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원 이메레스

 

 

"힘들면 도망칠 수도 있어"

 

Y A G I

 

 

죽음 이후에도 그는 떠돌고 있었다. 아리마 키쇼는 어쩐지 낯선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리마는 그 낯섦을 생각했다. 아마 자신의 뒷모습을 볼 일이 거의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았다. 특히 자신의 젊은 시절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으니 그런 낯섦을 느끼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리마는 조용히 푸른 머리의 소년을 따라갔다. 아리마의 기척을 느꼈음이 분명한데도 소년은 뒤돌아 아리마를 보지 않았다. 한동안 두 사람은 그저 같은 길을 걸었다. 아리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익숙한 거리였다. 여태껏 자신이 구축했던 수많은 구울 중 하나를 발견하게 되는 거리였다.

그러니까 곧 이 거리에는 죽음의 색이 넘쳐흐를 것이라는 말이었다.

소년은 소년이 겪었던 수많은 죽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자신을 구성하는 가장 큰 무언가라도 된다는 것처럼. 아리마가 보기에 그는 죽음에 집착하고 있었다. 애증이라는 표현이 더욱 적절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른 생명을 빼앗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치가 인정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아리마가 그 무게를 모를 리는 없었다. 아리마는 그러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진 존재였다. 아리마는 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 죽은 뒤에도 이런 것을 보아야만 하는가. 아리마는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에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런 일을 꾸민다면 신이 아니라 악마겠지. 아리마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아리마는 이 상황을 끝내고 이제는 그만 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아리마, 하고 소년을, 자신을 불렀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황폐한 눈동자가 아리마를 향했다. 아리마는 저보다 한참 작은 소년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소년은 아리마를 올려다보았다.

힘들면 쉬어도 괜찮아.”

힘들지 않아.”

힘들다는 거, 알고 있어.”

나도 겪은 일이니까. 아리마는 그 말은 삼켰다. 소년의 시선과 아리마의 시선이 맞닿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시선이었다. 그 다름이 어디에서 오는지, 아리마는 잘 알고 있었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어.”

소년은 씹어내듯 말을 뱉었다. 낙원이라. 아리마는 쓰게 웃었다. 과거의 자신은 언젠가 낙원 따위를 믿은 적이 있었던가. 아리마는 숨을 내쉬었다. 그는 소년을 부드럽게 안았다.

힘들면 도망쳐도 괜찮아.”

어차피 우리 앞에 낙원 같은 건 없으니까. 아리마의 말에 소년은 눈물을 쏟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 이래야 아리마 키쇼지. 아리마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작은 소년의 몸을 조금 더 꽉 껴안았다.

아리마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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