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O少年

 

  Y A G I

 

 

   안은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고 있었다. 그것은 안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었다. 안에게 있어서 그것은 일종의 보험 같은 것이었다. 살기 싫어지면 여기로 와서 죽어버리면 되니까. 그런 생각이었다. 안은 담배의 필터 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짓이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은 붙이지 않은 채였다. 아무렇게나 발라 표면이 울퉁불퉁해진 시멘트벽이 그늘 아래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안은 이 골목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것은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없다는 것이었다. 쓰레기봉투에서 터져 나와 보도블록의 틈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그 냄새를 안은 견디지 못했다. 그 냄새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광경을 자꾸 떠올리며 안은 얼굴을 찡그렸다.

   안은 자신이 죽을 자리는 골목일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죽고 싶은 자리, 가 더욱 정확한 말일까. 안은 이리저리 얽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자신을 이끌어 주는 골목이 자신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골목은 막다른 골목으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지금 안이 걷고 있는 골목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골목의 끝에는 누군가의 집이 있었다. 안은 벌겋게 녹이 묻어있는 대문과 각종 광고 용지를 한껏 삼킨 허연 우편함을 멀리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거기서 안은 발을 돌리지 않았다. 대문 앞에 아무렇게나 놓인 검은색 초밥 가게 광고지가 가을 햇볕에 노랗게 색이 바래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안은 방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 다시 이 근처 골목을 돌아보아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여기서는 괜찮은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안은 문득 옅은 꽃향기를 느꼈다. 안은 붉은 벽돌담을 손으로 짚었다. 안의 손에서 담배가 떨어졌다. 벽돌담은 끝으로 갈수록 제대로 된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담은 위태롭게 흔들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담 위에 누군가의 옆얼굴이 있었다. 그의 발아래에 펼쳐진 연분홍빛 꽃들의 무리가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흔들거렸다.

   햇볕이 소년의 머리 위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소년은 무릎을 접어 담에서 튀어나온 벽돌에 스니커즈를 신은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그의 하얀 무릎이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도 같았다. 안은 자신의 시선을 서둘러 거두었다. 안은 자신의 시선이 무례하다는 생각을 했다. 안은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 했다. 소년이 무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안은 소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저쪽으로 가도 길이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까. 자기합리화 비슷한 것을 하며 안은 고개를 돌렸다.

   “나는, 코스모야.”

   소년은 무얼 하고 있던 걸까. 안은 반사적으로 소년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년의 뒤에서 햇빛이 내려오고 있어 안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안은 소년과 눈을 마주쳤다고 생각했다. 소년의 발에 꽃 몇 송이가 짓눌려 있었다. 짧은 반바지 아래로 내려온 소년의 하얀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안은 바로 그곳에서 몸을 돌렸다. 그곳의 공기는 어쩐지 무거워 안은 견딜 수가 없었다. 소년이 입을 연 순간부터 수만 송이의 꽃이 한꺼번에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농도를 버틸 수가 없어서 안은, 그것이 실례임을 알면서도 그곳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안이 빠져나온 골목의 입구에는 누군가 반쯤 먹다 버린 스타벅스 커피가 놓여있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안의 앞을 지나갔다. 안은 셔츠의 가장 위쪽 단추를 풀었다. 가슴 아래서 훅 끼치는 열기를 느끼며 안은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도, 소년을 따라다니는 것만 같았던 햇빛도 안을 따라오지 않았다. 차가운 골목길의 입구에서 안은 여긴 절대로 죽기 좋은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사실 죽을 생각도 딱히 없었지만. 안은 담뱃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들곤 다시 손끝으로 짓이기기 시작했다.

 

   안은 오늘도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이제는 창가 자리도 못 앉겠군. 곁눈질로 소년이 카페에서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에야 안은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왜 자꾸 그 소년이 눈에 밟히는지 안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소년은 이전부터 이 거리를 계속 돌아다니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안은 그걸 자신이 이제야 인식했고, 그래서 더 자주 소년이 보이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안은 소년을 보기가 껄끄러웠다. 그의 인사에 자신이 등을 돌렸던 일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말을 꾹꾹 삼키며 빨대에 입을 대었다. 원래대로라면 소년에게 사과하는 것이 옳을 테지만 안에게는 그럴 용기조차도 없었다.

   안은 다시 창밖을 보았다. 그 아이는 무얼 하러 가고 있었을까. 괜한 호기심이었다. 안은 소년이 조금 부러워졌다. 무엇인가 할 것이 있는 것 같아서. 안은 담배를 꺼내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금연 구역인 것을 깨달았다. 담배도 피우지 못하는 주제에. 안은 흡연실까지 들어가 담배를 만지작거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렇다고 불을 빌려 담배를 피우는 것 역시 싫었다. 안은 담배 대신 유리잔을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커피의 냉기가 손끝을 적셨다.

   습한 날이었다. 일기 예보에서는 오후 일곱 시부터 비가 온다고 했다. 안은 아직 바짝 말라 있는 우산을 챙겨 몸을 일으켰다. 우산은 챙겼지만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면서. 해가 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늘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카페 문에 달린 종이 안의 뒤에서 몇 번 울렸다가 멎었다.

   안은 자신도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 작은 애도 자기 할 일을 찾아가는데. 소년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밟으며 안은 길게 숨을 뱉었다. 하늘이 흐려 노을빛이 땅을 훑어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안은 차라리 이런 하늘이 좋았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지나가 버리는 것이 좋았다.

   기어코 굵은 빗방울들이 떨어져 내렸다. 안은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안은 죽을 일이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죽을 일이 없었다. 어쩌면 죽는 일도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일 일지도 모른다고, 안은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우산을 펴는 소리가 들렸다. 안도 자신의 우산을 폈다. 안은 십삼 점 이이 제곱미터인 자신의 방으로 발을 옮겼다. 아무 의미가 없어도 안은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안이 소년을 다시 만난 것은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안이 바로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더라면, 설사 돌아가고 싶지 않더라도 근처 아파트 단지를 경유하지만 않았더라면, 안이 소년을 마주하는 일은 아마 끝까지 없었을 것이다. 안의 기억 속에서 코스모라는 이름은 아마 떨어지는 빗물처럼 순식간에 사라졌을 게 분명했다.

   소년을 마주했을 때 안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안과 소년은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눈동자가 보라색이네. 안의 머릿속에는 그런 실없는 생각만 떠오르고 있었다. 안은 소년에게 우산을 씌워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소년 역시 안에게 우산을 씌워 달라, 말할 수 없었다. 소년은 그저 기다렸다. 안이 자신에게 어떻게든 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야아옹. 재촉하는 것은 소년의 발치에서 맴돌고 있던 노란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다.

   “괜찮니?”

   안은 자신의 질문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소년에게 몇 발짝 다가가 우산을 기울여주며 한 말이었다. 비에 푹 젖은 모습이 괜찮을 리가 없었다. 고양이가 안과 소년 사이로 들어와 비를 피했다. 안의 등이 조금씩 젖어갔다. . 소년이 몸을 숙여 고양이를 안았다. 회색 맨투맨의 둥근 넥 라인 조금 아래에 자수 놓여 있던 흰 새 한 마리가 고양이의 몸통 아래에 숨어버렸다.

   “고양이가 자꾸 따라와.”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목소리였다. 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가 자꾸 따라온다니. 소년에게 곤란한 문제일 것 같긴 했다. 안에게는 소년의 맨다리가 차게 젖어있을 것이 더 곤란한 문제였지만. 소년은 물에 젖어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왼손으로 넘겼다. 네 집에 가도, 괜찮을까. 소년의 말이었다.

   안은 자신의 방을 떠올렸다.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방이라 아마 좀 습할 것이었다. 최악의 상황으로는 냄새가 날 수도 있었다. 그래도 더럽지는 않겠지. 안은 소유한 물건이 적은 편이었다. 그것들은 항상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있어야 할 곳에 들어가면 나올 일이 없었다. 바싹 말려놓은 수건들도 화장실 서랍 안에 잘 있을 것이었다. 안은 자신의 겉옷을 소년의 어깨 위에 걸쳐주었다. 고양이는 벌써 눈을 감고 소년에게 온몸을 다 맡기고 있었다.

 

   “나는, 코스모야.”

   소년은 옷을 갈아입으려 하지 않았다. 차게 젖은 흰 양말만을 벗었을 뿐이었다. 마른 수건 한 장을 더 부탁해 바닥에 깔고 앉아있는 소년을 위해 안은 보일러의 전원을 켰다. 자신의 머리를 닦던 수건으로 고양이의 털을 닦아주고 있던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에, 안은 아직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안녕, 이라고 말해야 하는 거야?”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눈동자를, 안은 피했다. 바닥에 앉아있는 소년의 몸이 너무 작아 보인다고, 안은 생각했다. 책상에 기대어 서 있던 안은 소년을 따라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보일러의 열기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이 안이야.”

   “.”

   “.”

   안은 코스모, 하고 소년의 이름을 불러주려다 말을 삼켰다. 얼마 전 소년의 발에 밟혔던 꽃들의 향기가 아직도 소년에게서 묻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빗소리가 계속 창문을 때렸다. 안은 소년에게 배가 고프지 않으냐고 물었고 소년은 딱히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안도 마찬가지였다. 안은 고양이를 위해 참치 통조림을 따주었다. 안이 고양이에게 줄 만한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소년은 앞으로 이 고양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 고양이치곤 너무 붙임성이 좋은 녀석이었다. 그새 참치 통조림을 싹 비운 고양이는 소년의 곁에 다시 몸을 뉘었다. 하얗게 뻗은 손가락으로 소년은 고양이의 털을 만졌다. 안은 고양이가 가르릉대는 소리를 내는 걸 난생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소년은 자주 듣는다고 했다. 소년은 새를 손바닥 위에 얹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안은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얘를 기를 형편은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비가 그치면 내보내야겠지.”

안은 자신이 한 말이 소년에게 상처가 될까 걱정하며 소년의 표정을 읽었다. 노란색과 하얀색, 그리고 그 두 가지 색의 경계에 있는 수많은 색이 소년의 손가락에 의해 섞였다. 소년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가끔 놀러 오는 건 어때? 소년의 말에 고양이가 야옹, 대답했다. 안은 그것이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자신의 집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소년의 손길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가 놀러 온다는 것이 무엇인지, 놀러 와도 자신이 방에 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산, 빌려 가도 될까?”

안이 보일러를 끄려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소년은 안에게 젖은 수건 두 장을 내밀었다. 안은 아까 자신이 쓰고 왔던 우산을 가지고 가라고 말했다. 창을 통해 들리는 빗소리가 줄어든 것 같기는 했으나 우산을 들고 가서 나쁠 것은 없어 보였다. 안은 소년을 이대로 보내도 좋을지 몰랐다. 몸을 말고 누워있던 고양이도 소년의 발을 따라 움직였다. 안은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것은 안도이기도 했고 아쉬움이기도 했다. 소년은 안의 싸구려 우산을 집어 들었다. 소년은 안이 쓰기에 우산이 너무 작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동시에 안녕, 하고 인사했다.

고양이는 그들 사이에서 크게 하품을 하다 소년을 따라나섰다. 고양이가 잠깐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안이 마주쳤던 눈동자의 색은 파랑이었다.

 

안은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의 집 앞에 고양이를 안고 있는 코스모가 서 있는 것을 봐야만 했다. 처음에는 우산을 돌려주러 왔겠거늘 했던 안도 후엔 놀러 온다는 게 고양이가 아니라 코스모 본인이었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코스모가 놀러 올 때마다 안은 코스모를 방안으로 들였다. 안의 죽을 자리를 찾는 계획은 자꾸만 미뤄졌다. 그들은 항상 많은 이야기를 했다. 저번 주에는 길거리의 수많은 동물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 이전에는 안의 생활 방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안이 라면을 끓이는 법, 설거지하는 순서, 잠을 잘 때 어떻게 눕는지에 대해 코스모는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코스모 본인에 대해 말했다. 코스모는 아직 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을 모르며, 설거지는 수저를 꼭 마지막에 헹구며, 베개를 껴안고 자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안은 코스모의 말하는 방식을 좋아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코스모가 보랏빛 눈동자를 맞춰오는 것을 좋아했다. 오늘 이야기는, 두 사람의 곁을 맴도는 고양이에 관한 것이었다.

얘 이름은, 미미야.”

얘 암컷이야?”

으으응, 몰라.”

코스모가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미미는 오늘도 참치 통조림을 먹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와 차이가 있다면 뜨거운 물로 기름을 빼서 주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넙데데한 얼굴로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참치 통조림을 먹었다. 안의 한 끼 반찬으로 이용될 통조림이었지만 안은 그것이 별로 아깝지 않았다. 명절 선물로 받은 통조림이었고, 어차피 안은 통조림을 크게 좋아하지 않았다. 잘 먹지도 않는 통조림을 주고 고양이를 잔뜩 만질 기회를 얻는 건 나름 합당하다고, 안은 생각했다. 안은 습관적으로 미미의 발을 잡았다. 담배를 짓이길 때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손짓이었다. 안은 그제야 왜 사람들이 고양이 발바닥을 보고 젤리라고 말하는지 이해했다.

오늘, 밖에 나갈래?”

안은 줄곧 만지작거리고 있던 미미의 발을 놓았다. 밖에 나가면 할 게 있나? 안은 코스모를 빤히 쳐다보았다. 안이 코스모와 비슷한 나이였을 때, 밖에서 무얼 하며 놀았는지 안은 떠올리지 못했다. 아니, 떠올리더라도 세대 차이가 나겠구나. 안의 시선에 코스모는 입을 열었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생각보다 세대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 말은 아니었다, 고 안이 생각했다.

코스모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맛이 서른한 가지나 있다는 가게에 왔는데도 굳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안은 제 몫의 슈팅 스타 콘 하나와 바닐라 콘 하나를 결제했다.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코스모는 곧장 야외 테이블로 향했다. 아직은 야외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괜찮은 날씨였다. 여전히 하늘은 높았고 미미는 또 낙엽을 입에 물었다. 코스모는 안에게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잠시 맡겼다. 코스모는 회색 맨투맨의 소매를 살짝 걷어 올렸다. 하얗게 도드라진 그의 손목뼈에 가을 햇살이 오랫동안 머물러있었다.

안은 코스모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미미가 물을 마시는 모습과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주인을 닮는다더니. 주인이 고양이를 닮아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안의 입안에서 알갱이 하나가 톡, 소리를 내며 터졌다.

안은 코스모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님에도 너무 옛날의 일처럼 느껴져서 낯설었다. 안은 코스모에게서 나던 냄새를 떠올렸다. 그날 두 사람의 머리카락에 묻어있던 햇볕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정도로 밝은 햇볕이었다. 반짝거리는 빛의 알갱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때 그곳은 은하수였다. 그곳을 다시 찾으면 그런 광경을 만날 수 있을까. 안은 코스모와 함께 다시 그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코스모는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안은 이제 자신이 죽을 장소를 찾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안은 자신의 변화가 좋았다. 그는 자신을 떠나간 수많은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안에게 더는 큰 의미를 지니는 것들이 아니었다. 안은 단지 그들을 추억할 뿐이었다. 모든 감정이 희석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그거, 맛있어?”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얼룩덜룩해진 콘을 들고 있던 코스모가 말했다. 안은 바닐라보다는 맛있을 것이라 했다.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안에게, 코스모는 새로운 맛은 무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코스모는 안의 아이스크림을 작게 베어 물었다. 코스모의 입에서 슈팅 스타가 제대로 터졌을지 안은 알 수 없었지만 안은 콘을 거두어 들었다. 코스모는 조용히 웃었다.

난 그래도 바닐라가, 좋아.”

그래. 그럼 많이 먹어.”

안은 바닐라가 코스모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안의 입안에서 알갱이 하나가 더 터졌다. 코 바로 아래에서 달콤한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왜 예전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러 나올 생각을 못 했을까. 안은 코스모에게 자신이 죽을 자리를 찾다 그가 있던 골목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와플 콘이 부서지는 소리가 안의 귀에 울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미미가 뛰어오르며 낙엽을 밟아 부수던 소리였을까. 안은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보며 생각했다. 미미는 안의 무릎 위에서 천연덕스럽게 야옹, 하며 울었다.

옷에 안 묻은 게 다행이지. 안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코스모는 한숨을 쉬며 미미의 목덜미를 만지는 안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 몫의 아이스크림을 서둘러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거칠한 와플 콘의 가루가 코스모의 목 안에 달라붙어 코스모는 몇 번이나 침을 삼키곤 말을 꺼내야만 했다.

아이스크림 사줬으니까, 좋은 거 보여줄까?”

뭔데?”

안은 코스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안은 주머니로 향하던 손을 생각을 바꿔 미미의 등 위에 손을 두었다. 주머니에 담배가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코스모에게 담배를 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설사 자신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하더라도. 너무 어린 코스모에게 자신의 그런 모습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안은 짐작할 수 없었다.

오늘 안 집에서 자도 돼?”

너가 자고 가는 게 좋은 거야?”

안은 크게 웃었다. 엉뚱하다 싶었다. 어린아이니까 할 수 있는 발상일까. 코스모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안은 코스모의 눈을 보고 그 손을 거두었다. 안은 코스모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코스모는 자신의 입술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혀로 핥았다.

그거 말고, 따로 있어.”

코스모의 목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그의 목소리에 공명하는 것만 같았다. 안은 짙은 꽃향기를 맡았지만 애써 자신의 착각이라고 여겼다. 그래, 그럼 집에 가자. 안은 입을 열기를 조금 주저했다. 세계의 균형이 자신 때문에 깨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코스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안은 조금 어지럼증을 느껴 테이블을 짚었다. 소음기를 뗀 오토바이가 빠르게 지나갔다. 안은 너무 많은 소리가 갑자기 머릿속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안과 코스모는 나란히 누워있었다. 일인용 침대에서 두 사람은 서로 팔꿈치를 맞대고 있었다. 창밖에서 넘어온 가로등 불빛이 천장의 무늬를 따라 번져가고 있었다. 이 시간이면 가끔 들리던 술 취한 사람들의 노랫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밤이었다.

코스모는 잠을 자고 있을까. 안은 코스모가 준다던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은 그대로 안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들의 곁에 미미는 없었다. 그래서 방이 더 조용했다. 미미의 울음소리라도 있었다면 이 밤이 조금 더 가벼웠을까. 안은 어제가 된 낮을 떠올렸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기억이었다. 안은 그때의 감각을 아직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안에게 그것은 낯선 감각이었다. 누군가의 시선이 그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안은 처음으로 알았다.

안의 옆에서 코스모가 뒤척였다. 안은 코스모가 자신 쪽으로 돌아눕는 것을 보고 있었다. 고개만 돌리고 있던 안의 눈과 몸을 완전히 돌려 누운 코스모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잠이 안 와? 코스모의 말이었다. 안은 대답을 않았다. 안의 상태는 잠이 오지 않는다기보다는 당장 자고 싶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렇게 잠이 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니, 안은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가로등 빛에 물든 코스모가 살짝 웃었다.

좋은 거, 보여줘?”

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은 코스모가 무엇을 할지 전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코스모는 안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안은 코스모의 손이 차다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손이 찼던가, 아니면 지금만 이런 건가. 그래도 안은 그 냉기가 싫지만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머리에 몰려있던 열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 감을래? 안은 코스모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나는 안이, 좋은 꿈을 꾸면 좋겠어. 안의 귓가에서 코스모의 말이 울렸다.

안의 옆에는 코스모가 앉아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이었다. 두 사람이 앉아있는 벤치 아래에 익숙한 꽃들이 피어있었다. 안은 공중으로 차분히 번지는 그 향이 좋았다. 코스모는 안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고 안은 괜찮다고 말했다. 하늘은 깜깜했고 땅은 두 사람이 앉은 벤치와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꽃들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서로의 얼굴도 뚜렷하게 보기 힘들 정도였다. 안은 꼭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슷해, 하고 코스모가 말했다. 안은 코스모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코스모를 한 번 바라보았다가, 다시 먼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 때문에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려져 있었다. 안의 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수많은 꽃잎이 날렸고. 코스모는 안의 손을 잡았다.

코스모?”

이제부터, 안이 보고 싶은 걸 보는 거야.”

안은 문득 코스모의 얼굴이 너무 잘 보인다고 생각했다. 안은 무심결에 시선을 하늘로 두었다. 은하수가 있었다. 하늘을 거대한 무대로 삼아 별들이 춤을 추듯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별들의 운행이었다. 가끔 바람이 불어왔고, 그럴 때면 별들은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바람에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작게 섞여 들어왔다.

나는 안의 우주야.”

코스모의 목소리가 안의 귀에 또렷하게 닿았다. 나는 안을 위해 태어난 존재야.

안은 눈을 떴다. 여전히 어두운 천장이었다. 안은 자신의 이마에서 코스모의 손바닥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안의 이마에 엷은 땀이 배어 나와 있었다. 천장이 어두워? 안은 문득 든 의문에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밖의 가로등이 그새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코스모?”

내가 꿈을 꾼 건가? 안은 자신의 시간 감각이 흐려지는 것을 느끼며 코스모를 불렀다.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눈이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안은 코스모 쪽으로 돌아누웠다. 방을 비추는 빛이 없을 게 분명했음에도 안은 코스모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였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눈동자가 우주 같다고, 안은 생각했다.

어떻게 된 거야?”

안의 물음에 코스모는 소리 없이 웃기만 할 따름이었다. 코스모는 안에게 조금 더 가까이 붙어 숨이 많이 들어간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코스모야, 하고.

 

안은 더는 담배를 사지 않게 되었다. 죽을 자리를 찾지 않게 되기도 했다. 그는 죽을 자리 대신 일자리를 찾았고, 그 일은 꽤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은 그런 자신의 변화가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신이 좋았다. 하지만 코스모가 나오는 꿈을 다시 꾸는 일은 없었다. 코스모와 안이 그날 이후 함께 잠을 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안은 그 꿈을 좋아했다. 그래서 안은 그 날의 환상을 자주 되새겼다. 코스모가 했던 모든 말들이 또렷하게 안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코스모는 그 이후로도 꼭 일주일에 한 번씩 안을 찾았다. 미미가 안을 찾는 빈도는 약간 늘었다. 코스모와 함께 오지 않을 때 미미는 항상 그 작은 발로 창문을 열고 안의 방에 무단침입을 했다. 안은 기꺼이 창문을 잠그지 않고 다니게 되었다. 안은 외출 후 방문을 열었을 때 미미가 방 안에 있는 것이 좋았다. 안은 왜 사람들이 동물을 키우는지 조금 이해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코스모는 그 이후로도 여전했다. 여전히 안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으며 여전히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 하루는 안이 코스모에게 짧은 바지를 입으면 춥지 않으냐고 묻기도 했다. 코스모는 자신은 괜찮다고 말했다. 왜냐면, 자신은 코스모니까. 그것은 안이 코스모의 자기 인식에 관한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고, 안은 넘겼지만.

안은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코스모가 없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안이 초겨울이 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았을 즈음이었다.

미미야.”

안은 미미의 등을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는 허리를 쓱 빼는 것으로 안의 손길을 피했다. 안은 야속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코스모에게도 그랬다. 그리움의 반작용이었다. 안은 코스모가 없어지고서야 코스모가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은 코스모와 처음 만났던 그 골목을 찾아보았지만 그곳엔 시든 꽃들만이 가득했다. 안은 겨울의 시작이 자신이 일자리를 구했을 때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코스모는 그래서 나를 떠났나. 안이 생각했다. 코스모가 더는 자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닐까. 안은 자신의 구직활동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안의 꿈에는 이제 코스모가 나오지 않았다. 별들이 회전하지도 않았다. 안의 꿈에서는 매일 별들이 쏟아졌다. 안은 자꾸 이렇게 별들이 떨어지면 언젠가 하늘에 별이 하나도 남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별이 남지 않을 때면 이 꿈이 완전히 깨져버릴까 봐 두려웠다. 안은 자신이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세상에 내팽겨진 느낌과 비슷했다. 그 꿈을 꾸다 눈을 뜨면 안은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관자놀이를 타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예정되어 있었던 이별일지도 몰랐다. 안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게 일상을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안은 코스모를 잊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래 자신에게 속해있던 사람은 아니었지 않으냐며 자신을 위로하면서. 안은 자신이 잊는 것만은 잘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 그 믿음은 깨져가고 있었다.

 

야옹. 미미의 울음소리에 안은 눈을 떴다. 어쩐지 가슴이 묵직하더라니. 너 때문에 어제 가위눌릴 뻔 했어. 안은 괜히 미미에게 말을 걸며 자신의 가슴 위에 있는 그를 팔로 밀어내었다. 안은 간밤에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유성우가 끝났다. 대신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안은 벤치에 앉아 파랗게 떠오르는 새벽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은 그것이 자신과 코스모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욕실 문이 열리기 전까지 유효했지만.

미안. 욕실 좀, 썼어.”

코스모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나오고 있었다. 안은 그런 코스모를 바라보기만 했다. 안에게 그 재회는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코스모는 안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안은 생각보다 별 느낌이 들지 않는 자신에 놀랐다. 좀 더 반갑거나, 화가 나거나 할 줄 알았는데. 그런 그들 사이에 미미가 끼어들었다. 자꾸 팔에 머리를 비비는 미미 때문에 코스모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어야 했다.

어딜 갔다 왔어.”

안은 괜히 말이 퉁명스럽게 나왔다. 코스모는 멋쩍게 웃었다. 코스모들이 원래 좀 바빠. 안은 몸을 일으켰다. 안은 코스모가 그새 좀 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목소리도 좀 바뀐 것 같고. 슬슬 변성기가 오는 걸까. 코스모는 안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집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으응, 글쎄.”

코스모가 능청스레 시선을 돌렸다. 저것도 나는, 코스모야로 해설될 수 있는 것일까. 안은 코스모에게 들을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다. 코스모는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을 잘 개어 무릎 위에 두었다. 코스모는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찾고 있었다.

일단, 미안해.”

나는 너가 영영 떠나간 줄 알았어.”

안은 아직 코스모의 바뀐 목소리가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사람을 맞이하고 있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상황이 사실 꿈인 것은 아닐까? 안은 코스모 몰래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다행히도, 허벅지가 얼얼했다.

안을 떠날 리가 없잖아. 나는 안을 위해 태어났는걸.”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코스모라는 거야.”

코스모가 웃었다. 익숙한 꽃향기가 코스모에게서 났다. 코스모의 머리카락이 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였다. 안은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그리웠다. 안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 나는 저 말이 듣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코스모가 안의 어깨를 안았다. 코스모의 무릎 위에 있던 수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은 코스모가 자란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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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5월에 썼던 글.

코스모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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