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요모 #불면증 요모
煙
; 연기 연
Y A G I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가 펴봤다. 상상 속에서 그 손에 그러잡히는 것은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인간의 두개골. 언젠가 누군가의 단단한 두개골이 내 손바닥 아래에서 으스러진 적이 있었다. 그 손바닥 아래에 남은 것은 인간의 불쾌한 찌꺼기. 손목과 팔뚝을 타고 흐르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의 이야기였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가 다소 모호하던 그때.
어쩌면 이 머릿속의 안개는 그때부터 조금씩 나를 잠식해오던 것일지도 몰랐다. 손등으로 뻑뻑한 눈을 비볐다. 방 안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희미한 빛이었고,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 눈을 감고 있으면 닫힌 눈꺼풀 위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눈부심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뜨면, 흑백만 존재하던 밤의 시간은 끝나고 어느새 의식하고 싶지 않은 색채들이 내 주위를 어지럽게 돌았다.
그러면 또 잠에 드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날이 왔다. 나에게 있어 아침이란 하루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전날의 끝이었다. 잠의 어둠은, 그 깊고 고요한 세계는 내게 존재할 수 없었다. 이런 날들이 이어지면 나는 종종 내 발 앞에 마치 영겁의 시간이 허물을 벗고 드러누워 있는 것만 같을 때가 있었다.
자기를 받아들이라고, 이런 삶을 받아들이라고. 뱀의 모습을 한 시간은 사지의 말단을 천천히 타고 올랐다. 저것이 내 목을 조르는 때는 언제일까. 나는 그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서서히 몸을 침식하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뱀의 유연한 허리가 언젠가 내게 죽음을 선사하기를, 내게 남은 영겁의 시간을 그의 허물 속에 들어가 잠이나 자는 것을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내 스스로 저것의 허물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일찍 일어난 거야, 아니면 오늘도 안 잔 거야?”
“못 잔 거야.”
“그러다 쓰러져, 렌.”
“안 자고 싶어서 안 자는 거 아니야.”
우타의 도톰한 입술이 열이 오른 이마에 닿았다가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상태만 괜찮았다면 저 온기를 조금 더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을까. 나는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양 뺨을 붙잡아 당겼다. 입술과 이마보다는, 입술과 입술 쪽이 훨씬 좋았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렌지 다크서클 생겼어. 며칠 째 못잔 거야?”
“한 칠십이 시간 쯤. 걱정 마, 오늘 밤에는 뻗어서 잘 것 같아.”
“오늘 밤이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 렌지.”
“버틸 수 있어. 아직은.”
아마도. 뒷말은 억지로 삼켰다. 우타를 걱정시킬 필요는 없었다. 요사이 잠을 못 자고 있다는 말에 짐을 싸들고 집까지 쳐들어온 녀석이었다. 아직은, 따위의 말로 그의 불안감을 건드려 침실까지 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우타라면 섹스 테라피 따위를 말하며 내 위로 올라탈 가능성이 높을지도 몰랐다. 그와의 관계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체력을 밤일에 쥐어짜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내 몫의 칫솔에 치약을 꾹 눌러 짜며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이를 닦으면서는 컵에 담긴 또 하나의 칫솔을 바라보았다. 우타와 함께 산다는 건. 그러니까, 양치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칫솔을 바라볼 수 있다는 거구나.
얼마만인지. 뱉어낸 양치 거품 속에 치약이 한 덩어리 묻어나왔다.
†
천장의 무늬를 눈으로 따라 그리는 것을 삼백 번쯤 하다보면 잠이 올 거라고 생각한 것이 벌써 나흘째였다. 미련함도 이런 미련함이 없지. 하지만 침대에 누워서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밖에 없었다. 천장의 무늬를 바라보고 있는 건 어쨌든 머리를 비우기엔 좋아서 나는 삼백한 번째 무늬를 눈으로 그렸다. 비워진 머릿속에 들어차는 것은 또 예의 그 안개였다.
하얗고 두터운 안개에서는 어쩐지 짭잘한 맛이 났다.
“렌지 군.”
딱 우타의 눈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문이 열리고 그가 내 이름을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과 베개가 스치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또 못자고 있구나.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하지만.”
우타의 뒤에서 덜걱,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 속으로 파고든 우타가 한쪽 팔을 뻗어 내 목덜미 뒤로 제 팔을 끼워 넣었다. 다소 불편한 자세에 나는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다시 수면을 위한 자세를 처음부터 찾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맞지 않는 열쇠를 돌리기 위해 열쇠구멍에 수없이 열쇠를 밀어 넣는 그런 기분이.
우타, 너는 그런 것도 모르겠지.
“제발, 나는 누가 옆에 있으면 더 못자.”
“내가 없어도 못잘 것 같은데, 렌지는.”
“제발 가주라.”
“오늘 하루만 딱 해보고, 안 될 것 같으면 내일은 그만둘게.”
나는 눈을 감고 가벼운 숨을 내쉬었다. 이런 우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으리라. 우타의 말대로, 우타가 없었더라도 오늘도 잠을 자기는 글렀다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우타의 입에서 섹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정도려나.
“자장자장.”
“조용히 해줘.”
“알았어. 입, 꾹.”
그 대신에 우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머리를 만진다는 것은 언제나 생경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나의 외벽을 구성하는 단단한 무언가가 허물어져가는 느낌. 머리로 몰렸던 열이 조금 내려가는 것도 같았다. 우타는 그대로 내 머리를 껴안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이 도대체 누구의 심장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어 고개를 조금 위로 들었다. 우타의 숨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머리 더 만져줘.”
내 말에 우타가 아무 말도 없이 멈췄던 손을 움직였다. 나는 눈을 감고 팔다리로 그를 끌어안았다. 머릿속을 채우던 안개가 흘러나가고 있었다. 나는 손끝으로 우타의 마른 등을 매만졌다. 고여 있던 것이 빠져나간 자리엔 무엇이 남게 되는가.
어둠일지, 고요일지, 고독일지,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토록 기원하던 수면일지.
나의 뱀은 여전히 자신의 허물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고 있었다. 나의 가랑이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 다른 먹잇감을 찾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나의 팔다리에서 물러나 내 발치에 똬리를 틀고 수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잠에 든 뱀은 아주 희미한 숨소리를 냈다. 우타의 호흡과 유사한 소리였다.
그렇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다네요. 출처 네이버 사전.
1인칭을 안 쓴지 제법 된 것 같아서 간만에 1인칭. 저도 지금 불면ING 이기 때문에 어떻게 글이 잘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편히, 부담없이 잠들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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