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02. 22. 산다이바나시 : 캐비닛/조각/비난

 

 

 

조각

 

 

 

 

   나비의 날개 조각을 모아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누군가는 나를 강력하게 비난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비난을 견뎌내며 나비의 날개 조각을 모았다. 나비의 날개를 가르는 것은 나비의 생, 그 자체를 가르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나는 그 미물을 삶을 지옥으로 만들며 묘한 희열을 느꼈다.

   누군가는 나를 지옥에 갈 놈이라고 말하겠지만 어차피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지옥행 편도 티켓을 품에 안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그런 말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내가 나비 몇 마리의 삶을 짓뭉개지 않는다 한 듯 지금과 무엇이, 얼마나 다르겠는가.

   내 삶의 흔적들(그리고 그들의 죽음의 흔적들)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오픈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에, 꽃무늬가 그려진 아주 아름다운 박스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학교 캐비닛이었다. 누구나 열 수 있지만 누구나 열어보지 않으며 내가 나의 캐비닛을 연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굳이 그 속을 들여다보지 않을 그런 곳. 나는 수업을 위해 매일 몇 번 씩이나 캐비닛을 열며 내가 모아온 나비 날개를, 그 날개 가루와 함께 공기 중에 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것은 일종의 과시욕이었다. 나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종종 교실에 혼자 남아 떨어져 가는 햇볕에 아주 얇은 나비의 날개 조각을 비춰보곤 했다. 요새 선캐쳐가 유행이라지. 햇볕을 담아 무지개 빛 잔상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게 한다는 그것. 나비의 날개 조각도 그와 비슷했다. 살아있는 나비나 박제된 나비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빛의 파장. 저물어가는 붉은 햇볕이 금방이라도 불태워질 것 같은 날개 조각과 분진을 스치고 지나가 오묘한 빛깔을 내 얼굴에 흩뿌렸다. 나는 눈을 감고 그 빛을 눈꺼풀 아래에 가득 담았다. 그것은 어지럼증과 비슷한 환상이었고, 사랑이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분진을 손에 묻힌 채 나는 오늘도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서로 붙어 하나의 커다란 나비가 될 것 같았던 그 빛들이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오늘도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클락션을 강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누군가가 괴상하게 조형된 다리를 건너며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렸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죽거나 다쳤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장면을 똑똑하게 목격하고 있을 터였다.

   내가 나의 삶과 나의 죽음을 햇볕에 비춰보는 것처럼, 그들도 이 태양과 함께 저물어가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붉은 태양을 마주보았다. 태양조차 영원히 살 수 없는 세계에서 내가 만약에 자옥에 가게 된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종류의 벌을 얼마큼이나 받게 될까. 그 사이에서 삶과 죽음이라는 것을 얼마큼이나 많이 볼 수 있게 될까.

   나는 나비의 날개 조각을 모으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작은 상자가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워질 때 나는 죽을 것이며 그러면 나는 다른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지옥을 떠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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