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Y A G I

 

 

 

요모 렌지는 굳은살이 박인 우타의 손끝을 매만졌다. 얼핏 봤을 때는 마냥 섬세하게 생긴 손인데, 만져보면 또 그 느낌이 달랐다. 요모는 벗은 몸으로 자신을 보고 누워있는 우타의 얼굴을 잠시 살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우타의 고른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굵은 빗방울이 요란하게 컨테이너의 지붕을 때리고 있었지만 요모는 그 사이에서도 쉽게 우타의 숨소리를 걸러낼 수 있었다. 아마도 오랫동안 그를 알아왔고, 안아왔기 때문이리라. 요모는 우타의 손을 쓰다듬던 것을 멈추고 잠시 빗소리에 신경을 두었다. 금세 멎을 비는 아닌 듯싶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우타가 우산을 들고 온 것 같지도 않았다. 요모는 제 우산을 우타에게 들려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타가 비 핑계를 대고 늦은 저녁까지 자신과 함께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우타에게도 우타의 삶이 있는 법이었지만, 가끔씩은 상대에게 그 삶의 궤도에서 틀어지기를 종용하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특히 그것이 연인도 친구도 아닌 애매한 관계일 때면, 무언가 조그마한 확신이라도 얻고 싶은 그런 관계일 때면 더더욱 그렇지 않은가.

요모는 여태껏 자신이 원해 왔던 것을 떠올렸다. 어렸을 때 같았으면 아마도 복수를 가장 먼저 떠올렸겠지. 그때의 그는 증오가 뭉쳐서 태어난 존재였다. 아리마 키쇼라는 남자를 쫓긴 하였으나, 요모는 사실 그 증오가 비단 그 한 남자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닌, 이 세계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를 증오하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가. 세계를 증오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증오한다는 것과 같았다. 어린 요모는 그것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버린 요모는 더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항상 빛은 있었다. 이렇게 쏟아붓는 장마도 언젠가 그치는 것처럼.

장마. 요모에게는 장마 같은 것이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 증오라는 것이 그의 삶의 한 궤도를 넘어서는 일일지도 몰랐다. 속에 있던 모든 것을 쏟아내고 텅 빈 곳에 새로운 것을 담아내는, 그런 과정이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요모는 자신이 그 과정을 그래도 잘 버텨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것을 요모는 부정하지 않았다. 요시무라 씨가 요모를 붙잡아 놓는 존재였다면 우타는 반대로 요모가 마음껏 날뛰며 쌓아뒀던 것을 해소할 수 있게 해준 존재였다. 요모가 감춰왔던 욕망들이 우타의 손을 거쳐 나름의 방법으로 (그 방법이 과연 건전했는가는 둘째로 치고) 표출되었었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도 그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우타는 과연 요모를 사랑하는가. 요모는 그것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요모 본인부터가 우타를 사랑하는지 확신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겠는가. 요모는 그저 서로 몸을 섞으며 갈증 비슷한 것을 해소하는 이 관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겐, 구울에겐 그런 것이 더 어울렸다. 사랑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눈앞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방식에 더욱 걸맞은 것이었다.

렌지.”

깼어?”

, 하고 우타는 아직 잠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타는 습관적으로 요모의 품을 찾았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비가 오는 바람에 습도가 높아서 함께 살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배어 나오는 날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서로의 존재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사랑 같은 것이 없더라도, 그 행동의 근간에 약간의 불쾌함이 섞여 있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삶이란 으레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요모는 우타의 척주를 손끝으로 따라 그리며 그 살의 감촉을 다시 떠올렸다. 어쨌든 그들은 살아나가고 있었다. 그 방식이 어떠한가는 그들에게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 세상에서 사는 구울의 삶이란 게, 바로 그런 것이었으니까.

비가 쏟아지네.”

오늘부터 장마래.”

렌지 살은 차갑구나.”

우타의 말에 요모는 그를 더욱 꽉 껴안았다. 그의 마른 몸이 요모의 몸에 달라붙듯 와닿았다.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뒷머리를 빗어 내리듯 쓰다듬었다. 아주 귀한 것을 다루는 마냥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우타 네 살은, 차갑지는 않은 것 같아.”

그럼. 내가 누군데.”

오늘 안 나가면 안 돼?”

렌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이야.”

비가 내리는 김에.”

나쁘지 않지. 이렇게 비를 피하는 것도.”

우타는 요모의 손을 찾았고, 그 손에 제 손을 끼워 넣어 깍지를 꼈다. 요모의 심장 박동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전해져 왔다. 살아있는 감각. 그것으로 충분한 삶. 두 사람은 습관적으로 혀를 섞었다. 빗방울은 여전히 컨테이너 지붕을 수도 없이 때리고 있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