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이바나시 : 꽃밭/내일/손등
흉터
“아래층은 다 꽃밭이래.”
그의 뜬금없는 말에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적성 검사가 딱 하루 남은 날이었다. 하늘은 전에 없이 맑았다. 기후 시스템은 마치 다음 날에 있을 적성 검사를 응원이라도 하는 것처럼 적성 검사 전날에는 항상 그랬다. 밤에는 심지어 수많은 유성마저 떨어져 내렸다. 과거의 전설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적성을 얻길 빌기라도 하라는 듯이.
“누가 그랬는데?”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간 애가 그랬어.”
“그 애는 그걸 어떻게 알았대?”
“그 애보다 먼저 아래층으로 내려간 애가 말해줬대.”
나는 뭐야, 하고 불만을 표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끝도 없는 거잖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작 머리 위 몇 킬로미터 위에 유리 돔이 세워져 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높고 파란 하늘이었다.
“그래서 너는 아래층으로 가고 싶어?”
“잘 모르겠어. 별로 가고 싶진 않은데.”
“나도.”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모든 기억을 소거 당했다. 어른들은 아래층은 이전의 기억 따위가 필요 없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얘기했고 우리들은 그 말을 순순히 믿었다. 기억 따위가 필요 없는 일이란 건 무엇일까. 해마다 소수의 몇 명이 우리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비밀스러운 일을 처리했다. 매년 누군가는 그 비밀스러움 때문에 아래층으로 자처해서 내려가곤 했지만, 그와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호기심보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컸다. 기억을 잃는다. 가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근데 꽃밭이라면, 보고 싶긴 하다.”
“온갖 종류의 꽃이 다 핀대. 봄에는 봄꽃이, 여름에는 여름꽃이.”
“가을에는 가을꽃이, 겨울에는 겨울꽃이?”
내 말에 그가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나는 그가 좋았다. 이왕이면 내일 있을 적성 검사 때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과거의 전설처럼 유성에 소원을 빌 생각이었다. 그와 같은 일을 하게 해달라고.
“아래층에 내려가면 무슨 일을 할까?”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 거겠지. 이 사회에 도움이 될.”
“만약에 우리 둘 다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나는 그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적성 검사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갈 아이들이라는 건 거의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 세계에 제대로 섞여들지 못하는 자들.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나와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갈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우리의 이름도 다 까먹겠지.”
“그러면 손등에 서로의 이름을 적어두자.”
“적성 검사 때 들키면 어떻게 해.”
“흉터로 남기면 상관없지 않을까.”
“아픈 거 싫은데.”
“나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소리를 내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리를 잠시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다시 그들의 일에 집중하며 그들이 가야 할 길을 걸어갔다.
“그럼 이름 말고, 새끼손가락에 아주 작은 상처를 내는 거야. 조금만 아프지만, 우리끼리는 알아볼 수 있도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디선가 작고 날카로운 돌멩이를 하나 가져왔고, 우리는 서로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아주 작은 상처를 냈다. 딱지도 앉지 않고 상처 특유의 붉은 기운만 오래오래 남아있다가 그대로 흉터로 자리 잡아버리는 그런 상처를.
“이것만은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억할 수 있을 거야.”
“왜?”
“아팠으니까.”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죽어가는 별에 그와 내가 나란히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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