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이

 

 

Y A G I

 

그 애는 학교 근처의 골목길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가로등도 하나 없는 좁고 더러운 골목은 내가 하교를 할 때마다 종종 이용하는 길이었다. 유난히 찬바람이 불 때면 나는 그 골목으로 갔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다들 잠시간 잊고 있었던 추위를 다시 떠올리며 미간을 좁히곤 하던 그런 날.

그런 날에 그 애는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 존재를 눈치챈 그가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나를 불렀다. 그의 손끝에서 희미한 담배 연기가 밤하늘로 피어올랐다.

은우.”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어?”

유명하잖아, .”

그랬나.”

나는 오른손으로 내 목 뒤를 쓸었다. 수많은 문신과 피어싱의 흔적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긴, 한 번 보고 잊을만한 인상은 아니긴 했다. 그리고 그건 사실 그 애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그 애에게는 그런 게 있었다. 무뚝뚝하고, 조용하지만 사람의 시선을 끄는 그런 것이.

어쩌면 단순히 그가 입학 이후 줄곧 학년 일등을 놓치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명한 걸로는, 너가 더 그렇지 않아?”

그런가.”

그 애는 그렇게 말하며 담뱃재를 툭 털곤 반쯤 피운 담배를 입술로 가져다 대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 애의 치아가 괜히 눈에 보였다.

우등생인 줄 알았는데.”

우등생은 담배 피우면 안 돼?”

그 애의 물음에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우등생이라면 어른들의 말을 꼭꼭 들을 거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 애는 다시 한번 더 내 흥미를 잡아끌었다.

담배는 왜 피우는 거야?”

그냥. 피우고 싶어서.”

그게 돼?”

너는, 흡연은 안 하나?”

그 애의 질문에 나는 입을 꾹 닫았다. 수업에 들어가지 않거나, 가끔 근처 학교의 다른 사람들과 싸우다 경찰서까지 간 적은 있어도 담배를 피워본 적은 없었다.

안 하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그 애의 앞에서 나는 여태껏 담배를 피워본 적은 없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 애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게 담배를 건넸다. 나는 선선히 그것을 받아들이고 필터 부분을 앞니로 깨물었다. 그 애가 손을 뻗어 담뱃불을 붙였다.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라이터의 불꽃이 혼란스럽게 흐트러졌다.

담배는 처음이었다. 나는 긴장으로 가득한 첫 번째 숨을 들이쉬었고, 곧바로 입안을 가득 채우는 연기의 맛에 캑캑거리며 결국 담배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직도 입안이 뻑뻑했지만 나는 그 애를 바라보았다. 그 애의 불꽃은 거의 필터 근처까지 가 있었다. 그 애도 담배를 바닥으로 떨어트리곤 발끝으로 담배를 짓이겨 불을 껐다. 마냥 무뚝뚝하기만 하던 그 애의 표정에 언뜻 미소가 비쳤다. 어쩌면 뿌연 연기에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 애는 처음으로 웃고 있었다.

안 하는 건 아니라며.”

오늘 일은 비밀이야.”

생각해 보고.”

그 애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나는 그 애가 바닥에 두었던 가방을 탈탈 터는 것을 바라보았다. 척 봐도 안에 책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이었다. 가방을 메던 그 애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그 애를 바라보았다.

학교에서는 서로 모른 척하는 걸로 하자.”

그렇지. 서로 귀찮아지니까.”

가끔 담배 피우고 싶으면 이리로 와.”

그 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그 애의 뒤를 바로 따르고 싶지 않아서 그 애가 기대어 서 있던 벽에 내 등을 맞댔다.

 

나는 오늘도 발작적인 기침을 뱉었다. 그 애는 이제 아예 소리를 내서 웃었다. 나는 그것이 나쁘지 않아 굳이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은 날에도 그 골목에서 그 애를 기다렸다. 그 애는 매일 담배를 피우는지, 우리는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며 입김과 비슷한 하얀 연기를 삼키고 뱉었다.

아직도 그래?”

너는 이런 걸 어떻게 피우는 거야?”

알려줄까?”

내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그 애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 애의 감은 눈을 바라보았지만 그 애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우리의 첫 키스는 연기 맛이 났다. 나는 그 애와 입을 맞추며 연기의 맛을 오래오래 느꼈다.

어때, 이제 좀 피울만한 것 같아?”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 애는 나를 바라보며 피우던 담배를 마저 태웠다. 이번에 그 애는 확실히 웃고 있었다.

. 우등생은 키스도 하면 안 돼?”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면?”

이제 담배 피울 수 있을 것 같아.”

내 말에 그 애가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학교에서는 마냥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그가, 지금은 완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것이 퍽 기뻤다.

……나랑 할래?”

어쩌며 나는 조금 과하게 들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 연기를 뱉으며 입을 열었다. 그다지 놀랄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 해본 적 있어?”

아니.”

나도.”

나는 단침을 삼켰다. 그 애가 평소보다 일찍 담배를 비벼 껐다. 좋아. 그 애의 대답이었다.

 

우리가 갈 곳은 둘 중 하나의 집밖에 없었고, 그중 부모가 집을 비운 것은 내 쪽이었다. 그 애는 자연스럽게 내 침대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누군가를 집에 데려온 것이 처음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는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애의 입술은 아직도 연기 맛이 났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본능에 따라 서로를 찾았다. 그 애의 입술이 내 맨살에 닿을 때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느끼기에도 우리의 섹스는 어딘가 미숙했다. 더군다나 그 애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지 않나. 그래도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찾았고, 애써 신음을 억누르며 사랑한다는 말 따위는 없는 섹스를 했다.

, 냄새 되게 좋다.”

나는 모르겠던데.”

원래 자기 냄새는 자기가 모른다잖아.”

그 애는 내 팔을 베고 누워있었다. 그 애가 목을 쭉 빼고 내 목덜미에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나는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 그 애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것은 어딘가 낯설고 민망한 일이었다.

조금만 더.”

그러나 그 애는 내 허리를 잡아 끌어안았다. 우리는 서로의 품에 안겼다. 그 애는 내 쇄골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어린 동물이 어떤 종류의 애정을 갈구하듯이. 나는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기보다 그 애의 머리카락은 부드러웠다.

오늘 너희 부모님 오셔?”

그 애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그만두었다.

아니.”

그럼 한 번 더 할래.”

두 번째 섹스는 처음보다 훨씬 좋아서, 우리는 서로의 몸을 조금 더 꽉 껴안았다.

 

재이야.”

우리 학교는 종종 체육관을 반으로 나눠 쓰곤 했다. 그 애의 반은 뜀틀 수행평가를 했고 우리 반은 배드민턴을 연습했다. 항상 그렇듯이 체육 교사는 오십 분의 수업 중에서 이십 분 정도만 학생의 곁에 있었다. 나머지는 자유 시간이었고, 그때까지도 운동을 계속하는 애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그 애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낡아빠진 배드민턴 채의 줄을 손톱으로 긁다가, 그 애의 옆으로 다가갔다.

옆에 앉아도 돼?”

그 애는 대답을 하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 애의 옆에 앉았다. 그 애는 나를 흘끔 바라보지도 않았다.

뜀틀 넘는 거 봤어. 잘하더라.”

어려운 건 아니잖아.”

그 애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났다. 그 애의 반응에 지난밤의 섹스와 그 좁은 골목에서 담배를 함께 담배를 태웠던 일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섭섭함이었다. 왜 그 애에게 섭섭함을 느끼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 애가 나를 이렇게 대하는 것이 섭섭했다.

여기까지 와서 공부하는 거야?”

그거 말고는 딱히 할 것도 없으니까.”

이해가 안 돼.”

학교에서는 모른 척하기로 했었잖아.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어.”

신경 안 쓰고 싶어.”

그래서, 용건이 뭐야.”

그 애가 드디어 책에서 눈을 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떤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왜 체육관 매트리스에서 하는 그런.”

불결해.”

아무래도그렇지.”

그 애는 다시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더는 할 말이 없어서, 멀뚱히 그런 그 애를 바라보았다. 그 애는 내 시선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이, 체육 시간을 마치는 촌스러운 학교 종이 울릴 때까지 책장만 넘겼다.

 

그러면서도 그 애는 여전히 똑같은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인사도 없이 그 애의 옆에 앉았다. 그 애는 굳이 먼저 인사를 하지 않았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조만간 비라도 올 건지, 어두운 구름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

재이는, 내 세계에서 멀어져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그 애는 흘끔 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면 섹스를 했을 때 그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학교 밖의 그와 학교 안의 그는 너무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 둘을 분리할 수 있을까. 그 둘 중 하나에게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네 세계로 들어갈 수 있어?”

네가 들어오는 거야?”

.”

그 애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애의 손에 들린 담배는 아주 오랫동안 탔다. 그 애는 담배 연기가 그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만 바라보았다. 그 애는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사실 나는 무서워.”

뭐가?”

내가 바뀔까 봐.”

바뀌는 게, 왜 무서운 건데?”

더 이상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것 같아서.”

그 애의 손에서 떨어진 담배가 바닥에서 엷은 연기를 내며 꺼져가고 있었다. 그 애는 평소보다 일찍 가방을 멨다. 나는 말 없이 그 애를 바라보기만 했다.

너랑 있으면 내가 바뀌는 것 같아.”

나는 이제 더 이상 그 애가 나를 보러 오지 않을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애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비는 그날 밤이 늦어서야 쏟아졌다. 나는 그 애와 섹스를 했던 침대에 누워 그 빗소리를 들었다. 그 애도 자신의 침대에서 나와 같은 소리를 듣고 있을까. 그 애라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 애 생각을 했다. 그 애가 내 냄새가 좋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 기억나서,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딱히 어떤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이 조금 슬프기도 했다.

 

그 애는 항상 점심을 늦게 먹으러 갔다. 조금이라도 일찍 급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나는 슬쩍 그 애의 교실을 찾아갔다. 그 애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영어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 애는 내가 온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그 애가 지문 속 어떤 문장 아래에 샤프로 줄을 긋는 것을 바라보았다. 자도 없는데 그 애는 아주 깔끔한 선을 그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애 앞자리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의 자리에 앉아 그 애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애의 손가락이 문제집의 얇은 종이를 넘겼다.

재이야. 우리는 친구지.”

글쎄.”

그 애는 나를 보지도 않고 답했다.

그럼 애인?”

글쎄.”

그러면 그사이의 , 무언가인가?”

…….”

그 애의 샤프가 멈췄다. 그 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애의 어두운 회색빛 눈동자가 눈꺼풀 뒤로 숨었다가 나타나기를 몇 번 반복했다.

잘 모르겠어.”

나도.”

그 뒤로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애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애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줄을 서서 일찍 급식을 먹으러 간 아이들은 언제쯤 교실에 도착할까. 마음이 조금 급해진 나는, 손을 뻗어 그 애의 뺨을 쓰다듬었다.

너는 바뀌고 싶지 않다고 했지.”

.”

하지만 이미 바뀐 것 같은데.”

그 애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 애의 뺨을 쓰다듬던 손을 거두었다. 그 애의 눈동자가 내 손끝에 따라붙었다.

그럼 어쩔 수 없겠지.”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그 애의 몸이 내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그 애의 팔은 그 애의 입술보다 한순간 늦게 찾아와 내 뺨을 쓰다듬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이번 키스는, 연기 맛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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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우타요모를 쓰려다 이건 도저히.. 캐해석이 아니다 싶어서 1차 비엘로 수정하게 된. . . . 그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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