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Y A G I
변화의 순간을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이토리가 반쯤은 질질 끌며 데려온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새벽의 새파란 꿈속에서 너는 울고 있었다. 굳이 너의 꿈을 보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냥, 그랬다.
렌지, 너는 내가 살아온 흔적이구나. 나는 서서히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며 너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즐길 수 있을까. 언제까지 내가 이 상황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어쩌면 너를 처음 만난 그때부터 에로스의 화살은 내게 겨눠져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결코 다룰 수 없는, 그런 감정이.
“우타.”
너의 술버릇은 질리도록 즐거웠으나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너는 불콰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술에 취해 있었다지만 그 짙은 회색의 눈동자만은 또렷하게 나를 향하고 있었다. 너는 내 어깨를 껴안았다. 나는 얼떨결에 그의 품에 안겼다. 그의 삶의 무게가 무겁게 나의 삶과 겹쳐지고 있었다.
“나를 떠나지 말아 줘.”
“내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하면?”
나는 그 순간 왜 그가 이런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지, 렌지에겐 안 된 일이었지. 내가 일부러 렌지를 피한다는 건. 하지만 나는 두려웠다. 렌지를 향한 마음이 너무 커져가는 게 두려웠다. 나는 바뀌어 있었다. 그것을 내가 너무도 잘 알아서, 나는 도무지 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피했던 것이 너에게 이런 결과를 주었나.
“내가 아는 우타라면 그럴 리 없어.”
“어떻게 그렇게 나를 믿는 거야?”
“우타 너는, 지금껏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으니까.”
나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눈에 열이 올라 뜨끈뜨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너의 손을 잡고 침대로 향했다. 너의 곁에 누워서, 내 팔을 베고 너를 바라보았다.
“일단 자, 렌지.”
“너는 내가 싫어진 거야?”
너는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입술을 움직였다. 네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들이 내게 박혀 들어왔다.
“나한텐 아직 네가 너무 소중한데.”
너를 재우고 난 새벽, 나는 밤새 너를 떠올렸다. 네가 내게 내려준 수많은 커피의 향기를, 너와 함께 살을 섞을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곤히 잠든 너를 보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상을.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내 기분이 어땠는지 너는 알 수 있을까. 내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너의 기분은 어땠을까. 나는 네가 깨어나면 기억하지도 못할, 꿈속에서 너의 눈물이 멎기를 바라며 네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커피 내려 줘?”
“응.”
아침이었다. 너는 꼭 술을 마시고 나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 거면 아예 마시지를 말든지. 나는 웃음기를 띤 얼굴로 너를 바라보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누워있는 너를 보면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보고 싶었어.”
문득 너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나는 커피를 내리던 와중에도 너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너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자고 일어나면 없을 줄 알았거든.”
“자기가 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너는 내 말을 듣는 편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너는 내가 커피를 내밀고 나서야 얼굴에서 손을 떼어냈다. 생각 외로 네 얼굴은 평소와 별다름이 없었다. 왜 굳이 가려야만 했는가,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그저 내 얼굴을 보는 게 힘들었던 걸지도. 나는 컵을 들고 조심스럽게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너는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한 번 크게 했다. 오늘따라 커피 향이 좋았다. 웬일로 네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기에 나는 커피를 마시며 눈동자만 옮겨 너를 바라보았다. 애석하게도 네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어지러워.”
“숙취?”
“조금. 계속 컨디션이 안 좋았거든.”
“나 때문에?”
“응.”
나는 짧게 웃었다. 천하의 렌지를 이렇게 다를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네. 너는 내 말에 답하지 않고 그저 커피만을 마셨다. 나는 문득 네 얼굴이 보고 싶어서 괜히 너의 머그와 나의 머그를 부딪쳤다. 쨍, 하는 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숙취엔 섹스만 한 게 없는데.”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걸.”
“당연하지. 내가 방금 만들어 냈으니까.”
내 말에 네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정도면 꽤 만족할만한 결과였다. 나는 네 머리 위에 내 머리를 가볍게 얹듯 기대었다. 너의 체온이 따끈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미안해.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면 숙취 해소 좀 도와줘.”
“그럼 힘 좀 써볼까.”
“응. 커피 다 마시고, 잠 좀 깨면.”
너와 나는 거의 동시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커피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 끝에 입술에 한 피어싱이 차갑게 제 존재를 내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렌지랑 처음으로 키스했을 때, 충동적인 그 상황에서도 렌지는 내 피어싱이 낯설다고 얘기했었지.
나는 괜히 네게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졌다.
“뜬금없이.”
“그냥 말해보고 싶었어.”
“그거 알아? 네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한 거, 이번이 처음이야.”
“그랬나?”
너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너는 내가 내린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사랑한다는 말 좋아해, 렌?”
“응.”
“나도 이제 좋아해.”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되는 감각,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쭉 너를 사랑해 왔던 걸지도. 변화의 순간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나는 몸을 가볍게 빼어 너의 입술을 찾았다. 너의 입술에서는 쌉싸름한 커피의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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