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토  #우타  #도나토와 우타가 부자 관계라는 가설 기반

#우타의 본명이 타우-십자가라는 가설을 트친님을 통해 듣고 새벽에 시름시름 앓던 저는 이런 개날조 소설을 쓰게 된다.

 

 

 

가나안

 

Y A G I

 

 

 

1

 

  그 애의 울음소리는 아주 희미했다. 겨울, 러시아의 사나운 바람소리 안에서 그 애의 울음소리를 구분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덩어리 같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었고 그 애는 고요한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성당의 차가운 문 앞에서, 그 애는 그렇게 얼어붙고 있었다.

  남자가 아이를 안아들자 그 애는 조금 더 큰 소리로 울었다. 마치 인간의 본능적인 동정심을 자극해 살아남고자 애쓰는 것 같았다. 검은 수단을 입은 남자는 믿지 않는 신을 속으로 떠올리며 하늘 높이 솟아있는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를 이곳에 버려두고 간 구울은 과연 누구일까. 하필이면 성당 앞이라니, 신을 믿기라도 하는 구울이 있단 말인가.

  무책임한 부모로구만. 인간의 아이도 아닌, 구울의 아이를 신이 굽어 살필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남자가 다니는 성당에도 몇 명의 구울이 존재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신을 믿는지 남자는 알 수 없었다. 신부인 본인조차 신을 믿지 않았다. 남자는 구울을 굽어 살피는 건 구울 밖에 없다고 믿었다. 지금 그 애에게 남자밖에 없는 것처럼.

  남자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주 작고 여린 아이의 손이 남자의 손을 맞잡았다.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애의 울음소리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어쩌면 죽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남자는 생각했지만, 그 애에게서는 아직 죽음의 냄새까지는 나지 않았다. 남자는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자는 아주 오랫동안 작디작은 그 애를 내려다보았다. 인간의 피를 목 뒤로 가뿐히 넘긴 그 애는 이제 새근거리는 소리까지 내며 잠들어 있었다. 그 애의 하얀 얼굴이 벽난로의 발간 불빛에 따끈하게 데워지고 있었다.

  남자는 그 애의 이름을 타우라고 지었다.

 

 

2

 

  나는 타우를 신의 이름 아래에서 길렀다. 수많은 계절이 흩어져 지나갔고, 타우는 나의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나는 그것이 퍽 놀라웠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이름을 타우라고 지어준 내 잘못일지도 몰랐다. 나는 종종 타우의 작은 몸집에 비해 그가 지고 가야 할 이름의 무게가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타우가 지고 있는 것은 비단 신의 이름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도나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불신의 이름이었다. 나와, 신과, 이 세계와, 타우에 대한 불신이었다.

그래도 타우는 맑은 아이였다. 냉소적인 이름과는 다르게, 그는 제법 따스한 아이로 자랐다. 나는 내가 길러낸 것이 이런 모습을 띌 수 있다는 것이 영 이상하게 느껴졌다.

  “타우야.”

  내가 나지막하게 타우의 이름을 부르면 타우는 빨갛고 뜨거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것이, 사랑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내게는 없는 감정이 타우에게는 있었다. 나는 부러 그것을 사랑 따위가 아니라 그저 어린 아이의 순진함 따위로 생각했다.

  “타우야, 성가대에 들어가 보지 않으련?”

  “타우가 들어가도 될까요?”

  타우가 짧은 발음을 최대한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타우는 또래보다 말을 일찍 뗀 아이였다. 머리가 비상한 걸까.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타우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지며 앳된 볼살이 둥그렇게 차올랐다.

  나는 그 맛을 알고 있었다.

  “물론. 타우는 잘 할 거야. 아버지랑 한 번 같이 해보자.”

  나의 작고 낡은 집에 피아노가 있을 리 없어서, 우리는 항상 성당까지 손을 맞잡고 걸었다. 오래됐지만 항상 완벽하게 조율이 되어있는 피아노의 울림 속에 타우의 높은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그럴 때마다 성당의 창을 장식하고 있던 스테인드글라스가 아주 아름답게 반짝이곤 했다.

 

 

3

 

  그 애의 생일은 122일이었다. 남자와 그 애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 남자는 그 애에게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애의 머리가 어느 정도 커졌을 때부터 남자는 자신과 그 애가 혈연 사이가 아니라는 점을 숱하게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 애는 절대 제 어미를 찾아 칭얼대는 일이 없었다.

  그저 단 한 번, 인간은 죽으면 하느님에게 간다고 하는데 그럼 구울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물어봤을 뿐이었다.

  “인간과 똑같단다.”

  “아버지, 신은 진짜로 존재하나요?”

  “물론이지. 하느님은 우리를 항상 굽어 살피고 있단다.”

  남자는 웃음 띤 얼굴로 그 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그 애는 남자의 눈이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처음에 그 애는 남자가 혹시 자신의 말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닌지를 생각했지만.

  그 애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원래 까만색이었는지, 아니면 까맣게 변색되었는지 모를 나무 바닥의 틈이 그 애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애는 자신 안의 신을 그 틈으로 우겨넣었다. 신은 부서졌고, 그 애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바닥도 아래로 꺼졌다.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지옥밖에 없었다. 그 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애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 신을 죽였다.

  지독한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러시아의 겨울은 항상 끔찍할 정도로 추웠다. 그래도 그 애의 생일마다 남자와 그 애는 항상 차가운 눈을 맞으며 함께 눈사람을 만들곤 했다. 마치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장식하는 것처럼, 그들에게는 눈사람을 만드는 것이 일종의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그 애는 눈사람의 이름을 우타라고 지었다.

  남자는 우타라는 그 이름을 그 애의 입에서 처음 듣자마자 다소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너무 어렸던 그 애가 그것을 알아챌 일은 없었다. 그 애는 그저 코를 가볍게 훌쩍이며, 우타는 겨울마다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라고 얘기를 했다.

  그 우타가 하얗게 얼어붙은 창 밖에서 죽음과도 같은 추위를 견디는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 애는 더는 성당에 다니지 않았다. 남자도 굳이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봄은 아주 천천히 찾아왔다. 밤이 다시 낮보다 짧아지기 시작하는 날에, 남자는 평소처럼 세수를 하며 문득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그날 이후 그 애가 자신의 이름을 제 입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아챘다. 남자는 그래서 타우, 하고 그 애 대신 그 애의 이름을 몰래 불러 뜨거운 수돗물에 흘려보냈다.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의 등을 맞대고 잠을 잤다. 두꺼운 이불 속에서 두 사람의 꿈이 엉망으로 뒤섞였다. 남자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그 애는 부쩍 자라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일종의 직감이나 계시 같은 것일지도 몰랐다.

  남자는 어느 날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과 그 애가 만든 눈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문이 창틀과 함께 얼어있어서 열리지 않는 탓에, 남자는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아야 했다. 그날은 간만에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이었다.

  그 애는 눈사람을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눈사람을 부쉈다. 남자는 그 애의 머리를 비상하다 생각한 것을 철회했다. 미련하긴. 어차피 봄이 오면 녹을 것이었는데.

  그 애는 그렇게 남자의 곁을 떠났다.

 

 

4

 

 

  우리는 낯선 나라에서 서로의 존재를 아주 잠깐은 모른 척하면서 지냈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 척하면서도 서로를 지켜보았다. 타우는 이제 없었다. 그의 이름은 우타, 라고 했다. 그 이름을 처음 듣고 나는 도저히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타우보다는 훨씬 너다운 이름이었다.

  우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분명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달라진 탓이리라. 어쨌든 우타는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괜찮아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마치 신경전이라도 부리듯이 서로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굽히고 들어가는 것은 으레 그렇듯 부모 쪽이었다.

  “당신은, 여전히 신을 믿나요?”

  “예전에도 말했잖느냐. 하느님은 우리를 항상 굽어보고 계신다고.”

  우타는 내가 세운 십자가를 올려다보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태양을 향해 너무 가까이 다가간 인간은 날개의 밀랍이 녹아서 떨어졌다고 하죠.”

  “, 이카로스의 얘기라면 나도 안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아니라, 구울이지.”

  “당신은, 여전히 신을 믿나요?”

  우타의 눈동자는 여전히 붉었다. 나는 그 눈동자를 보면서 그저 웃었다. 그의 두 번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우리가 죽였던 신이 우리의 발밑에서 희미한 신음소리를 뱉었다. 그것은 마치, 고향이 아닌 땅에서 밟는 쌓인 눈의 소리와 비슷했다.

  우리는 그 이후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어느 누구의 의지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길러낸 또 다른 아이 때문이었는데, 이후 그 아이는 종종 내게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습관인가.

  어쩌면 나는 그 아이에게서 죽은 타우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그 애도 굉장히 눈빛이 따뜻하고, 맑았던 아이였으니까. 어쨌든 그 아이에게 대답해 줄 수 있을 만한 것은 유감스럽게도 내게도 없었다.

  어쨌든 그 아이를 마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아몬이, 타우가 나를 더 이상 아버지로 불러주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너희는 나를 이제 당신이라고 불렀고, 나는 사실 아버지보다 그 호칭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그 형태가 어떠하든 함께하고 있었다. 살아가고 있었다. 고요한 독방에서 나는 짙은 숨을 내뱉었다.

 

 

 

 

  타우야.

  타우야. 내가 너를 믿지 않는 것처럼, 언젠가 너도 나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도 네 이름이 타우(십자가)인 것은 내가 너를 끝까지 업고 갈 생각이기 때문이다. 타우야. 나는 너의 이름을 타우라고 지으며 네 어깨에 억지로 무거운 짐을 얹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그 짐을 지고 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새로운 것을 깨닫곤 하는구나.

  나는 내가 오르는 길이 비록 골고다 언덕일지라도 나는 너와 함께 갈 생각이다. 타우야, 그러니까 너는 내 수레바퀴였고, 운명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네 아버지인 모양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우리 사이에 그런 것이란 존재하지 않았지. 네가 아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감상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저 나는 네가 나의 십자가였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타우야.

  너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몰라도 상관은 없다. 타우 네가 이 편지를 찾지 못해도 좋다. 나는 이 편지를 너와 내가 항상 눈사람을 만들던, 그 땅 아래에 묻어둘 것이다. 이 편지는 아무도 더럽히지 못할 것이야. 나는 이렇게 약속의 땅을 만드는구나.

  내게 또 약속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타우, 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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