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우리가 무엇인지를 증명해야 할 때가 있다.

내가 왜 범성애자이며, 왜 신체적 성별과 정신적 성별이 일치하지 않으며, 어떻게 정신질환이 있고,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증명이란 행위는 생활뿐만 아니라 법정에서도 이루어진다. ‘왜 나는 피해자가 아닌가.’, ‘어떻게 그 공장이 환경을 오염시켰는가?’.

꽤 자주, 내가 내가 아닌 이유를 타인의 입에서 듣곤 한다. 너는, 남자랑 연애를 해봤기 때문에 완전한 퀴어가 아니야. 정신적 성별이라는 게 따로 존재한다는 게 말이 되니. 믿기지 않아, 그 사람은 임신한 아내도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하나의 사람에는 다수의 시야가 있다. 그리고 세상은 수많은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의 종류는 얼마나 많을까. 어쩌면 그들이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고 그저 그 존재라고 생각하길 바라는 것이 욕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폭력임을 알아야 한다.

내가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폭력임을 이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야기 속에서 곰은 자신이 곰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증거는 없다. 어떻게 증거가 있을 수 있겠는가. 곰인 증거를 찾으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말을 곰 주위의 인간들은 해댄다. 심지어 같은 곰들도 자신의 기준으로 곰을 판단한다. 차를 타서, 춤을 추지 못해서 곰은 곰이 아니게 된다.

곰은 푸른 옷을 입는다. 마치 죄수복과도 비슷한 색이다. 면도를 하고 숫자를 다섯까지 배우고, 일을 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곰인지 인간인지 아니면 공장의 기계 부품 중 하나인지 모르게 된다.

하지만 곰은 곰이었다.

매년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겨울잠. 자신을 잊은 곰은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된다. 나는 왜 졸린가? 곰은 그리고 인간은- 디스포리아를 느끼게 된다. 주변과 나는 분명히 다르다. 내 안에는 분명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지만 외부의 압력은 그것을 방해한다. 곰은 다시 기계의 부품이 되었다가, 쓸모없다는 이유만으로 쫓겨난다.

우리가 미처 어떻게 할 수 없는 폭력이라는 해일이 드디어 우리를 물가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낙원을 잊은 상태였고 곰도 곰임을 잊은 상태였다. 결국 곰은, 타인에 의해서 자신이 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

곰은 곰이다.

동굴 앞에서 곰은 고민한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믿어왔던 가치에서 곰은 곰이 아니었다. 묵은 때와 비슷한 가치를 벗겨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곰은 계속 눈을 맞았다. 이러다 얼어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을 맞다가.

모든 옷가지를 벗어 던지고 동굴로 들어간다.

인간이라는 껍질을 훌훌 벗고 곰으로 돌아간다.

그 장면엔 아무런 대사도 없다. 하지만 발자국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발자국일지도 모른다.

내가 어린 시절에 이 동화를 읽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고민하기 이전에 이를 접했다면 나는 이 동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쩌면 계속 목에 걸려있는 가시처럼 남아있다가, 어느 순간 다시 펼쳐보는 때가 오지 않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내 옆의 누군가가 곰임을 깨닫기 위해 펼쳐보는 때가 오지 않을까.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어졌다. 메시지는 어디에나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나는 이 동화를 읽으며 조금은 울었고, 조금은 위로받았고, 조금은 화가 났다. 여전히 우리는 부정당하면서도 같은 이야기를 읽고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외부의 시선에 의해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화가 난다.

앞으로 많은 곰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곰에게 곰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치 모텔 직원처럼.

 

곰인 채로 있고 싶은 누군가에게, 곰이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는 우리가 그 증명을 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란다.

 

18. 02. 23. 산다이바나시 : 느티나무, 입술, 유리

 

 

 

유리의 맛

 

 

 

   언젠가 느티나무 아래에서 남녀가 서로 입술을 맞대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조각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그 기억은 로맨틱하다는 단순한 감상과 함께 붙어있었다. 언젠가 나도 저런 느티나무 아래에서 누군가와 입을 맞출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그렇게 해 봤을지도. 단순히 그것이 느티나무인지 아닌지 몰랐던 것뿐일지도.

   나는 단순히 여자와 사랑을 하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서 너와 연애를 시작했다. 물론 네게는 숨긴 감정이었다. 나는 너에게 사랑을 말하며 가슴속에 피어나는 회의감과 죄책감을 애써 무시했다. 나는 그것들을 애써 꾹꾹 누르며 너의 사랑을 받았고, 나의 가짜 사랑을 주었다. 너는 내가 준 것을 꽤 만족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내 진짜 감정을 꾹꾹 눌러야만 했다. 어쨌든 너와 함께 있는 것은 좋았으니까. 어쩌면 이런 것도 사랑일지 몰랐으니까.

   그러나 그것이 사랑이 아님을 알게 된 순간이 있었다. 너의 일방적인 감정, 그리고 나의 일방적인 감정. 내가 아직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어떤 나무 아래에서 처음으로 우리가 혀를 섞었을 때, 나는 우리의 감정이 결코 섞일 수 없는 것이란 걸 깨달아버렸다.

   첫 키스의 맛은 천사의 종소리가 아니라 유리가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질 때 나는 맛과 비슷했다. 그 순간 우리가 공유하는 것이 있었다면 바로 그 맛이었다. 버티고 버티다가 한계를 맞이해버리는, 햇볕 아래에서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의 맛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헤어짐을 직감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직까지 함께하고 있는 것은 머릿속에 남은, 느티나무 아래에서 남녀가 서로의 입술을 맞대고 있는 장면 때문이었다. 너도 그 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했고, 너도 그 영화를 로맨틱하다고 생각했고, 너도 그 영화의 결말을 몰랐다.

나는 우리가 입을 맞춘 나무가 느티나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그 영화를 볼 것이고, 그들이 입을 맞출 때 한 번 더 입을 맞출 것이고, 그러고 나서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언젠가 찾아올 일이었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우리 둘 다 모르는 일이었다. 몰라도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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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02. 22. 산다이바나시 : 캐비닛/조각/비난

 

 

 

조각

 

 

 

 

   나비의 날개 조각을 모아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누군가는 나를 강력하게 비난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비난을 견뎌내며 나비의 날개 조각을 모았다. 나비의 날개를 가르는 것은 나비의 생, 그 자체를 가르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나는 그 미물을 삶을 지옥으로 만들며 묘한 희열을 느꼈다.

   누군가는 나를 지옥에 갈 놈이라고 말하겠지만 어차피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지옥행 편도 티켓을 품에 안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런 말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내가 나비 몇 마리의 삶을 짓뭉개지 않는다 한 듯 지금과 무엇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내 삶의 흔적들(그리고 그들의 죽음의 흔적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오픈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에, 꽃무늬가 그려진 아주 아름다운 박스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학교 캐비닛이었다. 누구나 열 수 있지만 누구나 열어보지 않으며 내가 나의 캐비닛을 연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굳이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을 그런 곳. 나는 수업을 위해 매일 몇 번 씩이나 캐비닛을 열며 내가 모아온 나비 날개를, 그 날개 가루와 함께 공기 중에 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것은 일종의 과시욕이었다. 나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종종 교실에 혼자 남아 떨어져 가는 햇볕에 아주 얇은 나비의 날개 조각을 비춰보곤 했다. 요새 선캐쳐가 유행이라지. 햇볕을 담아 무지개 빛 잔상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한다는 그것. 나비의 날개 조각도 그와 비슷했다. 살아있는 나비나 박제된 나비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빛의 파장. 저물어가는 붉은 햇볕이 금방이라도 불태워질 것 같은 날개 조각과 분진을 스치고 지나가 오묘한 빛깔을 내 얼굴에 흩뿌렸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빛을 눈꺼풀 아래에 가득 담았다. 그것은 어지럼증과 비슷한 환상이었고, 사랑이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분진을 손에 묻힌 채 나는 오늘도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서로 붙어 하나의 커다란 나비가 될 것 같았던 그 빛들이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오늘도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클락션을 강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누군가가 괴상하게 조형된 다리를 건너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렸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죽거나 다쳤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장면을 똑똑하게 목격하고 있을 터였다.

   내가 나의 삶과 나의 죽음을 햇볕에 비춰보는 것처럼, 그들도 이 태양과 함께 저물어가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붉은 태양을 마주보았다. 태양조차 영원히 살 수 없는 세계에서 내가 만약에 자옥에 가게 된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벌을 얼마큼이나 받게 될까. 그 사이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것을 얼마큼이나 많이 볼 수 있게 될까.

   나는 나비의 날개 조각을 모으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작은 상자가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질 때 나는 죽을 것이며 그러면 나는 다른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지옥을 떠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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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에는 분명히 시계가 없는데도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렸다. 불면의 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 불면에는 항상 시계 초침 소리가 있었다. , , , , 하고 내 심박과 맞지 않는 울림에 내 심장이 뛰었다. 그러면 나의 불면은 더욱 더 깊어져 갔다. 그럴수록 소리는 커졌고, 그제야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면 벌써 초침 소리와 동화된 내 심장 소리가 들렸다. 내 기억 속 평생은 그런 불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긋지긋하지도 않는지.

   나는 어두운 시선을 공기 중의 어딘가에 두고 멍하니 그 소리를 들었다. 나는 양 대신 초침 소리를 속으로 세었다. , 하나. , . , . 언제까지 이것을 셀 수 있을까. 사실 나는 마흔 이후의 숫자는 잘 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마흔이 넘어가면 다시 하나부터 시작해야할까. 그때까지 나의 잠이 찾아오지는 않을 것 같으니.

   그러고 보면 밤은 항상 고요히 흘러갔고 나의 삶은 이런 사소한 소음들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놓아버린 수많은 것들과 내가 잃어버린 수많은 것들. 그러고 보면 누군가 그렇게 말했지.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게 된다고. 초침 소리가 마흔에 닿았다. 나는 다시 하나부터 소리를 세어가기 시작했다. 잃어버렸음에도 내가 아직 인지하고 있지 못한 잃어버림이 내게는 얼마나 있을까. 내가 센 초침의 숫자만큼 존재할까. 나는 고작 마흔까지 밖에 세지 못하는 인간인데. 분명히 나는 마흔 개 이상의 무언가를 내게서 놓아버렸고 마흔 개 이상의 무언가를 잃어버렸겠지.

   내가 알지 못하는, 더는 내게 없는 무언가. 나는 몸을 웅크렸다. 초침은 어느새 서른을 넘어가고 있었다.

   내 것이 아니라면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들을, 떠오르지도 않는 것들을 공연히 떠올리는 밤이었다. 나의 불면은 곧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런 무의미의 반복 속에서 나는 눈을 뜨고 있었다.

   마흔.

   나는 거기까지만 숫자를 세고 더 이상 시계 소리를 세지 않았다. 초침을 세면 셀수록, 내가 잃어버린 마흔 이후의 숫자들이 자꾸 나를 찌르는 것만 같아서 그랬다. 나는 멍하니 공중을 바라보고 있던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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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이바나시 : 꽃밭/내일/손등

 

 

흉터

 

 

아래층은 다 꽃밭이래.”

그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적성 검사가 딱 하루 남은 날이었다. 하늘은 전에 없이 맑았다. 기후 시스템은 마치 다음 날에 있을 적성 검사를 응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적성 검사 전날에는 항상 그랬다. 밤에는 심지어 수많은 유성마저 떨어져 내렸다. 과거의 전설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적성을 얻길 빌기라도 하라는 듯이.

누가 그랬는데?”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간 애가 그랬어.”

그 애는 그걸 어떻게 알았대?”

그 애보다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간 애가 말해줬대.”

나는 뭐야, 하고 불만을 표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끝도 없는 거잖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작 머리 위 몇 킬로미터 위에 유리 돔이 세워져 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높고 파란 하늘이었다.

그래서 너는 아래층으로 가고 싶어?”

잘 모르겠어. 별로 가고 싶진 않은데.”

나도.”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모든 기억을 소거 당했다. 어른들은 아래층은 이전의 기억 따위가 필요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얘기했고 우리들은 그 말을 순순히 믿었다. 기억 따위가 필요 없는 일이란 건 무엇일까. 해마다 소수의 몇 명이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비밀스러운 일을 처리했다. 매년 누군가는 그 비밀스러움 때문에 아래층으로 자처해서 내려가곤 했지만, 그와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호기심보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컸다. 기억을 잃는다. 가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근데 꽃밭이라면, 보고 싶긴 하다.”

온갖 종류의 꽃이 다 핀대. 봄에는 봄꽃이, 여름에는 여름꽃이.”

가을에는 가을꽃이, 겨울에는 겨울꽃이?”

내 말에 그가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는 그가 좋았다. 이왕이면 내일 있을 적성 검사 때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과거의 전설처럼 유성에 소원을 빌 생각이었다. 그와 같은 일을 하게 해달라고.

아래층에 내려가면 무슨 일을 할까?”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거겠지. 이 사회에 도움이 될.”

만약에 우리 둘 다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나는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적성 검사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갈 아이들이라는 건 거의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 세계에 제대로 섞여들지 못하는 자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나와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갈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우리의 이름도 다 까먹겠지.”

그러면 손등에 서로의 이름을 적어두자.”

적성 검사 때 들키면 어떻게 해.”

흉터로 남기면 상관없지 않을까.”

아픈 거 싫은데.”

나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소리를 내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잠시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다시 그들의 일에 집중하며 그들이 가야 할 길을 걸어갔다.

그럼 이름 말고, 새끼손가락에 아주 작은 상처를 내는 거야. 조금만 아프지만, 우리끼리는 알아볼 수 있도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디선가 작고 날카로운 돌멩이를 하나 가져왔고, 우리는 서로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아주 작은 상처를 냈다. 딱지도 앉지 않고 상처 특유의 붉은 기운만 오래오래 남아있다가 그대로 흉터로 자리 잡아버리는 그런 상처를.

이것만은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억할 수 있을 거야.”

?”

아팠으니까.”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죽어가는 별에 그와 내가 나란히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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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

 

 

   너를 사랑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너는 태연하게 너다운 이모티콘을 보내면서, 나도 너를 사랑해 하고 말했다. 나도 너를 사랑해.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던가. 하지만 너의 사랑과 나의 사랑의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저 너를 따라 기본으로 제공되는 이모티콘에서 적당한 것을 하나 골라 네게 보내곤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런 밤들이었다.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받지만 결국 내 안에서는 아무것도 해소되지 않는 그런 밤들. 이것이 네가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였다면 아마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면서 서로에게 오해를 하다가 결국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맞겠지. 하지만 현실은 영화도 아니었고 이것은 너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나는 더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질투심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결과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사랑해서 죽어버리거나 죽여버리고 누군가는 사라져버리고. 그 결과가 어떻든 어떻게든 그 감저이 끝이 난다는 것이 나는 부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너에게 사랑한다는 얘기를 하고 다양한 너의 이모티콘 중 하나를 선물받는 것뿐인데. 나는 너를 사랑하지도 못하고 사랑해서 죽어버리거나 너를 죽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너에게서 훌쩍 떠나버리지도 못하는데.

   나는 그 사실이 억울해서 아주 조금의 눈물을 흘렸을 때도 있었다. 너는 모르는 나의 눈물이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매일같이 내일의 너와 마주하기를 두려워했다. 혹시 실수라도 해버려서 내 감정을 털어놓을까봐. 그래도 너는, 활짝 웃으며 나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겠지만. 너는 눈치가 없는 아이였고 나는 그것이 항상 좋기도, 싫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모습까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오늘도 너를 상상한다. 상상 속의 너는 아직까지 뚜렷하게 그려진 얼굴이 없다. 지금이라도 얼굴을 그리자면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너의 얼굴이 없는 것은 내가 네 얼굴을 그리기를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너의 얼굴을 정말로 똑같이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상상과 현실의 괴리에 더 괴로워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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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위에서

 

  Y A G I

 

나는 지금 내가 너를 죽인 무덤 위에 서 있다.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너는 한두 번 죽은 것도 아니고, 나 역시 너를 한두 번 죽인 것도 아니다. 네가 죽는 방식은 단순했다. 나는 너의 목을 졸랐고 너는 단 한 순간의 반항도 없이 축 늘어졌다. 그러면 나는 너를 바로 이곳에 묻는다.

이곳은 그렇게 특별한 곳은 아니다. 고라니가 뛰어다닌다는, 그리고 가끔씩은 멧돼지가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학교 뒤편의 얕은 언덕이다. 이곳에는 너의 것이 아닌 수많은 무덤이 있다. 누구 말로는 이곳에서 귀신이 나온다고 했다. 어쩌면 그 귀신은 나일지도 몰랐다. 수없이 너를 죽이고 묻는 과정을 반복하는 게, 귀신이 아니고서야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어쩌면 너도 나를 이렇게 죽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알 수 없는 짜릿한 쾌감이 손끝에서부터 정전기가 일어나듯 내 팔을 타고 오른다.

차라리 그래 줬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증오하는 만큼 너도 나를 증오했으면 좋겠어. 서로의 증오가 그 증오의 이유가 되었으면 좋겠어.

 

사실 너를 죽이는 것보다 너를 아예 떠올리지 않는 것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처럼 너를 그렇게 다루는 것이 훨씬 더 깔끔하고, 아프지 않은 방법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또 너를 죽인다. 어쩌면 나는 너를 미워하고 싶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끔찍한 생각이지만.

언젠가 꿈에서 너를 죽인 적이 있었다. 교차로였다. 땡땡 소리가 울리면 안전 바가 내려가고 곧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차가 한참 동안 지나가는,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교차로였다. 너와 나는 기찻길을 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너는 웃고 있었고 아마 나도 웃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위험을 알리는 붉은 벨이 울렸다. 우리는 동시에 안전 바를 넘었다.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죽이고 싶었고 그만큼 사랑받고 싶었다.

기차가 눈앞까지 다가왔을 때 나는 꿈에서 깼다. 불쾌한 꿈이었다. 그래서 그날은 너를 두 번 죽였다. 유령이 나온다는 무덤가에서 뼈를 포함한 어떤 잔해도 남지 않은 장례식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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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3. 산다이바나시 : 눈물/ / 침묵 

 

 

죽음 그가 쓰기를 그만두었던 일기

 

Y A G I

 

, 조금 당황스럽더라도 함께 우리 몸의 구성 요소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많은 사람이 인간의 몸은 뼈와 살과 근육 피 뭐, 미토콘드리아? 어쩌고저쩌고하는, 이름도 제대로 외우기 어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인간의 몸은, 적어도 내 몸은 그런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내게도 뼈와 살과 어쩌고들은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히 나의 뼈대일 뿐이지 나를 채우고 있는 것들이 아니다. 본질은 겉이 아니라 항상 속을 파고 들어가야 나오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바로 깊고 깊은 침묵이다. 너무 뻔하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동의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침묵으로 채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침묵은 그들의 침묵과는 조금 다르다. , 내가 입을 벌릴 테니 내 입속을 바라봐라. 목구멍을 넘어가면 보이는 깊은 어둠이 보이는가. 그것들이 다 나의 침묵이다.

내 몸 안에는 장기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무언가를 씹어 삼키기 위한 치아와 혀와 목구멍과 침묵만이 존재할 뿐이다.

나의 침묵은 특별하다. 그는 침묵이면서도 요란하다. 침묵은 종종 요란하게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 그것을 품고 있는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린다. 몸 안에서 몸 밖으로 무언가를 내보내려면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갑자기 침묵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와서 묻는다. 왜 울어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다.

몰라요.

다행인 점은 요즘은 이런 대답이 그다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침묵을 몸속 어딘가에 반려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몰라요, 하고 답하면 그들은 내 어깨를 두드리곤 다시 어딘가로 사라진다.

그렇게 침묵이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면 나는 맹맹해진 코를 풀고 침묵을 위해 단것을 먹는다. 침묵이 삼켰던 수많은 단 것들은 내 뼈에 쌓이고 쌓여서 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말을 정정해야겠군. 나를 구성하는 것은 나의 침묵과 수많은 종류의 당류다.

떠나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는, 그런 것들. 그런 것들과 함께 나는 살아가고 있다. 아니면 벌써 죽은 지 오래라 이른 것들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거나. 어느 쪽이든 별 상관은 없었다. 왜냐면 내 침묵이 또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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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 모드 플레이어

 

 

  Y A G I

 

 

 

언제부터 그의 사랑한단 말이 낯설게 들린 걸까. 그것은 나 스스로 찾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다지 찾고 싶지 않았던 질문이라고 말하는 게 옳았다. 만약 그 답을 찾게 되면 나는 더 이상 그와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었을 테니까.

낯설음이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낯설음이란 곧 새로움이었고 새로움이란 우리의 몇 년이 지난 연애에 존재하기 힘든 것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나를 다스렸다. 왜냐하면 네가 계속해서 나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 , . 그 사이사이에 곰팡이처럼 피어있는 이질감이 내 핏줄을 타고 흘렀지만 나도 그저 태연하게 사랑해, 하고 그 답에 대답할 뿐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이제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것 역시 내가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동화 속의 앨리스처럼 홀로 이상한 나라에 떨어져 버린 것일지도. 하지만 현실에는 시계를 들고 지각이다, 따위를 외치는 토끼 같은 것은 없었다. 현실은 언제나 이야기나 게임보다 하드 모드였다. 어쩌면 내가 그만큼 불운한 것일지도 몰랐지만.

왜 너는 나를 사랑해?

언젠가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딱히 고르기 힘든데. 그는 어물쩍 답을 넘겼다. 그 모습을 보고 그도 나의 사랑한다는 말이 낯설게 들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유지되고 있었다. 유지된다는 말을 쓰기 부끄러울 정도로, 우리는 서로에게 등을 보이며 지내고 있었다.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에 그건너무나 끔찍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는 아주 재미없는 연극을 하고 있었고 그는 이 연극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정권을, 책임을 내게 넘기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는 끝도 없이 저열해졌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당연하게도 똑같이 저열한 내가 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낯선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우리가 너무 닮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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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음

 

 Y A G I

 

   나는 오전 두 시에 꼭 내가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한참 예전에 죽어 사라진 작곡가들을 클래식을 들었다. 그것에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누군가는 깊이 잠들어 있고 누군가는 아직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도 끝내지 않은 시간이라서, 클래식이라는 내게는 이질적인 장르가 끌릴 뿐이었다. 나는 매일 알지도 못하는 다른 노래를 침대에 누워 들었다. 납작한 베개 두 개를 겹쳐서 베고, 나는 플레이어의 자그마한 바가 흘러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적막이었다. 분명히 노래는 틀어져 있는데 그 시간의 내게 온 세상은 적막이었다.

 

언젠가 제목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노래를 길가에서 들었을 때만 해도 그랬다. 카페도, 고급 식당도 아닌 옷가게였다. 다른 가게들이 이미 유행에 빠르게 녹슬어버린 노래를 틀고 있을 때 그 가게는 클래식을 틀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시멘트벽에는 차가운 회색 페인트가 발려 있었고 너무 밝은 노란빛 조명이 가게 안의 옷들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니 노랫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렸다. 가게 주인은 계산대에 기대어 서서 유일한 손님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옷들을 둘러보았다. 내 발자국 발자국 마다 주인의 시선이 달라붙는 것 같아 나는 내 사이즈도 아니고 내 취향도 아닌 옷을 얼른 집어 들어서 계산대로 향했다.

이만오천 원입니다.

카드로 계산할게요.

그럼 이만칠천 원이에요.

나는 별수 없이 이만오천 원이었다가 이만칠천 원이었다가 하는 옷을 사게 됐다. 바스락거리는 플라스틱 봉투가 내 손에 쥐어졌다. 스피커에서는 높은음의 현악기 소리가 쟁쟁 울리고 있었다.

저기요.

나는 직원을 불렀다. 직원의 진갈색 눈화장이 노란 조명 밑에서 미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노래 제목이 뭐예요?

차이코프스키요.

차이코프스키의, 뭐요?

몰라요.

그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도 나와 동류일지도 몰랐다. 차이코프스키. 나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 이름을 되뇌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오전 두 시에 차이코프스키의 노래를 들었다. 나 역시 여전히 노래의 이름은 몰랐다. 그 가게에서 산 옷은 내게 너무 크고 무거웠지만 그래도 가끔 차이코프스키, 하는 이름을 나직하게 말할 수는 있는 정도였다.

차이코프스키.

오전 두 시의 미묘한 어둠 속에서 현악기가 조용히 흐느끼고 있을 때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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