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이바나시_ 빈 병/허리/늑대

 

 

무리생활

 

Y A G I

 

 

  대한민국에서 늑대는 멸종된 것이 아니었던가.

  문을 열었을 때 버티고 서 있던 붉은 털의 늑대를 보았을 때, 나는 딱 죽겠구나 싶어 눈을 질끈 감았다. 21세기 서울. 아무리 변두리라고는 하지만 늑대에게 잡아먹힐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그 누가 있겠는가. 심지어 우리 집 근처에는 동물원 따위도 없는데. 늑대에게 산채로 씹혀먹는 감각은 어떨까. 나는 제발 늑대에게도 연민 따위가 있어서 내 목을 한 번에 부러트려 아픔 없이 죽음으로 인도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늑대는 고고한 발걸음으로 나를 지나쳐 방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나는 실눈을 떠 늑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늑대의 기다란 꼬리가 방바닥을 설설 쓸었다. 나는 천천히 현관문을 닫았다.

  그렇게 해서 늑대와 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늑대는 개과던가. 내가 늑대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주토피아>라는 영화에서 멍청하게 나왔다는 것, 정도? 누구 하나가 아우우우, 하고 울면 다 같이 아우우우, 하고 울어야하는 그런 종족이었다는 것 정도. 나는 늑대를 보고 아우우우, 하고 울어보았지만 늑대는 하품만 쩍 하고 말 뿐이었다. 실로 무심한 늑대였다.

  TV도 없는 집이어서, 나는 휴대전화로 인터넷 기사를 뒤져봤지만 어떤 신문사에서도 늑대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공병 수거 비용이 작년보다 조금 더 비싸졌다는 기사만 몇 개인가 발견했을 뿐이었다. 쓰레기의 가치는 점점 올라가는데 내 가치는 아직도 제자리라는 사실만을 깨달은 나는 전원 버튼을 눌러 휴대전화의 액정을 꺼버렸다.

  “너는 이름이 뭐니.”

  늑대가 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별로 답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늑대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니.”

  늑대는 또 하품을 쩍, 했다. 나는 방 한 켠에 마치 소파처럼 자리하고 있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어보았다. 막 따뜻함이 느껴져서 생명의 소중함이 차오르고 어쩌고, 그런 느낌은 별로 들지 않았다. 그저 푸석한 늑대의 털이 손바닥을 간질였을 뿐이었다. 늑대의 고요한 노란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영화였다면 저 눈동자에서 어떤 자연적인 메시지를 읽어 종족을 넘은 우정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 유감스럽게도 나는 영화의 인물은 아니었다. 에이, 그럼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나는 그냥 늑대의 허리에 냅다 머리를 대고 누워버렸다. 따뜻하고도 물렁한 감촉이었고, 늑대가 숨을 쉬는 소리가 묘하게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늑대도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생물이라지. 이 녀석은 어쩌다 그 무리에서 떨어져, 여기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걸까. 그러고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도. 나는 어쩌다 무리에서 떨어져 이 허름한 단칸방에 일생을 맡기고 있을까.

  내일은 근처 슈퍼에 공병이나 팔러 가야겠다.

  “, 스팸 먹을래?”

  하웅, 하고 늑대가 둥근 소리를 냈다. 나는 그것을 OK 싸인으로 받아들여 몸을 일으켰다. 스팸 귀한 건데. 아니다, 오늘 첫 날이니까. 이 정도는 해도 괜찮지, . 나는 스팸을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대접에 넣어 늑대 쪽으로 밀었다. 짠맛도 모르는 늑대는 찹찹, 하는 소리까지 내며 게걸스럽게 스팸을 먹었다.

  나는 그런 녀석의 허리를 다시 베고 누웠다. 어쨌든, 당분간은 이렇게 둘이서 함께 지내야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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