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 소재 있음 # 과거 날조 있음 # 진단 메이커
여름밤
Y A G I
1
돗포 군.
지금의 돗포 군은 무얼 하고 있나요. 저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삶을 보냈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아프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다시 건강해지곤 합니다. 병원의 일상이란 그런 것이죠. 돗포 군이 알다시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듯 오가는 이곳에 저는 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돗포 군을 만났죠. 저는 그것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요.
제게 있어서 돗포 군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돗포 군이 저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눈치챌 수 있었죠. 돗포 군은 생각한 것이 그대로 얼굴에 떠오르는 타입의 사람이었죠. 그건 알고 있었나요, 돗포 군? 돗포 군은 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그런 걸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돗포 군이 처음으로 제 관심을 끈 것은 바로 그런 것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어요. 처음에는. 지금은……. 돗포 군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이더군요. 저는 그런 돗포 군에게 어떠한 믿음 따위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돗포 군. 저는 이 편지를 쓰고 난 이후 바로 이것을 태워버릴 예정입니다.
2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그의 말에 나는 펜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밑은 역시 오늘도 어두웠다. 그의 등허리는 가볍게 굽어 있었다. 그것은 직장인의 어쩔 수 없는 숙명과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반은 습관적으로 그에게 고용량 비타민을 처방하며 말했다.
“돗포 군. 어째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그냥요. 사람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는 보통 안 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 말은 삼켰다. 대신에 아예 펜을 놓고 깍지를 낀 손을 턱밑에 두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그는 어물쩍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거리에서도 그의 눈동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뻔히 보였다. 나는 그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내 쪽으로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이 다시 진료실 바닥을 헤맸다. 속이 저렇게 뻔히 들여다보이는데 일은 어떻게 하나.
“돗포 군은 오래 살 겁니다.”
“어떻게 그런 걸 아나요?”
그의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져 있었다. 동그랗게 뜬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그렇게 당황하더니, 지금은 그런 것보다 궁금증이 우선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여태까지의 진료 기록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의사의 직감이에요.”
내 말에 그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었다. 다 됐습니다. 내 말에 그는 평소처럼 고개를 꾸벅 숙이곤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다음 환자가 들어오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걸까.
3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어떠한 예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죠. 어쨌든 내게 남은 돗포 군의 마지막 말은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행복하셔야. 행복.
병원으로 실려 온 돗포 군의 모습을 보고 나는 수도 없이 그 말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사고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것이 돗포 군의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고인지 자실인지까지는 제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돗포 군이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철길에 갈려 엉망이 된 얼굴로 돗포 군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돗포 군의 미약한 숨이 끊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돗포 군의 마지막은 그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 그냥 고통 없이 죽여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 고통 없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의 목을 조르지도, 당신에게 금방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약물을 투여하지도 않았습니다.
4
그 뒤로 그는 종종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전에는 우리 둘 사이에서 그다지 오가지 않았던 주제였으나, 나는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입에서 죽음이 어쩌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게 퍽 흥미로워 가만히 두었다.
“선생님은 제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환자가 있으면 저도 병원도 좋은 일 아닐까요.”
“선생님은 다른 사람이 아픈 걸 좋아하시나요?”
“농담이었습니다.”
“제가… 제가 또 진지하게 생각했군요…….”
그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오늘도 그에게 비타민을 처방하며 말했다.
“돗포 군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합니까?”
“안… 한다고는 못하겠네요.”
그 말을 하며 그는 조금은 낯설게 웃어 보였다. 마치 하면 안 될 말을 뱉어버린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약간의 곤란함이 섞인 웃음.
“정상이네요.”
“예?”
“다들 죽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하면서 살아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는 건, 선생님도 그러실 때가 있나요?”
“글쎄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곤 생각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그런 것을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전혀 재미도, 흥미도 없는 일이었다. 대신에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과거의 기억 따위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 눈앞에 살아있는데, 내가 굳이 과거를 복기할 필요가 있을까.
“선생님 부탁 하나만.”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끊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을 더듬기까지 하며 제가 한 말을 수습하려 했다.
“아니, 아니, 그게……. 괜찮습니다. 별 것 아니라서요.”
“별 것 아니면 더 들어주기 쉽지 않을까요. 말이나 한 번 해보세요, 돗포 군.”
“그…럼, 저기.”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에어컨에서 찬 바람이 쏟아지듯 나오는 소리만이 우리 두 사람의 사이를 채웠다. 그는 가볍게 입술을 떨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름을.”
“이름을?”
“불러 주세요.”
“돗포 군.”
이름을 불러달라니. 이름이야 항상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고, 그냥 이름만.”
“돗포.”
“예, 쟈쿠라이 선생님.”
“만족했습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웃었다. 아무리 봐도 그가 진짜로 원하던 것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지만. 그러나 진심으로 원하던 것은 아니었어도 그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언젠가 불시에 그의 이름을 불러보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5
저는 다만 당신의 귓가에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돗포, 돗포, 하고. 돗포 군은 그걸 다 듣고 있었나요.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돗포 군.
죽은 사람은 환생하기 전 딱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의 꿈에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윤회 같은 것을 쉽게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믿고 싶군요. 그 정도로 간절하게, 돗포 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돗포 군은 제 말을 예상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저는 돗포 군을 기다립니다. 돗포 군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돗포 군. 어서 저를 다시 찾아오세요. 그러면 제가 돗포 군이 아마도 원했을 이야기를 해주겠습니다. 돗포 군이 원했고,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편지로는 미처 담을 수 없는 말을 돗포 군을 마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하겠습니다. 돗포 군도 듣고 싶지 않나요. 제 입에서 나올 말을.
저기, 돗포 군. 돗포. 거기도 아직 여름인가요. 여기에 있는 내게는 끝나지 않을 여름이 남았습니다. 밤이 아주 긴 여름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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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진단 메이커가 나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