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13권의 이야기 #진단메이커
너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Y A G I
삶의 바닥에 닿았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란 게 있었다. 요모 렌지는 발을 우뚝 멈췄다. 갖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감각이 요모의 신경을 거칠게 찔러대고 있었다.
“우타.”
“역시 렌지구나.”
그림자 속에서 우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항상 그렇듯 이 상황을 자신이 주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태연한 미소였다. 요모 렌지는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피에로의 방향과 목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 요모의 눈앞에 있는 우타는, 그의 오랜 친구인 우타가 아니라 피에로라는 조직에 속해있는 우타라는 구울이었다.
“켄을 따라가야겠어.”
“당연히 안 되는 거, 알지?”
카네키 역시 삶의 바닥에 닿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요모는 그런 그의 직감을 믿고 그를 식량조에서 이탈할 수 있게 도왔던 것이었다. 요모가 카네키의 일부러 카네키의 마지막을 배웅한 것은 같은 감각을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모습을 한 번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우타가 여기 나타난 이상, 어쩌면 카네키의 끝은 이미 예견된 것일지도 몰랐다. 요모는 필사적으로 그것을 뒤집어야만 했다. 카네키는 운명 따위에 굴복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요모 자신도 그랬다. 이 세상에 미리 정해진 것은 없었다. 삶은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엮인 것이라고, 요모는 믿었다.
우타는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겼다. 요모는 그가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만큼 뒤로 물러섰다. 보이지 않는 긴장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두 사람의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우타가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이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같네. 기억해?”
“그걸 어떻게 잊겠어.”
“기억해주고 있다니까 뭔가 기쁘네.”
우타는 여전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만약 여기서 요모가 먼저 공격을 한다면, 우타는 저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요모의 공격을 모두 피하거나, 반격을 할 것이다. 그렇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어쩌면 우타는 그때 끝내지 못했던 싸움을 이제야 끝내려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렌지는 그때 내가 어떻게 그렇게 강하냐고 물어봤었지. 그때는 대답 안 해줬는데, 지금 와서 답해도 괜찮을까?”
요모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타는 천천히 원을 그리듯 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집착하지 않으면 돼. 집착하지 않으면 강해질 수 있어.”
“우타.”
“렌지. 나는 렌지를 소중하게 생각해. 물론 카네키도 그렇지만, 내게는 렌지가 더 소중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지금 물러서 주면 렌지는 살려줄 수 있어. 렌지. 이건 친구로서 하는 말이 아니야. 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야.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렌지는 정말로 죽을지도 몰라.”
우타의 나긋한 목소리가 요모의 명치를 아프게 두드렸다. 이런 때 왜 우타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떠오르는 걸까. 그냥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있으면 좋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럴 때.
“렌지는 어떤 선택할 거야?”
“나는… 집착하지 않으면 강해진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어.”
“오, 그렇다면?”
“강해지려면 집착해야 해. 내 삶에,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삶에.”
“그런 삶은 재미가 없잖아.”
우타는 발을 뚝 멈췄다. 요모의 바로 앞이었다. 요모는 우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우타의 날카로운 눈꼬리가 조금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유감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오답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요모는 정답을 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기 때문에.
“나는 재미로 살아가는 게 아니야.”
“그런 모습이 재밌는 거, 알아? 열심히 살아보려고 버둥거리는 그런 모습이?”
“그래서 나에게 좋아한다고 얘기한 건가?”
요모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우타와 친구로 지냈던 시간들, 그리고 애인으로 지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우타에겐 모두 그런 것이었나. 그러나 우타는 바로 표정을 굳히고 아니, 하고 답했다.
“그런 거였으면 이런 선택지도 안 줬어. 나는 렌지를 아직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렌지의 앞에 있을 수 있는 거야.”
요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진심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렌지. 다시 한번 더 물어볼게. 정말로 피에로에 들어올 생각은 없어?”
아주 어렸을 때 들었던 질문을 이런 때 다시 듣게 될 줄이야. 요모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타는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네, 우리는.
“렌, 나는 기왕이면 네 옆에서 웃고 싶었는데. 어쩌면 이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우타가 손을 뻗었다. 요모는 그것을 피하려 했지만 우타의 손이 빨랐다. 우타는 요모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랑해, 렌.”
“…마찬가지야.”
그들의 마지막 말이었고, 마지막 입맞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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