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소재가 있음 #악신 우타X청소년 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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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 내가 죽을 자리
Y A G I
요모 렌지의 세계의 시작은 여름이었다. 해바라기가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매미가 소란스레 날개를 떨고 있을 때 그의 세계는 시작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에 별 이유는 없었다. 그가 태어난 날이 여름이었기 때문이었기도 했고 그의 최초의 기억이 여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세계의 끝 역시 여름이 될 예정이었다.
요모 렌지는 새하얀 옷을 입은 채 깔끔하게 정돈된 산길을 걸었다. 요모의 전임자는 이런 일을 꼼꼼히 하는 성향의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것에 매달리지 않으면 자신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요모 렌지는 자신은 어느 쪽의 인간일지 생각하다가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아예 지워버렸다. 굳이 따지자면 전자에 가깝겠지만, 그는 청소를 아주 꼼꼼히 하는 것에 별 재능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는 그냥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는 계단을 올라가며 지금까지의 삶을 하나씩 떠올리고 있었다. 그걸 위한 계단이었고, 요모는 그것에 굳이 반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의지도 없었다. 어차피 지금까지 자신의 삶은 오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으니까.
요모는 계단을 올랐다.
최초의 기억은 죽음이었다. 살아남은 자만이 기억할 수 있는 바로 그 죽음이었다. 태양이 따갑게 내리쬐는 날이었다. 모든 것은 선명한 빛에 감싸여 천천히 데워지고 있었고 그것은 자신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은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 바쁜 계절이었다. 해바라기가 태양이 아닌 요모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는 그 해바라기와 시선을 마주쳤다. 물론 해바라기가 그 상황에 대해서 어떤 답을 내려줄 수는 없었다.
요모 렌지는 그 길로 집을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눈을 꼭 감고 모른 척 넘어가려 애썼다. 요모는 여기저기를 떠돌며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곳을 찾았다. 그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날의 해바라기가 요모 자신을 너무 뚫어져라 바라보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요모는 그 여름날에 삶을 묶어둔 채 살아왔다. 요모를 이 시골 마을까지 이끌어온 것도 그 죽음이었다. 더는 잃어버릴 것도 없는 사람이 정착하게 되는 마지막 공간.
요모는 계단을 한 칸 더 올랐다.
이 마을에는 마을을 다스리는 악신이 있다고 했다. 매년 열일곱 살의 아이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마을에 끔찍한 병이 돈다고 했던가. 마을 사람들도 제각각 다르게 기억하는 언젠가, 제물을 바치지 않았더니 마을 사람의 반이 죽어 나갔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잡아먹어 버릴 것 같은 그 악신을 숨기려 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다.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얼마 남지 않는 사람마저 모두 다 죽어 사라질지도 몰랐으니까. 마을 사람들은 항상 죽음의 공포를 눈앞에 두고 매년 눈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 앞에, 죽음으로부터 태어난 요모가 나타났다. 만약에 요모가 성년이 된 이후에 그 마을을 찾았다면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요모는 고작 열여섯 살이었고,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를 마을에 받아들였다. 물론 일 년 후에 악신에게 산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지만. 자기네를 지키기 위한, 한없이 이기적인 이유였지만 요모는 그에 그다지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죽을 자리로는 나쁘지 않아 보이는 곳이었으니까.
요모는 계단을 또 한 칸 올랐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진녹색 향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요모의 발밑에서 이끼와 키가 작은 풀들이 짓이겨지고 있었다. 죽음으로 시작된 삶이었으니 죽음으로 끝나도 불만을 가지지는 않으리라. 요모의 짧은 생각이었다.
요모는 마지막 계단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요모는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 제물로서 악신을 일 년 동안 모시다가 그 악신에게 잡아먹힐, 살아있으나 죽은 상태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요모는 서슴없이 마지막 계단을 올랐다. 어차피 원래 자신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는 상태였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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