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구울 전령 60분_ 바다로 향하는 발걸음  #우타요모

 

 

 

물그림자 아래에서

 

Y A G I

 

 

 

  렌지. 나는 지금 네가 없는 세계를 보고 있어.

  보고 있다, 라고 표현을 한 것은 정말로 내가 그 세계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기 때문이야. 재미있는 걸 말해줄까. 이 세계에 렌지 네가 없듯이, 이 세계에는 나 역시 존재하지 않아. 물론 이 세계에서는 또 다른 우타가 존재하고 있긴 해. 이 세계의 우타는 어떤 이유에서든 요모 렌지를 만나지 못한 우타. 그의 삶은 렌지라는 그 두 글자가 빠진 나의 삶이었어.

  있잖아, 렌지.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잠든 모습을 볼 수 있었어. 너는 자주 이런 모습을 바라봤다는 거겠지.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 문득 네 생각이 나서, 나는 네가 가끔 그랬던 것처럼 나의 이마를 매만져보려고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만질 수 없었어. (, 너는 내가 자는 척 하며 네 손길을 느낀 적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게 퍽 유감이었지. 이 세계의 우타는 어떤 형식으로든 렌지 너의 감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나는 무척 유감이었어.

  혹시 네가 궁금해 할까봐 미리 말해두는 건데, 이 세계의 우타는 생각보다 잘 지내고 있다. 당연하잖아. 렌지, 네가 내 삶에 끼친 영향은 결코 작다고는 하지 못하겠지만, 그것이 내게 필수적인 것은 아닌걸. 너는 그저 내 작은 유희거리일 뿐인걸, 너도 나만큼 그걸 잘 알고 있지 않아?

  나는 이 세계에서 가끔, 또 다른 내가 만든 가면을 경탄스럽게 보곤 한다. 내 손이 아닌 곳에서 내가 만든 것이 나온다니. 그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렌지 너는 아마 상상조차 못할걸. 손끝으로 그것들의 겉을 쓸어볼 수 없다는 것이 물론 아쉽기는 했어. 아마 똑같은 감각일 거라고 상상하긴 하지만, 항상 상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니까. 여기의 나 역시 제법 괜찮은 가면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은 역시 나를 좀, 뿌듯하게 만들었지.

  그런데 여긴 왜 네가 없을까?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는 내가 있던 세계와 다른 모든 것이 다 똑같은데 너만 없다니. 그건 좀 이상하지 않아? 그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 중 하나야. 나는 이 쓸모없는 호기심에 종종 네 흔적 따위를 찾아 움직이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소득은 딱히 없었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래서, 나는 아주 약간 절망하던 참이었어.

  흔적이란 건 의외로 내 가까이에 있었는데. 렌지는, 이게 뭔지 궁금할까? 궁금하면 조금 더 참고 있어봐. 이따가 말해줄 테니. 지금 당장 말하면 재미없잖아.

 

  렌지, 이 세계의 구울들 역시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나는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수많은 싸움들을 바라봤어. 수많은 구울들이 서로에게 먹히거나, 비둘기들의 손에 죽거나, 조금 다른 형태로 다시 살아나거나, 서로 사랑을 하거나, ,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어느 세계의 구울도 아직 행복해지지 못한 모양이야.

  물론 그것은 인간들도 마찬가지지. 렌지도 알잖아. 살아있는 존재들이란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길고 가벼운 호흡을 죽을 때까지 반복하는 존재들이 가질 수 있는 건 행복이란 것의 카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카피, 라기보다는 가짜에 가깝나. 불변해야 마땅할 행복이라는 것의 조잡한 가짜. 우리 모두 무의식중에 그것이 가짜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것이 언제 내 손아귀를 빠져나갈까봐 두려워하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알잖아. 렌지도. 렌지도 겪어봐서 알잖아.

 

  있잖아, 렌지. 내가 이런 몸이 된 이후로, 눈을 감으면 항상 보이는 영상이 하나 생겼어. 처음엔 바닥도 천장도 없는 어둠이 눈앞에 보여.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눈을 감았는데 바라본다니, 이상한 표현이지? 하지만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알아주길 바라.) 희미하게 내 몸의 감각들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살아나는 것은 청력. 익숙한 소리가 들려. 물소리.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소리. 그 다음으론 후각. 마찬가지로, 물비린내. 짭잘한 냄새. 미각과 촉각은 동시에 살아나. 내 살을 깎아낼 것 같은 차가운 바람. 나도 모르게 입안에는 따듯한 침이 고여 있고. 그쯤 되면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섞여 머릿속이 온통 어지러워져. 그러면 나는 내 팔로 내 몸을 감싸 안고 웅크리고 만다.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나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두려워하고 있었어.

  그럼에도 나는 눈을 뜨지 않아. 끝까지 눈을 감고 이 모든 것이 지나가길 진득하게 기다려본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살아났던 모든 감각들이 다시 죽어 없어지고, 시각은 그때서야 뒤늦게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려. 보이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어. 끝없는 어둠 속에서 내 머리 위를 떠다니는 선명한 물의 그림자.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그물 모양의 그 하얀 그림자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곤 해.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것을 보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네. 지금 내가 바다 밑에 있기라도 한단 말일까?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바다에 빠져 죽기 전에 환각 따위를 보고 있다는 말일까?

  한동안 그 희미한 빛을 바라보다 눈을 뜨면 다시 네가 없는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그러면 나는, 나 자신이면서도 내가 알지 못하는 우타가 또다시 그의 하루를 보내는 것을 또 지켜본다.

 

  아, 잊을 뻔 했군.

  아까 말하다 말았던, 내가 찾은 너의 흔적은 내가 언젠가 너에게 만들어줬던 너의 가면이었어. 여긴 네가 없는 세계인데. 이상하지. 여기의 우타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 가면을 선물할 생각이었을까?

  하지만 그 가면은 조명조차 제대로 닿지 않는 가게의 구석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 세계의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선물할 것을 이렇게 방치할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 그렇다면 이 가면은 과연 누굴 위해 준비된 것일까. 만지지 못하는 그 가면의 표면을 가짜로 만지면서, 나는 이 가면이 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고 생각했어.

  이상하지.

  너는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길래, 나는 이런 의미 부여까지 하고 있는 걸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어. 확실한 게 있다면, 네가 내려준 커피가 갑자기 굉장히 그리워진다는 것. 그 정도뿐.

  요모 렌지, 어쩌면 너는 내게 친구보다는 그저 커피를 되게 잘 내리는 구울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리고 나는, 그런 구울인 네가 갑자기 그리워졌다.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물소리. 나는 그것을 따라가 보기로 했어. 어쨌든 나 역시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내게는 잃을 것이 없으니까.

  렌지, 나는 그저 내가 이 물 속에 가라앉았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네가 내린 커피 한 잔이 언제나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기만을 바라.

  기대하고 있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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