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쿄구울 전력 60분 : 돌담길  # 고교생 AU

 

 

 

상승기류

 

Y A G I

 

커다란 눈송이가 하늘에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요모는 눈을 끔뻑이며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하늘이 세상을 낮게 가리고 있었다. 요모는 슬쩍 눈을 돌려 우타를 바라보았다. 날씨가 제법 추워졌지만 우타는 여전히 교복 앞섶을 풀어헤친 채 다니고 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요모는 하얀 숨결을 뱉으며 생각했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요모도 우타도 둘 다 딱히 어떤 동아리에 들지 않아 두 사람의 하교는 항상 남들보다 빨랐다. 요모는 한산한 하굣길을 좋아했다. 우타의 집으로 가는 길의 중간에 있는, 요모보다 키가 아주 조금 더 큰 돌담길에 하얗게 눈이 쌓이고 있었다.

, 그거 알아?”

어떤 거?”

가만히 쌓인 눈을 바라보고 있던 우타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요모를 바라보며 말했다. 요모는 조용히 우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재미있는 게 생각난 모양인지, 우타의 표정에는 그 특유의 미소가 만연하게 퍼져있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돌탑을 쌓으면서 소원을 빈대.”

그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거지.”

요모는 흠. 소리를 냈다. 사실 소원이고 어쩌고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동하지 않았다. 그저 요모는 별 이유를 대지 않고도 우타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다는 게 좋았을 뿐이었다. 아무런 의심을 사지 않고 얼굴을 이렇게 마주 보고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흔치 않았다.

우타가 사는 곳과 요모가 사는 곳이 정반대에 있음에도, 요모가 그것을 숨기고 우타와 함께 하교를 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면, 그 얼굴을 볼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지니까.

왜 하필이면 돌탑일까.”

쌓는 데 공을 들여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런가, 하고 우타가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뭔가를 생각하더니 요모의 어깨에 손을 턱 올리며 평소보다 조금 더 톤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렌지도 해볼래?”

너는?”

좋아. 누가 더 잘 쌓나 내기하는 거야.”

요모는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주위에 있는 돌을 최대한 쌓아서 탑을 쌓았지만, 애초에 이런 길에 돌탑을 쌓을 만한 돌이 많을 리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의 돌탑은 낮고 어딘가 허술해 보였다. 우타는 그것들을 보며 맑게 웃었다. 내리는 눈과 비슷한 느낌의 웃음이었다.

둘 다 별거 없네.”

이래서는 소원 들어주러 오다가도 가버리겠다.”

그건 좀 싫은데. 우타의 말에 요모는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비록 결과물은 이래도 나름 열심히 쌓은 건데. 그래서 요모는 갑자기 자신이 쌓은 돌탑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그것이 문득 우타를 향한 자신의 마음에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집에나 가자.”

.”

두 사람은 미련 없이 다시 발을 옮겼다. 아까보다 조금 더 엷게 쌓인 눈이 두 사람의 발아래에서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렌지는 무슨 소원 빌었어?”

그런 건 원래 말 안 하는 거잖아.”

그래도. 소원이 이뤄질지도 모르잖아.”

요모는 잠시 우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잔뜩 호기심이 동한 표정이었다. 요모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냐. 말 안 할래.”

그럼 나도 내 소원 말 안 해줄 거야.”

그러시던지.”

아쉽긴 했지만 우타의 소원을 듣는 대가가 자신의 소원을 말하는 것이라면, 요모는 과감히 그것을 포기할 수 있었다. 우타는 자신이 우타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건데, 어떻게 그 소원을 말할 수 있을까. 요모는 자신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괜히 그 소원이 이뤄지는 상상을 해서 그랬다.

공연히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요모는 우타의 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얼른 나오기를 빌었다. 요모는 발갛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을 그저 추위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우타가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이쪽으로 갈게.”

, 잠깐만.”

두 사람은 평소처럼 갈림길에 서서 인사를 나누려 했다. 우타가 요모를 잡지만 않았더라도 요모는 우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이 가지 않을 골목의 입구에 서서 아주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둘이 함께 걸었던 돌담길을 혼자서 되돌아 걸으며 우타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복기하려고 했다.

우타가 요모의 뺨에 입을 맞추지만 않았더라도 아마 요모는 평소처럼 그렇게 우타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을 터였다. 요모의 차가운 뺨에 닿는 우타의 입술은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요모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참아버렸다.

, 하고 우타의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요모는 그 찰나의 순간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것만 같았다. 우타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요모에게 말을 건넸다.

너무 쉬운 소원은 빌지 말았어야지. 모처럼의 기회였는데.”

내 소원, 그게 아니었는데…….”

진짜? 그럼 뭐였는데?”

잡는 거.”

요모의 말에 우타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요모는 괜히 고개를 돌려 우타를 바라보지 않았다. 진짜, 너무하다니까. 우타는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너무 쉬운 소원이잖아 그건.”

내 소원 말했으니까. 우타 네 소원도 말해줘.”

요모는 괜히 부루퉁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요모는 자신의 심장이 또 눈치 없이 뛰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타가 자신과 비슷한 소원을 빌어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요모는 그런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우타는 일부러 뜸을 들이다 소중한 것을 말하는 것처럼 요모의 귓가에 손을 대고 작게 자신의 소원을 속삭였다.

렌이 사는 쪽으로 하교하는 거.”

알고 있었어?”

. 꽤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왜 지금까지 얘기를 안 해 준거지. 요모는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자신이 꼭꼭 감춰두고 싶었던 걸 제일 찾지 말아줬으면 하는 사람이 찾아버린 게, 괜히 신경에 걸렸다.

우타, 너는 눈치가 너무 빨라.”

그래서 싫어?”

아주, 아주, 아주 조금.”

렌지가 좋아서 렌지 한정으로 눈치가 빠른 건데.”

요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떨어지는 눈을 맞으며 우타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싫어?”

……아니.”

역시 렌지는 좋다니까.”

우타가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요모가 좋아하는 우타의 모습이었다. 하기사 싫어하는 모습이 존재할 수 있을 리도 없었지만. 요모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타는 요모에게 한 발짝 다가가 아까와는 반대쪽 뺨에 입술을 맞댔다.

이건 서비스야.”

요모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우타의 입술이 닿은 곳이 어쩐지 간질간질한 것만 같아 요모는 손끝으로 그곳을 만지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만 했다.

내일은 손잡고, 렌지 집 쪽으로 가는 거야.”

.”

잘 가, 렌지. 내일 봐.”

우타.”

?”

이번에는 요모가 우타를 불러 세웠다. 우타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요모를 바라보았다.

   “내일도해 줘.”

   “뭐를?”

   요모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우타가 꽤나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알았어. 더 장난 안 칠게. 내일도 해줄 거니까. 기대하고 있어, .”

   요모는 우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얀 눈에 가려 우타가 사라졌을 때 요모는 그제야 우타가 입을 맞췄던 자리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어째서인지 아직까지도 그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서, 요모의 심장이 또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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