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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A G I

 

 

   고백하자면 그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단순히 어디에 감정 이입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나는 일부러 그를 읽지 않으려고 애썼다. 빤히 보이는 그의 감정도 나는 그저 그렇구나, 하고 마음을 멀리 두고 바라보았다.

   아마 지금 주제로 쓰고 있는 드림 커플인 아리치카가 없었으면 나는 아직도 그때와 비슷하게 그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이유로 더는 그가 나오는 장면을 보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다.

   수많은 창작물에서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인물들은 모두 죽었다. 어쩌면 내가 수없이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이었기에 나와 닮은 인물들을 그렇게 집요하게 좋아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스무 살을 넘기기 전에 나는 이미 내가 사랑했던 그들의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그들이 죽지 않으면 도리어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곤 했다.

   마치 내가 손대지 않아야 할 것에 손을 대어버리고 만 것만 같은 느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금 말을 꺼내는 장르는 참으로 편했다. 항상 죽음이 존재하는 서사.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 불안한 상황에서 오는 이상한 편안함. 그러니까 나는 지금 그의 죽음을 아주 편하게 받아들였다는 말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나를 싫어하게 될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리치카를 접한 이후 나는 어떻게 되었는가. 물론 그 장면을 떠올릴 때 눈물샘이 차오르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애초에 나는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죽을 때도 고작 눈물 몇 방울을 흘리다 다시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나 그의 죽음은,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죽음과는 뭔가 달랐다. 눈물도, 슬픔도 그다지 크지 않은 죽음이지만 그의 죽음은 내 안에서 너무 커다란 이미지로 남아버렸다.

이미지.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이유도 없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수많은 이미지처럼 그의 죽음도, 그의 감상도,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지금까지 몇 편의 아리치카를 쓰면서 너무 그들의 관계에 집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으며 아직까지 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지는 못해도 심장 어딘가가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는 것처럼, 그가 어떤 이유로든 되살아나 다시 고통받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 그저 내가 사랑하는 그 드림의 이야기에서만, 행복해지거나 슬퍼지거나 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그가 존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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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노트가 아니라 수기가 되어버렸지만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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