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
Y A G I
2
무츠키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K군이 국어 지문을 읽고 있었다. 무츠키는 그 나긋나긋함이 좋았다. 어딘가 권태로운 것 같기도 하면서도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K군을 의식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목소리 때문이었다. 무츠키가 본 K군은 또래보다 성숙하고, 그렇기에 어쩐지 존경하게 되는 동급생이었다.
지문이 끝났고 K군이 자리에 앉으려 의자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의 고무 패킹과 나무 바닥이 끌리는 소리. 그 작은 소리 하나하나를 무츠키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미츠키는 그런 무츠키를 바라보았다. 사랑에 빠진 동생을 보는 기분이란. 미츠키는 무츠키의 시선을 따라 K군을 바라보았다. K군은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무슨 일을 하고 나면 꼭 한 번씩 하는 버릇이었다. 그 하얀 손가락과 단정한 손톱. 그 사이로 물결처럼 빠져나가는 짧은 머리칼.
미츠키는 K군의 목덜미를 보다가 문득, 자신도 그를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딱히 부활동을 하지 않는 두 자매의 귀갓길은 항상 일렀다. 야구부인지 육상부인지 하는 아이들이 운동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고, 두 사람은 그것들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미츠키는 그 국어 수업 이후부터 약간 멍한 상태였다. 내가, K군을 좋아한다고?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미츠키의 취향은 조금 더 외향적이고, 조금 더 잘생기고… 그런 것일 터인데…….
하지만 무츠키의 눈을 본 순간 미츠키는 알 수 있었다.
쌍둥이의 ‘그것’이구나.
자매는 그날따라 아무 말 없이 길을 걸었다. 무츠키는 미츠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분명했고, 미츠키는 무츠키에게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겠지.
벌써부터 바람에 더위가 실려 날아오고 있었다. 미츠키는 높이 뜬 적란운을 바라보았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미츠키는 이성 간의 사랑과 자매간의 사랑을 생각했고, 그러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있잖아. 무츠키.”
“응? 응…….”
“나 K군 좋아하는 것 같아.”
무츠키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리고 자신이 없다는 듯, 무츠키는 고개를 푹 숙였다. 새로 산 구두의 바닥이 보도블록에 닿아 조금씩 갈려나가고 있었다.
“근데 고백하진 않을 거야. K군한테.”
“…왜?”
“무츠키가 더 먼저 좋아했잖아.”
그때, 무츠키는 미츠키의 미소를 보고 심장의 한구석이 아릿하게 아파져 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 미츠키도 같은 느낌을 받고 있겠지. 그렇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겠지. 무츠키는 앙다문 입술에 힘을 주었다. 미츠키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미츠키는 그런 무츠키의 등을 껴안았다. 따스한 체온이 하복 소매의 아래, 드러난 팔을 통해 전해졌다. 그러면 됐다. 미츠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것으로 됐다고.
3
미츠키 덕에, 무츠키는 흰 머리의 소녀를 새까맣게 잊었다. 그녀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기도 했다. 지금 무츠키의 마음속에는 미츠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과 약간의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패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 소녀를 보았을 때는, 등교 때의 기억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 느껴지는 껄끄러움과 불안함. 눈앞의 소녀는 마치 장신구처럼 그것들을 매달고 있었다.
“미츠키 언니? 무츠키 언니?”
소녀는 두 사람보다 조금 더 키가 컸고 집 근처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바로 발걸음을 멈춘 무츠키와는 달리, 미츠키는 노골적인 관심을 소녀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되게 닮았네. 미츠키는 자신을 닮은 무츠키와 소녀를 번갈아 보았다. 이렇게 보면 꼭 세쌍둥이 같았다. 아니면 연년생 자매라던가, 그런 것.
미츠키의 물음에 소녀는 눈을 깜빡이곤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무츠키라고 해요.”
“무츠키?”
“예. 무츠키 토오루.”
세 사람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지금 이 상황이 꿈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러면, 미스테리한 일, 귀신이나 악령과 같은 그런 일일까. 무츠키는 저도 모르게 발을 두어 걸음 뒤로 물렸다. 자신과 얼굴과 이름이 같은 사람. 이상했다. 기분이, 너무나 이상했다.
그러나 자신을 무츠키 토오루라고 밝힌 그 소녀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놀라시는 것도 당연해요. 이게,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소녀는 시선을 잠시 하늘에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복형제, 라고 하면 좋을까요.”
“이복형제?”
미츠키는 사실 소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복형제라는 그 한 마디로 모든 게 정리되는 것 같긴 했다. 이렇게 닮은 얼굴이나, 이름이나, 그런 것들이. 몇 겹의 우연이 쌓이면 만들어질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근처에 언니들이 살고 있다기에, 언니들을 만나고 싶어서 와 봤어요.”
“무츠키…… 무츠키는 어디에 사는 거야?”
“편하게 토오루라고 불러주세요. 무츠키 언니도 있어서, 헷갈릴 테고.”
그렇게 말하며 토오루는 사람 좋은 웃음을 한 번 더 흘렸다. 그러나 무츠키는 여전히 굳어있었고, 미츠키 역시 묘하게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외모 때문에 단순히 느껴지는 어떠한 위화감, 같은 것일까. 아니면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일까. 무츠키는 미츠키의 셔츠 끝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불안할 때마다 나타나는, 오래된 습관이었다.
“앞으로 자주 놀러와도 돼요?”
미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말라, 라고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츠키의 대답에 토오루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인 모양이었다.
“다음에 또 봐요. 언니들.”
그 말을 남기고 토오루는 총총히 걸어갔다. 두 사람은 토오루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그가 코너를 돌아 그들의 눈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참고 있던 숨을 거칠게 내쉴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미츠키와 무츠키는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부모에게 토오루의 존재에 관해 물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이복형제라면, 두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일조차 두 분 모두에게 상처가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정말… 이복형제가 맞을까?”
“그렇게 닮았으니까…….”
“진짜, 나 소름 돋았잖아. 너무 닮아서. 머리색 빼고는 완전 똑같잖아.”
무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오루가 껄끄러운 건 그 때문이겠지. 그런데도 무츠키는 미츠키의 옷을 다시금 붙잡았다. 미츠키는 그런 무츠키의 손을 오른손으로 감쌌다.
자매의 밤은 그렇게 기울어갔다. 무츠키는 이 층 침대의 아래 칸에서 평소와 같이 잠이 들었다. 내일도 학교에 가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잠이었지만 마치 누가 마법이라도 부린 양 무츠키는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밤, 무츠키는 자신이 피범벅이 되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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