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안했음ㅜㅜ   #언제든 삭제 및 수정되어 다시 업로드 될 수 있는 글   #범죄장면있음(연쇄살인)   #가벼운 유혈묘사 있음

 

 

MYSTERY SECTION

~ 그리고 아무도 없는 화 ~

 

 

지영은 거울을 보며 바싹 올려묶은 자신의 머리를 정돈했다. 조금 있으면 지영이 전담해야 할 신입이 상사의 손에 이끌려 이 방에 들어올 것이다. 지영은 이런 비인기 부서에 배정받은 신입을 안타까워했다. 꼭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이 부서에 배치되었던 날, 지영은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곱씹어 봐야만 했다. 인사 담당자는 지영에게 유감이라는 말 밖에는 하지 않았다. 윗선에서 따로 내려온 지시였고, 그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서 뒤돌아서며 지영은 그가 자신을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바득바득 이를 갈면서도 지영은 새로운 부서에서 꾸준히 실적을 쌓아나갔다.

자신의 아래에 신입이 들어온다는 것은 그런 노력의 결과였다. 지영은 꼭 성공하고 말겠다고 다시 한 번 더 다짐하며 딱딱한 소파에 반듯이 앉았다. 지영이 이번 신입에 대해 아는 것을 별로 없었다. 지영은 어떤 사람이 오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다루기 어려운 신입을 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영은 자신이 그런 것쯤에 굴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미안, 늦었지.”

괜찮습니다. 별로 안 기다렸어요.”

머리를 어깨까지 길러 뒤로 느슨하게 묶은 남자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지영의 상사 되는 사람이었고, 소위 말하는 별종인 사람이었다. 이 부서에 아주 만족하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습관적으로 알이 굵은 안경을 중지로 밀어 올렸다. 지영은 그 뒤의 키가 작은 여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주 짧게 자른 머리와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지영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서로 인사 하고. 난 나간다.”

지영과 그녀는 좁고 낡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지영은 여자의 차림을 살폈다. 빳빳하게 다려진 흰 셔츠와 짙은 회색의 정장 바지였다. 물론 가벼워 보이는 재킷도 잊지 않았다. 신입은 신입이군. 지영은 숨을 내쉬었다. 지영은 세탁할 타이밍을 놓친 자신의 운동화를 잠깐 내려다보았다.

미스테리부의 김지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들어오게 된 하 연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딱딱한 악수를 나누었다. 그러고 곧 이어지는 것은 조용함이었다. 두 사람 다 말주변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영은 선배로서 어떤 말이라도 꺼내보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다. 연은 그저 그런 지영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연은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서 모으고 있었다.

저기, 여기서는 그렇게 정장 같은 거 안 입어도 괜찮아요.”

지영이 입을 열었다. 옷에 관한 얘기는 미리 해두는 것이 좋았다. 미스테리부는 일반 부서와는 성격이 달랐다. 다른 부서처럼 공직이라고는 하지만 그들의 뒤에 숨어 여러 일들을 처리하는 곳이었고, 때문에 책상 업무보다는 직접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일이 더욱 많았다. 미스테리부는 이름을 그대로 미스테리한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사회에 혼란을 일으킬만한 일들을 처리한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비밀리에 활동하는 것은, 국민 정서 때문이라던가. 같은 공무원이라도 미스테리부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지영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언제까지 이 부서가 국민 정서 운운하며 물밑에 잠겨 있을지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숨기니까 미스테리부로 발령받으면 아예 내쳐진 거라는 소문까지 돌지.

미스테리부가 뭐 하는 부서인지는 들었죠?”

, 들었습니다.”

연의 목소리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연은 그 말을 하며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지영은 그것이 실망의 표시일 것으로 생각했다.

   미스테리부에 들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일상을 버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미스테리부는 괴담에서부터 시작해서 오컬트적인 부분까지, 상식에서 벗어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곳이었다. 당연하게도 적응을 제대로 하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곳이었다. 지영 역시 이런 일에 익숙지는 않은 편이었다. 지영은 태어나서 귀신이라는 단어에는 한여름에 잠깐 반짝하고 지나가는 괴담으로밖에 얽히지 않은, 귀신보다는 낯선 사람이 더욱 무서운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저희는 굳이 정장 같은 거 안 입어도 돼요. 제일 편하신 옷 입으시면 됩니다.”

   “이게 제일 편한 옷이라 입고 왔습니다.”

   “정장이요?”

   “. 정장은 입으면 안 됩니까?”

   연이 지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돌한 편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더욱 다루기 까다로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지영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영은 아직 연이 이 부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인간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조금 더 난감해한다면 훨씬 더 다루기 편했을 텐데.

   “남에게 방해는 안 되도록 하겠습니다.”

   연의 눈빛은 지영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도록 했다. 제발. 지영은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미스테리부에서 인원을 뽑는 것은 단 한 가지의 이유였다. 인원이 부족할 때. 물론 대부분의 직장이 그럴 테지만, 미스테리부의 인원 부족은 주로 기존 인원의 이탈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이탈이란 것에 업무로 인한 사고나 부서 변경으로 인한 이탈이 아니라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가장 많은 이유를 차지한다는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이었다.

사실 지영은 신입이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부서 인원을 머릿속으로 세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남아 있는 것은 그래도 이제는 꽤 일에 익숙해진 인원이어서 추가 인원 없이도 웬만한 일은 거뜬히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전국적으로 폐가 탐험이 성행하는 시즌도 지나서 일 년 중 가장 비수기일 터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왜 신입이? 지영은 또 무언가 험한 일 하나를 시키겠구나, 하고 맘을 먹고 있었다. 지영은 그것을 연에게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한 번 고생해봐라는 심정보다는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할지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연은 지영이 지금까지 다루어보지 못했던 유형의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뒤로도 연은 계속 정장을 입고 다녔다. 자연스레 부서 내에서 굉장히 튀는 사람이 되었지만 연은 그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부서 사람들도 저러다 곧 복장을 바꾸겠거니, 하고 말아버리는 눈치였다. 애초에 남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인 집단이었지만.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습니까?”

얼마 안 되는 비수기를 맘껏 누리느라 잔업도 없는 날이었다.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 지영에게 연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때는 마침 지영이 첫인상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우치고 있던 때였다. 지영은 마냥 쌀쌀맞을 줄 알았던 연이 뜻밖에 사람을 잘 대하고 웃음도 많다는 사실을 보고 혼자 감정적 친밀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괜찮으시면술 한 잔 어떠신가 싶어서요.”

그 말을 하며 연은 살짝 시선을 시야 구석으로 돌렸다. 지영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은 술을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었으나 술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친밀감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를 악물면서 술자리에 참여하던 지영도 연의 제안에는 선뜻 응했다.

지영은 자신의 첫 후배가 여자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영에게 있어 남자란 아직까지도 어쩐지 낯설고 불편한 존재였다. 그것이 단순히 지영이 여중 여고에 여초인 학과를 나왔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존재하는지 지영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아마 남자 후배가 퇴근 후 개인적으로 술을 한잔하자는 제의를 했다면 그 술자리 내내 지영은 엷은 불안감을 느끼고 있어야만 했을 것이다.

 

지영과 연의 술자리는 조명이 어둡게 내려앉은 술집 귀퉁이에서 이루어졌다. 지영은 난생처음 맛보는 맥주를 맛보며 연과 함께 웃었다. 누군가와 단둘이 술을 먹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고, 지영은 연에게 말했다. 연은 그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나저나 선배는 일이 힘들진 않으세요?”

연이 선배는, 이라고 말할 때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을 지영은 놓치지 않았다. 평소라면 이것이 어떤 감정의 반응인지 파악하려고 지영은 머리를 굴리고 있었겠지만 이번만큼은 지영도 아직 그 호칭이 낯설겠거니, 하며 편하게 넘어갔다.

안 힘들다고는 못하지하지만 해야지, 어쩌겠어.”

선배 되게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요.”

나는성공하고 싶어. 그냥 공무원 하고 있지만, 그래도 좀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 보고 싶기도 하고. , 내가 명예욕이 좀 있거든. 초등학생 때는 전교 회장 선거에도 출마했는데.”

어떻게 되셨어요?”

떨어졌지. 어쩔 수 없었어. 당시 교장이 여자가 전교 회장 되는 거 상상도 못 하던 사람이라서.”

지영은 쓰게 웃었다. 그 당시 집에 있던 싸구려 복합기에서 인쇄되던 흐린 빨강 파랑의 그림들이. 글씨만은 직접 쓰겠다며 검은색 플러스 펜으로 이름과 공약을 써서 명함을 만들어 학교 여기저기에 뿌리고 다녔던 것이 기억났다. 교장이 그런 사람인 걸 알았으면 좀 누가 말려주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말라고.

저는 선배가 성공하면 좋겠어요.”

잔을 내려놓은 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영은 입에 남은 술의 쓴맛을 꿀꺽 삼켜버리곤 연을 보고 마주 웃었다.

 

연은 행동이 빠른 편이었다. 자신의 판단에 혼자 주저하는 편은 아니었다. ‘될 대로 되라지의 좋은 경우가 아닐까? 지영은 연의 그런 모습이 조금 부럽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영은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지영은 자신은 연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연의 정장이 이제는 미스테리부에서도 더는 튀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굳이 이 시기에 연이 새로 들어오게 된 이유가 밝혀졌다. 지영과 연의 앞에는 각각 책이 한 권씩 놓여 있었다. 책의 표지를 확인하거나 팔랑팔랑 책장을 넘겨보는 연과 달리 지영은 그저 눈짓으로 책의 제목만 확인한 후 자신의 상사를 바라보았다. 상사에 대한 예의 때문은 아니었다. 단지 지영이 이전에 그 책을 읽었고, 얼마 정도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추리소설이네요? 미스테리부라고 이런 책도 읽어야 합니까?”

지금 읽는 건 별 의미 없을 거고, 일 끝나고 한 번 읽어봐. 깜짝 놀랄걸.”

재밌나요?”

나도 안 읽어봐서 몰라.”

목소리를 몇 번 가다듬던 남자가 말을 이어갔다. 남자는 근처에 있는 파일로 손을 뻗어 몇 장의 종이를 꺼냈다. 종이를 찬찬히 읽어가던 지영은 어떤 사실을 깨닫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심지어 범인마저도. 지영이 그 정도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인상에 남지 않은 작품은 아니었다. 제법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지영이라 더욱 고개가 갸웃, 기울어졌다.

두 사람이 종이의 내용을 얼추 다 읽었다고 생각한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책벌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책벌레요?”

책벌레라고, 책등 틈에서 사는 작은 벌레가 있어. 그리고 걔들의 주식은 책의 내용. 책벌레가 책을 먹으면 책의 내용이 좀 희한하게 바뀌어.”

책을 많이 읽는다는 뜻의 책벌레와는 관련이 있습니까?”

책이라면 종류 불문하고 탐한다는 게 관련이 있으려나……. , 그쪽은 이번엔 별로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고. 아무튼, 요새 책벌레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 같더라고. 가을이라 그런가.”

연은 조금 놀란 눈치였다. 연은 책의 중간을 펼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섯 개째의 인디언 인형 머리가 없어졌고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뒤에서 큰 소리를 내며 천둥이 쳤다는 부분이었다. 연은 아랫입술을 살짝 내밀고 빠르게 글자를 훑어나갔다. 아랫입술이 나오는 것은 연이 집중할 때 보이는 버릇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결하면 되나요?”

책 속으로 들어가야지.”

?”

기술적 준비는 내일이면 끝나니까, 내일 바로 작업에 들어가도록 하지. 더 질문 있나?”

책 속엔 어떻게 들어갑니까?”

책에 눈을 박고 있던 연이 고개를 살짝 들고 의문을 표했다. 남자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내일이 돼보면 알겠지.”

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건성으로 책장을 몇 장 넘기더니 책을 덮었다. 지금 당장 그것을 읽어봤자 별 소용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눈치였다. 지영은 남자의 설명에 이해한 것처럼 보이는 연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저 설명을 가지고 이해를 할 수 있지. 지영은 저것도 연의 될 대로 되라지의 속성인지 짧게 고민하고 있었다.

 

* *

 

연의 짧은 머리가 바닷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지영은 괜히 연의 원피스 차림이 낯설었다. 그런데도 지영은 파란색이 연에게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파란 원피스를 입은 연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에게서는 그냥 그런 분위기가 풍겼다. 지금의 연은 정장을 입었을 때보다 더 아담해 보였다. 귀엽다, 는 인상을 주기 좋은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지영이 연의 정장 차림을 싫어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비교하자면, 지영은 원피스보다는 정장 쪽이 훨씬 좋았다. 귀여운 연도 좋지만, ‘각을 잡고 있는연의 분위기가 훨씬 더 좋았던 것이다.

지영과 연은 유람선을 타고 있었다. 이번 소설의 무대는 외딴 섬의 저택이었다. 의문의 저택 주인이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생기는 일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저택 주인의 정체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두 사람의 존재는 책벌레를 통해 미리 조작해 놓은 정보였다. 지영과 연이 해야 할 일은 아직까지도 책 속에 들어있을 책벌레를 찾아 죽이는 것이었다. 책벌레는 책의 어느 장면에 아마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고, 이미 내용의 변형이 꽤 진행된 것으로 보아 벌레의 무리는 꽤 몸을 불리고 있을 것이었다. 유감이라면 무리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개개의 크기가 너무 작아 그 무리를 발견하는데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다수의 무리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말을 떠올린 지영이 사방으로 눈을 돌렸다.

바닷바람이 찬데, 얇게 입으시고 춥지는 않으십니까?”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지영과 연은 몸을 돌려 목소리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키가 큰 남자였다. 짙은 남색 정장에 자주색 넥타이를 입은 사내였다. 지영의 머릿속에 번뜩하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책벌레가 내용을 바꾸어놓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사람은 곧 이 배에 탄 모든 사람을 죽여버렸을 것이다. 지영은 몸을 살짝 떨었다. 지영은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떨림을 단순히 추위로만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메리고, 이쪽은 크리스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필립입니다.”

지영과 연은 가명을 쓰고 있었다. 크리스틴 쪽이 지영이었다. 연은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고 남자도 능숙하게 악수를 받아냈다. 지영은 연에게 그 남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별로라고 말해줘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다른 사람들하곤 인사해 보셨습니까?”

아뇨. 처음 만난 사람이 필립 씨에요.”

이 기회에 만나보시겠습니까? 23일간은 같이 지낼 사람들이니까요.”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남자의 뒤를 따랐다.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갑판 아래의 방에 모여있었다. 단출한 인원이었다. 안락해 보이는 조명이 방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필립은 지영과 연에게 방 안의 사람들을 소개했다. 긴 흑발을 느슨하게 묶고 붉은 리본으로 포인트를 준 짙은 녹색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쪽이 데이지였다. 밝은 금발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무릎 위로 올라오는 원피스를 입은 쪽은 안나였다. 필립이 안나를 소개할 때 안나는 지영과 연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붙임성이 썩 좋은 모양이었다.

구석 쪽 의자에 파묻히듯 앉아있는 여자는 에밀리라고 했다. 아무래도 그녀는 배멀미를 하는지 컨디션이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 땋아 내린 머리카락에서 비죽 튀어나온 잔머리가 식은땀이 붙어있는 그녀의 뺨에 몇 가닥 달라붙어 있었다. 지영은 모든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매칭시키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연은 소설 속 인물을 직접 만난다는 부분 때문에 조금 들떠있는 상태였다. 이런 소설이 아니라 조금 더 유쾌한 소설이었다면 어땠을까. 연은 예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책들을 되짚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만나고 싶은 인물은 없다는 생각이 든 순간 연의 흥미는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혼자 들떠올랐다 식어버린 것이 민망한 듯 연은 배 이리저리를 둘러보았다. 책벌레 무리를 찾기 위한 행동이었다.

저 섬인가 봐요.”

창가에 앉아있었던 데이지가 가장 먼저 섬을 발견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말에 컨디션이 좋지 않던 에밀리마저 몸을 쭉 빼어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자그마한 섬이었다. 저택보다 더 눈에 쉽게 띄는 것은 저택 주변의 울창한 숲이었다. 낙엽이 지기 직전의 계절이었지만 나무들을 푸름을 기운차게 내뿜고 있었다. 그런 숲에 안겨있는 모양새로 고풍스러운 저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택에서 보는 광경이 멋있겠는데요.”

, 두근거려요. 저택 내부도 멋있겠죠.”

지영과 연 역시 두근거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이런 문화를 이렇게 생생하게 접할 기회는 딱히 없었다. 어렸을 때는 저택이란 게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이제야 어린 지영의 의문이 풀리고 있었다. 아마 저택 내부는 근사할 것이다. 샹들리에 같은 것도 있을 테고, 고급스러운 천으로 덮인 소파 같은 것들도 있을 것이다. 발소리를 완벽하게 죽여주는 붉은 카펫도 있을까? 지영은 어쩐지 여행을 온 기분이 되었다.

 

건물 내부는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넓었다. 복층 구조 덕분에 천장이 굉장히 높아 보였고, 그 정점에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쏟아지기 직전의 별들을 그대로 붙여둔 것만 같았다. 복도를 장식하는 조각상이나 그림들은 없었지만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키 큰 관상용 꽃들이 복도의 좌우를 장식하고 있었다.

지영이 놀란 것 중 하나는 벽난로에서 정말로 타닥거리는 소리가 난다는 점이었다. 이 소리가 과장이 아니었다니! 괜히 들뜬 지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낮은 채도의 가구들 덕분에 중후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 홀이었다. 하지만 가구들을 자세히 보면 복잡한 무늬가 금색 실로 놓여있었다.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실들이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벽난로의 양옆에는 지영의 키보다 큰 흰 대리석 조각이 놓여있었다.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있는 조각상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조각상의 손에 아름다운 얼굴과는 이질적인 긴 칼을 들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주인님은 조금 있다가 오신다고 합니다.”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메이드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녀의 손에는 열쇠가 걸려있는 상자가 들려있었다. 메이드는 상자의 걸쇠를 열어 투과율이 좋은 유리로 되어있는 뚜껑을 열었다. 열쇠 위에는 자그마한 태그가 달려 있었다. 방 열쇠인 듯했다.

저녁 식사가 준비될 때까지 방에서 편히 쉬고 계시면 됩니다.”

지영과 연은 2층의 각각 끝 방을 배정받게 되었다. 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런 경우 보통 방이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을 텐데. 지영은 문고리에 열쇠를 돌려 끼우려다 말고 멀리 연의 방이 있을 곳을 바라보았다. 연은 이미 방에 들어간 이후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단지 지영의 시선을 눈치챈 안나가 고개를 까딱 움직여 보였을 뿐이었다. 지영은 그녀의 묵례에 답하곤 방으로 들어섰다. 자신의 상사가 그렇게 간단한 처치를 빼먹을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방은 생각보다 소소했다. 지금까지 봐왔던 저택의 분위기가 너무 화려했기 때문에 침실마저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장식적이고 화려한 홀에 비해 침실은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었다. 채도가 낮은 카펫엔 자수 하나 없었다. 침대도, 침구도, 나무로 된 탁자도 장식이라곤 그다지 붙어있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짐을 대충 구석에 밀어 넣고 침대에 걸터앉은 지영은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돈이란 건 정말 얕볼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지영은 그대로 뒤로 드러누워 침대의 느낌을 맘껏 느꼈다.

좀 쉬었어?”

지영이 연을 찾아간 것은 저녁 식사가 시작되기 삼십 분 전이었다. 지영은 조금 뻗친 연의 머리를 보고 속으로 웃었다. 연도 생전 저런 느낌의 침대에선 자 본 적이 없는 거겠지. 연의 방은 지영의 방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가구의 위치 정도였다. 연의 방의 지영의 방과 좌우대칭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지영은 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은 연의 방처럼, 오른쪽은 자신의 방처럼 설계되었으리라 생각했다.

어쩐 일이십니까?”

아까 배에서 너랑 얘기했던 남자 말이야.”

, 선배는 소설 읽어봤다고 하셨죠. 어떤 역할입니까?”

별건 아니고. 그땐 그 사람이 범인이었는데그래도 책의 내용이 바뀌었으니까 또 모르지 뭐.”

눈을 동그랗게 뜬 연을 보며 지영은 서둘러 뒤의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연은 한숨을 살짝 쉬었다. 아무래도 조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였는데……. 세상에 믿을 남자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제 식사하러 갈 때 되지 않았습니까?”

연은 곧 씩 웃어 보였다. 연은 사실 어렸을 때 이렇게 커다란 저택에서 먹는 음식이란 어떤 음식일지 궁금했었다고 말했다. 연은 간단하게 달린 주석들을 봐도 이해하기 힘든 음식이 있다는 사실이 당시 연에게는 아주 새로운 느낌을 주었었다고 했다. 하지만 상상하지도 못할 것들이라 연의 관심에 그렇게까지 오래 남아있었던 것들은 또 아니라고도 했다.

그래서 이런 생각 하면 저는 항상 카레가 먹고 싶더라구요.”

카레?”

카레는 만들어 놓고 한참 먹을 수 있으니까요. 어렸을 땐 맨날 카레만 먹어서 카레를 싫어했는데, 이렇게 되니 또 당기네요. 여기서 카레를 먹을 수는 없겠죠?”

일 끝나면 같이 먹자.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지영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말했다. 곧 그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방을 나서며 연이 셔츠 소매의 단추를 매만지는 것을 알아챘다. 긴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에 집중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이제부터 그들의 일은 시작이었고,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란 것을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곳의 추리 소설의 안이다. 그것도 대량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소설의 안이었다. 이제는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만든 채 주위를 둘러보아야 할 때였다.

 

연은 성애화 되지 않은 메이드라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본다고, 지영에게 속삭였다. 지영 역시 연의 말에 동감했다. 이 저택의 메이드들은 흔히 메이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보다 더욱 전문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이 사람들도 일종의 서비스직 직원이구나. 지영은 속으로 이들을 조금 동정했다. 이런 저택의 메이드로 일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어느 정도로 비슷할지는 모르지만.

지영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자리가 이렇게 정해지다니. 지영의 옆에는 예의 살인범, 필립이 앉아있었다. 지영은 소설에서 읽었던 시체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영은 그런 장면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도리어 영화 같은 것을 보다가도 그런 장면들이 나오면 눈살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돌려버리는 타입에 더욱 가까웠다. 때문에 그 소설을 읽었을 때도 시체의 모습은 일부러 떠올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일의 원인이 되는 남자가 바로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지영의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억지로 나이프로 썰고 있는 고기에 시선을 두었지만 식욕은 오히려 더 떨어졌을 뿐이었다.

식욕이 없으십니까?”

사실 배멀미를 좀 해서요. 아직도 몸이 안 좋나 봐요.”

지영은 거짓말을 하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 정도로 필립이 자신의 거짓말을 눈치챌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지영은 필립에게서 벌써부터 피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 밤에 파티가 있다던데요.”

아무래도 몸이 안 좋아서 저는 앉아만 있어야겠어요.”

아쉬운 일입니다.”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지영은 가장 먼저 살해를 당했던 것이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지영은 도무지 필립을 따라 웃을 수도, 그와 대화를 나눌 수도 없었다. 필립도 그런 그녀의 심정을 눈치챘는지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영은 그가 제발, 뱃멀미 때문에 그러는 것으로 생각해주었으면 했다. 지영은 식후 문을 잘 잠그고 자라고 연에게 충고를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옆자리에 앉은 연을 넘겨보았다.

연의 왼쪽엔 안나가 앉아 있었다. 배에선 양 갈래로 묶어 산뜻한 느낌을 주었던 머리를 지금은 솜씨 좋게 틀어 올려 그때와는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지영은 그녀가 수완이 좋은 아가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영과 눈이 마주친 안나가 살짝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책벌레라는 건 좋은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해도, 이런 옷은 언제 입어보겠어요.”

지영의 허리끈을 조이며 연이 말했다. , 장난스레 지영이 낸 소리에 두 사람은 짧게 웃었다. 여기까지는 지영이 기억하는 것과 비슷한 궤도로 내용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곧 살인 사건이 시작된다는 말과 같았다.

어라?”

아래층으로 내려간 지영은 가장 먼저 벽난로 위부터 확인했다. 벽난로 위에는 여섯 개의 도자기 인형이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는 지영을 보며 연은 슬쩍 이유를 물었다. 지영이 그렇게 당황해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도자기 인형이라니? 책벌레라는 것이 벌써 이 소설의 근간이 되는 부분까지 침식했다는 말인가? 지영은 혹시 벌레의 무리가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저 인형의 수만큼 사람이 죽을 거야.”

그럼 저희도 포함인 거네요? 책 속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글쎄…….”

지영과 연은 벽난로에 가까이 다가가 인형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파란 드레스를 입은 여자 인형이 다섯, 검은 턱시도를 입은 남자 인형이 하나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얼굴이 지워진 상태였다. 하지만 어떤 인형이 누구를 대표하는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인형엔 어떠한 처리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솔직히 말해 연은 기분이 조금 찝찝했다. 이 사람들이 아무리 소설 속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이렇게 자신 앞에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의 죽음을 알면서도 그것을 방관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 연의 입맛을 나쁘게 했다. 연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자신들을 제외하곤 이 인형에 시선을 두는 이는 딱히 없어 보였다.

준비가 좀 늦네. 그쵸?”

투덜거리듯 말하며 에밀리는 바로 근처에 있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 말은 딱히 누군가를 특정하고 향한 말은 아니어서, 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게요. 뭔가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 기다리긴 지치는데. 갑자기 손님 접대가 엉망이네요. 집주인이 누군진 몰라도 이렇게 되면 민망하겠어요.”

에밀리는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꼬며 말했다. 그 모습도 교양이 있는 모습이라고는 말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연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연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예정된 시간보다 이십 분 정도 일정이 늦어지고 있었다. 행여 음식 같은 것이 늦어지더라도 메이드 중 누군가는 양해를 구하러 와야 할 시간이었다. 연은 저녁 식사 때 보았던 메이드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이 이 정도로 손님을 내버려 둘 것 같지는 않았다.

첫 번째 사건은 필립에 의해 밝혀졌다.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대표로 물어보고 오겠다던 필립이 사색이 되어 뛰쳐 들어왔을 때, 지영과 연은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필립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메이드들이. 지영은 눈을 꼭 감았다. 그 뒤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영은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영의 기억이 확실하다면, 메이드들은 적어도 다음 날 아침까지는 살아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첫 번째 피해자를 발견하는 것이 그들이니까.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사건이었다.

가보죠.”

먼저 앞선 것은 연이었다. 연은 지영의 손을 잡았다. 지영은 연의 손 역시 차갑고 축축하다고 생각했다. 지영은 이 일이 연이 미스테리부에 들어온 후 첫 번째로 맡은 일이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지영은 연의 손을 한 번 꽉 맞잡았다. 자신은 연의 선배였고, 때문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이 맞았다. 지영은 연보다 한 발 더 먼저 발을 내딛었다.

주방의 모습은 끔찍했다. 지영은 도무지 그 광경까지는 볼 수 없어 연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연의 말에 따르면 주방은 거의 피바다였다고 했다. 뭔지 모를 국물들이 냄비에서 끓어 넘치고 있었다. 홀로 나갈 준비가 끝난 음식들이 접시 위에서 장식된 채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연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있었다.

선배가 읽었던 소설도, 이랬나요?”

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지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찌 되었든 이제부터 이런 광경을 몇 번은 더 봐야 할 것이라고, 지영은 말했다. 이 일이 끝나고 나서도, 연은 계속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나름대로 미스테리부의 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지영이었지만 시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시체라는 것은 너무 얄팍한 것들이라고 지영은 생각했다.

사람들은 모두 홀에 모여 있었다. 안나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훌쩍이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일까? 데이지는 그런 안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 역시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에밀리와 필립은 지영과 연의 근처에서 집주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필립의 입에서 집주인을 향한 욕이 튀어나왔다.

나는 내일 당장 이 집을 떠야겠어.”

배가 없을 텐데요.”

연의 말을 듣고 에밀리는 몸을 가볍게 떨었다. 이 섬 밖으로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다. 삼 일 뒤에 배가 온다는 사실을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믿을 수 있는가? 집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에밀리 역시 그것을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아무튼!”

그녀는 몸을 휙 돌려 계단을 올랐다. 그것을 시작으로 홀에 있던 사람들도 한둘 이 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홀에 지영과 연 두 사람밖에 남지 않게 되자 두 사람은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책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필립을 조사해보는 건 의미 없겠죠?”

그 사람도 정말 당황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럼 역시, 다른 범인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겠지.”

짙은 붉은색 쿠션을 소파 위로 던지며 지영이 말했다. 지영은 추리를 하는 것엔 별로 자신이 없었다. 이 사건이 해결되기 전에 책벌레 무리를 찾을 수 있을까? 앞이 깜깜했다. 괜히 저택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느라 다른 사람의 의심을 사는 일만 없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영과 연은 함께 밤을 보냈다. 그들이라고 편히 잠을 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 다 밤새 잠을 뒤척이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날 것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머릿속으로 알고 있는 것과 그 사건의 당사자가 되는 것은 분명히 달랐다. 멀리서 동이 트기 시작한 시간이 돼서야 지영은 짧은 잠에 들었다. 옅은 잠에 들었다가 깨어났을 때 눈에 보이는 것은 연이었다.

   “푹 주무셨습니까?”

   “연이는안 잤어?”

   “잠이 안 와요. 그리고 원래 밤은 잘 샙니다.”

   두 사람은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근육이 딱딱하게 굳어있는 것 같다고 지영은 생각했다. 연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꺼려 뭉친 어깨를 풀어보려 하고 있었지만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지영은 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볍게 안마라도 해줄 목적이었다.

   “간지러워요!”

   연은 몸을 꿈틀, 움직이면서도 킥킥대며 웃었다. 그들은 잠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지영과 연은 동시에 긴 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제 일 해야지요.”

   “별로 안 하고 싶은데.”

   “어쩌겠어요. 월급 받으려면 해야죠. 선배 저 방 가서 준비하고 올게요. 좀 있다 계단 앞에서 만나요.”

지영은 문을 나서는 연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문이 닫힌 후 지영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다는 잔잔했다. 바닷바람에 간간이 파도가 쳤지만 배가 뜨지 못할 정도의 날씨는 분명 아니었다. 하늘도 맑았다. 외부로 연락만 할 수 있다면 탈출하는 것은 무리도 아닐 것 같았다.

외부로 연락만 할 수 있다면.

지영은 생각을 접고 몸을 씻기 시작했다. 연의 말대로 이젠 정말 일을 해야 할 때였다. 빨리 책벌레 무리를 발견해서 이 일을 끝내고 싶었다. 그러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서 좀 쉬고 싶었다. 아무리 좋은 침대라도 이런 상황에 그 감촉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자신의 방에 있는 싸구려 침대에 눕는 것이 피로 회복에 훨씬 더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영과 연은 계단 아래가 소란스럽다고 생각했다. 불길한 감각이었다. 연이 홀로 뛰어 내려갔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필립의 얼굴이었다.

두 분은 괜찮으십니까.”

그렇다는 건.”

에밀리가.”

필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지영은 벽난로 위로 시선을 옮겼다. 당연하게도 여자 인형 하나가 손상되어 있었다. 도자기 인형의 머리는 분리되어 인형의 앞에 놓여 있었다. 절단면은 깔끔했다. 필립이 곧 지영의 시선에 따라붙었다. 그는 그 도자기 인형을 이번에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우연은 아니겠지요?”

아마도.”

지영의 대답에 필립은 남자 인형을 손에 들었다. 마치 그 인형이 없으면 자신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필립은 그녀가 방에서 목이 졸린 채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첫 발견자는 이번에도 그였다. 지영은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진 것을 알아챘다. 그도 심정적으로 괴롭긴 할 것이었다.

연은 시체를 확인하고 오겠다고 이 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지영은 혹시 누군가 더 빠진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포함해서 세 명밖에 없었다. 한 명이 더 있어야 할 텐데?

안나가 없었다.

안나는요?”

아침 내내 못 봤습니다. 방엔 없었어요.”

두 사람은 저택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지영은 그렇게 경계하던 필립에게 감정적으로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조금 낯설었다. 지금 자신에게 있어 필립은 살아나가고자 하는 인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책벌레로 바뀐 책 속의 세상에서, 이 사람이 단순히 살인을 위해 살인을 했던 사람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캐릭터는 바뀌어 있었다.

가을 햇살이 쨍했다. 아침보다는 바람이 조금 더 강하게 불고 있었다. 그들은 저택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그다지 수확은 없었다. 저택 바깥에서 더 찾아볼 수 있는 곳이라고는 숲 정도밖에 없었다. 앞으로 이틀만 더 버티면 배가 온다고 했다. 버티려면 방에서 문을 잠그고 틀어박히는 것이 숲으로 가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녀가 그 정도 판단을 못 할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안나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저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죽을 때 저항은 없어 보였습니다. 아마 약 같은 걸로 푹 재우지 않았을까요.”

지영과 연은 홀에서 에밀리의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영은 벽난로를 바라보았다. 아직 파손된 인형은 에밀리의 것 하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기에 홀에는 두 사람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 모두 오늘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으나 아무도 식사를 찾지는 않았다. 입맛이 떨어진 것도 이유였지만, 음식을 찾으려면 메이드들의 시체 사이에서 음식물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끈은?”

드레스의 끈을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생했어. 너도 이런 일에 낯설 텐데.”

선배보다는 괜찮으니까요. 그나저나 안나는, 결국 못 찾았습니까?”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녀는 살아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과연 어디에서 뭘하고 있는걸까? 그녀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불안감을 불러오고 있었다. 그녀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불안이었다. 지영은 안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소공녀의 이미지에 아주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녀는 아마 여자치고는 키가 큰 편에 속했다. 잘 모르긴 모르지만, 이 정도 시대에서는 그녀의 키가 흠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때가 아무리 여자에게 가혹한 기준이 가해지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그녀는 그녀의 아주 작은 단점 정도는 쉽게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지영은 그녀의 가는 손목과 목을 떠올렸다. 그런 그녀가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범죄자라는 것이 외형으로 판단할 순 없다고 하지만……. 지영은 안나가 그 가는 손목으로 사람의 목을 조르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소름이 안 돋지는 않지만. 지영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별로 자신은 없었다.

안나 씨요? 선배, 처음 여기 왔을 때 항구 모습 기억나십니까?”

아니, ? 배라도 있었어?”

연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언가를 확신하고 있었다. 지영은 연의 눈빛을 읽고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지영의 마음속에서는 그녀과 과연 배를 운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었다.

연의 예상대로 항구는 텅 비어있었다. 배를 묶고 있던 밧줄이 잘린 흔적도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배를 타고 떠난 것이었다. 지영은 그것이 자의이기만을 바랐다.

안나 아버지가 해상과 관련된 일을 하신대요.”

그렇다고 안나가 배를 운전할 수 있는진 모르잖아. 이 시대에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일단은 믿어봐요, 우리.”

연이 지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정말로 안나가 떠난 것이라면, 그들은 예정된 일정보다 더 빨리 이 섬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 사실로 기운을 차린 후 책벌레를 찾기 위해 섬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웬만큼 큰 무리가 있지 않은 이상 이 정도로 이야기가 바뀌진 않을 텐데. 지영은 그 사실이 자꾸만 걸렸다. 결국 그날도 그들은 책벌레를 찾는 것에 실패했다.

 

배가 와야 할 날짜가 되었는데도 배는 도착하지 않았다. 범인도 그동안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도리어 그것이 생존자들의 피를 더욱 말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데이지가 연을 범인으로 의심하는 바람에 그 두 사람의 사이는 거의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거기다 배까지 제때 도착하지 않으니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날 저녁은 홀에 모인 사람 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의외로 신경과민 증세를 보이고 있던 데이지였다.

여자 인형 하나의 목이 없어져있었다. 데이지의 짧은 비명을 뒤로하고 지영과 연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빛에서 서로의 생각이 똑같음을 그들은 읽어낼 수 있었다. 그들은 급히 발을 옮겼다. 어디로 가느냐고 소리 높여 그들을 부르던 필립도 곧 그들의 뒤를 따랐다. 항구에는 배 한 척이 돌아와 있었다. 표면에 자잘한 상처가 많은 작은 보트였다. 지영은 무심코 보트의 안을 보았다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목이 없는 시체는 이미 부패가 제법 진행된 이후였다. 이것이 안나라는 것은 옷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마지막까지 입고 있었던 옷은 엉망이 된 상태였다. 그녀의 소매 끝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손톱도 몇 개인가 빠진 것처럼 보였다. 머리의 행방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지영은 이 시체가 바다를 헤매다 우연히 다시 이 항구로 돌아왔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 의도된 것이었다. 엄청난 악취미였다. 이제 와서야 인형을 부순 것도 그랬다. 배는 돌아왔지만 셋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을 타고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이것은 경고처럼 느껴졌다. 책의 안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나? 그 생각만이 지영의 머릿속을 채웠다. 만약 현실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지영은 곁눈 길로 연을 바라보았다. 연은 입을 앙다문 채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때, 길고 날카로운 비명이 무거운 공기를 발기발기 찢었다. 데이지! 세 사람은 몸을 돌려 저택을 향해 달렸다. 흙투성이 발이 홀에 도착했을 때 데이지는 자신의 배를 끌어안고 있었다. 안 돼. 가느다란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비록 뒷모습이었지만 지영은 그녀가 무엇을 주워 담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지영은 결국 몸을 돌리고 바닥에 위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지영은 데이지가 쓰러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순간 지영의 눈앞이 어두워졌다. 사람이 너무 충격을 받으면 잠깐 앞도 안 보이게 되나? 입안에 고여있는 신 침의 맛을 느끼면서도 지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영이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곧게 편 순간 지영의 시야가 크게 흔들렸다. 아직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임에도 그것은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뒤통수가 얼얼하다고 생각한 그 순간 누군가 지영의 뒤통수를 다시 가격했다. 지영은 연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영은 자신의 입술이 바짝 말라있는 것을 느꼈다. 아직은 눈이 좀 흐렸다. 눈이 좀 따끔거리는 것도 같았다. 연은 지영이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손을 잡아주며 기다렸다. 연은 지영에게 말해야만 하는 것이 있었다.

사건은 끝났습니다.”

지영이 목을 축이고 난 이후에 연이 입을 열었다. 연의 말을 듣는 순간 지영은 다시 목이 타는 것 같았다. 물은 한 모금 더 마시면서 살핀 연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아무래도 원하던대로 사건이 끝난 것 같지는 않았다. 지영은 마음의 준비를 했다.

선배가 일어나면당장 데리고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배를 준비해두었다고. 그리고 현실로 돌아가서…….”

뭐라고?”

지영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연은 지영의 시선을 피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얼굴은?”

못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냐. 네 잘못은 아니니까.”

잘못은 온전히 범인의 것이었다. 일단은 돌아가자. 지영은 연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그들은 가지고 온 짐을 그대로 두고 방을 나섰다. 지영은 층계참에서 남자 인형 하나가 박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필립의 시체는 계단 바로 아래에 있었다. 수많은 상처보다도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한 얼굴이 지영의 눈에 먼저 들어왔다. 지영은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섬에 들어올 때 타고 왔던 것과 같은 여객선이 항구에 있었다. 이 섬에 들어올 때 두 사람이 서 있었던 갑판에는 두 개의 도자기 인형이 나란히 누워있었다. 연은 인형을 바다로 던져버렸다.

 

* *

 

괜찮아.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잘못인걸.”

남자의 눈썹은 아래로 축 쳐져 있었다 책은 리콜 처리가 되었다. 지영과 연이 현실로 돌아온 이후 책의 모든 내용이 소멸되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영과 연은 사건 이후 일주일 동안의 휴가 동안 서로에게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연이 지영에게 전화를 건 것은 두 사람의 휴가 마지막 날 새벽이었다. 그들은 전화를 하면서도 사건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안부 인사를 나누고 전화를 끊었을 뿐이었다.

아마 연쇄성이 있는 사건이겠지.”

남자는 특별반이 편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별반의 구성원은 거의 정해졌으며, 남은 것은 지영과 연의 선택뿐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원한다면 다른 부서로 보내줄 수 있는 것으로 결정되었어. 전적으로 우리 책임이니 그에 따른 불이익은 없을 거다.”

저는 계속할 겁니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이 대답했다. 남자는 의외라는 듯 눈을 뜨고 그 이유를 물었다.

사실안 무서운 건 아닙니다. 근데, 이렇게 끝내는 건 뒷맛이 너무 나빠서요. 저희가 속수무책을 당했던 것은 아무 정보도 없이 부딪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반까지 편성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봐요.”

지영이는?”

저는.”

지영은 말끝을 흐리며 연을 바라보았다. 사실 지영은 휴가 기간 동안 위쪽에서 이 사건에 대한 대책을 세우리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것이 특별반 정도의 규모일줄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거기다 이 지긋지긋한 미스테리부를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라니. 지영에게 있어서 지금 이 기회는 미스테리부를 빠져나갈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임은 확실했다.

저도 할게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지영은 연을 바라보았다. 지영과 눈이 마주치자 연은 살짝 웃어 보였다.

이번 건만 해결하고 빠지겠습니다. 제 커리어에 오점 하나 남기고 싶지 않아서 하는 거니까요. 판은 벌인 사람이 치워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말을 끝내고 지영이 긴 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렇게 되면 되는 것이다. 커리어 문제는 사실 핑계에 불과했다. 여기에 있는 모두 다 그것을 눈치 채고 있을 것이었다. 일주일 동안 지영은 사건에서 멀어지고 싶은 욕구와 조금 더 파헤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지영은 범인이 지영과 연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그것에 보답을 해줘야 하는 것이 지영의 성격이었다.

그럴 것 같아서 위에는 이미 한다고 말해뒀어.”

남자는 무심하게 말을 뱉곤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특별반에 관련된 서류였다. 한동안 고생 좀 하겠네. 지영은 그것이 비꼼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지영이 씩 웃어 보였다.

이번 일 해결하고 다른 부서로 옮겨서 성공할 겁니다.”

네네, 그건 그때 가서 알아서 하시구요.”

   지영은 이 선택의 결과가 어떻든 후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지영과 연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사실 지영은 아직 모든 것이 막막했다. 특별반이 있다 해도 아무 소용없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건은 이미 벌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지영과 연 두 사람을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선배, 이따 술 마시러 갈래요? 그때 그 술집요.”

   “좋지. 이번엔 네가 사라.”

   “저는 선배가 다른 부서로 갈 줄 알았습니다.”

   “나도 그랬어.”

   “그래도 선배가 같이 있어서 든든해요.”

   지영은 연의 머리를 장난스럽게 쓰다듬었다. 연이 이 정도 접촉을 허용할까 조금 긴장하기도 했지만, 사람 좋게 웃어 보이는 연의 표정을 보고 지영 역시 마음이 좀 풀렸다. 지영은 여유가 좀 있을 때 연과 좋은 추억을 쌓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퇴근 이후에 함께 갈 술집은 그것의 시작이 될 것이었다.

 

*

 

   너무 좋은 말을 많이 들었지만 아직 퇴고 손대지 못한 글......ㅜㅜㅜㅜㅜㅜ

'ORIGIN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리  (0) 2018.01.30
재이  (0) 2018.01.18
이상기후  (0) 2017.10.24
COSMO少年  (0) 2017.05.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