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집 앞마당에서 무화과나무를 기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여자는 당혹감을 숨길 수 없었다. 여자는 어렸을 때 아몬드나무를 기르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다. 고흐의 아몬드나무 그림을 좋아했으며, 당시 즐겨 읽던 소설에서 ‘아몬드나무의 향기’라는 구절이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아몬드나무란 여자에게 이국의 로망과 같은 것이었다. 뽀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분수대에서 나온 물이 포말로 변하고, 그 앞에서 기타로 잔잔한 음악을 연주하는 컬이 굵은 곱슬머리를 가진 남자가 존재할 세계 어딘가의 풍경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여자가 그 로망을 접어둔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였다. 여자는 여전히 고흐의 아몬드나무 그림을 좋아했다. 하지만 여자는 아몬드를 포함한 견과류를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고, 아몬드나무의 향기를 이제는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런 여자가 무화과나무라는, 다소 뜬금없는 생물이 제 집의 앞마당에 심어진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웬 무화과에요?
여자가 무화과에 대해서 아는 것은, 무화과나무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죄를 저질러서 꽃을 안쪽에서만 피우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던가. 여자는 어머니와의 통화를 이어가며 그 이야기를 잠깐 떠올렸다. 꽃도 없는 과일이라는 거지. 아주 어린 시절의 여자는 그 이야기가 로맨틱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을 기억했다.
무화과요? 아니… 당연히 먹어본 적 없죠.
꽃의 맛은 떫다. 여자는 숱한 경험으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담 무화과는 떫은맛인가. 여자는 스마트폰으로 무화과에 대해 검색해보려 하다가 바로 그 스마트폰으로 어머니와 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네… 보내준다면 먹어야죠.
여자는 떫은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불안함이 여자를 가볍게 흔들고 지나갔다. 여자의 어머니는 손이 큰 사람이었다. 본가에는 무화과나무가 과연 몇 그루나 있을까? 키워다 팔만큼의 수많은 나무들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여자의 집 앞마당은 여자가 아는 것보다 더 몸집을 부풀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자의 어머니는 손이 큰 사람이었으니까. 여자는 단 한 그루였던 이름도 모르는 백합과의 꽃나무가 단 몇 년 만에 열두 그루로 불어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나무들은 현관의 왼쪽 오른쪽에 각각 여섯 그루씩 늘어서게 되었다. 현관을 들락거릴 때마다 맡았던 그 숨 막히는 향기를 여자는 잊을 수 없었다. 여자는 이제, 무화과는 꽃이 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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