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청자분의 요청에 따라 장르와 이름을 미공개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S는 자리에 앉아 J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그는 J의 표정에서 많은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슬픔. 고통. 애원. 부정. 연정.

  연정.

  “인사는 하지 않을게요, S.”

  S는 그저 J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J의 삶을 저지하거나 교정할 권리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긴 했지만, 그 상대가 J이기 때문에 그는 더욱 J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아끼고 싶었다. 자신으로 인해 의무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성장이라면 S 본인도 하지 못한 것이기도 했지만.

  S의 예민한 귀가 습관적으로 낯선 소리를 잡아내었다. 타닥타닥하고 무언가 장작 같은 것이 타오르는 소리였다. 소리는 J가 향한 안쪽 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점점 더 커지는 소리.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도 함께 들렸다. 새카만 연기가 식기 상점의 천장을 얼룩처럼 덮어갔다. S는 매캐한 열기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식기 상점을 다시 열었을 때가 생각난다. J는 그것을 S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가장 반짝이는 것을, 가장 반짝일 때, 가장 반짝이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J는 말했다. S는 그날을 또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눈을 감으면 눈꺼풀 아래에서 따스한 햇볕과 그를 반사하는 수많은 은 식기들이 보였다. 제각각 다른 각도로 빛을 반사하는 탓에 그곳은 식기 상점이라기보다는 보석상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정교하게 그려진 접시의 그림들은 생명을 가지고 있어 곧 그 안에서 일렁일 것만 같았고 장식장에 나란히 정렬된 스푼과 포크, 나이프는 마치 천상의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SJ를 바라보았다. JS의 표정 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데에는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감상도 가지지 않을 사람은 아니었다. 적어도 J가 알고 있는 S라면 그러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J가 본 S란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 눈에야 철저하고 사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J가 보기에 그는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JS가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곳에.

  S는 눈을 떴다. 화마는 가까이까지 와있었다. 상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불길을 바라보았다. S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식기 상점의 문을 열었다. 문 위에 달린 차임벨이 나지막한 소리를 냈다.

  S 역시 마지막 인사 없이 식기 상점을 떠났다.

 

  건물은 입구 부근을 제외하곤 완전히 불에 타 있었다. 남아있던 몇 안 되는 은 식기들은 녹아내려 제 형체와 빛깔을 유지하지 못했다. S는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고 까맣게 불에 타 내려앉은 서까래를 발로 툭 건드렸다. 서까래 겉면에 묻어있던 잿더미가 작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완전히 까맣게 탔어. 신원을 파악하기엔 힘들 것 같은데.”

  안쪽에서 L 경감이 나오며 말했다. 그는 장갑을 벗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아하니 그 꼴이 엉망인듯했다. 소사체란 그런 법이지. S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안쪽 방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했다.

  그 소사체는 J일 것이기에.

  S는 사실 그의 그런 마지막은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보아야만 했다. 그것이 J이기 때문에, 그 마지막을 자신이 보아야 했다. J라면 그러길 원했을 것이라고, S는 생각했다.

  검게 눌어붙은 피부. 일부분은 흰 뼈가 보였다. 그 뻘건 불의 시작 지점에서 J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S는 잿더미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블랙 오팔이었다.

  마치 불을 품기라도 한 듯 붉은빛을 감추고 있는 까만 오팔. S는 아무도 모르게 그것을 주머니에 챙겼다.

  “맞습니다. J.”

  “어떻게 그걸 알지?”

  “어제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거든요.”

  “S!”

  SL의 핀잔은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어느덧 겨울이었다. 며칠 기다리면 또 함박눈이 펑펑 떨어지겠지. S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도시 외곽까지 나서는 일은 그에게 이젠 습관과도 같은 일이었다. W는 항상 잔소리했지만 그걸 들은 S는 아니었다. W도 그걸 알면서도 잔소리를 하는 것이니, , 쌤쌤일까.

  S는 마차에서 내린 후 옷을 툭툭 털어 정돈했다. 이제는 겨울 코트를 벗을 계절이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시간은 정말로, 빨랐다.

  그러나 시간의 경과가 곧 기억의 풍화는 아니었기에, S는 여전히 이 빵집에 다니고 있었다. J가 생전에 일했던 그 빵집. 집에서 멀리 있는 데다가 그다지 맛있는 빵을 팔지도 않고, 그렇다고 종류가 다양하지도 않지만, 언젠가 J가 일했던 바로 그 빵집. S는 오늘도 익숙하게 문을 당겨 열었다.

 

 

/약 5,000자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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