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 모드 플레이어
Y A G I
언제부터 그의 사랑한단 말이 낯설게 들린 걸까. 그것은 나 스스로 찾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다지 찾고 싶지 않았던 질문이라고 말하는 게 옳았다. 만약 그 답을 찾게 되면 나는 더 이상 그와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었을 테니까.
낯설음이란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낯설음이란 곧 새로움이었고 새로움이란 우리의 몇 년이 지난 연애에 존재하기 힘든 것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나를 다스렸다. 왜냐하면 네가 계속해서 나를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사, 랑, 해. 그 사이사이에 곰팡이처럼 피어있는 이질감이 내 핏줄을 타고 흘렀지만 나도 그저 태연하게 사랑해, 하고 그 답에 대답할 뿐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이제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것 역시 내가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동화 속의 앨리스처럼 홀로 이상한 나라에 떨어져 버린 것일지도. 하지만 현실에는 시계를 들고 지각이다, 따위를 외치는 토끼 같은 것은 없었다. 현실은 언제나 이야기나 게임보다 하드 모드였다. 어쩌면 내가 그만큼 불운한 것일지도 몰랐지만.
왜 너는 나를 사랑해?
언젠가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딱히 고르기 힘든데. 그는 어물쩍 답을 넘겼다. 그 모습을 보고 그도 나의 사랑한다는 말이 낯설게 들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유지되고 있었다. 유지된다는 말을 쓰기 부끄러울 정도로, 우리는 서로에게 등을 보이며 지내고 있었다.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에 그건… 너무나 끔찍하고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는 아주 재미없는 연극을 하고 있었고 그는 이 연극을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정권을, 책임을 내게 넘기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는 끝도 없이 저열해졌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당연하게도 똑같이 저열한 내가 있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낯선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우리가 너무 닮아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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