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구울 전력 60분_ 괴담 #우타요모

 

 

우리들은 여기에 있어요

 

Y A G I

 

 

  습기는 마치 밤의 장막처럼, 두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건물에 요모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요모는 손을 몇 번 휘적거려 눈앞의 습기를 걷어내려 했지만 그것이 가능할 리는 없었다. 오히려 배어나온 땀에 기분이 더 눅눅해질 뿐이었다.

  “우타, 나는 가끔 네 취미를 이해할 수가 없어.”

  “뭐 어때. 렌지한테 이해받고 싶은 생각도 없는 걸.”

  “그렇담 이런 곳에 끌고 오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어라, . 답지 않게 무서운 거?”

  우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어째 이 짙은 습기로도 가려지지가 않았다. 요모는 한 번 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은 이제 막 벌겋게 녹이 선 병원의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발을 옮길 때마다 정돈되지 않은 풀들이 짓눌리며 끈적한 풀냄새를 뱉어내고 있었다.

  우타는 뭐가 신이 났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폐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타의 말에 따르면, 그 폐병원이 이 근처에서 가장 핫한 심령 스팟이라나 뭐라나.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병원인데 병원의 지하에서는 노숙자들을 잡아 반인륜적인 행위를 해왔다던가. 그 원혼들이 아직도 병원 안을 떠돌고 있다던가. 요모는 우타가 곁에서 지껄였던 말들을 어렴풋하게 떠올리며 그 병원을 올려다보았다.

  멀건 달빛 아래에서도 병원의 외관이 기괴할 정도로 낡아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담쟁이들이 건물 외벽에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담쟁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습한 날에 더욱 생기를 띄던 식물이었나. 요모는 이미 스러진 병원의 간판을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 거기서 뭐하고 있어? 진짜 무서운 거야?”

  “무섭긴 누가 무섭다고…….”

  “하지만 렌지 표정이 굳어 있어.”

  “내 표정은 항상 굳어 있어.”

  “그거 렌 스스로도 알고 있었어? 놀라운 사실인걸.”

  우타는 산산조각 난 유리문 앞에서 뒤로 손깍지를 낀 채 요모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는 고개를 가볍게 가로 젓고는 우타의 뒤를 따랐다. 병원 안에서는 뭔가 불결한 냄새가 났다.

  우타와 요모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들른 모양이었다. 요모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병원 홀 한 가운데에 누군가 뻘건 스프레이로 적어놓은 온갖 상스러운 욕설들이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욕하는 걸 좋아하나? 요모는 유심히 그 글자들을 봤지만, 어디선가 봤던 괴담과는 달리 스프레이는 제대로 말라있다 못해 몇 십 명의 사람들의 발에 밟혀 꼬질꼬질 때가 타 있었다.

  요란하게 깨진 창문 틈새로 희미하게 달빛이 비쳤다. 병원은 생각보다 별 것 없었다. 그저 오래되고, 망가진 폐병원일 뿐이었다. 어디선가 끌려왔을 게 분명한 의료 기구들이 엉망진창으로 카운터 앞에 널려 있었다. 병원을 떠도는 원혼의 짓이 아니라, 성격 나쁜 인간의 짓이 분명해 보였다.

  “평범하네.”

  “당연하지. 여긴 지상인걸.”

  혼자 들떠 몇 개의 진료실 문을 열어보고 다니던 우타의 말이었다. 그 말이 텅 빈 공간에 울려 약간의 반향을 일으켰다. 이 병원도 언젠가 사람들이 북적거렸을까. 요모는 그것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요모는 우타를 따라 두어 개의 진료실을 돌아보았다. 모두 인간에 의해서 파괴된 공간이었다. 내가 유령이라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을 것 같지는 않은데. 바닥에 굴러다니는 주사기 따위를 발끝으로 굴리며, 요모는 그렇게 생각했다.

  “, 이제 지하실 가볼래?”

  우타는 진료실 문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 게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잔뜩 흥미가 동한 우타를 설득시켜 집으로 돌아가게 할 자신은 별로 없었다.

  지하실은 계단부터 침수의 흔적이 언뜻 보였다. 검은 곰팡이들이 담쟁이처럼 건물 내벽을 갉아먹고 있었다. 요모는 인상을 가볍게 찌푸렸다. 단순히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원혼 따위가 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하실은 지상과는 공기부터가 달랐다.

   “여기 들어오면 저주받는대.”

  “우타는, 그런 걸 믿나?”

  “글쎄……. 사실 별 생각 없는데.”

  두 사람의 발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우타는 준비해 온 손전등을 켜 주위를 비췄다. 뜬금없이 웬 병원 침대 하나가 복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우타는 전등 스위치를 달각거렸지만 당연히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손전등의 불빛은 너무 작고, 좁았다. 빛이 비춰지지 않는 곳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그곳에 무언가 있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어둠. 아니면 그 속에 끌려 들어가 흔적조차 없어질 것만 같은 그런 어둠이었다.

  똑, 하고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속이 텅 빈 매점 같은 것이 있었고, 그 옆으론 수술실로 연결되는 긴 통로가 있었다. 통로는 넓었다. 요모는 마치 거대한 동물의 식도 속을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이 공간은 너무 어둡고, 습하고, 더웠다. 무섭거나 무섭지 않거나, 어쨌든 기분이 썩 좋아지는 곳은 아니었다.

  수술실의 문은 두 사람을 반기는 것처럼, 환히 열려있었다.

  “저주. 구울이 저주를 받으면 어떻게 될까?”

  “쿠인케가 되나.”

  “, 그건 진짜 별로.”

  수술실도 별 건 없었다. 다른 공간들과 같이, 자신의 용맹함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요모는 먼지 낀 수술대의 위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이 공간은 영원히 잠들어 있고 싶었을 텐데.

  어디선가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

  “, 눈이 엄청 반짝이고 있는데.”

  “가보자!”

  뭐가 그렇게 신나는 건지. 요모는 우타의 뒤를 따르며 수술실의 문을 닫았다. 이 공간이 그냥 영원히 잠들어버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울음소리는 여전히 병원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울리고 있었다. 우타는 귀를 쫑긋 세우고 구석구석 손전등을 비춰보고 있었다. 유령이면 손전등에 비춰지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요모는 말없이 우타의 뒤를 따랐다. 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우타도 찾기 곤란한 모양이었다. 우타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요모를 뒤돌아봤지만 요모는 고개만 가로 저을 뿐이었다.

  요모는 진짜 유령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유령이란 건 두려움이라는 관념의 산물일 뿐이라는 것이 요모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 울음소리는 뭔가? 요모는 가볍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렌지! 이리와봐.”

  “유령이라도 있어?”

  “아니, 유령보다 더 좋은 거.”

  요모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중에 우타는 혼자서 또 저 멀리까지 나아가 있었다. 요모는 어둠속에서도 발치의 잡기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우타에게 다가갔다. 쪼그려 앉은 우타가 제 검지를 입술 앞에 세우는 것이 보였다. 우타는 그 손을 그대로 옮겨 저쪽 구석 어딘가를 가리켰다. 요모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새끼 고양이들이네.”

  “귀엽지.”

  “만지면 안 돼는 거 알지?”

  “?”

  “사람 냄새 나면 어미가 더 안 돌봐준대.”

  “정말로?”

  그곳엔 두 손바닥 안에 폭 안길 것 같은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있었다. 그 중 한 마리가 요모 쪽을 보며 하찮은 하악질을 해댔다. 요모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런 낡은 병원에서 턱시도를 제대로 차려 입은 고양이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요모는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결국 유령의 정체는 고양이였나.”

  “그럼, 돌아가자.”

  “, 구울도 언젠가는 괴담 취급 받았던 때가 있었겠지? 숨어 살았으니까, 우리.”

  우타의 목소리는 한없이 나긋했다. 요모는 쪼그려 앉아있는 우타의 머리를 꾹, 눌렀다.

  “나 피곤해. 들어가자.”

  “, 그래야지.”

  우타가 경쾌하게 몸을 일으켰다. 괴담이 시시하게 끝이 났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다시 부서져가는 낡은 돌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향했다. 달빛이 아까보다 조금 더 흐릿해진 것 같기도 했다.

  우타는 요모보다 두어 계단을 먼저 올라가 있었다. 우타가 손전등의 전원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담력 체험은 이걸로 끝이었다. 요모는 그렇게 즐기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끝이 났다는 사실이 어쩐지 아쉽기도 했다.

  앞으로 우타가 또 오자고 하면 한 번 정도는 더 따라나서도 괜찮을지도…….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는 요모에게, 우타는 갑자기 몸을 돌려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요모가 모든 계단을 올라오고 난 직후였다.

  “뭐야?”

  “오르페우스의 키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걸.”

  “모르면 됐어. 하여간, 로맨틱함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니까. 어쨌든, 우리는 살아있는 거니까, 그치?”

  우타는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가, 바로 슬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정말로, 종잡을 수가 없네. 요모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우타를 따라 희미하게 웃었다. 요모를 곁에서 가장 오래 봐왔던 우타만이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한 미소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홀을 가로질렀다. 우타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유리문을 나서기 전, 요모는 마지막으로 홀을 한 번 더 뒤돌아보았다.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고, 요모는 생각했다. 요모가 가벼운 상념에 젖어있을 때, 요모의 귓가에 우타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 미안, 나 못 들었는데.”

  “?”

  “방금 뭐라고 그랬잖아.”

  우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스선한 바람이 불어 웃자란 나무와 풀들을 스쳤다. 우타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 이만 돌아갈까?”

  “그래. 그게 좋겠다.”

  요모는 눈을 가볍게 감았다가 떴다. 역시, 다음에 우타가 또 이런 곳을 오자고 한다면 따라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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