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

  

 

   나는 왜 모텔에서 주는 입욕제 따위에 배신감을 느끼고 있을까. 나는 생각보다 큰 욕조에 앉아서도 무릎을 껴안고 있었다. 커플들을 위해 디자인 되었을 욕조는 너무 낯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외국 영화에서 나오는 작은 방에 딸린 아주 자그마한 욕조였는데. 뜨거운 물이 차게 식은 발에 닿아서 발끝이 따끔거렸다. 욕조 바로 옆에 있는 흰 변기는 냉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태어나서 거품 목욕을 해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입욕제라는 단어조차 낯선 때, 나는 처음으로 모텔에 갔고 처음으로 관계를 가졌으며 처음으로 입욕제가 들어있는 포장지를 만져보았다. 일반실엔 욕조가 없었다. 특실을 가려면 만 원을 추가해야만 했다. 특실에는 욕조가 있었고 데스크톱이 두 대에 티비는 조금 더 큰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목욕 가운. 내가 접해 본 목욕 가운은 아주 어렸을 때 수건 한 장을 몸에 둘러 그것을 흉내 낸 것밖에 없었다.

   난생 처음 써본 입욕제는 색이 예쁘지도 않았고, 장미 꽃잎은커녕 장미 냄새도 나지 않았다. 몇 번 부풀어 오르다 꺼져버린 거품은 뜨거운 물에 녹아 없어진지 오래였다. 결국엔 그냥 뜨거운 물이 남았다. 그것도 빠르게 식어가는 뜨거운 물.

   나는 배수구 마개를 열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다시 틀었다. 배수구에 모든 물이 빨려 들어갈 때까지 욕조에 앉아 있으려 했다. 거품이란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며, 조용히 물소리만 들었다. 목욕을 하고 나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것이다. 편의점에서 사온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혼자서 퍼먹으면서 오늘 밤을 보내야지. 무료 브이오디 영화를 틀어놓고 보지도 않아야지. 나는 그렇게 밤을 새고 나면 모든 것이 리셋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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