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에게 2

 

Y A G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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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죽음의 신과 쾌락의 신은 한 몸이었다. 그것에 이유는 없었다. 그저 세상이 처음 구성되었을 때 삶과 함께 태어난 죽음의 품에 쾌락이 안겨져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죽음과 쾌락의 신이 죽었다. 그들은 이 세계에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두 죽음의 신의 마지막을 본 한 명의 인간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우연이었으나, 결국 그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처럼 그 인간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러나 더 이상 죽음에 쾌락은 없었다. 죽음의 신은 더 이상 쾌락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 인간은 죽음의 신의 자리를 차지했다. 사람들은 조금씩 죽음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죽음 이후에 남는 것은 더 이상 쾌락이 아닌, 슬픔이었다.

그는 죽음과 눈물의 신이었다.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트리며 인간들의 영혼을 거두는 신이었다. 그럴 때마다 하늘에서는 소나기가 쏟아져 내렸다.

 

 

1

 

요모 렌지는 검은 드레스 셔츠에 검은 정장을 맞춰 입은 채 검은 장우산을 들고 지하철에 타고 있었다. 요모는 새로운 죽음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수단이 꼭 지하철일 필요는 없었지만, 그는 지하철을 타는 것을 즐겼다. 별 이유는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 죽은 눈을 하고 지하철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모는 이 지하철이 커다란 관처럼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지하철은 편했다. 다른 곳보다 죽음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지하철에도 생기가 넘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그 생기가 주위의 다른 사람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다. 요모는 어쩐지 그런 생기 넘치는 인간들이 불편했다. 요모의 눈에 그들은 죽음이나 슬픔 같은 것과 잠시나마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것이 질투라면 질투였다. 요모가 날 때부터 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일지도 몰랐다. 아마 자신 이전의 죽음의 신이라면 이런 것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바짝 다가가겠지.

요모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말 그대로 그가 죽였으니까. 요모는 고개를 문 쪽으로 돌렸다.

요모가 그를 본 것은 슬슬 지하철에서 내려 조금 더 생생한 죽음이 있는 곳으로 바로 움직일까 고민하던 때였다.

우타.”

요모는 자기도 모르게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우타, 타우, 우타, 타우. 자기가 사랑했던 죽음의 신의 이름들. 요모의 목소리에 문가에 서 있던 사람이 몸을 돌려 요모를 바라보았다.

많아봤자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머리띠로 앞머리를 뒤로 넘긴 아이였다. 요모가 알고 있는 우타의 모습과는 달랐다. 하지만 요모는 그것이 우타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요모가 죽음의 신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타이기 때문이었을까.

문 가까이에 서 있던 우타가 몸을 움직여 요모의 앞에 서서 요모를 올려다보았다. 요모는 그 도발적인 시선을 슬쩍 피했다.

아저씨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 아무것도.”

하지만 제 이름, 불렀잖아요.”

그냥 해본 말이야.”

누가 사람 이름을 그냥 불러요.”

마침 지하철 문이 열려서 요모는 우타를 지나쳐 문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그러나 역시 우타는 집요하게 요모의 뒤를 따라 개찰구 밖까지 쫓아왔다.

사람들이 몰려 들어갔다 몰려나오는 지하철 입구에서 요모는 뒤를 돌아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의 눈동자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힘이 들어있었다.

왜 자꾸 따라오는데?”

아저씨가 제 이름을 불렀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그냥, 아저씨는 궁금하지 않아요? 처음 보는 사람이 이름을 불렀는데.”

그 말을 하며 우타는 빙긋 웃어보였다. 우타는 그런 녀석이었지. 호기심이 위험보다 훨씬 더 앞서는 그런 타입의.

요모는 우타를 내려다보았다. 하필이면 이름과 성격이 같은 걸까, 아니면 신이 죽으면 이렇게 환생하게 되는 걸까. 아직 자신의 죽음을 맞이해본 적이 없는 죽음의 신 요모 렌지는 우타를 내려다보며 그런 고민을 했다.

고민을 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

너는 모르겠다정말.”

저도 아저씨 모르는걸요.”

우타가 태연하게 말했다. 요모는 깊은숨을 내뱉었다.

아저씨 말고, 렌지. 요모 렌지.”

요모 렌지.”

편하게 렌지라고 불러.”

그래, 렌지.”

우타는 서슴없이 요모의 이름을 불렀다. 요모에겐 어려운 이런 일들을 우타는 곧잘 해내곤 했다. 이번의 우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말이 많이 짧아지지 않았어?”

그래서 싫어?”

그 말에 요모는 답하지 않았다. 싫으냐 좋으냐를 굳이 따지자면, 좋았다. 요모는 물끄러미 우타를 바라보았다. 우타는 고개를 들어 요모를 보면서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우타.”

요모가 나지막하게 우타의 이름을 불렀다. 날이 좋았는데 요모는 우산을 폈다. 우타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 일련의 행동들을 바라보았다. 요모는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며 말했다.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그 순간, 요모는 우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우타는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요모는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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