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자분 요청으로 장르와 이름은 이니셜처리 했습니다. 

 

  “학생, 학교 안 가?”

  12층 엘리베이터 앞, 살짝 곱슬기가 도는 검은 머리를 가진 남자가 제 옆의 여자아이를 보며 말했다. 현재 시각 오전 7. 보통 학생이라면 지금이 일어날 즈음 아닌가. 남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벌써 10년 가까이 된 일이라 가물가물해서 확실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눈앞의 아이와 매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다는 점이었다.

  “저 학생 아닌데요. J라구요. P, J, E.”

  “그래서 J 학생, 학교는 안 가?”

  사실 이름이라면 진작 알고 있었다. 교복을 입으면 왼쪽 가슴 부근에 대롱대롱 달린 노란색 명찰에 그의 이름 세 글자가 단정하게 적혀있었으니까. 그러나 남자는 항상 그를 모른척하며 아이를 학생이라고 불렀다. 뭔가,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놀려먹는 게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항상 이렇게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즐겁다고 해야 할지, 그런 기분이 들어서 아이를 학생이라고 부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남자는 M라는 제 이름을 떠올렸다. MJ. , 나쁘지 않은데, 하고 생각했다가 곧 생각을 떨쳐내었다. 고등학생한테 무슨 생각이람. 그것도 10살 가까이 차이나는 애한테. 이건 분명 도둑놈 취급당한다. M은 그렇게 생각했다.

  “겨울 방학이에요.”

  “방학인데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 아저씨 회사 가는 거 배웅해주려구요.”

  참 성실한 아이다. 학기 중에는 나 배웅해주려고 7시부터 등교를 하기도 하고, 방학 때는 이렇게 잠옷 위에 후드만 입고 나오고. 매일 같이 이런 일을 하기는 어렵지 않지. 그 연정을 M은 알고 있었지만, M은 그를 티 내지 않았다.

  J가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성인과 고등학생의 교제라니. M의 기준에서 이는 그다지 옳은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MJ를 매일 같이 학생이라고 부르며 일정 정도의 거리를 유지 중이었다.

  “누가 보면 부부인 줄 알겠네.”

  “, 그거 좋다.”

  그 말을 듣고 M은 속으로 웃었다. 하여튼, 솔직한 아이였다. 솔직해서 더 마음에 드는 그런 아이.

  “좋긴 뭐가 좋아, 학생.”

  “P, J, E.”

  “P, J, E, 고등학생.”

  12층까지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함께 내렸다. 1층에서 문이 열리자 차가운 바람이 훅 밀려들어 왔다. MJ를 바라보았다. 12월 말, 후드만 입고 있기엔 추운 날씨였다.

  “추우니까 어서 들어가.”

  “지금 저 걱정해 주는 거예요?”

  “나 간다.”

  M은 괜히 제 마음이 엿보인 것만 같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빠른 걸음을 옮기던 그가 아파트 정문에서 1층 현관을 뒤돌아보았을 때, 그곳에는 여전히 J가 있었다.

 

/4천자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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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 Cookie  (0) 2020.08.22

* 신청자분의 요청에 따라 장르와 이름을 미공개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S는 자리에 앉아 J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는 J의 표정에서 많은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슬픔. 고통. 애원. 부정. 연정.

  연정.

  “인사는 하지 않을게요, S.”

  S는 그저 J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J의 삶을 저지하거나 교정할 권리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긴 했지만, 그 상대가 J이기 때문에 그는 더욱 J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아끼고 싶었다. 자신으로 인해 의무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성장이라면 S 본인도 하지 못한 것이기도 했지만.

  S의 예민한 귀가 습관적으로 낯선 소리를 잡아내었다. 타닥타닥하고 무언가 장작 같은 것이 타오르는 소리였다. 소리는 J가 향한 안쪽 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점점 더 커지는 소리.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새카만 연기가 식기 상점의 천장을 얼룩처럼 덮어갔다. S는 매캐한 열기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식기 상점을 다시 열었을 때가 생각난다. J는 그것을 S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반짝이는 것을, 가장 반짝일 때, 가장 반짝이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J는 말했다. S는 그날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아래에서 따스한 햇볕과 그를 반사하는 수많은 은 식기들이 보였다. 제각각 다른 각도로 빛을 반사하는 탓에 그곳은 식기 상점이라기보다는 보석상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정교하게 그려진 접시의 그림들은 생명을 가지고 있어 곧 그 안에서 일렁일 것만 같았고 장식장에 나란히 정렬된 스푼과 포크, 나이프는 마치 천상의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SJ를 바라보았다. JS의 표정 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데에는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감상도 가지지 않을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J가 알고 있는 S라면 그러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J가 본 S란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 눈에야 철저하고 사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J가 보기에 그는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JS가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에.

  S는 눈을 떴다. 화마는 가까이까지 와있었다. 상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불길을 바라보았다. S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식기 상점의 문을 열었다. 문 위에 달린 차임벨이 나지막한 소리를 냈다.

  S 역시 마지막 인사 없이 식기 상점을 떠났다.

 

  건물은 입구 부근을 제외하곤 완전히 불에 타 있었다. 남아있던 몇 안 되는 은 식기들은 녹아내려 제 형체와 빛깔을 유지하지 못했다. S는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고 까맣게 불에 타 내려앉은 서까래를 발로 툭 건드렸다. 서까래 겉면에 묻어있던 잿더미가 작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완전히 까맣게 탔어. 신원을 파악하기엔 힘들 것 같은데.”

  안쪽에서 L 경감이 나오며 말했다. 그는 장갑을 벗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아하니 그 꼴이 엉망인듯했다. 소사체란 그런 법이지. S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안쪽 방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했다.

  그 소사체는 J일 것이기에.

  S는 사실 그의 그런 마지막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보아야만 했다. 그것이 J이기 때문에, 그 마지막을 자신이 보아야 했다. J라면 그러길 원했을 것이라고, S는 생각했다.

  검게 눌어붙은 피부. 일부분은 흰 뼈가 보였다. 그 뻘건 불의 시작 지점에서 J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S는 잿더미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블랙 오팔이었다.

  마치 불을 품기라도 한 듯 붉은빛을 감추고 있는 까만 오팔. S는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주머니에 챙겼다.

  “맞습니다. J.”

  “어떻게 그걸 알지?”

  “어제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거든요.”

  “S!”

  SL의 핀잔은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어느덧 겨울이었다. 며칠 기다리면 또 함박눈이 펑펑 떨어지겠지. S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 외곽까지 나서는 일은 그에게 이젠 습관과도 같은 일이었다. W는 항상 잔소리했지만 그걸 들은 S는 아니었다. W도 그걸 알면서도 잔소리를 하는 것이니, , 쌤쌤일까.

  S는 마차에서 내린 후 옷을 툭툭 털어 정돈했다. 이제는 겨울 코트를 벗을 계절이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시간은 정말로, 빨랐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가 곧 기억의 풍화는 아니었기에, S는 여전히 이 빵집에 다니고 있었다. J가 생전에 일했던 그 빵집. 집에서 멀리 있는 데다가 그다지 맛있는 빵을 팔지도 않고, 그렇다고 종류가 다양하지도 않지만, 언젠가 J가 일했던 바로 그 빵집. S는 오늘도 익숙하게 문을 당겨 열었다.

 

 

/약 5,000자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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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 12:00 AM [나페스]  (0) 2020.08.24

 

하지만 에로 동인이었습니다.

 

Y A G I

 

 

이루.”

?”

서월의 말에 이루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종종 상당히 악동처럼 보일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이었다. 또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생겼나 보군. 이루는 읽던 책을 갈무리해 베개 옆으로 밀어두었다. 저런 표정을 본 이상 오늘 더 책을 읽는 것은 무리였다.

, 해보고 싶은 거 있어요.”

그 말에 이어 서월은 이것저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루는 잠자코 그 모든 말을 듣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S자 결장을 개발하고 싶다고?”

. 어때요?”

에로 동인도 아니고, 거기까지 들어갈 리가 없잖아…….”

한숨처럼 내쉰 말이었다. 이루는 머릿속으로 S자 결장의 위치를 그렸다. 수사관을 준비하던 시절 쌓아두었던 지식이 이럴 때 쓰일 줄이야. 그는 속으로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나 이루가 그런 반응을 보인다고 해서 바로 포기할 서월은 또 아니었다.

왜요. 될 수도 있지.”

그렇게 말하며 서월은 자연스럽게 이루의 위로 올라탔다. 이루는 자신의 상의 아래로 들어오는 서월의 손을 굳이 피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이루도, 싫지 않잖아요.”

싫지는 않지만.”

대신에 그는 그 손목을 붙잡았다. 한 손에 들어오는 얇은 손목이었다. 이루는 눈을 깜빡이며 서월을 보았다. 그의 다소 의문스러운 눈빛이 이루에게 와닿았고, 그 시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루는 그에게 살짝 웃어 보였다.

이렇게 갑작스레 해버리는 거야?”

싫어요?”

말했잖아. 싫진 않다고.”

그는 양손으로 부드럽게 서월의 양 뺨을 감쌌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입을 맞췄다. 농도가 짙지 않은, 아주 가벼운 키스였다. 서로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서월은 다시 이루의 목을 껴안아 그의 입술 속으로 제 혀를 밀어 넣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은 아니었기에 이루도 가볍게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진득한 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를 채웠다. 이루는 서월의 손이 제 허리를 섬세하게 쓸어내리는 것을 느끼며 몸을 움찔 떨었다. 서월은 이루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서월은 이루보다 그를 어떻게 자극해야 그가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루는 달뜬 숨을 뱉으며 입술을 떼어냈다. 서월의 입술은 바로 이루의 목덜미로 향했다. 그 목덜미를 가볍게 깨물며 서월은 이루의 체취를 느꼈다. 이루는 자신이 이렇게 달콤한 체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섹스를 할 때마다 글자 그대로 먹어버리고 싶은욕망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어쩌면 이루는 그런 것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을지 몰랐다. 서월이라면 정말로 먹혀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서월은 눈을 내리깔아 과거 자신이 이루에게 남긴 흉터를 바라보았다. 끓어오르는 식욕에 이루를 한 입 베어 물었던 흔적이었다. 그때 이루의 반응은 어땠던가. 생각보다도 더 담담하지 않았던가.

이루의 신음이 서월의 귓가에서 낮게 끓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자신의 아래에서 이루가 들끓는 욕망으로 몸을 움찔거리고 있는 이 상황이 가장 중요했다. 서월은 이루의 상의를 위로 말아 올리며 그의 아랫배에 입을 맞췄다. 이루는 언제나 그렇듯 꽤 예민하게 반응했다.

서월은 한 손으로는 이루의 바지 버클을 풀며 다른 손으로는 연신 이루의 가슴팍을 쓸었다. 이루는 이를 악물어 신음을 참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그 노력이 보잘것없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꼭 그랬다. 서월은 굳이 이루의 입을 벌려 그가 신음을 뱉어내도록 하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그 스스로 제 몸을 주체할 수 없게 될 것이기도 했고, 참아내듯 흘리는 신음을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일이었다.

서월은 익숙한 듯 이루의 바지를 벗겨 침대 아래로 던져버리곤 속옷 위로 빳빳하게 드러난 그의 페니스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그 예민한 감각에 이루는 허리를 가볍게 비틀었다. 간지럽기도 하면서 미묘하게 자극이 되는 그 감촉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이루는 앞니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서월의 손이 스칠 때마다 이루는 발끝에 힘을 줬다가 뺐다가를 반복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서월은 이로 이루의 속옷을 끌어 내리며, 손바닥으로는 단단하게 발기한 그의 페니스를 쓸었다. 이루는 한껏 축축해진 목소리로 연신 서월의 이름을 불렀다.

서월, 서월아…….”

, 이루. 나 여기 있어요.”

서월은 소리 없이 웃으며 이루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는 더는 신음을 씹어 삼키지 않았다. 이루의 얼굴은 잔뜩 달아올라 입을 맞출 때마다 홧홧한 열기가 전해졌다. 서월은 혀를 뻗어 이루의 목덜미를 핥았다. , 하고 이루가 새된 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서월은 손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으며 이루의 귀두를 혀끝으로 핥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이루의 페니스는 벌써 그 끝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아, !”

이루는 야하다니까.”

이루는 생각보다 금방 절정에 다했다. 생각해 보면 최근 들어 제대로 한 적이 없으니, 이루는 이루 나름대로 참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월은 제 손에 묻은 이루의 정액을 손가락에 묻혀 그의 뒤를 풀어주었다. 금방 눅진한 느낌이 손끝에서부터 전해져 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려나. 서월은 다른 손으로 연신 움찔거리는 이루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아프면 말해요.”

잠깐, 오늘, 하윽, 너무 밀어 넣으면!”

말했잖아요, 개발한다고.”

어쩌면 평소보다 조금 난폭한 섹스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무리가 된다고 생각하면 바로 말할 사람이고, 조금은 상냥하지 않은 섹스도 나름의 맛이 있었으니까.

이루는 침대 시트를 꼭 붙잡은 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루의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움직였다. 서월은 몸을 숙여 이루의 안에 제 것을 좀 더 꾹 밀어 넣으며 손을 뻗어 이루의 턱을 잡아 그의 얼굴을 제 쪽으로 돌렸다. 그의 눈꼬리에 눈물이 방울져 있었다. 제 몸의 아래쪽으로 잔뜩 피가 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루, 나 봐요.”

, 서월아, !”

여기가 좋아요?”

이루의 표정 변화를 놓칠 서월이 아니었다. 이루는 연신 신음을 흘리며 허리를 움찔거렸다. 서월은 이루의 안이 꽉 조여오는 것을 느끼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루는 여기가 좋은가 봐.”

하읏, 더는, 안 돼, !”

싫어요? 그만할까?”

아냐, , 아냐, 더 해 줘, 서월, !”

서월은 제 허리를 감싸고 있던 이루의 발목을 쥐고 제 어깨 위로 올렸다. 제 것을 더 깊숙이 박아넣기 위함이었고, 그것이 효과가 있었던지 고개를 잔뜩 뒤로 젖힌 이루의 입에서 엉망진창으로 신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루가이루가 원하면 더 해줘야죠.”

서월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허리를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랫배에 이루의 뜨겁게 달아오른 페니스가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자극적이라니까, 이루는. 서월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이루의 입술을 찾았다. 이루의 팔이 서월의 머리를 껴안듯 끌어당겼고, 두 사람은 호흡을 쏟아내며 입을 맞췄다.

 

*

 

어땠어요?”

솔직히 말하면, 평소랑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어.”

이루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역시 S자 결장을 개발하는 건 무리라니까. 그러나 서월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이루는 참을성 있게 서월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잠시간의 침묵 뒤에, 서월의 질문이 이어졌다.

, 잠시만요 이루.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했죠?”

한두 번도 아니고. 딱히 세려고 노력한 적도 없어서.”

이미 개발된 거 아니에요?”

? 이루는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서월을 바라보았다. 이미 개발됐다고? S자 결장이?

안 되겠다. 한 번 더 해서 실험해 봐야겠어요.”

잠깐, 잠깐, 잠깐.”

이루는 손을 뻗어 다시 제게로 달려드는 서월을 제지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니, 이게 진짜로 가능한 건가? 서월의 의문스러운 표정에 이루는 얼른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나 조금 충격받아서 그래.”

뭐가요?”

이미 그렇게 됐다는 게.”

그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인가요.”

서월은 빙그레 웃으며 이루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는 몸을 다시 뒤로 물리기 전에, 이루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좋으면 끝 아니에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루는 그렇게 말하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 S자 결장이고 뭐고가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아예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서월의 말대로 확실히 섹스라는 건 좋으면 끝인 것이니까.

그러면 자, 얼른 한 번 더 해요. 나 확인하고 싶으니까.”

어떻게 확인할 건데?”

글세, 이루가 좋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뭐야, 그런 거라면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잖아.”

그냥 이루랑 한 번 더 하고 싶어서 한 말인데, 안 되나요?”

안될 게 어디 있겠어. 이루는 그렇게 말하며 서월을 끌어당겨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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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형성의 감각들  (0) 2018.01.23

진구지 쟈쿠라이, 그의 어린 삶에 대하여

 

Y A G I

 

 

01 발목

 

진구지 쟈쿠라이는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주변의 다른 아이들과 키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남들보다 아주 약간, 손가락 한 마디가 조금 안 될 정도로 작았다. 그 나잇대의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그 역시 여자아이들보다 키가 작았다. 그 주위의 누군가는 그 사실에 약간의 괴로움을 느끼곤 했지만, 진구지 쟈쿠라이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린 그에게 자신의 키란 자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하나의 요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진구지 쟈쿠라이라는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데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는 매년 신체검사 때마다 키를 재며 자신의 키가 그어진 빗금보다 그 빗금을 기록표에 받아 적는 사람에 더욱 관심이 있었다.

저 사람은 순전히 일이기 때문에 이런 낯선 곳에 와서 키를 잰다는 지루한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가.

진구지 쟈쿠라이는 그 사람들은 아주 조금 동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전혀 티 내지 않았고 대신에 차분하게 실내화에 발을 집어넣고 검지 끝으로 실내화의 뒤축을 반듯하게 폈다. 다만 그는 다음 검사로 이동하기 직전에 톤을 높여 말하는, 아마도 병원의 직원일 그 사람을 한 번 흘긋 바라볼 뿐이었다. 이 사소하고 별 것 없는 사건은 진구지 쟈쿠라이의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았다. 어쩌면 그가 이후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하는데 아주 약간의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남들과 비등비등했던 그의 키가 부쩍 자란 것은 그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난 이후에서였다. 그는 주위 사람들과 비슷한 중학교에 진학했다. 그 중학교는 가쿠란을 입는 학교였는데, 그의 양친은 그가 키가 클 것을 대비해 그의 사이즈 보다 한 치수 큰 옷을 그에게 입혔다. 양친의 선택은 올바르기도 했고, 올바르지 않기도 했다. 그가 이차 성징을 겪으며 평균을 웃도는 비율로 자랐기 때문이었다.

그의 키는 일 년에 거의 십오 센티미터 가까이 자랐다. 그 나잇대면 으레 키가 자라곤 한다지만, 그의 성장은 이례적일 정도로 폭이 컸다. 고작 한 치수 크게 산 옷이 그의 성장 폭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는 직접 바짓단과 소맷단을 뜯어 옷의 길이를 늘여보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단정하고 검은 단화 위로 그의 매끈하고 하얀 발목이 보였다. 마른 체구인 탓에 겨울이면 발갛게 트는 그의 복사뼈는 남들의 그것보다 훨씬 도드라져 보였다. 그의 발목은 손가락 두 마디를 조금 넘는 정도로 보였는데, 검은 가쿠란에 대비되는 하얗고 얇은 피부가 보드랍게 그의 뼈와 살을 감싸고 있었다.

진구지 쟈쿠라이는 그 상태로 졸업 사진까지 찍었는데, 어차피 새로 교복을 사봤자 금방 교복이 맞지 않게 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종종 그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자신의 드러난 발목을 곤란하다는 듯이 쓰다듬곤 했다. 아무래도 발목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이 신경 쓰이는 탓이리라.

 

그의 발목이 가려진 것은 그가 고등학교로 진학한 이후였다. 물론 고등학생 때도 그는 중학생 때와 비슷한 수치로 자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자신의 사이즈보다 한참 큰 교복을 준비해 두었기에, 더는 그의 섬세한 발목이 드러나는 일은 없었다.

 

진구지 쟈쿠라이, 그의 어린 삶에 대하여

 

Y A G I

 

 

00. 진구지 쟈쿠라이

 

진구지 쟈쿠라이는 자신의 신체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타인의 몸을 대하는 의사가 된 것에 어쩌면 조금의 아이러니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은 그를 대신 해서 진구지 쟈쿠라이의 신체를 탐구하는 책이다. 오직 그가 보고 있지 않았던,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을 파헤치는 것에 집중한 책이다. 마치 그가 남의 몸을 진찰하기 위해 바라보듯이, 우리는 마치 그와 비슷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그다지 큰 의미를 갖지 않는 행위이다. 그럼에도 그의 몸을 탐구하게 되는 것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흥미롭기때문이 아닐까. 진구지 쟈쿠라이라는 한 인간이 이 책을 쓰고 읽는 인간에게 흥미로운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진구지 쟈쿠라이의 신체와 함께 그의 어린 삶을 살핀다. 타인의 신체를 대한다는 것은 그의 역사를 읽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 역사를 읽으며 그에게 더욱 가까워진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진구지 쟈쿠라이를 더욱 사랑하기 위해 이 책을 쓰고 읽는다. 어째서 그를 사랑해야만 하는가, 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문을 표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런 의문이 드는 사람이라면 일단 이 책을 덮고 진구지 쟈쿠라이에 대해 생각해보라. 당신에게 그는 흥미로운 인물인가? 자꾸 신경이 쓰이는 인물인가? 조금 더 알고 싶은 인물인가? 그렇다면 다시 책을 펼쳐라. 당신은 이미 진구지 쟈쿠라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은 잠시 덮어두고 당신이 사랑하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라.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에게 관심이 갈 때, 이 책을 펼쳐보라.

 

그렇다면 이미 진구지 쟈쿠라이를 사랑하는 당신.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친다. 그럼 이제부터 진구지 쟈쿠라이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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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발목  (0) 2018.07.10

# 진단메이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Y A G I

 

 

오늘의 새벽은 새파랗지 않고 어딘가 불만스러운 청회색입니다. 당신은 웬일로 제 곁에서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앳된 얼굴을 바라봅니다. 자고 있을 때의 당신은 깨어 있을 때의 당신과는 어딘가 다릅니다. 어느 쪽이 더 좋냐고 묻는다면, 저는 둘 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다른 것을 비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저는 간밤에 당신과 나눈 대화를 떠올립니다. 당신은 당연하다는 듯이 제게 폭언을 뱉으면서도 내게 모든 것을 쏟아냈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고 말하면서 제 어깨를 깨물기도 하고 그 섬세한 손끝으로 제 몸을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 가끔 당신과 밤을 보낼 때마다 있는 일입니다. 이제는 당신의 말에 그다지 상처를 받지도 않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게 충분히 의미 있는 쾌감을 주니, 한낱 말 따위에 특별히 더 무거운 저울추를 올려놓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어떨까요.

고백하자면 저는 당신에게 속하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의 환부라도 되고 싶었습니다. 정확히는 환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종양 같은 것이 되어서 당신을 오래오래 아프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 고통을 달래느라 저에게 쩔쩔매고 저를 배려하고 보살피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흥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보살피는 사람이 아니더군요. 의사로서 그렇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 의사가 타인의 상처가 되는 것 역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니 그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죠.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시 한번 제 흥미를 끌었다는 점입니다. 당신은 상처를 보살피지도, 상처를 잘라내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익숙한 일이라는 듯 상처에 딱지가 앉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그런 당신을 보며 당신의 상처로서, 당신의 몸 안에서 날뛰고 싶었습니다. 평생 딱지가 앉지 않는 상처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신과 꾸준히 관계를 가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아픔을 잊지 못하는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저는 그게 퍽 궁금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사랑할 수 있나요. 저에게 폭언하면서도 당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그 감정을 희석하지 못하는 당신은, 저를 어떻게 대할 건가요. 이것은 그 어떤 실험보다 흥미로운 것입니다. 물론 실험을 하려면 실험자의 감정을 배제해야겠지만.

가끔은 그게 되지 않는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겠지요.

저는 손을 뻗어 당신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쓸어 넘깁니다. 간밤에 당신이 흘린 땀에 흠뻑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머리카락은 생각보다도 더 가늘고, 아름다웠습니다.

뭐 하는 거야, 망할 영감.”

이제 슬슬 깨울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영감이랑 잔다고 영감이 오해를 하나 본데.”

오해 같은 건 없어요, 아메무라 군.”

당신은 그 작은 자극에도 잠에서 깨나 봅니다. 그 정도로 예민한 당신이 상처를 그렇게 다루다니. 저는 믿기지 않습니다.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꾹 눌러 참습니다. 당신은 저를 침대에 두고 먼저 일어납니다. 하늘에서 청색 빛깔이 서서히 걷히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좀 흐릴 모양입니다. 당신의 벗은 몸이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를 한 번 노려보곤 샤워실로 들어갑니다. 물줄기가 당신의 몸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은 샤워를 오랫동안 하는 편입니다. 저는 당신이 어젯밤 제게 주었던 쾌감과 흥미로움을 떠올리며 이불 속에 몸을 파묻습니다. 제가 당신의 환부가 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동시에 당신도 저의 환부가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상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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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내용 없음 주의  # 캐해석 흔들림 주의

 

 

Rude Love

 

Y A G I

 

 

 

쟈쿠라이는 진료실로 들어온 사람을 보고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라무다가 어색하게 문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라무다는 평소와는 다르게 쟈쿠라이의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바닥만 훑고 있었다.

아메무라 군. 여긴 어떤 일입니까.”

할배.”

라무다는 도통 테이블로 다가올 생각도 하지 않고 문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병원의 차가운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국 쟈쿠라이가 몸을 일으켜 라무다의 앞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쟈쿠라이는 그것이 쟈쿠라이 개인이 아닌 진구지 쟈쿠라이라는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라무다는 쟈쿠라이를 의사로서 만나러 온 것이 아닌 듯했다. 쟈쿠라이는 갑작스레 제 허리를 껴안은 라무다를 내려다보았다. 라무다는 쟈쿠라이의 명치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쟈쿠라이는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쟈쿠라이는 조심스레 라무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할배한테는 말 안 할 건데.”

그렇습니까.”

쟈쿠라이의 목소리에는 별 무게감이 실려있지 않았다. 라무다는 쟈쿠라이가 이런 일을 많이 겪어본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라무다는 그게 어쩐지 싫었다. 지금 쟈쿠라이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쟈쿠라이에게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단 말인가. 라무다는 그 감정을 질투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랬다.

진짜 안 물어봐?”

아메무라 군이 이야기하기 싫다 하지 않았나요.”

맞아.”

라무다의 말에 쟈쿠라이는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것도 일종의 여유인 것 같아서 라무다는 그 웃음이 어쩐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가 의사로서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그냥 이렇게만 있어 줘.”

그 말에 쟈쿠라이는 별다른 답 없이 라무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감각은 쟈쿠라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따로 관리를 하는걸까. 쟈쿠라이는 어쩐지 라무다의 샴푸 냄새가 제 코끝을 스치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마치 과거의 어느 지점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알 수 없는 정적을 깬 것은 라무다 쪽이었다.

할배, 이거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특히 우리 애들한테는.”

알겠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쟈쿠라이는 라무다의 어깨를 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의사 쟈쿠라이가 아닌, 인간 쟈쿠라이로서의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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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해석 흔들림

 

 

수련睡蓮

 

Y A G I

 

 

 

돗포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쟈쿠라이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단지 그는 평소처럼 쟈쿠라이에게 상담할 것이 있었고, 그래서 그의 병원에 들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들은 소식은 웬일로 쟈쿠라이가 비번이라는 소식이었다. 돗포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내심 쟈쿠라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쟈쿠라이의 집으로 가는 전철 안에서 몇 번이나 그에게 전화를 걸었던가. 그러나 쟈쿠라이는 단 한 번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그것은 돗포의 불안을 더욱 심화시켰다.

돗포가 욕조에 잠겨 있는 쟈쿠라이를 발견하게 된 경위는 그랬다. 조금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쟈쿠라이는 잠겨 있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죽어간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걸맞은 모습이었다.

선생님!”

쟈쿠라이의 모습을 본 직후 돗포는 자기도 모르게 양말을 신은 발로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욕실 바닥은 말라 있었다. 선생님은 도대체 얼마나 욕조 안에 오래 계셨던 걸까. 돗포가 손을 뻗어 쟈쿠라이를 일으키려 했을 때 쟈쿠라이는 눈을 떠 돗포를 바라보았다.

물속에 잠겨 있어도 그의 시선은 곧았다. 돗포는 그 시선에 쟈쿠라이에게 내밀던 손을 거두었다. 돗포와 눈이 마주친 쟈쿠라이가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물에서 빠져나온 쟈쿠라이는 참았던 숨을 가만히 내쉬곤 젖은 손가락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리곤 그는 돗포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물기가 많은 정적이 가라앉았다.

돗포는 흔들리는 시선으로 쟈쿠라이를 바라보았다. 쟈쿠라이는 그런 돗포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연 것은 돗포였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죽으려는 줄 알았습니다.”

죽음이 궁금하기는 했지. 산 사람은 알지 못하는 세계가 아닌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아뇨, 제가 무슨 권리로 이런 말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기어들어 가는 돗포의 목소리를 들으며 쟈쿠라이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손을 뻗어 돗포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가 몸을 움직이자 욕조 속의 물이 찰방거리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돗포는 쟈쿠라이의 손길에 따라 제 왼쪽 뺨이 천천히 젖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돗포 군. 내게 죽음보다 더 흥미로운 걸 알려주겠나?”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고 차분했으나 돗포는 그의 눈동자에 스쳐 지나간 어떠한 빛을 발견했다. 그것은 광기와 비슷한 것이어서 돗포는 자신이 그것을 잘못 본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예를 들면 욕실 전등의 불빛이 이상한 각도로 그의 눈에 비쳤다거나 하는 식으로.

돗포는 그런 것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돗포 자신이 알고 있는 쟈쿠라이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색채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제 이야기를아니, 제 이야기 같은 건 재미없겠군요.”

돗포는 그의 눈빛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대신 다른 이야기로 그의 관심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딱히 없었다. 흥미로운 것이란, 뭐지? 돗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적어도 돗포 자신은 그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 보였다. 돗포는 쟈쿠라이와 맞추던 눈빛을 바닥으로 돌렸다.

내겐 그렇게 말하는 돗포 군이 굉장히 흥미롭네.”

그러나 쟈쿠라이는 그런 돗포를 결코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그를 잘 알아오던 사람만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약간 들떠 있었다. 쟈쿠라이는 물속에 잠겨 있었던 나머지 한쪽 손을 뻗어 부드럽게 돗포의 뺨을 붙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돗포의 첫 번째 입맞춤은 축축한 감각이었다.

내가 왜 돗포 군의 이야기를 재미없어 할 것 같은가? 거기서부터 말해보게.”

혀도 섞지 않은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그러나 돗포에게는 그것이 그 어느 입맞춤보다도 자극적이었다. 돗포는 젖은 쟈쿠라이에게서 물 냄새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에게서는 그 어떤 향기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 그를 덮고 있던,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향기마저 깨끗하게 사라져있었다.

돗포가 어쩔 줄 몰라 속눈썹만 깜빡이는 동안 가까이 다가왔던 쟈쿠라이의 얼굴이 다시 멀어졌다. 돗포는 손등으로 제 입술을 문질렀다. 약간의 물기가 어려있었다.

힘들면 방금은 어땠는지부터.”

잘 기억이 안 나요, 선생님.”

돗포의 말에 쟈쿠라이는 짧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럼 한 번 더 알려줘야겠지. 이번에는 꼭 말해주게. 굉장히 궁금해졌어.”

돗포는 쟈쿠라이의 입술을 거부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쟈쿠라이의 아랫입술을 힘없이 깨물며 여전히 이 감각을 말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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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소재 있음  # 과거 날조 있음  # 진단 메이커

 

 

여름밤

 

Y A G I

 

 

 

1

 

돗포 군.

지금의 돗포 군은 무얼 하고 있나요. 저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삶을 보냈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아프고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다시 건강해지곤 합니다. 병원의 일상이란 그런 것이죠. 돗포 군이 알다시피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듯 오가는 이곳에 저는 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돗포 군을 만났죠. 저는 그것이 참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요.

제게 있어서 돗포 군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돗포 군이 저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눈치챌 수 있었죠. 돗포 군은 생각한 것이 그대로 얼굴에 떠오르는 타입의 사람이었죠. 그건 알고 있었나요, 돗포 군? 돗포 군은 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그런 걸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돗포 군이 처음으로 제 관심을 끈 것은 바로 그런 것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어요. 처음에는. 지금은……. 돗포 군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사람이더군요. 저는 그런 돗포 군에게 어떠한 믿음 따위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돗포 군. 저는 이 편지를 쓰고 난 이후 바로 이것을 태워버릴 예정입니다.

 

 

2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그의 말에 나는 펜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밑은 역시 오늘도 어두웠다. 그의 등허리는 가볍게 굽어 있었다. 그것은 직장인의 어쩔 수 없는 숙명과 비슷한 것이었다. 나는 반은 습관적으로 그에게 고용량 비타민을 처방하며 말했다.

돗포 군. 어째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그냥요. 사람 앞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그런 이야기는 보통 안 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 말은 삼켰다. 대신에 아예 펜을 놓고 깍지를 낀 손을 턱밑에 두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내 시선에 그는 어물쩍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거리에서도 그의 눈동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뻔히 보였다. 나는 그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내 쪽으로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이 다시 진료실 바닥을 헤맸다. 속이 저렇게 뻔히 들여다보이는데 일은 어떻게 하나.

돗포 군은 오래 살 겁니다.”

어떻게 그런 걸 아나요?”

그의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져 있었다. 동그랗게 뜬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그렇게 당황하더니, 지금은 그런 것보다 궁금증이 우선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여태까지의 진료 기록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의사의 직감이에요.”

내 말에 그는 조금은 어색하게 웃었다. 다 됐습니다. 내 말에 그는 평소처럼 고개를 꾸벅 숙이곤 진료실을 빠져나갔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다음 환자가 들어오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걸까.

 

 

3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어떠한 예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죠. 어쨌든 내게 남은 돗포 군의 마지막 말은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행복하셔야. 행복.

병원으로 실려 온 돗포 군의 모습을 보고 나는 수도 없이 그 말을 떠올렸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사고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것이 돗포 군의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고인지 자실인지까지는 제가 알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돗포 군이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없어도 선생님은 행복하셔야 해요. 철길에 갈려 엉망이 된 얼굴로 돗포 군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돗포 군의 미약한 숨이 끊어져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돗포 군의 마지막은 그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다 그냥 고통 없이 죽여버리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어차피 죽을 거, 고통 없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의 목을 조르지도, 당신에게 금방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약물을 투여하지도 않았습니다.

 

 

4

 

그 뒤로 그는 종종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전에는 우리 둘 사이에서 그다지 오가지 않았던 주제였으나, 나는 곧 죽을 것처럼 보이는 그의 입에서 죽음이 어쩌고 하는 얘기가 나오는 게 퍽 흥미로워 가만히 두었다.

선생님은 제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환자가 있으면 저도 병원도 좋은 일 아닐까요.”

선생님은 다른 사람이 아픈 걸 좋아하시나요?”

농담이었습니다.”

제가제가 또 진지하게 생각했군요…….”

그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소리 없이 웃었다. 나는 오늘도 그에게 비타민을 처방하며 말했다.

돗포 군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합니까?”

한다고는 못하겠네요.”

그 말을 하며 그는 조금은 낯설게 웃어 보였다. 마치 하면 안 될 말을 뱉어버린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약간의 곤란함이 섞인 웃음.

정상이네요.”

?”

다들 죽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하면서 살아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는 건, 선생님도 그러실 때가 있나요?”

글쎄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곤 생각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그런 것을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전혀 재미도, 흥미도 없는 일이었다. 대신에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과거의 기억 따위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이 눈앞에 살아있는데, 내가 굳이 과거를 복기할 필요가 있을까.

선생님 부탁 하나만.”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끊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말을 더듬기까지 하며 제가 한 말을 수습하려 했다.

아니, 아니, 그게……. 괜찮습니다. 별 것 아니라서요.”

별 것 아니면 더 들어주기 쉽지 않을까요. 말이나 한 번 해보세요, 돗포 군.”

, 저기.”

잠깐의 정적이 이어졌다. 에어컨에서 찬 바람이 쏟아지듯 나오는 소리만이 우리 두 사람의 사이를 채웠다. 그는 가볍게 입술을 떨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름을.”

이름을?”

불러 주세요.”

돗포 군.”

이름을 불러달라니. 이름이야 항상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고, 그냥 이름만.”

돗포.”

, 쟈쿠라이 선생님.”

만족했습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웃었다. 아무리 봐도 그가 진짜로 원하던 것은 그게 아닌 모양이었지만. 그러나 진심으로 원하던 것은 아니었어도 그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머릿속에 담아두었다. 언젠가 불시에 그의 이름을 불러보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5

 

저는 다만 당신의 귓가에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돗포, 돗포, 하고. 돗포 군은 그걸 다 듣고 있었나요. 그렇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돗포 군.

죽은 사람은 환생하기 전 딱 한 번 사랑하는 사람의 꿈에 나타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는 윤회 같은 것을 쉽게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믿고 싶군요. 그 정도로 간절하게, 돗포 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돗포 군은 제 말을 예상할 수 있을까요. 오늘도 저는 돗포 군을 기다립니다. 돗포 군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돗포 군. 어서 저를 다시 찾아오세요. 그러면 제가 돗포 군이 아마도 원했을 이야기를 해주겠습니다. 돗포 군이 원했고, 제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편지로는 미처 담을 수 없는 말을 돗포 군을 마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하겠습니다. 돗포 군도 듣고 싶지 않나요. 제 입에서 나올 말을.

 

저기, 돗포 군. 돗포. 거기도 아직 여름인가요. 여기에 있는 내게는 끝나지 않을 여름이 남았습니다. 밤이 아주 긴 여름이 남았습니다.

 

 

--

 

이번에도 진단 메이커가 나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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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 우타X청소년 요모

 

 

 

 

Y A G I

 

요모는 우타의 붉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 모를 여름 매미가 매섭게 울고 있었다. 요모는 한숨과 비슷한 숨을 내쉬었다. 요모가 내쉰 숨에 우타는 고개를 가볍게 한쪽으로 기울이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요모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후회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이런 곳에 사는 게, 무섭지 않아?”

무서울 게 뭐가 있어.”

하지만 네 또래의 사람들이 먹히잖아.”

난 먹히러 온 거 아닌데. 먹히러 온 건 너잖아.”

요모는 눈을 깜빡여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그런 말을 해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렇지. 죽으러 온 건 나였지. 우타는 살기 위해 왔고. 나무의 진녹빛 그늘 아래에서 요모는 자신의 죽음을 떠올렸다. 신에게 먹혀서 맞이하는 죽음. 몇 번이나 상상해 봤지만 잘 떠오르지 않는 죽음이었다.

요모는 지금까지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이 자신에게 준 것은 시련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그 수많은 신들 중 하나에게 먹히겠지. 요모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다. 요모는 그것을 별로 불평하지 않았다.

무섭지 않아?”

별로.”

그래서 우타의 질문에도 아무렇지 않게 답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삶의 시작부터 죽음이었으니까 새삼스러울 것도 딱히 없었다.

다행이네.”

?”

그냥. 죽기 싫다고 울고불고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

이상한 녀석이네.”

여기 죽으러 들어온 너만큼 이상할까.”

그 말에 요모는 희미하게 웃었다. 맞는 말이어서 딱히 더할 말도 없었다. 우타는 고개를 뒤로 젖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여기 네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으니까.”

벌써 친구가 된 거야?”

친구가 싫으면, . 동거인이라고 생각하던지.”

우타는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동거인, 이라. 지금까지 누군가와 가까이하며 함께 살아본 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우타라는 존재가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좋은 부류의 사람인지는 아직 조금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 한 사람 더 있다.”

우타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그가 눈을 깜빡여 그 긴 속눈썹에 얹힌 햇볕을 털어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구?”

여자애 하나가 있어.”

그 애도 떠돌아다니다 여기서 살게 된 거야?”

, 비슷해.”

여기서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는데.”

알 리가 없지. 우리는 아랫마을엔 안 내려가니까. 거기다 우리 말고는 다 죽어버렸고.”

죽음. 그 단어는 자꾸 요모를 따라다녔다. 우타는 슬쩍 요모의 눈치를 보았다. 요모는 태연해 보이면서도, 묘하게 입술 끝이 굳어있었다. 그러나 그 입꼬리는 곧 풀어졌다.

요모란 녀석은 이전에 만났던 아이들과는 뭔가 달라도 달랐다. 우타는 제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껴졌다. 강렬한 호기심이었다. 요모 같은 사람은 지금껏 처음 만났다. 요모와 함께하는 남은 일 년이 즐거울 것 같았다. 우타는 가볍게 아랫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그것은 일종의 나쁜 버릇이었다.

그 애는 언제 만날 수 있어?”

글쎄. 저녁쯤? 그때까지 신사 소개나 해줄까.”

우타는 먼저 그늘 밖으로 몸을 뺐다. 검은 머리카락이 햇볕 아래서 물결치듯 반짝이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코 그 빛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빛깔. 요모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삶의 시작은 여름이었고 그것은 곧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저렇게 아름답게 빛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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