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다루고 있음
이상기후
Y A G I
주위에 자살을 한 사람이 있니?
나는 그 질문에 순순히 예, 하고 대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학교 상담실을 향해 내가 아는 모든 종류의 욕을 쏟아붓고 있었다. 나이가 제법 든 상담 교사는 상담지의 한 항목에 또 동그라미를 그렸다. 저 부분에 동그라미가 그어지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나는 기도를 하듯 손을 모은 손을 유리 커버가 씌워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유리의 차가운 온도가 진득하게 손에 옮겨붙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 종교가 있니?
내 손짓을 보고 상담 교사가 질문을 했다. 아뇨. 내 대답은 단호했고 상담 교사는 아까보다 훨씬 아래에 있는 항목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러면… 하고 교사가 말을 이었다. 믿지도 않고, 때문에 존재하지도 않을 신에게 지금의 내가 빌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끔찍한 상담 시간이 얼른 끝나기만을 비는 것뿐이었다.
죽지 않거나 죽거나 하는 일은 의례적인 상담이 끝나고 받는 과자를 초코파이로 고를 것이나 오예스로 고를 것이냐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냥 그 정도로 별 차이도 없었다. 어쨌든 그 둘 중에서 항상 내가 고르는 것은 초코파이였다. 물론 내가 먹을 것은 아니었고, 그냥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애가 있었다. 내가 초코파이를 고르는 것도, 죽지 않는 것을 고르는 것도 그저 그런 별 것 아닌 이유 때문이었다.
누군가는 우리 세대가 태어나서 별을 가장 많이 볼 세대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아마도 어쩌라고,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별이 아니라 다른 것, 예를 들면 우리 세대가 태어나서 물고기를 가장 많이 볼 세대라는 얘기를 들었으면 나는 그래도 그렇구만, 하고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별과 물고기는 달랐다. 살아서 바다를 헤엄치는 물고기와 죽으면서 지구로 떨어져 내리는 별은 달랐다.
우리 세대는 태어나서 유성을 가장 많이 보는 세대였다. 어둠이 우리의 어깨 위에 내려앉기 시작하면 그와 동시에 몇천 개나 되는 별들의 죽음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 광경은 퍽 아름다웠고, 그래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사라졌다. 사인은 모두 자살이었다.
“매점 갈래?”
“아, 귀찮은데.”
“나 자살 안 하려면 초코파이 전자레인지에 꼭 돌려먹어야 하는데.”
“자살, 그게 뭔 대수라고.”
“같이 가줄 거면서 너는 꼭 말을 그렇게 하더라.”
나와 유성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유성은 내가 건넨 초코파이 포장지를 바스락거리며 예의 가느다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아도 시선이 느껴지는 건 제법 신기한 일이라고, 나는 항상 그 애의 실눈을 봐왔으면서도 또 그런 생각을 했다.
나와 유성의 인연은 묘하게도 한여름, 시간당 최대 일만 개의 유성이 쏟아질 거라던 예보가 있던 날 밤에 시작되었다. 그때는 아직 별이 단체로 죽어가기 이전의 일이었고, 태어나서 한 번도 유성을 본 적 없던 나는 학교 운동장의 인조잔디 속 고무 입자의 따가움을 느끼며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많다던 유성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떨어지는 별은커녕 하늘에 붙어있는 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날이었다. 나는 말라가는 눈을 껌뻑이며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언제쯤 집에 돌아갈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유성은 여름 바람의 짭잘한 열기와 함께 그런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애는 내 근처에 서서 나와 마찬가지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끝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애매한 길이의 단발이 그의 귀밑을 스쳤다. 목 아프겠다. 나의 첫 감상은 그것이었고 내가 그에게 했던 첫 번째 말은 별 떨어지는 거 못 볼 걸, 하는 그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거의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런가.
그는 뒤로 꺾었던 고개를 땅으로 숙여 나를 바라보았다. 그 하얀 얼굴이 그 밤중에도 유난히 또렷하게 보였다. 그 애는 나를 보고 얇은 입술을 움직여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래서 그의 오른쪽 볼에만 희미한 보조개가 패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들어찬 고무 조각들을 털어냈다. 그 애는 어째선지 내 옆에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그러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데?
이제… 들어가려고.
날씨 덥다. 땀나는 것 같아.
미묘하게 합이 맞지 않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톤이 높아서 인상적인 편이었고 때문에 나는 그와의 이상한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새에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 작은 별이라도 하나 떨어지긴 했을까. 나는 가끔씩 그것이 궁금해지곤 했다.
나는 유성이야.
잘 부탁해, 하고 그가 내게 악수를 청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유성. 나는 그의 유성이라는 이름이 그날 그와 함께했던 대화 중에서 가장 이상한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꿈을 아주 많이 꾸었고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더 죽음에 가까워졌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 세상에서 누군가가 또 사라져 있었다. 사실 그것은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기 이전에도 그래왔던 것일 테지만, 우리는 이제 와서야 그 미묘한 사실을 체감하곤 했다. 나 역시 이름도 지어줄 수 없는 아주 수많은 꿈을 꾸었고 종종 꿈을 꾼다는 사실이 두려워지면 잠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곤 했다. 그냥 우리 모두의 삶이 그랬다.
유성은 웬일로 점심 식사도 않고 교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는 중이었다.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구분이 안 된다니까. 나는 그의 옆자리에서 마찬가지로 서늘한 책상에 뺨을 대고 그를 바라보았다. 냉방기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가 마치 그의 숨소리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이렇게 변했어도 우리의 삶은 어떻게든 그 이전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교실에 유성과 나 단둘만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도 책상이 점점 줄어가는 교실이긴 했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이 교실에, 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인류라고는 그와 나 단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벌어진 유성의 입술 안에서 아주 부드러울 그의 혀를 본 것만 같아서, 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에도 하늘의 별은 줄어가고 있을 터였다.
세상은 점점 더 고요해졌고 그럴수록 유성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하곤 했다. 마치 그 비어있는 공간을 우리의 것으로 채우려는 듯이, 우리는 끊임없이 마른 입술을 혀로 적시며 말을 나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그저 비어있었다. 우리의 말로 이 세상을 채우기엔 말이란 것은 너무 공허한 것일지도 몰랐다.
“배고파.”
“일어나자마자 한다는 말이…….”
“뭐 보고 있었어?”
“그냥, 하늘.”
하늘, 하고 유성은 내 말을 반복하며 고개를 돌려 나를 따라 파란 하늘을 보았다. 나는 어쩐지 유성이라면 내가 보지 않는 것들을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 순간 유성과 나 사이에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생긴 것만 같아서 나는 조금 슬펐다.
“무슨 꿈 꿨어?”
“꿈?”
“안 꿨어?”
“음…. 네가 죽는 꿈.”
“뭐야, 그게.”
그의 말에 나는 웃어버렸다. 진짜 별것도 아닌 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에게 악몽을 꿨구나, 하고 말했다. 그의 꿈에서 나는 어떻게 죽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지만 굳이 그에게 묻지는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의 이야기 사이에 죽음이라는 단어가 끼어들지 않았으면 했다. 유성은 내가 죽었다는 꿈을 꿔놓고서도 나를 따라 씩 웃어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이상하게 세계가, 비어가는 하늘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감각을 아주 오래오래 가져가고 싶었다.
유성은 허물어지듯 다시 책상으로 엎어졌다. 점심을 일찍 먹고 돌아온 누군가가 교실의 뒷문을 열었고 복도의 열기가 내 팔꿈치를 가볍게 달궜다. 어제보다 가벼워진 세계 속에서 우리는 철제 사물함의 문을 또다시 열었고, 한동안은 반복되지 않을 역사를 배웠고, 쉬는 시간엔 가사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외국 가수 누군가의 노래를 나눠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유성의 꿈을 꾸었다. 그가 죽는 꿈은 아니었다. 나는 꿈속에서 우리의 첫 만남을 복기하고 있었고, 우리의 머리 위에서는 시간 당 일만 개의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문득 죽고 싶을 때가 있었다. 유성은 자신의 체구에 맞지 않는 아동용 미끄럼틀에서 몸을 웅크리고 아주 짧은 거리를 미끄러져 내려왔다. 나는 그네에 앉아서 그가 몇 번이나 그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재질의, 이상하게 푹신한 바닥이 내가 발을 한 번 까딱일 때마다 가볍게 아래로 꺼졌다가 다시 원래의 위치를 찾았다. 물 위를 걷는 느낌이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차가운 강물에 나를 내던지기도 했고 내 방의 창문에서 꺼먼 아스팔트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나의 상상 속에서 유성은 내가 죽어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것은 아주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유성아.”
그는 미끄럼틀을 내려오며 나를 바라보았다. 왜? 우리의 머리 위로 아주 가느다란 햇살이 촘촘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그 햇살 때문에 눈을 살짝 찌푸리며 유성을 봐야만 했다.
“나랑 동반자살할래?”
“싫어. 나는 죽을 때 혼자 죽을 거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끄럼틀에 걸터앉아 있던 유성은 몸을 뒤로 넘겨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끔씩 아주 밝은 별이 죽을 때면 낮에도 하늘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일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런 게 보이는 걸까? 나는 유성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햇볕 때문에 눈이 따가워져 바로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대신에 나는 덤덤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별 떨어지는 거 보여?”
“아니. 아직도 그런 게 보고 싶어?”
“그냥 태양도 언젠가 떨어질까 궁금해서.”
“그거면 정말로 다 같이 죽겠네.”
“너는 그 전에 자살해야겠다.”
내 말에 유성이 몸을 일으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그저 그의 시선을 마주 볼 뿐이었다.
“내가 죽으면 좋겠어?”
“아니.”
나는 언젠가 그 역시 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니, 하고 답을 했다. 내 대답에 유성은 그냥 웃었다. 우리는 죽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삶을 선택해서 지금처럼 유성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유성은 미끄럼틀에서 내려와 내 뒤로 돌아와 내가 앉은 그네를 당겼다가 놓았다.
철이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등에서 유성의 체온인지 햇볕의 따뜻함인지가 느껴졌다. 나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는 안 죽을 거야. 유성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귓가를 스쳤다. 나는 그때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집의 방향이 완전히 반대였다. 어디선가 또 사고가 났는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소방차가 거리를 달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유성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유성은 내게 등을 돌리고 떠나는 대신, 우리 집에 와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우리 집에 다른 사람을 데려와 본 적이 없어 조금 낯선 기분이 되었다.
현관의 비밀번호를 꾹꾹 누르는 내 등 뒤에서 유성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제목을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유성은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말을 하며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우리 집은 14층이었고 복도의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유성이 위태로워 보여, 나는 공연히 유성아, 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그를 돌아 세웠다.
“애들이 있었어.”
나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세상에서도 아기가 태어나긴 할까? 생존 본능이 자극되면 인간은 이전보다 아이를 많이 낳는다는 말을 생각하면서도, 나는 이런 세상에서라면 자식을 낳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삶과 죽음이란 건 언제나 하나의 카드에 함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더 이상 카드를 뒤집는 놀이 같은 건 머리가 아파져서 하고 싶지 않았다.
유성은 나보다 먼저 현관을 넘어섰다. 뒤가 반듯하게 펴져 있는 그의 하얀 운동화가 현관의 구석에 놓였다. 우리는 나의 좁은 방에 몸을 구기고 앉았다. 음료라도 대접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어올 것이라고는 생수밖에 없어서 나는 그냥 유성의 곁에 앉았다.
“애기 땐 귀여웠구나.”
유성은 벽에 걸려있는 내 어릴 적 사진을 보고 있었다. 내가 걸고 싶어서 건 것은 아니었고, 언젠가 부모님이 걸어둔 것을 떼어내지 않은 것뿐인 사진이었다. 이제 갓 돌이 넘은 어릴 적의 나는 그 검고 큰 눈동자로 카메라 렌즈를 아주 또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네 첫 기억은 뭐야?”
“그러면, 너는?”
맥락 없는 유성의 질문에 나는 유성에게 질문을 떠넘기곤 자신의 첫 번째 기억에 대한 생각을 했다. 보통 그런 것을 잘 생각하지 않지는 않은가. 본인이 질문해놓고 유성은 나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첫 번째 기억. 나는 기억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곳이 처음인가 싶으면 또 저 앞에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옅은 기억이 연못 속의 진흙처럼 질척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것이 내 기억인지, 아니면 어디선가 전해 들었던 것을 내 것으로 여기고 있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유성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를 처음 만난 날.”
“농담이지?”
“당연한 거 아니야?”
유성이 웃었고 또 그의 한쪽 볼에만 보조개가 생겼다. 나는 흠,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손에 돌을 쥐고 있었어. 왜 쥐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돌이 손에 있었고 돌이 따뜻했던 것만 기억이 나네.”
“되게 이상하다.”
“그렇지. 첫 기억이라고 하면, 조금 더 뭔가 분위기 있는 느낌인데 말이야.”
내 말에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나의 공간에 유성은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었다. 유성은 나와 자신의 교복이 아마도 사이즈가 같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목덜미에 붙은 태그를 확인하기 위해 서로의 셔츠 칼라를 뒤집었다. 우리의 셔츠는 사이즈도, 교복 회사도 완전히 같았다.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고, 유성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그가 말끔한 운동화를 다시 신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제야 유성의 제대로 된 첫 기억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것이 떠올랐다. 내 질문에 유성은 다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고 있었어. 하나.”
“그래서 이름이 유성이야?”
“글쎄.”
유성은 또렷한 대답 대신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긴 그래서 이름인 것도 이상하지. 유성의 부모가 아닌, 유성의 첫 기억이었으니. 나 역시 유성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더 자란 유성의 단발이 현관에서 불어온 바람에 살랑거렸다.
그날 밤 나는 내 이름이 인쇄된 비닐 재질의 약 포장지를 들고 비슷비슷한 하얀 알약 세 정을 바라보았다. 두 개는 자살을 막기 위한 항우울제였고 나머지 하나는 수면유도제였다. 잠을 자면 꿈을 꾼다. 꿈을 꾸면 죽을 것만 같다.
문득 죽음이 두려울 때가 있었다. 정확히는 죽는 과정이 두려울 때가 있었다. 유성우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숱하게 많이 봐왔던 죽음의 고통들이 주마등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다른 것보다 조금 더 작고 단단한 그 약을 포장지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그날 잠을 자면, 나는 또 말하지 못할 꿈을 꿔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약을 한 알 빼고 먹기로 했다.
항우울제는 너무 쓰고, 물에 잘 녹아서 나는 억지로 냉수와 함께 그것을 삼켜내며 우리는 어째서 죽지 않고 이렇게 쓴 것을 삼키며 살아남아야만 하는가를 생각했다.
잠을 자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으면 싶었지만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잠을 자야만 했다. 불면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턱을 괴고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당 과목을 담당하던 교사가 자살을 해 자습 시간으로 수업을 때우던 날이었다. 아물아물 정신이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잠을 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잠을 잔 날이 언제였더라. 그런 게 기억 날 리가 없었다.
나는 그저, 꿈에 유성만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유성의 꿈을 꾼 날은 하루가 더욱 심란했다. 나는 꿈속에서 유성을 죽이기도 했고, 사랑하기도 했다. 우리가 꾸는 꿈이라는 게 다 그랬다. 납득할 수 없는 개연성 위에서 꿈의 이야기는 만들어졌고 나의 하루를 갉아먹었다. 나는 유성을 죽이는 꿈보다 유성을 사랑하는 꿈을 더욱 힘들어했다.
그런 날이면 유성의 짧게 자른 손톱이 더욱 깔끔해 보여서, 그의 목소리가 더욱 나긋하게 들려서 유성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고개가 책상으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쿵, 하고 내 이마와 책상이 부딪치는 민망한 소리가 나고 그래서 잠이 깨버렸으면. 그러면 좋으련만.
하지만 나를 깨운 것은 유성의 섬세한 손가락이었다. 편하게 자. 유성의 목소리가 돌아오는 정신에 섞여 흩어질 뻔했다.
“자기 싫어.”
“평생 안 잘 수는 없잖아.”
“자살하면 평생 잘 수 있을 텐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유성은 내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고 보니 앞자리의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어제까지만 해도 살아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집에 갈 때 안녕, 하고 인사를 했던 것도 같은데.
유성은 의자에 거꾸로 앉아 양팔을 내 책상 위에 올리곤, 그 위에 자신의 얼굴을 얹었다. 나는 그때 그의 눈동자를 처음으로 보았고,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생각했다.
“네 꿈을 내가 없애줄 수 있을 것 같아.”
유성의 목소리는 아주 작고, 낮았다. 그의 목소리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여서, 나는 그의 낯선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그의 눈동자 안에서는 아주 작은 별무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의 눈동자의 반짝임을 비유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의 눈동자 자체가 그랬다. 그의 보랏빛 홍채가 은은하게 반짝이며 내 까만 눈동자를 마주했다.
“있잖아,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꿈을 꿔본 적이 없다.”
그가 평소처럼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때 나는, 유성은 왜 저런 눈동자를 숨기고 다니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 순간부터 이미 졸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눈동자에 담겨있던 별들이 아주 슬프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래. 평소처럼 내리던 유성우가 그의 눈빛에 우연히 비쳐들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유성은 잘 자, 하고 말했다. 나는 아주 간만에 꿈도 없는 깊은 잠을 잤다.
“나 배고파.”
나를 깨운 것은 유성의 말이었다. 나는 아물아물 돌아오는 정신을 서둘러 붙잡으려고 허둥댔다. 유성은 평소와 아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유성과 했던 대화가 꿈이었나? 정말로 유성이 내 꿈을 없애줬을 리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눈을 비볐고 유성은 손끝으로 피아노를 치듯 내 책상을 두드렸다.
교실은 비어있었다. 점심시간인 모양이었다.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자 요란한 소리가 내 아래에서 울렸다. 유성은 점심 메뉴가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매점이나 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꿈속에서 무성한 별무리를 본 것 같다고 유성에게 말했다. 유성은 내 말에 빙긋 웃으며 너는 항상 이상한 꿈을 꾸는구나, 하는 말을 했다.
이상한 꿈. 그날도 이상한 꿈을 꿨던가. 나는 어깨 위에 흐린 머리를 얹고 몽유병 환자처럼 늦은 새벽 거리를 걷고 있었다. 열대야 때문에 밤공기도 마냥 덥고 끈적이기만 했다. 나는 내가 모르는 거리를 걷고 있었고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나는 이 길의 끝이 어디로 향할지 알고 있었다.
내가 죽는 날은 과연 언제인가.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날들이었다. 나는 과연 살아도 괜찮은 존재인가. 삶에 이유 따위를 찾아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집착하듯 그 질문을 물어뜯었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과 삶을 선택한 나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걸까.
나는 차가운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여름 강물은 언제나 불어있기 마련이었고, 그곳에는 유성이 비쳐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달이 없는 날에도 하늘이 밝았다. 셀 수 없이 떨어지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가족도 아닌 유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도 있었지.
나는 애써 죽음 대신 그 말을 생각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자꾸 죽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허튼 생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먼저 간 사람들을 따라 소원을 빌었다. 적어도 유성만큼은 죽지 않게 해달라는 소원이었다.
“돌아왔구나.”
아파트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부모가 아니라 유성이었다. 평소 보던 것보다 그의 모습은 조금 더 흐트러져 있었다. 그가 그곳에 있는 것이 꽤 의외여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성을 보았다. 다행이다. 유성이 숨이 많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이번에는 진짜로 죽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러고 보니… 자살 시도할 때는 항상 네가 옆에 있었지.”
“이번엔 조금 늦었네.”
“뭐, 안 떨어졌으니까.”
유성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는 그를 걱정시킨 것 같아 괜히 머쓱했다. 우리는 집 근처 놀이터까지 걸었다. 저번에 유성이 아이들을 봤다는 곳이 여기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편의점에서 산 초코파이 한 통과 함께 좁은 미끄럼틀에 몸을 욱여넣고 앉았다. 미끄럼틀에는 아주 낮은 천장이 있었고 우리의 둥근 무릎은 서로를 밀어내듯 닿아 있었다. 유성은 먼저 초코파이를 꺼냈다가, 그것을 내게 건넸다. 나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받아들었다.
한동안 포장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울렸다. 전에 없이 하늘이 맑아서 유성우가 떨어지는 것이 훨씬 뚜렷하게 보이는 날이었다.
“너는 꼭, 초코파이만 먹더라.”
“그냥……. 포장지가 좋아. 특히 빨간색이.”
“촌스러운데.”
“마시멜로우도 좋아. 오예스엔 마시멜로우 없잖아.”
“그치. 오예스엔 없지.”
나는 그러면서도 흠, 소리를 내며 초코파이의 포장지를 바라보았다. 유성은 혹시라도 제 입술에 초콜릿이 묻어있을까 봐 손등으로 제 입술을 문지르고 있었다.
“죽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의 말에 나는 유성을 바라보았다. 유성은 그 말을 하지 않은 척, 아무렇지도 않게 초코파이를 씹고 있었다. 과자 가루가 그의 티셔츠 위로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를 보면서 눈을 껌뻑이다가 까만 강물 속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왔다는 얘기를 했다. 죽으려고 강물을 봤는데, 그곳에 유성이 네 얼굴이 있었다고 나는 말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소원을 빌고 왔다고 말했다.
내 말에 유성은 슬프게 웃으며 내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
유성의 말이 너무 아파서, 나는 유성을 따라 초코파이를 하나 더 깠다. 역시 단맛은 내 입엔 별로였다.
자살 시도를 하고 살아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마치 지난밤에 그런 일이 없었던 양 행동했다. 추가로 교사가 들어오지 않은 수업이 많아서 우리의 시간표엔 이상할 정도로 자습이 많았다. 왜인지 자습 시간마다 교실을 돌며 감시를 하는 교감 선생님은 어째 아주 오래오래 살아계셨다. 우리는 그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이어폰을 한 짝씩 끼고 노래를 듣곤 했다.
나는 여전히 간혹 상담실로 향했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 수가 조금씩 줄어들면서 나의 차례는 점점 더 빨리 돌아왔다. 내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말에 상담 교사는 자살 사고가 들 때 취할 수 있는 행동과 핫라인을 알려주었다. 과장을 조금 하면 이제 한 백 번쯤 들어본 말이었다. 그런 게 아무 소용도 없는 걸 알잖아요, 하고 한마디 하려다가 어쩌면 이런 행위가 그 상담 교사에겐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자살을 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었지만, 뭐, 나는 그의 삶을 그냥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다시 교실로 돌아왔을 때, 교실이 비어있어서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손에 들린 초코파이가 내 체온에 조금씩 녹아버릴 것만 같아 나는 그것을 일단 유성의 자리에 올려두었다. 유성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유성의 자리에 앉아 유성을 기다렸다.
어쩐지 눈물이 났다.
세상에 유성과 나 둘밖에 없는 느낌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유성이 이대로 영영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필이면 그의 이름도 유성이라서, 언젠가 땅으로 떨어져 내리다 대기권에서 불타 없어질 것만 같았다. 그 역시 하늘의 궤도를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 그의 말대로였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유성은 나의 손을 떠나 죽는다. 우리 둘 중 하나는 서로를 버려둘 운명이었다. 나는 그것이 끔찍하게 싫었다.
“유성아.”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온 유성의 손이 젖어있었다. 나는 다행이다, 라고 말하는 대신 그에게 충동적으로 다른 말을 뱉었다.
“나랑 죽자. 죽으러 가자. 유성아.”
뜬금없는 내 말에 유성은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예의 자살 충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자리에서 일어나 젖은 그의 손을 잡았다. 유성의 손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나쁜 꿈이라도 꿨어?”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러면?”
유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정도 가지고는 그의 반짝이는 별빛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힘차게 가로 젓는 내 머리를, 유성이 쓰다듬었다. 내 마음속 어딘가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냥, 이 세상이 싫어. 유성이 너를 잃는 것도, 너를 두고 가는 것도 싫어. 하지만… 언젠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유성이 너랑 같이 죽고 싶어. 내 욕심이겠지만.”
그렇구나. 내 말을 중간에 끊고 유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성이 아주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바닥을 훑고 있는 그의 눈동자가 과연 무엇을 담고 무엇을 떠올리고 있을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올 부정의 답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그러면 도망가자, 우리.”
물기가 많은 유성의 목소리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유성은 도망가자, 하고 그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그 말을 하는 유성은 어쩐지 나를 대신해 울고 있었고 나는 발갛게 물든 그의 눈 밑을 엄지로 닦아내며 그의 어깨를 안았다. 유성의 눈물에 내 셔츠 칼라가 가볍게 젖었다.
유성이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도망가자는 건지 나는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유성의 그 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대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나는 뒤늦게야 유성의 책상에 두고 온 초코파이를 떠올렸지만, 이제 그런 것쯤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갈 곳도 찾을 사람도 없어서 길을 헤매던 우리는 밤이 늦어서야 결국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낯선 학교의 운동장에 도착했다. 그날처럼 우리는 인조 잔디 위에 주저앉았다. 그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성의 머리가 길어있다는 것과 하늘에서 점점 별들이 줄어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떨어지는 별을 바라보았다. 궤도를 따라 불타오르는 별들이 하늘을 끝없이 빛내고 있었다. 유성이 내 쪽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아직도 죽고 싶어?”
“조금.”
“그러면 우리 이렇게 매일 별을 보러 오자. 마지막 별이 떨어지는 걸 함께 보자. 그러고, 같이 죽자. 그때가 되면 같이 죽어줄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별이 있을까. 그것들이 다 떨어지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나의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을 수도, 생각보다 금방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우리의 죽음은 그렇게 유예되었다.
유성의 죽음은 과연 어떨까. 어떤 죽음도 그에게 걸맞지 않는 것 같았다. 죽어버리기엔 그는 너무 맑은 사람이었고,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를 더럽힐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유성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 나 너한테 궁금한 거 하나 있는데.”
“뭔데?”
“너, 유성이란 이름 진짜 아니지.”
유성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전부터 이상하다 싶었다. 유성우가 떨어진다는 날에 처음 만난 애 이름이 유성이라니, 그런 장난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대답 대신에 유성은 작은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럴 것 같아?”
“이제 더 못 속여.”
“아깝다. 재밌었는데.”
“진짜 이름이 뭔지 말해줄 수 있어?”
유성은 손을 까딱여 가까이 와보라는 신호를 했다. 나는 유성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가 아주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자신의 내 귓가에 자신의 이름을 속삭였다. 그 이름이 분명히 유성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지금 이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빛을 내는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20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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