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밤

 

 

 

몇 달 만에 본 아버지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아버지의 검은 손을 잡았다. 서로의 체온이 전달되기도 전에 우리는 손을 풀었다. 아버지는 한두 번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손을 거두곤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이전에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던 적이 있던가. 아주 어린 시절은 기억이 안 나긴 하지만, 적어도 내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난 이후로는 아마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기억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누워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같은 티비 프로를 본다거나 하는 것들뿐이었다. 감기에 걸리셨는지 연신 기침을 하시던 할머니는 내가 살가운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고 어머니께 전화로 투정을 부렸다. 애가 완전히 혼자 있는 거에 익숙해졌나봐. 우리 애 같지가 않어. 나는 그 말들을 모두 들으면서 소파에 누워 자는 척, 눈을 감고 있었다. 여기 우리 집 맞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친하지 않은 친척집에 놀러온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몇 년을 살아왔던 우리 집이라는 느낌은 거의 들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진공 포장된 간고등어 두 마리를 저녁 반찬으로 구워먹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손으로 고등어의 살을 발라주었다. 할머니 손 씻었다? 뼈와 살과 내장이 할머니 손에서 산산이 해체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직접 생선살을 발라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려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버지가 새끼손가락 한마디 보다 갈색의 작은 살 몇 개를 몇 번의 젓가락질로 들어 올려 입 안에 차곡차곡 쌓는 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나도 다시 젓가락을 들고 아버지를 따라 고등어 조각을 입에 넣고 씹었다. 고등어의 흰 뼈와 시멘트 색 내장들은 할머니의 손에 안겨 접시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일은 좀 할만 해?

아버지는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붉은 물이 듬성듬성 번진 배추김치를 반으로 찢으며 무심히 말을 툭 던졌다. , 그럭저럭요. 대답을 하느라 밥을 제대로 씹지 못한 나는 손을 뻗어 물 컵의 몸통을 움켜쥐었다. 살짝 미지근해진 냉수의 온도가 손바닥에서 입술로, 혀로, 목구멍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집 떠나서 혼자 사는 건 힘들지 않어?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래, 알았다.

아버지는 그 말을 끝으로 밥그릇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아버지는 빈 밥그릇에 찬물을 담아서 마셨다. 아직도 저 버릇 가지고 계시는구나. 내가 낯설음을 느끼는 이 세계는 사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젓가락을 식탁위에 내려놓고 밥솥 뚜껑을 열어 몇 숟가락 남지 않은 밥을 그 안에 쏟아 부었다.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해서 내가 불편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지금까지 삼켰던 생선살들이 모두 가시뿐인 생선으로 변해 꿈틀거리는 위장 안에서 이리저리 헤엄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괜히 나서서 저녁 설거지를 했다. 이 정도는 해야 예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딸기 모양의 보라색 수세미에 주방 세제를 두어 번 꾹꾹 눌러 짜냈다. 세제 통에서 요란한 소리가 빠져 나왔다. 설거지를 한답시고 밥그릇을 수세미로 박박 문질렀지만 밥그릇 안쪽에 말라붙어있는 밥풀 하나는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에이 씨. 밥그릇을 쥐고 있던 힘을 풀었다. 밥그릇과 개수대가 부딪히면서 난 요란한 소리가 티비 소리에 잠시 섞였다가 세제 거품과 함께 배수구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아직 풀지 않고 방에 던져두기만 한 가방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당장 무슨 일이 생겼다고 서울로 올라가버릴까. 그러나 그렇게 해도 완전히 마음이 편해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난 무얼 해야 하지? 손에 묻은 물기를 털고 첫째 딸의 결혼 전 임신 소식에 난리가 난 종갓집 가족들의 소란을 들으며 소파에 가 앉았다. 얼씨구. 저 집안도 난리 났네.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던 할머니가 툭 말 한마디를 던졌다. 난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한 시간이라도 더 일찍 서울로 올라갈 구실을 찾았다. 심장에 진흙 몇 덩어리가 달라붙어있는 것만 같았다. 불편해. 폐에서 짜낸 공기가 입가로 흘러나갔다. 맨들맨들한 쿠션을 힘껏 안았다. 어쩌면 할머니 말대로, 정말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진 걸지도 몰랐다. 아직도 혼자 있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거운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쿠션에 머리를 묻었다. 이러고 있는 것이 차라리 더 숨쉬기가 편할 것 같았다. 시원했던 쿠션의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적당량의 호기심을 남기고 끝나버린 드라마의 꼬리에 여성 대출 광고가 대롱대롱 매달려 나왔다. 자세를 한 번 더 바꾼 할머니는 곧바로 리모컨을 들어 다른 채널의 드라마를 틀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저 방에 들어갈게요. 내가 지금까지 껴안고 있던 뜨뜻한 온도의 쿠션에 짧은 인사가 착 달라붙었다. 할머니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번 드라마의 주인공들도 무슨 일이 있는지 한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꽉 닫은 방문 틈 사이로 웅얼대는 티비 소리가 요령 있게 슬슬 기어들어왔다. 휴대폰을 들어 가장 최근에 재생한 노래를 확인해 보았다. 아리아나 그란데가 부른 Problem. 세 시간이나 몸을 구기고 있던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까지 듣고 있던 노래였다. 오 분의 이정도 진행된 노래를 처음으로 되돌렸다. 항상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짤막한 전주가 지나고 아리아나 그란데의 발랄한 목소리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 Hey baby even though I hate ya, I wanna love ya, I want you, you, you. 좁은 방안에 영문의 가사들이 내가 내뱉는 이산화탄소와 함께 둥둥 떠다녔다. 나는 방충망이 있는 창문을 찾아서 창문 두 짝을 두어 번 열었다가 닫았다. 그러고는 매트리스와 코드 뽑힌 전기장판, 겨울용 이불의 지층에 몸을 뉘었다. 분홍색 이불에서는 낯선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아버지의 냄새일지도 몰랐다. 겨울 동안에 거실대신 내 방에서 주무셨다는 우리 아버지의 냄새. 만약 이게 아버지의 냄새라면 나는 아버지의 냄새가 조금, 싫었다.

몇 달마다 한 번씩 집에 올 때마다 내 방에는 내 것이 아닌 물건들이 쌓여갔다. 검은색 통에 담겨 있는 남성용 탈모 샴푸와 트리트먼트가 그러했고 둘둘 말린 채 구석에 기우뚱하게 서 있는 전기장판이 그러했다. 내 방이 아니야 창고야, 창고. 저번에 왔을 때부터 두 개 중 하나가 맛이 가 있는 전등을 보면서 코로 길게 숨을 내뱉었다. I got one less problem without ya…… 아리아나 그란데는 여전히 높은 목소리로 후렴구를 뽑아내고 있었다.

 

고등학교 이 학년인 막내 동생은 야자가 열시 이십오 분에 끝난다고 그랬고 수학 학원을 하시는 어머니는 열한 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오신다고 그랬다. 내일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하는 아버지는 이미 불을 끄고 거실에서 주무시고 있었고 할머니는 감기 기운이 있으시다며 이 더운 여름에도 전기장판을 켜고 일찍 자리에 누우셨다. 하루 종일 그림자도 볼 수 없었던 둘째 동생은 방학을 맞아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고 그랬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나는 혼자 이불 위에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나는 하나 남은 형광등의 희미한 불빛을 맞으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여덟시 이십육 분.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형광등의 불빛이 내뱉은 숨결에 닿아 파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잠겨죽을 것 같은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 농장을 운영하는 휴대폰 게임을 켰다. 나는 밀과 옥수수와 딸기, 그리고 토마토를 수확했고 그 자리에 밀과 옥수수와 딸기, 그리고 토마토를 다시 심었다. 밀을 하나 사용하면 빵을 하나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빵을 세 개 주문했고 빵 세 개를 얻으려면 사십오 분을 기다려야했다. 나는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심어둔 밀과 옥수수와 딸기, 그리고 토마토를 수확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나는 그 하나하나를 클릭해서 확인하였다. 밀은 삼십초 뒤, 옥수수는 일 분 삼십초 뒤, 딸기는 이십구 분 삼십초 뒤, 토마토는 오십구 분 삼십초 뒤에 수확할 수 있었다. 나는 또다시 무언가를 기다려야했다. 게임 화면을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옮기다 휴대폰의 전원을 꾹 눌러서 꺼버렸다. 잠이나 자야겠다. 몸을 일으켜 하나 남은 형광등을 완전히 꺼버리고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았다. 정상적으로 충전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의 진동 소리가 휴대폰에서 새어나왔다. 휴대폰 액정이 켜지기에 문득 확인한 시간은 이제 겨우 여덟시 삼십일 분이 되었을 뿐이었다.

짙은 농도의 어둠이 내 위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어둠에 익기 시작한 눈이 방안의 물건들을 흑백으로 그려내었다. 집에는 사박 오일쯤 있을 생각이었다. 그 중 하루는 고향을 떠나지 않은 친구의 얼굴을 간만에 마주할 생각이었다. 사실 이 약속만 아니었으면 나도 집에 내려올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스무 살에 대학을 핑계로 집을 나오면서부터 나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집에 오는 것을 꺼렸다. 일 년에 서 너 번 정도. 명절에도 버스가 없다는 핑계로 전화로만 인사를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오 년을 살아왔다. 그 오 년 동안 집에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말로, 단 한 번도. 도리어 집을 떠났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홀가분했다.

몸을 뒤척여 가라앉은 공기들을 흐트러트렸다. 나는 다시 긴 숨을 내쉬었다. 사실 내가 집을 피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집은 가정 내 폭력이라고 할 만한 것도체벌은 있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것이 폭력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고 있다,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기억도 없었다.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집이었다. 할머니와 같이 살고 내 아래로 동생이 두 명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조금 특이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잘 보면 이런 집도 적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나는 왜 자꾸 집에 오는 것을 피하게 되는 걸까. 암만 생각해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스무 살에 집을 떠난 그 순간부터 집은 내게 있어 불편한 장소가 되어있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면서 피하고 싶은 공간. 중고등학생 때는 집에 붙어있고 싶어 안달이었던 내가 집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나조차도 깨닫지 못할 만큼 한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집을 떠나기 싫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마 고등학교 삼학년, 수능을 얼마 앞두지 않았던 때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나보다 키가 십 센티미터 쯤 작았다. 내 키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자라지 않았으니 어머니와 내 키의 차이를 나는 적어도 삼 년간은 알고 있을 터였다. 삼 년이면 눈에 닳고 닳아서 더 이상 그것에 아무런 감상도 가지지 않을 시기일 텐데도 그랬다. 어머니의 등이 너무 작다는 생각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했다. 내 기억속의 어머니는 제법 히스테릭한 편이었고, 나는 그런 어머니가 무서웠다. 파리채, 진공청소기의 철로 된 관 부분, 뱀을 연상시키던 초록색 비닐호스. 무언가 잡고 휘두를 수 있는 것들이 어린 나의 종아리에 붉은 흔적들을 남긴 기억이 그 공포에 크게 작용했다. 해리 포터 소설책 두 권과 삼 년 동안 썼던 검은색 노트북 등등이 어머니 손에 잡혀 박살이 나버린 기억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소리를 지르셨다. 나는 입술을 꼭 깨물고 울음을 집어 삼켜야만 했다. 내가 울음을 참는답시고 히끅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조차 어머니는 싫어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도 힘들어하던 나는 문득 나는 열아홉의 끝자락에 갑자기 어머니의 등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께 심하게 혼나던 어릴 적의 그 날처럼 눈물을 꾹꾹 눌러야만 했다. 그 날과 다른 점이라면 나는 더 이상 히끅거리는 소리를 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주무시러 들어가신 어머니 대신 나는 거실의 형광등을 껐고 씻으러 들어간 화장실 세면대의 물을 틀어놓고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다스렸다. 사실은 어머니가 저렇게 작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십구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머니의 키를 따라잡았을 때부터 어머니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엄마는 딸의 친구라고 그랬던가, 그런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어느새 어머니보다 한참이나 커져있었다. 어머니가 작은 것을 깨달은 것보다 내가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아차렸다는 것이 더욱 내 심장과 폐를 꽉꽉 쥐어짰다. 이제야 겨우 어머니를 편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몇 달 후에는 이 집을 떠나게 되겠구나. 그 때까지만 해도 집을 떠나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 주 전쯤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었다. 나는 그 때 노트북으로 다운 받은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 전화를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었다. 나는 스페이스 바를 눌러 영화를 일시 정지 시켰다. 화면에 박힌 안소니 홉킨스의 커다란 동공이 스탈링의 얼굴 대신 내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모는 어머니가 매주 부산의 병원에 다닌다고 그랬다. 어머니의 오른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라고 그랬다. 눈을 쉬게 해줘야 하는데, 선생님이라는 직업 때문에 도무지 그럴 수가 없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너거 엄마한테 신경도 좀 써 줘라. 이모의 그 말에 나는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았다. 그렇구나. 그게 끝이었다. 나는 그 뒤로도 이어지는 이모의 말에 그저 예, , 소리만 했다. 오 분 십육 초 쯤. 어머니의 눈 얘기를 포함한 몇 달만의 통화는 고작 오 분여 만에 막을 내렸다. 나는 다시 스페이스 바를 눌러 영화를 틀었다. You still wake up sometimes, don't you? Wake up in the dark, with the lambs screaming? 한니발 렉터의 목소리가 저물어 가는 노을빛을 흔들었다. Yes……. 몇 번이나 본 스탈링의 표정이 노트북의 모니터에 스쳐지나갔다. 나는 그 날 잠에 들기 직전까지 그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스탈링은 몇 번이나 Yes, 라는 대답을 입에 담아야만했다. 나는 몇 번이나 No, 라는 대답을 혼자 뇌까려야만 했다. 나는 악몽을 꾸는 일도, 양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일도, 어머니의 눈에 대해 신경 쓰는 일도 없었다. 나는 그저 죽어가는 나방의 날갯짓과 비슷한 목소리로 ‘No’를 차곡차곡 쌓아나갈 뿐이었다.

길게 숨을 뱉어내며 과거의 기억들을 공중에 흩뿌렸다. 이런 걸 뭐한다고 생각하고 있담. 마지막으로 시계를 확인하려 휴대폰으로 뻗었던 손을 거두었다. 어차피 늦어봤자 아홉시 십 분이나 십오 분 쯤 되었을 터였다. 대신에 나는 그냥 눈을 감았다. 나는 잠이 온다. 나는 잠이 온다. 나는 잠이 온다. 고속버스를 세 시간이나 탔음에도 눈치 없이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잠을 부르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늦은 오후의 공기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집이 먼 친구는 약속 시간에 조금 늦는다고 그랬다. 나는 줄무늬 티셔츠의 앞섶을 잡아 펄럭거렸다. 며칠 만에 화장한 것 같은데 이러다가 화장 다 번지겠네. 고작 선크림에 비비 크림 하나 바른 피부를 손가락으로 몇 번 툭툭 쳤다. 비비 크림색의 끈적끈적한 땀이 손가락에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따끈따끈하게 데워진 로터리의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도 아니면서 사람들은 이곳을 시내라고 불렀다. 걸어서 이십 분 거리면 둘러볼 수 있는 그 조그마한 거리를 사람들은 시내라고 불렀다. 수시로 간판이 바뀌는 옷가게 몇 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싸구려 화장품 가게 두 개,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는 평가 이상을 받기 힘든 음식점이 몇 개. 이쪽에서 가장 큰 상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곳의 규모는 고작 이 정도였다. 나는 작게 한숨을 흘렸다. 태양열에 녹은 뜨거운 납덩어리가 폐 속으로 쪼르륵쪼르륵 흘러드는 것 같았다. 어제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쌓여가던 납덩어리들. 그것들의 무게를 느끼며, 슬슬 한여름의 뜨거운 공기를 제대로 소화시키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콧방울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닦아내었다.

간만에 만난 친구는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

아침마다 머리 말리는 게 귀찮아서 자기는 절대 머리 못 기르겠다던 친구는 도대체 어딜 갔을까. 못 본 새에 가슴을 완전히 덮을 만큼 머리를 기른 친구는 앞으로 흘러내려 자꾸만 시야를 가리는 머리를 연신 귀 뒤로 넘겼다.

오후 세 시가 가까워진 시간이었다. 우리는 항상 그렇듯이 치킨을 먹었다. 친구는 치킨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면서 나를 만날 때는 꼭 치킨을 먹었다. 순살 양념 치킨을 주문하면서 우리는 입을 모아서 말했다. 맵게 해주세요. 많이, 맵게. 가게 점원이 우리 테이블에서 등을 돌리자 친구는 옆 테이블의 휴지와 우리 테이블의 휴지를 바꿔치기했다.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면 되잖아. 친구는 미간을 찡긋거리며 웃으면서, 그래도, 라고 했다. 나는 두 테이블의 휴지를 잠깐 바라보았다. 사실 그렇게 크게 차이날 것 같지도 않은데. 침과 함께 그 말을 삼키며 휴지에서 눈을 떼어냈다.

머리 기르면 농삿일하기 걸거친다며.

, 근데 남자친구가 머리 긴 게 예쁘다 그래서 그냥 기를라구. 일할 때는 묶으면 되니까.

남자친구 생겼어?

너 이제 알았냐?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답다, 너다워. 친구는 한숨처럼 말을 뱉어내곤 그 자리를 얼음물로 채웠다. 치킨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휴지를 몇 장 뽑아 친구에게 건네고는 다시 휴지를 몇 장 뽑아 내 앞에 두었다. 친구는 포크 두 개가 얹혀있는 노란색 테두리의 하얀 접시를 내게 건넸다. 나는 포크가 떨어지지 않게 양손으로 조심조심 접시를 잡았다. 식기가 부딪혀 달그락대는 소리가 짧게 울렸다. 우리는 커다란 조각을 하나씩 포크로 찔러 입에 밀어 넣었다. 친구나 나나 포크 두 개를 써서 닭고기를 작은 조각으로 찢어서 먹는 타입은 아니었다. , 맵다. 맵다. 친구는 닭고기 한 점마다 맵다는 말을 한 번씩 더했다. 그러면서도 친구는 끈적거리는 양념을 포크로 떠서 고기 위에 올리면서 닭고기를 계속 입으로 집어넣었다. 포크를 들지 않은 손에는 항상 휴지가 대기하고 있었다. 얇은 치킨 집 휴지는 인중과 이마, 관자놀이의 땀을 닦아내며 제 몸을 적셔갔다.

니 얼굴 보기 왜 이리 힘드냐.

친구가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엄지 손톱만한 튀김 부스러기와 작은 고기 조각 몇 개만 남게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 빨간 입가를 바라보다 휴지를 한 번 더 뽑아주기만 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도무지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나도 잘 모르는 일인 걸. 나는 혀로 매운맛이 감도는 입술을 두 번 핥았고 친구는 몇 분 전에 리필 받은 얼음물을 완전히 끝장내고 있었다. 얼음 두어 개가 하얀 치아 뒤로 넘어가는 것이 얼핏 보였다.

일이 바빠서 그래.

너 프리랜서라며. 그럼 집에서도 일 할 수 있잖아. 가끔은 좀 내려오고 그래라, .

집에서 일하면 집중 안 되는 걸.

치아로 요란하게 얼음을 깨는 소리가 치킨 집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름 모를 노래와 섞였다. 친구의 입에서 박살난 얼음 조각이 내 머릿속에 하나 둘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친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음에도 그랬다. 자격지심. 이런 게 아마 자격지심이 아닐까. 나는 지금 크나큰 불효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닌 생각이었다. 너 그러다 할머니나 부모님 돌아가시면 얼마나 후회하려고 그래. 같은 작업실에서 일하는 애는 수시로 이런 잔소리를 해댔다. 그 말에 나도 몇 번이나 집에 전화라도 자주 하려 노력해보았지만, 휴대폰 주소록의 어머니아버지’, 또는 할머니라고 저장된 번호를 누른 후 초록색 통화 버튼을 누르는 것이 내게는 아직도 껄끄러운 일이었다. 부끄러움이나 수줍음 같은 감정은 절대 아니었다. 싫어하는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연락을 취해야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늘 말고 내일, 내일 말고 모레로 미루고 싶은 일. 나는 이제 우리 가족 중 누군가 죽더라도 눈물 몇 방울 흘리고 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너무한 생각인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문득 집요하게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Head in the clouds, got no weight on my shoulders. 생각을 딴 데 둬야 할까 봐, 내 어깨에 있는 짐도 덜고. 어제 방에 혼자 앉아 귀를 틀어막는 용도로 들었던 Problem의 후렴구가 대뇌의 분홍빛 주름을 따라 천천히 감겨들었다. 친구가 포크를 내려놓는 소리가 귓바퀴에 잠시 앉았다가 엄지손톱만한 새가 되어 가게 내부에 깔려있는 노래 소리에 섞여 사라졌다.

 

가방에서 무거운 검은색 노트북과 같은 색의 타블렛을 꺼내 나란히 포개두었다. 책상위에 당당하게 올라가 있던 감색 담요를 바닥으로 끌어내리곤 그 자리에 노트북과 타블렛을 올려두었다. 고향에 내려오면 내 밥을 찾아먹는 것 빼고는 나는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노른자를 터트린 계란 프라이 두 개에 고추장으로 비빈 밥을 쌀알 하나하나를 반 토막 낸다는 느낌으로 꼭꼭 씹어 먹어도 내게는 수많은 시간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들고 온 노트북이었는데, 아무래도 들고 오길 잘 한 것 같네. 파일들이 점점이 박힌 검은색 바탕화면이 켜지는 것을 나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일러스트 프로그램이 켜지기 위해서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내 노트북에는 제목도 가수도 모르는 의문의 노래들이 많았다. 지금 듣고 있는 노래도 그런 노래였다. 어쿠스틱 기타와 하모니카 위에 나른한 남성의 목소리가 가늘게 얹혔다. 저 숲에서 나오니 숲이 보이네, 푸르고 푸르던 숲, 내 어린 날의 눈물 고인……. 이 노래는 어떻게 해서 내 노트북에 들어오게 된 걸까. 제목이 궁금하지도 않은 노래의 출처를 잠시 생각해보았다. 물론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캔버스 불러오기를 눌러 러프만 그려둔 파일을 화면 위에 띄웠다. 보라색 바탕에 파란색 선이 난잡하게 얽혀있었다. 나는 초록색 선으로 배경에 들어갈 키 작은 나무들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동그라미 몇 개에 선 몇 개, 그 아래에 타원형 잎에 숨어있는 꽃 몇 송이. 지인들과 함께 만드는 디자인 노트에 들어갈 그림이었다. 급한 일도 아니었고 수시로 들어오는 외주들만큼 부담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팔레트에서 붉은색과 주홍색 사이의 미묘한 지점을 찾기 위해 잠시 눈을 찌푸렸다.

습관적으로 어금니로 혀를 가볍게 씹었다. 미지근한 통증이 둔탁하게 신경을 울려댔다. 노트북 화면 뒤로 흐리게 보이는, 불투명한 유리 너머의 하늘은 다른 색깔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검정색이었다. 나는 더듬더듬 펜을 움직였다. 나는 주황색과 분홍색, 보라색이 흐릿한 경계의 층을 쌓고 있는 하늘을 그렸고 꽃잎이 얇고 하늘하늘한 꽃을 그렸다. 수십 개의 비슷비슷한 색들을 손바닥보다 작은 꽃들이 끌어안고 있었다. 어느새 노래가 바뀌어 메탈의 요란한 전자기타 소리가 귓구멍을 마구 찔러대고 있었다.

컨트롤, 제트. 나는 평소보다 왼손을 더 바삐 놀렸다. 작업 환경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까부터 손이 둔했다. 우리 집이 익숙하지 않다니, 그것도 참 웃긴 일이야. 이 집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했던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반복했다.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어떻게 여기서 살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때는 이 방 여기저기에 내 체취가 잔뜩 묻어나서 그렇게 오래 붙어있을 수 있던 걸까. 나는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고 낯설은 먼지 조각이 코의 점막에 달라붙어 코를 간질였다. 나는 무심결에 찌푸렸던 미간을 갑자기 열린 문 때문에 다시 쭉 펴야만 했다. 어머니는 항상 노크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왔고 그 때 나는 콧속으로 기어들어온 침입자 때문에 한껏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저녁은 먹었나?

아까 먹었어요.

감기 걸렸나?

아뇨, 재채기가 갑자기 나서.

나는 코를 계속 훌쩍거리면서 대답을 했고 어머니는 그렀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사람 하나 만큼의 무게를 제 위에 올린 의자는 조용히 삐걱거리는 소리를 공중에 흩뿌렸다. 나는 방문의 바닥쪽 모서리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조그마한 갈색 점을 업고 있는 어머니의 하얀 새끼발까락이 살짝 움찔거렸다.

재현이가 통닭 시킨다 카던데 넌 안 먹을 거가?

아까 먹어서 괜찮아요.

그래, 알았다.

어머니 새끼발가락의, 갈색 아이라이너로 콕 찍은 것 같은 점 하나가 서서히 멀어져갔다. 나무 무늬 시트지가 붙여진 문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날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잡화가, 아무도 쓰지 않는 그 물건들이 내 위로 차곡차곡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타블렛 펜을 들었고 붉은 빛깔의 꽃을 하나 더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펜을 쥐고 있는 힘을 살짝 풀어 꽃잎의 끝을 배경이 비칠 정도로 연하게 칠했다. 베이스의 낮은 둥둥거림이 아까 빼어낸 이어폰에서 새어나와 책상 위에 가라앉았다. 나는 펜을 잠시 놓고 이어폰을 다시 귀에 꽂았다. I don't care, go on and tear me apart, I don't care if you do. 'cause in a sky, 'cause in a sky full of stars. 귓속을 채우는 노래 소리에 나는 숨을 길게 쉬었다. 나는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베이스와 함께 쿵쿵 울렸다.

저 급한 일이 생겨서 내일 아침에 가 봐야할 것 같아요.

나는 그 곡 이후로도 노래를 세 곡 더 들었고 치킨 배달이 오기 직전에 거실에 나가 부모님께 하룻밤과 두 번의 낮 동안 계속해서 생각해 왔던 것을 내뱉었다. 아버지의 반응은 덤덤했다. 바둑 프로그램이 틀어져있는 티비에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발소리를 죽이며 느긋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언제 또 올 수 있는데?

, 모르겠어요. 안 바쁘면 또 올게요.

그래, 알았다. 들어가서 쉬어라.

어머니는 화장대 거울로 다시 얼굴을 돌리셨다. 무취의 스킨이 화장 솜을 찬찬히 적셨고 어머니는 그것을 얼굴 위에 얇게 펴 발랐다. 재현이는 무얼 하고 있는지 방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않았다. 내 방과 똑같은 시트지가 발린 문이 눈앞에 있었고 나는 별들이 가득한 우주를 떠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름다우면서도 무언가 심장을 꽉 죄이고 있는, 그런 복잡한 기분이었다. 노란색 장판 위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던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숨을 참았다. 발바닥이 장판에서 쩍,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내 방에 들어가 문을 꽉 닫을 때까지 나는 계속 숨을 참고 있었다.

노트북은 이미 덮개가 덮여있는 상태였다. 나는 타블렛 선을 노트북에서 빼었다. 약간의 저항감 이후에 작은 반동이 손목을 울렸다. 치킨이 도착했는지 초인종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재현이는 그제야 방에서 나왔고 어머니는 재현이에게 돈을 건넸다. 니가 가서 계산해라. 문틈으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새어들었다. 나는 가방에 노트북을 넣었다. 내일 아침에는 안방에 가서 널어놓은 속옷도 챙겨 와야 했다. 나는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휴대폰 바탕 화면의 메모장에 단문의 메모를 남겼다.

누나 치킨 안 먹을 거가?

재현이는 으레 그렇듯이 내 의사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젓고는 타블렛 선을 타블렛 몸체에 빙빙 둘러 감았다. 재현이의 어깨에 올라타 있던 누런 기름 냄새가 바닥으로 폴짝 뛰어내렸다. 재현이는 방문을 닫았고 나는 타블렛을 가방에 밀어 넣었다. 고개를 들었을 때 본 창밖의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전등 스위치를 눌러 불을 껐다.

개운한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컸다. 이건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안까지 나를 뒤따라 올 것이며 작업실에 도착해 오늘 하던 작업을 마저 행하고 있을 때도 내 주위를 얼쩡거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나는 이 공간을 피하고 싶어. 아직도 내 냄새가 배지 않은 이불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빨리 태양이 떠서 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밤을 밀어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끈적끈적한 어둠 같은 불편함도 한낮의 밝은 태양이 하얗게 표백시켜 주었으면. 해가 지고 다시 무거운 심장을 끌어안아야만 한다고 해도 좋으니까 제발 잠시라도 내가 이 공간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나는 한 번 더 길게 숨을 내쉬고는 눈을 감았다. 창밖의 것과 비슷한 농도의 어둠이 눈꺼풀 위를 가만히 덮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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