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구울_전력 60분  #10대 우타X20대 요모

 

 

 

흔적

 

Y A G I

 

  이것은 환상일지도 모른다. 요모 렌지는 입을 꾹 다문 채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익숙하다면 익숙하고 낯설다면 낯선 아이였다. 아이는 무언가를 투정하듯 입을 비죽 내밀고 요모를 노려보듯 빤히 보았다.

  “…우타?”

  “지금 내 이름만 몇 번째 말하는지 알아?”

  어린 우타는 손등으로 제 뺨에 묻은 핏물을 닦아내려 하였으나, 핏물은 닦이기는커녕 도리어 어린 우타의 하얀 뺨 위에서 빨갛게 번져버렸다. 어린 우타의 발아래에는 도대체 몇 명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인간의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흘러넘치는 선혈과 달큰함을 넘어선 인간의 향기. 요모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인가. 유년 시절의 우타가 20구에 나타나다니. 요모는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요모가 내린 결정은 일단은 우타에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이었다.

  “렌지가 웬일로 전화를 다 하네?”

  아주 짧은 신호음이 이어진 후에 우타는 전화를 받았다. 우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어린 우타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듯했다. 요모는 급한 마음에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바로 뱉었다.

  “여기 우타가 있어.”

  “응. 나 여기 있어.”

  우타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어리둥절함이 느껴졌다. 요모는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냐, 아무것도 아냐.”

  “싱겁긴. 렌지는 항상 그렇다니까.”

  우타는 아주 미미하게 웃음기가 도는 목소리로 말했다. 요모는 순간 이것이 그저 요모의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환상이라면 우타에게 바로 상담하기는 이르지. 금방 사라질지도 모르고. 요모는 휴대전화에서 귀를 떼곤 다시 우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우타.”

  “아저씨는 누군데? 왜 내 이름을 알아?”

  어린 우타는 사라질 징조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고 다만 팔짱을 낀 채 요모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요모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렌지.”

  요모는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움직여 천천히 자신의 이름을 발음했다. 과거의 언젠가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우타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했던 그 어린 시절이 요모의 머릿속에서 뭉근하게 떠올랐다.

  “렌지. 그렇구나.”

  내 친구 이름도 렌지인데. 어린 우타는 속삭이듯 우타에게 말하곤 씩 웃어보였다. 발밑에 나동그라진 인간의 시체 따위에 이제 완전히 신경이 떨어진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볼일이야?”

  “여기서는…… 그런 포식 행위는 안 돼.”

  요시무라 씨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20구의 공공연한 규칙이었다. 인간과 함께 생존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요모는 습관적으로 그 규칙을 말하면서도 어린 우타에게 이것이 통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요모가 알고 있는 어린 우타란 그런 규칙 따위에 묶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째서?”

  “이유를 설명해 주면, 들을 거야?”

  “아니.”

  “그럴 것 같았어.”

  요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 적막은 대부분 어린 우타가 요모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고 요모는 그 시선을 어색하게 피하는 식이었다.

  이 시체들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지. 그 전에 이 우타는 어쩌면 좋지. 요모는 어린 우타의 맹렬한 시선을 의식하며 생각했다.

  그때 요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린 우타이기에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요모는 고개를 돌려 어린 우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어린 우타는 슬며시 웃어보였다.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한 듯한 표정이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어.”

  요모는 몸을 숙여 어린 우타의 두 뺨을 부드럽게 감싸고는 어린 우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붉은 바다가 조각난 채 박혀 있었다.

  “뭔데?”

  “다 큰 우타에게는 말하지 마.”

  요모는 어린 우타가 고개를 끄덕일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곧 어린 우타는 약간은 마뜩찮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요모는 혀로 입술을 한 번 적시곤 아주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타는 어째서, 항상 그렇게… 곧 없어질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

  어린 우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빛나는 눈동자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한참을 그저 눈만 깜빡이던 우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렌지는 내가 없어지는 게 두려워?”

  “두렵다기보다는.”

  “보다는?”

  “쓸쓸하니까.”

  요모는 어린 우타가 보고 있는 자신의 눈동자에도 그 조각난 바다들이 비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서로가 공유하는, 그래서 서로가 볼 수 있는 조각들이었다.

  “보통은 그런 감정을 두렵다고 얘기해.”

  어린 우타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요모는 무어라 더 말을 하려 했지만, 어린 우타의 검지에 그 말이 막혔다. 어린 우타는 요모에게 바싹 몸을 붙이곤 속삭이기 시작했다.

  어린 우타의 목소리는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그 말들은 요모의 귓가에 박히듯 들어왔다. 요모는 눈을 질끈 감고 어린 우타의 어깨를 껴안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태 그대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걱정 마. 나는 사라지지 않아.”

  곧 부서질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심지 같은 것이 있었다. 모든 것이 깨지고도 꿋꿋이 우타라는 한 인간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심지 같은 것이. 우타의 말에 요모는 힘껏 그 심지를 껴안았다.

 

'FAN-CAKE > 도쿄구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타요모] 진눈깨비  (0) 2019.01.19
[우타요모] 거짓말쟁이의 피  (0) 2018.08.25
[우타요모] 열감  (0) 2018.08.03
[마츠우리] 상사병  (0) 2018.07.19
[우타요모] 이제는.  (0) 2018.07.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