답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거짓말은 바로 간파되어 버리니까.

유감스럽게도 나, 지금 너한테는 별로 키스하고 싶지 않아.”

남자는 이번에도 또,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요모는 멀어져가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뒷모습이 아주 작아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남자가 남기고 간 달큰한 향기가 요모의 코끝을 스쳤다.

요모는 몸을 숙여 남자가 죽인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그의 죽음이 정말로 그렇게 행복한 것이었는지까지는 요모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요모는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그는 언젠가는 분명 만날 것이 분명한 죽음의 신의 얼굴을 다시 한번 더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선사하지 않은 쾌락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요모 렌지 생일 축전

 

너에게 꽃다발을 안겨줄게

 

Y A G I

 

 

1

 

그러고 보니 렌 생일은 언제야?”

이토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요모는 눈을 깜빡였다. 4구에서 이들과 함께 지낸 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요모는 또로록 눈을 굴리곤 일부러 이토리 쪽을 바라보지 않으며 질문에 답했다.

칠월.”

칠월?”

이토리의 뒤집힌 목소리가 요모의 귓가에 울렸다. 요모는 아주 가볍게 인상을 썼다. 생일 같은 것은 요모의 삶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누나가 살아있을 때야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었지. 누나는 꼭 그런 걸 챙겨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칠월 며칠?”

구일.”

한참 지났네. 왜 진작 말 안 했어?”

우타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토리는 양손을 제 허리에 얹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조금은 머쓱하게 말을 꺼냈다.

원래 생일 같은 거 안 챙겨서.”

지금까지 우타랑 나랑 생일 챙기는 거 봤으면서.”

그냥 너희는 그런가 보다 했지.”

너희라니. 이제는 우리지.”

우리, . 요모는 이토리의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럴 사이가 됐다는 건가. 확실히 4구의 친구들은 자신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긴 했다. 정착할 생각이 없었던 이곳에 남아있게 된 것도 그들 때문이었으니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챙겨줄까, 렌지 생일.”

좋지. 사람들 불러. 생일 축하 노래라도 불러야지.”

요모는 손을 뻗어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들을 모으러 가려고 하는 이토리를 제지했다. 애초에 생일도 아닌데 축하 노래를 뒤늦게 부르는 것도 좀 그랬고.

됐어, 챙기고 싶으면 다음 생일 때 챙겨 줘.”

아무튼, 렌은 너무 뻣뻣해서 탈이야.”

뻣뻣한 것과 생일을 말하지 않은 것이 과연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 요모는 알지 못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생일을 챙기는 게 과연 얼마 만인가……. 요모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닌데 어쩐지 기억이 흐려진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요모는 머릿속으로 그것을 판단하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우타와 이토리는 다음 요모 생일을 어떻게 하면 축하할 수 있을지를 토의하기 시작했다.

요모는 그런 그들을 보며 생각을 멈추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을 살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임이 분명했다. 아직까지 그 과거를 완전히 벗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정도로도 요모는 만족할 수 있었다.

 

 

2

 

다음 칠월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요모는그 사이에 4구에서 안테이크로 적을 옮겼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타나 이토리와도 어느 정도 거리가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마냥 멀게 느껴지는 것은 또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특히 우타는 종종 안테이크로 찾아와 4구의 근황을 얘기하곤 했다. 4구는 요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크게 다르진 않은 듯했다. 워낙 많은 구울들이 왔다가 떠나가는 그런 곳이어서 그럴까. 차이가 있다면 간혹 요모를 그리워하는 구울들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였다.

걔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자주 들려.”

카페 일 안정되고 나면.”

새로 나기 시작한 검은색의 머리 뿌리가 언뜻언뜻 보이는 우타가 카페의 바 자리에 앉아 요모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우타는 4구의 대장 노릇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왜 그랬냐는 요모의 질문에, 우타는 그저 재미없어졌다는 대답만 내놓을 따름이었다.

요모는 그 대답이 너무나 우타답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의 무언가를 묻지는 않았다. 대신에 우타가 스스로 풀어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컵의 물기를 닦으면서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있잖아, 렌지.”

?”

마스크 가게를 하겠다는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어진 대화였다. 요모는 컵에 향해 있던 시선을 우타에게로 옮겼다. 우타의 눈빛이 카페의 하얀 조명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 렌 집에서 자고 가도 돼?”

요모는 그제야 그날이 자신의 생일 바로 전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3

 

이건 내 생일 선물.”

생일인데 너무하게 대하는 거 아니야?”

요모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몇 방울 떨군 눈 밑을 손등으로 닦았다. 짠 눈물이 손등에 엷게 달라붙었다. 요모의 위에 올라타듯 그를 안고 있었던 우타가 몸을 빙글 돌려 요모의 옆에 누웠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두 사람의 숨이 공기 중에서 서로 섞였다.

그래서 싫었어?”

싫다고는 안 했어.”

그 말에 우타가 작게 웃었다. 그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요모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다가, 눈을 돌려 문득 시계를 찾았다. 그저 삭막한 요모의 방, 이라기도 어려운 컨테이너였지만 그런 집에도 시계 하나쯤은 있었다.

“12시 지났네. 생일 축하해, .”

우타는 그렇게 말하며 요모의 뺨에 쪽, 입을 맞췄다. 천장을 보고 있던 요모가 낮게 웃었다.

왜 웃어?”

낯간지럽게.”

하긴,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같이 잔 사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우타가 웃음을 터트렸다. 사귀지는 않았지만 같이 잠은 잔 사이. 우타는 그 미묘한 관계가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우타는 요모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까는 그렇게 요모를 안았으면서도 그랬다. 요모는 차게 땀이 말라가고 있는 우타의 허리를 껴안았다.

오늘은 우리 동네에 들를 거지?”

, 그럴 거야.”

우타의 웅얼거리는 물음에 요모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답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20구에서의 삶이 싫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모는 그 삶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4구에서의 삶이 그렇게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요모에게 있어서 그 둘은 다른 삶이었다. 비교하기 어려운 층위에 있는 그런 삶.

지금 자신의 삶은 20구에 위치해 있었지만, 생일 하루 정도는 4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 일이었다.

 

 

4

 

요모의 생일 때마다 두 사람이 몸을 섞는 것은 일종의 관례처럼 몇 년 동안 이어졌다. 물론 그들은 생일이 아니어도 관계를 가지긴 했다. 하지만 생일의 밤은, 무언가 달라도 달랐다. 단순히 기분 탓일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요모는 그런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특별한 날의 묘하게 특별한 쾌감. 요모는 그것이면 충분했고 우타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요모만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우타.”

생일이니까.”

꽃다발의 포장지가 요모의 손 아래에서 바스락거렸다. 요모는 우타가 제게 건넨 꽃다발을 마치 이상한 것인 양 빤히 내려다보았다. 수없이 많은 생일을 지나왔지만 우타에게 꽃다발 같은 것을 받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요모는 꽃다발에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억지로 우타에게로 옮겼다.

여름의 뜨거운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맞았다. 우타는 조금은 주저하듯이, 조금은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저기, .”

.”

그냥, 좋아한다고.”

나도.”

요모의 대답에 우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깜빡여 요모를 바라보기만 했다. 찰나의 시간과 긴 시간, 그 사이에 있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우타는 다물고 있었던 입술을 열었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고 대답하는 거지?”

내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어 보여?”

렌지 눈치 없잖아.”

그 말에 요모는 한숨을 쉬듯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은 누구나 알아들어. 요모의 말에 우타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발을 옮겨 요모에게 좀 더 바싹 다가가 붙었다. 꽃다발의 포장지가 우타의 몸에 닿아 아주 작게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저기, 키스해도 돼?”

언제는 허락 맡고 했어?”

새삼스럽게 허락 맡고 하고 싶어서.”

우타의 말에 요모는 픽 웃으며 눈을 감았다. 요모는 결코 웃음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어쩌면 우타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지금까지 요모가 기다려왔던 말일지도 몰랐다. 우타의 말처럼, 눈치가 없어서 그 말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챈 것일지도.

우타는 쓰다듬듯 요모의 양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요모는 눈을 감고도 자신에게로 가까이 다가온 우타의 기척을 알 수 있었다.

우타는 입을 맞추기 직전, 요모의 숨과 자신의 숨이 하나로 합쳐지는 그 순간에 요모에게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이라도 말하듯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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