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

 

Y A G I

 

 

12

 

  자매의 방은 고요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엔 이층 침대의 위쪽을 차지하고 있던 미츠키가 아래로 내려왔고, 두 사람은 무츠키의 침대에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사사키 선배, 괜찮을까.”

  미츠키는 아무 말도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사키 하이세는 더욱 위험했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은 심증뿐, 어디에도 물증 같은 건 없었다. 물증이 있다고 하면, 두 자매가 K군을 살해했다는 증거뿐이겠지. 그리고 물론 그 증거에는 토오루가 빠져있을 것이 분명했다.

  미츠키는 입술을 씹었다.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답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오늘 본 사사키 선배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건 도리가 아닌듯했다.

  “무츠키. 아무래도 안 되겠어.”

  “?”

  “토오루에게 더는 휘둘리기만 할 수 없잖아.”

  미츠키는 무츠키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단어들을 씹어뱉었다.

  “아무리 그래봤자 중학생이야. 키도 체격도 우리보다 작고.”

  “하지만 무서운걸…….”

  “나도 무섭지만, 지금 이대로 가면 앞으로 더 무서운 일을 하게 될 게 분명해.”

  미츠키는 바로 휴대 전화로 손을 뻗었다. 토오루의 연락처를 누르기 전에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용기 있게 그 번호를 눌렀다. 아주 짧은 신호음이 울리더니 곧 정적이 이어졌다. 여보세요, 같은 형식적인 인사 같은 건 없었다.

  어쩌면 그건 토오루가 더는 우리에게 자신을 감추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무츠키는 생각했다.

  “무츠키 토오루.”

  “뭔가 결심을 한 모양이네요?”

  무거운 미츠키의 목소리에 비해 토오루는 마냥 태연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해서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네 꼭두각시 노릇은 안 할 거야.”

  “그거, 무츠키 언니도 동의한 말이에요?”

  “뭐라고?”

  “지금 미츠키 언니만 말하고 있잖아요. 미츠키 언니의 생각을 무츠키 언니에게 강요한 건 아니냐구요.”

  “강요라니.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그럴까요, 과연.”

  토오루의 말 속에는 분명 웃음이 섞여 있었다. 미츠키의 마음이 일렁였다.

  K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과연,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까. 식은땀이 흘렀다. 사정을 모르는 무츠키는 그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미츠키를 보고 있었다. 태연해져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됐다. 미츠키의 귓가에서 토오루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무튼, 알았어요, 미츠키 언니.”

  “더는 연락하지마.”

  전화를 끊고 미츠키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무츠키는 미츠키의 잠옷 끝을 잡아끌었다. 미츠키는 자연스럽게 무츠키를 껴안아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우리 둘이 함께 있다면 괜찮을 거야. 미츠키는 주문을 걸듯 거듭 무츠키를 생각했다.

  “정말 이걸로 끝인 걸까?”

  “본인 입으로 알아들었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야.”

  “미츠키, 솔직히 말하면 나, 너무 무서워.”

  “괜찮아. 괜찮아, 무츠키.”

  미츠키는 다시 위쪽 침대에 누웠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적인 생활을 지켜야 했다. 수면도, 식사도, 어느 것 하나 거르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미츠키는 말했다.

  하지만 무츠키는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막연한 불안함. 열려 있는 모든 가능성이 다 지옥으로 향하는 길일 것만 같은 두려움. 무츠키가 눈을 감을 때마다 어둠이 무츠키를 덮쳤고 그것이 무서워 무츠키는 감았던 눈을 다시 뜨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휴대 전화의 진동이 한 번 울렸을 때, 무츠키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진동은 한 번으로 멈췄고 무츠키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지만, 무츠키는 이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잠깐 나와봐요. 근처 놀이터.]

  무츠키는 바로 휴대 전화를 뒤집었다. 미츠키 말대로, 토오루에게 휘둘릴 필요는 없었다. 이런 연락쯤 못 본 척하고 있으면 되는 거였다. 되는 거였는데.

  [10.]

  다시 울린 진동에 손을 떨며 뒤집어 본 화면에는 저 문구와 사진 한 장이 보내져 있었다.

  살인. 살해. 비밀과 협박. . . . 선혈과 뜬금없이 울리던 새의 울음과 깊은 흙의 어두운색. 축축한 흙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그. 이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을 가진, .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는 나.

  사진 속에는 K의 시체를 보고 있는 무츠키가 있었다.

 

  “, 토오루.”

  “무츠키 언니.”

  토오루는 그네에 앉아있었다. 그는 바로 자신의 옆자리를 권했다. 무츠키에게 거절할 권리 같은 것은 이미 없었다.

  “아까 미츠키 언니가 한 말, 무츠키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나도토오루가 하고 있는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긴, 무츠키 언니는 남자친구가 그렇게 됐으니까요. 많이 충격이었을 거예요.”

  토오루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의외로 정상적이어서 무츠키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 말을 하고자 나를 부른 걸까. 무츠키는 토오루의 얼굴을 보았다. 토오루는 하늘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신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하길 갈망하는 것처럼.

  “미츠키 언니,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그 말이 왜 위로가 될까.

  무츠키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토오루는 조금 거친 아이일 뿐, 나쁜 아이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오루에게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섬세한 무츠키의 마음은 토오루에게로 기울었다. 토오루는 무츠키의 표정을 보고 빙긋 웃었다.

  “…….”

  “이제 슬슬 가보는 게 좋으려나요?”

  무츠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집에 가봐야지. 미츠키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으로.

  무츠키는 토오루에게 손을 흔들곤 그네에서 일어섰다. 토오루는 무츠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땅을 한 번 발로 찼다. 토오루가 탄 그네가 흔들리며 쩔렁이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 사이사이를 토오루의 작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불구경은요, 소방차가 오기 전이 제일 재밌거든요.”

 

  무츠키는 달렸다. 그 와중에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머릿속이 일렁였다. 마치 두뇌에 불이라도 난 것 같았다. , , 화재…… 방화.

  무츠키의 집은 이미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웃들이 소란스러웠다. 그중 몇 명은 무츠키를 발견하곤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소방차가 요란하게 달려왔다.

  무츠키는 다시 놀이터로 달렸다. 토오루는 여전히 그네를 타고 있었다.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요?”

  “토오루.”

  “무츠키 토오루, 연인의 상실로 인한 방화. 가족 간에 문제가 없던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쌍둥이 언니인 미츠키 토오루와 연인을 사이에 두고 불화가 있어. 그 연인은 지난 여름 실종된 K군으로 모두의 선망을 받는 아이였고…….”

  토오루의 입에서 정제된 말이 쏟아졌다. 아주 그럴듯한 기사였다. 정말로 미래의 어딘가에서 보고 온 것 같은 정교한 기사.

  “, 이런 느낌이겠지요?”

  토오루는 소리를 내 웃었다. 무츠키는 그런 토오루를 넋이 나간 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은 무대 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 무대의 계획자는 토오루였다. 신 같은 게 아니라, 무츠키 토오루, 그의 이복동생이었다. 그리고 그 이복동생의 취향은 아주아주 끔찍한 비극이었다.

  “저는요, 하이세 오빠가 정말 좋아요.”

  갑자기 웃는 것을 멈춘 토오루가 말했다.

  “책 읽을 때 그 눈빛과 다정한 목소리와, 단단한 몸매에. 어딘가 우수에 차 있는 눈동자. 기다란 손가락. 단정하게 입은 교복 아래로 보이는 손목뼈.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그 부분과 간혹 보이는 쇄골뼈.”

  저는요, 하고 토오루가 작게 말했다.

  “하이세 오빠를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것은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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