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

 

Y A G I

 

 

13

 

  무츠키는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지는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의 시선은 불안에 가득 차 있었다. 벌써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무츠키는 힘을 주어 제 옷의 끝단을 움켜쥐었다.

  무츠키는 지금, 사사키 하이세의 집 근처에 몸을 숨겼다. 이미 교복을 입은 학생 몇 명이 무츠키를 지나쳐갔다. 무츠키는 집중하여 녹색 교복을 입은 사람들을 주시했다. 사사키를 찾는 것은 예상대로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사사키 하이세 특유의 그 분위기를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 학교 안에는 없을 터였으니.

  무츠키는 용기를 내 사사키의 앞에 섰다. 그는 모자를 쓴 무츠키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무츠키는 그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소매를 잡아끌어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섰다. 사사키는 선선히 무츠키의 뒤를 따랐다.

  “너는…… 무츠키. 무츠키 토오루지.”

  사사키의 말에 무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츠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토오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뉴스에서는 실종 상태라고 했는데, 괜찮은 거야?”

  “선배, 저랑 잠시 어디 좀 가주실 수 있을까요?”

  무츠키는 사사키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흔들림 없는 눈빛 뒤쪽은 두려움이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사사키는 그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고, 그렇기에 말없이 무츠키의 뒤를 따라 걸었다.

  무츠키는 인적 드문 골목만을 골라 걸었다. 사사키는 그런 무츠키에게 무언가 사정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째서 자신에게 무츠키가 찾아왔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그때 빌린 두 권의 책을 돌려주려고 이러는 것은 아닐 것이고. 사사키는 무츠키의 드러난 팔과 다리를 살폈지만 상처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아주 악질적인 자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거나 간간이 들려오는 소문처럼 그가 범인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일까.

  하지만 사사키는 무츠키가 범인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비록 그를 오래 알지는 않았지만, 무츠키를 보았을 때 느껴지는 느낌이라는 게 그랬다.

 

  어느 순간, 사사키는 무츠키가 향하는 곳이 학교 근처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둘의 발소리만이 정적을 채웠다. 길은 점점 비포장으로 바뀌었고 결국에는 산처럼 보이는 곳을 오르기 시작했다. 사사키는 직감적으로 이곳이 학교 근처 공원 뒤의 언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는…….”

  “제 전 남자친구가 묻힌 곳이에요.”

  K의 실종이라면, 사사키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애초에 K와는 어느 정도 친분이 있었기도 했었고. 그나저나 묻힌 곳이라니? K는 실종된 것이 아니었던가? 물론 그의 사망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초동수사에서는 실종이나 가출에 더욱 무게를 두지 않았던가.

  아니, 무츠키가 이곳에 K가 묻혀있다는 걸 안다는 건, 무츠키가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연루되어 있는가인데.

  “선배, 도와주세요.”

  “무츠키…….”

  아무래도, 나쁜 쪽으로 연루된 모양이었다.

  “이러다가 저도 선배도 죽을지도 몰라요.”

  “무츠키 언니.”

  무츠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낯선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사사키는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들이 걸어온 그 길을, 흰 머리의 소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등장에 무츠키는 마치 죽은 사람을 보기라도 한 양 눈에 띄게 두려워했다. 사사키는 그런 무츠키의 앞을 막아섰다.

  저 아이라면, 사사키도 알고 있었다.

  사사키 하이세가 자신 주위를 맴도는 소녀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다만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기에, 더는 아무 말 않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여기서 뭐해요? 무슨 말 하고 있었어요?”

  무츠키는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소녀의 모습이 점점 드러남에 따라, 사사키는 그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망치.

  이미 토오루의 시야에 들어온 이상, 도망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무츠키는 자신을 껴안아 보호하는 사사키의 얼굴을,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난듯해 보이는 토오루의 얼굴을 보았다. 사사키가 망치를 맞고 쓰러진 이후에 바닥에 그저 주저앉은 무츠키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14

 

  “정말, 두 사람을 옮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요? 무츠키 언니. 이러면 곤란해요, 정말

  “…….”

  “살려달라고요? 이렇게 일을 망치는 사람을 살려둘 필요는 없잖아요.”

  두 사람의 대화에 사사키는 어렴풋이 눈을 떴다. 머리는 끝없이 지끈거렸고, 어딘지 모를 몸의 부위는 계속해서 불편함을 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사키는 고개를 일으켰고, 의자에 손과 발이 결박되어있는 걸 깨달았다. 그 모든 행위는 무츠키를 위한 것이었다.

  살려달라고 비는 무츠키에게 다가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다 깨달은 것들.

  “너는…….”

  “하이세 오빠. , 알아요?”

  토오루의 관심이 순식간에 사사키에게로 옮겨졌다. 사사키는 토해내듯 숨을 뱉었다. 작은 조명 하나에 의지한 방은 너무나도 어두워 빛이 닿는 곳보다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다. 사사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직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의식 속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이름은 하나뿐이었다.

  “……무츠키 토오루.”

  “어머!”

  토오루는 눈에 띄게 기뻐했다. 순수한 행복이 느껴지는 웃음에, 사사키는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그러며 사사키는 곧 눈앞의 사람이, 여태껏 자신을 따라다니던 그 소녀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츠키가 아니군.”

  “맞아요. 무츠키 토오루.”

  “진짜 무츠키는!”

  “저도 진짜 무츠키에요. 무츠키 언니의 이복동생. 무츠키 토오루.”

  토오루는 무츠키의 옆에 가서 섰다. 무츠키 역시 손발이 의자에 결박된 상태였다. 토오루가 다가가자 무츠키는 눈을 질끈 감으며 눈물을 떨구었다. 그것만으로도, 사사키는 무츠키에게 토오루란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저희도 쌍둥이라고 할 만큼 닮았죠? 미츠키 언니가 없어서 참 아쉬워요, 이럴 때는.”

  “그 애는 놓아줘. 네가 원하는 건 나잖아.”

  “지금 무츠키 언니를 걱정하는 거예요? 정말, 하이세 오빠는 마음씨도 곱다니까.”

  토오루가 이런 짓을 벌인 이유를 사사키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사사키는 지난 시간 동안 무츠키에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K의 실종과 화재로 인한 가족의 상실. 그 모든 것에 저 아이가 속해있을 것이 분명했고, 그 이유는 아마도, 자신의 육체일 터였다. 가족도 재산도 없는 사사키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육체밖에 없었다.

  “하지만 있잖아요, 무츠키 언니의 역할은 이제 끝났어요. 더는 쓸모가 없다구요.”

  “무츠키 토오루!”

  사사키의 말에 토오루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토오루의 기억 속에서, 사사키가 언성을 높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 새로운 매력이란. 토오루는 지그시 사사키를 바라보았다. 피가 엉겨 붙은 희고 검은 머리카락과 어떻게든 이 상황을 헤쳐나가려고 애쓰는 눈동자.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모든 것이 영광이었다.

  “그 애가 조금이라도 다치면, 난 너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역시 오빠는, 멋있어요, 정말. 백마 탄 왕자님 같잖아.”

  “무츠키 토오루. 나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그 아이를 가만히 둬.”

  그 말에 토오루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식사를 준비해 오겠다며 어둠 속에 잠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사사키는 그 문 너머에 위로 향하는 계단이 있는 것을 얼핏 보았다. 그렇다면 이곳은 지하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아마도, 사사키 하이세의 짐작이 맞다면, 이곳은 자신의 집 지하였다.

  익숙한 잡동사니들과 분위기. 무츠키 토오루는 사사키가 가족이 없다는 것도, 심지어 사사키의 집 구조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악질적인 스토킹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선배.”

  “미안해 무츠키, 나 때문에…….”

  “아니에요…….”

  무츠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무츠키는 자기를 탓하고 있었다. 만약에 내가 사사키 선배를 찾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 밖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K라는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더라면. 그의 안에서 그의 모든 행동은 잘못으로 변질되었고 모든 악행의 원인은 그에게 있었다. 무츠키는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그런 무츠키에게, 사사키가 말했다.

  “많이, 힘들었지.”

  무츠키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미츠키의 죽음 이후 그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말 한마디가 뭐라고 무츠키의 심장을 이렇게 울린단 말인가. 무츠키는 크게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울었다.

  무엇이 저 아이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사사키는 서재에서 무츠키와 나누었던 얘기들을 떠올렸다. 그때는 그렇게, 순수하고 여려 보였는데.

  “내가 어떻게든 기회를 봐서 너를 풀어줄게.”

  사사키의 결심은 과거의 그 대화 하나로 인해 그렇게 굳어졌다.

 

'FAN-CAKE > [무츠키x3] 혈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츠키x3] 혈연 (完)  (0) 2020.08.19
[무츠키x3] 혈연 (10)  (0) 2020.08.17
[무츠키 x3] 혈연 (9)  (0) 2020.08.16
[무츠키x3] 혈연 (8)  (0) 2020.08.14
[무츠키x3] 혈연 (7)  (0) 2020.08.13

 

혈연

 

Y A G I

 

 

12

 

  자매의 방은 고요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엔 이층 침대의 위쪽을 차지하고 있던 미츠키가 아래로 내려왔고, 두 사람은 무츠키의 침대에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사사키 선배, 괜찮을까.”

  미츠키는 아무 말도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사키 하이세는 더욱 위험했다. 하지만 존재하는 것은 심증뿐, 어디에도 물증 같은 건 없었다. 물증이 있다고 하면, 두 자매가 K군을 살해했다는 증거뿐이겠지. 그리고 물론 그 증거에는 토오루가 빠져있을 것이 분명했다.

  미츠키는 입술을 씹었다. 머릿속이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답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오늘 본 사사키 선배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위험에 처한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건 도리가 아닌듯했다.

  “무츠키. 아무래도 안 되겠어.”

  “?”

  “토오루에게 더는 휘둘리기만 할 수 없잖아.”

  미츠키는 무츠키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단어들을 씹어뱉었다.

  “아무리 그래봤자 중학생이야. 키도 체격도 우리보다 작고.”

  “하지만 무서운걸…….”

  “나도 무섭지만, 지금 이대로 가면 앞으로 더 무서운 일을 하게 될 게 분명해.”

  미츠키는 바로 휴대 전화로 손을 뻗었다. 토오루의 연락처를 누르기 전에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는 용기 있게 그 번호를 눌렀다. 아주 짧은 신호음이 울리더니 곧 정적이 이어졌다. 여보세요, 같은 형식적인 인사 같은 건 없었다.

  어쩌면 그건 토오루가 더는 우리에게 자신을 감추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무츠키는 생각했다.

  “무츠키 토오루.”

  “뭔가 결심을 한 모양이네요?”

  무거운 미츠키의 목소리에 비해 토오루는 마냥 태연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해서 저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네 꼭두각시 노릇은 안 할 거야.”

  “그거, 무츠키 언니도 동의한 말이에요?”

  “뭐라고?”

  “지금 미츠키 언니만 말하고 있잖아요. 미츠키 언니의 생각을 무츠키 언니에게 강요한 건 아니냐구요.”

  “강요라니.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

  “그럴까요, 과연.”

  토오루의 말 속에는 분명 웃음이 섞여 있었다. 미츠키의 마음이 일렁였다.

  K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과연,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까. 식은땀이 흘렀다. 사정을 모르는 무츠키는 그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미츠키를 보고 있었다. 태연해져야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됐다. 미츠키의 귓가에서 토오루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무튼, 알았어요, 미츠키 언니.”

  “더는 연락하지마.”

  전화를 끊고 미츠키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무츠키는 미츠키의 잠옷 끝을 잡아끌었다. 미츠키는 자연스럽게 무츠키를 껴안아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우리 둘이 함께 있다면 괜찮을 거야. 미츠키는 주문을 걸듯 거듭 무츠키를 생각했다.

  “정말 이걸로 끝인 걸까?”

  “본인 입으로 알아들었다고 했으니, 괜찮을 거야.”

  “미츠키, 솔직히 말하면 나, 너무 무서워.”

  “괜찮아. 괜찮아, 무츠키.”

  미츠키는 다시 위쪽 침대에 누웠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적인 생활을 지켜야 했다. 수면도, 식사도, 어느 것 하나 거르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고, 미츠키는 말했다.

  하지만 무츠키는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막연한 불안함. 열려 있는 모든 가능성이 다 지옥으로 향하는 길일 것만 같은 두려움. 무츠키가 눈을 감을 때마다 어둠이 무츠키를 덮쳤고 그것이 무서워 무츠키는 감았던 눈을 다시 뜨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휴대 전화의 진동이 한 번 울렸을 때, 무츠키는 거의 소리를 지를 뻔했다. 진동은 한 번으로 멈췄고 무츠키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지만, 무츠키는 이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잠깐 나와봐요. 근처 놀이터.]

  무츠키는 바로 휴대 전화를 뒤집었다. 미츠키 말대로, 토오루에게 휘둘릴 필요는 없었다. 이런 연락쯤 못 본 척하고 있으면 되는 거였다. 되는 거였는데.

  [10.]

  다시 울린 진동에 손을 떨며 뒤집어 본 화면에는 저 문구와 사진 한 장이 보내져 있었다.

  살인. 살해. 비밀과 협박. . . . 선혈과 뜬금없이 울리던 새의 울음과 깊은 흙의 어두운색. 축축한 흙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그. 이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을 가진, .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있는 나.

  사진 속에는 K의 시체를 보고 있는 무츠키가 있었다.

 

  “, 토오루.”

  “무츠키 언니.”

  토오루는 그네에 앉아있었다. 그는 바로 자신의 옆자리를 권했다. 무츠키에게 거절할 권리 같은 것은 이미 없었다.

  “아까 미츠키 언니가 한 말, 무츠키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나도토오루가 하고 있는 행동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긴, 무츠키 언니는 남자친구가 그렇게 됐으니까요. 많이 충격이었을 거예요.”

  토오루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의외로 정상적이어서 무츠키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이 말을 하고자 나를 부른 걸까. 무츠키는 토오루의 얼굴을 보았다. 토오루는 하늘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 신이라도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하길 갈망하는 것처럼.

  “미츠키 언니,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그 말이 왜 위로가 될까.

  무츠키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토오루는 조금 거친 아이일 뿐, 나쁜 아이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오루에게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섬세한 무츠키의 마음은 토오루에게로 기울었다. 토오루는 무츠키의 표정을 보고 빙긋 웃었다.

  “…….”

  “이제 슬슬 가보는 게 좋으려나요?”

  무츠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집에 가봐야지. 미츠키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으로.

  무츠키는 토오루에게 손을 흔들곤 그네에서 일어섰다. 토오루는 무츠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대신 땅을 한 번 발로 찼다. 토오루가 탄 그네가 흔들리며 쩔렁이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 사이사이를 토오루의 작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불구경은요, 소방차가 오기 전이 제일 재밌거든요.”

 

  무츠키는 달렸다. 그 와중에 슬리퍼 한 짝이 벗겨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머릿속이 일렁였다. 마치 두뇌에 불이라도 난 것 같았다. , , 화재…… 방화.

  무츠키의 집은 이미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 비명소리가 들렸다. 이웃들이 소란스러웠다. 그중 몇 명은 무츠키를 발견하곤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소방차가 요란하게 달려왔다.

  무츠키는 다시 놀이터로 달렸다. 토오루는 여전히 그네를 타고 있었다.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요?”

  “토오루.”

  “무츠키 토오루, 연인의 상실로 인한 방화. 가족 간에 문제가 없던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쌍둥이 언니인 미츠키 토오루와 연인을 사이에 두고 불화가 있어. 그 연인은 지난 여름 실종된 K군으로 모두의 선망을 받는 아이였고…….”

  토오루의 입에서 정제된 말이 쏟아졌다. 아주 그럴듯한 기사였다. 정말로 미래의 어딘가에서 보고 온 것 같은 정교한 기사.

  “, 이런 느낌이겠지요?”

  토오루는 소리를 내 웃었다. 무츠키는 그런 토오루를 넋이 나간 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은 무대 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 무대의 계획자는 토오루였다. 신 같은 게 아니라, 무츠키 토오루, 그의 이복동생이었다. 그리고 그 이복동생의 취향은 아주아주 끔찍한 비극이었다.

  “저는요, 하이세 오빠가 정말 좋아요.”

  갑자기 웃는 것을 멈춘 토오루가 말했다.

  “책 읽을 때 그 눈빛과 다정한 목소리와, 단단한 몸매에. 어딘가 우수에 차 있는 눈동자. 기다란 손가락. 단정하게 입은 교복 아래로 보이는 손목뼈.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그 부분과 간혹 보이는 쇄골뼈.”

  저는요, 하고 토오루가 작게 말했다.

  “하이세 오빠를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것은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빛이었다.

 

 

'FAN-CAKE > [무츠키x3] 혈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츠키x3] 혈연 (完)  (0) 2020.08.19
[무츠키 x3] 혈연 (11)  (0) 2020.08.18
[무츠키 x3] 혈연 (9)  (0) 2020.08.16
[무츠키x3] 혈연 (8)  (0) 2020.08.14
[무츠키x3] 혈연 (7)  (0) 2020.08.13

 

혈연

 

Y A G I

 

 

11

 

  사사키 하이세의 방은 예상대로 깔끔했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 그렇기에 오히려 어딘가 사람 냄새가 없는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미츠키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의외로 책이 별로 없네요…….”

  “서재가 따로 있어. 아버지 책들이 많아서.”

  “서재…….”

  무츠키는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미츠키는 그런 무츠키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최근 본 무츠키의 모습 중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였다. 정말로 우리 자매는 이렇게 더 돈독해질 수 있겠지. 미츠키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빼곡히 나무가 심겨 있었다. 옆집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곳이군. 아무도 모를 이런 독립적인 공간에서조차 사사키 하이세는 자신을 완벽히 가다듬고 있었다.

 

  무츠키는 기어이 책 두 권을 사사키에게 빌리고 나서야 그의 집에서 나섰다. 책이라는 공통 주제로 두 사람은 제법 친해진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미츠키까지 신경 쓰는 사사키의 인간성이란. 직접 그를 보고 나니 괜히 그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무츠키, 이러려고 일부러 선배 집까지 따라간 건 아니지?”

  “아니, 그건 아닌데. 이야기 하다 보니까 너무 재미있어서…….”

  “간만에 웃는 얼굴 봐서 좋았어.”

  미츠키의 말에 무츠키는 조금은 수줍은 듯 미소지었다. 무츠키는 품속의 책 두 권을 보았다. 사사키와의 대화는 정말로 재미있었다. 독서를 원래 좋아하는 편이긴 했지만, 사사키의 시선으로 본 독서의 세계란, 너무도 새로웠다. 앞으로 무츠키 역시 향유할 그 세계. 무츠키는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문득 토오루의 얼굴이 떠올랐다.

  “토오루한테 말하게?”

  “. 그래야지.”

  선선한 미츠키의 반응과는 달리, 무츠키는 어딘가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K군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모양이었다.

  “좀 그래?”

  “사실, 조금……. 설마 토오루가 좋아하는 사람한테까지 나쁜 일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불안하긴 해. 무츠키는 속삭이듯 말했다.

  “언니들.”

  토오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흠칫 놀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한 블록 앞의 가로등 아래에서, 토오루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우리 대화를 얼마나 들었을까. 미츠키는 사사키의 집에서 나온 이후의 대화들을 복기했다. 딱히 걸릴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토오루는 사뿐사뿐 걸어 아직 당황이 가시지 않은 두 사람의 앞까지 왔다.

  분명 우리보다 키도 덩치도 작다. 하지만 왜 이렇게 토오루의 존재는 커 보일까. 압도당하는 느낌. 마치 거대한 그림자가, 그만큼의 어둠이 드리워지는 느낌이었다.

  “제가 설마, 하이세 오빠 집도 모를 거로 생각한 건 아니죠?”

  “그럼 왜 우리한테 그런 일을 시킨 건데?”

  “조금 놀라긴 했어요. 저도 집 안까지 들어가 본 적은 없거든요.”

  토오루는 역시 사사키의 집을 알고 있었다. 미츠키는 단침을 삼켰다. 토오루가 자신의 질문을 일부러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에 더욱 긴장되고, 초조했다.

  “어땠어요? 하이세 오빠의 방은? 역시 깔끔하겠죠? 특이한 게 있었나요? 어서 말해봐요. 어서.”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할 의무는 없잖아.”

  “하지만 미츠키 언니, 우리는 공범인걸요. 공범끼리는 뭐든지 공유해야죠. 그래야 배신을 안 하지.”

  그리고 토오루는 표정을 바꿨다. 순진무구한 아이의 표정.

  “저에게 이복 언니들이 있었다구요? 세상에. 전혀 몰랐어요…….”

  두 자매는 토오루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저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모두들 믿으리라는 것도, 두 자매가 토오루에게 맞선다 한들 승률이 그렇게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토오루의 말이었을 뿐이야.

  미츠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츠키와의 관계, K군에 대한 연정, 그런 건 토오루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토오루가 내게 접근한 것은 오직, 자신의 말을 철저하게 듣는 꼭두각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토오루.”

  “시험이었어요. 내 말을 얼마나 들을지 궁금하잖아요.”

  토오루는 그저 웃었다. 미츠키와 무츠키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스스로 어둠 속으로 걸어간 꼴이었다. 투명한 어둠은 타인에게 들키는 일 없이 두 사람의 목을 졸라올 것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요, 언니들.”

  토오루와의 관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FAN-CAKE > [무츠키x3] 혈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츠키 x3] 혈연 (11)  (0) 2020.08.18
[무츠키x3] 혈연 (10)  (0) 2020.08.17
[무츠키x3] 혈연 (8)  (0) 2020.08.14
[무츠키x3] 혈연 (7)  (0) 2020.08.13
[무츠키x3] 혈연 (6)  (0) 2020.08.12

+ Recent posts