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타요모

 

 

진눈깨비

 

Y A G I

 

 

  이번 겨울은 내내 눈이 아닌 진눈깨비만 쏟아졌다.

  일상으로의 복귀는 아주 느리지만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우타는 요모에게 커피 한 잔을 권했다. 네가 내린 것보다는 맛이 별로겠지만, 그래도. 우타의 말에 요모는 묵묵히 잔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우타의 가게는 지하에 있었지만 그래도 꽤 따뜻한 편이었다. 요모는 코트의 단추를 하나 풀어냈다.

  이렇게 오래 있을 예정은 아니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카페 일이야 잠시 토우카에게 맡겨두어도 크게 문제는 없을 테니까. 커피는 오늘따라 맛이 썼다. 원두를 너무 많이 볶았기 때문인 듯했다. 그것은 우타답지 않은 실수였다.

  하긴, 세상이 바뀌고 우타는 점점 더 이전의 그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외모부터가 그랬다. 우타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짧게 자른 머리가 그의 귀밑을 스쳤다. 그러고 보면 최근 ‘습격’도 없었지. 요모는 잔을 내려놓았다. 잔과 받침이 부딪치는 소리가 쨍하고 울렸다.

  “…렌, 나는 네 친구야?”

  “그게 나를 부른 이유인가?”

  한참의 적막 뒤에 나온 우타의 말이었고, 너무도 짧은 시간 만에 튀어 나간 요모의 대답이었다. 요모의 대답에 우타는 요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냐.”

  우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우타는 유난히 우울해 보였다. 요모는 그런 우타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본디 위로 같은 것에 재능이 없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우타가 저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 가줘.”

  우타의 말에 요모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을 올랐다. 여전히 진눈깨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채우지 않은 코트의 단추 틈으로 내리는 진눈깨비가 떨어져 들어갔다. 요모는 단추를 채우는 대신 우산을 기울이곤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 사이 우타는 요모가 남기고 간 커피를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는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우타는 손을 뻗어 요모의 커피잔을 들었다. 잔의 테두리에 아주 희미하게 커피 자국이 남아있었다. 우타는 그곳에 제 입술을 대었다. 쓴맛이 강하게 올라왔다.

  우타는 이제 더는 요모를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

  하늘이 흐렸다. 오늘은 눈이 오면 좋을 텐데. 요모는 우타의 가게 앞에서 우산을 접었다. HySy - Art mask studio. 요란하게 장식된 글자가 요모의 눈에 비쳤다. 요모는 손끝으로 H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태양을 어루만졌다. 우타의 가슴팍에 있는 것과 똑같은 무늬였다.

  요모는 굳이 노크를 하지 않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부터 그래왔으니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노크는 하고 와줄래?”

  그러나 우타는 그렇지 않은 듯 보였다. 손님이 없어서 다행인가. 우타는 작업대에서 손을 털고 일어섰다. 요모는 조금은 머쓱한 듯 바닥의 체스 무늬 타일의 틈을 바라보다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우타는 요모의 코앞까지 다가와서야 입을 열었다.

  “무슨 볼일이야?”

  “그냥.”

  “렌지답지 않네.”

  우타는 그렇게 말하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곤 요모를 똑바로 바라본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나 신경 쓸 틈도 있어?”

  “무슨 뜻이지?”

  “렌지는 나 빼고 다른 모든 것을 신경 쓰느라 바쁘잖아.”

  요모는 우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우타의 말에 긍정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할 말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비쳤나? 요모는 손을 폈다가 다시 말아 쥐었다.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우타가 그렇게 봤다면 그랬던 것이겠지. 요모는 그 말의 안일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밖에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요모를 감싼 것은 자책감이었다.

  그러나 우타는 요모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듯해 보였다.

  “나는 렌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너는…….”

  “렌지를 보면 나는 나 스스로가 너무 싫어져.”

  우타는 요모를 지나쳐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달리지는 않았지만 아주 빠른 걸음이었다.

  “우타…!”

  요모는 우타를 바로 잡을 수 없었다. 그럴 권리가 자신에게 있을까. 요모는 이미 사라진 우타의 뒷모습을 그리며 지상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돌아가야 할까. 하지만 그랬다가는 우타와의 관계는 여기서 끝이다. 요모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주 느리지만 돌아오고 있던 일상에서 빠진 것이 있다면 우타의 존재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갔을 때 요모는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요모의 손에는 그때까지 꼭 쥐고 있던 우산이 여전히 쥐어져 있었다.

  요모가 우타를 찾은 것은, 두 사람이 10대를 함께 보냈던 4구의 어느 폐건물이었다. 요모는 마른 침을 삼켰다. 우타는 유리도 없는 창문에 손을 가져다 대고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머리는 왜 자른 거야?”

  요모는 우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요모의 발소리가 몇 번이나 찬 공기를 울리는 동안 우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모는 우타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우타는 멀어지지 않았다. 그저 바닥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있으면 감기 걸려.”

  “내가 감기 걸려도 아무 신경 안 쓸 거잖아.”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요모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아까보다 더 구름이 짙고 낮게 깔려있었다. 이제는 진짜 눈이 오려나. 요모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가 떴다.

  “글쎄.”

  그 말을 하며 요모는 우타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간만에 닿는 입술이었다. 이렇게 되고 나서야 그리움을 깨닫게 되는, 그런 감각이었다. 요모의 손에서 떨어진 검은 장우산이 바닥에 뒹굴었다.

  “내가 진짜 그럴 거라고 생각해?”

  한참 뒤에 이어진 요모의 물음에 우타는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요모의 옷을 조금 더 꽉 붙잡았을 뿐이었다.

  다시 축축한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차마 눈이 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유감없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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