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요모 #인어 우타X10대 요모
갈증
Y A G I
요모 렌지는 인간이 상식 외의 사건을 만나면 일순 몸이 굳기도 한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인어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었다. 요모는 눈을 껌뻑여 정면을 바라보았다.
해안가의 좁은 동굴에선 항상 희미하게 물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바닷물의 냄새가 났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햇빛 몇 줄기가 물 위를 비추고 있었고, 푸른 이끼들은 그것을 피해 제 몸을 축축하게 적셔가고 있었다. 요모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풍경들을 좋아했다. 이곳을 아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도 그가 종종 이 동굴에 들르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런 곳에, 인어가.
“어린애?”
“어린애 아니야.”
“아니…. 딱 봐도 어린애인데.”
“그럼 너는, 뭔데?”
“딱 봐도 인어잖아? 눈썰미가 없는 건지.”
아니 그건 알겠는데. 요모는 그 말을 삼켰다. 알겠는데, 진짜 맞나? 요모는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요란한 문신이 그의 얇은 목덜미나 팔뚝을 곧 삼켜버릴 것처럼 휘감고 있었다. 처음보다 긴장이 많이 풀렸는지 그는 허리를 가볍게 숙이며 양손으로 물가를 짚었다. 가짜라고 하기엔 너무 실감이 강하게 드는 진보랏빛 비늘들이 촘촘하게 그의 허리 아래를 감싸고 있었다.
요모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웃어 보이는 그를 보며 무심코 아, 눈 밑이 부어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요모는 차가운 벽을 손으로 짚었다. 깊은 곳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울고 있었어?”
“이래서 어린애들이란.”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모른 척 해주는 거야. 요모는 그의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른 척 해줘야 한다는 걸 요모도 알고 있었지만, 요모는 그것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냥, 괜히 신경 쓰였으니까. 어쩌면 그 이상이니까. 요모는 쭈뼛거리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그는 선선히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두드려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에게서는 미끈한 물비린내가 났다.
“이름이 뭐야? 나는 우타.”
“그… 렌지.”
“오렌지?”
“렌지!”
“장난이야, 장난. 제대로 들었으니까, 렌지. 맞지?”
요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타라니, 이름 이상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요모는 우타, 하고 몇 번이나 그 이름을 입속말로 되뇌었다. 그래도 우타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꽤 상쾌해져 있었다. 요모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춥지 않아? 겨울인데.”
“이 정도는 괜찮아. 그것보다, 인어가 옷을 입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아?”
“하긴. 그런가.”
“렌지는 인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나는 인어가 진짜로 있는지도 방금 알았거든.”
요모의 말에 우타가 웃었다. 모를 법도. 말라가는 우타의 검은 머리 위로 가느다란 햇살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여기 나 혼자만 알고 있어서 좋아했는데.”
“나도 그랬는데. 지금까지는 서로 타이밍이 안 맞았나 봐.”
“뭐, 인어는 상관없으려나.”
“뭐, 인간은 상관없으려나.”
우타는 요모의 말을 따라 하며 슬쩍 요모를 건너보았다. 성을 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의 표정을 말짱했다. 그렇게 어린애는 아니란 건가. 우타는 요모를 따라 자신이 올라온 물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마 평생 떠날 수 없을 물이 그의 아래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눴다. 좁은 동굴이 그들의 목소리를 잔잔하게 울렸다. 가끔씩 거칠게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두 사람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헝클어졌다. 겨울의 해는 항상 그렇듯 일찍 바다로 떨어졌고, 요모는 바다가 그 노을로 벌겋게 물들어갈 때쯤에야 웅크리고 있던 몸을 곧게 펴서 일으켰다.
“이제 가게?”
“내일도 올 거야.”
“원래 매일 와?”
“아니. 근데 매일 와보려고. 우타도 이제 집에 가?”
응, 하고 우타는 대답하며 요모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내일 봐, 하고 말하면서도 우타는 요모의 매일 찾아오겠다던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요모는 일부러 어제와 같은 시간에 동굴을 찾았다. 일찍부터 가고 싶은 것을 얼마나 참았는가. 약속 시간을 정하지 않는 걸 뒤늦게 깨닫고서야 얼마나 후회했던가. 그러나 동굴에 우타는 없었다. 그 행동이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요모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왜 없어?”
“혼자 왔어?”
요모가 중얼거리듯 말을 뱉자 그제야 우타는 퐁, 소리를 내며 물속에서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우타의 검은 머리카락이 그의 목덜미나 어깨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우타는 목을 쭉 빼어 요모의 뒤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뒤를 따르는 사람은 없었다.
렌지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당연한 거 아니야?”
“응, 그런가.”
우타는 물가에 양팔을 겹쳐 올려두곤 그 위에 제 얼굴을 얹었다. 예쁘다, 하고 요모는 무심코 우타를 처음 봤을 때부터 품고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뱉었다. 자신이 그 말을 뱉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우타가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며 웃고 난 이후였다.
“그게…!”
“괜찮아, 나도 알아.”
“뭘?”
“내가 이쁜 거. 아니야?”
요모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 아니, 하고 부정을 할 수는 없었다. 우타는 요모를 밤새도록 괴롭혔던 생각이었고, 요모는 그것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내리고 왔다고 생각했음에도 막상 우타의 얼굴을 직접 보니 또 마음이 일렁이는 것만 같았다.
이 흔들림의 원인도, 결과도 다 우타에게 향해있다는 것을 어린 요모는 알고 있었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요모는 자신의 그런 생각을 우타에게 읽히고 있는 것만 같아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졌다.
요모는 우타의 곁에 다가가 무릎을 모으고 앉았다. 벌써 우타와 자신의 이런 가까운 거리감이 익숙해진 것 같았다.
“나랑 약속 하나 해줘.”
“뭔데?”
“나는 매일 혼자 올 테니까. 우타도 숨어있지 말고 나 기다려주는 거.”
“왜 그런 약속을 해야 하는데?”
“불안하니까. 우타가 없어질까 봐.”
우타는 자기도 모르게 제 문신 아래의 상처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응. 알았어. 우타는 이 약속으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손해를 볼지 알 수 없었다. 우타의 대답에 요모가 말갛게 웃었다. 우타는 뭐, 저 정도 웃음이라면 자신이 볼 어떤 손해도 상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매일 같은 동굴에서 만났다. 우타는 바다에서 사는 인어라고 했고, 때문에 자신은 여태껏 이 바다를 떠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타를 만날 때마다 요모는 해안가 주변에서는 볼 수 없는 꽃이나 갈대 따위를 한 줌 꺾어 우타에게 가져다주었고 우타는 깊은 바닷속에서 고요히 삭아가고 있던 조개껍데기나 산호 따위를 요모에게 가져다주었다.
두 사람의 기념품은 동굴 안의, 평평하고 햇볕이 잘 드는 하얀 돌 위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우타는 요모가 집에 돌아가고 난 후 혼자 멍하니 그것들을 지켜보곤 했다. 기념품들이, 대화들이 늘어 가면 늘어갈수록 우타의 기분은 점점 더 미묘해졌다.
인간은 피해야 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린 인간이라고 마음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우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럴 때면 우타는 아주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 숨을 참았다. 마치 자신이 익사를 당하기 직전의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최대한 숨을 참았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숨을 참아서 죽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타는 차가운 바닷물을 들이마시며, 검푸른 물의 흐름을 한없이 바라보곤 했다.
“나, 우타를 좋아하는 것 같아.”
우타가 그렇게 자신을 다스리는 동안, 요모는 얼굴을 발갛게 붉히며 우타에게 자신의 오래된 마음을 털어놓았다. 이래서 애들이란. 우타는 속으로 작게 웃었다.
“왜?”
“왜, 라니. 좋아하는데 이유라도 있어?”
“나는 어린애랑은 안 만나는데.”
“그럼 내가 어른이 되면, 나를 좋아할 수 있어?”
“응.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렌지.”
자신이 하는 말은 어디까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 진심일까? 우타는 어른이 되면 요모가 자신 같은 것은 잊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래 주기를 바랐다. 인간의 기억 속에서 오래 남아봤자 얻는 것은 없앨 수 없는 흉터밖에 없었다.
“빨리 어른이 되면 좋겠다.”
“렌지가 어른이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을 거야.”
“분하네, 뭔가.”
우타의 마음도 모르고 요모가 볼멘소리를 했다. 그래도 기다릴 거야. 그때까지. 요모의 목소리에 묘한 확신이 있어서, 우타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 앞으로는 매일 우타한테 좋아한다고 말할 거야.”
“그래도 소용없어.”
“알아. 그냥… 내가 잊고 싶지 않아서 하는 말이니까.”
요모의 말에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우타의 손이 푹 젖어있어서, 요모의 머리에도 바닷물이 잘게 맺혔다. 우타는 이번에는 요모의 말을 믿었다.
아무리 그래도 인사로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건. 우타는 요모가 좋아해, 따위의 말을 하며 동굴로 들어올 때마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인사로는 조금, 그렇지 않을까…….
우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웃었다. 요모의 표정이 진지해서 우타는 더 웃음이 났다. 그래서 더욱 해야 할 말이 있었다. 평소처럼 요모가 자신의 곁에 앉았을 때, 우타는 잠시 눈을 깜빡여 맑은 물 아래를 바라보았다.
“렌지, 인어가 언제 죽는지 알아?”
“…나이가 들면?”
“나 몇 살 살았게.”
“그… 30년?”
렌지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몇 살 정도 더 올려서 나이를 말했다. 설마 40대는 아니겠지. 아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요모는 우타가 왜 갑자기 인어들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지 알 수 없었음에도 꽤 진지하게 그의 질문에 답을 했다.
“렌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랑 나이가 같을걸.”
거짓말. 요모의 말에 우타는 고개를 저었다. 요모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보고 우타는 슬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렌지, 인어는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이 죽어버리면 물거품으로 변해서 죽어. 렌지는, 내가 죽어버리면 좋겠어?”
요모는 긍정의 대답도, 부정의 대답도 하지 않았다. 요모는 이제야 우타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잘못이었다. 요모는 주먹을 꼭 쥐었다가 폈다.
“인어의 지느러미를 먹으면… 평생 살 수 있다던데.”
“그런 건 어떻게 알고 있담.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면서.”
“우타.”
우타는 오른손을 뻗어 요모의 입술을 막았다. 요모는 먹먹한 기분으로 우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타의 시선이 요모의 시선과 맞닿았다. 우타의 손에는 바다의 짭잘한 냄새가 아주 옅게 묻어있었다.
“렌지, 평생을 산다는 것은 렌지의 생각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과정이야. 지금까지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도 죽지 않을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래도 괜찮아.”
“렌지, 렌지 곁에 있던 사람들이 죽어 없어지는 거야.”
“대신에 내 곁에는 우타, 네가 있잖아.”
우타는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요모가 우타의 입술을 막았다. 충동적인 첫 키스였다.
“그리고 어차피 내 곁에는 아무도 없어. 우타 빼고.”
우타는 눈을 깜빡여 요모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자신이 언젠가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영겁의 세월을 혼자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목숨을 바쳐 사랑할 사람이 이 어린 인간이라니.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입술을 한 번 더 찾았다.
“이걸 먹으면 렌지는 이제 어른이 되는 거야.”
우타는 힘을 주어 뜯어낸 자신의 지느러미를 요모에게 건넸다. 벌건 핏자국이 바닷물에 섞여 흩어졌다. 요모는 양손으로 우타의 지느러미를 받았다. 인어의 지느러미는 생각보다 저 작고 여렸다.
“아프지 않아?”
“아파.”
우타의 표정은 지금껏 요모가 봐왔던 어떤 표정보다 가장 아프고 슬퍼 보였다.
요모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우타의 지느러미를 삼켰던 그 날 밤, 요모는 꿈에서 우타를 봤다. 그것이 자신이 우타와 입을 맞췄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지느러미를 먹었기 때문인지 요모는 알 수 없었지만 요모는 꿈속에서 반갑게 우타를 맞이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요모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것이 어른이라면, 요모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그리고 평생 어른으로 살아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먹었어?”
“응.”
평소처럼 요모가 인사 대신 좋아해, 하고 말하기 전에 우타가 먼저 요모에게 꺼낸 말이었다. 요모는 작지만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그리고, 축하해. 인간이 아니게 된걸.”
“그것 말고 다른 걸 축하해 줘.”
“어떤 거?”
“…이제 우타 네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
우타는 요모의 말에 기분 좋게 웃었다. 그렇지, 내가 어른이 된다고 그랬구나. 요모는 여전히 희미하게 얼굴을 붉히는 아이였다.
“그것도 축하해.”
“다른 말로.”
“이래서 어린애들은 싫다니까. 사랑해, 렌지.”
렌지, 나 사랑한다는 말 처음 해봐. 우타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요모가 나도, 하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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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짓는데 함께 힘을 써주신 으흐님과 하프님께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제목 넘 뜬금없이 갈증으로 정해졋고 이건 저의...게으름이 맞습니다.. (머리 박기)
인어>물가>성인식>세이렌>키르케>스틱스(강의 맹세)>Morendo>목말라 죽다>스틱스 강을 마시기> 걍 갈증으로 하자.. (힘들다)....
지난한 과정이엇습니다..... 근데 그런 것치곤 글이 아주 맘에 들게 나오지는 않아서 (눈물 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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