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모 렌지 생일 축전

 

너에게 꽃다발을 안겨줄게

 

Y A G I

 

 

1

 

그러고 보니 렌 생일은 언제야?”

이토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요모는 눈을 깜빡였다. 4구에서 이들과 함께 지낸 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요모는 또로록 눈을 굴리곤 일부러 이토리 쪽을 바라보지 않으며 질문에 답했다.

칠월.”

칠월?”

이토리의 뒤집힌 목소리가 요모의 귓가에 울렸다. 요모는 아주 가볍게 인상을 썼다. 생일 같은 것은 요모의 삶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누나가 살아있을 때야 그것이 의미 있는 일이었지. 누나는 꼭 그런 걸 챙겨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칠월 며칠?”

구일.”

한참 지났네. 왜 진작 말 안 했어?”

우타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토리는 양손을 제 허리에 얹고 요모를 바라보았다. 요모는 조금은 머쓱하게 말을 꺼냈다.

원래 생일 같은 거 안 챙겨서.”

지금까지 우타랑 나랑 생일 챙기는 거 봤으면서.”

그냥 너희는 그런가 보다 했지.”

너희라니. 이제는 우리지.”

우리, . 요모는 이토리의 말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럴 사이가 됐다는 건가. 확실히 4구의 친구들은 자신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긴 했다. 정착할 생각이 없었던 이곳에 남아있게 된 것도 그들 때문이었으니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챙겨줄까, 렌지 생일.”

좋지. 사람들 불러. 생일 축하 노래라도 불러야지.”

요모는 손을 뻗어 지금 당장이라도 사람들을 모으러 가려고 하는 이토리를 제지했다. 애초에 생일도 아닌데 축하 노래를 뒤늦게 부르는 것도 좀 그랬고.

됐어, 챙기고 싶으면 다음 생일 때 챙겨 줘.”

아무튼, 렌은 너무 뻣뻣해서 탈이야.”

뻣뻣한 것과 생일을 말하지 않은 것이 과연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 요모는 알지 못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생일을 챙기는 게 과연 얼마 만인가……. 요모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먼 과거도 아닌데 어쩐지 기억이 흐려진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요모는 머릿속으로 그것을 판단하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우타와 이토리는 다음 요모 생일을 어떻게 하면 축하할 수 있을지를 토의하기 시작했다.

요모는 그런 그들을 보며 생각을 멈추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을 살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임이 분명했다. 아직까지 그 과거를 완전히 벗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 정도로도 요모는 만족할 수 있었다.

 

 

2

 

다음 칠월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요모는그 사이에 4구에서 안테이크로 적을 옮겼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타나 이토리와도 어느 정도 거리가 생겼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마냥 멀게 느껴지는 것은 또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특히 우타는 종종 안테이크로 찾아와 4구의 근황을 얘기하곤 했다. 4구는 요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크게 다르진 않은 듯했다. 워낙 많은 구울들이 왔다가 떠나가는 그런 곳이어서 그럴까. 차이가 있다면 간혹 요모를 그리워하는 구울들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였다.

걔들을 위해서라도 좀 더 자주 들려.”

카페 일 안정되고 나면.”

새로 나기 시작한 검은색의 머리 뿌리가 언뜻언뜻 보이는 우타가 카페의 바 자리에 앉아 요모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다. 우타는 4구의 대장 노릇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왜 그랬냐는 요모의 질문에, 우타는 그저 재미없어졌다는 대답만 내놓을 따름이었다.

요모는 그 대답이 너무나 우타답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의 무언가를 묻지는 않았다. 대신에 우타가 스스로 풀어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컵의 물기를 닦으면서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있잖아, 렌지.”

?”

마스크 가게를 하겠다는 이야기 바로 다음에 이어진 대화였다. 요모는 컵에 향해 있던 시선을 우타에게로 옮겼다. 우타의 눈빛이 카페의 하얀 조명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 렌 집에서 자고 가도 돼?”

요모는 그제야 그날이 자신의 생일 바로 전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3

 

이건 내 생일 선물.”

생일인데 너무하게 대하는 거 아니야?”

요모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몇 방울 떨군 눈 밑을 손등으로 닦았다. 짠 눈물이 손등에 엷게 달라붙었다. 요모의 위에 올라타듯 그를 안고 있었던 우타가 몸을 빙글 돌려 요모의 옆에 누웠다. 아직 정돈되지 않은 두 사람의 숨이 공기 중에서 서로 섞였다.

그래서 싫었어?”

싫다고는 안 했어.”

그 말에 우타가 작게 웃었다. 그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요모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다가, 눈을 돌려 문득 시계를 찾았다. 그저 삭막한 요모의 방, 이라기도 어려운 컨테이너였지만 그런 집에도 시계 하나쯤은 있었다.

“12시 지났네. 생일 축하해, .”

우타는 그렇게 말하며 요모의 뺨에 쪽, 입을 맞췄다. 천장을 보고 있던 요모가 낮게 웃었다.

왜 웃어?”

낯간지럽게.”

하긴,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같이 잔 사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우타가 웃음을 터트렸다. 사귀지는 않았지만 같이 잠은 잔 사이. 우타는 그 미묘한 관계가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우타는 요모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까는 그렇게 요모를 안았으면서도 그랬다. 요모는 차게 땀이 말라가고 있는 우타의 허리를 껴안았다.

오늘은 우리 동네에 들를 거지?”

, 그럴 거야.”

우타의 웅얼거리는 물음에 요모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답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20구에서의 삶이 싫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모는 그 삶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4구에서의 삶이 그렇게 나빴던 것도 아니었다. 요모에게 있어서 그 둘은 다른 삶이었다. 비교하기 어려운 층위에 있는 그런 삶.

지금 자신의 삶은 20구에 위치해 있었지만, 생일 하루 정도는 4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은 일이었다.

 

 

4

 

요모의 생일 때마다 두 사람이 몸을 섞는 것은 일종의 관례처럼 몇 년 동안 이어졌다. 물론 그들은 생일이 아니어도 관계를 가지긴 했다. 하지만 생일의 밤은, 무언가 달라도 달랐다. 단순히 기분 탓일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요모는 그런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특별한 날의 묘하게 특별한 쾌감. 요모는 그것이면 충분했고 우타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요모만의 착각일지도 몰랐다.

우타.”

생일이니까.”

꽃다발의 포장지가 요모의 손 아래에서 바스락거렸다. 요모는 우타가 제게 건넨 꽃다발을 마치 이상한 것인 양 빤히 내려다보았다. 수없이 많은 생일을 지나왔지만 우타에게 꽃다발 같은 것을 받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요모는 꽃다발에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억지로 우타에게로 옮겼다.

여름의 뜨거운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맞았다. 우타는 조금은 주저하듯이, 조금은 곤란하다는 듯이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저기, .”

.”

그냥, 좋아한다고.”

나도.”

요모의 대답에 우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깜빡여 요모를 바라보기만 했다. 찰나의 시간과 긴 시간, 그 사이에 있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우타는 다물고 있었던 입술을 열었다.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고 대답하는 거지?”

내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어 보여?”

렌지 눈치 없잖아.”

그 말에 요모는 한숨을 쉬듯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은 누구나 알아들어. 요모의 말에 우타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는 발을 옮겨 요모에게 좀 더 바싹 다가가 붙었다. 꽃다발의 포장지가 우타의 몸에 닿아 아주 작게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저기, 키스해도 돼?”

언제는 허락 맡고 했어?”

새삼스럽게 허락 맡고 하고 싶어서.”

우타의 말에 요모는 픽 웃으며 눈을 감았다. 요모는 결코 웃음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어쩌면 우타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지금까지 요모가 기다려왔던 말일지도 몰랐다. 우타의 말처럼, 눈치가 없어서 그 말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아챈 것일지도.

우타는 쓰다듬듯 요모의 양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요모는 눈을 감고도 자신에게로 가까이 다가온 우타의 기척을 알 수 있었다.

우타는 입을 맞추기 직전, 요모의 숨과 자신의 숨이 하나로 합쳐지는 그 순간에 요모에게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이라도 말하듯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생일 축하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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