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음

 

 Y A G I

 

   나는 오전 두 시에 꼭 내가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한참 예전에 죽어 사라진 작곡가들을 클래식을 들었다. 그것에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누군가는 깊이 잠들어 있고 누군가는 아직 하루를 마무리할 준비도 끝내지 않은 시간이라서, 클래식이라는 내게는 이질적인 장르가 끌릴 뿐이었다. 나는 매일 알지도 못하는 다른 노래를 침대에 누워 들었다. 납작한 베개 두 개를 겹쳐서 베고, 나는 플레이어의 자그마한 바가 흘러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적막이었다. 분명히 노래는 틀어져 있는데 그 시간의 내게 온 세상은 적막이었다.

 

언젠가 제목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노래를 길가에서 들었을 때만 해도 그랬다. 카페도, 고급 식당도 아닌 옷가게였다. 다른 가게들이 이미 유행에 빠르게 녹슬어버린 노래를 틀고 있을 때 그 가게는 클래식을 틀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시멘트벽에는 차가운 회색 페인트가 발려 있었고 너무 밝은 노란빛 조명이 가게 안의 옷들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니 노랫소리가 조금 더 크게 들렸다. 가게 주인은 계산대에 기대어 서서 유일한 손님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색하게 옷들을 둘러보았다. 내 발자국 발자국 마다 주인의 시선이 달라붙는 것 같아 나는 내 사이즈도 아니고 내 취향도 아닌 옷을 얼른 집어 들어서 계산대로 향했다.

이만오천 원입니다.

카드로 계산할게요.

그럼 이만칠천 원이에요.

나는 별수 없이 이만오천 원이었다가 이만칠천 원이었다가 하는 옷을 사게 됐다. 바스락거리는 플라스틱 봉투가 내 손에 쥐어졌다. 스피커에서는 높은음의 현악기 소리가 쟁쟁 울리고 있었다.

저기요.

나는 직원을 불렀다. 직원의 진갈색 눈화장이 노란 조명 밑에서 미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노래 제목이 뭐예요?

차이코프스키요.

차이코프스키의, 뭐요?

몰라요.

그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그도 나와 동류일지도 몰랐다. 차이코프스키. 나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그 이름을 되뇌었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오전 두 시에 차이코프스키의 노래를 들었다. 나 역시 여전히 노래의 이름은 몰랐다. 그 가게에서 산 옷은 내게 너무 크고 무거웠지만 그래도 가끔 차이코프스키, 하는 이름을 나직하게 말할 수는 있는 정도였다.

차이코프스키.

오전 두 시의 미묘한 어둠 속에서 현악기가 조용히 흐느끼고 있을 때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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