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요모 #야쿠자 우타X청부업자 요모..... 이나 이 소재는 별로 안 쓰임 #괴담/저주받은 물건 소재

 

다락방의 요모 씨

 

 

 

1. 요모 씨 (3)

 

 

어쨌든, 렌지한테 부탁하고 싶은 건 그 반지 배달이야.”

왜 배달 따위를 굳이 나한테 부탁하는 거지? 이건, 시험인가? , 요즘 집주인들은 하숙인한테 이런 것도 요구하는 모양이지.”

요모는 가볍게 인상을 썼다. 요모는 찝찝한 기분을 억누르기 위해 빠른 속도로 말을 뱉었다.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요모는 자신의 말에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요모는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불쾌할 정도로 미묘한 기분. 요모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고, 그래서 알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의식적으로 그에 대한 생각을 꾹 누르고 나서야 우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정작 우타는 요모의 말이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요모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관심조차 없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던 요모에게 그다지 반가운 사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반응하는 대신에 요모 렌지는 자신의 규칙적인 심장 박동을 느꼈다. 요모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건 일이야. 사사로운 감정 같은 것이 끼어들 자리는 없어.

요모의 심장은 그의 생각보다 금세 식어갔다. 요모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짧은 숨을 내뱉었다.

……실례했군.”

아냐, . 렌지는 그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하고 즐겁게 보고 있었어.”

눈을 찡긋하며 웃던 우타는 품에서 작은 종이쪽지를 꺼내 건넸다. 어딘가의 노트에서 찢어낸 듯, 잘린 단면이 영 단정하지 못했다. 요모는 우타의 필체로 쓰인 낯선 주소를 바라보았다. 주소만을 보고 당장 떠오르는 곳은 아직 없었다.

거기로 배달, 부탁할게.”

죽음을 부르는 반지라며이런 것을 배달해도 되는 건가?”

. 죽음을 부르기 때문에 이 반지는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법이지.”

우타의 나긋한 목소리가 요모의 귓가에 감겼다. 아름다움을 위해 죽음마저 받아들이는 사람. 요모는 우타 역시 그런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유형의 사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모는 우타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고개를 가볍게 기울이며 그런 요모를 잠시 바라보다가 순간 요모의 양 뺨을 붙잡아 끌어당기며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서야 요모는 놀란 눈으로 우타를 바라보았다.

? 뽀뽀, 기다리던 거 아니었어?”

내가 그걸 왜…….”

렌지 내 뽀뽀 좋아하잖아? 아닌가?”

요모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인상을 구길 뿐이었다. 요모는 싫어한다고, 말할 수 없는 자신이 어쩐지 싫었다. 우타는 그런 요모를 보고 후후, 웃어넘길 따름이었다. 요모는 어쩐지 우타에게 자신의 속을 읽힌 것만 같았다.

요모는 이만 가보겠다는 말도 남기지 않고 우타에게서 등을 돌렸을 때였다. , 하고 짧은 탄식을 뱉으며 우타가 요모를 불러 세웠다. 요모는 고개만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이유, 물어봤잖아.”

이유?”

왜 굳이, 청부업자. 그것도 사람 죽이는데 특화된 청부업자 렌지를 고작 반지 심부름에나 써먹느냐는 질문 말이야.”

아까 그렇게 떠벌리는 게 아니었는데. 요모는 자신의 입을 탓했다. 어쨌든 궁금한 부분이긴 했으니, 요모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어제 렌지가 렌지 방에서 상자 가지고 왔었잖아. 그거 보기보다 엄청 무거웠지이.”

우타는 일부러 말끝을 길게 늘이며 요모의 눈치를 살폈다. 요모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별 신경 안 쓰나. 우타는 목소리를 아주 조금 깔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그 안에는 렌지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물건들이 많았거든. 내가 입수해놓고 나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몰라서 방치한 물건들이.”

엄청나다니, 어느 쪽으로?”

그 반지랑 비슷한 느낌으로?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악질인 것들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

저주받은 물건들 말인가?”

예를 들자면, 옛날 언젠가 사람의 가죽을 산 채로 뜯어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책이라던가. 그런 것들.”

그 정도는그래도 꽤 흔한 얘기지 않아? 그런 것들이 그렇게 악질적인가?”

그렇지. 뜯어낸 것이 자기 가죽이라는 것도 흔한 이야기구.”

요모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이 흔한 얘기인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타는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유쾌하게 말할 수 있는가. 요모로서는 그런 우타의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요모 역시, 죽음에 대해 아주 큰 의미를 두며 살아가는 편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죽음이란 죽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죽고 나면 그것으로 끝. 요모는 천국이나 지옥 따위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죽음 이후에만 얻을 수 있는 고요한 침묵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가 해온 수많은 애도는, 그들이 좋은 곳에 가길 원한다기보다는 그들이 전에 없는 적막에 낯설어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그렇기에 요모는 우타의 저런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기야 우타는 따지자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 수 없는 녀석이긴 했지만. 요모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우타는 그런 요모와 눈을 마주치더니, 다시 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쨌든, 손만 대도 저주받을 수 있는 물건들을 렌지는 멀쩡히 들고 내려왔잖아? 간밤에도 별일 없다고 그랬구.”

들고 내려오는 것 정도는누가 해도 괜찮은 거 아닌가?”

그 상자를 거기에 둔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듣고 싶어?”

아니, 아니……. 그건 사양할게.”

그나저나 그쪽이 시험이었다면, 시험이었네. 렌지는 그런 시험을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사과해야겠지? 미안해, 렌지.”

완전히 놀려먹고 있군. 그리고 이 상황은 아마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았다. 요모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뿐이었다. 그다지 우타에게 더 말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봤자 어차피 자신이 우타를 말로 이길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어쨌든 그는 클라이언트였고, 자신은 청부업자였다. 해야 하는 일이 고작 반지배달일지라도, 그것이 고객이 원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기꺼이 수행해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여전히 그는 저주 따위는 믿지 않았다. 그저 우타가 즐기는 짓궂은 농담이겠거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요모는 반지 케이스를 공중으로 한 번 던졌다가 받았다. 이제는 일을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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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요모 씨

 

Y A G I

 

 

1. 요모 씨 (2)

 

 

요모는 주위를 유심히 둘러보았다. 지금까지 이런 가게에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동시에 요모는 우타의 심미안과 자신의 취향은 영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런 마스크를 쓰면 더욱 특정 당하기 쉬운 게 아닌가. 요모는 겉면에 복잡한 패턴이 수놓아진 마스크를 매만지며 생각했다.

, 그거 렌지 취향?”

절대……. 난 좀 더 차분한 게 좋아.”

렌지도 스타일을 좀 바꿔보는 건 어때? 지금도 올블랙이잖아.”

딱히.”

요모는 가면을 제자리에 내려두고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천천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느슨한 옷 속으로 한눈에 파악하기도 힘든 정도의 타투들이 늘어서 있었다. 간밤에 요모가 손끝으로 훑어 내렸던 그 복잡한 문양들이.

우타가 의자 돌리기를 그만두고 몸을 일으키자 덜걱, 하고 의자의 바퀴와 대리석 바닥이 떨어졌다가 붙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우타가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것을 들고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로서는 아직도 우타가 자신에게 어떤 일을 시킬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실 요모의 일이란 게 그랬다. 어차피 모두 다 누군가를 해하는 일이었다. 적당히 뒷맛이 나쁘거나, 아주 뒷맛이 나쁘거나. 그러고 보니 섹스 파트너와의 관계도 그랬지. 요모와 우타 사이에 단 두어 걸음밖에 남지 않았을 때, 요모는 왜 자신에게는 최악과 차악이라는 결과밖에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간밤에 잠은 잘 잤어?”

그럭저럭.”

무슨 꿈 같은 건 안 꿨고?”

그런 질문을, 대체 왜.”

아아, 다른 게 아니라. 나는 그 방에서 자면 꼭 가위가 눌려서 말이야. 렌지는 그런 일이 없었나, 싶어서 묻는 거지.”

요모는 고개를 저었다. 요모는 언제나 그렇듯이, 꿈조차 없는 어두컴컴한 잠을 잤다. 마치 죽었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자신의 손을 거쳐 갔던 수많은 죽음을 복기하고 있는 것처럼.

부탁하려고 했던 건, 이거.”

우타는 제 손에 있는 것을 요모에게 건넸다. 평범한 반지 케이스였다. 요모는 무심코 케이스의 겉면을 만졌다. 부들부들한 재질의 자주색 천이 엄지 끝에 묘한 감각을 남겼다. 그래서, 이게 뭐?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열어 봐.

우타의 목소리가 나긋했다. 반지 말고 다른 것이 들어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주 정직하게 반지가 들어 있었다. 요모의 손에는 작아도 한참 작아 보이는 반지였다. 반지의 가운데에는 육각형으로 커팅된, 요모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끼손톱 반만 한 파란 보석이 고고하게 올라와 있었다.

아마도 다이아몬드일 사실 요모 렌지가 아는 보석 중에 이런 모양을 가진 보석은, 다이아몬드밖에 없었다.흰 보석들은 마치 꽃받침처럼 반지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코 반지를 들어 올려 가게의 조명에 비춰보았다. 선명하면서도 투명한 푸른색이 백색 형광등 아래에서 기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어때?”

예쁘네.”

정말, 렌지는 재미가 없다니까. 조금 더 대단한 반응을 보여줄 수는 없는 거야? 침대에서는 잘만 보여주더니.”

요모는 말없이 인상을 구겼다. 우타에게 딱히 악의를 찾아볼 수 없어서 요모는 더욱 기분이 별로였다. , 하고 숨을 내쉬며 요모는 케이스의 뚜껑을 닫았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라는 거지?”

렌지는 귀신이나, 저주이런 것들을 믿는 편이야?”

뜬금없이 들어온 우타의 질문에 요모는 무심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귀신이나 저주. 믿고 믿지 않고를 떠나서, 요모는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을 그다지 해본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나 그런 이야기들을 때로는 무서워했지. 지금 요모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어떤 이유던지, 살아서 요모의 목덜미에 칼날을 겨누는 것들.

죽은 것들을 항상 말이 없었다. 죽음과 같은 침묵, 혹은 죽음 그 자체인 침묵. 따지자면 요모는 그 침묵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딱히.”

그거, 저주받은 반지래.”

우타는그런 걸 믿나?”

안 믿고 싶어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으면 믿게 되는걸.”

우연이겠지.”

요모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 손바닥 안의 반지 케이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 그 반지를 보았을 때,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 같은 것이 있었던가? 예를 들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집요하게 그림자를 밟아오던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을 때처럼?

딱히. 요모는 미간을 가볍게 찌푸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청부업자로 살아오며 자신의 생명과 관련된 감각만큼은 예민하게 벼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요모는 다시 케이스를 열어보았다. 반지는 여전히 묵묵히 반짝이고 있을 따름이었다.

다섯 명.”

?”

우리 친구들다섯 명이 그거 때문에 저기, 천국이나 지옥이나에 가 있단 말씀.”

그 말을 하며 우타는 손끝으로 요모의 이마를 꾹 밀려 했으나, 요모는 고개를 뒤로 물려 그 손을 피했다. 우타는 아쉬운 내색도 않고 그저 손끝을 튕겨 딱, 소리를 내는 걸로 만족했다.

그거, 소유한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반지래.”

그 다섯 명은어떻게 해서 죽었지?”

익사. 세 명은 물에서 두 명은 땅에서.”

땅에서?”

그렇대. 재밌지 않아? 땅에서 죽었는데, 익사였던 거.”

요모는 우타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것을 바라보았다. 재미있다, . 다른 것보다 요모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그 부분이었다. 어쨌든 자기 밑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인데, 그들의 죽음을 재미있다고 말하는 우타는.

, 어차피 그렇게 안 죽었어도 내 손에 죽었겠지만. 보스의 물건을 건드리는 건, 그런 걸 각오하지 않고서야 못하는 거잖아?”

보스.”

? 렌지도 알고 있었잖아. 내가 렌지를 알고 있던 것처럼.”

소문에는 실체가 없는 법이야, 요모 렌지. 우타는 양팔로 요모의 목을 가볍게 껴안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역시 처음부터 알고 접근한 건가. 어쩌면 요모가 이 길로 발을 옮긴 이상 요모는 이런 일들을 운명으로 여겨야 할지도 몰랐다.

그것은 자신의 업이었다. 자신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였다. 좆같은 세상, 이라고 요모는 생각했다. 선택지를 이것밖에 주지 않았으면서 내 선택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생각하게 하다니.

뭐어, 렌지랑 잔 건 그거 때문은 아니었지만.”

우타의 입술이 요모의 이마를 가볍게 스치고 떠났다. 우타는 조금 전의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아까의 위치로 돌아가 있었다. 요모는 물끄러미 우타를 바라보던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미묘한 기분이었다. 저주니, 어쩌니 할 때보다 훨씬 더 미묘한 기분. 자신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낯선 감정. 먼지 하나 없는 바닥에 반사된 빛이 요모 렌지의 눈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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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요모 씨

 

Y A G I

 

1. 요모 씨 (1)

 

 

  섹스 파트너의 집에 세 들어 살기.

  요모 렌지는 20인치 캐리어를 나무로 된 바닥에 내려놓으며 남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건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보증금도 없고, 월세도 싸고, 심지어 집 주인도 같은 구울이었다. 이 모든 조건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 때문이었다.

  요모 렌지가 그의 섹스 파트너였기 때문에.

  “어때, 방은 괜찮아?”

  “……. 이 정도면, 좋습니다.”

  “말 편하게 해, 렌지.”

  “하지만.”

  “어젯밤에는 우타, 우타, 하면서 이름을 잘만 부르더니.”

  요모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야, 어젯밤에는 집주인이 아니라 섹스 파트너였으니까. 요모는 문간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선 우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아래로 눈을 깔았다. 간밤의 일들이 떠오를 것만 같아서.

  사실 요모는 상대가 우타만 아니었어도 그가 어떤 제안을 하던지 그대로 몸을 물리고 떠날 작정이었다. 요모는 한 번 원나잇을 한 상대와 더 깊은 연을 맺는 법이 없었다. 요모의 인생에서, 섹스로 시작된 연이 좋게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죄다 끔찍하거나, 아니면 그저 그렇게 나쁘거나. 하지만 요모는 이번만큼은 우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여러 이유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요모는, 이 관계가 최악으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짐이 되게 적네?”

  “자주 집을 옮겨서…….”

  “이제는 짐도 좀 늘어나겠다, 그렇지?”

  요모는 별 대답 없이 캐리어를 열었다. 이 집에선 오래 지낼 수 있을까. 요모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자꾸 지낼 곳을 바꾸다 보면 결국엔 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남지 않게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요모는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요모의 방은 작은 다락방이었다. 요모가 제대로 허리를 펴고 있을 수 있는 곳은 시옷자 지붕의 한가운데 밖에 없었다. 끝으로 가면 갈수록 요모는 조금씩 허리를 숙여야 했다. 요모가 결국 허리를 반으로 접어야 서 있을 수 있는 곳에 그의 침대와 키가 작은 서랍이 하나 있었다.

  문과 창문은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물 때 하나 없이 투명한 창문이 저물어가는 햇살을 다락방의 마루에 이리저리 흩어놓고 있었다.

  “나는 일 때문에 집에 자주 없으니까. 펀하게 지내, 렌지.”

  “.”

  그 말을 남기곤 우타는 또 소리 없이 아래층으로 사라져버렸다. 요모는 우타가 열어두고 간 문을 밀어 닫으려 발을 옮겼다. 우타가 계단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지만 않았어도 요모는 다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터였다.

  “. 렌지 아직 일할 곳 없지?”

  요모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구할 생각이긴 했지만.

  “그러면 내일 나 좀 도와주라.”

  “마스크같은 건, 잘 모르는데.”

  “괜찮아, 가게 일 아니니까. 부탁 좀 할게. 이 일에 렌지가 적격일 것 같아서 말이지.”

  우타는 눈을 찡긋하고는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내 동의는? 요모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잠시간 층계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이제는 제 것이 된 다락방으로 몸을 돌렸다.

  요모 렌지는 문에 등을 대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비슷비슷한 높이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분명, 어제 말이야. 우타와 함께 4구의 거리를 걸으며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그에게 형님, 형님 하는 것을 한두 번 보았던가. 요모는 직감적으로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몸 좀 쓰는 녀석한테 잘못 걸린 거 아닌가.

  다락방을 얻는 조건은 좋아도 너무 좋았지만, 단 한 가지 결정적으로 안 좋은 점이 있다면 아마 야쿠자나 그 비슷한 무리에서 한 가닥 하는 녀석이 집주인이라는 점이었다.

  “시끄러운 일만 없으면 좋겠는데…….”

  요모는 목덜미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내일 부탁한다던 일도 그와 관련된 일이지 않을까. 요모는 캐리어에서 몇 벌의 옷을 꺼내 침대 위에 두었다. 모두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옷들이었다. 화려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덧대어지지 않은 그런 무채색의 옷들. 요모는 그런 옷이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눈에 띄지 않는 것. 청부업자로 지내왔던 요모 렌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다. 어쩌면 우타에게도 요모의 소문 따위가 흘러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문을 전할 사람이 과연 남아있는가, 그것이 문제겠지만.

  일을 이렇게 빨리 재개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요모는 길게 숨을 내쉬곤 외투를 걸기 위해 옷장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열린 적이 없었을 터인 옷장의 문이 무겁게 열렸다. 몇 개의 옷걸이가 옷장 안의 퀴퀴한 공기 속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요모의 눈에 띈 것은, 제법 커다란 상자 하나였다.

  우타가 두고 잊어버린 물건일까.요모는 테이프로 단단히 봉해져 있는 부분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매끈했다. 그것 말고는 별것 없었다. 뜯어볼까, 말까. 요모는 아주 잠깐 고민을 했다. 아주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물건을 멋대로 살펴볼 수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아래층에 있을 우타에게 가져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요모는 상자를 들어 올렸다.

어라.”

보기보다 묵직했다. 그렇다고 들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요모는 가볍게 상자를 흔들어보았다. 안쪽에서 가볍게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이것저것 들어있나 본데, 책 같은 건 아닌 것 같고. 요모는 고개를 몇 번 갸웃거리곤 상자의 내용물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다.

우타.”

  요모는 계단을 두 층이나 내려가서야 우타를 볼 수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뭔가를 보고 있던 우타가 요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옷장에서 발견했어.”

  “, 고마워. 어디 있었나 했더니. 괜찮으면 거기, 테이블 위에 올려줄 수 있을까?”

  그 말을 하며 우타는 길게 기지개를 폈다. 가게 일은 안 가도 되는 건가. 요모는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며 상자를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 하고 저절로 숨이 내쉬어졌다. 아주 부담 가는 무게가 아님에도 그랬다.

상자로 가까이 다가온 우타는, 요모가 그랬던 것처럼 단단하게 붙어있는 테이프를 손끝으로 쓸었다. 요모는 우타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있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안 열어봤네? 봐도 되는데.”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 그래. 가지고 오면서 별일은 없었어?”

별일?

요모는 미간을 좁히며 한 쪽 눈썹을 올렸다. 요모는 상자를 들고 고작 두 개 층의 계단을 내려왔을 뿐이었다. 별일이 생기기 불가능한 곳은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굳이 물어봐야 할 정도도 아닌 것 같은데.

, 미끄러지거나 넘어지거나 하는 일 말이야. 계단이니까.”

딱히. 이게 그렇게 중요한 물건인가?”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아니라면 아닌 물건.”

우타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속을 모르겠다고, 요모는 생각했다. 요모의 안에 뭐라 명명할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았지만 요모는 그저 그 감정을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 하고 우타가 자기만 개운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이제 올라가 봐도 괜찮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요모는 선선히 그의 의사에 따랐다. 어쨌든 짐 정리도 아직 끝내지 못했으니.

  요모가 가뿐한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우타는 끝까지 웃는 낯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우타는 퍽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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