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이바나시_ 그림자 / 폭우 / 애드벌룬

 

 

데빌 드롭

 Devil Drop

 

Y A G I

 

  악마의 아이를 만난 것은,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이상 기후로 인해 끝없이 폭우가 쏟아지게 된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았던 때였다. 나는 검은색 장우산을 쓰고 있었다. 쏟아지는 비가 바지 끝단을 차게 적셨다. 후두두두, 하고 우산에 빗방울들이 몸을 부딪치며 죽어갔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 올 때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란 것이 이제는 재미없는 농담처럼 변했기 때문에 12월이 다가와도 날씨가 그렇게 싸늘해지지는 않았다. 그저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치 눈처럼 시렸다. 바뀐 것이라곤 그 뿐이었다.

  눈도 내리지 않는 나라에서는 여전히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하는 캐롤이 울렸다. 나는 동네 교회에 바로 붙어있는 골목을 걷고 있었다.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빗속에서 은은한 불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어디선가 번개가 내리쳤다. 이제 천둥번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무심히 골목의 끝을 바라보았다. 그래. 생각해 보면 그날은 이상하게도 번개가 많이 쳤다. 마치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걸 깨닫기엔 나는 너무 둔했다.

  번개가 칠 때마다 교회의 그림자가 골목 쪽으로 길게 드리워졌다. 골목의 끝이 교회 십자가 끝과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십자가의 끝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다는 듯이. 그렇게.

  눈치 없는 나는 아이에게 우산을 드리웠다. 왼쪽 어깨가 아프게 젖었다.

  “저리가.”

  아이가 웅얼거렸다. 이때 아이의 목소리가 끔찍하게 거칠었다면 나는 이대로 도망갔을까. 하지만 아이의 목소리는 푹 젖어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약간의 선민의식이 남아있는 사람이었다.

  “비오는 데 뭐하고 있어.”

  “후회할 거야.”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불길할 만큼 샛노란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나를 향했다. 그것 말고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 단지 눈빛이 불길하고 어딘가 어두운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

  번개가 한 번 더 지상에 내리꽂혔다. 어딘가의 교회에서 띄워놓았던 주 예수의 탄생 어쩌고 하는 문구가 적혀있던 빨간 애드벌룬이 번개에 맞아 강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쭉 뻗어 그쪽을 바라보았지만 더 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체구에 비해 긴 팔이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나는 세계를 멸망시킬 거야.”

  “네가 없어도 세계는 멸망할 거야.”

  눈앞의 아이가 악마의 아이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나는 이렇게 답했을까. 아이의 눈동자에서 다시 굵은 눈물이 방울져 흘렀다. 나는 말없이 아이의 머리를 꾹 눌렀다. 우는 아이를 요령 있게 달래는 방법 같은 것은 몰랐다.

  지속되는 폭우로 인해 지대가 낮은 곳은 물밑으로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고 크게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인간들은 그저 세상이 침수되어 가는 것을 힘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고, 이 작은 악마도 그러했다.

  “가자.”

  우리는 둘 다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 아니. 사람 하나와 악마 하나였다. 아이는 여전히 눈물이 그치지 않은 얼굴을 끄덕이곤 내 손을 잡았다. 비에 젖은 손은 차갑고, 작았다.

 

-

 

어지간히 흥미가 안 동하는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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