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에게

 

Y A G I

 

0

 

태초에 죽음의 신과 쾌락의 신은 한 몸이었다. 그것에 이유는 없었다. 그저 세상이 처음 구성되었을 때 삶과 함께 태어난 죽음의 품에 쾌락이 안겨져 있을 뿐이었다. 이 세상 어느 때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은 만큼 죽음을 알지 못했지만, 그들은 죽음을 결코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죽음은 그들에게 약속된 순수한 쾌락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죽음의 신의 몸이 둘로 갈라지며 두 쌍둥이가 태어났다. 그들의 몸에 각각 죽음과 쾌락이 깃들지 않은 것은 누군가의 실수라고도 볼 수 있는, 하나의 우연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는 죽음과 쾌락의 신이 두 명이 되었다.

세상에 죽음이, 그리고 쾌락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1

 

   요모가 그를 만난 것은 요모 자신이 만들어 낸 시체들의 산 위에서였다. 요모는 자신의 것이 아닌 피를 뱉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사위가 조용했다. 요모는 고개를 꺾어 뻐근한 몸을 풀었다.

   “이런, 이미 신의 곁으로 가버렸네.”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요모가 그 장소를 떠나려 했을 때였다. 그는 발소리조차 없이 요모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요모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는 요모가 죽인,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손목을 들었다가 툭 놓았다. 그의 몸을 잡아먹을 듯 휘감고 있는 문신과는 대조적으로 남자는 계절과 맞지 않게 헐렁한 차림이었다.

   마르고 키도 자신보다 작은 남자에게 요모는 어째서 두려움을 느꼈는가. 요모는 뒤로 한 걸음 발을 물리다 질퍽한 피 웅덩이를 밟고는 가볍게 인상을 구겼다.

   “걱정하지 마. 오늘 내가 데리러 온 건 네가 아니야.”

   남자의 미묘하게 높은 톤의 목소리가 겨울 공기를 울렸다. 요모는 의문을 알 수 없는 남자의 말에, 여전히 몸의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지 마. 아무리 그래도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야.”

   “무슨.”

   “그리고.”

   그리고, 하는 말로 남자는 요모의 입을 막았다. 그는 요모를 향해 느리게 다가왔다. 요모는 그런 그를 피할 수도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피할 수 없었다는 말이 더욱 가까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보다 압도적인 존재를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두려움. 요모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바로 그 두려움이었다.

   “다음에 봐, 렌지.”

   남자는 그 말과 함께 요모의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남기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요모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그가 어째서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다음에 만나자는 말은 무엇인지, 왜 자신에게 키스를 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요모는 그가 입술을 남기고 간 곳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의 몸에서는 희미한 단 냄새가 난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어떻게 그 냄새를 맡았는지는, 역시 요모가 알 수 없는 것이었지만.

   요모는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그 냄새는 마치 운명처럼 자신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따라다니고 있던 냄새였다.

 

 

2

 

요모는 그의 생각보다 이른 시일에 남자를 다시 만났다. 그곳은 요모가 제 손바닥의 금을 내려다보듯 볼 수 있는, 도쿄의 어느 변두리에 얽혀있는 골목이었다. 그곳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깨진 술병의 조각들이 아주 천천히 바람에 의해 깎여갔고, 살아있는 생물의 내장처럼 꼬여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파이프에서 후끈한 열기가 주위를 데우고 있었다.

그 남자를 보고 털 사이사이에 까맣게 먼지가 내려앉은 길고양이 한 마리가 몸을 둥글게 말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남자는 그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남자는 키스를 하고 있었다. 요모가 잘 알지 못하는 두 명의 남자가, 자신의 눈앞에서 진득하게 입을 맞췄다. 간간히 신음소리를 닮은 희미한 숨소리가 들렸다. 요모 렌지는 어째서인지 그들에게서 눈을 떼어내지 못했다. 이런 것을 보는 게 처음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랬을까.

뒤늦게 생각해 보면 스스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요모 렌지는 그들의 키스를 끝까지 바라보았다. 남자는 평생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입술을 떼어내며, 눈동자만을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시선. 요모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두려움 따위가 아니었다. 두려움보다 조금 더 안쪽에 있는 것. 자신이 탐하면 안 되는 에덴동산의 사과 같은 것.

그 감정이 쾌락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요모 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남자와 입을 맞췄던 사람은 아주 느리게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었고, 남자는 방금까지 입을 맞추고 있던 그에게 더 이상의 관심을 주지 않았다. 요모는 본능처럼 그의 죽음을 깨닫고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너는정체가 뭐지?”

진짜 알고 싶어? 알면 후회할 텐데.”

남자는 자신의 앞에 떨어지듯 놓인 죽은 이의 손을 가뿐하게 건너 요모에게 다가왔다. 요모는 그의 또렷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해야 했다. 남자는 부드럽게 요모의 양 뺨을 붙잡고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마치 곧 키스라도 할 것처럼. 요모는 몸을 뒤로 약간 뺐지만 그렇다고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키스를 하는 대신, 요모의 귓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속삭였다.

나는 죽음과 쾌락의 신이야.”

?”

, 신을 진짜로 보는 건 처음이라서, 안 믿어지는 거야?”

정말로 신이 있다면, 그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남자의 모습에게서 경건함은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분위기라면 아주 커다란 불길함, 또는 그것과 비슷한 크기의 농밀함이었다. 죽음이란 그런 것인가, 하고 요모는 생각했다.

죽음의 신이어서 사람들을 죽이는 건가?”

, 그렇지.”

사람을 죽이는 기준은 뭐지?”

내 마음.”

그의 말에 요모는 가볍게 표정을 구겼다. 남자는 태연하게 웃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그래? 너도 네 마음에 따라서 사람들을 죽이곤 하잖아.”

요모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와의 첫 만남이 그가 만들어낸 시체의 산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죽음의 신이기 때문에, 요모는 그에게 있어서 죽음과 관련된 거짓말이 통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느꼈다.

그 감각은 본능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의 죽음이라면 행복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동시에 요모의 머릿속을 채웠다.

볼래?”

그 말을 하며 남자는 아, 하고 입을 벌렸다. 퍼뜩 정신이 돌아온 요모는 무심코 그의 입속을 바라보았다. 아주 단정하고 흰 그의 치아가 가장 먼저 요모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한 마리의 뱀처럼 남자의 입속에 자리하고 있는 그 붉고 부드러운 혀.

아니, 실제로 그곳에는 뱀이 있었다. 남자의 목구멍을 타고 올라 차가운 비늘을 빛내는, 새까만 비늘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뱀 한 마리가. 남자는 곧 입을 다물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뱀을 다시 삼켰다.

다시 뜬 그의 눈동자도, 붉은색이었다. 아까의 그 뱀과 똑같은 온도의 붉은빛.

나랑 키스하면, 이 뱀이 너의 몸으로 들어가서 너를 안쪽에서부터 잡아먹는 거야.”

하지만 저 사람은.”

그걸 알면서도 아무도 내 키스를 피하지 않는 거지.”

그 정도의 쾌감이니까. 그 말을 하며 남자는 죽은 이를 돌아보았다. 그 얼굴에는 어떠한 유감이나 애도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생물을 보는 그 정도의, 별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그런 시선. 남자는 다시 요모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 내가 너를 죽일까 봐 겁나?”

요모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대답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거짓말은 바로 간파되어 버리니까.

유감스럽게도 나, 지금 너한테는 별로 키스하고 싶지 않아.”

남자는 이번에도 또, 다음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요모는 멀어져가는 그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뒷모습이 아주 작아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남자가 남기고 간 달큰한 향기가 요모의 코끝을 스쳤다.

요모는 몸을 숙여 남자가 죽인 사람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은 마냥 행복해 보였다. 그의 죽음이 정말로 그렇게 행복한 것이었는지까지는 요모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요모는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그는 언젠가는 분명 만날 것이 분명한 죽음의 신의 얼굴을 다시 한번 더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선사하지 않은 쾌락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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