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구울 전력 60분_ 약속했던 일 #우타요모 #고교생 AU (????)

 

 

 

 

해바라기

 

Y A G I

 

 

  길 옆에 핀 해바라기 몇 송이가 빳빳하게 고개를 하늘로 추켜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간이 버스 정류장의 나무 의자에 앉아있었다. 정류장의 칸막이가 늦여름 햇볕을 아슬아슬하게 막아주고 있었다.

  요모 렌지는 오른발을 약간 뒤로 물려 온몸이 정류장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도록 했다. 어디선가 또 매미가 지긋지긋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요모가 셔츠의 단추를 두 개 풀고 옷을 팔랑거리고 있을 때, 우타는 그저 양손을 벤치에 짚고서는 저 멀리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요모는 그의 둥근 이마가, 아니면 날선 콧대가, 그것도 아니면 투명하게 맨들 거리는 입술이 여름 햇살에 젖어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쟤는 덥지도 않은 모양이지. 우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그의 눈 밑에 얹혀있던 톱니바퀴 모양의 그림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요모는 일부러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피어싱학교에서 뭐라고 안 해?”

  우타가 가볍게 웃는 순간 매미들도 울음소리를 높였다. 그 악다구니에 요모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튼, 매미소리는 반가웠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2년 반쯤 이러고 다니면 쌤들도 포기해.”

  “예전에는. 그러니까, 나 알기 전에는, 많이 혼났나?”

  “아니, 우리 학교가 이런 걸로 혼낼 것 같아?”

  확실히. 요모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해도 우타의 피어싱은 너무 많을지도. 하지만 요모는 그것이 자신이 상관할만한 일이 아니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맞대기 전부터 우타는 그래왔으니까. 우타의 피어싱들은 요모가 알지 못하는 우타의 어떤 시간들이었다.

  요모가 알고 싶어 하는 시간들. 하지만 평생 알 수 없을 그 시간들.

  “, 사실은 렌지가 다른 학교에 갈 줄 알았어.”

  “?”

  “그냥? 렌지는 이 학교랑은 안 어울리잖아. 조금 더, 점잖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혹시 렌지, 나 보고 싶어서 이 학교로 진학한 거야?”

  우타가 고개를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네가 여기 올 줄 어떻게 알았다고.”

  “그건 그렇지만. 왠지 렌지라면 그랬을 것도 같아서.”

  요모는 갈비뼈 안쪽의 어딘가가 차갑게 식어가는 느낌이었다. 요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요모는 우타가 있는 쪽으로 몸을 약간 옮겼다. 요모의 운동화 끝이 그림자 밖으로 비죽 튀어나갔다. 요모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이 우타의 새끼손가락과 희미하게 닿은 것 같기도 했다.

  요모는 여름이 싫었다. 지긋지긋한 매미 울음소리도 싫었고, 찌는 듯한 더위도 싫었다. ,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과, 그것을 손목의 안쪽으로 닦아내는 우타와, 여름이면 얇아지기 마련인 그와 자신의 옷차림이.

  그래도 여름의 좋은 점이 단 한 가지 존재한다면. 그것은 역시 우타를 처음 만났다는 점일까.

 

  중학교 삼학년에 전학을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애매한 것인가. 그때도 창밖에선 매미가 끔찍하게 울고 있었다. 여름의 낮은 항상 이상하게 길었다. 그날도 그랬다. 수업에 종례까지 끝난 시간이었는데 아직 창밖이 밝았다.

  요모의 전학은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요모는 일부러 하루 전날에 학교에 들러 학교의 구조를 익히고자 했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되기 고작 며칠 전. 이런 미묘한 시점에서 다른 사람과 억지로 가까워질 자신이, 요모에게는 없었다.

  혼자서 헤쳐 나가기. 요모 렌지의 삶에서 걸러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장들이었다.

  텅 빈 교실들과 그들에게 붙어있는 숫자들을 요령껏 연결시키며 요모 렌지는 교정을 돌았다. 요모는 이층 층계참에서 삼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요모의 반은 삼층 끝 쪽에 있는 반이었다. 잠시 주저하던 요모는 다시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요모의 발밑에서 낡은 계단이 무참히 삐거덕거렸다.

  우타를 발견한 것은, 요모가 자기 반의 뒷문을 당겨 열어보려다 실패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던 때였다. 처음 지나쳤을 때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그때도 우타는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결에 자리에 멈춰 서서 그의 둥근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우타가 요모의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는 그 짧은 순간순간이 요모의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혔다.

  요모는 한걸음에 삼층에서부터 일층 현관까지 달려 내려갔다. 난간에 쓸린 손바닥이 가볍게 화끈거렸다. 요모는 두 손바닥을 마주 비비며 두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첫 번째는 쟤는 왜, 이 시간까지 혼자 반에 남아있었는가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쟤는 왜, 낯선 요모를 보고 미소를 지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제 여름방학도 끝이네.”

  “방학 때 뭐라도 했어?”

  “딱히. 렌지는?”

  “나도.”

  “그럴 것 같았어. 렌지는, 재미없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요모는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입술에 박혀있는 피어싱을 매만졌다. 되게 차가울 줄 알았는데, 여름 공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미지근했다. 우타는 요모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모는 조금 더, 그의 입술을 만졌다.

  우타를 처음 만난 지는 삼 년이 지났지만, 정작 우타를 알게 된지는 고작 일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요모는 다시 떠올렸다. 그 사이의 이 년이란 시간은 지금 돌아보면 요모에겐 죽어있던 시간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지독한 공백에 잡혀 있었던 시간. 그 공백의 사이에서 또 홀로 무언가를 깨닫고 포기하던 시간들.

  그 하얗고 뜨거운 공백을 메우기 시작한 것은 우타의 단 한 마디였다.

  안녕, 전학생.

  하고, 이 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나 우타의 입에서 흘러나온 뒤늦은 인사말. 이상하게도, 그때도 여름이었다. 좌측 현관의 옆에 심어진 몇 송이의 해바라기들은 항상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학식 당일에도 그랬다. 귀가를 하던 요모가 반에 무언가를 두고 온 것을 깨닫고 홀로 그 현관을 지나칠 때도 그랬다.

  그때 두고 간 것은, 뭐였더라.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읽다 만 책 같은 것들. 굳이 다시 학교로 돌아가서 방학의 시작을 남들보다 몇 시간 늦출 필요가 없던 것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모는 그 물건을 찾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요모가 뒷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았던 것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있는 우타의 뒷모습이었다. 우타를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그 뒤통수. 그때 요모는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끈끈한 땀이 손바닥에서 배어나오고 있었다.

  요모가 우타의 곁에 갈 때까지 우타는 요모를 바라보지 않고 창밖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모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야, 우타는 고개를 돌려 요모를 올려다보았다.

  “안녕, 전학생. 이제야 인사를 하네.”

  요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알고 있었어.”

  “?”

  “네 이름. 요모 렌지. 그럼, 나는?”

  “우타.”

  요모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지금 눈앞의 우타는 그때의 우타와 얼마나 같고 또 얼마나 다를까. 요모는 그것이 퍽 궁금했다. 요모의 기억 속에 들어있는 그날처럼 요모의 손바닥에는 또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요모는 허벅지에 손바닥을 연신 문질렀다. 우타의 시선이 제 손에 닿아있는 것을 요모는 알고 있었다. 구름의 그림자가 텅 비어있는 아스팔트 위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요모는 우타와 자신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함께 하면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그런 관계를. 이 세상에 그런 것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기는 할까? 연인이면서도 연인이 아닌 우리는.

  “우타. 너한테 사과해야할 게 있어.”

  “뭔데?”

  요모는 우타가 보고 있었을 어딘가를 바라보고 싶어 시선을 멀리 두었지만, 우타가 보고 있는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요모가 떨리는 목소리로 우타에게 고백을 했을 때, 우타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소리를 죽이며 웃었다. 그들의 곁에는 시들어가는 해바라기가 있었다. 요모는 입술을 깨물던 것을 멈추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연인이라……. 좋아, .”

  아니, 라고 대답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에 요모는 우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타는 요모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대신에, 나랑 약속을 하나 해야 해.”

  요모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내가 요모의 연인이 되어줄게. 대신, 요모는 나를 사랑하면 안 돼.”

  요모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인이 되어줄게. 그때 요모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면 자신도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요모와 우타는 짧은 입맞춤을 나눴다.

 

  “약속. 약속했던 거, 말이야. 기억해?”

  “, 물론.”

  “못 지킬 것 같아.”

  “언제부터 그랬어?”

  요모가 다시 우타를 돌아보았을 때, 우타는 요모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몸이 요모에게로 조금 기울어 있는 것도 같았다.

  “처음부터. 아마,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구나아.”

  우타는 말끝을 길게 늘이며 자리에서 폴짝 뛰듯 일어섰다. 요모는 우타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우타가 해를 등지고 있는 탓에 그의 얼굴을 도무지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냐, 렌이라면 그럴 것 같았어.”

  “그럼 왜, 그런 약속을.”

  요모는 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잇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했다. 우타의 섬세한 손끝이 요모의 턱을 훑고 있었다. 우타의 입술이 벌어지며 뭔가를 말하고 있었는데, 요모는 그것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결코 나올 리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기에.

  요모는 대신에 우타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히는 것을, 그 사이로 언뜻 보였던 하얀 치아를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우타의 입술의 감각을 떠올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단 한 번의 입맞춤이 왜 지금 떠오르는 걸까.

  우타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말은 딱 세 마디였다. 긴 말은 아니었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시간이 필요했을 뿐. 일단은 그렇게 말해둘까.”

  “일단은?”

  “. 내게는 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그것 역시, 시간이 필요한 건가?”

  “아마도?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알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밖에 없어서. 우타의 목소리가 요모의 귓가에 맴돌았다. 한여름의 그림자 속에서 다시 느끼는 그 입술의 감촉은, 여전히 부드러우면서도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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